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레인저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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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th Ranger Regiment'''
제75레인저연대
'''The Army's Premier Raid Force'''
육군의 최상급 강습부대

'''Sua Sponte'''

'''자발적으로!'''[1]

'''RANGERS LEAD THE WAY.'''

'''레인저가 앞장선다.'''

 

-레인저의 구호로 유명한 '''"레인저가 선봉에 선다!"(Rangers lead the way!)'''가 바로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에 나온 말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레인저 대대원들에게 임무를 설명하던 노먼 코타(Norman Cota) 장군이 "죽더라도 해변가가 아니라 절벽까지 올라가서 죽어라. 난 레인저들이 선봉에 설 것을 기대한다." (I expect Rangers to lead the way) 라는 말을 한 것이 부대의 구호가 되었고, 그 후로도 레인저는 미 육군의 선봉부대 역할을 맡아 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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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레인저'란 용어의 유래와 초창기 레인저 부대들
3. 75레인저연대 이전의 20세기 레인저 부대들의 역사
3.1.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인저 대대의 창설과 해체
3.2. 6.25 전쟁사단 직속 레인저 중대들의 창설과 해체
4. 75레인저연대와 직접 관련된 부대의 역사
4.1. 개요: '75보병연대'와 '레인저'라는 옛 부대들의 이름을 따오다
4.2. 1966년, 베트남 전쟁 파병 사단들 예하에 LRRP 창설
4.3. 1969년, 각 사단 LRRP들을 레인저 중대로 일괄 개칭하다
4.4. 1970년대, 레인저 중대의 해체
4.5. 1986년, '제75 레인저 연대'의 탄생
4.6. 유사 부대: 장거리 정찰대의 창설(1980년대)
5. 제75레인저연대의 특성
5.1. 임무
5.2. 편제
5.3. 인적자원
5.4. 장비
5.5. 특수부대인가 경보병부대인가
6. 제75레인저연대 직할 정찰중대(RRC)
6.1. 소개 및 역사
6.2. 지원자격 및 선발과정
6.3. 기타 이야기
6.4. 수행한 작전
7. 출신인물
8. 미디어에서의 모습
9. 관련 문서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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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레인저연대는 미 육군의 '''티어 2''' 특수부대이다. '''신속대응부대, 경보병부대, 강습부대'''의 성격을 지녔으며, 타 특수부대와 달리 대규모 화력이 전개되는 정규전에도 뛰어난 만능부대이다. 미국 조지아주의 포트 베닝에 위치해 있다.
산하에 '''티어 1'''로 분류되어 JSOC의 명령 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연대 직할 정찰중대(75th Ranger Regiment's Regimental Reconnaissance Company)가 있다.

2. '레인저'란 용어의 유래와 초창기 레인저 부대들


원래 레인저라는 단어는 17세기에 북미 대륙에서 국경선이나 인디언 접경지역 등 위험지대를 순찰하면서 위험한 조짐을 조기에 감지하여 본대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순찰대원을 ranger라고 불렀던게 군대와 관련된 최초의 사용례이다.
그 전에도 영국에서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넓은 범위(range)의 땅을 돌아다니는 사람, 즉 '방랑자' 등의 의미로 쓰이기도 했고, 역시 넓은 땅을 돌아다니며 관리한다는 느낌에서 '사냥터 관리인'(gamekeeper)이라는 의미로도 쓰이던 단어였다. 이후 이 단어가 북미 대륙으로 건너 온 뒤론 국경선/위험지역을 감시하는 기동 순찰 감시병(군대 용어)이나 삼림/공원 감시원(민간 용어)[3]이란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데, 이렇게 의미가 점차 달라지고 다양화되기 시작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용어들에도 역시 어떤 일을 할 때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뭔가 넓은 범위의 지역을 기동하면서 수행한다는 뉘앙스는 여전히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서양의 판타지물, SF물이나 각종 게임, 영화, 소설 등에 나오는 세계관에서 'Ranger'라는 이름을 가진 가공의 조직이 자주 등장하곤 하는데, 위험한 지역을 순찰하는 병력 혹은 기동타격대의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주로 묘사되곤 한다. 이를 보면 현대에도 레인저라는 용어에서 그 단어가 가졌던 원래의 뉘앙스가 어느정도는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경우의 레인저를 한국어나 일본어로 번역할 때 '기동대'나 '순찰대' 라고 번역하기도 한다.[4]
어쨌든 시간이 갈수록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는 자'라는 원래의 뜻은 점점 약해졌고, 후술하듯 '정예'라는 의미가 더 부각된 단어로 점차 변하게 된다. 험악했던 개척기 북미 대륙의 위험 지역을 돌아다니려면 용감해야 하고 체력도 좋아야 하므로 이런 일을 수행하는 사람은 용맹한 정예 용사라는 생각에서 자연스레 그런 의미로 변하게 된 걸로 보인다.[5]
병사 개개인이 아닌 한 부대 전체에 레인저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676년 신대륙 이주민들과 인디언 사이에 벌어진 필립왕의 전쟁 (Philip's War) 당시 활약했던 '처치의 레인저들(Church's Rangers)'이라는 이름의 부대가 시초이다. 플리머스 식민지의 총독 조시아 윈슬로우의 군사 보좌관이었던 벤자민 처치는 필립왕 전쟁 때 대위 계급으로 식민지 영국인들 뿐 아니라 우호적인 인디언들을 모아서 지휘하여 뉴잉글랜드 국경지대에 있던 적대적인 인디언들을 급습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이 부대를 가리켜 지휘관 벤자민 처치 대위의 성을 따서 '처치의 용맹한 대원들'이란 뜻으로 '처치의 레인저들'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이후로도 북미대륙의 정예부대들에게 지휘관의 이름을 따서 '~의 레인저들'(~'s Rangers)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관행화되었다. 조지왕 전쟁, 프랑스-인디언 전쟁, 독립전쟁, 남북전쟁 등 북미에서 벌어진 모든 전쟁때마다 '~의 레인저들'이라고 이름 붙여진 부대들이 여기저기서 계속 만들어지고 전쟁이 끝나면 없어졌다. 그런 부대들이 만들어진 배경과 상황이 다양했던만큼 레인저 부대들의 성격도 다양해서, 빠르게 기동하며 기습공격하는 성격의 부대가 주류이긴 했지만, Danks' Rangers같이 요새 수비대도 있었고 심지어 기병대(cavalry)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전쟁 때마다 이런 레인저라는 명칭의 부대들이 만들어졌다가 전쟁이 끝나면 해체되는 게 베트남 전쟁 때까지 수백 년 동안 계속 반복되게 된다.'''
이렇게 '레인저'자가 들어간 여러 초창기 부대들이 있었지만, 현대의 75 레인저연대가 레인저 부대의 진정한 기원으로 삼고 있는 것은 1755년 프랑스-인디언 전쟁 당시 활약한 '로저스의 레인저들(Rogers' Rangers)'이다. 북미대륙의 영국 식민지에서 활동한 영국 육군 장교인 로버트 로저스는 부하 레인저 대원들을 이끌고 멀리 떨어진 프랑스 진영을 신출귀몰하게 기습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적의 예상을 벗어나기 위해 보트를 타고 강으로 이동하여 접근하기도 했고, 눈이 많이 내려 이동이 어려운 한겨울에도 대원들이 설피를 신고 먼 적진까지 가서 기습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적의 이동을 노린 매복공격, 수색정찰 등에서도 큰 성과를 냈다. 이런 성공에 고무된 영국군은 로저스의 레인저 부대를 14개 중대까지 확대 편성했다. 그리고 로버트 로저스는 이런 작전 경험을 밑바탕 삼아서, '레인징 활동을 할 때 지켜야 할 28가지 규칙' (The 28 "Rules of Ranging")이라는 가이드라인 교범까지 만들었는데, 이 교리는 먼 훗날인 2차 세계대전 때 미 육군이 레인저 대대를 만들 때도 참고할 정도로 유용했다. 이렇게 초창기의 각종 레인저 부대들 중에서 가장 유명했고 성공적이었으며 현대에 까지 내려오는 교리까지 정립했기에, 북미대륙 식민지에서 활약한 영국 육군 소속의 '로저스의 레인저들'이 최초의 진정한 레인저 부대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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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정을 거치며 ''''레인저'는 북미의 육군에서 수색정찰이나 선봉 공격, 기습 타격 등의 임무를 가진 정예 부대 내지 특수부대라는 의미의 용어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런 군대 용어로서뿐 아니라 '''레인저 하면 보통인보다 용맹스럽고 강인한 존재라는 느낌을 주는 보편적인 용어가 되어서 '정예'라는 뉘앙스를 지닌 일반적인 의미로 워낙 널리 쓰이기 때문에, 뭐든 힘 께나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대상에 죄다 갖다 붙이는 약방의 감초 같은 단어'''처럼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각종 군사 방면에서부터 게임, 만화, 액션/히어로물, 항공모함, 트럭을 비롯한 차량, 수사기관, 스포츠팀, 판타지물 등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에 워낙 많이 쓰여서 혼란을 야기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3. 75레인저연대 이전의 20세기 레인저 부대들의 역사



