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범

 


'''임재범
任宰範
'''
<colbgcolor=#bdb76b><colcolor=#fff> '''이름'''
임재범 (任宰範)
'''출생'''
1962년 10월 14일[1][2][3][4] (62세), 서울특별시
'''신체'''
182cm[5], 76kg
'''학력'''
서울고등학교
'''데뷔'''
1986년 시나위 1집 앨범
'크게 라디오를 켜고'
'''가족'''
아버지 임택근[6], 배우자 송남영[7], 슬하 1녀
이복동생 손지창, 고종사촌 성 김[8]
'''종교'''
개신교
'''링크'''

1. 개요
2. 가창력에 대한 평가
3. 성격
4. 음반 목록
4.1. 듀엣곡
5. 근황
6. 논란 및 사건 사고
6.1. 나치 복장 논란
6.2. 엔지니어 폭행 사건
6.3. 작곡 여부 논란
6.4. 표절 논란
6.5. 출연 금지
6.6. 정준하 폭행 의혹 논란
7. 가족사
8. 여담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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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록 음악, R&B, 발라드 가수이자, 한국 최초 헤비메탈 밴드의 1집 보컬리스트다.
1986년 서울고 동창인 신대철의 밴드 <시나위> 1집에 참여하여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부르면서 대중 음악계에 데뷔를 했다..참고로 시나위의 1집인 'Heavy Metal Sinawe'는 국내 최초의 헤비메탈 음반으로 알려져있다. 하드록에서 헤비메탈로 넘어오는 경계선에 서있는 그룹들은 몇 있었지만,[9] 스스로를 헤비메탈로 표방하고 앨범을 낸 이들은 시나위가 최초였다.

2. 가창력에 대한 평가



  • 줄리는 역시 임재범의 보컬이 전성기일 때의 외인부대 1집이 명곡이다. 진성 최고음은 2옥타브 시, 샤우팅에서는 3옥 도인 높은 난이도의 노래이다.




맹수의 표효를 연상케 하는 가창력은 풍부한 성량과 두터우면서도 애절한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임재범의 이 음색이 얼마나 사기적이냐 하면, 흔히 말하는 대부분의 '음색 깡패'들이 소화할 수 있는 장르의 폭이 제한적인 반면 임재범은 , 발라드, R&B, 소울, 포크, 블루스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자신만의 색깔과 독창성으로 소화해낸다. 이런 발성법은 음악을 시작하면서 딥 퍼플데이비드 커버데일주다스 프리스트롭 핼포드 같은 가수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특히 데이빗 커버데일을 그토록 존경했다고 한다. 저음부에서는 소울풀하고 육중하며 고음부에서는 날카로운 음색이 서로 비슷하다. 소울음악에선 제임스 잉그램, 루더 밴드로스를 모티브로 했고, 락 음악에선 데이비드 커버데일, 롭 헬포드, 로니 제임스 디오, 제프 테이트를 모티브로 했다고 밝혔다. 임재범은 자신이 모티브한 소리를 바탕으로 한 앨범 속 여러 노래들을 모두 다른 창법으로 부른다고 밝혔다.
임재범은 거칠고 야수 같은 목소리로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지만 감정처리에 있어서 섬세함은 대적할 가수가 별로 없을 정도이다. 예를 들자면, 너를 위해에서 "연인처럼, 때론 남남처럼~"에서 두 개의 처럼을 각각 다른 감정표현으로 구사한다. 어떤 날 너에게라는 곡에서 "타박거리며 오는 발소리"에서 "타박"을 조심스럽게, 걷는 듯이 표현하였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에서 "너의 눈물 속에 내 모습"도 음절마다 발성을 다르게 해서 강약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은 지금은 사라진 그의 블로그에서 임재범과 영국 거주시절 함께 했던 '''SARANG''' 시절을 회상하면서 "드러머가 영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밴드 "marmalade" 의 후기 드러머로 활동했던 친구라, 주위에 많은 스타 뮤지션 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machael shenker 밴드의 보컬 gary barden 을 추천했죠. 그러나 저는 밴드내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인 보컬을 이야기 했었죠, 그래서 급기야 재범이를 영국으로 불러 오게 된겁니다." 라고 쓰고 있다 임재범이 충분히 영국 본토 시장 공략에 부족하지 않은 락 보컬로 여기고 있었다고 봐도 될 듯하다
maniadb 임재범 보컬, 작곡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한국 Rock의 사관학교 시나위. 국내 Rocker들의 해외진출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그룹 외인부대. 아시아나등의 활동으로 솔로 데뷔부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임재범 그가 그전 그룹활동에서 보여주었던 폭발적인 에너지의 아성을 갈무리한 솔로 1집 <이 밤이 지나면>을 출반했을 때 그를 기억한 팬들의 성원과 반응은 그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판매고인 60만장의 앨범 판매로 확인 되었다.

1998년 여름 많은 음반 관계자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임재범 매니아들의 필수 구입 앨범 3집이 출반되었다. 인류 근원에 관한 엄청나고 난해한 메시지. 신과 인간에 대한 그만의 유니크한 해석. “Return To The Rock”의 기치를 내건 그의 3집은 그 구성의 특이성과 전격적인 출반 일정으로 화제를 일으키며 한국 Rock의 부활을 꿈꾸는 많은 Rock 매니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었다.

당시 앨범 작업에 참여한 후배 뮤지션과 녹음 관계자는 지금도 '''그는 그때 미쳐있었다. 3집 음반에 대한 열정으로 불가사의한 능력이 인간에 존재할 수 있다면 그건 그때 그의 모습이었다'''라고 회고한다.
2006년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신해철이 말하길 리즈시절 임재범은 '''롤플레잉 게임 들어갔을 때, 전사이면서, 마법 배우고, 아이템 긁어모아서 칼 바꾸고, 갑옷 바꾸고, 투구 바꾸고,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다 손에 넣는 불가사리 같은 존재 같았다'''며, '''영국적인 보컬리스트들의 흉내내기를 통해서 목소리를 단련시켜 나가고 있던 젊은 보컬리스트가, 또 그 이후에 아시아나 등의 여러 락밴드들을 거치게 되면서, 이제 정제되고 단련되고 해서 어느 정도 수준의 경지에 올라간 그런 모습을 보여주다가, 그 이후에 소울이라든가 발라드에 여러 팝을 소화하는 여러 가지를 집어 삼켜 버리고, 그리고 또 원래 임재범이 소유하고 있던 음역대 훨씬 이상의, 거의 한 옥타브에 가까운 음역대를 손에 넣어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는 그런 무기들을 손에 넣고 나서는, 마치 이제 이 앞으로의 행보는 이 아티스트에게 있어서는 "내 맘인데 뭘 하면 좋을까?" 왼손에는 포크 300개, 오른손에는 나이프 15개, 그리고 발에다가는 국자 차고.. "도대체 뭘 요리를 하면 좋단 말인가"라는 그런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그런 아티스트'''로 보여진다고.
그 동년배 또래의 가수들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하고, 나름대로 이제 언더그라운드 혹은 헤비락 씬에서 탈출해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몰라, 난 노래 연습해" 이러고 지리산에 들어가버리기도 했다.
가끔 수련의 결과물로 앨범을 내어주시고는 앨범에다가 "내공과 외공을 겸비하면 이렇게 되느니라, 아이들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신해철이 평가하는 임재범
2009년 이선희는 20대 시절 시나위의 임재범을 보며 저렇게 부를 수 없어서 절망했다고 한다. 참고링크.
2010년 시나위 신대철은 시나위를 함께 한 보컬리스트 중 임재범을 최고로 뽑기도 했다.

'''배철수''': 야~ 이 친구 진짜 내 맘에 든다 하는 친구가 있었는지?

'''신대철''': 사실은 다 그 특색이 다 있었어요 다 .. 사실은 임재범씨가 처음 이렇게 등장했을 때 저는 사실은 '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을까?' 정말 놀랬으니까요 그 때. 아 노래를 신기한게 그 분은.. 저는 연습한 걸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근데 노래를 하면은 입만 열면 노래가 돼요, 이 사람은.

'''배철수''': 오 어휴 야... 이거 진짜 부럽다

'''신대철''': 예...아마 없을 거에요 그 분 빼고는.

신대철이 말하는 임재범 (배철수의 음악캠프中)

