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외인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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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부대 구성
2.1. 프랑스 주둔
2.2. 해외 주둔
3. 역사
4. 생활상
4.1. 입대 조건
4.2. 입대자의 국적
4.3. 처우
4.4. 진급
4.5. 간부
4.6. 입대 후 훈련
5. 한국인
5.1. 외인부대 출신 한국인
6. 외인부대에 대한 오해들
7. 외인부대는 다 특수부대다?


1. 개요


Légion étrangère(레죵 에트랑제흐). 프랑스 육군 소속의 외인부대. 프랑스군 내의 '''엘리트부대'''이자 '''1순위 해외파병군''' 중 하나이다. 외인부대 내에선 기계화보병, 공수보병, 경보병, 코만도, 전투공병 등 수많은 성격의 부대가 있으나 '''전체적으로 신속전개군 및 충격군(Shock Troops)'''의 성격을 띈다. 산하에 프랑스 특수전사령부 소속으로 특공, 정찰, 흑색 작전 등의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인 코만도도 존재한다. 프랑스인이 아닌 타국인 중 18~40세의 신체 건강한 남성을 모집 대상으로 한다. 여군은 뽑지 않는다.
1831년 당시 프랑스는 식민지인 알제리와의 전쟁으로 혼란한 상태였으며, 유럽 각국에서 몰려온 부랑자, 망명자 등의 유입은 골치 아픈 문제였다.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루이필리프 1세는 외국인 부랑자, 망명자 등을 용병으로 모집하여 전쟁터로 '''치워버린다'''는 방안을 고안해냈다. 거기다 프랑스인들 중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범죄자, 실업자 등도 외인부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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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중인 제2외인공수연대 수중팀 요원들
19세기에 창설된 이후 전세계의 각종 분쟁지역에서 활동하였으며, 최근까지 약 3만 5천여회의 전투를 치르면서 '''외인부대는 우리의 고향'''(''Legio Patria Nostra''), '''명예와 충성'''(''Honneur et Fidélité'')이라는 부대 정신으로 유명해졌다. 또한 프랑스의 '''엘리트 부대'''로서의 입지를 확보하게 되었다. 현재도 프랑스 정부의 명령에 따라 북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의 여러 분쟁지역에서 활약 중이다.
임영훈 저, 외인부대, 우리문학사(1994) 226페이지를 보면 ''"캐피 블랑 수여식에서도 대원들은 프랑스에 대한 명예와 충성을 바치겠다고 선서하고 자랑스러운 캐피 블랑을 쓰게 된다. (중략) 프랑스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그들의 복무수칙인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2012년 기준으로 외인부대의 총 행정 지휘관은 육군 소장(Général de division)이고, 부대의 총 규모는 8천여명 수준이다.
공식 행진곡으로는 Le Boudin이 있다.

2. 부대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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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 전체의 규모는 사단 병력의 규모이지만 외인부대는 지휘계통이 있는 부대가 아니라 하나의 병과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외인부대 사령관은 군령권이 있는 사단장이라기 보다는 공병감이나 군종감처럼 병과감에 가깝다. 외인부대 사령관은 외인부대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없고 인사, 행정 등 군정권만 행사한다. 미 해병대 사령관이 미 해병대에 대해 군정권만 행사하는 것과 유사하다.

2.1. 프랑스 주둔


  • 사령부 - Commandement de la Légion étrangère (COMLE)
  • 훈련소 - Groupement du recrutement de la Légion étrangère (GRLE)
  • 1 외인연대(오바뉴 소재) - 1er régiment étranger (1er RE) 행정부대.
  • 4 외인연대(카스텔노다리 소재) - 4e régiment étranger (4e RE) 교육부대.
  • 1 외인기병연대 - 1er régiment étranger de cavalerie (1er REC) -제6경기갑여단 예하.
  • 2 외인보병연대( 소재) - 2e régiment étranger d’infanterie (2e REI) -제6경기갑여단 예하.
기계화 경보병부대의 성격을 띈다. 산하의 CA(CEA, 정찰지원중대)에 특수전 성격을 띄는 코만도가 존재한다.
  • 1 외인공병연대 - 1er régiment étranger de génie (1er REG) -제6경기갑여단 예하.
충격군의 성격을 띄며 산하의 PCG(DINOPS)팀은 수중파괴공작과 공수군의 특수전 성격을 띄는 코만도다.
  • 2 외인공병연대 - 2e régiment étranger de génie (2e REG) -제27산악보병여단 예하.
충격군의 성격을 띄며 산하의 PCG(DINOPS)팀, GCM팀은 수중파괴공작과 공수군, 산악 특공대의 특수전 임무를 가지는 코만도다. GCM은 프랑스 육군의 GCM 체계에 속해있기 때문에 프랑스 특수전 체계에 의해서 CIRCLE 2의 정식 특수부대로 구분 된다.
  • 2 외인공수연대(코르시카 섬 칼비 소재) - 2e régiment étranger de parachutistes (2e REP)[1] -제11공수여단 예하.
전체적으로 특수전+공수경보병의 성격을 띈다. 산하의 GCP(공수특공대)는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며 종종 프랑스 정보국(DGSE)의 외주를 받아 흑색 작전 또한 수행하는[2] 코만도다. GCP는 프랑스 제 11공수여단의 특수부대 체계이기 때문에 외인부대의 GCP 또한 프랑스 특수전 체계에 의해서 CIRCLE 2의 특수부대로 구분된다.
  • 13 외인반여단- 13e demi-brigade de Légion étrangère (13e DBLE)[3] - 제6경기갑여단 예하.
전반적으로는 기계화보병부대 성격을 띄고있다. 과거엔 해외주둔부대였으나 현재는 프랑스 국내 주둔하고 있다

2.2. 해외 주둔


  • 3 외인보병연대(프랑스령 기아나 주둔) - 3e régiment étranger d’infanterie (3e REI)
  • 마요트 분견대(아프리카 코모로 제도 주둔.) - Détachement de Légion étrangère de Mayotte (DLEM)[4]

3. 역사


프랑스 외인부대는 1831년, 루이필리프가 식민지인 알제리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창설한 용병 5개 대대가 그 시조이며, 이후 루이필리프 시절에 용병에서 정규군으로 편입되었다.
이들은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를 통제하는 역할을 부여받았고, 알제리에 기지를 두고 있었다. 또한 아프리카 외에도 인도차이나의 프랑스 식민지에서 활동하였다.
카메론 전투에서는 65명의 외인부대가 2천명의 멕시코 육군과 싸워 5명만 살아남았다.
전간기에는 모로코에서 리프 전쟁에 참가하기도 했다.

3.1. 제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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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 하킴 전투 당시 프랑스 외인부대
제2차 세계 대전 개전 당시 외인부대는 대부분 해외 식민지에 주둔하였고, 제13외인반여단(13e DBLE)만 유럽에 주둔하고 있었다. 13외인반여단은 프랑스 항복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자유 프랑스군에 합류했고, 식민지에 주둔하던 외인부대는 자유 프랑스군과 비시 프랑스 괴뢰군으로 양분되어 1941년 6월 시리아 레바논 전역에서는 자유 프랑스13외인반여단과 비시 프랑스 6외인보병연대가 다마스쿠스에서 서로 교전하기도 했다.
나치 독일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해외로 빠져나간 이념이 다른 독일인들의 사례도 있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자유 프랑스 소속으로 영국군과 함께 싸운 외인부대원 중 독일계의 비율이 매우 높았다.

3.2.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디엔비엔푸 전투에서는 베트민 측이 대포대공포를 분해해서 산 정상까지 끌고온 뒤 조립해 포격하는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싸웠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항복하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엄청난 희생 끝에 결국 항복하였다.
외인부대 역사상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전쟁이 바로 베트남 전쟁이다. 모두 10,483명이 전사했는데 외인부대 역사상 1만 단위를 넘기는 전사자는 오로지 베트남 전쟁 뿐이었다고 한다. 전사자 중 한국 출신이 3명이 있다고 한다.
포로로 잡힌 프랑스군에 대하여 베트민은 악랄한 대우를 했는데 꼴랑 미숫가루 한줌만 주고 수백km를 걸어가게 했다. 당연히 쓰러지는 사람은 개머리판으로 패줬으며 결국 다 죽어가는 사람은 사살했다. 포로 학대라고 프랑스가 분개했으나 이 전쟁당시 프랑스군이 저지른 학살과 포로 학대를 내세우는 베트민의 반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이 전쟁의 직간접적 원인이 프랑스의 베트남 식민지배 때문이란 걸 생각한다면...
생포된 외인부대원 가운데, 베트남과 같은 공산국가 겸 우방국이었던 동독 지역을 비롯한 현 공산국가 지역들의 출신자에 한정하여 고향에 가는 걸 조건으로 우방국 예우 차원에서 조기 석방시켜주기도 했다. 그래서 동독 출신 및 공산권 출신의 외인부대원 중 몇명이 조기석방되는 경우도 있었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프랑스군 활주로까지 포위되어 항공 탈출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패배가 뻔히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결사항전을 각오한 것을 보면 엄청난 군대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3.3. 알제리 전쟁


