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다 항공 004편 추락 사고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91년 5월 26일
'''유형'''
'''명령되지 않은 엔진 역분사 작동'''
'''발생 위치'''
태국 수판부리 주 푸 토에이 국립공원
'''탑승인원'''
승객: 213명
승무원: 10명
'''사망자'''
223명 '''전원 사망'''
'''기종'''
Boeing 767-3Z9(ER)
'''항공사'''
라우다 항공
'''기체 등록번호'''
OE-LAV
'''출발지'''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
'''경유지'''
태국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
'''도착지'''
오스트리아 빈 국제공항
1. 개요
2. 사고기
3. 사고 과정
3.1. 재앙의 시작
3.2. 제멋대로 작동한 역추진 장치
3.3. 사고 원인
4. 사고 이후
5. 유사 사고

[image]
1990년 7월 19일 라스 팔마스 그란 카나리아 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사고기.
Lauda Air Flight 004 Crash
[clearfix]

1. 개요


1991년 5월 26일 태국 수판부리 주 푸 토에이 국립공원에서 일어난 여객기 추락사고로, 오스트리아저가 항공사인 라우다 항공[1]영국령 홍콩을 출발하여 태국 방콕을 경유, 오스트리아 으로 향하던 장거리 정기 항공편으로 운항하던 보잉 767-300ER 항공기가 방콕을 이륙하여 상승 중 갑작스러운 엔진의 역추진 장치 작동으로 실속, 공중 분해되어 태국 정글 지대에 추락한 사고이다. 이 사고로 223명이 모두 사망했다.
이 사고는 보잉 767의 3번째 동체손실 사고이자 사망자 수로만 따지자면 현재까지 일어난 보잉 767의 사고 중 최악의 사고이며, 태국에서 일어난 항공 사고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이기도 하다.

2. 사고기



사고 11개월 전 촬영된 사고기.[2][3]
사고기는 1989년 10월 16일 보잉공장에서 제작이 완료되어 라우다 항공에 인계된 등록번호 OE-LAV의 보잉 767 항공기로,[4] '''모차르트(Mozart)'''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다.
사고기는 보잉 767 계열 중에서도 동체 길이와 항속거리가 길어진 기종인 B767-300ER 형식의 기종이었다. 사고기에는 프랫&휘트니사의 PW4060 터보팬 엔진 2기(추력 60,000 파운드)가 장착되어 있었다. 사고 당시 기령은 1년 8개월밖에 되지 않은 새 비행기였다.

3. 사고 과정


사고기는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을 이륙하여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에 중간 기착 할 때까지는 전혀 문제없는 비행을 하고 있었다. 사고 당시 사고기에는 미국인 기장 토머스 웰치(Thomas.J Welch), 오스트리아인 부기장 조세프 터너(Josef Thurner)가 조종을 맡고 있었다.

3.1. 재앙의 시작


사고기는 11시 02분, 승객 213명과 승무원 10명을 태우고 중간 기착지인 태국 방콕 돈므앙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최종 목적지인 빈 국제공항으로 가기 위해 이륙 후 순항고도를 향해 상승 절차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이륙한 지 5분 45초가 지난 11시 7분 경, 비행 시스템의 고장으로 1번 엔진[5]의 역추진 장치가 작동될 가능성이 있다는 노란 표시등의 경고(REV lSLN)가 나오기 시작한다.
조종사들은 계기 오작동을 의심하고 보잉 767기의 항공기 매뉴얼을 조사했다. 조종사들은 위 문제에 대해 4분 30초 동안 의논하였으며, 항공기의 오동작 체크리스트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지 '''전혀 쓰여있지도 않았다.''' 즉 보잉이 B767을 설계할때부터 생각도 못하고 당시까지 사례가 한번도 없었던 웬 듣도보도못한 오류코드가 뜬금없이 나온 것이었다.
결국 조종사들은 목적지에 착륙한 후 정상적으로 역추진장치가 작동될 것이라 결정짓고,[6] 결국 시스템이 울린 경고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3.2. 제멋대로 작동한 역추진 장치


[7]