3.1.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인저 대대의 창설과 해체


20세기에 '레인저'라는 이름이 붙여진 최초의 부대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던 1942년부터 창설된 미 육군 레인저 대대들이다. 당시 유럽전선에서는 영국 육군 코만도 부대가 소규모 게릴라 특수작전을 펼치며 명성을 떨치고 있었는데, 이에 깊은 인상을 받은 미군 수뇌부 측에서도 이 영국 육군 코만도 부대와 흡사한 경보병 특수 작전부대의 창설을 육군과 해병대 내에 추진, 이로써 탄생한 것이 제2차 세계 대전시기의 미 육군의 레인저 대대들과 미 해병대의 레이더스 대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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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때의 최초의 제1레인저 대대(1st Ranger Battalion)는 600여명의 규모로 북아일랜드에서 창설되었으며, 이들 중에서 80%는 미 육군 제34보병사단에서 선발되었다. 부대의 이름은 17~18세기부터 북미대륙에서 활동한 정예 부대들에게 붙였던 북미대륙 고유의 전통적이고 명예로운 명칭인 '레인저'를 채택했다. 특히 북미대륙 특수작전 부대의 효시격인 18세기의 '로저스의 레인저들'(Rogers' Rangers)이 Ranger라는 명칭을 썼던 것이 '레인저'를 부대명으로 삼게 된 큰 이유였다. 심지어 현재의 75레인저연대도 부대의 정신적 뿌리이자 기원을 북미대륙에서 활동했던 영국 육군 소속의 '로저스의 레인저들'로 정해놓고 있고, 그 부대 지휘관이었던 로버트 로저스(Robert Rogers) 중령이 만들었던 레인저 작전교리도 여전히 참고하고 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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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레인저 대대는 북아프리카 전선(알제리, 튀니지), 남부 유럽(이탈리아) 전선에서 활약하였다. 이탈리아 전선부터는 제1, 제3, 제4레인저 대대가 '제6615 레인저연대(6615th Ranger Force)'를 이루어 함께 작전을 수행하였는데, 이는 현대 75레인저연대 모델의 선조격이라 할 수 있다.[7] 그리고 제2, 제5레인저 대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포함한 유럽 본토지역(프랑스, 독일)에서 활약하였고, 제6레인저 대대는 필리핀을 비롯한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하였다. 이들 레인저 대대들은 전장 깊숙히 들어가서 각종 야간 습격작전, 상륙 선견작전, 공항 점거작전, 인질(포로) 구출 작전[8] 뿐 아니라 정규부대들과의 대규모 전투에도 함께 참여하는 등 맹활약하였다.
  • 제1레인저 대대(1st Ranger Battalion)
1942년 5월 27일 북아일랜드에서 창설. 디에프 기습작전(42년 8월, 프랑스 북부) 참가 이후 북아프리카 알제리 해안에서 아르죄 상륙 선견작전(42년 11월), 세네드 야간 습격작전(43년 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 엘게타르 전투(43년 3월~4월, 튀니지)에 참가. 이후에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침공작전(43년 7월~8월), 젤라 해안 전투(43년 7월, 시칠리아), 부테라 해안 도시 습격작전(43년 8월, 시칠리아)에 참가했고 이탈리아 본토의 살레르노 항구 상륙 작전(43년 9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포자 지역 전투(43년 9월~44년 1월), 안치오 상륙 작전(44년 1월, 이탈리아 남부), 씨스테르나 전투(44년 1월~2월) 등에서 맹활약. 1944년 8월 15일 해체.
  • 제2레인저 대대(2nd Ranger Battalion)
1943년 4월 1일 미국 테네시주에서 창설. 노르망디 상륙작전 참가(44년 6월, 프랑스 북부 해안). 이후 전선 깊숙히 들어가서 브레스트 전투(44년 8월~9월, 프랑스 북부), 휘르트겐 숲 전투-베르크슈타인 400고지 전투(44년 12월, 독일), 라인란트 지역 등등 프랑스, 독일의 많은 지역에서 활약. 1945년 2차대전 종전 이후 해체.
  • 제3레인저 대대(3rd Ranger Battalion)
1943년 5월 21일 모로코에서 창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 침공작전(43년 7월~8월)에 참가, 젤라 해안 전투(43년 7월)를 비롯하여 많은 해안 도시들을 점령. 이후 이탈리아 본토의 살레르노 항구 상륙 작전(43년 9월), 안치오 상륙 작전(44년 1월, 이탈리아 남부), 씨스테르나 전투(44년 1월) 등에 참가. 1944년 8월 15일 해체.
  • 제4레인저 대대(4th Ranger Battalion)
1943년 5월 29일 튀니지(북아프리카)에서 창설.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섬 침공작전(43년 7월~8월)에 참가, 젤라 해안 전투(43년 7월), 리카타 등지에서 활약. 이후 이탈리아 본토의 살레르노 항구 상륙 작전(43년 9월), 안치오 상륙 작전(44년 1월), 씨스테르나 전투(44년 1월), 등에 참가. 1944년 8월 15일 해체.
  • 제5레인저 대대(5th Ranger Battalion)
1943년 9월 1일 미국 테네시주 캠프 포레스트에서 창설. 노르망디 상륙작전(44년 6월, 프랑스 북부 해안)에 참가했고 이후 전선 깊숙히 들어가서 브레스트 전투(44년 8월~9월, 프랑스 북부), 벌지 대전투(44년 12월~ 45년 1월), 휘르트겐 숲 전투(44년 12월, 독일), 등 많은 전투에서 활약. 1945년 10월 22일 미국 메사추세츠주에서 해체.
  • 제6레인저 대대(6th Ranger Battalion)
1944년 7월 뉴기니에서 창설[9]. 필리핀 탈환작전에 참가하여 레이테섬 전투(44년 10월), 링가옌만 상륙작전(45년 1월), 카바나투안 포로수용소 구출작전(45년 1월), 아퍼리 공항 점거작전 등에서 활약. 이후에는 미 육군 제11공수사단, 제37보병사단과 함께 태평양전선에서 활약하다가 1945년 8월 15일 일제 항복 이후에는 일본 본토에 주둔. 1945년 12월 30일 일본에서 해체.

3.2. 6.25 전쟁사단 직속 레인저 중대들의 창설과 해체


1950년 6월 25일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불과 2달만인 8월 경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게 되자 당시 미 육군 참모총장은 '적진 깊이 들어가서 사령부, 포병, 탱크, 통신시설을 파괴하는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는 엘리트 특수부대'의 창설을 지시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국전쟁때 가장 최초로 창설된 레인저 중대가 바로 1950년 8월 24일에 일본 주둔 캠프 드레이크에서 창설된 '미 제8군 레인저 중대(The Eighth Army Ranger Company)'이다.
이 '제8군 레인저 중대'는 창설 3일만에 부산에 상륙하여 기장군에 '제8군 레인저 훈련 센터'를 세우고 자체 훈련을 시작하였다. 중대 인원은 장교 3명과 73명의 레인저대원(그 중 10명은 한국군 카투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같은 해 10월 1일에 레인저 훈련을 마치자, 당시에는 이미 인천 상륙작전(9월)이 성공하여 전선이 북진하고 있었다. 10월 8일에 이들은 기존명칭인 '제8군 레인저 중대'에서 '미 육군 제8213 부대(8213th Army Unit)'로 부대 명칭을 변경하였고, 10월 14일에 대전에 위치한 미 제9군단 소속의 제25보병사단에 배속되었다. 이후 이들은 '''보병사단의 수색대(Recon) 역할'''을 하며 보은(충북), 개성(황해북도), 동두천, 의정부 등에서 고립된 북한군 게릴라들을 수색, 소탕하는 임무를 맡으며 활약하였다. 11월 청천강 전투에서는 미군 포로 30명을 구출하기도 하였고, 꽤많은 규모의 중공군과 전투를 벌이며 222고지(Hill 222)와 205고지(Hill 205)를 점령•사수하기도 하였다. 이후 1951년 2월까지는 한강 근처에서 중공군과 교전을 벌였다. 2월에 터키군 여단과 함께 강화도 탈환작전에 참가하기도 하였고, 주로 밤에 한강을 건너다니며 중공군을 상대로 크고 작은 기습작전들을 벌였다. 3월에는 작전명 'Ripper'[10]참가하였고 전선 최전방에서 10km나 더 깊은 곳까지 침투해서 각종 수색, 기습 작전을 벌였다. 1951년 3월 31일에 '제8군 레인저 중대'는 해체되고, 기존 대원들 중 많은 이들은 제25보병사단 휘하의 다른 부대로 옮겨가거나 육군 제11공수사단의 제187공수연대, 또는 나중에 생겨난 다른 사단 배속의 레인저 중대들로 옮겨가게 된다.[11] 짧은 시기 동안 존재했던 이 '제8군 레인저 중대'는 164일간(164 Days)의 전투를 경험하였고,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 표창(Republic of Korea Presidential Unit Citation)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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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50년 9월 당시에 한국 기장군에서 자체 훈련중이었던 '제8군 레인저 중대'와는 별개로 미국 본토 조지아 주에 위치한 포트 베닝에서는 레인저 훈련 사령부(Ranger Training Command)가 설립되고 15개의 레인저(에어본) 중대를 창설시키기 위한 훈련을 시작한다. 훈련 프로그램을 담당한 레인저 훈련 A, B중대 2개를 바탕으로 '제1레인저 중대'부터 '제15레인저 중대'까지 15개의 '레인저 중대(에어본)'가 창설되게 된다. 이들은 레인저 과정을 포함한 각종 특수훈련과 전원이 에어본(공수)교육을 받았다. 이 레인저(에어본) 중대들은 이후 한국으로 파병되어 '''미 육군의 각 사단들에 배속되어 수색 작전 등 각종 특수작전들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8월 1일자로 모두 해체'''되었지만, 미 본토 포트 베닝에 위치한 레인저 훈련 사령부는 해체되지 않고 오늘 날까지 남아서 레인저 스쿨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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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한국전쟁 당시 존재했던 RANGER(Airborne) 중대들의 간략한 소개이다.
  • 제1레인저 중대(1st Ranger Company)
1950년 9월 29일에 창설, 1951년 8월 1일 해체.
미 육군 제2보병사단에 배속되어 주로 장거리 정찰(Long Range Patrol) 임무를 맡았으며, 이외에 야간 기습작전, 교각(다리) 폭파 임무 등도 수행. 1951년 1월에는 1차, 2차 원주전투에도 참가.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존재했었던 제1레인저 대대의 A중대를 계승함.
  • 제2레인저 중대(2nd Ranger Company)
1950년 10월 9일 창설, 1951년 8월 1일 해체.
미 육군 제10군단의 제7보병사단 32연대에 배속되어 단양, 원주, 장림리(충북), 충주, 평창 일대에서 활약. 1951년 2월부터는 제187공수연대에 배속되었고, 3월 23일에는 토마호크 작전의 일부로 187공수연대와 함께 적군의 후방지역에 공수 강하하여 북한군 19사단에게 큰 피해를 줌. 이외에도 151고지(Hill 151), 258고지(Hill 258), 소양강 전투 등에서 맹활약. 제2레인저 중대 구성원들은 주로 제82공수사단, 이외에 제758탱크대대, 제80방공포대대 출신들로 2차대전 참전 용사들도 많았으며, 특별한 점은 중대 인원 모두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구성됨. 9명이 은성훈장[12], 11명이 동성훈장, 103개의 퍼플하트 훈장[13]을 받은 대단한 부대였음.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존재했었던 제2레인저 대대의 A중대를 계승함.
  • 제3레인저 중대(3rd Ranger Company)
1950년 10월 25일 창설, 1951년 8월1일 해체.
미 육군 제1군단의 제3보병사단에 배속되어 임진강 전투, 한탄강 전투 등에 참가하였으며 각종 정찰과 기습, 목표 표착 유닛(Target Acquisition Unit)으로 활약함. 지원자들은 제82공수사단, 제11공수사단 출신자가 많았으며 2차대전 시기에 존재했었던 제3레인저 대대의 A중대를 계승함.
  • 제4레인저 중대(4th Ranger Company)
1950년 11월 20일 창설, 1951년 8월 1일 해체.
미 육군 제8군 사령부(Headquraters)와 제1기병사단에 배속되었으며, 1951년 2월부터는 제187공수연대, 이후에는 미 해병대 제1해병사단에 배속되어 활약.
  • 제5레인저 중대(5th Ranger Company)
1950년 11월 20일 창설, 1951년 8월 1일 해체.
미 육군 제1군단, 제25보병사단 소속.
  • 제6레인저 중대(6th Ranger Company)
1950년 11월 20일 창설, 1951년 12월 1일 해체.
미 육군 제7군 배속.
  • 제7레인저 중대(7th Ranger Company)
1950년 11월 20일 창설, 1951년 11월 5일 해체.
레인저 훈련 사령부.
  • 제8레인저 중대(8th Ranger Company)
1950년 11월 20일 창설, 1951년 8월 1일 해체.
미 육군 제9군단, 제24보병사단 배속.
  • 제9레인저 중대(9th Ranger Company)
1951년 1월 5일 창설, 1951년 11월 5일 해체.
미 육군 제3군 배속.
  • 제10레인저 중대(10th Ranger Company)
1951년 1월 5일 창설, 1951년 10월 15일 해체.
미 육군 제45보병사단 배속.
  • 제11레인저 중대(11th Ranger Company)
1951년 1월 5일 창설, 1951년 9월 21일 해체.
미 육군 제40보병사단 배속.
  • 제12레인저 중대(12th Ranger Company)
1951년 2월 1일 창설, 1951년 10월 27일 해체.
미 육군 제28사단 배속.
  • 제13레인저 중대(13th Ranger Company)
1951년 2월 1일 창설, 1951년 10월 15일 해체.
미 육군 제43보병사단 배속.
  • 제14레인저 중대(14th Ranger Company)
1951년 2월 27일 창설, 1951년 10월 27일 해체.
미 육군 제4사단 배속.
  • 제15레인저 중대(15th Ranger Company)
1951년 2월 27일 창설, 1951년 11월 5일 해체.
미 육군 제3군 소속.