우방의 도움으로 2차대전의 승전국에 오른 프랑스 제4공화국은 시대가 바뀌어감에도 식민지에 대한 욕심을 포기못한 채로 인도차이나 전쟁의 패전과 더불어 알제리 전쟁의 늪에 빠져있었다. 알제리 독립군과의 전쟁에서 자행된 각종 학살과 반인륜적인 범죄는 특히 프랑스 공수부대와 외인부대를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국내의 반전 운동과 해외의 비난 여론으로 프랑스 정부는 코너에 몰리고 있었다. 문제는 알제리는 프랑스 영토라는 우파의 압력과 여론도 거셌고 특히 보수적인 프랑스 군부는 알제리를 포기할 경우 공공연한 군사 쿠데타 협박까지 일삼고 있던 상황이였다. 이에 따라 프랑스 4공화국은 무너지고 드골이 다시 정치로 복귀하면서 5공화국이 성립되었다. 드골은 우파와 군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었고 당연히 그들은 드골이 자신들의 뜻에 따라 알제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라고 기대했다. 알제리 전쟁 배경과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
그러나 드골은 군부와 극우파의 뜻대로 알제리의 기약없는 늪에 빠져 가망없는 군사작전을 감행할 생각이 없었다. 가뜩이나 알제리 전쟁으로 프랑스 경제는 피폐해진 상황이였고 어떻게든 알제리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상황이였다. 또한 국내에서 알제리를 둘러싼 우파좌파의 좌우대립은 국민을 분열시킬 정도로 심각했다. 군의 징집에 엄청난 저항이 일어나고 있었고 알제리 내의 프랑스 군의 학살은 해외의 비난 여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1961년에 드골 정부는 알제리 국민의 투표를 통해 프랑스의 일부로 남아서 똑같은 프랑스 국민으로 남던지 아니면 완전한 독립을 하던지 그 선택을 알제리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이에 보수적인 군부에서 엄청난 반발이 있었고, 4명의 최고위급 장군들은 드골을 제거할 군사반란을 계획했다.
프랑스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최고위급 엘리트 강성파 장군들이 군사반란을 계획하는 도중 위기를 감지한 드골 정부에서 주요 전쟁 지휘관들을 속속 해임하거나, 본국이나 유럽으로 발령을 내서 드골에 충성하는 장군들로 하나 둘 자리를 채웠다. 그 결과 군사반란 당시에는 반란군 측은 퇴역 장군이 되었거나 주요 작전사령관이 아닌 상태였다. 당시 주알제리 프랑스군은 47.7만명 규모였는데, 이중 최정예 엘리트 부대인 공수부대 3개 연대가 포섭이 되어서 (당시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 2개 공수사단 중 제1외인공수연대와 14샤쇠르공수연대, 18샤쇠르공수연대 3개 연대만 포섭)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공수부대의 특성상 중화기가 없이 경무장을 한 이들 3개 연대의 전투력은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의 0.6%에 불과한 전력이라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결국 반란 개시 6일만에 반란군은 스스로 항복을 하고, 반란에 가담한 3개 공수연대 장교 114명을 포함한 220명의 장교가 파면되었고, 이후 반란군 색출 작업을 통해 전체 프랑스군 장교의 3%에 해당하는 1,000여명의 장교가 주로 공수부대 장교들을 중심으로 파면되었다.[5]
이 반란사건의 결과 반란에 가담한 장교들이 이후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은 주동자들은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실제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고 대략 평균 징역 15년 정도의 형벌을 받았다. 1968년 68혁명으로 드골정부가 위기에 처하자 보수파를 결집시킬 정치적 목적으로 모두 사면되어 풀려났다. 참고로 이 군사반란 중 사망자는 반란군 측 외인공수연대의 습격에서 무선송신소를 지키다 사망한 병사 한 명이다. 당시 반란에 가담한 프랑스 정규 육군 공수부대인 녹색베레 제1외인공수연대와 붉은베레로 유명한 르파루아 제14, 18샤쇠르공수연대는 반란사건 후 즉시 부대가 해체되었다.
반란군 측에는 군내 사조직인 Organisation armée secrète(OAS) 회원이 많았는데, OAS는 당시 극한으로 치닫던 알제리 전쟁에서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군사작전에 환멸을 느낀 장군들이 알제리 독립군에 대한 탈법, 불법적 보복을 위해 결정한 초법적 암살 테러단체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테러나 독립운동가나 정치인에 대한 암살 테러, 불법 체포 및 구금, 고문 등을 일삼았는데, 알제리 군사반란을 주도한 장군들이 OAS를 창단한 주도세력들이었다. OAS 가담 장교들은 엘리트 공수부대 출신이 많았기 때문에 반란군이 전부 공수부대였고, 반란이 실패한 후에는 일부가 탈영하여, 드골 대통령 암살 등을 시도하다가 구속되는가 하면, 알제리에서 테러를 일삼다가 사형을 당하는 등 여파가 있었다. 임영훈의 ''외인부대''라는 에선 반란 실패 후 외인부대에서 탈영한 유고슬라비아 출신 OAS 회원이 테러를 일삼다가 총살당했다고 사진과 같이 그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다. OAS에 가입한 병사들은 독립군과 토벌군 사이에 점점 격해지는 전쟁 양상 속에서 독립군에 대한 보복, 복수심에서 OAS 장교들의 행동대원으로 가입한 경우가 많았다. OAS의 반란 모의와 테러, 드골 대통령 암살 모의는 유명한 팩션 소설 자칼의 날의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알제리 반란 사건으로 외인부대나 공수부대와 같은 엘리트 지원병 부대의 장교들보다는 징집병 부대 장교들의 충성심이 휠씬 더 크다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되었다.

3.4. 현대


1960년대 콩고 내전에 참가해서 암약을 많이 했다. 외인부대 출신 용병단이 카탕가 반군에 협조해서 아일랜드 유엔 평화유지군과 싸운 자도빌 전투도 있다. 70년대에도 자이르 분란과 내전에 참가를 했고 90년대 재발한 2차 콩고 전쟁에도 외인부대 병사들이 많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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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 말리 내전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투입되었다. 해외파병 병력이 필요할 경우 차출 1순위인 신속전개군에는 프랑스 육군 제6경기갑여단과 제9경기갑해양여단, 제11공수여단, 제27산악보병여단 등이 있는데, 외인부대 병력도 이들 부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파병을 자주 가는 편이다. 파병을 나가면 기본급의 3배에 달하는 수당이 나오고, 진급 점수도 팍팍 쌓이기 때문에, 파병에 대한 선호도는 높다고 한다. 현재도 북아프리카와 아프가니스탄 등의 여러 분쟁지역에서 활동 중이다.

4. 생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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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수급 방식이 모병제이고 수익이 짭짤하고 군장비가 좋다는 점, 훈련의 질이 보장되고 파병을 가서 실전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며 짬밥이 아닌 경력[6]을 따진다[7]는 점을 제외하면 대한민국 국군과 판박이다. 어느 나라 군대나 그렇겠지만, 국군과 판박이라는 것은 체벌과 군기 부분에서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 물론 이는 훈련소에서나 훈련 상황에서의 얘기로, 평소의 분위기와 군기는 비교도 안되게 프리하다. 또한 부대에 따라 다른데, 보통 그러한 불필요한 군기를 잡지 않거나 가혹행위가 덜한 부대가 장비와 훈련의 질 또한 좋은 곳이다. 그러나 해당 장병이 적절한 신체능력과 언어능력을 지녀야 그러한 것이 보장되는 부대로 보내준다. 나약한 신체 + 불어 구사율 0%라면 낙후된 부대에 배치되어 어마어마한 부조리를 겪으며 로망과는 먼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외인부대는 '''훈련의 강도부터가 한국에서 흔히 메이커 부대로 불리는 여러 전방부대와 비견될 정도로 살벌'''해서 신체가 약하다면 입대 훈련을 중도포기하고 나갈 확률이 높다. 외인부대는 아무래도 프랑스인들을 대신해 전쟁에 나가는 외국인 용병부대이기에 때문에 그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당연 왠만한 한국의 정예부대급으로 훈련이 빡쎄다.
특히 예하의 특수부대인 코만도를 가려면 특전사UDT/SEAL와 같은 한국군 내 특수부대를 갈만한 수준은 되어야한다. 지원자의 대부분은 일반인 출신이며, 4개월간의 훈련중 본 대대에서 훈련 소대만 따로 나와서 첫 1달간 훈련을 받는데 농장, 소위 '팜(Farm)'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외곽에 위치한 훈련소에서의 숙식 훈련을 받는 동안은 상당히 고되게 훈련하고 정신, 육체적으로 고생시킨다.[8] 이때 도망가거나 포기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훈련중의 중도 포기는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이걸 통과한 사람은 나머지 3달간 특별한 문제가 있거나 정말 마음이 맞지 않아 그만두는 경우를 제외하면 쭉 자대까지 가게 된다. 최종적으로 자대까지 가는 사람은 지원자의 10% 정도라고 한다.
의무복무기간은 '''5년'''이며 6개월 단위로 연장을 신청할 수 있다. 이 5년은 그 어떠한 사유로도 복무해야만 한다. 정식으로 군번을 부여받고 의무복무기간이 주어진 군인이 탈영했다가 다시 프랑스에 입국해서 체포될 경우 곧바로 군 교도소행이며[9], 만기출소 후에도 잔여 복무기간을 다 채워야 한다. 이런 경우 당연하지만 탈영한 그 계급에서 진급이 막히며 장기복무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본복무기간 기준으로 간부가 되려면 죽다 살아날 만큼 치열한 전투를 겪거나 웬만큼 큰 공훈을 세워야한다. 군공이 없을 경우 간부가 되려면 10년 넘게 걸린다.
2차 대전 직후에는 갈 곳이 없어진 SS독일 국방군 출신 경미한 전범독일인들이 과거를 묻지 않았던 외인부대에 입대했다. 그 외에도 외국인의 신원을 추적할 방법이 없으니 범죄자 등이 입대할 개연성이 당시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선 이 사람이 과거에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출생지 등을 철저히 따져본 다음에 훈련소 입대를 허용한다. 범죄자 등은 인터폴까지 연계한 철저한 신원조사를 거쳐 가려낸다.[10] 이렇게 신원조사를 하는 진짜 이유는 국제수배범이 수배를 피해 도피입대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 신원조사에서 수배범임이 밝혀지면 바로 인터폴에 넘긴다.