그러나 그 경고는 '''그냥 울린 경고가 아니었다.''' 시스템이 경고했던 대로, 정말로 1번 엔진의 역추진 장치가 제멋대로 작동되었고,[8] 역분사된 공기가 왼쪽 주 날개의 공기흐름을 완전히 망가뜨려 놓으며 양 날개의 양력 불균형을 야기시켰고,[9][10] 기체는 순식간에 양력을 잃어버려 실속하고 통제 불능의 급강하를 시작하게 된다. 또한 엔진 역추진 장치가 오작동될 당시 조종실 음성 녹음장치에는 '''"아, 역추진 장치가 가동되었어...(Ah, reverser's developed.)"'''라는 부기장의 마지막 음성과 역추진장치의 작동음, 동시에 기장의 '''"주여!(Jesus christ!)"''' 음성이 녹음되었다. 이때의 사고기의 고도는 24700피트(7528.6 m). 엔진은 역분사 장치 작동 직전까지 상승 출력을 내고 있었다.
거의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급강하한 사고기는 조종사들의 대처[11]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속도로 인한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수직꼬리날개, 엘리베이터 등이 떨어져나가며 결국 10000피트(3048 m) 이하의 상공에서 공중분해되었다. 같은 시각 블랙박스에서도 기체가 급강하하며 온갖 진동음이 함께 녹음되다가 기체가 공중분해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굉음을 마지막으로 녹음이 중지되었다. 공중분해된 사고기의 동체와 잔해들은 태국-미얀마 국경지대 정글로 광범위하게 흩뿌려졌으며, 형체도 없이 파괴되었다. 탑승했던 승객, 승무원 223명은 전원 사망했다.[12]

3.3. 사고 원인



사고 직후 태국으로 가서 사고 조사에 참여했었던 니키 라우다와의 인터뷰.
갑자기 이륙한지 얼마 안 된 여객기가 급강하하며 추락했으니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사고 현장 관리가 미비하여 민간인들이 추락한 비행기에서 나온 유류품[13]들을 멋대로 훔쳐가기도 했다. 그래서 사고 조사에 필요한 증거품 확보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사고의 원인이 폭탄테러일 것이라 추정하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으나, CVR의 내용으로 인해 빠르게 사장되었다.[14]
당초 보잉은 설계 결함으로 일어난 사고가 아닐 것이라 주장했지만, 조종석 음성 녹음 장치 조사를 통해서 멀쩡히 날아가던 항공기가 제멋대로 작동한 엔진 역추진장치 오작동에 의해 순식간에 급강하를 시작했다는 사실 또한 밝혀짐에 따라, '''보잉사의 설계 결함'''쪽으로 의견이 기울어졌다.
두 기의 블랙박스 중에서, 조종석 음성 녹음장치(CVR)는 수습에 성공했고, 내용 추출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비행기록장치(FDR)는 추락 현장에 발생한 격렬한 화재로 인하여 내부 기록 테이프가 파괴되어 내용 추출을 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엔진의 전기적 제어장치[15]나 EICAS[16]같은 항공 전자장비를 수습하여 이 전자장비들 속에 들어있던 비휘발성 메모리 부품을 통하여 사고 당시 사고기의 여러 상태에 대한 파편화된 정보를 뽑아낼 수는 있었다.
그러나 여러 전자장비들을 통해서 모은 정보를 종합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중요한 자료인 FDR이 소실되어 버렸기에 결국 역추진장치가 스스로 작동한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알아내지 못했다. 태국 정부의 사고조사위원회는 가능한 원인을 비행 경로 제어의 산실로 이어진 좌측 엔진 역추진장치의 기내 전개 불량으로 판단하였다.
반면 보잉사 엔지니어들은 수많은 가능성을 열어놓고 온갖 실험을 해 본 결과[17] 밸브 스위치에 연결된 전선 2개가 동시에 합선되었을 때 역추진장치가 멋대로 동작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조종사들이 REV ISLN 경고가 점멸하듯이 나타나는 상황을 논의했고, 이는 합선이 일어났을 때의 증상과 일치하므로 사고 원인은 '''밸브 스위치의 전선 합선'''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추락사고로 인해 모든 전선이 불타버렸기 때문에 합선이 일어난 원인까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결함과 별개로 지상에서 이륙 전 항공기가 분명히 경고를 보냈기 때문에 조종사 과실이 없다고 볼수는 없다. 컴퓨터는 분명히 기체에 이상이 있다는 경고를 띄웠고, 조종사들이 그것을 무시한것이기 때문이다.

