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발톱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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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출작전을 준비하는 델타 포스 대원들.
1. 개요
2. 작전 과정
2.1. 발단
2.2. 준비
2.3. 실패
3. 교훈


1. 개요


Operation Eagle Claw
델타 포스의 사실상 첫 실전 투입이자 처참한 실패 작전으로 악명 높다.

2. 작전 과정



2.1. 발단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면서 이란 미국 대사관이 급진과격파 반미 시위대에 점거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의 전개는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문서 참고.

2.2. 준비


이 작전은 대테러전 능력을 강조하며 입지를 쌓아왔던 델타 포스에게 찾아온 첫번째 실전의 기회였다.
문제는 당시 미군과 미국의 정보기관이 '''상당히''' 엉망이었다는 점이었다. 특히 CIA는 반 팔레비 시위대가 테헤란을 뒤덮고 있는 데도 '''팔레비 왕조의 통치능력 굳건함. 이란 내 정세 안정적''' 따위의 정세분석 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하고 있었다. 당시 CIA의 이란 지역 정보수집이란게 독자적인 정보원은 없고, 팔레비 왕조의 비밀경찰 보고서를 그대로 복사하는 수준이었고, 이건 미 국무부나 국방부도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협력관계를 이어온 팔레비 왕조의 외교관 및 이란군 인사들의 공식적인 주장만 듣고 실제 이란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심지어 주 이란 대사는 팔레비 2세와 하버드대 동창생이였다는 이유만으로 임명된 정실 인사였다.

거기에다 냉전기간 동안 비대해진 정보기관을 정리한다는 카터 행정부의 정책으로 수많은 인력들이 감축된 상황이라 이란에 CIA 요원이 단 한명도 없는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국무부, 국방부 그리고 CIA 등 모든 정보기관이 하나같이 이란 정세를 안정적이라고 계속 평가했기 때문에 이란 지역 요원들이 축소된 것이다. 별일 없다는데 굳이 정보원을 상주시킬 필요가 있냐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중동지역에서 유일하게 서구화된 친미국가에 오랜 기간 팔레비 왕조의 독재가 이어져오고 있다는 겉모습에 다들 홀린 것이다. 그탓에 델타 포스의 초기 정보수집은 고작 TV 뉴스화면을 통해 이뤄져야 했다.
그 못잖게 심각한 문제는 각군의 이해관계가 뒤엉키면서 작전계획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초에는 미 육군델타 포스가 작전계획 수립을 주도하였다. 근데 이 당시 미군은 특수전 사령부나 특수비행연대 같은 지원조직이 전무한 상황으로, 비밀작전 때마다 여러 부대에서 장비와 인력을 차출해서 임시 태스크포스로 꾸리는 방식이었다. 이번 경우는 구출해야할 인원이 워낙에 많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작전 규모는 커졌고 당연히 많은 병력과 다양한 장비들이 필요했다. 이것들을 여러 부대에서 차출하다 보니 당연히 협의해야 할 것도 많았고 조정이 쉽지 않았다. 더구나 이 작전이 성공만 한다면 국민들에게 그야말로 영웅대접 받을께 뻔하다 보니 모두가 자기들이 주역이 되고, 자신들이 가장 빛나는 역할을 하길 원했다. 이렇듯 육군/해군/공군에 나중에는 해안경비대까지 모두들 눈이 벌개져서 숟가락을 얹을려고 달려들면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교훈대로 작전계획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지나치게 안일하게 짜여졌다.
온갖 북새통 끝에 나온 최종 작전계획은 대충 이러하다.

1단계: 4월 20일, 07시 30분 델타 포스가 현지에서 도움을 줄 이란인들과 합류한 뒤 수송기 편으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한다. 여기서 대사관 구출과 동시에 이란 외무성으로 분산 격리된 인질들을 구출할 그린베레 작전팀과 합류해 이집트로 이동한다.

4월 21일, 이집트에서 최종 리허설과 작전 정보를 갱신한뒤, 24일 오만 근처의 마시라 섬으로 이동, 18시에 작전 병력과 장비를 수송할 3대의 MC-130과 헬리콥터 연료를 탑재한 3대의 EC-130기로 이란을 향해 출발한다.

2단계: MC-130 1번기는 다른 수송기들보다 먼저 이란 영공에 도착해 수송기의 착륙지점인 LZ '데저트 원' 상공에 도달해 미리 정찰팀이 준비해둔 비컨을 원격 조종으로 작동시켜 위치를 확보하고, FLIR로 주위를 살펴본 뒤 데저트 원에 착륙, 이후 다른 수송기 5대도 착륙해서 델타 포스와 델타 포스의 지원을 담당한 레인저 대원들을 내려 LZ를 확보. 이어 항공모함에서 작전수행에 필요한 8대의 RH-53D 헬리콥터들까지 도착하면 연료를 실어온 EC-130기들이 RH-53S에 대한 재급유를 시작하는데, 이 때, '''헬리콥터가 6대 이하라면 작전은 취소함.''' 필요한만큼의 헬리콥터가 확보된다면 최소한의 작전요원들을 탑승시킨 뒤 일출 1시간 전까지 새로운 은거지점 '데저트 투'로 이동하고, 수송기들은 레인저들을 탑승시킨 뒤 다시 마시라 섬으로 복귀한다.