4.1. 입대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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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옹 에트랑제 한국어 공식 홈페이지[11]
나이는 생일까지 꼼꼼히 따져서 17살 6개월 부터 39살 6개월까지만 지원자격이 있다. 39살 7개월부터는 얄짤없이 불합격이며 17살 5개월 이하의 연령은 부모 또는 후견인 동의서가 있어야 하며 외교 마찰이 생겨서는 안되기 때문에 대사관 공증까지 받아야 한다. 물론 그것도 14살 0개월 이하일 경우 제한된다.
서류는 자신에게 해당되는 모든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예를 들면 출신 대학교, 예비역의 경우 복무기록, 회사에 다닌 적이 있으면 재직증명서 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모국어는 할 줄 알아야 하며 문맹 역시 결격사유다. 입대하면 프랑스어를 새로 배워야 하는데, 문맹이라 함은 언어구사능력이 전무하기 때문에 여기서 결격사유가 된다.
지병검사가 엄청나게 까다로운데 '''충치도 결격사유'''이다.[12] 결핵을 앓은 적이 있어도 결격사유이다. 단, 안경 착용자는 안경을 지참하면 된다. 모든 종류의 후유증이 존재하는 지병은 결격사유이다. 그 이유인 즉 어디에서든 복무가 가능한 병력을 충원하는 게 이들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남극, 북극부터 아프리카들의 잔혹하기 짝이 없는 적도 부근의 환경, 사막, 같은 환경들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후유증은 없어야 하고 어디서든 부적격해서는 안된다.
입대 시험은 체력측정과 정신검사가 있는데 엄정히 선발해서 뽑는것이니만큼 체력측정 기준이 그래도 있는 편이다. 생각보다는 그다지 빡쎄지 않은데, 이는 '''"훈련소에서 만들어준다."'''라는 개념이 크기 때문이다. 참고로 훈련소의 훈련 강도는 아무래도 프랑스 정규군의 프랑스인을 대신해 파병을 갈 외국인 용병들을 단기에 집중양성할 목적이라 전체적으로 강하고 실전적인 훈련 커리큘럼을 가지고 있다.

  • 턱걸이 - 매회마다 턱이 봉위로 올라가고 팔을 완전히 뻗어야 갯수가 인정된다. 최소 7회 이상해내야 합격선이지만 권장 갯수는 10개이상 이다.[13]
  • 달리기 - 20m왕복달리기(셔틀런)으로 실시한다. 방법은 20미터 트랙을 달리는데 끝까지 간 후 삑 하는 벨소리를 울려 줄 때마다 반대편으로 다시 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진행할 때마다 벨소리의 간격이 짧아지는데, 제때 못 들어오는 인원들을 감독관이 계속 걸러내는 식으로 기록을 재고, 이것을 최소 7구간까지 해낼 수 있어야 된다. 7구간까지 못뛴다면 얄짤없이 짐싸서 집에 가야한다.[14]
  • 수영 - 팬티만 입은 상태에서 25m 수영하는 게 가능할 것. 영법은 아무거나 해도된다. 단, 수영평가는 과락이나 기준점은 없고 수영을 전혀 못하는 맥주병도 통과가 될수있다니 수영은 그냥 달리기나 턱걸이처럼 필수는 아닌듯하고 교양으로는 해놓아야 하는 셈이다.
위 체력테스트중 턱걸이와 달리기는 최소 기준은 그리 높진 않지만 만만하게 보고 준비하지 않으면 얄짤없이 탈락하는 수 있으니 어느정도 운동은 해놓고 가는게 좋다.
그리고 소지품도 굉장히 중요한데 현금은 50유로 이하로 지참할 것을 당부하며 반드시 지참해야 할 물건으로는 티셔츠, 반바지, 수건, 팬티, 양말, 세면도구, 운동화 정도가 있는 반면 지참하면 안되는 물건으로는 단검 등 모든 무기 및 모든 열쇠가 있는데 지참하면 안 되는 물건을 지참하면 입대를 거부당할 수도 있다.
2020년을 휩쓸고 지나간 코로나 19는 외인부대에도 그 영향을 끼쳤다. 변종코로나 발생으로 인해 프랑스 출입국이 엄격히 제한되면서 지원자도 현저히 부족해져 최소수준만 충족한다면 입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4.2. 입대자의 국적


현재 공식적으로 외인부대에서 모집하지 않는 국가는 북한, 시리아, 쿠바의 3개 국가이다.
전세계 각지에서 외인부대에 입대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스위스, 벨기에 같은 프랑스어권 국가 출신자가 최대 30% 정도에 달하고 있다. 이런 프랑스어권 출신자들은 비프랑스어권 출신자들과 짝을 지어서 1:1로 교육이나 지시내용을 전파하는 역할도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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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 '''러시아, 폴란드 등의 동유럽이나 북아프리카 출신자들이 사실상 절대다수'''를 이루며 아랍계, 북유럽이나 미국, 영국 출신들도 정말 가끔 있다. 남미 라틴계열 출신들도 드물게 있다고 한다. 동양계는 예전에 밀리터리 컴플렉스에 빠진 일본인 혹은 발전 이전의 한국과 중국에서 많이 지원했으나, 현재는 이들 국가의 청년들이 전세계에서 손에 꼽는 수준의 멀쩡한 자국 군대를 놔두고 외인부대까지 갈 일이 없기에 상당히 드물다고 한다. 중국인-일본인-한국인 순으로 한국인은 그 중에서도 적다고 한다.
솅겐 지역 국적 해당자들은 신분증만 지참하면 되지만 그 외 국가 출신자들은 여권을 지참해야 한다.
프랑스인은 공식적으로는 병으로는 입대 거부된다. 다만, 현대까지도 위장 국적이나 위장 신분을 이용해 프랑스인이 입대한 사례가 있다. 요즘에야 각종 서류 추적 등을 통하여 출신지를 가려내고, 웬만하면 아래에서 보듯 그냥 인근 유럽 국가 국적을 취득해 법적으로 외국인이 되어 지원하지 굳이 범죄까지 저지르며 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매우 낮은 확률이긴 하다.
프랑스 국적을 포기하고 다른 외국 국적을 얻어 지원하는 사례도 있다. 프랑스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는 특산품이 벨기에 국적이다.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는 곳이기도 하고, 프랑스와 인접해 있어 국적 취득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인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부대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긴다. 당연히 이는 합법적인 국적 변경이라 위처럼 걸려도 결격 사유가 아니다. 프랑스 육군 입장에서도 일단 국적만 다른 프랑스인이니 다른 쌩 외국인들처럼 언어나 문화 차이 등으로 고생할 일이 없는 장점이 있고, 국적까지 바꿔서 지원할 정도면 복무 의지가 꽤 있다는 뜻도 되기 때문에, 이런 이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사병과 달리 장교는 프랑스 국적자만 들어갈 수 있는데, 프랑스 육군 장교 과정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즉 소위 시절부터 외인부대 장교로 군생활을 한 경우는 프랑스 국적자 출신이고, 사병부터 쭉 진급한 인원들은 외국인 출신이라고 보면 된다. 장교의 90%는 프랑스인, 10%는 외국 출신의 외국계 프랑스인이라고 한다. 물론 외인부대라도 외국인 신분으로 복무할 수 있는 신분은 병 뿐이며, 부사관 이상으로 신분을 전환하려면 프랑스 국적을 의무적으로 취득해야 하기 때문에, 서류상 장교는 100% 프랑스인이다. 보통 초임 소위 때부터 외인부대로 군생활을 하면 사병 출신 장교까진 아니어도 그럭저럭 인정 받지만, 그 이상 계급에서 외인부대로 전입한 경우는 약간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프랑스 국적은 입대 후 의무복무기간 60%를 채운 시점인 3년 이상 복무자에 한해 신청할 수 있고, 의무복무 기간을 채우면 대부분 국적이 부여된다. 특히 복무 중 부상을 당했다면 보훈 관련 법령인 '피흘림법'에 따라 무조건 부여될 것이 보장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의무복무자에 한해서는 개인 선택에 따르는 것으로,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지 않아도 된다.