신대철은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 108회에서도 "저는 굉장히 임재범씨 보컬에 대해서 굉장히 저는 좋아했었어요. 야.. 우리나라에 저런 보컬이 있었어 정말 대단해"라고 평하기도. 시나위 신대철
2011년 SBS 라디오 프로그램인 '이현우의 뮤직 라이브'를 진행할 당시 이현우는 처음 음반사에 오디션 보러갔을 때 마침 녹음실에서 녹음하고 있던 임재범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아, '내가 과연 가수를 할 수 있을까'라고 무척 고민했다고 밝혔다. '하필이면 임재범이야~!!!'라고.관련 기사
음악 채널 Mnet에서 교수, 가요 전문 기자, 평론가, 뮤지션, 업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50명의 심사위원단이 한국 가요사를 빛낸 전설의 가수 100명을 선정하면서, 레전드 20인의 보컬 아티스트에 선정되었다. "진심을 노래한 카리스마 보이스 임재범은 살아남은, 그리고 살아있는 록 보컬리스트다. 헤비메탈로 시작한 임재범의 강렬한 힘은 시간과 관록이 켜켜이 쌓이며 큰 울림을 갖게 되었다. 범접하기 어려운 경지에 도달한 내공은 때로는 경외로 듣는 이들을 밀어냈고, 때로는 짙은 잔향으로 듣는 이들을 끌어당겼다. 살아남은 자의 살아있는 목소리, 단 한 순간도 잊힌 적이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그의 목소리에 박수 소리는 더욱 커진다."는 평 레전드 20인의 보컬 아티스트
'''록&밴드 부문 레전드 20'''에서도 그의 데뷔 앨범 시나위 1집 'Heavy Metal Sinawe'가 선정되었다. 관련기사 "한국 헤비메탈의 개척자 신대철은 시나위가 '장르 음악'을 좀 더 일반화시키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것으로 그룹이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갖는 의미를 정리한다. 시나위는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대표적 언더그라운드 장르였던 헤비메탈을 주류로 끌어올린 주인공으로 평가받는다. 비록 대중적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은 적은 없지만 항상 우직하고 튼실한 존재가 시나위다. 한국의 록 팬들은 1980년대에도 지금도 시나위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라는 심사평.
Mnet Legend 100-Artist 3회:보컬 #2.자유의 정신ROCK편에서는 "묵직한 고음의 파워 보컬, 거칠고 시원한 목소리에 녹아있는 세상에 얽메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불세출의 로커, Legend 임재범"라고 평했다.[mnet legend 100-artist 3회:보컬] #2.자유의 정신ROCK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임재범의 데뷔 앨범 시나위 1집 'Heavy Metal Sinawe'가 32위에 랭크되어 있다. 링크
'''음악취향Y Best 100'''에서는 96위에 아시아나(Asiana) 'Out On The Street'가 선정되었다. "임재범은 헤비메탈 보컬리스트로서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는데, 쇳소리 두성과 비음을 적절히 섞어 만들어 낸 고음은 당대 외국의 어떤 보컬리스트와 견줘도 손색없는 빼어난 실력을 선보인다."는 평 음악취향Y Best 100
음악취향Y ''' Best 100 Heaviness''' 부문에서 아시아나(Asiana)의 'Out On The Street'는 1위에 선정되었다. 음악취향Y Best 100 Heaviness 50+5 "임재범은 쇳소리 두성과 엄청난 호흡을 바탕으로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선보인다." "임재범의 육중하면서도 문득문득 한국적 한이 서린듯 소울 냄새를 풍겨내는 목소리, 김도균의 국적을 무색케 하는 무시무시한 피킹의 향연이주는 이질적인 하모니는 물론 그 자체로도 인상적이다."는 평.
《월간조선》에서 대중문화·음악평론가 1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한국 대중가요 역사를 통틀어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를 선정한 결과, 80년대 이후 가수 중 이승철과 공동 1위를 차지하였다. 전문가가 선정한 이 시대 최고의 가수는? 임재범은 이 평가에서 "어떤 곡도 '임재범의 창법'으로 소화해내는 록보컬의 레전드", "기교와 형식을 넘어선 깊이감을 갖춘 가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조선일보에서 김연우 등의 보컬 트레이너들에게 물어본 최고의 보컬리스트에서 조용필, 이승철에 이어서 3위를 차지하였고, "한국 가수가 갖기 힘든 톤과 파워를 가졌다"는 평.기사
음악 전문가 20인에게 질문한 가장 노래 잘 하는 가수에서도 조용필, 이승철, 인순이에 이어서 4위#, ##
'대중음악 사운드(SOUND)'에서 한국 대중음악 명예의 전당에 추천하는 100인을 10개 분야(보컬리스트, 기타리스트, 베이시스트, 드러머, 키보디스트, 작곡가, 작사가, 프로듀서, 레코딩엔지니어, 음반기획자) 10인씩 선정한 결과, 한국 대중음악 '최고의 보컬리스트' 10인에 선정됐다. 링크
음악취향 Y에서 선정한 Ballad Best 100에서 "너를 위해"가 13위, 박정현과 함께 부른 "사랑보다 깊은 상처"가 17위에 올랐다.[10]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2018년)에서 34위에 Heavy Metal Sinawe 시나위가 선정되었다. 100대 명반 선정은 총 3번의 시도가 있었는데, 첫째로 1998년 잡지 '서브'에서 선정된 리스트가 있고, 둘째로 2007년에 음악전문 웹진 가슴네트워크에서 52인의 선정위원을 위촉하고 100개의 명반을 선정해 경향신문에 공개하고 리뷰를 연재했던 리스트가 있다. 그리고 셋째로 2018년에 언론사 한겨레, 음원사이트 멜론, 출판사 태림스코어가 47인의 선정위원의 투표를 통해 선정한 리스트가 있다. 임재범의 데뷔 앨범 시나위 1집은 3차례 연속 선정 되었다.

작곡가 겸 음악 프로듀서 김형석이 프로듀싱 도중에 녹음실 부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던 임재범을 두고 "가수 10명 중에 한 명이라도 임재범의 반만큼만 노래할 줄 알면 좋겠다"는 평을 할 정도.#
윤도현은 MelOn PLAYLIST에서 그의 음악 인생에 막대한 영향 끼친 추천곡으로 '''외인부대'''의 '''쥴리'''를 선곡하고, "대한민국 헤비메탈의 일맥을 장식한 밴드, 윤도현이 가수 데뷔를 하게 된 시발점이 된 노래"라고 소개하고 있다. "목소리가 정말로 그런 보컬이 없어요. 뭔가 칼 같기도 하면서 목소리 톤도 되게 와이드하고 굉장히 고급스러운..." 영상
발성을 보자면 성량에 있어서 상당한 강점을 보인다. 고음뿐만 아니라 중저음에서도 성량이 크게 나오고 게다가 야외 콘서트에서도 관중석 뒤쪽까지 울려퍼지는 수준, 거기에 허스키한 음색을 더욱 두껍게 만드는 파워가 전부 성량이다.[11] [12] 파사지오 구간에 진입할수록 터져나오는 듯한 강렬한 고음역 성량도 백미. 게다가 가성이 진성처럼 들려서 따라부르기도 어렵다.
음역대 역시 '''0옥타브 레♯(D♯2)'''부터 '''3옥타브 솔(G5)'''까지 소화해내는 상당히 넓은 음역을 가졌다.(가성 포함)[13]
임재범의 전성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은 아시아나와 외인부대에서의 활약을 위시한 강력한 록보컬로서의 전성기. 이 당시의 임재범 거칠고 강렬한 벨팅과 국내 가요계 거대한 성량, 파워풀한 샤우팅을 기반으로 무시무시한 난이도의 헤비한 메탈 록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괴물 같은 보컬이었다. 특유의 낮은 톤으로 3옥타브 후반대를 발성하는 강력함과 폭발적인 스크래치를 보여주었다.[14]
다만 원래도 고음이 주무기였던 보컬은 아니었고, 나이가 들면서 성대에 팽팽한 내전율과 탄성력이 필요한 파사지오 구간에서의 음이탈이 잦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임재범에게 리즈시절의 록커 모습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이후 임재범은 솔로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감성보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고해>, <너를 위해>, <비상>을 비롯한 발라드 곡을 잇달아 발표하며 파워풀한 록커에서 부드라운 발라더로서의 전환을 시도하다가, 결정적으로 나는 가수다에서 여러분을 통해 '''감성보컬의 포텐을 제대로 터뜨렸다.''' 특유의 애절한 음색을 이용한 매력적인 중저음, 감정을 토해내는 듯한 고음에 몇몇 사연이 만들어낸 불세출의 감성이 더해져 정상급 발라더의 면모도 제대로 보여주는 상황이다.

3. 성격


루머가 워낙 많은 임재범이지만 지인들의 임재범 성격에 대한 평은 세간의 평과 상당히 다르다.

일례로 30년 지기인 김도균은 MBN '아궁이'에서 "평소 임재범은 양처럼 순하다. 다만 너무 바르고 교과서적이다 보니, 틀을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세상 일이 교과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보니 그 부분에서 마찰이 생기는 것 같다. 임재범을 '거친 남자'로 오해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서부터 오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김도균, "카리스마 임재범, 양처럼 순한 사람"
손지창은 2001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형과 몇 번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내가 형의 동생이라는 점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괴팍하다는 소문과는 달리 다정다감했고 모든 면에 천재성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너무 순박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점이 아쉬웠다." 한편, 손지창은 지난 2011년 3부자 상봉 후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좋은 형을 갖게 되어 자랑스럽다"며 "형은 음악적 재능을 떠나서라도 지금까지 내가 만난 그 어떤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임재범에 대한 마음을 밝혔다.기사
동창들에 따르면, 임재범은 J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J 중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에는 당시 학생들의 제식 훈련을 지휘하는 '학생 연대장'을 지냈고, 또 학생들의 질서를 담당하는 규율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서울고등학교를 다니다 가수를 하기 위해 자퇴한 것으로 알려졌다.임재범의 학창시절
그와 친했던 동창생들은 그가 우등생까지는 아니었어도 '''반듯한 학생'''이었고, 일단 친해진 친구들에게는 매우 유머러스한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임재범의 국민학교 동창인 B씨는 "재범이는 늘 좋은 옷을 입은 예쁘장한 아이였고, 쾌활하고 명랑했다"고 말했다. 중학교 동창인 C씨는 "그가 또래에 비해 키도 크고 낯을 좀 가리는 편이어서 평소에는 무게를 잡았지만, 일단 친해진 친구들에게는 배한성씨나 이대근씨의 성대모사를 하거나, 가수들 모창도 들려주곤 했다"고 말했다. C씨는 "친한 사이에서는 재미있는 얘기들을 자주 들려줘서 웃음을 주는, '''아주 유머러스하고 착한 친구''' 였다"고 말했다.

"한번의 이혼을 통해 가정과 직장, 세상명예와 나의 아버지까지 잃은 저를 위로하고 격려해주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엄마잃고 상처받았을 나의 아들을 위로하며 용기와 격려를 해주던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가수 임재범과 그의 아내 연극배우 송남영 부부가 그들입니다.

'''제가 아는 사람중에 가수 임재범은 가장 순수하고 심성이 착한 사람입니다'''

...교회 주변의 임대아파트에 사는 어려운 이웃들과 장애우, 그리고 한가정 부모의 아이들이 대부분인 교회 공부방 아이들에게 연극과 뮤지컬, 노래를 가르치며 오랜동안 봉사해 온 송남영 선생을 수년간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착하고 선한 부부입니다.