4. 75레인저연대와 직접 관련된 부대의 역사



4.1. 개요: '75보병연대'와 '레인저'라는 옛 부대들의 이름을 따오다


오늘날의 '75레인저연대'(75th Ranger Regiment)라는 부대명칭은 1969년에 창설된 '75보병연대(레인저)'(75th Infantry Regiment (Ranger))를 1986년에 현재와 같이 바꾼 이름이다.[14]
그리고 '75보병연대(레인저)'는 '''예전에 있었던 '제75 보병연대'와 '레인저'라는 두 개의 옛 부대의 이름만 각각 따와서 합친 것'''이다.
먼저 '''75보병연대'''라는 이름을 가진 부대는 1918년에 처음 창설되었다가 해체와 재창설을 반복 후 다시 해체된 부대였다. 이 원래의 75보병연대는 레인저나 특수작전쪽과는 무관한 일반 보병연대였다. 그런데 1969년에 '75보병연대(레인저)'를 창설할 때 이 75보병연대라는 명칭을 따온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43년 10월 3일 창설된 임시부대인 미 육군 제5307혼성부대는[15]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남아시아 전역의 정글에서 특수작전을 수행한 부대로서 1944년 8월 10일 제475보병연대에 흡수 합병되었다. 이 475보병연대는 1954년 7월 21일에 제75보병연대로 개칭되었다. 이 부대는 이전에 두 차례 창설됐다 해체된 원조 제75보병연대와 무관하고 이름만 같다. 즉 이미 해체됐던 과거 75연대의 연대번호를 물려받은 것이다.
참고로, 미국은 역사가 짧은 나라라서 그런지, 옛 전통과 명칭을 사장시키지 않고 되도록 되살려서 이어가게 하여 새로 생긴 단체의 역사를 길게 확장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새로 만든 부대의 이름과 번호, 마크 등을 새로 만들지 않고 예전에 있었다가 사라진 부대의 것들을 물려받아 쓰는 관행도 이런 취지에서인 것이다. 이 세번째로 창설된 제75보병연대는 1956년 3월 21일 해체되었다.
그로부터 13년 뒤인 1969년 2월 1일에 미육군 역사상 네번째로 75보병연대라는 이름을 갖게된 '제75 보병연대 (레인저)'(75th Infantry Regiment (Ranger))가 창설된다. 그러나 이것은 같은 해인 1969년에 새로 창설된[16] 레인저 중대들을 명목상 소속시킬 연대를 만들려고 새 연대 이름을 정할 때 연대번호를 무의미하게 새로 정하기보다는 과거 실존했던 미육군 연대의 역사와 전통을 되살려 이어가자는 의미에서, 이미 해체되어 비어있는 번호의 연대들 중에서 레인저중대와 그나마 비슷한 특수부대적인 성격을 가졌던 5307혼성부대의 직계인 '''세번째 제75보병연대의 번호와 부대마크를 채택하게 된 것일 뿐''', '''실제로는 과거에 있있던 제75보병연대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그리고 뒤에 붙는 ''''(레인저)''''라는 이름도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레인저 대대나 한국전쟁 때의 레인저 중대에서 레인저라는 명칭을 따왔지만, '''그 레인저 대대/중대와의 실질적인 연관성 역시 없다.'''[17] 같은 1969년에 창설된[18] 15개의 레인저 중대들도 마찬가지다.
즉 '제75 보병연대 (레인저)'라는 부대 이름을 구성하는 ''''75보병연대''''나 ''''(레인저)''''나, 그리고 동시에 만들어진 15개의 ''''레인저 중대''''나 모두 한때 있었다가 '''사라진 과거 부대들의 '이름만' 따온 것'''이다.[19]
상술되었듯이 레인저 부대는 특정한 상설 부대가 아니라 전쟁 때마다 새로 생겼다가 다시 없어지곤 했던 부대였는데, 베트남 전쟁 당시인 '''1969년에 레인저라는 명칭을 가진 부대가 18년만에 다시 만들어졌다.''' 1969년 2월 1일 창설된 '미 육군 제75 보병연대 (레인저)'[20]와 형식적으로만 그 연대 소속이 된 15개의 레인저 중대들이 그것이다. 위에서 언급됐듯이, ''''제75 보병연대'는 1956년에 해체된 제75 보병연대의 연대번호를 그대로 따온 이름이고, 뒤에 붙는 '(레인저)'와 예하 '레인저 중대'들의 레인저는 2차 세계대전 때의 레인저 대대나 한국전쟁 때의 레인저 중대의 '레인저'에서 따온 것'''이다.[21]
그러나 1969년에 창설된 이 75연대는 미 육군 Combat Arms Regimental System에 따라 연대라는 이름만 형식적으로 부여된 껍데기에 불과했을 뿐 연대 본부나 예하 대대 등의 실체가 아예 없었고, '''명목상으로만 75연대 소속인 15개의 독립 레인저 중대들이 실제로는 미 육군의 여러 군단 및 사단들에 직할중대로 배속되어서 활동'''했다. 게다가 레인저 중대들은 엄밀히 말하면 새로 창설된 게 아니라 서독에 주둔하던 주독미군 제5군단, 7군단, 그리고 주월미군의 각 사단들 및 여단들 예하마다 있던 '장거리 수색정찰 중대'(Long Range Reconnaissance Patrol: LRRP)들의 이름만 1969년에 레인저로 바꾼 것이다.
즉, 1969년에 창설된 '제75보병연대 (레인저)'는 하나의 연대로서의 실체가 있는 부대가 아니라, 기존에 미 육군의 각 군단/사단/여단 등에 있던 '장거리 수색정찰 중대(LRRP)'들을 1969년에 과거 미 육군의 정예부대들이 전통적으로 즐겨 사용해온 명칭인 레인저라는 이름을 따온 '레인저 중대'라고 명칭을 일괄적으로 변경한 뒤, '''여러 사단들 소속으로 따로 떨어져 있는 이들 레인저 중대들을 관념적으로 한데 묶기 위해 제75보병연대라는 형식적인 타이틀을 부여한 것'''이다. 이렇게 단지 관념적인 개념의 '연대'가 아니라, 연대본부와 연대 편제, 그리고 예하 레인저 부대들에 대한 일원적인 지휘/통솔체계를 다 갖춘 '''실질적인 한 부대로서의 연대가 된 것은 후술하듯이 1984년'''이다.
이렇게 레인저라는 용어 자체에 여러 뜻이 있는데다가, 레인저나 75연대 등의 이름을 썼던 부대들도 여러가지이고 그러다보니 언뜻 봐서는 제75레인저연대라는 부대의 역사가 굉장히 복잡하게 느껴지고 헷갈리기 쉽다.

4.2. 1966년, 베트남 전쟁 파병 사단들 예하에 LRRP 창설


다시 월남전 때의 레인저 얘기로 돌아가서, 1969년에 창설된 총 15개의 레인저 중대들은 대부분 월남전에 파병 중이던 각 미 육군 사단과 여단 예하로 1966년에 생겨난 장거리 수색정찰 중대(Long Range Reconnaissance Patrol : LRRP)가 그 전신이다.
LRRP는 그냥 일반 소총소대에 "너희는 오늘부터 수색대임" 이런 식으로 기존 일반 부대에 수색임무만 부여한 경우도 있었고, 그린베레 특수전학교 등에서 정예교육을 받은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부대 내에서 지원자를 받아 새로 편성한 경우도 있었다.
1966년 7월 8일 주월미군 사령관 웨스트모얼랜드 대장은 월남에 주둔하는 모든 사단과 독립여단마다 LRRP 중대를 창설할 것을 명령했다. 이로써, 그전까지는 미 육군을 전부 통틀어 단 두개 중대밖에 없었던 LRRP 중대가[22] 월남전에 참전한 모든 사단과 독립여단들마다 편성되게 되었다. 그러나 LRRP 중대들 중 일부는 갑자기 수색임무만 부여받았을 뿐 일반 보병 소총중대가 LRRP로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수색임무에 맞는 훈련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베트남의 정글이라는 특정한 환경에 최적화된 맞춤형 특수훈련을 받는 것도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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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공수사단 장거리 수색대(LRRP)
이에 웨스티 장군은 1966년 9월 미 육군 그린베레의 제5공수특전단[23]이 운영하는 수색/특공(Recondo)[24] 학교를 나트랑에 세우고, 최소한 LRRP 중대의 간부들은 이 Recondo 학교에 입교하여 3주 과정의 훈련을 이수하도록 했다. LRRP 간부들뿐 아니라 그린베레미 해병대 포스리컨, 네이비 씰 등 미 특수부대원들 중 일부 및 동맹국 특수부대원들 일부도 이 Recondo과정에 입교하여 정글 특수전 적응훈련을 받았다. 1971년 2월에 마지막 수료자들을 배출한 것을 끝으로 이 수색/특공학교(Recondo School)는없어졌다.
부대 형편에 따라 LRRP 중대원의 상당수가 입교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각 LRRP 중대의 간부들 중에서 선발된 교관 요원이 교육을 수료한 후 부대로 복귀하여 교육내용을 LRRP 중대원들에게 전파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25] [26]