4.3. 처우


아무래도 지원자들이 대부분 동아프리카, 동유럽에서 지원하는만큼 인적풀의 수준도 굉장히 낮은데다가, 외인부대 자체의 훈련체계 등을 떠나서 사회적 예우는 그리 좋지 못 하다. 오죽하면 부대원 당사자들이 "웬만한 상황이 아니라면 절대 오지 마"라고 한다. 훈련은 빡쎈데 프랑스 정규군에 비해 대우받지 못 하고 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외인부대의 명예니 자부심이니 이런걸 옛말이 된지 오래. 물론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면 썩 나쁜 처우는 아니나, 항상 1순위로 해외에 파병되어 뺑이 치는 등 그들의 강도 높은 임무에 비해선 한숨이 나오는 수준이라고 한다.
외인부대원의 진급은 제한없다. 그렇기 때문에 18살에 이등병(레조넬)부터 올라가기 시작하면 종신병장 같이 한 계급에 계속 머무르는 것을 신청하지 않고 계속 진급을 할 경우 55살에 이르러서 중령(리외트낭 코로넬)까지 올라간다. 그런데 거기가 이등병으로서는 진급 상한선이다. 60살에 퇴역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병이 중령까지 올라가려면 '''모든 진급심사를 1차에 통과'''해야 하는데 절대로 쉽지 않다. 일단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에 비해 진급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근데 가성비상으로 보면 차라리 대위에서 남는게 훨씬 이득이다. 일단 레지옹 에트랑제는 중대장만 되어도 완전히 임금님과 다름없을 정도로 권력이 쎄다. 그런데 굳이 그걸 버리고 소령으로 올라가서 높디 높으신 분들을 매일같이 알현해야 하는 수고를 자청할 인간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외인부대원들에게 주어지는 경제적 대우는 소속 부대에 따라서 다르나 꽤 상당하다. 맨 처음 입대해서 이등병이 최초로 받는 월급의 기본 베이스페이가 1,348유로(2020년 기준)로 한화 약 180만원 가량이다. 이에 여러 수당이 붙으면 평균적으로 대략 210만~270만원정도를 수령한다. 물론 수당과 보너스는 부대별로 다르다. 2e R.E.P의 공수부대원은 타 수당 제외하고 공수 수당+기본 월급만으로 이등병 기준 2,067유로(2020년 기준)인데 이는 근 300만원 가량이다. 앞에서도 계속 언급하듯이, 외인부대는 파병을 전담하는 부대이므로 위의 기본 월급에 집중하기 보다는 파병 수당과 여러 부가 보너스를 합쳐야 실질적인 월급을 환산할 수 있다. 일반 외인부대원의 경우 이등병 기준 파병 수당이 2,075유로(약 284만원, 2020년 기준)다. 평균적으로 첫 복무연도에 23000유로(한화 약 3100만원) 가량을 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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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도 프랑스 육군 소속이므로, 정복근무복 등 모든 피복과 각종 군장류를 지급받는다. 과거엔 이러한 장비를 직접 돈주고 사야된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확실히 지급해주는 것으로 확인된다. 허나 대원들이 자기 취향에 맞는 개인 플레이트 케리어나 사제 컴뱃 티셔츠 등을 사서 입는 경우는 어느 선진형 군대나 다 그렇듯이 자주 있다고 한다. 수료식 때도 프랑스 육군 정모케피 블랑의 착용 권리를 얻었음을 선포한다.
5년 기본 복무를 다 마치면 보통 병장(카포랄)으로 제대하며, 10년 체류권을 받을 수 있으며 국적 신청은 60% 이상 복무한 3년차 이후 가능하다. 5년간 비프랑스인이 대부분인 부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프랑스 국적 취득 후에도 프랑스 내에서 적응이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 국적이 있으면 EU 어디로든 이동의 자유가 생기며, 후진국 출신이라면 이후 귀국하더라도 프랑스 같은 강대국 국적 그 자체가 나름대로 큰 자산이 된다. 그리고 많지는 않아도 연금이 주어지고, 이는 국적 미취득자나 외국 거주자도 동일하다.
전체의 25% 정도는 부사관이다. 그런 사람들은 공적을 쌓아 하사(카포랄 셰프)로 진급하며 분대장으로 오르기도 한다. 이럴 경우에는 추가 보수 및 여러 혜택이 주어지며, 기본적으로 5년 복무를 마치고 지원자에 한하여 추가 계약을 하면서 하사로 진급할 경우[15]에도 여러 추가 혜택이 주어진다. 15년 이상 장기 복무할 경우 연금에서부터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또한 18년 이상 복무하면 전역 당시 계급 호봉에 해당하는 봉급의 70% 정도를 연금으로 받는다. 따라서 장기복무를 할 경우 웬만하면 15년까지는 채우고 제대하는 편이다.
장교의 10% 정도는 외인부대 병 출신이다. 매우 큰 공훈을 세우면 15년 정도 복무한 후 장교인 소위(수 리외트낭)까지 올라가고 보통 선임원사(아쥐당 셰프)까지 올라간다. 18년의 경우 보통 소위까지 올라가고 잘 올라가면 중위(리외트낭)까지 올라간다.
보수는 2외인공수=3연대>그 외 부대 순으로 높다. 마요트 파견대나 3연대는 해외 주둔부대라 봉급이 높다. 분쟁지역에 파견시 그 강도에 따라 2~3배의 위험수당과 그외에 사고시 보험금 등이 주어진다. 그리고 기본 복무 시에도 실전 참전이라든지, 위험 지역 평화유지군 파병시에도 추가 수당이나 위험수당, 보험금들이 지급된다. 저격수EOD 등 특수 분야는 보통 중대 위로 파견을 나가게 된다. 자기가 가고 싶다고 가는 건 아니고 로테이션 식이며 파병 국가가 많을수록 더 빨리 더 자주 나갈 수 있다. 파병마다 메달 형태의 기장이 주어지기 때문에 많은 파병을 거친 외인부대원은 정복 가슴에 수많은 메달을 치렁치렁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메달들이 죄다 '''고과성적'''이다. 많으면 진급이 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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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육군의 기아나 정글훈련소(Centre d' entraînement à la forêt équatoriale, CEFE) 모습
한때 프랑스령 기아나는 프랑스 본토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런 혜택이 없고, 당시 이등병 기준으로 약 200 유로 정도의 수당이 더 나오는 정도였다. 문제는 이 프랑스령 기아나가 '''외인부대의 무덤'''격이었다는 것인데, 근무 환경은 EU의 핵심 전략시설인 기아나 우주센터를 경비하는 중요한 임무가 부여되어 있어 긴장감 및 훈련 강도가 빡세고, 극심한 빈부격차로 치안이 불안한데다, 연평균 기온이 27도에 달하는 지독하게 덥고 습한 열대 우림 지역이다. 기아나에서 일년 중 가장 더운 한여름날의 평균 고온은 31°C이며 저온은 23°C이다. 참고로 한국 서울에서 일년 중 가장 더운날의 평균 고온은 30°C이며 저온은 24°C, 한국 대구에서 일년 중 가장 더운날의 평균 고온은 31°C이며 저온은 24°C이다. 때문에 프랑스령 기아나로 배치된 이유 하나로 브라질로 탈영한 외인부대원까지 생겼다.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프랑스 육군은 최근 방침을 변경해 기아나로 가는 외인부대원에게 이런저런 수당을 잔뜩 지급해 본토 근무자보다 2배의 월 급여 수령액을 주고, 장기 복무자에게 진급 고과성적과 위에 서술한 해외 근무자들에게 적용되는 추가 혜택도 주면서 이제는 굉장히 인기 좋은 근무지로 변했다. 일단 배치되면 2~3년은 의무적으로 그곳에서 근무해야 한다.
장기 복무하고 제대한 베테랑들은 연금이나 여러 혜택 말고도 예비역으로 외인부대에 복무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외인부대에서 관리하는 포도 농장, 와인[16] 양조장, 그 외 여러 농장에서 일할 수도 있고 외인부대용 담배 공장 같은 곳에서도 일할 수 있다. 아니면 외인부대원을 위한 휴가용 별장 관리라든지 다양한 일에도 복무할 수 있다고 한다. 많은 보수는 기대할 수 없지만, 직업 안정성이 높은데다 손님이 없으면 꽤 경치 좋은 별장에서 개인 휴가를 즐길 수도 있다고 한다. 장기 복무자는 연금이 따라붙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꽤 유유자적한 은퇴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현지로 직접 취재를 가서 외인부대를 방문한 임영훈이 쓴 외인부대[17]를 보면 노병들의 여러 가지 활동을 지원한다고 나와 있다. 이를테면 출판이라든가, 기념품 제작 등인데, 이러한 물건들은 외인부대 박물관에서 판매된다고 한다. 노병들이 저술한 서적이 출판사 등의 루트를 통해 일반 시중에도 판매되는지에 대해서는 적혀있지 않았다.[18]

4.4. 진급


호봉
(단위:년)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년
이상
훈련병
15주



















이등병
OR-1
기본계급



















일등병
OR-2
10개월 이상 복무 경력
+ 프랑스어 구사 가능자[19]














