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토미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역대 최고의 거포 중 한 사람. 2016년 기준으로 MLB에서 600홈런을 넘긴 아홉 명의 타자 중 한명. 스테로이드 시대를 거치면서도, 약물과는 무관히 오로지 타고난 힘 하나로 600홈런을 넘긴 최고의 강타자 세 선수 중 한 사람이다.[2] 별명은 '''Thominator'''. 한국 한정으로 '쏘메옹'으로 불렸다.
통산 성적은 22시즌 동안 타율 0.276, 출루율 0.402, 장타율 0.554, OPS .956, 순장타율 .278, 2328안타, 612홈런, BB/K 0.69개[3] , wRC+ 145, 1699타점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역대 최고의 OPS 히터.'''[4][5] 또 로저 클레멘스를 상대로 가장 많은 8개의 홈런과 19개의 타점을 뽑아낸 선수이다.
2. 선수 생활
2.1.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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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입단하여 본격적으로 1992년부터 빅리그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빅리그 콜업 후 처음에는 주로 대타/대수비로만 활동했다. 초년병 시절에 그리 빅리그에서 완전히 인상적인 모습까지는 아니었기 때문. 그리고 원 포지션인 3루수는 적당한 수비력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점점 실력을 발휘하더니 점차 출전게임 수를 늘려가며 1994년부터 주전 3루수로 나서기 시작했다. 짐 토미의 수비력 개선과 벨들의 전쟁에 관한 최훈 mlb 카툰 파업 때문에 1994 시즌은 일찍 끝났지만, 20홈런을 치면서 가능성을 보였고, 1995년부터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클리블랜드에서 매년 30~4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팀의 주포이자 거포로서, 이 시기 클리블랜드의 최고의 살인 타선의 핵으로서 자신을 알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원래는 3루수였지만, 동시대 수준급 3루수였던 맷 윌리엄스를 트레이드 해 오면서 1997년부터는 1루수로 자리가 고정되었다. 1996년 38홈런을 치면서 거포로서 완전히 두각을 나타내는데 이 때 시작된 30홈런 행진은 필라델피아 필리스 이적 이후, 2005년 부상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9시즌 동안 계속되었다. 훌륭한 타자들이 많았던 당시 클리블랜드에서 많은 타자들과 함께 기량을 닦았고, 여기에 스승인 찰리 매뉴얼 당시 타격코치의 지도로 더욱 기량이 급성장했다.
팀의 주포로서 1990년대 후반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아쉽게도 월드 시리즈에 1995년과 1997년 두 차례 올라간 것이 다였다.
커리어 첫 포스트시즌인 1995년 토미는 ALDS에서 레드삭스를 상대로 3경기 16타석 2안타 1홈런 1타점 .599OPS를 기록하며 챔피언쉽으로 올라갔다. ALCS에서는 시애틀을 만나 5경기 17타석 4안타 2홈런 1.020OPS를 기록했다. 대망의 월드시리즈에서 토미는 6경기 21타석 4안타 1홈런 .707OPS를 기록하며 아틀란타에게 패배했다.
1996년에는 ALDS에서 볼티모어에게 4경기 12타석 3안타 .717OPS를 기록하며 시리즈에서 1:3으로 졌다.
1997년 ALDS에서 양키스를 상대로 4경기 16타석 3안타 .400OPS로 좀 부진했지만 팀은 3:1로 이겼다. ALCS에서는 볼티모어를 다시 만나 6경기 19타석 1안타 .387OPS로 더욱 부진했지만 팀은 4:2로 승리하며 다시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플로리다를 상대로 7경기 33타석 8안타 2홈런 .965OPS로 하위 시리즈에서의 부진을 만회했지만 팀은 3:4로 패배하며 또 준우승을 했다.
1998년 토미는 ALDS에서 레드삭스를 상대로 4경기 2안타 2홈런 .769OPS를 기록하며 ALCS에 올라갔다. ALCS에서 토미는 양키스를 상대로 6경기 7안타 4홈런 1.186OPS를 뽑는 좋은 활약을 했지만 2:4로 시리즈에서 지고말았다.
1999년 ALDS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대로 5경기에 나와 매경기 안타를 치며 총 7안타 4홈런을 때리고 1.535OPS라는 최고의 활약을 했다. 특히 5차전에서 토미는 2개의 홈런을 때려냈지만, 팀은 2경기를 먼저 이겨놓고도 페드로 마르티네즈[6] 에게 꽁꽁 틀어막히며 ALCS 진출에 실패한다.