임재범/송남영 부부에 대한  어느 무명 성도의 이야기

정성호는 "사실 '나도 가수다'는 일회성 코너로 기획됐어요. 처음에는 괜히 희화화해 누가 될까봐 겁이 났죠. 부담이 컸는데 예상과 달리 반응이 엄청나더라고요. 그래도 불안감이 없지 않았는데 임재범 형님이 직접 전화를 해주셔서 '즐겁게 잘 보고 있다', '계속 같이 잘 해보자'고 응원해 주셔서 겨우 가슴을 쓸어내렸죠."라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임재범은 최근 콘서트 무대에서 정재범을 화제로 올렸고, 정성호에게 문자를 보내 소재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걱정도 해줬다.
심지어 '이런 걸 해보는 건 어떠냐'고 아이디어까지 제공해줬다. 정성호는 "아직 실제로 뵙진 못했지만 정말 털털하고 좋은 분이고, 제가 웃다가 통화가 끝날 만큼 유머감각이 탁월한 분"이라면서 "(임재범씨가) 가수가 아니라 배우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기사
정성호는 임재범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자신이 6개월 간 '나도 가수다'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임재범의 지원이 컸다. 그는 "사실 하는 동안 안티팬이 많이 늘었다. 임재범 형 팬들의 미움을 많은 받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도 있었는데 임재범 형이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줘 지금까지 잘해올 수 있었다"고 전했다. 기사
다음주에 둘째 딸을 갖게 되는 정성호는 "정재범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려고 했는데 둘째도 딸이다. 그래서 아내에게 '아들을 낳을 때까지만 계속 낳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성호는 MBC TV '웃고 또 웃고-나도 가수다'에서 가수 임재범을 따라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임재범은 정성호 부부를 직접 자신의 콘서트에 초대하기도 했다. 정성호는 "임재범씨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 부부를 정말 잘 챙겨주셨다. 나와 아내를 자신의 콘서트 무대에 세워줘서 영광이었다"며 "말이 별로 없으셨는데도 포스가 대단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성호, 임재범 때문? "아들 낳으면 재범이라는 이름 붙여줄 것"
김영호는 임재범을 "자기 세계가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김영호는 "방송에선 귀엽고 익살스런 임대디의 모습이 많이 비춰지지만 촬영하지 않을 땐 남에게 말도 안 걸고 조용히 음악만 들어요. 자기 세계가 너무 강해 다른 사람들이 어울리기 힘들어 하지만 누구보다 맑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기사
차지연은 "임재범씨를 처음 봤을 때 무섭지는 않았나"라는 질문에 "진짜 무서워서 기가 팍 죽었다. 그러다 두세 번 뵙고 나니 겉으로 표현은 못해도 속은 참 여린 분이란 생각이 들더라. 투박하게 '밥 먹었나'라고 짧게 말을 해도 영혼이 순수하고 맑은 사람이란 느낌이 왔다."고 밝혔다. 기사
윤도현은 임재범의 첫인상에 대해 "무서웠지만 막상 만나 보니 선하시다"며 "임재범을 만났을 때 잃어버린 형제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임재범 형님과 의형제를 맺었다. 강렬하고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픈 묘한 에너지를 가진 분"이라고 전했다. 기사 "임재범의 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가면 잘해주고 선물도 해주며 자상하게 대해줬다 그래서 나도 답례로 자전거를 드렸다"며 우정을 과시했다.(힐링 캠프) 기사
소울다이브는 "호랑이같은 면은 선배님의 카리스마를 말하는 것이다. 정말 호랑이처럼 강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계신다. 하지만 강한 면모 속 숨겨놓은 부드러운 진심으로 후배들에게 따뜻한 말로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다"며 "식사를 챙겨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무대 위에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배려해주시는 따뜻한 분"이라고 호랑이보다는 어머님같은 선배라고 전했다. 소울다이브, 호랑이 같은 임재범에 "호랑이 아닌 어머님"
1집 당시 록을 버리고 다른 장르를 시도했을 당시엔 출연정지를 당해서 나오고 싶어도 못나왔고, 자의로 잠적한게 아니다라며 자신의 억측을 사실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임재범이 이밤이 지나면으로 나가수 출연 당시만큼 인기를 얻었던건 1991년이었고, 출연정지 기사가 난 건 1993년 3월 이후이다. 그가 1년간 오대산에서 칩거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관련 기사
92년 특종 TV연예 임재범 신대철을 비롯한 시나위 멤버들과 함께 '특종 TV 연예'에 출연한 임재범은 인터뷰에서 "혹시 또 한 번 증발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글쎄요. 증발이라는 단어 자체가 날아가 없어진다는 뜻인데 제가 물이 아니므로, 더는 증발할 이유는 없고 다 말랐습니다. 이제"라고 대답하는 모습에서 젊은 시절 임재범의 반항적인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었다.(1992년)
임재범은 "90년대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토토즐)에 나가서 '이 밤이 지나면'을 딱 한 번 불렀는데 지금의 '나는 가수다'(나가수) 같은 반응이 왔다. 하루 새에 갑자기 음악차트 3,4위 상위권에 랭크가 되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실제로 임재범 1집은 60만장 이상 팔리는 놀라운 판매고를 보였다. 하지만 록커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임재범에게 이들은 '솔로로 잘 나가서 좋냐'고 비아냥 거렸고 록커의 자존심을 버렸단 생각에 임재범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가끔 포장마차 이런데서 막걸리 한 잔 할 때면 신대철한테 무조건 사과부터 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그는 록커로서가 아니라 한국의 마이클 볼튼으로 불렸다. 결국 그는 리듬 앤 블루스나 소울, 발라드는 진정 하고 싶은 음악이 아니라며 오대산 등에서 1년간 잠적하기에 이르렀다. 이 후에도 앨범을 내고 잠적하고 다시 돌아와 앨범을 내고 잠적하는, 아니 증발하는 일이 반복됐다. 하지만 김준원은 임재범이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인한 잠적을 했다고 했고, 실제로 소속사에게 제대로 된 정산을 받지 못하였다. 이를 보면 잠적은 임재범 개인의 문제라고만 볼 수 없다. 그리고 임재범은 가수를 꼭두각시처럼 다루는 연예계 상황, 홀대받는 한국 락 음악 그리고 아티스트로서 가수를 존중해주지 않고 비판하는 대중들에게 스트레스를 느꼈고, 이런 점 또한 잠적에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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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음반 목록




4.1. 듀엣곡


2019년까지의 임재범의 듀엣곡들은 다음과 같다.
1998년 박정현 1집 사랑보다 깊은 상처 - (원곡 : 임재범 2집 - 사랑보다 깊은 상처)
1998년 박진영 5집 - 재회(With 임재범)
2001년 서영은 2.5집 -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 - (원곡 : 임재범 4집 -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
2006년 겨울愛(Single) - 겨울이 오면(With Tei)
2010년 사랑에 아파한 날들(Single) - 사랑에 아파한 날들(With 윤하)
2013년 I Love You(Single) - I Love You (With 알리)
2015년 After The Sunset - White Night - 사랑보다 깊은 상처 - (With 태연)
이 중, 사랑보다 깊은 상처와 아직도 사랑할 뿐인데는 임재범 2집과 4집에서 솔로로 불렀던 곡이며, 원곡을 그대로 유지하며 각각의 파트로 녹여내어 발매한 것이다.
특히 유명한 것은 박정현과 함께 부른 '사랑보다 깊은 상처.' 특이하게도 이 곡은 보통의 남녀 듀엣과는 달리 남자 보컬이 원음을 부르고 여자 보컬이 화음을 쌓는다. 몇몇 부분에서는[15] 남자 보컬이 여자 보컬보다 높은 음을 내기도 한다. 그래서 커버할 때 여자보컬들은 편하게 부르는 반면 남자보컬들은 힘겹게 성공하거나 삑사리가 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애초에 듀엣곡으로 기획된 곡이 아니라 임재범이 2집에서 먼저 솔로곡으로 발표했고, 박정현이 후에 자신의 파트를 따로 녹음해서 하나로 합친 거로 임재범의 음역대에 맞춘 곡이다보니 남자들에게는 힘들고 여자들에게는 편한 것. [16]
2015년 9월 '사랑보다 깊은 상처'를 태연과 듀엣곡으로 다시 부르게 되었다. 대중들의 평은 임재범과 태연이 옛날부터 훌륭한 보컬이어서 기대된다는 반응도 있지만 2009년 눈의 꽃 사건 때문에 염려스럽다는 이야기도 있다.