상등병
OR-3

복무 경력 1년 초과
+ 상병 학교 수료자














선임
상등병
OR-4






복무 경력 6년 초과자[20]
하사[21]
OR-5




상병 복무 3년 초과자












선임
하사
OR-6







하사 복무 3년 초과자
+ 총 복무기간 7년 초과 14년 이하






없음
OR-7




















Adjudant
상사
OR-8










선임하사 복무 3년 초과자
Adjudant Chef
선임상사
OR-9














상사 복무 4년 초과
+ 총 복무기간 14년 초과
+ 프랑스 국적자
Major
원사
OR-9














원사시험 합격자
+ 총 복무기간 14년 초과
+ 프랑스 국적자
소위 이상
호봉을 채운다고 진급시켜주는 계급이 아니다. 오직 실력만으로 진급하는 계급이다.
이등병부터 시작한 인원은 전체 장교의 10% 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진급이 쉽지 않다.
훈련병부터 시작할 경우 : 주임상사 이상 + 고과성적 최우수자[22] + 소위 시험 합격자 + 프랑스 국적자
  • 해당 군인의 성실함과 능력에 따라 진급시킨다. 모든 외인부대원은 민간의 학위나 직업 경력 덕분에 승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군공 또는 진급시험에 의해서만 진급한다. 입대하기 전의 경력은 일절 무시되며 철저하게 레지옹 에트랑제 안에서의 능력 위주의 진급이기 때문에 중졸 장교도 있다.
  • 일등병은 이등병에서 의사소통에 최소한도로 필요한 프랑스어 기초회화를 할 줄 알고 기본적으로 전투원 구실이 완벽하게 가능하면 그냥 준다. 그러니까 4년 이상 복무하고도 이등병이면 문제가 있는 사병으로 이런 사람은 의무복무만 채우고 제대한다.
  • 레지옹 에트랑제 병력의 25%가 부사관이다. 딱 이 비율을 지켜서 진급시킨다. 위의 표에서 녹색이 부사관이다.
  • 레지옹 에트랑제 장교의 10%가 사병부터 진급해 올라간 인원이다.
  • 장교를 지원하면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사관후보생 교육을 받은 뒤 원래 복무했던 부대로 재배치된다. 사관생도보다 훈련기간은 짧다. 정확히는 사관생도의 훈련에서 병기본 등 몸으로 구르는 훈련은 모두 제외되고[23] 지휘통솔기법이나 대대전술 등 장교로서 필요한 훈련만 받는다.
  • 병에서 장교가 되면 사실상 진급 마지노선은 대위이다. 소령 이상은 프랑스 사관학교 출신자 등 처음부터 소위로 군생활을 시작한 이들이다. 그럼에도 부사관들 중 상당수가 소위로 진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소위로 진급하면 당장 보직에 대한 변화는 없지만 소위가 되어야 대위로 진급할 수 있으며 대위가 되면 중대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중대장은 종신 중대장을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중대장이 되려고 소위로 진급하는 것이다.

4.5. 간부


위에서도 서술되었다시피, 외인부대는 진급의 제한이 없는 특이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이 덕분에 고급 부사관들이 초급 장교로 임관하려고 하는 기현상이 일어나는게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이등병에서 시작해서 끝도 없이 올라가는 게임과도 같은 특이한 시스템 덕분에 보통의 선진군대와 같이[24] 부사관과 장교가 서로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한국군과 비슷하게 철저한 상급자-하급자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방향이다. 게다가 여기는 '''중대장의 권한이 엄청나서 군림 그 자체'''가 되기 때문에 상사 정도만으로도 할 수 있는 소대장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25] 그만큼 보직에 대한 차이도 넘사벽이고 권한과 대우 역시 넘사벽이다. 타 모병제 군의 부사관들은 이미 권위가 장교 부럽지 않기 때문에 어떤 목표가 있지 않는 이상은 '''굳이 장교로 임관하려고 하지 않는다.''' 미군의 경우 중상사나 원사쯤 달면 직책에 따라서 소령~준장까지는 맞먹는게 가능하고 각군 주임원사와 같은 더 높은 직책을 달면 무려 4성장군 예우를 받는것이 가능하기에 병에서 장교로 가고싶으면 부사관으로 임관하기전이나, 초급 부사관 시절에 가지 미쳤다고 중상사 이상 달고서 '''굳이 장교의 최하 계급인 소위로 임관할 필요가 전혀 없다.''' 허나 외인부대는 위와 같은 진급 문화와 보직의 특징 덕분에 이런 게임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는게 가능한 것이다. 중대장만 되면 그 중대가 완전히 내 세상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중대장의 권한이 이정도로 크고 엄청난 이유가 바로 마요트 분견대 때문인데 마요트 분견대장이 직책분류상 중대장이며 마요트로 파병된 외인부대 전체의 총책임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대장이 한 지역 전체의 수장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중대장의 권력이 장난이 아니게 될 수밖에 없다.
외인부대의 부사관은 100% 외인부대에 입대해 이등병부터 올라간 인원[26]이다. 즉, 부사관은 모두 외국계 프랑스인이다.
레지옹 에트랑제는 구성원 비율상 병 70% 부사관 25% 장교 5% 정도 된다. 장교 중에 병 출신은 10%에 불과하므로 병 출신 장교는 전체의 0.5%에 불과하다. 기업에서 임원 다는 난이도와 비슷하다.
부사관이 되려면 프랑스 국적을 소지해야하며, 뛰어난 성적을 지니고 부사관 시험을 통과하여 추가 교육을 받은 후 부사관이 될 수 있다. 이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부사관이 되려면 당연히 해당 국가의 국적을 소지하고 상당히 뛰어나야 한다.
어느 나라나 장교로 임관하려면 자국 국적자여야 하고, 나이 제한이 있다. 실제 외인부대를 취재한 임영훈 저, ''외인부대''(우리문학사, 1994)를 보면 대부분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출신 중에서도 성적이 극히 우수한 자원만 외인부대 장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외국계 프랑스인 중에서도 사병 출신 장교도 없는 것은 아닌데 장교 전체의 10%에 불과하고 장교가 되는 외인부대 부사관은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과 동일한 시험을 치뤄 합격한 뒤 거기서 훈련을 받는다. 훈련이 완료되면 소위 계급을 달고 복무했던 부대로 다시 온다. 보직은 원사 시절 했던 중대장 보좌관을 그대로 맡는다. 물론 실질적인 진급상한선은 대위가 되며 보직 역시 실질적으로는 중대장이 끝이다. 영관급 장교가 되려면 군공을 엄청 세워야 한다. 딴지일보에 글을 올리는 2018년 기준 현재 실제로 외인부대에 복무하는 인원의 증언에 의하면 이렇다고 한다. 실제로 미군도 타국 출신 장교들이 꽤 있다.
먼저 외인부대 출신 장교의 경우, 역사상 최고 기록은 이등병에서 시작해서 중령까지 진급한 경우가 있다. 다만 이것은 기대하기 어렵고,[27] 15년 이상 장기복무한 경우 중 일부가 위관까지 진급하는 정도이다.[28] 참고로 외인부대 역사상 한국인으로서 소위까지 진급한 이도 있으며,(지금은 제대하고 프랑스에서 민간인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일본인이 중위까지 진급했으며, 아시아인으로선 중국인이 먼저 대위까지 진급했고 그 뒤를 이어 사우디인이 대위까지 진급한 게 가장 높은 진급이라고 한다.
다만, 장군이나 대령 등의 고위 장교는 프랑스 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들로만 배치된다고 한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출신을 차별하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소위라 해도 이등병부터 올라가면 나이를 너무 먹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20살에 입대해서 정말 빨리 진급해서 소위까지 15년이 걸린다고 하면 '''35살에 소위'''가 되는데 보통 프랑스 사관학교를 졸업한 소위들은 '''23살이면 소위'''다. 결국 소위 계급을 다는 시점부터 10년 이상 차이가 나버린다. 문제는 저게 최소연한 기준이고 평균연한을 따지자면 소위까지 40대 중반은 기본이다. 이 때문에 이등병부터 시작하면 중령에 진급하면 정말 빨리 진급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60살이 다 되어 버린다. 몽클라르도 프랑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서 장군인 것이다. 다만 프랑스의 교육제도상 프랑스 육사 역시 2학년 말까지 인증시험을 치뤄서 합격해야 3학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프랑스 사관학교 출신의 장교들도 마찬가지로 대단한 재목들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프랑스에서 위관급 장교의 대우는 그저 그런 병역의무 땜빵쟁이 취급 당하는 대한민국과는 달리 높다. 프랑스군에서 장교는 정말 가리고 골라 선발하는데 그랑제콜 이상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프랑스 사관학교나 그랑제콜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프랑스 학사장교를 통해 선발된 엄청난 인재에게 병부터 군 생활을 시켜 수십 년에 걸친 진급을 해낸 경우에만 선발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능력이 아니면 장대한 경력이 있어야만 장교가 가능한 것이 프랑스군이다. 그렇기 때문에 몇십년을 복무해가며 중위 대위로 진급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레지옹 에트랑제 대원이 존재하는 것이다.
보직은 어떻게 가느냐로 달라진다. 병부터 출발한 인원은 상사에서 소대장이 되고 주임상사나 원사도 소대장을 할 수 있다. 원사 중 엄선된 인원이 선임원사가 되며 선임원사에서 중대장 보좌관이 된다. 중대장 보좌관은 사실상 부중대장이지만 하는 일은 참모이며 지휘권은 없고 중대장이 하는 일을 도와주는 게 임무이다. 중대장 보좌관이 되면 중위까지 그 보직을 달고 다닌다. 중대장 보좌관은 보통 1명이 배치되지만 중대장 교체시기가 임박하면 2명을 배치해서 그 중에서 중대장으로 보직시킨다. 처음부터 소위로 임관한 인원은 '''병과 똑같이 훈련받고''' 거기에 대위의 역할을 훈련받는데 보직은 없는 상태로 지내다가 중위로 진급하면 소대장이 된다. 소위 시절에는 중위 소대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대지휘연습을 한다. 그러다가 중대장이 교체되는 시기가 오면 보직이 중대장 보좌관으로 변경되었다가 중대장 자리를 물려받는다. 하지만 중위 소대장의 짬이 너무 적으면 다른 부대에서 중대장이 전입해오기도 한다. 중대장은 어떤 과정이든 대위 고정. 마치 독일 연방군처럼 장교 소대장과 부사관 소대장이 공존하는 시스템이다.#[29][30]
원사가 중대에도 배치되는데 보직은 중대장 보좌관이다. 주임상사나 원사가 중대장 보좌관을 하고 있을 때 굳이 소위 시험을 치르는 이유는 '''중대장이 되기 위해서'''이다. 소대장이나 중대장 보좌관이야 상사, 주임상사, 원사, 소위, 중위든 다 되지만 중대장은 '''오직 대위만의 보직'''이기 때문에 나중에 중대장이 되기 위해서 소위 시험을 본다. 합격해서 소위가 되면 당장은 중대장 보좌관으로 보직 변동이 없지만 차츰 진급하면서 대위가 되면 중대장으로 보직이 변경되는데 이렇게 병 출신 중대장이 될 경우 소령으로 진급하지 않는 한 해당 중대를 정년퇴임할 때까지 지휘하게 된다. 그러니까 지휘 욕심이 있는 부사관 중대장 보좌관은 소위 시험을 치르게 되고 합격하면 일단 신분부터 장교로 바꾼 뒤 나중에 중대장이 된다.
프랑스 외인부대 사령관은 소장이며 프랑스 외인부대에 존재하는 유일한 장성급 장교이다. 대령은 각 연대장(여단장)과 프랑스 외인부대 참모장 정도 극소수이다.