4. 사고 이후


'''당시 사고기가 추락했던 현장의 오늘날 모습.'''[18]
보잉은 인증시험을 받는 과정에서 시험을 통해 비행중에 역추진장치가 멋대로 동작하더라도 조종사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비행을 할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이 때 계측된 양력손실은 10% 수준이었으나 실제 시험비행을 한 고도가 10,000 피트에 불과하여 실제 사고가 난 고도는 더 높아서 그보다 더 많은 양력손실로 비행제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판명됐다. 또한 이러한 역추진장치 오작동으로 인한 위험성은 역추진 방식의 변화[19]를 고려하지 않고 있었기에 재실험이 이뤄졌고, 대수롭지 않은 상황이 아닌 중대한 긴급상황으로 재평가[20]됐으며 조종사들을 위한 매뉴얼 역시 수정됐다.
전선의 합선으로 의도치 않게 역추진장치가 동작한 것은 보잉의 명백한 설계결함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사고였고, 이후 비행기들은 기계식 장치를 추가하여 비행중에 역추진 장치가 작동되지 않도록 수정하였다. 참조영상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보잉 737 MAX 결함사태때 해외에서는 과거 보잉 737 러더 듀얼서보벨브 결함사태와 같이 간간히 회자되기도 했다. 설계결함 때문에 일어난 사고들인데다 권고사항을 발표할 때 보잉이 발악하며 결함을 인정 안하다가 결국 관계당국들이 협박에 가깝게 얘기를 하고 나서야 인정한 것까지 똑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NGC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 이 사고를 방영할때 생전 니키 라우다 본인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조사때 보잉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조사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모습 때문에 크게 분노하기도 했다.
223명이 사망하는 대참사를 겪은 라우다 항공은 잠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직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을뿐만 아니라 보잉의 과실이 인정될때까지 짧지않은 시간이 걸렸고 이는 항공사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졌다. 또한 당시엔 광동체기를 많이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767 한대를 잃는것으로 회사 물동량의 1/4을 상실했다. 하지만 결국 사세를 회복하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이후로도 주력 중장거리 기재로서 767을 꾸준히 운용했으며, 이후로는 장거리 대형기인 보잉 777 까지 보유, 운용하기도 하였다.[21] 이후 라우다 항공은 2000년 12월 오스트리아 항공에 인수되었고 한동안 에어캐나다 재즈나 콘도르항공같은 오스트리아항공 예하 레져항공사로 운영되다가 2012년 완전히 오스트리아 항공 소속으로 합병되었다.[22]
이후 니키 라우다는 ‘니키 항공’(Niki Airlines)이라는 저가 항공사를 설립하여 A320으로만 유럽 내 운항을 이어갔지만 에어 베를린에 인수되어 자회사가 되었고 에어 베를린이 파산하자 영국항공 그룹(IAG)에 매각될 뻔했다. 이를 보다 못한 니키 라우다가 직접 라우다모션 항공을 새로 창업하고 니키 항공 소속 기체들을[23] 인수해 2020년 현재까지도 정상 운항하고 있다. 2018년 3월에 라이언에어 홀딩스에 인수되어 자회사가 되었고 회사이름을 라우다로 바꾸었다. 현재는 라이언 에어와 코드쉐어까지 걸어놓고 잘 운항하고 있다.
여담으로 라우다 항공은 당초 1991년 6월부터 서울(김포국제공항) 노선 취항을 앞두고 있었다. 사고 수습과 기재 문제로 취항을 1년간 연기한 뒤 92년 6월에 운항을 개시했으나 저조한 탑승률로 단 3개월만에 단항되었다.[24]