4.3. 1969년, 각 사단 LRRP들을 레인저 중대로 일괄 개칭하다


1968년 12월 5일 미 육군 참모총장은 LRRP 중대라는 명칭을,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에 존재했던 레인저 부대들의 이름을 본따서 '레인저 중대'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이듬해인 '''1969년''' 2월 1일부로 LRRP 중대에서 레인저 중대로 부대명이 바뀌면서 드디어 '''오늘날 75레인저연대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는 레인저부대가 탄생'''하게 된다.
'''월남전 당시 미 육군 레인저 중대들의 역사와 기원'''
[image]
'''레인저 중대'''
'''창설일'''
'''해체일'''
'''기존 부대명'''
'''배속부대'''
'''LRRP 중대 창설일'''
75(레인저)보병 A중대
1969년 2월 1일
1974년 12월 19일
17(공수)보병 D중대(LRRP)
5군단
1965년 5월 15일
75(레인저)보병 B중대
1969년 2월 1일
1974년 11월 1일
58(공수)보병 C중대(LRRP)
7군단
1965년 5월 15일
75(레인저)보병 C중대
1969년 2월 1일
1971년 10월 25일
20(공수)보병 E중대(LRRP)
I FFV[27]
1967년 9월 25일
151(공수)보병 D중대(LRRP)
(인디애나 주방위군)
75(레인저)보병 D중대
1969년 2월 1일
1969년 11월 20일
1969년 11월 20일
1970년 4월 10일
51(공수)보병 F중대(LRRP)
II FFV
1967년 9월 25일
75(레인저)보병 E중대
1969년 2월 1일
1969년 8월 23일
50(공수)보병 E중대(LRRP)
9보병사단
1967년 12월 20일
75(레인저)보병 F중대
1969년 2월 1일
1971년 3월 15일
50(공수)보병 F중대(LRRP)
25보병사단
1967년 12월 20일
75(레인저)보병 G중대
1969년 2월 1일
1971년 10월 1일
51(공수)보병 E중대(LRRP)
23보병사단
1967년 12월 20일
75(레인저)보병 H중대
1969년 2월 1일
1972년 8월 15일
52(공수)보병 E중대(LRRP)
1기병사단
1967년 12월 20일
75(레인저)보병 I중대
1969년 2월 1일
1970년 4월 7일
52(공수)보병 F중대(LRRP)
1보병사단
1967년 12월 20일
75(레인저)보병 K중대
1969년 2월 1일
1970년 12월 10일
58(공수)보병 E중대(LRRP)
4보병사단
1967년 12월 20일
75(레인저)보병 L중대
1969년 2월 1일
1971년 12월 25일
58(공수)보병 F중대(LRRP)
101공수사단
1968년 1월 10일
75(레인저)보병 M중대
1969년 2월 1일
1970년 10월 12일
71(공수)보병(LRRP)파견대
199경보병여단
1967년 12월 20일
75(레인저)보병 N중대
1969년 2월 1일
1971년 8월 25일
74(공수)보병(LRRP)파견대
173공수여단
1967년 12월 20일
75(레인저)보병 O중대
1969년 2월 1일
1969년 11월 20일
78(공수)보병(LRRP)파견대
82공수사단 3여단
1968년 12월 15일
75(레인저)보병 P중대
1969년 2월 1일
1971년 8월 31일
79(공수)보병(LRRP)파견대
5보병사단 1여단
1968년 12월 15일
[image]
1960년대 173공수여단의 장거리 수색정찰대(LRRP) 대원

4.4. 1970년대, 레인저 중대의 해체


베트남 전쟁의 막바지에 미군이 단계적 철수를 시작할 무렵 레인저 중대들도 차례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미군이 완전히 철수한 1973년엔 총 15개 레인저 중대 중에서 월남전에 참전한 13개의 중대가 모두 해체되어서, 유럽에 있다가 본토로 이동한 최초의 LRRP 중대 단 2개만 레인저 중대로 존재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전쟁때마다 새로 창설했다가 전쟁 끝나면 바로 폐지하는 걸 매번 반복하기보단, 이제는 평시에도 항상 준비되고 체계화된 상비 레인저 부대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1974년에 그때까지 남아 있던 2개의 레인저 중대를 각각 제1, 2레인저 대대로 확대 개편했다.

4.5. 1986년, '제75 레인저 연대'의 탄생


1984년 7월 1일에 3번째 레인저 대대가 창설되었고, 이 세개의 레인저 대대를 일원적으로 통솔하는 연대 본부가 만들어졌다. 그 전인 1969년부터 1984년까지도 15개의 레인저 중대(베트남전쟁 시기)와 제1,2 레인저 대대(1974~1984)가 제75 보병연대(레인저)라는 연대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위에 설명되어 있듯이 이는 명목상으로 껍데기만 존재하는 이름만 연대였을 뿐 실질적인 실체가 있는 연대가 아니었는데, 1984년에 비로소 예하 레인저 대대를 직접 지휘 통솔하는 실질적인 레인저 연대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1986년에 기존의 '제75 보병연대 (레인저)'(75th Infantry Regiment (Ranger))에서 '제75 레인저 연대'(75th Ranger Regiment)로 이름을 바꾸고 재탄생했다.
이상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레인저 부대의 역사가 수백 년이라는 것은 과거 전쟁 때마다 미 육군의 여러 선봉 정예 부대들이 사용하던 '레인저'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승계받아 계승해온다는 정신적/상징적인 의미이지, '''실제 조직과 구성원이 과거부터 일관되게 쭉 이어져 온 것은 전혀 아니다.'''
즉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통일된 단일부대로서 쭉 이어져오는 레인저 연대의 역사는 1984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부대 이름까지 현재와 똑같아진 것은 부대명을 75보병연대(레인저)에서 75레인저연대로 바꾼 1986년부터이다.
하지만 정통성과 역사를 최대한 늘려잡으려 하기 때문에, 75레인저연대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 때 있었던 레인저 대대/중대들을 자기 부대의 역사에 포함시키고 있고, 더 나아가 수백년 전에 출몰했던 각종 레인저 부대들 역시 자신들의 역사로 치고 있다.
사실, 이렇게 한참 전에 없어졌고 실질적인 관련도 없는 과거 부대를 가지고 그 부대 이름이나 상징, 의미 등을 따와서 새 부대의 뿌리로 삼는 사례는 이외에도 여럿 있다. 2006년에 창설된 미 해병대의 특수작전연대도 무려 70년 전에 없어진 경보병부대인 미해병대 레이더스(2차대전)를 자기 부대의 정신적 뿌리로 삼기로 2014년도에 결정했고 이에 따라 부대이름도 그 부대의 '레이더(Raider)' 자를 따와서 레이더연대(해병특전단)로 바꿨다.[28]
월남전 이후에는 1980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실시된 독수리 발톱 작전(Operation Eagle Claw)에 제1 레인저 대대의 일부 병력이 지원병력으로 참여했다. 1983년 10월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 절박한 분노 작전(Operation Urgent Fury) 당시에는 제1 레인저 대대와 제2 레인저 대대가 각각 참여하였다.
75레인저연대 창설 후인 1989년 12월의 미국의 파나마 침공 : 정당한 명분 작전(Operation Just Cause)에는 75레인저연대의 이름으로 참여했다.
1991년 걸프 전쟁: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에는 75레인저연대의 1대대와 연대본부가 참전했다. 1993년 소말리아 내전 중 실시된 미군의 고딕 서펀트 작전(Operation Gothic Serpent)에는 75레인저연대의 3대대 B중대가 참여했다.
2000년 코소보 전쟁 중 실시된 얼라이드 포스 작전 (Operation Allied Force)에는 75레인저연대 수색중대 제2팀이 참여했다.
2001년부터 시작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아프가니스탄 항구적 자유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Afghanistan)과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지속된 이라크 전쟁: 이라크 자유 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에는 75레인저연대 전체 병력이 1개 레인저대대 단위로 3~4개월씩 파병 로테이션을 돌며 오늘 날까지 계속 전투 파병되고 있다. 레인저연대 예하 대대들의 파병 로테이션과 실제 작전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레인저 전역자가 말하는 75레인저연대 생활(링크)를 읽어보자.

4.6. 유사 부대: 장거리 정찰대의 창설(1980년대)


미 육군 각 군단/사단 예하의 장거리수색정찰대(LRRP)가 베트남전 시기에 창설과 해체를 거듭하다가, 1974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LRRP(레인저) 중대 2개가 각각 레인저 1, 2대대로 확대개편되자 이후 미 육군에는 각 군단/사단의 수색대 역할을 하는 부대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1984년에 미 육군 수뇌부에서는 각 군단과 사단 예하에 '''장거리정찰대(LRSU: Long Range Surveillance Unit)'''를 창설함으로써 과거 LRRP의 역할을 계승하게 하였다. 이를 위해 각 육군 군단(Coprs)에는 군단 직할 군사정보여단 소속으로 '''장거리정찰중대(LRSC)'''[29]가, 각 육군 사단에는 사단 직할 군사정보대대 소속으로 '''장거리정찰분견대(LRSD)'''[30]가 창설되었다. 냉전시대였던 80년대 당시 유럽 주둔 미 육군(USAREUR)의 2개 군단(Corps)을 시작으로 이후에는 모든 육군 군단/사단에도 창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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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공수사단 장거리정찰분견대(LRSD)의 90년대 모습
장거리정찰대(LRSU)가 처음 창설될때인 1980년대 중반에 포트 베닝의 육군 75레인저연대 본부에서 회의가 열렸는데 참석자들은 영국 SAS, 호주 SASR, 그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수색대(Recon) 등의 부대들이 참석하였고 미 육군 측에선 75레인저연대와 육군 특전단(그린베레) 측 인원들이 참가하였다. 특히 유럽 주둔 미 육군(USAREUR) 소속 부대의 장거리정찰분견대(LRSD)와 장거리정찰중대(LRSC)는 영국 SAS와 자주 교류하였고, 합동훈련도 주기적으로 함께하는 사이였다. 또한 이 장거리정찰대(LRSU)의 교육을 위해 레인저 훈련단 소속으로 4주간의 '''정찰 감시 리더 과정(RSLC: Reconnaissance and Surveillance Leader Course)''' 교육을 만들게 된다. 이것은 베트남 전쟁 시절의 '리콘도 스쿨(Recondo School)'을 계승한 것으로, 육군 이외에도 해군 네이비씰이나 해병대의 리콘마린도 위탁교육을 들어왔다.
장거리정찰대(LRSU)의 최소 작전 단위인 '정찰팀'은 6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사단의 장거리정찰분견대(LRSD)는 총 6개의 정찰팀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사단 지휘부에서 최대 90km 이상의 정찰작전과 휴민트 작전을 담당하였다.[31] 군단의 장거리정찰중대(LRSC)는 총 18개의 정찰팀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최대 150km 이상의 정찰작전과 휴민트를 담당하였다.[32] 이 장거리정찰대(LRSU) 부대들은 기본적으로 전원이 공수교육과 공중강습학교, 레인저스쿨, SERE 생존교육 수료자들이었으며, 정찰분견대(LRSD)와 정찰중대(LRSC)안에서도 또 정찰팀들이 기동/공중/해상 3개 분야로 나뉘어져서 각자의 분야에 따라 스나이퍼스쿨, HALO/HAHO 강하교육, 육군 특전단(그린베레) 컴뱃 스쿠버다이버 과정이나 미 해병대 수색교육 등의 여러 교육까지 이수하는 사실상 특수부대였다. 이 장거리정찰대(LRSU) 부대들은 1980,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아프간, 이라크전까지 활약하다가 2010년대에 들어 대부분 해체되어 사라진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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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제18공수군단(XVIII Airborne Corps) 휘하 LRSU 부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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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육군 군단(Corps)소속의 LRSU 부대 목록.(2000년대 중반)
이 장거리 정찰대(LRSU)는 엄연히 베트남전쟁 시절의 장거리수색정찰대(LRRP)를 계승한 것이며, 이곳(LRSU)에서 복무한 사람들도 현재 레인저 부대 전우회에서 같은 레인저 대원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외국 사이트에서 장거리정찰대(LRSU) 출신자들의 이야기를 보면 현역시절 육군 특전단(그린베레), 네이비씰, 해병 수색대(리콘 마린)과 자주 연합훈련을 했었다고 한다.[34] 이 장거리정찰대(LRSU) 대원들 중 상당수가 일정기간 복무 후에 육군 특전단(그린베레)으로 지원해서 옮겨가거나 몇몇 소수인원은 바로 델타 포스로 지원한 사례도 있다. 이외에도 특이한 점으로는 주방위군 소속 장거리정찰대(LRSU) 부대의 경우에는 구성원들 대다수가 현역 75레인저연대에서 복무한 뒤 방위군으로 전환한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고 하며, 해병 수색대(리콘 마린)전역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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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공수사단 장거리정찰분견대(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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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공수여단 소속 74th LRSD.(장거리정찰분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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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HALO 점프 훈련을 실시하는 제82공수사단 장거리정찰분견대(LR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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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아프간에서 그린베레 제10특전단 소속팀과 함께 작전 중인 제82공수사단 LR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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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제82공수사단 패스파인더(RANGER) 플래툰(현존하지 않는다. 2016년 해체되었다)

