데이비드 커버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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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퍼플 후기 시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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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스네이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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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습 (2006년)
1. 설명
영국의 보컬리스트. 1951년생. 딥 퍼플, 화이트 스네이크의 보컬.
본래 양품점 직원이었으나 탁월한 가창력으로 당시 이안 길런 탈퇴 이후 새로운 보컬을 찾던 리치 블랙모어의 눈에 띄어 발탁된 보컬이다. 리치 블랙모어의 인터뷰에 의하면 이언 길런이 상남자 스타일의 미남으로 여자들에게 인기 많았던 보컬이었으니 이번에도 노래 잘 부르고 얼굴도 잘 생긴 사람으로 뽑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제안을 했고 그 와중에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생각 외로 곡들을 잘 소화해내자 보컬로 발탁했다고 한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매력적인 저음에, 타고난 성량과 탄탄한 발성으로 폭발적인 가창력을 뿜어내며 당대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 중 하나가 되었다.
딥 퍼플 시절(Burn, Stormbringer, Come Taste The Band)만 해도 중저음역대 보컬이라 고음역대는 베이스인 글렌 휴즈가 맡았지만,[2] 딥 퍼플 이후 성대결절을 겪은 후엔 가창력이 계속 늘어 화이트 스네이크 시절엔 고음역대까지 훌륭하게 소화하는 보컬이 되었다.[3][4]
특유의 중저음이 유명하며, 큰 키에 배우 뺨치게 잘 생긴 미남이기도 하다. 딥 퍼플 가입 전엔 그렇게 꾸미고 다니던 타입이 아니었는데, 리치 블랙모어가 심플한 복장임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생각해 그를 벤치마킹 하였다고 한다.[5] 중년이 넘어가면서 젋을 때보다 더 잘 생겨지고, 현재는 미노년에 접어들었다.
그(와 글렌 휴즈)가 부른 Burn은 최고의 명곡으로 손꼽히며 헤비메탈 시대의 많은 록 키드들에 의해서 많이 커버되었고, 동명 앨범의 'Mistreated'는 커버데일의 스타일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곡이었다. 딥 퍼플 Stormbringer 앨범의 숨은 발라드 Soldier of Fortune은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자신의 밴드인 Whitesnake를 결성하여 Fool For Your Loving 등 명곡을 양산해내던 도중 최고의 평가와 상업적 성공을 거둔 앨범인 '1987'에서 빌보드 싱글차트 1위곡인 Here I Go Again과 2위곡인 Is This Love, 그룹의 음악적 역량을 집대성한 대곡인 Still Of The Night 등을 히트시키며 전성기를 누린다.
그외 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인 지미 페이지와 'Coverdale & Page'를 결성하여 Pride & Joy, Take A Look At Yourself 등을 히트시켰다.
이런 밴드 운영, 작곡, 그리고 프로듀싱 등 이런 부분들은 과거 딥 퍼플 시절 때 업계일에 잔뼈가 굵을 대로 굵었던 리치 블랙모어, 존 로드, 그리고 이안 페이스 같은 대선배들에게 배운 것들이었다. 이 때문에 인터뷰에서 리치 블랙모어에 대해 물어보면 절대 나쁜 소리는 안한다, 오히려 배운것이 너무 많았다고 한다. 환갑인 아니에도 끊임 없는 유명세와 활동력엔 선배들의 철저한 교육 덕분이었으니 주변에서 싫은 소리를 해주길 원해도 해줄 수가 없다.
서구권 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의 수많은 록 키드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80년대에 이름 좀 날렸던 수많은 록 보컬리스트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아시아권 가수들 중 그에게 영향을 받은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이 임재범, 이승철[6] , 겐키 히토미이다. 특히 임재범은 커버데일에 대한 존경심을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으며, 그가 아마추어였던 시절부터 커버데일의 딥 퍼플, 화이트 스네이크 시절 대표곡으로 노래 연습을 해온 것은 이미 매우 유명한 사실이다.
딥 퍼플 시절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곡을 수록한 'Purple Album'을 2015년 발매하였다. 원래는 기존의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려고 했으나 리치 블랙모어의 사정상 무산되었고,[7] 자신의 밴드에도 있었던 키보디스트 존 로드가 타계했기 때문에 딥퍼플 3기의 재결합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2. 관련 문서
[1] 데뷔 때에는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2] 리치 블랙모어가 데이비드를 극찬했던 이유 중 하나 곡을 잘 이해하고 그 곡에 맞게 리듬을 잘 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건 노년이 된 지금도 이어진다.[3] 수술 과정에서 그의 고음역대를 방해하던 요소가 사라젔을 수도 있다. 창법은 조금 바뀌었지만... 20대 시절 때 불렀던 Burn과 60이 넘어서 불른 Burn을 비교하면 노년 때가 더 힘이 넘친다.[4] 하지만 고음역대를 완전히 못낸 것은 아니고 어느정도 소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974년 캘리포니아 잼에서 Mistreated를 부를 때 샤우팅을 했다.[5] 리치는 예나 지금이나 위 아래로 올 블랙에 상의는 와이셔츠 혹은 바로크 풍 검정 셔츠이다.[6] 부활 오디션도 Soilder Of Fortune으로 봤다.[7] 리치 블랙모어는 이당시 메탈을 안한지 20년 가까이되어가던 시기였고, 자시의 메탈밴드였던 레인보우의 활동을 다시 기획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