5. 근황


임재범이 다시 재조명받게 된 계기가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사실 아내가 암투병 중임에도 저작권료 외 마땅한 수입이 없었던 그에게 나가수 출연 제안이 왔고 끝판대장 분위기를 풍기며 등장하여 대표곡인 '너를 위해'를 열창. 선호도 경연 1위를 차지했다. 사실 음정이 어긋난 부분이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성적으로 어필하여 시청자들의 눈에서 눈물까지 뽑아냈다. 즉 전성기는 이번 공연보다 더 대단하다는 사실. 꼭 전성기 시절 '너를 위해'를 들어보자.
무대 전 인터뷰에서 "내가 프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추어도 아니고 마니아 수준의 가수라고 생각한다"는 망언이나 꼴등하면 집에 가서 애나 본다는 등 의외로 예능성 멘트도 날려 토크에서도 빛을 냈다. 윤도현의 말에 따르면 엄청난 대선배님이시고 카리스마가 넘쳐서 만나기 전부터 두근두근했었는데 의외로 이야기해보니 너무 편안하고 재미있는 아줌마 스타일이라고. 임재범 역시 윤도현과는 공통스런 장르에 종사했다는 친근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하여 처음 만났을 때도 주먹을 맞부딪히며 Rock & Roll Baby! 라고 외치기도 했다. 윤도현의 트위터(@ybrocks)에는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오기도. 윤도현 갤러리에서는 임재범을 임대디(아빠...), 윤도현을 윤베베(...)로 부른다.
경연 1차전에서는 남진의 트로트곡 '''빈잔'''을 편곡해 들고나왔다. 장르적으로 보면 한국 전통 사운드에 하드록을 결합한 형태로 마치 시나위나 아시아나 시절에 보여주던 음악을 연상시켰다. 프로그램의 자문위원인 장기호 교수는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 하다"고 높은 평가를 내렸다. 결과는 생각보다 낮았던 4위. 하드했던 스타일 때문에 호불호가 갈린 탓이라는 분석이 있다. 컨디션도 최악이었던지라 보컬 운영에서 아쉬운 점이 있던 것은 사실이나 특유의 카리스마와 놀라운 편곡은 극찬을 받았다.
이후 젊은 층 가수나 아이돌 천하나 다름없는 KBS 뮤직뱅크에서 4집 앨범의 타이틀 곡 '너를 위해'가 발표 11년 만에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상대는 박재범. 디지털 음원, 방송 횟수, 시청자 선호도에서 임재범이 박재범을 앞섰으나, 음반판매량에서 박재범이 앞서서 결국 박재범이 1위를 차지했다.
5월 16일에 맹장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나흘이면 퇴원할 수는 있지만 당분간 노래는 자제하라는 의사의 당부 때문에 나가수 제작진과 향후 출연을 논의하겠다고 했고 결국 23일 녹화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5월 20일, 드라마 시티헌터의 OST곡인 '''"사랑"'''이 공개되었다. 임재범 특유의 감성에 순식간에 멜론 실시간 차트 3위를 기록중. 그리고 5월 21일 1위로 올라섰다. 도시락, 엠넷닷컴, 벅스뮤직, 소리바다, 싸이월드 등 다른 음원사이트에서도 실시간 1위 기록 중, 본방이 시작하기도 전에 OST가 음원 차트 1위를 기록한 것은 전례없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가수다 23일 녹화에는 참여했지만 결국 건강상 노래를 부를 순 없었고, 최종적으로 하차를 결정했다고 알리는 자리가 되었다. 하차 후에는 건강을 추스리며 콘서트 준비에 들어간다고.#
5월 22일 방송된 나는 가수다 최종경연에서는 다시 한번 최종보스 모드로 각성, 거기다 경연 순서도 7번째라는 이점과 1차 경연보다 나아진 목상태로 완벽히 편곡한 '여러분'을 선사했다. 청중단은 기립박수 및 눈물바다. 과장 좀 보태서 '임재범도 울고, 동료가수들도 울고, 청중 평가단도 울고, 너도 울고, 나도 울었다.' 자문 평가단의 평가 역시 극찬 일색. 이후 원곡자인 윤복희는 "임재범은 내가 왜 이 가사를 썼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트위터를 통해 감상평을 남겼고, 작곡가 윤항기 목사 또한 "내가 남자라 그런지는 몰라도 윤복희가 부른 원곡보다 훌륭하다"며 극찬했다.
임재범 역시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대신 불러준 것이라 스스로 겸손해 했지만 각설하고 2차 경연 순위는 무려 28.9%라는 압도적인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다. 28.9%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계산을 하면 이는 청중평가단 500명이 각각 3표씩을 행사해 나온 총 1500표 중에서 433표(28.8666…)에 해당하는 것으로, 청중평가단 전체의 86.6%가 임재범을 선택했다는 의미.
참고로 이날의 경연은 다른 날도 아닌 522대첩이었다.
사실,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에서 전성기적의 보컬 운용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이에 실망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고 이들의 비판에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죽은 듯이 살았다고 회고하는 것처럼 목관리 안한 티도 좀 나고(...)[17] 하지만 노래는 기술이 아닌 감성이라는 것을 확고하게 보여준 사례가 아닐까 싶다. [18]
이런 가운데 나가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각종 루머에 휩싸이게 되었고 루머를 제작진에서 부인한 후엔 언론에서 임재범의 난동설이 보도 되었다. 임재범 측은 실제로 다툼이 있던 것은 사실이고, 다만 난동이라는 표현은 과장된 표현이라고 밝혔다.[19]
2011년 5월 31일 자신의 팬카페에 심신과 영혼이 지쳐 영국으로 떠난다라는 글을 올리고 돌연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가수다로 갑작스럽게 신드롬을 일으키며 일어난 엄청난 관심과 부담에 본인이 지친 듯. 6월 11일에 있을 돔아트홀 공연 연습을 위해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돔아트홀 공연이 취소되면서 또 도마에 올랐다. 임재범이 영국으로 멋대로 떠나버려서 공연이 취소되었다고 일부 네티즌들이 썰을 퍼트렸지만 공연 기획사에서는 회사 내부사정으로 취소되었다고 해명했다. 이래저래 파란만장한 임재범의 인생(...)
그런 가운데 최대 음반사로 꼽히는 예당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나가수에서 임재범의 편곡을 맡기도 했던 하광훈이 예당과 계약했던 걸로 볼 때 하광훈의 연결이 있었던 듯.
카페라떼 CF도 찍었다. 그 해 매일유업은 컵커피 시장에서 4년만에 1위를 탈환했다고 ...
여전히 방송 출연은 꺼리는 걸로 보인다. 데뷔 30주년…방송가 출연 요청에 침묵
2015년 3년만의 신곡이자 데뷔 30주년 기념앨범 발매로 방송가의 러브콜이 뜨거웠지만 2011년 MBC ‘나는 가수다’와 ‘바람에 실려’ 이후 4년째 방송출연이 없는 임재범은 여전히 자신만의 ‘동굴’ 속에 있다.
6일 임재범 측에 따르면 임재범이 30주년 기념앨범을 낸다는 사실이 알려진 9월부터 토크쇼와 음악예능을 중심으로 방송가의 출연제안이 쏟아졌다. 방송출연이 거의 없던 임재범은 이미지 소모가 없어, 늘 ‘신선한 인물’을 찾는 방송가의 구미에 맞는 섭외 1순위다. 특히 임재범이 올해 데뷔 3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어 방송출연에 나설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만, 임재범은 방송가의 요청에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임재범 측 관계자는 6일 “지상파와 케이블 등 웬만한 예능프로그램으로부터 출연제안을 받고 있지만, 임재범은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히든싱어4' 임재범 출연 2015년 11월 29일에 히든싱어로 4년 만에 방송에 복귀했다! '히든싱어' 측은 시즌 1부터 임재범의 섭외를 위해 접촉을 시도했다. 삼고초려가 결실을 맺었고, 시즌4의 초반 라인업으로 나설 예정이었지만,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부득이하게 하반기로 미뤄지게 됐다.
조승욱 CP는 19일 서울 상암동 JTBC 본사에서 열린 '히든싱어4' 기자간담회에서 "임재범은 워낙 방송 출연을 잘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간간이 콘서트만 개최했다"고 밝혔다.

조 CP는 그런 임재범에게 고마워하면서 "방송가에 떠도는 임재범에 대한 소문에 사실 걱정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녹화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줬다. 또 모창능력자들에게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줬다.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만의 속깊은 이야기, 팬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최초로 들을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히든싱어 출연한 임재범은 중간중간에 아재개그도 터트려주고, 예능감을 멋지게 드러냈다. 우승한 건 덤. 히든싱어에 나와서 잃어버린 초심을 다시 찾은 듯한 기분이라며 흡족해 하였고, 참가한 모창능력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후배들이라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진심어린 조언도 해주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시나 모창 대상가수로 가장 많이 손꼽히는 가수답게 모창능력자들도 후덜덜한 실력들을 선보였으며, 20분이나 연장된 방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이날 방송 시청률은 6.838%를 기록하였다. 이는 '히든싱어 4' 방송분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이었을 뿐 아니라 동 시간대 지상파와 종편의 다른 프로그램 시청률을 넘긴 수치였다. 그런데 왕중왕전 직전에 가수들이 모창자에게 조언을 해주는 부분이 모창자마다 나오는데 임재범의 모창자만 따로 녹화한게 아니라 임재범편 종료 직후에 함께 통으로 촬영한 것으로 보아 방송 출연 자체는 여전히 많이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1월 28일 방송된 JTBC ‘히든싱어4’ 출연으로 주말 포털사이트, 티켓 예매 사이트를 뜨겁게 달군 데 이어, 방송 직후 1만여장의 공연 티켓을 팔아 치우는 저력을 과시했다.
임재범의 전국 투어 ‘애프터 더 선셋: 화이트 나잇 (after the sunset: White Night)’은 ‘히든 싱어’ 방송 직후, 티켓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에서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를 줄 세우며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 ‘음악의 神’ 임재범, ‘히든싱어 효과’ 톡톡..전국공연 티켓 주말내 1만장 판매
30주년 기념 전국 투어 ‘애프터 더 선셋: 화이트 나잇’은 2015년 10월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 2회 공연을 시작으로 인천 남동 체육관, 부산 벡스코, 울산 동천체육관, 광주 염주체육관, 일산 킨텍스, 대구 엑스코, 수원 실내체육관, 성남아트센터, 의정부 실내체육관, 그리고 서울 세종문화회관 등 2016년 2월 14일까지 총 10개 도시에서 14회 동안 진행된 투어는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전국 콘서트 투어는 공연 시장의 전체적 불황에도 불구, 객석 점유율 98%를 보여 더욱 눈길을 끌었다.
임재범, 30주년 전국투어 5개월 대장정 마무리..객석 점유율 98%
2017년 6월 12일 부인 송남영이 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45세. 아내바보였던 임재범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사별을 한 뒤론 어떤 앨범활동도, 콘서트도 하지 않은채 팬들과의 소통도 끊어졌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많은 팬들이 그가 언젠간 모든 슬픔을 이겨내고 돌아와줄거라 믿고있다.

6. 논란 및 사건 사고



6.1. 나치 복장 논란


2011년 6월 26일 콘서트에서 '''나치스''' 제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당시 임재범은 나치 군복을 벗어던지고 반전(反戰) 메시지를 담은 곡 '패러덤'을 불렀다. '패러덤'은 1990년 임재범이 활동했던 록그룹 '아시아나'의 곡으로 핵전쟁에 의해 파괴된 지구의 인간들이 지하도시에 사는 비극을 표현한 반전 노래다.
임재범의 이 사건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보이는 측에선 하나, 이런 퍼포먼스는 그 의도가 뭐가 되었던지 간에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다는 측면에서 서양에서도 자칫 논란의 여지가 있을법한 내용이었다는 점과 둘, 설사 나치즘을 비판하려는 의도이더라도 목적을 전달하기에 부족한 퍼포먼스를 펼쳤기에 문제가 있다는 점, 셋, 끝까지 모자는 벗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한편 임재범에 대해 옹호적인 의견은 나치 복장을 할 때 부른 곡이 'PARADOM'이라는 반전, 평화를 주제로 임재범, 김도균이 공동 작곡한 곡이며 [20] 반압제의 메시지가 담긴 곡이었다는 점과, 콘서트 순서에 이 곡이 애초부터 포함되어 있었다는, 즉 해당 퍼포먼스가 "즉흥적 방어"같은 것이 아니라 연출된 '반전/반압제'퍼포먼스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임재범 측의 해명이 설득력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소속사는 "나치 찬양이 아니라 로커로서 자유에 대한 갈망의 표시였다"라고 해명했다.임재범측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나치는 죽었다, 자유다라는 의미의 퍼포먼스라고 밝혔다. 임재범측의 공식반응
문화평론가 진중권과 작곡가 김형석이 트위터로 열띤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진중권은 트위터를 통해 "그건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미학적 비평의 대상. 그냥 '몰취향'이라고 하면 됩니다, 임재범은 문제가 될 걸 알았겠지요. 그래서 윤리적 논란을 피해갈 명분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런 촌스런 도덕적 변명까지 내세워 가면서 까지 굳이 그런 짓을 하고 싶어하는 그 미감이 후진 거죠'' 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김형석은 "진중권님의 글을 보면 네오나치즘 스킨헤드의 공연에서 느낀 것은 아마도 공포일거다. 그런데 공연에서 그런 공포가 있었나?"라며 "한개인이 느낀 감상을 전체에 대입하려 하시는지요. 그것이 바로 진(중권)님이 비판하는 전체주의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어 "예술은 미학적 수준을 만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지 않냐. 님은 현재 신념을 가지고 거침없는 사회비판을 하며 투쟁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저는 그 투쟁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그런데 님이 다른 사람의 표현의 자유는 인정하지 않는 것은 똑같은 광기 아니냐"고 꼬집었다. 김형석, 진중권에 “표현의 자유 인정 안하는 것은 똑같은 광기”
"논란예상, 피해갈 윤리적 명분, 촌스런 도덕적 변명, 후진 미감 다 좋은데 내가 보기에는 그냥 아무 계산없이 그 무대에 어울리는 소재를 가지고 퍼포먼스를 한 것 뿐인거 같은데요?"라고 반박했다. 이어 "그냥 음악에 맞는 퍼포먼스를 한걸 가지고, 그것도 공연에서. 정치적이고 계산적이라며 윤리를 들먹이며 미감의 수준을 운운하기 전에 가서 공연보시고 릴렉스 하시길"이라고 덧붙였다.
예술에 대한 개개인이 느끼는 차이를 전체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게 김형석의 주장이다. 김형석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라"며 자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김형석은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임재범 씨 공연을 봤는데 록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메타포(은유) 무대였을 뿐"이라며 "임재범 씨는 무대에서 군복을 벗어던져 오히려 나치즘에 대한 반어적인 퍼포먼스를 했다. 방송도 아닌 공연장에서 한 일종의 이벤트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것은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문화평론가 김헌석도 "임재범의 의도는 나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전체주의, 획일성, 부자유에 대한 탈출 갈망을 의미한 것이다"라며 논란에 목소리를 보탰다. 임재범 나치 옷 입었다고 나치즘 찬양?<김헌식 칼럼>무조건적인 문제화, 예술을 죽인다 "임재범의 의도는 나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전체주의, 획일성, 부자유에 대한 탈출 갈망을 의미한 것이다. 나치장교의 복장을 입고 나온 임재범의 퍼포먼스는 나치즘과 관련성이 없다. 임재범은 분명 나치복장을 통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나치복장은 차용 이미지에 불과하다. 문제는 주제의식이다. 예술은 그것이 더 중요하다." 라는 입장.