5. 제75레인저연대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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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언론이 4월에 촬영, 공개한 지난 2016년 2월 시리아 샤다디 전투에 투입되었던 제75레인저연대

5.1.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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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레인저연대는 '''신속한 기습 공격으로 적의 공항 등 중요 목표지점을 점령'''한 후 아군 증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사수하는 임무, '''고가치 표적 생포, 목표 및 테러리스트 강습'''과 같은 '''직접타격(Direct Action)''' 임무, 그리고 델타포스나 그린베레 같이 화력이 부족한 소규모 특수부대에게 '''화력지원 등으로 서포트해주는 임무''' 등을 수행한다. 2005년 이후부터는 제75레인저연대 단독으로 직접타격작전을 수행하는 부대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5.2. 편제


  • 75레인저연대(75th Ranger Regiment)
  • 연대 본부 중대(Regimental Headquarters and Headquarters Company)
  • 연대 군사 정보 대대(Regimental Military Intelligence Battalion)
    • 대대 본부(HQ) 중대
    • 군사 정보 중대
    • 사이버 전자기 활동(CEMA) 중대
  • 연대 특수 대대(Regimental Special Troops Battalion)
    • 대대 본부(HQ) 중대
    • 연대 직할 특수 수색 중대(RRC)
    • 통신 중대
    • 군사 정보 중대
    • 선발 & 훈련 중대
  • 제1 레인저 대대(1st Ranger Battalion)
    • 대대 본부(HQ) 중대
    • Alpha 중대(라이플)
    • Bravo 중대(라이플)
    • Charlie 중대(라이플)
    • Delta 중대(라이플)
    • Echo 중대(서포트)
  • 제2 레인저 대대(2nd Ranger Battalion)
    • 대대 본부(HQ) 중대
    • Alpha 중대(라이플)
    • Bravo 중대(라이플)
    • Charlie 중대(라이플)
    • Delta 중대(라이플)
    • Echo 중대(서포트)
  • 제3 레인저 대대(3rd Ranger Battalion)
    • 대대 본부(HQ) 중대
    • Alpha 중대(라이플)
    • Bravo 중대(라이플)
    • Charlie 중대(라이플)
    • Delta 중대(라이플)
    • Echo 중대(서포트)

75레인저연대의 본부(중대)와 특수 대대(Special Troop Battlion), 그리고 제3 레인저 대대는 조지아주 포트베닝에 위치해있다. 제1 레인저 대대는 조지아주 헌터 육군 비행장에, 제2 레인저 대대는 워싱턴주 루이스 맥코드 합동 기지에 위치해있다.
이전에는 레인저대대마다 레인저 중대(라이플)가 Alpha, Bravo, Charlie 이렇게 3개씩 존재하였으나, 중동지역에서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2007년에 부대 확대 개편으로 각 레인저대대마다 4번째 Delta중대(라이플)가 새롭게 신설되었다.
1개의 레인저 중대(라이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 본부 소대(HQ)
  • 3개 x 소총(rifle) 소대
    • 소대 본부
      • 소대장(대위)
      • 소대부사관
      • 소대 통신병
    • 3개 x 9명으로 구성된 소총(rifle) 분대
      • 분대장
      • 2개 x 4명으로 구성된 화력팀
        • 팀 리더
        • 소총수
        • 분대지원화기(automatic rifleman)
        • 척탄병
    • 1개 x 기관총(machine gun) 분대
      • 기관총 분대장
      • 3개 x 2명으로 구성된 기관총 팀
        • 기관총 사수
        • 기관총 부사수 (팀무기는 M240G, M240L, MK48)
  • 1개 x 화기(weapons) 소대
    • 소대 본부
    • 박격포 반(mortar section)
      • 3개 x 2명으로 구성된 박격포 분대 (M224 60mm 박격포)
    • 대장갑 반(anti-armor section)
      • 3개 x 2명으로 구성된 레인저 대전차 무기 시스템(RAWS)[35] 또는 재블린 미사일 팀
    • 저격반(sniper section)
      • 3개 x 2명으로 구성된 레인저 저격수 팀 (무기는 M24 SWS 7.62mm, M110 7.62mm, MK 13 Mod 5 .300 WinMag or M107 .50)
75레인저연대는 소수의 고급인력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타 특수부대와는 달리 약 37명 규모의 소총수 소대(rifle platoon) + 지원병력 단위로 고가치 타격물(HVT)에 대한 직접타격작전(Direct Action)을 수행한다. 2000년대 이후로는 80, 90년대와 달리 중대 단위의 대규모 작전을 거의 수행하지 않는다.

5.3. 인적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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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레인저연대에 들어가기 위해선 지원하여 75 레인저 연대원 선발 과정인 RASP(Ranger Assessment and Selection Program)를 통과해야 한다. 참고로, 75레인저연대 선발 프로그램인 RASP는, 전군에게 개방되어 있는 유명한 교육 과정인 레인저 스쿨과는 다른 전혀 별개의 과정이다. 제75레인저연대나 레인저 스쿨이나 둘 다 미국의 군사 교육기관 밀집 기지인 조지아포트 베닝에 주둔하고 있지만 레인저 스쿨은 제75레인저연대와는 별개의 존재다. 레인저 스쿨은 미 육군 교육사령부[36] 예하의 공수/레인저훈련여단[37] 소속이고, 제75 레인저 연대는 미국 특수작전사령부[38] 예하의 육군 특수작전사령부[39] 소속으로서, 이 둘은 별개의 조직이다. 이후에 RASP를 통과하면 전투훈련과정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는데 매우 긴 과정으로 RASP까지 합친다면 '''실전 투입 가능한 레인저 대원 하나를 양성하는데 통상 30주가량이 소모되며 양성비로만 12억 가량이 소진된다.'''
하지만 75 연대에서 계속 '''장기''' 복무하려면 원칙적으로 레인저 스쿨을 수료해야 한다. 그리고 75레인저연대원들은 정말 빨라야 하사 때 레인저 스쿨에 입교하는 타부대들과는 다르게 대개 75레인저연대원이 된 지 1년 이내에 레인저 스쿨에 입학하며 보통 첫 파병을 마치고 바로 레인저 스쿨에 입교하는 경우가 많다. [40] 레인저 스쿨 수료 경력이 없으면 결국 75 연대 장기복무 심사에서도 탈락하고 다른 부대로 전출 당하게 된다.

5.4.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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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우를 받는 부대답게 전투 군장도 일반 미 육군 보병과는 다른 장비를 사용하는데, 소말리아 작전 등 1990년대에는 일반 보병의 방탄복보다 성능이 좋은 RBA(Ranger Body Armor) 방탄조끼를 지급받았고, 2000년대에는 전투 군장에 RG(Ranger Green)이라는 독특한 녹색 원단을 사용했다. 2012년경부터는 미군 특수부대의 상징처럼 된 옵스코어 FAST 방탄모, FN SCAR 소총이 지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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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레인저연대의 모래색 베레모(Tan beret).
1975년에 검은색 베레가 레인저 대대의 공식 군모로 채택되었으나, 2001년 에릭 신세키 미합중국 육군참모총장의 지시에 검은색 베레가 미 육군의 공식 군모로 정해졌고, 차별화를 원한 75 레인저 연대의 베레모는 SAS와 흡사한 모래색 베레로 바뀌었다. 처음엔 레인저 예비역들의 반발이 좀 있었으나, 신세키 대장 본인도 레인저 부대 복무 경력이 있는 레인저 출신이었기 때문에 큰 반발은 못하고 결국 받아들였다. 그런데 일반 육군 병사들 사이에서 베레모의 불편함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 육군 군인들이 전투복 착용시에는 일부 행사 등의 경우에만 베레모를 쓰고 그 외엔 항상 전투모를 쓰도록 육군 규정이 바뀌었다.

5.5. 특수부대인가 경보병부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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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OM 소속이지만 다른 특수부대들과는 구별되는 상당히 이질적인 부대다. 다른 특수부대들은 팀 단위 편제인데 비해 제75레인저연대는 일반 보병부대와 같은 편제를 하고 있으며, 다른 특수부대들에 비해 보유 화력도 강하고 작전 시 같이 움직이는 단위 병력도 많은데다가,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이 아니라 상당한 병력과 화력으로 목표를 공격하여 아예 점령해버리는데 주안점을 두는 등, 여타 특수부대들의 성격과는 다른 점이 많다. 그래서 특수부대라기보단 경보병부대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육군 특전단 등의 특수부대들에 비하면 75레인저연대원들은 순수하게 다양한 상황에서의 '전투'를 상정한 훈련만을 주로 받는다는 것도 차이점이다.[41] 사실 특수부대들의 훈련 기간 중에서 전투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훈련의 비중은 생각만큼 크지는 않다. 특수부대의 훈련 기간이 긴 이유는 직접적인 전투상황 뿐 아니라 더욱 다양한 상황들을 상정한 각종 민사 작전, 적 지역에서 첩보의 수집 및 거짓 정보의 유포를 통한 교란, 적국의 국방시설이나 기간시설물들에 대한 폭파 등 사보타주, 게릴라 작전 등 다양한 임무와 상황들에 대비하는 여러가지 가상 훈련과 교범/교리 습득, 오랜 주특기 교육 등 다양한 교육/훈련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75레인저연대는 공식적으로 특수작전사령부 소속의 특수부대인 건 맞다. 물론 미국 특수작전사령부(SOCOM)엔 전투부대가 아닌 지원부대도 많기 때문에, SOCOM 소속 부대들 전부가 특수부대의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 ”SOAR”도 SOCOM 소속이지만 사실상 항공기를 통한 특수부대를 지원하는 지원부대이고 직접 전투, 정찰, 수색, 첩보 수집 등의 임무를 하지는 않는다. SWCC도 마찬가지로, 네이비 씰이 곤경에 처했거나 작전 지역을 이탈해야 할 때, 특수작전보트를 타고 재빨리 들어가서 화끈한 화력으로 적들을 제압하고 씰을 구출하는 지원부대다. 그러므로 SOCOM 소속이라고 모든 소속 부대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특수전 부대"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어쨌든 지원부대가 아니라 특수작전과 관련된 전투부대인 75레인저연대는 SOCOM 소속의 특수부대인 것이다.
다만 특수부대이긴 특수부대인데, 다른 특수부대들과는 이질적인 요소가 꽤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상병(Specialist) 부터 지원을 받는 그린베레와는 다르게 제75레인저연대의 경우는 민간에서 바로 지원할 수도 있어 대다수의 미군 특수부대들과는 달리 사병 계급들도 전투병으로 많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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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공개된 작전을 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는 본격적인 특수부대의 작전시 위급 상황 대비 및 주변에 배치되어 화력 투사 지원을 하거나, 특수부대가 수월하게 작전할 수 있도록 근처 거점 지역을 기습 공격으로 제압, 확보 혹은 점령하는 임무를 맡는 경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부대의 성격이 많이 바뀌어서 레인저부대 단독으로 적군 수뇌부를 체포, 사살하는 직접타격작전을 주로 담당하게 되어 일종의 특수전사령부(SOCOM) 내의 'SWAT팀' 개념의 부대로 완전히 바뀌었다.
75레인저연대는 1개 레인저대대 단위로 로테이션 전투 파병되며 한 번의 전투 파병 기간이 약 90일~120일(3개월~4개월)이라고 한다. 1개 소대(platoon) 단위로 파병지역 각지에 분산 배치되어 타격작전을 수행하며, 작전 템포는 매우 바쁘게 돌아간다고 한다. 2015년에 나온 기사(링크)에는 제1 레인저 대대(1st Ranger Battalion)가 단 한 번의 전투 파병 기간 동안 900회 이상의 작전을 수행하였으며, 386명의 고가치목표물(HVT)을 포함한 1,700명이 넘는 적군을 생포하였고, 400명 이상의 적군을 사살했다고 한다. 또 다른 뉴스 기사(링크)에는 제1 레인저 대대가 2018년에 있었던 22번째 전투 파병에서 198회의 작전을 수행하였고 1,900명 이상의 적군을 사살하거나 생포하였다고 한다. 2001년부터 2015년까지만 해도 3개 레인저대대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크 전쟁에 '각각' 20회씩 로테이션 전투 파병을 다녀왔다고 하며, 75레인저연대는 오늘 날 미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 소속 특수작전부대들 중에서 가장 많은 HVT를 생포, 사살한 부대라고 한다.