4.6. 입대 후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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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외인부대에 입대하면 각종 서약서와 신원 조회, 신체 검사, 인적성검사, 체력 측정[31]을 거친다. 그리고 여기에 통과해서 입대하게 될 경우 외인부대에서 지급하는 전투복으로 갈아입는다. 자신의 의복, 물품이 들어있는 가방은 지원자들이 테스트를 받고 훈련소로 떠나기 전까지 대기하는 오바뉴에서 맡아 중도 탈락 혹은 4개월간의 훈련을 거친 뒤 돌아오면 돌려받을 수 있다.
부대에서는 지원자가 사병으로서의 적성, 군인으로서의 적성이 맞느냐의 여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입대 후 훈련은 상당히 강도가 높으며, 특히 '''구보로 악명이 대단히 높다'''. 그 덕분에 각종 마라톤 대회에 외인부대원이 나가 상을 휩쓰는 경우도 많으며, 심지어 '''올림픽 대회'''에 외인부대원이 프랑스 국기를 달고 나가 7위를 달성한 적도 있다. 당연히 자대 배치 후에는 파병을 준비하기 위해 더욱 살벌한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실전에 초점을 맞춘 훈련을 하기 때문에 단순히 강도가 높은 것이 아니라, 시설과 훈련의 질 또한 수준급 이상으로 보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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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입대하게 되면 4개월간의 기초훈련에서부터 일상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프랑스어를 무조건 교육받게 되어 있다. 외인부대는 프랑스어 구사 여부와 관계없이 모집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훈련병 때부터 새로 가르쳐주는 걸 전제로 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프랑스어는 못 하더라도 영어는 무리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입대 절차 진행중일 때는 영어 통역은 해주지만 신병교육이 진행되면 될수록 프랑스어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참고로 영어조차 거의 못하더라도 면담이 좀 곤란해질지언정 테스트 자체는 볼 수 있다. 지능검사, 인성검사 문항들을 1990년대에 복무하고 있던 한국인 간부가 모두 한국어로 번역해 두었다고 한다. 일부는 이 4개월만에 상당한 성취를 이루어내기도 한다. 이렇듯 프랑스어 구사는 개인 역량과 노력에 따라 성취도가 극명하게 갈리지만, 5년 기본 복무기간 후에는 프랑스어를 숙달하게 된다. 프랑스어는 반드시 숙달이 필요하다. 일등병 빨리 달고 싶고 장기복무를 하고 싶으면 목숨걸고 프랑스어를 익힌다. 이 프랑스어 구사라는 게 프랑스 원어민 수준으로 철저하게 정확한 프랑스어를 요구하는 게 아니므로 여기에 걸리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사람마다 전혀 흥미없이 같은 언어를 쓰는 병사들과 어울려 영 진전이 없는 경우도 있는데, 프랑스어를 숙달하지 못하면 잡무밖에 할 수 없으므로 카포랄도 못 달고 그냥 제대하는 불상사를 겪을 수 있고, 제대 후 사회에 나와서도 적응하기가 힘들다.

5. 한국인


한국전쟁유엔군의 일원이었던 프랑스 대대에서 복무한 한국인 카투사들 중 10명이 외인부대에 입대하였다. 이들이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한국계 외인부대원들이다. 이들은 프랑스군이 한국에서 철수할때 자연스럽게 같이 가게 되었고 인도차이나 전쟁때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싸웠다. 이들중 인도차이나 전쟁, 알제리 독립전쟁까지 겪고 프랑스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다. 2010년대에 현재 외인부대에서 근무중인 한국인 복무자는 약 10여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조금 특이하게도 2006년 원주타투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한국인 군악대원이 있는 것이 확인됐고, 이 대원은 2016년 프랑스 Renne에서 개최된 CISM 여자축구 대회 때도 군악대원으로 참가, 최소 이 때까진 복무했음이 확인되었다.
외환위기 시기였던 1998년 <외인부대원 LEE>가 출판되어 외인부대 입대 붐을 낳기도 했다. 한국인 지원자 수가 기존 아시아 최다였던 일본인을 제치고 아시아 1위를 달성했다고 한다. 외인부대 입대 전 묻는 간단한 프랑스어와 적성시험을 대비한 외인부대 입시학원까지 생겼을 정도다. 지금은 한국인 지원자가 많지 않다.
여담이지만, 4개월동안 훈련을 받고 나서 한국이 그리워 돌아가는 사람이 있다 카더라 하지만, 그렇게 나온 사람 중에도 다시 돌아와서 복무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한다. 탈영 사유나 과정이 심각한 것이 아니라면 보통 영창에 1개월 갔다온 후 계속 복무할 수 있다. 장기 복무시 불리해지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수준이다.
또한 보스니아 내전 등 실전에 참전한 1990년대 복무자 중에는 결국 PTSD로 고생하다 휴가 미복귀를 택해 대한민국에 돌아온 사람도 있다.# 이 분은 플래툰지에 자신의 수기를 연재한 적이 있다. 연재당시엔 현역이었고 외인부대 입대및 유고 내전 파병시기까지만 연재하고 프랑스로 돌아갔다고만 나왔다. 그 연재 수기만 봐도 외인부대 내의 분위기가 결코 낭만스럽지 않다는 걸 알수 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온갖 인간군상들의 집합체인 외인부대와 분쟁지 주민의 처참한 삶을 일부 엿볼 수 있고 실전에서 얼마나 쉽게 죽거나 부상을 입을 수 있는지 등.
외인부대원과 결혼한 한국인 여성이 프랑스에서의 생활과 외인부대에 대하여 저술한 <어느 프랑스 외인부대원 아내의 이야기>가 2018년 12월에 발간되었다.이런 경험담 중 가장 최근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부대원 가족의 고충, 받는 혜택, 생활상들을 보기가 좋다.