6.2. 엔지니어 폭행 사건


예당엔터테인먼트 산하 케이블 회사 엔지니어 김모 씨가 8월 20일 서울 서초경찰서에 "지난달(7월) 29일 임재범과 두 경호원에게 집단으로 맞았다"며 세 명을 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임재범과 엔지니어 간의 다툼의 발단은 서로의 업무 방해 때문이었다. 자신이 담당하는 프로그램 업무를 보던 엔지니어가 옆 녹음실에 있던 임재범에게 "방해가 되니 소리를 줄여달라"고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임재범이 "예의가 없다" 라는 등 폭언을 해서 결국 시비가 붙었다고.
예당엔터테인먼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임재범에게 경호원이 붙은 이유는 여러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부득이하게 경호원을 붙였고, 경호원 측은 자신들이 강하게 나가야 임재범이 나서지 않기 때문에 고압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은 인정했지만 폭행은 전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고 예당 관계자는 냉정을 되찾은 임재범이 엔지니어와 인간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화해했고 같이 밥먹고 배드민턴까지 쳤다며 한 달 후에 고소당한 것에 모두 당황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고로 기사에 따르면 고소인은 3번이나 말을 번복했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결국 김모 씨가 고소를 취하해서 일단락되며 무엇이 실상인지는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KBS 남자의 자격의 전 연출자이자 이후 CJ E&M으로 이적한 신원호 PD가 트위터에 "임재범은 수시로 주먹질하는 또라이"라는 내용을 올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6.3. 작곡 여부 논란


첫번째 발단은 임재범의 노래를 선곡한 박완규가 고해를 선택하면서 임재범에게 조언을 들으러 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 고해의 "그녀"는 사실 절대자다.[21]
  • 앨범은 내야겠는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방황하다가 20분 만에 곡을 썼다. 방송 이후 고해의 공동 작곡자로 알려진 송재준(a.k.a. 캡틴퓨쳐)[22]이 나가수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남기면서 논란과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송재준에 의하면 본래 고해는 자신이 1년전에 작곡한 곡이며, 이후 자신이 미국에 간 사이에, 임재범의 소속사에서 이 곡을 공동작곡으로 저작권 등재 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 임재범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는 것. 그런데 임재범이 나가수에 나와서 고해가 전적으로 자신이 뚝딱 만들어낸 곡이라고 말해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고해는 작사 채정은, 작곡 송재준, 임재범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에 관해 당시 음반 제작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가 입장을 밝혔다. ‘고해’ 음반 제작 담당자“송재준이 거짓말 하고 있다”
"작사가 채정은은 '임재범 난치는데 송재준 먹갈았다'라고 비유했다."
임재범의 ‘고해’ 작곡 논란에 대한 입장
임재범 측은 27일 “‘고해’를 둘러싸고 말들이 많은데 본인은 그냥 두라는 입장이다. 더 이상 논란을 크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실제로 이번 논란은 MBC와 송재준 작곡가 사이의 문제지 임재범과는 무관할 수도 있다.
이 관계자는 “하지만 매니지먼트사 입장에서 정확히 짚고 넘어갈 건 있다고 본다”며 송재준의 주장 중 두 가지를 짚었다. 당시 앨범 제작에 스태프로도 참여했던 이 관계자는 “당시 앨범은 12곡 전체가 송재준씨와 공동작곡이다. 당시 임재범씨가 악보를 그릴 줄 몰라 송재준씨가 채보를 했고 그 작업을 공동 작곡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재준의 ‘임재범씨가 공동작곡으로 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주장은 지나치다는 것.
두 번째로 ‘고해’가 1년 전 송재준이 만든 곡이라는 주장에 대해 “사랑 전쟁 평화라는 앨범 콘셉트를 미리 만들고 송재준씨가 투입됐다. 곡을 만들고 녹음까지 걸린 시간 자체가 매우 짧다. 급하게 만든 앨범이다”며 “'고해'가 1년 전에 이미 써놓은 곡이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임재범 측은 “송재준 작곡가가 방송을 보고 자신의 공이 전혀 인정되지 않았던 것이 불쾌할 수 있다고 충분히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그 외에도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이병문 버전이 초판이라는 몇몇 기사가 있어 임재범이 작곡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신대철의 인터뷰집 '''뛰는 개가 행복하다'''등에서, 신대철 본인이 직접 여러 차례에 걸쳐 임재범이 시나위 1집 초판 버전에 참여했다는걸 밝히고 있다. [image]

'''대철''': "어느날 갑자기 (임재범이)"나 내일 군대 가 " 그러고는 진짜 가더라니까. 1집이 그때 상종가를 쳐가지고 잘 나갈때라 어딜 가든 돈이잖아. 그러니까 킹레코드에서 난리가 났지. " 야, 대타 찾아 와 ." 그래가지고 이병문이라고 내 친구를 대타로 해서 다시 녹음한거야. 서너 곡인가 녹음을 다시 해서 음반을 냈어."
"그래서 1집이 두 가지 버전이 있어. 사람들이 가끔 물어 봐. 1집에 이병문이라는 분이 노래하는 게 있던데 그게 뭐냐고.... 여튼 노래만 다시 녹음해서 급조한 앨범이 하나 있어.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았지. 또 한편으론 병문이 아버지가 음악하는 선배야. 걔 아버지랑 우리 아버지랑 잘 알아. 그래서 나중에 병문이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한테 "이런 사기꾼 같은 새끼를 봤나" 그랬다고 ."애를 썼으면 2집까지는 갔어야지, 이것들이" 그러면서. 2집에서는 김종서가 불렀잖아.(웃음)뛰는 개가 행복하다
임재범이 초판에 참여했다는 또 다른 기사.
임재범은 록월드를 우연히 들른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나보러 작정하고 찾아왔던 것 같아요. 잘은 모르지만 임재범도 시나위 이전에는 밴드 경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섯명이서 연습하고 있는데 86년 1월에 킹레코드서부터 레코딩 제의가 들어왔어요. 회사측에서는 우리에게 창작곡이 있냐고 물어봤었는데 사실 준비된 곡은 별로 없었지만 무조건 있다고 그랬죠. 그리고 그때부터 곡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요즘처럼 녹음을 많이 하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때여서 말도 안되게 빨리 곡을 만들게 되었는데 1주일, 그리고 녹음하는데 3일 걸려 시나위 1집을 만들었습니다.

6.4. 표절 논란


이 밤이 지나면은 폴 영의 'Everytime you go away'[23]를 표절한 곡으로, 1993년에 공연윤리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표절 판정을 받았다. [24] 이후 임재범 1집은 방송 금지,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이 곡에서 트럼펫 연주를 했던 David Spencer는 인터뷰에서 이 곡이 표절 판정을 받았다는 말에 " What !!!!???? That's ridiculous" " I really don't see the problem though. The music is not in anyway like the other. He should fight it."[25]라고 답했다. 인터뷰 [26]
아직도 이 곡은 수많은 후배 가수들의 애창곡이며 , 임재범 콘서트의 앵콜곡으로 늘 부르는 곡이다.
2011년에 리마스터링 되기도 했다. 1996년까지 존재했던 공연윤리위원회 음반 심의제도는 국내에서 상업적으로 발매되는 가요·팝·클래식 등 모든 음반에 대해서 일괄적으로 국가 기관이 그 내용을 심사, 발매 적격 여부를 결정하는 전근대적인 제도 중 하나였다. 극소수의 심의위원이 자의적인 판단, 기준에 따라 예술가가 피 땀흘려 만든 작업물을 난도질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실제로 당시 표절 판정을 받은 곡 중에서 진짜 표절이 맞나 하는 논란도 상당수였다.

6.5. 출연 금지


1993년 3월 대마초 흡입으로 <서울 방송>의 블랙 리스트에 올랐다라는 기사가 있다.[27] 임재범이 성폭행으로 출연 정지 당했다는 기사가 난지 겨우 몇달 만에 그 사유가 마약으로 바뀌어 있다.
2004년 한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그동안 자신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이 너무 많아 이번 기회에 해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관련 인터뷰
임재범은 93년 4월 가수 지망생 성폭행 사건으로 방송 출연 규제 조치를 당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신해철등 6명 방송 출연 금지" 그러나 출연 규제 사유가 몇 달 뒤 성폭행에서 대마초로 바뀌어 있다. 하지만 임재범은 2004년 인터뷰를 통해 마약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강하게 부정하였고 대마초 관련 다른 기사도 없으므로, 대마초를 피우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무혐의로 처리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유죄 판결을 받았다면 법원에 공식적으로 기록이 남아 있거나 구속 기사라도 떠야 하는데, 성폭행이든 대마초이든 그외 어떤 혐의로도 임재범에게 그런 기록은 전혀 없다. 또한 무려 성폭행 유죄 판결을 받은 연예인이 앨범 활동을 떳떳하게 하고, 97년 방송 무대에 출연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음은 명백하다. 성폭행으로 고소당했다면 그 결과가 무죄나 무혐의일텐데 그런 기사도 없다는 것은 성폭행 출연정지 기사가 낭설에 가까운 기자들의 추태임을 알 수 있다.