2001년은 인디언스에서의 마지막 포스트시즌이었는데, ALDS에서 시애틀을 상대로 5경기 21타석 3안타 8삼진 .554OPS를 거두며 탈락했다.
그리고 팀은 그 전성기가 끝이 나고 돈이 없었다. FA 직전 해인 2002년 그가 기록한 성적은 52홈런 118타점인데[7] , 이 정도 타자를 잡기 위해서는 정말 거액이 필요했다. 그런데 클리블랜드가 제안한 금액은 6년 6,000만 달러. 팀을 좋아해서 팀에 남고 싶었던 토미였지만 이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고, 결국 디스카운트를 하면서 팀에 남는 대신에 다른 팀을 찾기로 결심했는데, 마침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서 성적 향상을 위해 발버둥을 치던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그를 주목했다.
2.2.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2002년 시즌 종료 후 FA 권한을 행사해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6년 8,500만 달러에 이적하게 된다. 이 때 '돈 때문에 필리스로 갔다'라는 인디언스 팬들의 비난이 있기도 했다. 어쨌든 필리스에서도 그의 실력은 여전해서 필리스의 중심타선에서 활약한다. 이적 첫 해인 2003년에는 타율 .266 47홈런 131타점 OPS .958, 2004년에는 타율 .274 42홈런 105타점 OPS .977을 기록했다. 2003년에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공동으로 전체 홈런왕이었으며, 거포로서의 자질은 리그를 바꿔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과시했다.[8] 그리고 2004년 6월 14일에는 통산 400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5년에 그가 지키고 있던 1루 자리에 라이언 하워드라는 걸출 한 신인의 등장했고, 때마침 전반기에 장기 부상으로 인해 시즌을 망치면서 결국 라이언 하워드에게 밀리고 말았다. 이 해 부상이 겹치면서 토미는 후반기만을 소화하며 커리어 최악의 성적인 타율 .207 7홈런 30타점에 그치고 만다. 하워드는 토미가 빠진 자리를 신인왕을 타면서 훌륭하게 메웠고, 토미의 자리가 없어지자 결국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결국 시즌 후에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한다.
2.3.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절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 된 이후에는 주로 지명타자를 맡으며 분전했다. 이적 첫 해인 2006년에 4월부터 10개의 홈런을 기록하더니, 타율.288 42홈런 109타점 OPS 1.014로 훌륭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이 시즌 신예였던 저스틴 벌랜더를 14타석 상대해 6안타 4홈런으로 발라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2007년에도 역시 30홈런을 넘기는 등 타율.274 35홈런 96타점 OPS .975를 기록하며 타격 실력은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줬다. 여기에 2007년 9월 16일에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전에서 500홈런을 달성하는 위업을 세웠다. 그의 500번째 홈런은 9회말 끝내기 홈런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엄청난 의미를 갖는 500번째 홈런을 끝내기로 친 선수는 토미가 유일하다. MLB 역대 23번째 500홈런 고지를 밟았다.
그러나 2008년에는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30홈런은 넘겼지만 비율스탯이 많이 떨어진 것. 특히 컨택이 많이 떨어진 부분이 크게 작용했다. 시즌 타율이 .245에 불과했을 정도. 그래도 AL 중부리그 타이브레이커 게임에서 결승 솔로홈런을 터뜨리며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끄는 해결사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09년에는 직전해와 비슷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으며, 7월 17일 경기에서는 만루홈런과 스리런홈런으로 7타점 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허나 화이트삭스는 토미의 성적이 서서히 하락하고 있으며, 은근히 연봉이 많았기에 계속 데리고 있기도 부담스러웠다. 결국 2009년 8월 31일에 토미는 LA 다저스로 트레이드 된다.
2.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다저스에서는 주로 대타로 뛰게 된다. 노쇠화의 기미가 있었으나 그래도 매년 20~30홈런을 기대할 수 있는 토미였기에 조금 의외였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저스에서의 성적은 17타수 4안타 3타점이 전부였다.
그리고 대타로 전락했기 때문에 이대로 커리어가 끝나는가 싶었지만...
