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성씨)

 


1. 敦
2. 頓
3. 인물


1. 敦


본관은 청주(敦), 1985년 조사 결과 1가구 4명, 2000년 조사 결과 3가구 20명이 확인되었다.

2. 頓


본관이 목천(木川)으로, 1930년 국세조사 당시 각각 평안남도 대동군강서군에 31가구, 황해도 안악군황주군에서 5가구가 집계되었으며, 대부분이 38도선 이북 지역에서 거주하였다. 2019년 기준 국내 돈씨 인구는 115명
시조를 을지문덕, 중시조를 을지수로 두고있는 성씨이다.
돈씨가보에 의하면, 을지(乙支)씨는 원래는 을(乙)씨였는데, 고구려 을지문덕 때에 ‘을지’씨로 바뀌었다가 후에 ‘돈씨(頓氏)’로 변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1930년에 간행된 ‘별건곤’ 34호의 ‘을지문덕묘참배기’에도 실려 있는데, 을지문덕의 16세 후손 을지수가 동생인 을지달, 을지원 등과 함께 고려 인종 때 일어난 묘청의 난에 의병장으로 서경을 되찾는데 큰 공을 세워 돈산백(頓山伯)에 봉해졌고 돈(頓)씨를 사성 받았다고 한다.
평양직할시 평남선 대평역(大平驛) 근방에 을지묘라고 전해 오는 큰 고분이 있는 이 인근에 돈뫼(頓山)라 하는 동네가 있고 이 곳에 을지문덕 장군의 후손들이라는 돈씨 집안 30~40호 가량이 있어 이 일대가 돈산군(頓山君)의 봉토로 여겨지고 있다. 을지수의 증손 돈예숭이 목천으로 이주해 살면서 본관을 목천으로 하였다고 한다. 이는 위의 '을지문덕 묘 참배기'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목천 돈씨에는 재밌는 설화가 하나 전해져 내려오는데, 본래 돈씨 집안은 백제 유민으로 고려에 누차 반기를 들어 태조 왕건의 미움을 사 돼지를 뜻하는 ‘돈(豚)’씨 성이 됐다가 뒤에 복성됐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던 당시 목천 지방의 백제 유민들이 자주 소란을 피워 그 지방 주민들에게 돈(豚)·상(像·코끼리)·우(牛·소)·장(獐·노루) 등 짐승 이름을 성으로 삼게 했다. 이들 성은 후에 (頓)·(尙)·(于)·(張)씨로 한자를 바꿨다고 한다.

3. 인물


  • 을지문덕[1]
  • 돈정신(頓貞臣)[2]
  • 돈지덕(頓智德) 축구선수(은퇴)
  • 돈종권(頓宗權) - 3.1 운동에 참여한 독립유공자[1]

[1]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2] 평양 출신의 임진왜란때 활약했던 조방장(助防將)이다. 평양 10장사중 한명이었다고 하며, 1593년 1월 평양성 탈환 도중 장렬히 전사하였다.[1] 1882년 ~ ?. 평안남도 대동군 대보면 대평외리 출신. 1919년 3월 경 평남 대동군 대보면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6개월의 징역형을 처분받았음. 2013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