데저트 투에 도착한 헬리콥터들은 대원들을 내려주고 다른 은거지점 '피그바'에 가서 헬기를 위장시켜 숨긴 뒤 대기. 델타 포스는 이미 현지에 침투해 정보수집 및 은거지 구축을 하고 있던 델타 포스 선발대와 접선한뒤 테헤란 근처의 와디에 도착해 낮 동안 대기.

3단계: 선발대원 2명이 동이 트기 전에 테헤란으로 돌아갔다가 밤이 되면 1대의 픽업 트럭과 1대의 버스를 타고 델타 대기지점으로 합류. 두 차량중 하나는 6명의 운전수와 6명의 통역을 태우고 작전 기간중 델타 포스를 테헤란으로 수송할 트럭들을 숨겨둔 창고로 이동하며 다른 한 대는 베크위스와 다른 12명의 델타 포스 대원들을 태우고 테헤란 시내에 잠입해 대사관 주변을 정찰.

베크위스가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뒤 20시 30분, 델타 포스는 6대의 트럭에 분승해서 테헤란 시내로 강습. 외무성에 억류된 다른 인질들을 구출할 그린베레 작전팀[1]

은 버스에 탑승해서 델타 포스와 따로 이동.

4단계: 미 대사관에 도착한 델타 포스는 3개 팀으로 나뉘어 각 팀의 구역에서 위치를 잡고 작전을 수행. 화력이 취약한 구출부대를 위해 상공에는 AC130 건쉽의 지원이 준비됨. 대사관이 장악되면, 미리 준비하고 있던 헬리콥터들이 인질과 구출대원들을 퇴출시킴.

5단계: 구출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지프와 오프로드 오토바이를 장비한 75명의 레인저 중대를 태운 MC-130 2대가 건쉽의 호위를 받아 이란군의 버려진 활주로를 강습. 활주로가 확보되면 사우디에서 대기중이던 C-141 수송기가 도착해 구출부대의 도착을 기다림.

구출부대와 인질들이 레인저가 확보한 비행장에 도착하면 C-141기에 탑승해 F-14 전투기의 엄호를 받으며 탈출. 레인저는 구출부대가 타고 온 헬리콥터들을 파괴시킨 뒤 타고 왔던 MC-130편으로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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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에 동원된 해군의 RH-53D 소해 헬리콥터.
보다시피 엄청나게 복잡한 작전이다. 거기다 특별한 당위성 없이 단순히 각 군의 이해관계에 따라 작전 규모가 커진 부분도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이 작전의 실패에서 최대 원흉이 된 헬리콥터'''들이다. 작전에 사용되기로 한 해군의 RH-53D은 본격적인 특수전용이 아닌 단순한 기뢰 제거용 소해헬리콥터들이었다. 물론 델타 포스측에서는 이 부분을 걱정했고, 구출작전을 총괄하는 JTF의 공군 특수전력 책임자였던 제임스 카일 대령은 해군의 소해 헬리콥터 대신 탐색구조를 전문으로 하는 공군 CSAR 비행대의 HH-53 헬리콥터와 파일럿들을 동원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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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클로 작전 중 데저트 원에 내린 레인저 대원. 구출작전이라 그런지 레인저답지 않은 흑복 차림에 눈에는 야간투시경까지 끼고 있다.

