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카이너
1. 소개
'''윌리엄스, 디마지오, 뮤지얼, 그리고 카이너. 이들은 자신들이 활동했던 기간에 가장 뛰어난 외야수였다.'''
- '''빌 제임스'''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7년 연속 홈런왕''''''카이너는 단 한번의 스윙으로 당신의 리드를 날려버릴 수 있다.'''
- '''워렌 스판'''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을 대표한 전설적인 강타자이자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전설.
'''내셔널 리그 7년 연속 홈런왕이자 MLB 전체 6년 연속 홈런왕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젊은 나이에 은퇴한 비운의 타자다.
'''"홈런왕은 캐딜락을 타고, 타격왕은 포드를 탄다"'''(Home run hitters drive Cadillacs, and singles hitters drive Fords.)는 말을 남긴 사람이기도 하다.
통산 10시즌 1,472경기 6,256타석/5,205타수 1,451안타 369홈런 971득점 1,015타점 1,011BB/749K .279/.398/.548 .946OPS/149OPS+ 47.9bWAR.
2. 선수시절
카이너는 1922년 뉴멕시코 주에서 태어난 카이너는 1946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23살의 나이로 입단해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카이너는 데뷔하자마자 23홈런을 치며 내셔널리그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다음해인 1947년부터 1953년까지 7년연속 30홈런,1952년까지 양대리그 통합 6년연속 홈런왕을 차지하는 충공깽스러운 성적을 기록했다.또한 카이너는 데뷔시즌인 1946년부터 1952년까지 '''7년연속'''으로 내셔널리그 홈런왕에 올랐다.[2]
1위 : '''마크 맥과이어 10.61'''
2위 : '''베이브 루스 11.76'''
3위 : '''배리 본즈 12.92'''
4위 : '''짐 토미 13.74'''
5위 : 랄프 카이너 14.11
그의 타수당 비율은 역대 5위에 랭크되어 있는데 이 중 약쟁이인 맥과이어와 본즈를 제외하면 3위이다. 그리고 6위는 하먼 킬러브루, 9위는 테드 윌리엄스인데 이들이 메이저리그에서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 생각하면 랄프 카이너가 단순한 홈런왕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카이너의 전성기는 일찌감치 끝나버리고 말았다.그 이유는 그가 30세 때 당한 부상때문인데,당시 의학수준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너는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 3년을 더 뛰었으나,결국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하기 힘들것이라는 진단을 받고 1953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그가 메이저리그에서 뛴 기간은 고작 10년에 불과했다.[3]
통산 fWAR은 45.9에 지나지 않는데, 7년 연속 홈런왕의 숫자 치고는 10년치라고 봐도 상당히 작은 편이다. 이는 그가 수비에서 엄청나게 WAR을 까먹었기 때문이며, 통산 1011볼넷을 기록했음에도 삼진은 꼴랑 749개 밖에 되지 않는 테드 윌리엄스 유형의 타자였다.
3. 은퇴 후
카이너는 은퇴이후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1985년 해설위원을 그만두고 조용히 지내다가 2014년 2월 6일,자신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향년 92세.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서는 고전했는데, 뛴 기간도 고작 10년[4] 에다가 누적스텟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채 400홈런도 치지 못했고, 1500안타도 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7년연속 홈런왕의 임팩트가 매우 컸기 때문에 턱걸이로 입성에는 성공. 비운의 은퇴 역시도 표를 얻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4.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 JAWS - Left Field (19th)
5. 연도별 성적
[1] 통산 좌익수 1,307경기/1루수 58경기. 1951년에만 1루수를 겸했고 이외에는 항상 좌익수로 나왔다.[2] 카이너는 1947~1952년동안 평균 '''156안타 45홈런 115타점'''이라는 성적을 기록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3] 명예의 전당 후보 입성 조건이 선수 생활 10년이다. 다만, 뇌수막염으로 인해 8년만 뛰고 31세에 요절해 베테랑 위원회로 헌액된 에디 조스는 예외.[4]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오르기 위한 '''최소'''조건이 10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