6.6. 정준하 폭행 의혹 논란


2011년 11월 "임재범은 과거 KBS2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해 항간에 떠돈 폭행설을 부인했다.
임재범은 “이제껏 살면서 단 한번도 사람을 때린 적이 없다”며 폭행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탁재훈은 “한 번은 때린 적이 있을 것”이라고 농담했고, 임재범은 “모두 큰 목소리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
이어 임재범은 “단지 소리를 질렀을 뿐이다”라며 “다른 사람들보다 목소리가 커서 오해를 받는 것 같다, 한 시간 동안 고성을 속사포처럼 질러 상대를 기절시킨 적도 있다”고 밝혔다.
"기사 역시 임재범은 무술이 총 56단이라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10일 오후 방송된 KBS '연예가중계'와 가진 인터뷰에서 임재범은 무술이 56단이라는 소문에 대해 "36계 줄행랑 포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무술 단수 56단이라는 건 36계 줄행랑 포함해서다. 나머지 20단 중에서도 명예로 받은 것 10단은 빼야 한다. 남은 10단도 장기, 바둑을 다 포함한 단수다"라고 말했다.
또 폭행설에 대해서는 "그런 말들에 예전에는 굉장히 집중하면서 '왜 저런 말이 나왔을까'라며 신경을 썼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리얼 아닌가. 이젠 사실을 사실대로 보여드리고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준하, 임재범에게 따귀 맞았다."
방송에서 정준하가 이야기한 내용과는 다르게, 현장에 있었던 H2O 김준원에 따르면, 임재범과 정준하는 형 동생하는 사이가 아니라 초면이었고, 당구장도 아니었으며, "아직도 당구치세요" 한마디에 뺨을 때린 게 아니라, 몇 시간을 깐족거렸으며, 때린 걸 봤다는 글은 어디에도 없다. 한대 치려고 했는데 임재범이 안아서 못 쳤다고 몇십년이 지나도 안타까워 하는 정준하의 말과는 전혀 다르게, 차렷 자세로 다소곳이 훈계를 듣고 있었다는 게 김준원의 이야기.[28]

방송에서 이상민이 직접 나서서 당시 정준하가 임재범한테 해서는 안 되는데 말을 했다라고 돌려서 이야기했다. 당시 같이 출연했던 도 동의.
결론으로, 이 사건은 단순 루머에 불과하지만 사실 이 사건으로 인해 임재범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되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상단에 서술된 엔지니어 폭행 논란을 비롯해 이런저런 일들로 말이 많던 상황이였기에, 사실상 임재범이 정준하를 때린 것이 맞다는 식으로 기정사실화 되어버렸기 때문.

7. 가족사


배우이자 가수인 손지창과 이복형제다. 임재범의 아버지임택근 전 MBC 아나운서[29]가 외도로 인해 낳은 자식이 임재범과 손지창이다. 손지창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보면 그 아픔이 어땠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이후 손지창은 방송을 통해 아버지와 재회. 방송분만 보면 삼부자가 완벽하게 화해한 듯 보이지만, 이후 손지창이 밝힌 바에 의하면 '그건 방송사의 편집이며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생각도 없고 다시 보고 싶지도 않다' 라고. 여기서 임재범은 임택근의 세컨드, 손지창은 임택근의 써드의 자식이라는 것…'''사실 족보가 너무 꼬여서 정확한 정의가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위의 발언을 봐서 손지창도 너무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가 토크쇼에서 고백한 바에 따르면 적어도 대학교 합격한 후에 첫 등록금만은 아버지에게 받고 싶었었기 때문에 찾아간 적은 있었는데[30] 문자 그대로 '''넌 내 자식이 아니다'''라고 문전박대했던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 나중에도 손지창은 '나는 손지창이지 임지창이 아니다.' 하고 밝혔고, '나와 오연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임씨로 개명할 마음도 없다.'고 밝혔다. 애초에 손지창에게 손씨라는 성을 준 사람(호적상의 아버지)은 손지창의 이모부다. 손지창은 이모부를 아버지로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31]
첫 번째 결혼에서 자식을 얻지 못한 아버지 임택근은 이 사이 이미 바람을 피워 사생아인 임재범, 손지창을 얻었다. 이후 임재범은 한 살 때 생모가 일본으로 떠나, 어쩔 수 없이 키웠지만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숨겨 키웠다.
이후 이혼하고 두 번째 결혼을 한 뒤에야 호적에는 올려줬다고 한다.[32] 임재범도 자신의 어머니가 생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한동안 방황했다. [33] 즉 '''첫 번째 부인하고 결혼 생활 중에 제3의 여인(임재범의 생모)과 바람을 피워 자식을 낳았는데 호적에는 또다시 별개인 두 번째 부인 아들로 들어가 있다.''' (…) 이딴 출생의 비밀은 어지간한 막장 드라마에도 나오기 힘들 듯.

하지만 손지창을 끝까지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다가, 이런저런 소문이 나게 되고 기자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야 비로서 '아들아!'라며 감동의 재회 따위를 연출한다. 아버지인 임택근이 MBC의 유명 아나운서 출신 간부에다가 파워까지 있었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그런 연출에 응했던 손지창이지만 이후 '그건 다 연출이고 난 그 인간 아버지로 인정할 생각 없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래도 임재범과 손지창의 사이는 나쁘지 않다고 한다.[34] 손지창이 라디오에 출연해서 말하길 더 블루 재결합을 했을 때 손지창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준 사람이 임재범이었다고 한다. 제수 오연수도 임재범의 팬인 듯.관련 기사
하지만 아버지라는 인간은 '두 아들을 둬서 행복하다' 따위의 발언#을 하고 앉았으니 임재범과 손지창만 불쌍하다. 정작 두 아들들은 각자의 2세를 위해 호적 정리를 할 예정이라고. 이미 손지창의 혈연 관계가 임택근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단, 아버지 임택근이 최근 "임재범이랑 교류 안 하고 산 지 몇 년이 된다."라고 인터뷰 한 것으로 봐선 호적정리 유무를 떠나 거의 담 쌓고 사는 사이임은 분명하다.[35]
이후 승승장구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임재범 본인과 아버지 임택근, 이복동생 손지창에 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풀어놓았다. 동생인 손지창의 경우 자주 연락하며 만나고 있는 듯 하며 삼촌인 손지창이 임재범의 딸을 무척 귀여워한다는 듯. 임재범은 자기에게 동생이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지만 집안에서 '지창'이라는 이름의 동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손지창이 스타가 되어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자 그것을 보고 임재범이 평소 알고 지내던 기자에게 '내게 숨겨진 동생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이 지창이가 내 동생인 거 같다'라고 털어놓았다. 그 기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는데, 왜냐하면 기자는 손지창에게 그 이야기를 이미 듣고 알고 있었기 때문. 결국 그 기자를 통해 이복형제가 만나게 되는데, 손지창은 임재범을 만나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워하는 감정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형인 임재범은 아버지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그러나 만나서 실상을[36] 알게 된 후 서로 별반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알고 원망의 감정은 사라졌다고 한다. 지금은 오랜 세월이 지나고 서로 나이도 많이 먹었기 때문에 가슴의 상처도 적잖이 아문 듯.
아버지인 임택근과의 관계는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 손지창과는 다르게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었다고는 하나 아버지에게 대놓고 '아버지는 밖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100점짜리일지 모르나 집에서는 0점이에요'라고 말했다고 할 정도니... 지금은 임택근과는 더 이상 왕래가 없다고 한다.
결국 임택근은 이전에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당한 목이 부러지는 사고[37]로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담석 수술 등으로 이미 몸이 크게 약해진 상태. 이런 아버지에게 임재범이 메세지를 날렸는데, '아버지가 지금 굉장히 힘들고 어려우며 몸과 마음도 많이 망가진것은 알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라며 냉정하게 채찍을 들었다. 이것만 봐도 임재범이 임택근에게 쌓인 한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듯. 그래도 언젠가 아버지를 용서해야 될 때가 올 것 같다고 담담히 털어놓기는 했다. 손지창과의 이복 형제이며, 그 아버지가 임택근 아나운서라는 점이 최초로 밝혀질 당시 한 TV연예뉴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도 임재범은 이 문제에 대해 지난 일이고, 그분(임택근)의 인생에 대해서 어찌되었건 자식이 이렇다 저렇다 제 3자에게 말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라는 식으로 담담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20년 1월 11일 사망한 임택근의 빈소를 상주로서 지켰다. #

8. 여담


그가 한 말 중 "폼 잡을 시간에 연습이나 더 해라.", "즐기면 즐기는 거지 판단하는 게 아니거든요…. 음악은…."이 있다.
연기를 한 적있다. 실제로 배우가 될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91년 강우석 감독의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서 기자 역으로 출연했는데, 은근히 비중이 있는 조연으로 나온다. 인물은 이때도 잘생겼고 의외로 연기 발성이 상당히 좋다. 여주인공 김성령을 겁탈하려는 씬도 등장한다(..)