5.1. 외인부대 출신 한국인


아래 송안식 씨의 2020년 인터뷰에 따르면 외인부대를 '''"만기제대"'''한 한국인은 200명 가량으로, 약 50명이 프랑스에 남았고 100명 정도는 귀국했으며 50명쯤은 제3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 이진선(배우, 보이스 코치) - 만 18세에 입대하여 기갑연대에서 복무했으며, 세네갈에 파병된 적이 있다. 검사외전, 공작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복무를 한지 3년정도 되었을 때 심적으로 힘들어 탈영고민도 했자만 동료의 말한마디에 결국 5년복무하고 만기제대하고 프랑스에서 배우가 되기위해 연기공부를 했다고 한다.
  • 이창형(1964) - 외인부대원 Lee의 저자. 1996년에 입대하여 13개월 만에 제대했다. 하지만 책에서는 자신이 제2외인공수연대에서 복무했고, 의무복무 기간인 5년을 40일 못 채우고 제대한 것으로 부풀렸다. 책의 신뢰도가 너무 낮아서 정확한 제대 사유는 알 수 없지만, 불명예 제대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나중에 이 자의 경력이 거짓임이 밝혀져서 출판사 한림미디어는 이 책에 대한 광고를 더 이상 하지 않 았다고 한다. 제대하고 나서의 근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 송안식(1970) -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보고 싶어 1996년에 입대했고, 공수연대 산악중대 소속으로 저격수 훈련을 받고 아프리카 차드, 콩고, 가봉, 보스니아 내전에 참전했다. 프랑스군 십자무공메달과 나토(NATO)메달을 비롯해 무공훈장을 7개 받았다고 한다. 외인부대 한인 전우회 회장을 맡았으며, 2020년에는 프랑스 한인회장으로 당선되었다.

6. 외인부대에 대한 오해들


1942년 6월 북아프리카 전역의 비르 하킴 전투에서 독일의 에르빈 롬멜 장군이 아프리카에서 유달리 용감하게 싸우는 적군을 만나 어떤 군대인지 알아보라고 장교를 보냈는데, "프랑스군입니다"라는 대답을 듣자 "그럴 리가 없다! 다시 알아봐!"라고 쫓아보냈고, 다시 돌아온 장교가 "프랑스 외인부대가 확실합니다"라고 하자 "그러면 진작에 외인부대라고 말했어야지"라고 말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전문 군사서적에서는 이런 내용을 찾을 수 없고, '취미가' 등 모형잡지 연재물이나 그 연재물을 엮은 알기 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 임영훈 저, '외인부대'(우리문학사, 1994) 등의 일반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일부 도서에만 소개가 된 된 것으로 보아. 국내에서만 유통되는 소설로 보인다. 당시 독일군은 비르 하킴에 있던 적군이 제1자유프랑스여단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고, 작전지도에도 비르 하킴에 자유프랑스여단이 있다고 적혀 있기 때문에 애초에 롬멜은 적군이 누군지를 물어볼 필요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8개 대대 규모의 제1자유프랑스 여단 병력 중 외인부대는 단지 2개 대대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누군지 알아보라고 했다 하더라도 외인부대라는 답이 나올리가 없는 상황이다.
1940년 6월 프랑스군이 붕괴했을 때 마르세유에 들이닥친 독일 육군 헌병대가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외인부대에 입대하려고 배를 기다리고 있던 수백 명의 독일군 탈영병들을 체포했다는 소문도 있다. <외인부대>의 저자는 이들이 한 행동이 반나치보다는 외인부대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전격전으로 승승장구 드높은 사기를 가진 독일군이 말 한마디 안통하는 프랑스에서 전시에 사형에 해당하는 탈영을 해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자유 프랑스군 외인부대에 입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 외인부대에 대한 로망 때문이라면 비시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 역시 국내에서만 유통되는 소설로 보인다.
국내에는 외인부대가 ''"충성 서약을 프랑스 본국이 아닌 외인부대에 하는 것 또한 유명하다."''라는 소문이 일부에 퍼져 있는데, 임영훈 저, 외인부대, 우리문학사(1994) 226페이지를 보면 "프랑스에 충성을 다하는 것이 그들의 복무수칙"이라는 다음 구절에 ''"그러나, 외인부대원들은 이 충성이 프랑스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외인부대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을지도 모른다"''라고 저자의 개인적인 감상도 적어 놓고 있다. 즉, 프랑스에 충성하는게 실제 사실이고, 외인부대에 충성하는건 저자의 주관적 생각일 뿐인데, 일부 독해력이 떨어지는 독자들이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을 실제 사실인 것으로 오독하여 이런 소문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외인부대의 낭만적 이미지는 허상일 뿐이며, 이들은 '''철저한 프로페셔널로 구성된 직업군인들'''일 뿐이다. 그저 국적이 외국인일 뿐. 프랑스인들을 위험한 전장에 보내 마구 소모시키면 여론이 나빠지니 프랑스 국적+적정한 대우+봉급을 약속하고 외국인을 선발해 수준 높은 전투원으로 만든 후 전쟁터에 보내는 것이다. 즉 프랑스 정규군 예하 용병부대의 프로페셔널한 군인일 뿐으로 오히려 스페인 외인부대가 소설이나 영화에서 묘사된 프랑스 외인부대의 이미지와 더 맞는 편이다. 훈련은 고되고, 철저히 현실적인 동시에 실전적이며 분쟁지역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고뇌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게다가 프랑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병영부조리도 심한 편이다. 허나 최근엔 그러한 부조리는 외인부대 자체가 개선되며 많이 사그라든 것으로 보인다. 외인부대 관련 썰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 바로 '인종차별' 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신병 교육대에선 종종 일어나는 일로 보인다. 주로 서양인의 동양인 차별, 흑인 차별(특히 아랍계가 흑인을 엄청나게 차별한다), 무슬림과 비무슬림간의 마찰도 있으며, 인종이나 민족이 같아도 체첸 VS 러시아와 같이 타국인끼리도 차별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32] 부조리 또한 군기를 포함해서 훈련소에서의 첫 군인화 과정 1~2달동안만 극심할 뿐, 그 이후로는 프리하다.
외인부대가 일반 프랑스군이 쓰다 버린, 폐기하기 직전의 장비나 2선장비를 쓴다는 소문이 있으나 이 또한 모두 유언비어이다. 외인부대원의 개인 장비나 훈련시설 등을 보면 그런 얘기가 나올 수준이 전혀 아니다. 상술했듯이 외인부대는 전투에 관련될 확률이 비교적 높으므로 보급도 당연히 잘 된다. 허나 그 이외의 사회적 예우는 좋지 못 하다.

7. 외인부대는 다 특수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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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중인 제2외인공수연대 공수특공대 요원
외인부대는 정규전을 수행하는 프랑스 육군 전투여단에 배속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정규 부대이다. 이 중 해외에 가장 많이 파견되었던 부대가 공수연대였고, 또 활약도 인상 깊었기 때문에 외인부대 특수부대라는 인식이 생겼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공수연대 자체는 특수부대가 아닐 뿐더러, 외인부대 내에서 '''프랑스 특수전사령부 소속의 정식 특수부대는 제2외인공수연대의 GCP, 제2외인공병연대의 GCM 두개 뿐이다.'''
외인부대는 5개의 보병연대, 1개의 기병(기갑)연대와 2개의 공병연대, 그리고 1개의 공수연대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다른 2개의 연대가 더 있지만, 이들은 사령부와 신병훈련소를 책임지고 있으므로 엄밀히 말해 전투부대의 성격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위의 부대 중에서 공병연대의 PCG, 공수연대와 그 산하의 GCP와 같은 각 부대 산하의 코만도가 특수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즉 외인부대 자체는 특수부대가 아니며 외인부대는 하나의 병과로 인식이 될만큼 부대 내의 담당 임무가 매우 많다.
외인부대는 특수부대가 아닌 엘리트부대이며 산하의 코만도 또한 공수연대의 GCP, 공병연대의 GCM을 제외하고는 공식 특수부대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허나 외인 공수연대, 외인 보병연대, 외인 전투공병연대는 '''프랑스 내 전투력의 톱을 다투는 엘리트부대'''이며 전투공병연대 산하의 PCG(전 DINOPS) 또한 사실상 프랑스의 특수부대로 인정 받는 수준이다. 프랑스는 해외 분쟁에 개입할 때 그 무엇보다도 외인부대 투입을 가장 선호한다. 자국민으로 구성된 부대가 파병돼서 인명피해가 생기면 여론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 신속전개여단의 작전지역이 정해져 있어서 해당 파병지역을 담당하는 전투여단에 외인부대가 없다면 외인부대가 투입될 수 없다.
강하면, 혹은 강해 보이면 특수부대로 생각하고 보는 민간인들의 대표적인 착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부대의 성격을 굳이 따지자면 (산하에 기병(기갑) 편제가 있기는 하지만) 제한적인 특수임무가 가능한 정규 경보병 부대 정도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미국의 레인저 내지 한국의 특공대와 비슷한 성격. 물론 레인저와 특공대랑은 다른 면모도 많이 보이긴 한다.