2.3. 실패


그리고 운명의 작전 개시일. 데저트 원에 무사히 전개한 레인저와 인질구출부대인 델타 포스는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민간 차량들을 정지시키고 차량 안의 민간인들을 억류시키며 LZ에서 대기했다. 그러다 중간에 지나가던 유조트럭 1대를 로켓포로 쏴버리는 바람에 트럭은 불타오르고 트럭 운전사는 도망쳐버리는 난장판이 벌어졌다.[2]
그래도 작전은 그럭저럭 순조롭게 진행(하지만 당연히 이 유조트럭의 대폭발은 멀리서 목격되어 신고되었고, 이란군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되었고, 이윽고 다른 수송기 5대도 간신히 착륙해서 헬리콥터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헬리콥터가 안 온다.'''
한참을 기다리자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1대씩 서로 다른 방향에서 털레털레 날아온 헬리콥터는 총 6대뿐이었다. 알고보니 날아오는 도중 모래폭풍을 만났고, 작전을 위해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런 야간비행, 그것도 특수전 비행에는 익숙치 못했던 헬리콥터 조종사들은 기체 고장문제까지 겹쳐서 제대로 LZ에 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6대가 모였으니 작전을 어떻게든 진행하려는 찰나, 지상에서 1대의 헬리콥터가 추가로 고장나버려 헬리콥터가 부족하게 되었고, 결국 작전은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취소되어 다시 복귀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헬리콥터 1대가 급유를 해주던 C-130 수송기를 들이받아 수송기 승무원 5명과 헬리콥터 승무원 3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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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한 뒤에야 헬리콥터들의 상태가 그렇게 개판이었던 이유가 밝혀졌다. 헬리콥터들을 정비한 정비사들은 훈련때부터 함께 해온 이들이 아니라서 이 헬리콥터들이 무슨 일을 하러 가는지도 모르고 통상적인 수준의 정비만 했던 것이었다. 가뜩이나 불안불안한 헬리콥터들이었는데 거기에 결정타를 날린 셈이었다.
결국 델타 포스는 현지의 정보망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에서도 자체 정찰팀을 침투시켜 구출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차량과 은거지까지 구축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부대'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으나, 이런 뼈아픈 실패는 곧 미군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한편 유조트럭 폭발 신고를 듣고 이란은 미군이 들어온 걸 알아차려 이란군이 출동했는데 그들은 불타버린 미군 시체 8구랑 온갖 장비 파편을 발견하고 어이없어 웃었다고 한다. 그리고 좋아라 우리 이란으로 쳐들어온 미국 새키들이 지들끼리 들이박아 이런 꼴이 났습니다라며 방송으로 미군 시체들 및 장비를 보여주며 전세계로 송출했다. 그야말로 미국은 개망신을 당했고 미국 여론도 가서 미군끼리 서로 죽고 돌아왔어? 라고 어이없어했다. 물론 이란은 그렇다고 미국을 대놓고 자극하면서 굳이 타겟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므로 전사자 시신은 돌려주겠다고 했고, 대신 유조트럭 배상비를 비롯한 여러 경제적 보상을 받은 뒤 전사자들의 시신을 미국으로 송환했다. 그리고 이란은 이것 또한 자신들의 인도적 조치로 포장해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3. 교훈


이러한 특수 작전은 팀웍과 철저한 준비가 생명인데, 이번 작전에는 동원된 대부분의 병력들은 실제 이런 특수작전에 대비한 훈련을 받아보지 못한 상태였으며, 작전전에는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들이였다. 동원된 대부분의 장비들도 역시 대충 끼워맞춰진 것일뿐 이런 상황에 대비한 단 한번의 시뮬레이션도 거치지 않은 것들이었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었던 헬리콥터의 경우 사막에서의 비행에 적합한지도 불분명했고, 조종사들은 저공침투비행 경력이 전무했다. 한마디로 이런 대규모 특수작전에 대한 노하우가 없이 안일하게 어떻게든 되겠지 식으로 실행했다가 입은 참사였다.
이글 클로의 대실패를 통해서 얻은 교훈들을 통해 카터 행정부 들어서 거의 씨가 말라가던 특수부대의 재정비, 전문적인 특수전 비행대의 창설, 원활한 합동 특수작전의 수행을 위한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의 창설이 이루어졌다. 그에 힘입어 델타 포스는 이후 계속되는 작전들의 성공을 통해 늦게나마 이때의 오명을 만회한다.
델타포스뿐만 아니라 미군 전체가 단단히 벼르고 있던 2차 구출작전은 인질 석방으로 인해 취소되지만, 이러한 2차 구출작전 준비 과정은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로 개편되는 특수전 비행단, TF-160의 전신인 TF-158과, 해군판 델타 포스라고 할 수 있는 SEAL 제6팀이 창설되는 계된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특수전에 대응할 수 있는 수송기 V-22 오스프리를 개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훗날 이 사건은 척 노리스 주연 영화 델타포스의 첫머리에 잠깐 등장한다. 물론 현실과는 많이 다르지만 폭파된 헬기가 불타고 있는 장면은 비슷하게 만들었다.[4]

[1] 이들은 그린베레 A분견대(Det.A)로 본래 서베를린에 주둔하며 제3차 세계대전 발발 시 민간인으로 위장하고 서베를린에 잔류해 소련/동독군에 대한 정탐 및 파괴활동 임무를 맡은 부대- 그래서 부대원들 중 상당수는 독일 혈통을 가진 대원들이었다-여서 건물 내 CQB 작전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https://blog.naver.com/delfosisyu/221152907355 참조.[2] 이는 카더라가 아니라 당시 작전에 참여하던 이들이 증언하여 국내에서도 더빙방영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나왔다. 트럭이 미군의 정지신호를 무시하자 그냥 바주카를 쏴버렸더니... "우린 비명을 질렀습니다...라고 했는데 쏜 다음에서야 유조트럭이라는 걸 알았기에 폭발은 엄청났고 멀리서도 다보였으니 우린 이제 들키는건 시간문제다!" 라면서 당황했다...고 증언했다.[3] 한국에서는 이때 델타포스 부대원 전원이 사망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 출판인쇄물이나 인터넷 텍스트가 많다.[4] 영화에서는 척 노리스(스캇 맥코이)가 이 작전의 실패를 비관하여 델타포스를 떠나는 것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