영어 실력이 상당한데, 김도균과 영국에서 밴드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영어 한마디도 못했으나 영국 생활 6개월 만에 생활영어를 마스터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참고로 임재범은 영어 발음이 굉장히 좋은 걸로 정평이 나 있는데, 아마 듣는 귀가 좋아서 그런 게 아닐까. 김도균이 아궁이에 출연했을 때, "미국인이 임재범의 영어를 들으면 네이티브 영국인으로 생각할 정도로 영어발음과 실력이 뛰어나다."고 밝혔다. 실제로 영어를 쓰는 장면들을 보면 영국영어 뿐만 아니라 미국식 영어에 미국 남부식 영어, BBC 아나운서 흉내, 인도식 영어 등등 여러갈래로 나뉘어져있는 영어 악센트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흉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원어민들을 상대로 영어로 자연스럽게 농담까지 칠 정도이니 영어 실력에는 도가 튼 셈. 외국어 성대모사 영상
국내 상위 영어학습 채널 4명 중 한 명영어 알려 주는 남자(영알남)완벽에 가까운 영국영어 구사하는 임재범 영어실력 (영어발음 장인...)이란 제목으로 임재범의 영어 발음 실력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
한국 소몰이창법의 창시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관련 기사 관련 기사 . 수요예술무대에서 '저도 웃긴 놈이에요. 헤비메탈하다가 소몰이창법인지 소머리국밥인지 한국에서 거의 최초로 했잖아요? 제임스 잉그램이 헤비메탈하는 거 봤어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창법은 많이 다르지만 비슷한 이미지로 밴드하다가 발라드 가수로 바꾼 마이클 볼튼이 있기는 하다.[38] 사실 솔로 데뷔 후 한국의 마이클 볼튼 소리를 듣기도 했다.
젊은 시절 헤비메탈 보컬로서의 자신을 회고하길 느낌은 화이트 스네이크의 데이비드 커버데일을 닮고 싶었고, 중음은 DIO의 로니 제임스 디오를, 고음은 그레험 보넷을 염두에 두고 연습을 했다고 한다. 방송과 라디오, 팬카페 등에서 직접 언급한 것들을 종합해보면 그냥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부분을 가진 보컬들은 다 따라해봤다고 해도 무방하다. 방송에서 모창을 하는 것을 보면 그런 점이 많이 묻어난다. 애초에 펑크록 보컬에 대해서 언급하는가 하면, 승승장구에선 잠적하던 시절에 이니그마 앨범을 들고 산에 들어갔던 얘기를 하는등 기본적으로 음악을 폭넓게 엄청 많이 듣는다. 같은 방송에서 트로트를 평소에 자주 듣고 부른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또한 훗날 헤비메탈 씬을 그대로 잇지 못하고 자신은 변절한 거 같아서,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하다고.
<고해>는 한때 남성들이 노래방에서 멋있어보이고 싶을 때 부르는 노래 1위였다. 사랑 고백용으로도 엄청 쓰였다. 다만 요즘은 곡이 나온지도 오래 돼서 예전보단 선호도가 낮고, 오히려 여자들이 '남자들이 부르면 싫은 노래'로 뽑고 있다.(...) 고해란 곡 자체가 마초적, 남성 시각적인 분위기가 짙어서 애초부터 곡 자첼 별 감흥없어 하는 사람도 있고, 곡보단 보컬빨로 노래들이 실제보다 더 좋게 들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임재범의 창법은 독특하게도 엄청난 성량을 보여주지만 가성의 사용 빈도가 굉장히 높은[39] 괴악한 패턴을 보여주기 때문에 흉내내기가 매우 까다로운 스타일이다. 결과적으로 임재범 노래는 노래방에서 웬만하면 자제하는 게 좋다. 이렇게 되는 수가 있기 때문에.(...)
[image] [40]
팬카페에 올라온 인증으로 봤을 때 와우 유저인 것 같다. 콘서트에서 인증했다.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는 상태[41] 사용 캐릭터는 트롤남캐(…). 이소라에게 낚였다는 말이 있다. 와갤에서 그를 어떻게 찾아낸 후 가방을 주는 훈훈한 모습이 일간베스트로 올라가기도 했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할 당시에 모종의 이유[42]로 삭발을 했는데, 이 때문에 삭발을 고민한 남성들도 있었다고. 허나 잘 생각해보면 결국 임재범이 잘생겼기 때문에 멋있게 보이는거다.(...) 이 글을 보는 남자들은 삭발하는 건 잘 생각해보도록 하자.
나는 가수다로 인기를 얻으면서 현재 암투병 중인 연극배우 송남영[43]의 남편이라는 점과 슬하에 10살짜리 지수란 딸이 있는 사실도 부각이 됐다. 특히, 나는 가수다 인터뷰 도중 투병 중인 아내가 남편이 1위를 했다는 사실에 전화상으로 매우 좋아하자 '''10년 만에 아내가 행복해 했다'''며, 눈시울을 훔치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가족에 대한 사랑이 인터뷰 속에서 묻어 난다. 특히, 지하철에서 시비를 걸던 남자가 급기야 딸을 울리자 '''내 딸을 울리다니''' 하며 야수처럼 격변했다는 일화가 인터넷까페에서 공개되면서 딸내미바보(…)로 강림하셨다. 사실 딸내미바보 속성은 이미 2004년경 5집의 홍보때 그 기미를 보여준 적이 있다. 뜬끔없이 딸의 사진을 내보이며 딸이 명령하는대로 따르고 있다는 말을 했었다. 야수돌변 사건은 어찌 보면 예견된 사건인 셈. 고현정쇼에 출연하여 이때 상황을 자세히 밝힌 바 있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208242345092210
MBC 나도 가수다에서 개그맨 정성호가 정재범이라는 가명으로 임재범을 패러디한 개그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정성호에게 임재범이 직접 만나서 막걸리 한잔 하자고 했는데, 맞을까봐 무서워서 안 갔다고 밝혔다(…) 물론 이건 개그고, 실제로 임재범이 나도 가수다 패러디 무대에 대해 직접 조언을 해주는 등, 두 사람은 연락도 하고 굉장히 많이 친해진 모양이다.자세한 내용은 정성호의 인터뷰를 참조해보자.
그의 콘서트 때 화환 중에 섞인 것들이 있다.
롸큰롤 베이비 YB - 임대디! 퇴근할 때 까까 사오세요!
나가수 탈락자 김연우 - 이시대 최고의 소리꾼 재범형 짱[44]
롸큰롤대디 외로울 때면 누가 위로해주지? - 바로 나는 가수다 [45]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했을 때에는 여러 성대모사를 선보이며 예능감을 발산했다. 사실 사석이라던지 자신의 콘서트에서도 자주 성대모사를 한다고 하며 임재범과 친분[46]이 있는 탁재훈의 증언에 의하면 소싯적 임재범과 주변 사람들이 모여 결성한 사교 모임 '주둥아리 클럽' 에서 거의 독보적으로 존재감을 자랑했었다고(...).
해피투게더에서 박수홍의 진술에 의하면, 1990년대 초에 방송국 근처 여의도 락카페에 놀러 간 김수용이 임재범과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47] "여의도에 김수용이 나를 자주 데려가던 카페가 있다. 어느날 그 카페에서 김수용과 함께 있는데 김수용이 자꾸 한 곳만 응시하더라. 거기 임재범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둘이 눈싸움을 하고 있더라. 김수용이 복화술로 '오늘 관짜라'라며 중얼거렸고, 그때 임재범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더니 낮은 목소리로 '(눈)깔아'라고 말하더라. 정말 무서웠다"고 했는데, 김수용이 기죽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버텼지만 계속 노려보던 임재범이 자기 팔에다 담배를 끄자,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네요. 죄송했습니다. 제가 여의도에서 학교를 나온 여의도 출신인데요. 그래서 여의도에 어릴때 친구들이 많아서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제 옛날 친구랑 닮으셔서 제가 잘못 알아본 것 같네요. 죄송하게 됐습니다."라고 길게 주절주절 변명하면서 사과하자, 임재범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끝났다고 한다. 김수용 본인이 첨언한 바로는 정말 숨이 막힐 것 같았다고 한다.[48] 박수홍도 김수용이 어릴때부터 싸움을 잘했던 걸 알았지만, 임재범의 포스를 느꼈기에 더 이상 맞서지 못하고 어찌할 수 없음을 납득했다고 한다.

SBS 좋은아침 출연에서 아내가 본인을 "아줌마"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리고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듣는 듯 하다. 잠적했을 때는 이니그마의 음악을 일 년 내내 들었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고, 나는 가수다에서도 대기실에 있던 내내 음악을 듣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월드 투어 서울 공연에 게스트로 출장해 Rock in Korea와 Paradom을 열창했다.
2011년 7월 8일에 방송된 '''MBC 스페셜 - 나는 록의 전설이다'''에 백두산의 기타리스트 김도균, 보컬 유현상, 시나위의 기타리스트이자 리더인 신대철,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 그리고 부활 초대 보컬이자 시나위 2집 보컬인 김종서, 부활 5대 보컬인 박완규, 그리고 YB의 리더인 윤도현과 함께 출연했는데[49][50] 사실 중심이 1980년대 한국 록을 주름 잡았던 3대 록밴드인 백두산, 시나위, 부활에 맞춰져 있던 만큼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임재범의 팬카페는 '임재범을 알아야 락을 알지(약칭 임알락)'으로, 임재범과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음악 애호가들의 동호회 성격을 띤 다음 카페이다. 이와 관련해서 임재범은 자신의 팬카페를 2번 탈퇴했다가 결국 2번 복귀한 이색적인 경험의 소유자이다. 처음은 나가수 촬영 도중 맹장수술로 하차한 과정에서 탈퇴한 것으로 2일 만에 복귀했다.[51] 두 번째는 루리웹 만지소 인증사건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터진 일이기에 그 사건의 임재범 버젼에 가까웠다.
임재범 갤러리에 임재범이 직접 글을 남겼는데 문제는 (디시 유저들 입장에서)사칭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일명 '유동닉'이었고, 이에 유저들이 가짜라고 주장하면서 인증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분개한 임재범은 "가짜로 오인 받아 난감하다.(원문 : 여러분들은 웃기세요? 제가?) 인터넷상에서 어느 누구라도 그런 욕을 해도 괜찮은 거냐"며 "저라고 욕을 할 줄 몰라 안 하겠느냐, '''음악이 여러분에게 끼친 영향이 그거밖에 안 되는 거냐'''"라는 글을 남기면서 2011년 10월 24일 팬카페를 탈퇴하게 된다. 해당 글의 글씨체(궁서체)와 글씨크기(36p)를 보면.... 그리고 이는 신문기사화# 되어서 디시인사이드가 얼마나 막장인가를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결국 갤주를 물어뜯은 개 꼴이 되어버린 임재범 갤러리와 팬카페는 그야말로 패닉에 빠지게 된다. 결국 1주일 만인 당년 10월 31일에 팬카페에 복귀한 임재범은 상처를 준 것은 사과하지만 탈퇴라는 강한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밝히며 복귀하게 된다. 여러모로 임재범 팬덤에게는 최대의 흑역사.
2013년 2월 23일, 동년 10월 26일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여 여전한 포스를 보여줬다.
미국의 외교관으로 전 주한 미국대사이자 현직 주필리핀 미국대사인 성 김과는 사촌형제지간이다.[52]

