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예트 비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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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예트 비행중대(Lafayette Escadrille)'''
1. 배경
2. 부대 편성
3. 인기



1. 배경


1914년 7월 28일, 한 세르비아 청년이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쏘아 죽이는 사건이 방아쇠가 되어 유럽의 강대국들이 서로에게 전쟁을 선포함에 따라 프랑스 내의 외국인 거주자들은 그들이 선택한 새 국가를 위해서 기꺼이 전쟁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대부분 프랑스 정규군에 입대하기를 원했지만, 프랑스 국적을 지니지 않았던 외국인들의 입장으로 인해 이들이 프랑스군에 입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프랑스 외인부대에 지원하는 것뿐이었다. 1914년 8월 3일, 프랑스와 독일이 서로에게 전쟁을 선포할 당시 파리에 위치한 외인부대의 자원 입대소에는 약 8,000여명의 입대 지원자들이 몰려들었고,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한 후에는 43명의 미국인 자원자들이 외인부대의 일원으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2. 부대 편성


이 시기에 입대한 초기 지원자들은 제2외인연대(2nd Foreign Regiment) 소속으로 배치되어 1914년 10월에 프랑스 북동부에서 벌어진 마른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어서 도착한 두 번째 파견대는 제1외연연대의 일원으로 전방에 배치되었고, 그해 말에는 세 번째 파견대가 전방에 배치되어 프랑스를 위한 전투를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배치된 외인부대는 서부전선의 여러 격전지에 투입되었다. 1915년 5월에 프랑스 북부의 아르투아(Artois) 전투에 참가한 외인부대는 부대 인원의 2/3에 해당되는 2,900명이 전사하였고, 11월에는 사상자의 비율이 너무나도 심각한 나머지 하나의 단일 부대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격전지에 살아남은 외인부대의 인원들은 곧 정예화되어 가장 치열한 작전에 투입되기 시작했고, 이처럼 위험한 임무들을 하나씩 완수해나감에 따라 프랑스군 내에서 가장 많은 표창을 받는 정예부대로 거듭나게 된다.
외인부대에서 활약한 수많은 미국인들 중 상당한 수에 해당되는 인원들이 부대 내의 고위 간부로 진급했고 이 인원들 중에는 훗날 라파예트 비행중대의 조종사가 되는 미국인 8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스 장교인 조르주 테노(Georges Thenault: 1887~1948) 대위가 지휘관을 맡았다.
라울 러프베리(Gervais Raoul Victor Lufbery : 1885~1918) - 러프베리 원형진 전술의 창시자로 알려진 에이스
빅터 채프먼(Victor Emmanuel Chapman : 1890~1916) - 미국인 조종사 중에 첫 전사자
버트 홀(Weston Birch "Bert" Hall : 1885~1948)
엘리엇 카우딘(Elliot C. Cowdin)
짐 매코널(James R. McConnell)
노먼 프린스(Norman Prince)
찰스 스위니(Charles Sweeney)
윌리엄 소(William Thaw)
잭 케이시(Jack Casey)
제임스 바크(James Bach)
1914년 10월, 윌리엄 소는 동료인 제임스 바크, 버트 홀과 함께 프랑스 항공대로 파견되는 기회를 얻었으며, 입대 전에 비행사로 활동했던 경험 덕분에 제6비행중대(Escadrille D.6)로 배치되어 후방석에서 기관총을 잡고 관측수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영화 라파예트(Flyboys)는 훗날 홀이 쓴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그 무렵 외인부대에는 키핀 록웰(Kiffin Yates Rockwell : 1892~1916)과 폴 록웰(Paul Rockwell) 형제가 복무하고 있었는데, 위그노 교도의 후손으로 줄곧 프랑스를 동경해오던 키핀 락웰은 8월에 프랑스 총영사에 자신의 형제와 함께 프랑스군에 입대할 것이라는 제의서를 써보내고는, 이에 대한 답장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곧장 프랑스로 건너가기에 이른다. 그리고 8월 7일,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에 도착한 록웰 형제는 곧장 파리로 이동해서 프랑스 외인부대에 자원하는 입대서를 작성하였고, 이 결과 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외인부대에 처음 지원한 43명의 미국인들 중 하나가 되었다. 키핀 록웰은 훗날 라파예트 비행중대에서 가장 먼저 적기를 격추하는 공을 세운다.

3. 인기


흔히들 라파예트 비행중대(Lafayette Escadrille)와 라파예트 항공단(Lafayette Flying Corps)을 혼돈해서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조금 다른 개념이었다. 라파예트 비행중대는 미국인 조종사들로 이루어진 프랑스 공군의 중대급 단일 소부대를 뜻하고, 라파예트 항공단은 프랑스 공군에 자원한 미국인 조종사들을 일컫는 명칭이었다.
라파예트 비행대의 인기가 치솟음에 따라 중대는 더 이상 지원자들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인원이 꽉 차버렸고, 이로 인해서 이후의 지원자들은 각각 프랑스 공군의 다른 비행대에 배치되어서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그러나, 전쟁에 자원한 미국인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이들을 모두 라파예트 항공단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고, 이에 따라 라파예트 비행대의 인원들 또한 라파예트 항공단의 인원에 포함되면서 결과적으로 두 명칭이 혼동되어 쓰이게 된다.
모두 합쳐 267명의 미국인이 프랑스 공군에서 싸웠고, 이들 중에 255명은 조종사였다. 11명은 에이스가 되었고 15명은 적군의 포로로 사로잡혔으며 19명은 상이군인으로 귀국했다. 라파예트 비행단 대원 66명이 전쟁 중에 죽었는데 그중 51명은 전사였다. 이들은 아와 같은 희생을 내면서도 199대의 적기를 격추시키면서 프랑스의 승리에 공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