이렇게 레인저부대는 '''신속대응 보병부대적인 성격, 경보병 부대적인 성격, 특수부대적인 성격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을 가진 부대'''이다.
그래서 여러 군사 전문가들이나 군사 매체들의 견해를 보면, 제75레인저연대를 특수부대(Special operations forces)라고 정의하는 의견들이 있는 반면, 그냥 경보병부대(Light infantry)라고 칭하는 경우들도 있다. 그리고 특수부대적인 성격과 경보병적인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미군만이 보유한 독특한 정예 부대라는 의미에서 "미국의 정예 경보병 특수부대"(Elite American light infantry special operations unit)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즉 제75레인저연대가 특수부대냐 경보병부대냐는 논란엔 뚜렷한 정답이 있다기 보다는 특수부대의 범위에 대한 견해의 차이에 따라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수부대'라는 용어의 정의 자체가 견해와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100% 절대적인 정답은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위의 사례에서 본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 역시 야간 비행이나 초저공 비행, 사막지형이나 해상에서의 비행, 기습공격등에 특화되어 있어 특수부대의 작전수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조종사들 역시 혹독한 훈련을 받지만 단순히 '지원부대'로만 보는 시선도 있다. 항공기나 선박등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며 정찰, 수색, 첩보활동은 특수부대 임무 중에 일부일 뿐이다. 제75레인저연대가 직접전투(Direct Action)에 전문성이 있다는 것이 해당부대가 특수부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해당부대를 직접 운용하는 미 육군의 홈페이지도 제75레인저연대를 특수부대(Special operations forces)로 분류'''한다. 더 궁금한 점은 75레인저연대 전역자가 말하는 레인저연대 생활(링크)을 꼭 읽어보도록 하자. 읽고 나면 레인저가 특수부대가 아니라는 생각은 사라지게 될것이다. 또한 엄밀히 말해도 레인저의 경우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특수부대에 부합한다.[42]

사실 특수부대라는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이 전문적으로 발달한 형태였던 건 아니었다. 현재처럼 복잡한 롤까지 수행할 수 있게 다양하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게된 것은 엄밀히 말하면 1970년대 뮌헨 참사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만 해도 특수부대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현대의 수색대에 약간의 특수전에 관한 추가적인 훈련을 받은 형태라고 보면 된다. 레인저들도 애초에 사단 내 우수인력들을 뽑아둔 사단 수색대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 이후로 특수부대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지면서 특수부대에 대한 지원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늘어나고 미 특수부대들의 수준과 전문성이 크게 발달하게 됐다. 이에 따라 미 특수부대들의 교육훈련들이 더욱 다양화, 전문화되었고 고급훈련 이수 비율도 높아졌으며, 전술, 장비, 예산지원 등 여러 면에서 훨씬 더 일취월장 발전하게 된 것이다.

6. 제75레인저연대 직할 정찰중대(RRC)



6.1. 소개 및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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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연대 직할 정찰분견대(RRD)''' 시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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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연대 직할 정찰중대(RRC)''' 시절의 모습
1984년에 75레인저연대의 본부 중대(HHC)[43] 소속으로 '''연대 직할 정찰분견대(RRD: Regimental Reconnaissance Detachment)'''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으며, 75레인저연대의 연대장(대령)을 위한 직할 정찰분견대였다. 정찰분견대장은 대위 계급이었으며, 분견대장을 포함하여 6명의 레인저 대원들이 본부인원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휘하에 각각 6명으로 이루어진 정찰팀 3개가 존재하였는데, 1팀은 제1레인저대대, 2팀은 제2레인저대대, 3팀은 제3레인저대대를 지원하였다. 따라서 '''연대 직할 정찰분견대(RRD)'''의 총 인원은 본부와 정찰팀 3개를 합쳐서 총 24명으로 구성된 매우 소규모 인원이었다. 6명으로 구성된 정찰팀의 리더는 보통 중사(E7)였지만, 종종 하사(E6)였다. 또한 이들은 다른 지역에 별개의 부대로써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75레인저연대의 본부중대(HHC)와 제3레인저대대가 위치한 조지아주 포트베닝에 있었다. 건물도 기존 레인저연대가 쓰는 건물을 썼으며, 기타 필요한 서포트 병력들도 전부 기존 75레인저연대의 서포트 병력들이 담당했다.
이들의 임무는 주로 고공강하(HALO)로 침투하여 75레인저연대 병력들을 위한 '''정찰(Recon)작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같은 75레인저연대 소속으로 티어 2인 육군특수작전사령부(USASOC)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2007년에 75레인저연대에서 특수대대(Special Troop Battalion)를 따로 창설하면서 여기에 연대본부중대(HHC), 통신중대, 군사정보중대, 선발&훈련 중대를 휘하에 두게되었고, 이때 '''연대 직할 정찰분견대(RRD)'''에서 '''연대 직할 정찰중대(RRC: Regimental Reconnaissance Company)'''로 확장하여 특수대대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2007년)부터 '''연대 직할 정찰중대(RRC)'''의 소속은 '''티어 1'''인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로 바뀌게 된다. 물론 부대 위치는 당연히 조지아주 포트베닝의 75레인저연대 특수대대와 제3레인저대대와 함께 그대로 있다. 현재 정확한 부대 규모는 기밀이라 알려져있지 않지만 정찰중대(RRC)로 확장되면서 휘하에 3개의 정찰분견대를 두었다고 나오는 걸로 보아 약 70~80명 규모에 +지원병력수로 추측된다.

6.2. 지원자격 및 선발과정


'''연대 직할 정찰분견대(RRD)'''는 1984년에 창설당시에는 당연히 75레인저연대 소속 레인저 대원만 지원이 가능했다. 하지만 2007년에 '''연대 직할 정찰중대(RRC)'''로 확대 개편되어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 소속으로 바뀐 뒤에는 기존 75레인저연대 소속의 레인저 대원 이외에도, 미 육군 정규 사단/군단의 '레인저' 유닛에 해당하는 '''장거리정찰대(LRSU)''' 대원들도 지원이 가능해졌다. 사단/군단 '''장거리정찰대(LRSU)''' 대원들의 경우에는 75레인저연대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연대 직할 정찰중대(RRC)'''의 선발과정에 지원이 가능하다. 위의 레인저 부대 역사 항목에서도 이미 설명했지만, '레인저'라는 부대 자체가 원래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시절에는 미 육군 사단/군단의 '''장거리 수색대(LRRP)(레인저)''' 역할을 하던 부대였었고, 80년대에 이들을 한군데에 모아서 75레인저연대를 창설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2010년대로 넘어와서 육군의 사단/군단 '''장거리정찰대(LRSU)'''가 모두 해체된 뒤에는 육군 전체에서 공수교육과 레인저 스쿨, 정찰 감시 리더 과정(RSLC: Reconnaissance and Surveillance Leader Course) 교육을 수료한 병사들은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현재 지원 자격은 다음과 같다.
  • 75레인저연대 소속 레인저 대원
  • -
  • 공수교육, 레인저 스쿨, 정찰 감시 리더 과정(RSLC) 교육을 수료한 육군 병사
지원자들은 먼저 웨스트 버지니아의 산악지대에서 실시되는 3주간의 셀렉션 코스(선발과정)를 통과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처음에 스트레스 위크(Stress Week)로 불리우는 주간이 있는데, 주로 걷기(Walk) 구간이다. 약 34kg(75lbs)의 군장을 메고 일주일 동안 매일 12마일(19km)에서 20마일(32km)을 걷게(Walk) 된다고 한다. 마지막 날에는 40마일(64km)을 걸어야(Walk) 한다.
매번 셀렉션 코스(선발과정)의 지원자들의 숫자는 약 5명~20명 사이라고 한다. 여기서 약 5~7명 정도가 셀렉션 코스를 통과하게 되고, 이들 중에서도 면접 등을 거쳐서 실제로는 2~3명 정도의 인원만이 최종적으로 선발되어 이후 34주간 진행되는 RTC(Recon Training Course) 과정을 받게 된다. RTC 과정의 훈련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단 육군 특전단(그린베레)의 JFK육군특수전학교에서 모두가 고공강하교육(HALO)을 배우게 되고, 헬기훈련, 고정익 항공기, 스몰보트 훈련 등 '''정찰(Recon)작전'''에 초첨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이외에도 정찰팀마다 2명씩 육군 특전단(그린베레) 컴뱃 스쿠버 다이버 교육도 받는다고 한다.