[1] 1외인공수연대는 아래에 서술된 알제리 반란사건(쿠데타)에 참여했다가 불명예스럽게 해체되어 버렸기 때문에, 외인부대에는 1공수연대가 없고 2공수연대만 있다.[2] https://military.wikia.org/wiki/Commando_Parachute_Group[3] 부대 규모가 바뀌어도 과거의 부대 명칭을 유지하다보니 부대명칭과는 다르게 연대급 부대이다.[4] 지휘관이 대위이기 때문에 중대급 부대로 분류된다.[5] 항간에는 '''"프랑스가 아닌 외인부대 자체에 충성하는 것의 문제점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식의 추측성 이야기가 일부 떠돌기도 하는데, 이런 추측은 아마 국내 이야기꾼들의 소설로 보인다. 외인부대는 프랑스가 아닌 외인부대에 충성을 한다는 말 자체가 한국에만 퍼져 있는 잘못된 소문인데다, 군사반란은 육사 출신 정치 군인 장교들의 반란일 뿐 프랑스 정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외국 국적의 말단 병사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제리 군사반란을 주도한 프랑스 육사 출신 장교들은 자신들이 하는일이 프랑스 국가를 위한다는 위험한 망상에 빠져 반란을 일으킨거지 외인부대를 위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실제 주요한 3개 반란부대 중 외인부대는 단지 1개 부대에 불과하다.[6] 파병경력, 실전경력 등... 이게 없이 그냥 군복무만 오래했다면 짬밥만 많고 경력이 없는 것이다.[7] 고참병인데 아직 이등병이면 아예 대놓고 관심병사 그 자체이기 때문에 짬밥이 많아도 전혀 윗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다만 짬밥과 경력은 구분하므로 같은 계급이더라도 오랜 군생활로 인해 출중한 능력과 공훈을 보인다면 계급을 막론하고 우대해준다. 단순히 복무연수가 높다고 우대하는 것이 아닌, 그 만한 능력이 있어야 대우받을 수 있다. 이는 사실 어느 선진형 군대나 마찬가지다. 다만 외인부대는 진급제한이 없는 다소 특이한 시스템을 사용하므로 타 군에 비하면 계급을 중시하는 편이다[8] 유튜브에 관련 영상들이 몇 가지 올라와 있는데, 이것을 들여다보면 훈련강도가 세고 분위기도 엄하다. 관물대 검사하면서 비뚤어진 물품을 그대로 쓩 떨궈버리거나, 전투화 손질 상태 검사하면서 불합격한 훈련병의 전투화를 창밖으로 휭 던져버리거나, 뻑하면 얼차려를 준다. 다만 이 곳은 미군과 비슷하게, 얼차려를 줄 때 부여한 상급자도 같이 한다. 그러니까 얼차려로 팔굽혀펴기 15회를 시키면 상급자도 같이 팔굽혀펴기를 박자를 맞춰 해준다. 상급자-하급자간에 지금 당장은 실수나 잘못에 대해 욕을하며 면박을 주고 있지만, 결국 다 함께 고생하는 전우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국가적으로나 민족적인 구심점을 만들기 힘든 외인부대에서 전우애와 유대감은 부대 사기를 고취시키는 유일한 수단이다. 또한 첫 몇 달만 버티고 나면 '''많이 프리해진다.'''[9] 소속부대에 연락해서 자진해 돌아왔을 경우, 영창 1개월 정도로 봐준다.[10] 중범죄가 아니면 봐주는 듯하다. 인터뷰에서도 예시로 "'살인죄' 같은 범죄가 아니라면"이라 말하기도 하고, 영상에도 미국에서 폭력으로 1년 징역을 살고 온 한국계 미국인 훈련병이 나온 바 있다. 물론 장교 입대는 매우 철저하게 신원조사를 하기 때문에 범죄자가 장교로 입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간부로 간다고 해도 최대 부사관밖에는 지원 못 한다. [11] 전세계적인 모병을 하기 때문에 여러 언어로 홈페이지를 개설해 놓았다.[12] 충치 하나가 있다고 바로 떨어지는건 아니고 충치가 4개 이하로 있어야 한다. 갯수별로 평가(?)점수가 차등 부여된다고 한다.[13] 본래 4회였지만 7회를 거쳐 지금은 10회 상향조정이 된 듯하다. 입대자들의 체력수준이 날로 갈수록 높아진 탓이다.[14] 총 12라운드 까지 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뛴다면 거리는 총 2.5km를 뛰는것과 같다. 다만 오래달리기 2.5km로 뛰는 것보다 더 힘들다.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속도에 변화를 줘야하기 때문에 5km 구보 뛰는 것보다 10라운드 뛰는게 더 힘들다. 평소에 운동방법으로는 오래달리기 보단 인터벌로 뛰는게 더 도움이 된다.[15] 다만 병장까지 복무시 사고 유무라든지 여러가지를 따지며 병장 이후 진급부터는 시험 및 여러가지로 까다로운 조건이 있다.[16] 와인 이름도 외인부대. 의외로 본격적이라 와인 종류별로 다 만든다고 한다. [image][17] 책자는 엄청 두툼하고 실제 외인부대 군복 및 여러가지 전쟁 자료와 외인부대를 복무한 유명인 목록. 외인부대 장비 등 여러가지 정보가 많다. 그러나 1994년 초판에는 엉터리도 많았는데 외인부대원은 과거를 묻지 않는다든지, 알제리 전쟁 당시 반란 일으킨 부대가 처형당했다고 서술되었다. 2003년판 재판에서는 이런 게 다 삭제되고 수정되어 기준 입대 조건 부분에는 그런 언급이 없고, 살인 등 파렴치범, 처벌받지 않은 범죄자는 프랑스 경찰에 인계된다고 적혀 있다.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것은 2차대전 종료 후 갈 곳이 없어진 SS나 국방군 출신 경미한 전범 등 독일인들이 과거를 묻지 않았던 외인부대에 입대했다는 부분에만 딱 한 번 언급된다.[18] 제2공수연대에 출입하는 '돈키호테'라는 민간인 짬 처리업자에 대한 부분은 한때 잘못 알려져 있었는데 이 노인이 언제부터 부대에 출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분조회 없이 부대를 출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민간인이며, 수거한 짬으로 돼지를 사육한다는 것으로 보아 돼지 농장 + 노인이 '돼지 농장에서 일하는 노병'으로 둔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노인은 나귀가 끄는 마차를 타고 매일 점심때 부대에 와서 조리병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짬을 수거해 간다고 한다. 개정이 있었지만 이 책이 집필된 것은 1994년이니, 장장 20년도 넘은 지금은 이미 고인일 가능성이 높다.[19] 일단 프랑스어 기초회화를 못하면 진급과 장기복무부터 안 된다. 일단 외인부대는 프랑스어를 모르는 외국인도 자유롭게 받아주기 때문에 프랑스어 기초회화는 훈련소부터 가르쳐주며, 대부분은 의사소통에 필요한 기초 프랑스어는 금방 익힌다. 의무복무기간을 복무하고도 프랑스어의 간단한 회화가 불가능하면 그건 노력 자체가 없거나 지능에 문제가 있는 셈이라 그냥 잡일꾼으로 썩다가 이등병으로 제대한다.[20] 이 계급부터는 진급을 안하고 계속 눌러앉아있을 수 있다.[21] 미군의 Sergent에 해당되는 계급이며 '병장'은 대한민국 국군, 자위대 등 아시아권 국가의 군대에만 있는 계급이다. 서양권 군대에서는 상병 바로 위가 하사다. 단, 한국도 국군창설 초기엔 병사계급이 이등병, 일등병으로 2계급 체계였다.[22] 장교부터는 인원 제한이 극심하기 때문에 너무 조금만 선발하게 되는데 그래서 무조건 상대평가가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년도 합격자보다 더 좋은 성적으로 탈락하기도 한다.[23] 어차피 주임상사나 원사쯤 되면 병기본 같은 건 자다가 잠꼬대로 구사해도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24] 어느 나라든 실전을 뛰고 선진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는 나라의 군대는 부사관과 장교가 철저한 상하관계로 이를 신분이라 부르며 차별하는게 아닌, 현장 전문가와 지휘관의 관계이다. 사실 부사관을 이렇게 대우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의 서브컬쳐문화(...) 밖에 없을 정도이다.[25] 소대장은 이등병을 징계할 수 없지만 중대장은 소대장을 징계할 수 있다. 이 정도다.[26] 전 세계 대부분의 군대는 전원 병에서 부사관으로 진급한다. 부사관만 따로 뽑는 나라는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다. 민간 부사관 제도가 있고 또 부사관 대다수가 이쪽 출신인 한국군이 괴이한 사례에 속한다.[27] 이 정도의 진급은 거의 전투가 많아 군공을 세울 기회가 빈번하던 1960~70년대에나 가능했다고 한다. 물론 최근에도 걸프전이나, 아프간 전쟁 같은 굵직한 전투가 있기는 했지만.. 아프간 전쟁에서는 2009년쯤에 10명이나 전사한 전투도 있었다.[28] 보통 15년 복무하면 한국으로 치면 원사 정도에 해당하는 아쥐당 셰프까지 진급하고 제대한다고 한다.[29] 사실 유럽의 군대는 공산권 국가(거긴 정치장교도 넣고 이것저것 끼우고빼고 해서)이거나 징병제를 하는 일부 국가가 아닌 이상 거의 대부분 이렇게 한다. 왜냐 하면 소대장을 전부 다 장교로만 넣어버리면 나중에 영관급 장교에서 인사적체가 발생해 심각한 고질병에 시달리게 되기 때문이다.[30] 영국군 역시 영관급 장교위관급 장교의 머릿수가 비슷한 이유가 장교 소대장과 부사관 소대장을 병용해서 운영하기 때문이다.[31] 달리기, 윗몸일으키기, 턱걸이, 외줄타기가 항목에 나와 있다.[32] 예시로 어떤 썰에서는 팜에서 몽골인 카포랄이 자신을 아니꼽게 보고 꼬장을 부렸다는 언급이 있다. 같은 동양인끼리도 항상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닌 셈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