5. 유사 사고



[1] 레이싱 계에서는 유명한 불사조인 니키 라우다가 CEO로 있었던 회사. 현재는 오스트리아 항공에 합병됨.[2] '''썸네일과 영상 30초 경에 이 참사를 불러 일으킨 원인인 첫번째 엔진이 클로즈업이 되어 보인다.'''[3] 영상은 오스트리아 빈 국제공항에서부터 그리스 크레타 섬 이라클리온 국제공항까지의 비행을 담고 있다.[4] 시리얼 넘버 24628/283. 사고기의 총 비행시간은 7429시간이었으며, 총 이착륙 횟수는 1132회였다.[5] 정면에서 봤을 때 우측에 위치한 엔진.[6] 조종석 음성 녹음장치에서는 조종사들이 항공기 경고 계기판에 '''습기가 차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한 내용이 녹음되었다. 사고 당시 조종사들은 아마도 계기판에서만의 오류로만 치부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7] 항공 사고 수사대에서 재연한 사고 시뮬레이션 영상. 항공 사고 수사대의 재연장면 중에서도 제일 끔찍하게 재연된 사고 중 하나이다.[8] 역추진 장치는 항공기가 활주로에 착륙할 때 지면에서 공기를 역분사시켜 기체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장치이다. DC-8같은 특이한 감속 방식을 사용하는 항공기가 아니라면 '''절대로 공중에서는 작동되어서는 안되는 장치이다.'''[9] 사고 조사에서는 제1엔진의 역분사가 가동됐을시에, 제1엔진이 달려있는 날개의 양력은 대략 25% 정도 감소했을 것이라 추정되었다. 보잉사에서는 이전의 풍동실험을 통해서 동일 상황에서의 양력 감소는 10%일 것이라 추정했지만...[10] 항공기에서의 양 날개 간의 양력 불균형은 생각보다 심각한 결과를 야기한다. 암스테르담에서 추락한 엘알 1862편도 엔진이 기체에서 탈락하며 날개의 앞전을 손상시키며 떨어지는 바람에 양 날개 간의 양력 불균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추락했다.[11] 당시 기장은 제멋대로 작동하여 공기를 역분사시키고 있는 제1엔진에 연료 공급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물론 안타깝게도 추락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12] 토머스 웰치 기장의 시신은 공중분해된 조종석 잔해 속에서 여전히 조종석에 착석해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13] 값이 제법 나가는 항공기 탑재용 부품들, 탑승객들의 지갑 등의 유류품.[14] 불과 약 2년 전에 리비아에 의한 팬암 103편 폭파 사건, UTA 772편 폭파 사건 등의 민항기 폭탄 테러가 발생했었다. 물론 니키 라우다는 이런 테러설을 당초부터 신뢰하지 않았다. 이 추측의 연장선으로, 사고기에 태국의 마약 단속에 협력한 UN소속 직원이 탑승중이었으며, 태국의 마약왕이 '''보복조치로 항공기를 테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기도 하였다.[15] Electronic Engine Control. EEC[16] Engine Indications and Crew Alerting System. 조종사들에게 엔진의 종합적인 정보(엔진 내부 회전수, 연료량, 내부 온도 등), 다른 시스템의 경고 상태를 총망라하여 화면에 띄워 알려주는 시스템이다.[17] 767기의 역추진장치 관련 모듈 전체를 가져다놓고 의도적으로 특정 부위에 이물질을 넣거나 망가뜨리는 등 노가다성 작업을 반복했다.[18] 추락현장의 모습은 1분 37초경부터 보여지는데, 항공기의 문짝 등 항공기에서 나온 잔해물들이 완전히 치워지지 않은 것을 볼수 있다.[19] 과거 역추진 장치는 엔진 뒤쪽에 설치된 장치로 역추진하는 방식이었으나, 신형 장비는 엔진 중간 부분이 열리는 형태로 역추진을 하다보니 작용 방식이나 영향특성이 완전히 달랐다.[20] NASA에서 DC-8 기종을 동원하여 엔진 4개 중에 하나의 역추진장치를 고의로 작동시키는 형태로 실험해 본 결과 무려 25%의 양력손실이 계측되었다. 심지어 이 기종은 원래 역추진 장치로 스포일러 역할을 대신하는 항공기인데 이정도였다.[21] 이외엔 보잉 737, A320, CRJ100을 사용했었다.[22] 2007년 까지 모든 광동체기가 오스트리아 항공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매각/퇴역했고 완전히 합병되기 직전까지는 B737만 운항했다.[23] 이 중에는 에어 베를린 소속 기체들도 있었다. 정확히는 유로윙스 등에 팔려가지 않은 기체들을 물려받아 측면 에어베를린 로고만 지우고 운항했다.[24] 대한항공이 이미 모스크바 경유로 비엔나에 취항중(최종 종착지는 취리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