6.3. 기타 이야기


75레인저연대에서 많은 레인저 대원들의 궁극적 인 목표는 레인저 중대(라이플)에서 부소대장(Platoon Sergrant)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핵심이었고 그 당시에는 당연히 그랬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레인저 대원들이 '''연대 직할 정찰분견대(RRD)'''로 가는 것이 자신들의 커리어와 진급 할 기회를 망치고, 잠재적으로는 레인저 라이플 소대를 지휘할 기회를 잃는 것으로 여겼다. 1990년대에 '''연대 직할 정찰분견대(RRD)'''가 수행했던 작전들은 좀 시원찮은 것들이었고, 90년대 중반에는 '''연대 직할 정찰분견대(RRD)'''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많았는데, 훈련 도중 부상을 입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편제상 75레인저연대('직할 정찰중대'가 아닌 제75레인저연대 소속 타 부대들)와 같은 티어2로 분류되는 특수부대인 육군 특전단(그린베레), 해군 특전단(네이비씰), 해병 특전단(마린 레이더스), 그리고 공군 특수부대인 공정통제사(CCT), 파라레스큐(PJ) 등이 대부분 부사관(NCO)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선발 훈련기간만 보통 1.5년~2년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75레인저연대는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발과정이 좀 짧아서 같은 티어2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특수부대' 타입이라기 보다는 '특수작전 경보병'의 이미지가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거기다 기존 75레인저연대에서는 다른 특수부대들은 모두 배우는 고공강하(HALO)나 스쿠버다이버 같은 고급 침투 교육은 배우지 않는다.
(그런데 75레인저연대와 함께 '레인저' 유닛으로 분류되는 육군 사단/군단의 '''정찰대(LRSU)'''에서는 고공강하(HALO)나 스쿠버 다이버같은 고급 침투교육을 배웠다. 같은 레인저라도 75레인저연대 소속 레인저는 안배우고 사단/군단 소속 레인저는 배웠다는 아이러니..)
75레인저연대와 육군 특전단(그린베레)의 CIF특임대를 거쳐서 델타 포스에서 20년간 복무하고 원사로 전역한 존 맥피는 '''연대 직할 정찰중대(RRC)'''의 선발과정이 같은 '''티어1급''' 부대인 델타 포스의 선발과정보다 힘드냐는 질문에 전혀 아니라고 답변하였다. 또한 '''연대 직할 정찰중대(RRC)'''가 전체적으로 어떠하냐는 질문에,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쓸모없는 부대 중 하나라고 혹평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생각해보면 꼭 틀린말도 아니다. 75레인저연대의 주 임무는 기본적으로 레인저 라이플 소대(platoon) 단위에 기타 화력, 장비, 공중 지원병력을 더해서 고가치 목표물(HVT)들을 직접타격(Direct Action)작전으로 체포, 사살하는데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전 스타일은 소수 팀원으로 작전을 벌이는 기존의 특수부대들과 차별화 되는 점이기에 75레인저연대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기에 반해 주로 고공강하(HALO)를 통해 소수인원으로 정찰작전을 수행하는 '''연대 직할 정찰중대(RRC)'''는 일단 부대 전체 인원도 너무 적은데다, 다른 특수부대인 그린베레델타 포스, 네이비씰데브그루도 고공강하(HALO)를 통한 정찰작전은 '''당연히'''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통합 특수작전사령부(SOCOM)에서 '''연대 직할 정찰중대(RRC)'''의 필요성이 의심 받는것이다.
다만, '''정찰중대(RRC)'''는 제75레인저연대가 맡는 보편적인 임무들보다 좀 더 기밀적인 작전들을 수행하는 부대(티어 1)이기는 하다.

6.4. 수행한 작전


  • 1989년 파나마 침공 작전 당시 레인저대대와 함께 참전.
  • 1990년 걸프 전쟁때도 역시 레인저대대와 함께 참전.
  • 2000년 11월 24일
정찰분견대(RRD)의 정찰팀 제2팀(6명)이 코소보 사태에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파병.
  • 2001년 11월 10일
정찰분견대(RRD)의 정찰팀 제3팀(6명)이 아프가니스탄 남동부지역에 고공강하(HALO)로 투입되어 활주로를 개척.
  • 2001년 11월 21일
정찰분견대(RRD)의 정찰팀 제3팀(6명)이 아프가니스탄 남동부지역에 생명줄 낙하산 점프로 투입되어 활주로 개척.
  • 2004년 7월 3일
정찰분견대(RRD)의 정찰팀 제3팀(6명)이 아프가니스탄 남동부지역에 고공강하(HALO)로 투입되어 군사장비 설치.
  • 2005년 6월
정찰분견대(RRD)의 정찰팀 제2팀(6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레드윙 작전에서 전사한 네이비씰 대원들의 시신 회수 작전에 참여.
  • 2009년 7월 11일
정찰중대(RRC)의 정찰팀 제1팀(6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고공강하(HALO)로 투입되어 군사장비 설치.

7. 출신인물


여기서는 최근 2000년대 이후의 75레인저연대 출신자들만 언급한다. 또한 75레인저연대에서만 복무한 사람들만 다루도록 한다. 75레인저연대에서 복무하다가 이후 그린베레(육군 특전단)델타 포스로 넘어간 사람들은 각 문서에서 다루기로 함.
  • 르로이 페트리 - 대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에 미 육군에 입대하여 75레인저연대 2대대에 배치된다. 이후 8번째 전투파병이었던 2008년 5월 26일, 그의 부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고가치 타격물(HVT) 체포작전에 나서게 된다. 저녁의 헬기 강습직후 페트리(본인)를 포함한 7명의 레인저 대원들은 40명의 탈레반과 마주치게 되고 곧바로 교전이 시작된다. 여기서 그는 양쪽 다리에 이미 총상을 입은 상태에서 동료에게 날아온 적군의 수류탄을 발견하고 멀리 던지려 했으나 결국 자신의 손에서 폭발하였고 오른쪽 손을 잃고 말았다. 당시 급박한 순간에도 그는 오른손을 지혈대로 누른 뒤 무전을 통해 자신을 비롯한 부대원들이 부상했다는 사실을 본부에 알렸고 지원부대의 도움으로 동료들은 살아날 수 있었다. 이 무훈으로 그는 2011년 7월 1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메달 오브 아너(명예훈장)를 받았다. 이라크 전쟁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 군인 가운데 생존자로써 명예 훈장을 받은 것은 그가 2번째이다. 2014년에 상사(MSG) 계급으로 전역하였고 현재는 각종 강연활동과 참전 군인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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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에게 명예훈장을 수여받는 페트리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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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리 상사의 모습
  • 맷 베스트 - 2004년부터 2009년까지 75레인저연대 2대대에서 복무하였고 이라크에 4회, 아프간에 1회, 합쳐서 5회 전투파병을 다녀왔다. 이후 대학교에서 리버럴아츠 학사 학위를 따고 중앙정보국(CIA) 컨트랙터로 5년동안 해외 각지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전우들과 함께 사업을 하고있는데, 택티컬 관련 분야를 비롯해서 'Article 16 Clothing'이라는 의류회사와 'Black Rifle Coffee Company'라는 커피회사도 운영하고 있다. 이외에도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활발한 SNS 활동과 'MBest11x'라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구독자 수가 130만명이 넘는다.
맷 베스트의 인터뷰 및 소개영상
레인저 vs 네이비씰(맷 베스트의 랩 영상)
  • 자리코 덴만 - 1997년에 입대해서 2012년까지 15년 동안 75레인저연대 1대대와 2대대에서 복무. 이 시절 이라크와 아프간에 총 15회 전투파병을 다녀왔으며 이것은 무려 54개월 동안 전쟁터에 파병된 것이며 1,000회 이상의 작전을 수행한 것이다. 2012년부터는 교관으로 있다가 2017년에 상사(MSG) 계급으로 군에서 은퇴하였다. 은퇴 이후에는 택티컬 관련 사업과 정부 관련 일도 하고 각종 할리우드 영화와 TV업계에서도 밀리터리 어드바이저로 활동하고 있다.
자리코 덴만 인터뷰 영상
  • 존 러벨 - 75레인저연대 2대대 소속으로 이라크와 아프간에 합쳐서 5회 전투파병을 다녀왔다. 현재는 'Warrior Poet Society'라는 택티컬 회사를 설립하고 전술사격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존 러벨의 1인 CQB영상
  • 니콜라스 어빙 - 2004년부터 2010년까지 6년 동안 75레인저연대 3대대에서 레인저 저격수로 복무하였다. 이 시절 100일 동안 33명의 적을 저격으로 사살하는 기록을 세웠다. 전역 이후에는 엔터테인먼트 업계로 진출해서 존 시나가 주연한 리얼리티 쇼 'American Gritt'에 밀리터리 코치로 출연하기도 하였고 자신의 군생활을 회고하는 책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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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어빙의 모습(사진 앞줄 오른쪽)
  • 조셉 카팍지우스키 - 2001년에 입대해서 75레인저연대의 3대대, 특수작전대대, 연대본부중대에서 복무하였다. 5번째 전투파병이었던 2005년 10월 3일, 이라크 북부지역에서 적의 수류탄 공격에 의해 오른쪽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결국 42번의 수술 끝에 오른쪽 다리의 무릎 아래 부분을 절단하게 되고 만다. 하지만 병원에서의 장기간 재활치료를 통해 회복하고 의족을 착용하고 2007년에 체력 테스트를 통과한 뒤 레인저 3대대에 원대 복귀한다. 복귀 이후에도 아프간에 무려 6차례 나 더 전투파병을 다녀왔으며 (총 11회 전투 파병 - 부상 전 5회, 복귀 후 6회) 20개가 넘는 훈장을 받았다. 13년간 레인저연대에서 복무하고 상사(MSG) 계급으로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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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팍지우스키 상사
  • 브랜든 터커 - 2011년부터 2018년까지 75레인저연대 3대대에서 복무하였다. 전역 한 이듬해에 24시간동안 7,715개의 풀업을 성공하여 기네스 신기록을 세웠다.(이전 최고 기록은 7,60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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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 터커의 모습

8. 미디어에서의 모습


일부 맵에서 등장한다. 미 육군 특전단과 같이 M4A1 소총을 사용할 수 있지만 자유로운 부착물 세팅은 하지 못하고 맵별로 부착물이 고정되어있다.
제2 레인저대대의 존 H. 밀러 대위의 휘하 분대원들로 영화 초반 노르망디 상륙작전 부터 마지막 전투까지 등장한다. 단, 티모시 E. 업햄 기술상병은 제외.[44]
메달 오브 아너 티어 1에서는 레인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실종된 넵튠팀 SEAL 대원들을 구출하러 치누크 헬리콥터를 타고 가던 도중 탈레반의 습격을 받아 추락하지만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기 위해 끝까지 이동하며 도중에 SEAL 대원 두 명과 합류하여 전진한다. SEAL 대원들이 극중 소규모 특수전을 담당한다면 레인저는 대규모 보병전투를 다룬다.
논픽션 책과, 재미를 위해 약간 수정을 가한 영화로 나와 있다. 영화쪽이 좀 더 유명하다. 조금씩 장비가 일반 미 육군부대와 달라지고 있는 과도기적 시기의 레인저연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리아드나 개척 당시 레인저 부대원 출신들이 미국 개척 보안 부대의 주를 이루었고, 이들이 이후 US아리아드나 레인저대의 전신이 된다.
주인공인 카메론 포(니콜라스 케이지)가 전역한 레인저 대원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서부 유럽에서 싸우는 모습으로 나온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어있다가 미 본토가 공격 당하자 미국으로 교대 배치되어 주방위군과 함께 워싱턴, 버지니아에 강하한 대규모의 러시아 공수군과 처절하게 싸워나가는 레인저연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나리오에서 태스크 포스 141이 다국적 연합 특수부대의 소규모의 극비 특수전 임무를 보여준다면 레인저는 대규모 보병전투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갑자기 핵미사일에 의한 EMP를 맞았지만 러시아 공수군을 패퇴시키면서 워싱턴, 버지니아 공방전 전투에서 가까스로 주방위군과 함께 승리하게 된다.
멀티 플레이에서는 몇 가지 맵에서 플레이 가능한 진영으로 나오며 맵 시작시 레인저들의 구호인 "Rangers Lead the way!!"[45]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아주 잠깐 나온다. '검은 화요일' 미션 브리핑 당시 제75 레인저 연대와 해병 제 2사단이 뉴욕 북부에서 공세를 시작하고 있다고 나오며 델타팀을 스트라이커 장갑차로 지원한다. 독일 함부르크 부통령 구출 작전때는 해병 전차 부대와 함께 부통령의 호송대 차량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베를린에선 알레나 보르셰브스키[46]를 구출하기위해 독일 연방군레오파르트2 3대와 함께 시가지를 뚫다가 건물이 무너지며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작중 ACU 전투복을 입고 M4SCAR-L로 무장한 엑스트라로 나오는 친구들이 그들이다.
미국 진영의 기본 보병유닛으로 나온다.
중반부에 레인저 대원들이 스몰빌로 M4A1으로 무장한 채 500MD를 타고 슈퍼맨과 크립톤 인들을 공격하러 나서면서, 파오라를 발견하고 소총을 갈겨대지만 역으로 파오라에게 광속의 속도로 얻어맞아 단체로 끔살당한다.
원작 TV시리즈에서는 그린베레라는 설정이지만, 극장판에서는 레인저 연대 소속이라는 설정으로 변경됐다.
2008년작에 나오는 주인공 마이클 나이트가 레인저 출신이다.