9. 관련 문서


[1] 67년 2월생인 신대철과 같은 학교 동창 사이다.[2] 신대철은 2017년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 108회에서 임재범이 나이가 한참 위이지만, 같은 동기라서 친구로 지내다가 고교 졸업후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 신대철에게는 선배지만 임재범 보다 연하인 사람들과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 신대철 나이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아마 이런 사연으로 주변 지인들과 임재범 사이의 호칭이 애매해진 부분에서 의문을 품는 듯 하다.[3] 블랙신드롬의 보컬 박영철은 몇년 전 자신의 자전적 수필에서 임재범으로부터 ‘이런 이유 탓에 주민등록증의 생년과 실제 태어난 해가 다르다는 요지의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링크 후술할 가족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아버지 때문에 족보가 꼬인 게 큰 듯.[4] 최근 고교급식왕에서 호적상으론 68년생이지만 실제론 66년생인 백종원이 '재범이와 친했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왔다. 같은 해 입학한 동기동창이라 나이와 상관없이 친한 친구 사이였던 듯. 65년생 국회의원 최재성도 임재범 1년 선배이지만 임재범과 돈독한 친분을 가졌었다고 한다. 65년생 김종서는 임재범을 깍듯하게 형님이라고 부른다.시나위 보컬 임재범과 김종서[5] 이미 중학교때 키가 180이라는 동창들의 회고담이 있다.[6] 2020년 1월 11일에 사망했다.[7] 1972년 9월 15일생. 뮤지컬 배우로 명성황후 등에 출연하였으며 나는 가수다 출연 당시 결혼 10주년인 2011년부터 갑상선암으로 투병 중이었음을 밝힌 바 있었다. 안타깝게도 6년간의 투병 끝에 2017년 6월 13일 사망했다. #[8] 전 주한 미국 대사, 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대행. 성 김의 모친과 임재범의 부친인 임택근은 남매지간이다.[9] 대표적으로 조하문이 있던 하드록밴드 마그마.[10] 여기서는 박정현의 이름으로 순위에 올랐다.[11]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임재범이 성량에서만 최고수준의 보컬이 아니라는 점.[12] 가끔 그 성량때문에 마이크 볼륨을 최대로 줄여서 임재범은 노래할 때 들숨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임재범은 고개를 돌리거나 마이크를 입에서 떼고 들숨을 쉰다. 그러니 마이크에도 들숨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유튜브 등 동영상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13] 진성 파사지오는 전성기 시절 '''3옥타브 레(D5)'''까지 찍는 것 정도는 무리없이 해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2옥타브 후반대. 아무래도 벨팅을 사용하는 임재범 발성의 특성상 특유의 진성같은 가성 샤우팅을 제외하면 다른 락커들같은 수준의 고음을 소화하기엔 무리가 있다.[14] 이 스크래치가 어느정도였냐면,같은 음을 내는데 옥타브는 다른 두 음이 동시에 들리는 정도.그야말로 악마의 포효가 따로 없다.[15] '너의 미소', '사랑보다 깊은'[16] 사실 원래 남녀 듀엣곡은 대부분 남자보컬에겐 빡세고 여자보컬에겐 편한 경우가 많다. 화음의 구조 자체가 3도를 기본으로 하는데 이는 남녀의 원래 최고 음역 차이보다 훨씬 적기 때문. 아예 한옥타브를 돌아서 음역차이를 구성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표적으로 Way back into love) 이 경우는 남자 음이 극도로 낮아진다.[17] 2010년 출연한 김정은의 초콜릿에서는 예전과 비교해서 크게 나쁘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2011년 3월 수요예술무대에서 목 상태가 안 좋아진 것이 뚜렷했다. 단 아주 나빠진 건 아니고, Rock in Korea의 초고음부까지 소화해내는 것을 보면 나이 문제로 체력은 좀 후달릴지 몰라도 성대가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2011년 소울다이브와 녹음한 "주먹이 운다"에서도 녹음이긴 하나 멀쩡했다. 그런데 이후 나는 가수다 출연 때는 급격히 안 좋아졌다(초콜릿에서 부른 너를 위해와 나가수에서 부른 너를 위해가 기술적으로 확연히 차이난다). 부인의 암투병으로 인한 마음고생과 그리고 맹장염이 관련이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18] 젊었을때 전성기에는 임재범은 감성보컬 보다는 테크니션이었다.[19] 목소리를 높이긴 했어도 ‘고성’이라고 할 정도의 말다툼이나 난동을 부린 적은 없다고 하였다.[20] 작사도 임재범, 김도균이 정한 주제에 영어 가사 도움을 받아 작사한 것이다. 임재범은 반전 평화를 주제로 한 곡을 다수 작곡하고 작사했다 아시아나의 Soldiers came은 광주 혁명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어 음반에 최근까지 실리지 못했다. 5집의 '사람과 사람들', '총을 들어라'도 임재범이 작사 작곡한 반전, 평화를 주제로 한 곡.[21] 임재범 3집은 `사랑, 전쟁, 평화`를 콘셉트로 임재범이 주도한 기획앨범으로 당시 전곡이 공동 작곡으로 돼 있다 또한 3집 전곡이 임재범이 편곡자로 한국 저작권 협회에 등재되어 있다. 3집의 영어 가사는 박정현이 도와주었고 작사자 채정은이 한국어 노래의 가사를 임재범이 원하는 내용으로 다듬은 듯.[22] 캡틴퓨쳐 명의로 90년대에 가수활동을 했었다. 가수활동을 그만둔 뒤로는 작곡에 전념한 듯.[23] 사실은 Hall & Oates가 1980년 먼저 발표한 원곡을 폴 영이 1985년 다른 버전으로 부른 것이다. [24] 참고[25]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그 곡은 폴 영의 곡과 어느 부분도 전혀 비슷하지 않다. 그는 싸워야 한다"[26] David Spencer는 Luciano Pavarotti (루치아노 파바로티), Barry Manilow (배리 메닐로우), Natalie Cole (나탈리 콜), & Michael Bolton (마이클 볼튼)등 훌륭한 아티스트들과 연주한 트럼페터이며 , 지휘자이자 교수이다. [27]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31500289116004&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3-03-15&officeId=00028&pageNo=16&printNo=1502&publishType=00010[28]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의 일부 내용 "어느 날 우리끼리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당시 무명이었던 막내 탁재훈이 이휘재 매니저로 방송 몇번 나왔던 정준하를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켰다. 그러니까 재범과 준하는 오래 안 선후배가 아니라 그날 첨 본 사이란 말이다. 준하도 당시 어렸으니 상황 파악도 잘 안됐을 거다. 내가 보기에도 깐족 거리고 있었다.내가 잠시 나가서 일을 보고 있는데 탁재훈이 전화를 해서 재범이형 좀 말려 달라그랬다. 달려가보니 그들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있었다. 준하는 차렷자세로 서서 훈계를 듣고 있었다."[29] 아나운서계에서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아나운서. 그만큼 인기도 많았지만, 이는 여성편력으로 이어져 아래에 설명할 임재범과 손지창의 유년기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30] 정말로 돈이 궁해서는 아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20년 넘게 자식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회한 때문이었다는 게 정확하다.[31] 손지창이 스스로 밝히기로, 청소년기가 되기 전까지 가족들이 그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지 않고 키웠기 때문에, 이모부가 친아버지, 이모가 친어머니인 줄 알고 그냥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고 이종사촌들을 친형제라 부르며 성장했다고 한다.[32] 하지만 이조차도 외가 쪽 호적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꽤 있다.[33] 유명한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런 아버지를 진짜로 존경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34] 사이가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서로 아주 애틋한 것이 당연하다. 사이가 안 좋을 이유 따위는 전혀 없다. 실제로 둘은 2002~3년경에 둘 모두와 친분이 있던 룰라의 이상민을 통해 만나게 되었는데 당시 현장에 있던 이상민이 후에 인터뷰에서 밝히길 상당히 화기애애하고 서먹함이 없는 분위기였다고 했다. 같은 사람에게서 받은 같은 상처를 공유하는 매우 애틋한 형제관계인 것이다.[35] 임씨 성을 쓰는 걸 보면 일단 호적(현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올린 듯한데 그렇게 되면 손지창과는 달리 새로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드는 건 대한민국에서는 불가능하다.[36] 임재범도 고아원과 할머니집을 전전하며 살았던 적이 있다.[37] 버스에 탑승했을 때 버스가 급출발하여 크게 넘어진 것이 원인이라는 걸로 알려져 있다.[38] 임재범과 음색이 매우 비슷한 가수고 임재범도 마이클 볼튼의 곡들을 종종 커버했는데 사실 마이클 볼튼은 메탈밴드 블랙잭 시절에 자기 보이스가 메탈에 별로 어울리지 않아서 상업적으로나 평가적으로나 굉장히 고생하다가 결국 소울락이나 발라드로 전향해 성공한 케이스니 차이는 약간 있다.[39] 보컬의 정석은 엿 바꿔먹었다. 더욱이 이 가성이 진성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특이하다.[40]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동국의 트위터에 있는 내용으로 이동국의 자폭 인증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힐링캠프에서 이동국이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시청자들의 반응은 '이동국이 잘못했네'(...) 히든싱어 임재범편에서는 이게 너를 위해가 아니라 고해로 잘못 방송되는 일도 있었다.[41] "여기 얼라 있어요? 트롤 남캐 조심하세요"[42] 암투병 중인 아내가 치료관리 이유로 삭발을 해야했었는데, 아내가 그런 일을 겪는데 자기만 머리를 기르고 있을 순 없다는 이유로 자신도 삭발을 해버렸다.[43] 영화 마고에 조연으로 출연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이 때였다.[44] 자학개그가 작렬했다.[45] 나가수 제작진이 보냈다.[46] 탁재훈이 시나위의 드러머 김민기와 친구 사이였기에 이를 계기로 친해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거의 30년 가까이 알고 지내온 사이라고 하며 탁재훈 피셜 거의 유일하게 자신을 본명인 성우로 부르는 사람이라고.[47] 서로 연예인인지 인식한 건지는 불분명한데, 정황상 김수용과 박수홍 쪽은 알아본 것일 확률이 높다.[48] 그러나 김수용 역시 국민학교 시절부터 짱을 했던 사람인데다가, 고등학생이던 80년대에는 '의리의 여의도 용팔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여의도 내에서 전설의 싸움꾼으로 유명할 정도로 싸움을 잘했었다. 사실 체격도 임재범보다 김수용이 더 크다. [49] 록커 출신으로서 다른 영역에도 나섰던 인물들의 굴곡진 이야기를 그린 다큐답게 이런 멤버들로 전부 채웠다. 윤도현은 백두산, 시나위, 부활에게 영향을 받았던 후기 세대라는 점과 대중적으로 유명한 보컬인 점을 감안해 등장했다.[50] 또한 특별 게스트로 신해철, 이승철, 이윤석도 등장했다. 이승철은 알다시피 부활의 초대 보컬이었고, 신해철은 부활의 광팬으로 고딩 때부터 김태원을 따라다녔다.이윤석은 인터뷰 장면에서 특별 등장한다.[51] 사생팬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당시 임재범은 수많은 이유로 탈퇴한다고 밝혔다.[52] 성 김의 모친과 임재범의 부친인 임택근 전 아나운서는 남매지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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