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동(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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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행정동 및 법정동. 지하철 성신여대입구역을 중심으로 서북편, 동북편, 동남편을 차지하고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동소문동과 삼선동, 남동쪽으로는 안암동, 북쪽으로는 돈암동과 접해 있다. '동선동'이라는 이름은 동소문동(東小門洞)의 '동' 자와 삼선동(三仙洞)의 '선' 자를 따서 만들었다.
현재 동선동의 면적은 0.72㎢이며, 인구는 '''15,519명''', 세대수는 '''9,327명'''[1] 이다.
2. 역사
애초에 경성 밖에서 그 동쪽에 있는 고개 앞까지를 아우르는 지역이었다.
일제시대부터 이곳의 아리랑고개는 유명하였다. 이 고갯길은 원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었는데, 고개 이름에 대한 유래는 2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1935년 일본인들이 고급 요정을 꾸민 다음 이곳을 알리기 위해 민요 아리랑의 이름을 따서 고개 위에 푯말을 세웠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이곳에서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항거하고 민족정신을 형상화한 춘사 나운규 선생의 영화 아리랑을 촬영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졌다고 하는 설이다. 둘 중 어느 것이 정설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최근 성북구청에서 매년 아리랑축제를 개최하고 영화의 거리로 특화(特化) 시키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1963년 돈암동 지역에 인구가 급증하면서, 돈암동,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으로 4분될 때 돈암동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원래의 돈암동에서 가장 가운데 부분을 차지하였다.
1960년대 말에는 이곳 고갯길에 점집이 많이 들어섰다. 1966년 시각장애인 역술인인 이도병이 미아리고개 밑 굴다리 아래에 노상 점집을 차린 게 시작이었다. 이도병의 점집엔 손님이 몰렸고, 이내 큰 성공을 거뒀다. 이도병의 ‘성공신화’가 알려지며 시각장애인 역술인이 이곳에 하나 둘 모여들었다. 남산 기슭에 모여 살다 재개발로 터전을 잃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미아리에 용한 점쟁이가 많다는 소문이 퍼지며 1980~90년대에는 이곳 점집들이 큰 호황을 누렸다. 동선동 일대에 차려진 점집만 80여 개나 되었을 정도였다. 물론 2000년대 이후에는 인터넷 점술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점집은 30여 개로 쪼그라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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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까지 한성대입구와 성신여대입구 사이의 동소문로에는 전차가 운행되었다. 물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무허가 판자촌이 즐비했고, 성북천은 악취로 유명했다. 이 지역은 서울 시가지의 마지막으로 통했다.그러나 1980년대에 무허가 판자촌이 철거되고,[2] 1985년에 지하철 4호선이 뚫리면서 성신여대입구역이 개통되어 이 지역의 교통과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성신여자대학교가 종합대학으로 개편되고, 정원이 대폭 증원되면서, 성신여대입구가 성북구의 대표적인 상권으로 자리잡은 것도 바로 이때부터이다. 패션 및 뷰티 관련 상점과 파스타 전문점 등 각종 맛집들이 이곳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2017년 9월에는 서울 경전철 우이신설선이 개통되었다.
3.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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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으로, 특히 남동쪽의 동선동 1가는 이른바 성신여대 입구라 불리는 곳이다. 특히 동선동 1가를 중앙으로 가로지르는 '로데오거리'를 중심으로 대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온갖 화장품점, 음식점, 오락실 등이 번창해 있다. 명실공히 성북구 최대의 상권이며, 종로구 혜화동의 대학로 상권에도 크게 뒤지지 않을 만큼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유명한 가게로는 태극당 빵집이 있고, 메종드루즈, 놈파스타, 본크레페, 쓰리로보스, 마늘과올리브 등이 있다. 홍대, 신촌, 대학로, 건대 등에 비하면 교통 및 접근성은 그리 좋지 못한 편이지만, 여학생과 연인들이 놀기 좋은 곳으로 특화되어 있어[3] 10대~20대 젊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분위기가 활기차다.
남쪽의 동선동 2가는 1가에 비해 한적한 곳으로 돈암동성당과 몇몇 맛집들이 위치해 있다. 동선동 1가와 2가의 경계선인 보문로34길을 따라 동쪽으로 쭈욱 가면 성신여대앞 5거리가 나오고, 바로 그 동쪽 편에 성신여자대학교 정문이 보인다. 성신여대생들은 정문 이외의 다른 출구를 거의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하교 시간에 이곳에 있으면 어마어마한 수의 여학생들이 내려오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동선동 2가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안감내길이 성북천을 따라 지나가고 있다. 안감내는 성북천 또는 안감천의 옛 이름이다. 현재 성북천은 깨끗하게 정비가 되어 있으며, 개천에는 오리들이 노닐고 있다. 천변 양쪽으로는 자전거도로 및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동선동 3가는 평탄한 저지대의 주택가이며, 동소문로 큰길을 사이에 두고 동선동 4가와 마주보고 있다. 이곳 동소문로에는 온갖 점집들이 운집해 있는데, 흔히 이곳을 ‘미아리 점성촌(占星村)’이라 일컫는다. 지금도 택시를 타고 '점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하면, 택시 운전사 아저씨들이 알아서 이곳으로 데려다 준다고 한다. 미아리 점성촌은 ‘서울 속 미래유산 1000선’ 후보에도 올라 있다. 이곳에서 점집을 하는 시각장애인들은 모두 역술을 공부한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다고 한다.
동선동 4가 역시 밥집, 고깃집이 많은 곳이며, 북동쪽의 동소문로, 북쪽의 아리랑로를 따라 상가가 발달되어 있다. 아리랑로의 경우 베스트웨스턴 아리랑힐 호텔과 MG 새마을금고 건물이 이곳에 완공되었다.
동선동 4가에서 쭈욱 더 북쪽으로 아리랑로를 따라 올라가면 이불집들과 각종 인테리어점들이 많이 있다. 아리랑로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정릉동이다.
4. 주요 시설
4.1. 교육
4.1.1. 대학교
4.2. 상업시설
5. 교통
5.1. 버스
5.1.1. 간선
5.1.2. 지선
5.1.3. 공항
5.1.4. 마을
6. 기타
- 조각가 권진규의 작업실 '권진규 아틀리에'가 2004년에 국가등록문화재 제134호로 등록되었다.
- 소설가 박완서가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1950년대 박완서와 그 가족들은 안감내(성북천) 주변(현재는 돈암동성당 뒷길 골목)의 한옥집에서 살았는데, 그때의 이야기는 박완서의 소설 '그 남자네 집'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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