9. 관련 문서




[1] 라틴어이다.[2] 2차대전 당시 오마하 해변에 상륙하여, 히틀러의 전기톱 때문에 큰 피해를 보면서도 결국 임무를 달성하는 저력을 보였다. 포앙트 듀혹(point du hoc)과 오마하 해변의 두 곳에 상륙했다. 원래는 일부가 포앙트 듀혹의 포대를 처리하면, 나머지 레인저들이 같은 곳에 상륙할 예정이였지만, 포앙트 듀혹의 작전이 지연되면서 투입되지 않은 나머지 레인저들이 오마하에 상륙했다. 이때 포앙트 듀혹에 투입된 레인저의 최우선 목표는 포의 파괴였다. 이 지역의 포들이 유타와 오마하 해변을 공격 가능했던 탓에 이를 제거해야 했다. 상륙 직전 날씨가 안 좋아 정찰을 못하는 사이 포앙트 듀혹에 배치된 포들은 철거를 위해 뒤로 빼두고, 일부 병력만 남겨둔 상태였다. 그것도 모자라 상륙 소식을 들은 독일군이 다시 몰려왔다. 하지만 점령할 필요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3] 현대엔 forest ranger와 park ranger로 불린다.[4] 굳이 자국어로 번역 안 하고 그냥 원어 그대로 레인저라고 쓰는 경우도 많긴 하다.[5] 이런 의미 변화의 유사한 예로 유럽의 '척탄병'이 있다. 척탄병이란건 원래는 적 가까이 다가가 폭탄을 투척하는 임무의 병사라는 뜻이었으나, 멀리 잘 던지려면 건장하고 신체 능력이 좋아야 하고, 적 가까이까지 다가가면서 폭발물을 다루려면 용맹해야 하므로 이런 강인하고 용감함 쪽의 특성이 더 강조되어서 나중엔 원래의 단어뜻이 지녔던 폭탄 투척이라는 임무와 무관하게 그냥 용맹한 정예병을 두루 가리키는 단어로 널리 쓰이게 된 바 있다.[6] 재미있는 사실은 2000년대로 넘어와 아프간,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6년에 영국 육군 측에서 미군의 75레인저연대를 본떠서 만든 경보병 스타일의 특수작전 부대인 특수작전 지원단(SFSG)의 초기 명칭은 영국판 레인저(Ranger) 부대로 명명하려 했다는 점.[7] 제6615 레인저연대(6615th Ranger Force)는 3개의 레인저대대(제1, 제3, 제4) 이외에도 미 육군 제509공수대대(509th Parachute Infantry Battalion)를 비롯한 기타 부대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8]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등장해서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부대도 제2레인저대대이다.[9]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942년 미국 콜로라도주 캠프 카슨에서 창설된 제98 포병대대(98th Field Artillery Battalion)가 하와이에서 1년이 넘는 레인저 훈련(Ranger Training)을 거쳐서 1944년 7월에 제6레인저 대대(6th Ranger Battalion)로 변경되었다. 레인저 대대로 변경되면서 기존 포병대원들의 방출과 신규 대원 유입을 통해 이전의 1,000명 규모에서 500명 규모로 줄어들며 정예 레인저 대원들만 남게 되었다.[10] 1951년 3월 7일~4월 4일 동안 이루어진 작전으로 당시 중공군에 의해 빼앗긴 상태였던 서울의 재탈환 작전.[11] 이후 제25보병사단에는 미국 본토에서 훈련을 마치고 한국에 첫 파병된 '제5레인저 중대(5th Ranger Company)'가 새롭게 배속된다. 밑에서 설명.[12] 3번째로 높은 훈장[13] 복무 중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은 군인에게 수여. 제2레인저 중대에서는 레인저 대원 1명이 혼자서 2개나 3개의 퍼플하트를 받은 경우도 많았음.[14] '보병' 자를 빼고, 이름 맨 뒤에 괄호 안에 있던 Ranger를 앞으로 당겨서 원래 '보병'이 있던 위치에 넣었다.[15] '메릴의 약탈자들(Merrill's Marauders)'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으며 그 유명한 무타구치 렌야가 지휘하던 인도-버마 전선에서 활동했던 부대다. 자세한 내용은 임팔 작전 참조. 또한 1962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이 된 바 있다.[16] 더 정확히 말하면 후술하듯이 장거리수색대에서 레인저로 이름이 바뀐[17] 2차 세계대전 때나 한국전쟁 때에 만들어졌다가 해체됐던 그 레인저 대대/중대들도 그보다 훨씬 전에 존재했었던 각종 레인저 부대들에서 레인저라는 이름을 따왔지만 실질적인 관련성은 없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18] 정확히 말하면 수색중대에서 레인저중대로 이름이 바뀐[19] 미국은 역사가 짧은 국가여서 그런지 오래된 전통을 무척 소중히 여겨서, 새로 생긴 것도 어떻게든 과거에 존재했던 것과 연결지으며 역사를 최대한 옛날로 넓히려는 경향이 있다. 미해병대가 2006년에 만든 MARSOC 특수작전연대도 역사가 짧은 신생부대라는 인식이 마음에 걸렸는지, 2014년도에 무려 2차 세계대전 때 해체된 부대인 해병대 레이더스의 이름을 따와서 부대명을 레이더연대로 개칭했고 심지어 부대마크도 거의 비슷하게 부활시켰다.[20] US Army 75th Infantry Regiment (Ranger)[21] 그리고 그 2차 세계대전 때의 레인저 대대는 1600~1700년대부터 있었던 각종 레인저 부대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22] 월남전 이전에 존재했던 LRRP 중대는 오직 동서독 국경지대를 순찰하기 위해 존재했었다. 그 시절엔 동서독 국경 경비가 허술해서 간첩도 많이 넘어오고 지뢰, 도발 등 각종 위험요소가 많았었다.[23] 5th Special Forces Group (Airborne)[24] RECONnaissance and commanDO에서 대문자 부분을 딴 약칭[25] 한국의 파월 맹호/백마 수색대도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었다[26] 참고로 당시 베트남에 파병되었던 대한민국 특전사 부사관과 장교들 중 일부도 이 교육을 수료한 후 파월 맹호/백마 수색중대에 간부가 되어 교육내용을 전수하고 수색/정찰 작전을 주도하였다. 링크 사진 속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의 가슴을 보면 역삼각형 마크가 있는데 미군 Recondo 과정 수료자임을 인증하는 흉장이다.[27] FFV(Field Force Vietnam)는 주월미군의 군단급 사령부이다.[28] 노르웨이판 ARSOCFSK는 2차대전 당시 활약하고 사라진 레지스탕스 특수부대 Norwegian Independent Company 1를 시조로 간주 중이다. 한국도 태권도의 뿌리가 삼국시대 벽화에 나오는 무술이라고 선전하기도 했었는데, 이것도 다 위와 일맥상통한 취지의 사례이다.[29] Long Range Surveillance Company[30] Long Range Surveillance Detachment[31] 쉽게 말해서 미 해병대의 각 사단마다 존재하는 사단 수색대대(디비젼리콘)과 흡사하다.[32] 미 해병대 각 함대(FMF)에 소속되어 함대사령관 및 해병대(Corps) 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함대수색대(포스리콘)과 흡사하다고 하겠다.[33] 82공수사단 LRSU의 경우는 진로개척 소대 (레인저) (Pathfinder Platoon (Ranger))로 명칭을 변경하여 존속.[34] 연합훈련 뿐 아니라 타부대 교육과정에 위탁 파견보내는 교류도 한다. 예를들어 장거리정찰대(LRSU)의 해상팀 대원들은 육군 특전단(그린베레)의 컴뱃 스쿠버다이버 교육이나 미 해병대 수색교육을 위탁 받고 오기도 한다. 유명 전술사격 강사인 Tu lam이 처음에 미 육군에 입대해서 제82공수사단 장거리정찰분견대(LRSD) 해상팀에서 복무하던 시절 미 해병대 수색 교육을 수료한 사진이 그의 SNS에 올라와있다.[35] Ranger Antitank Weapons System(RAWS)[36] United States Army Training and Doctrine Command[37] Airborne and Ranger Training Brigade[38] USSOCOM[39] USASOC[40] 훈련을 완전히 마치고 배치받는 네이비 씰이나 그린베레 등에 비해 좀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미국은 돈도 많고 실전 투입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저렇게 하는 거고(...) 세계적으로 보면 이런 시스템이 보편적이다. 한국은 물론 타국의 특수부대들 역시 기초적인 특수전 훈련과 선발만 마치고 부대에서 복무 중에 따로 추가적인 훈련을 받는다.[41] 물론 헬리본, 공수 교육, 해상 침투 훈련 등 육, 해, 공의 침투 훈련은 기본적으로 받는다.[42] 레인저들은 RASP 때부터 소규모 분대 단위의 임무수행에 대한 훈련을 시작하여 독도법 등지의 생존술도 익힌다.[43] Regimental Headquarters and Headquarters Company.[44] 업햄 상병은 원래 29사단 소속 측량병으로 독일어프랑스어 통역을 위해 차출되었다. 차출 당시 프랑스어는 억양이 서툴지만 독일어는 아주 유창하다고 말했다. 물론 그 전에 대대 내부에서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병력을 찾으려 했지만 모두 전사해서 밀러 대위가 인접부대를 찾은 것이다.[45] Team Player 미션에서 셰퍼드 중장이 주인공을 일으켜 세우면서 외치기도 한다.[46] 작중 러시아 대통령의 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