2.5. 미네소타 트윈스 시절 및 600호 홈런 달성
2010년 FA시장에서 미네소타 트윈스로 자리를 다시 옮겼다. 주로 대타/백업요원으로 나서 연봉은 150만 달러 정도로 2009년 받던 1400만 달러에 비하면 눈물나는 값이지만 자신도 기량저하를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었는지 이 연봉을 수긍하고 선수 생활을 연장하는 것에 만족했다. 2010 시즌 짐 토미는 10개의 홈런정도만 쳐도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10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낮은 연봉임에도 이런 조건을 감수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2010년 대타로 나오면서 적당히 노장의 파워를 보이는 정도로만 활약하겠거니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미네소타 타선을 이끌었다. 저스틴 모노의 부상 공백을 제대로 메워주며 지명타자를 맡아 '''25홈런'''을 치면서 대활약. 팀을 PO에 올리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덕분에 2011년 연장 계약은 당연히 달성. 놀랍게도 2010년 조정 OPS는 182로 52홈런을 친 2002년 197에 이어 커리어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그 홈런 안 나오기로 유명한 타겟 필드에서 달성한 기록. 더군다나 이 시즌부터는 플래툰을 적용받아 좌완 투수 상대로는 잘 나오지 않았음에도 불과 340타석, 283타수에서 25홈런[9] 을 기록했고, 이 시즌 이후로 노쇠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토미의 마지막 관록을 보여준 시즌이 되었다.
하지만 2011년에는 역시 나이를 속일 수는 없는지 힘에 부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도 600홈런까지 이제 고지가 멀지 않았고, 결국, 2011년 8월 15일(현지시각).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원정에서 한 경기 2홈런을 몰아치며 통산 600홈런 마일스톤을 달성했다!
특히 그간 플래툰 시스템으로 우완 선발이 나오는 날만 지명타자로 출전했던 설움을 겪었던 것을 분풀이라도 하는지 600홈런째는 좌완 대니 셸레레스에게 뽑아냈다.
2016년 박병호가 신기록을 세우기 이전 타깃 필드의 역대 비거리 기록 1~3위가 모두 마흔살 토미의 기록일 정도로 토미가 이 2년간 미네소타에서 보여준 활약은 강렬했다. 그래서 쌍둥이 팬들은 라이벌 팀들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미네소타에서는 말년에 잠깐 뛴 선수임에도 '''타깃 필드 최초의 슬러거'''라며 준 미네전드로 칭송하기도 한다. 박병호 외에도 미네소타 선수의 크고 아름다운 홈런이 나오면 으레 토미옹이 거론될 정도.
2.6.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복귀
2011년 8월 말 웨이버 트레이드의 데드라인이 다가오자, 시즌을 제대로 망친 미네소타 트윈스는 포스트시즌이 어려워진 마당에 여러 선수들을 웨이버로 공시했다. 그리고 토미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포스트시즌을 위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트래비스 해프너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를 클레임했고, 마침내 트레이드가 결정되었다!
2002년 FA로 팀을 떠날 때 영 좋지 않게 떠났던 것을 기억하는 팬들도 이 딜에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심지어는 '트래비스 해프너 따위 그냥 방출하고 토미를 계속 쓰자'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2011년 이후 재계약에 실패하고 은퇴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는 토미지만 인디언스의 1990년대 황금기라면 황금기라 할 수 있는 그 시기를 함께했던 레전드의 귀환은 인디언스 팬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주로 2,3번에 자리잡는 추신수의 뒤인 4번 지명타자로 뛰며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마지막 일전을 대비하기 위한 카드였다.
토미 자신은 클리블랜드에서 0.296 타율에 3홈런 10타점을 기록하면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여줬지만 이미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의 법칙에 빠진 클리블랜드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2011년 미네소타와 클리블랜드의 성적을 합하면 15홈런 50타점이다. 한편으로 로니 치즌홀을 잠깐 좌익수로 보내고 주자 없는 상황에서 3루수로 잠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록 주자가 나가고는 다시 교체되었지만 올드팬들은 15년 전의 3루수 토미를 기억하며 감격에 빠졌다.
2.7. 2012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복귀와 볼티모어 트레이드
선수로서 거의 이룰 수 있는 기록은 다 이룬 셈이지만, 우승 반지를 아직 하나도 차지하지 못한 미련이 남아서인지, 예전 친정팀이자 평생의 은사인 찰리 매뉴얼 감독이 이끄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을 맺고 2012시즌은 필라델피아에서 보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우승 반지를 위해 올인 하는 듯. 필라델피아도 하풍기의 부상공백을 메울 적임자로 생각하는 듯 하다. 토미가 우승반지를 따려면 타격이야 그렇다 쳐도 1루수 자리를 지킬 정도는 해야 하는데, LA 다저스로 갔을 때 제임스 로니도 밀어내지 못하고 대타로 뛰었던 것을 보면 필리스에서 토미를 대타요원 이상으로 생각하는지는 미지수다. 필리스 입장에서는 하워드가 빠진 기회에 잠깐 뛸 로또를 구한다면 차라리 우타 1루수를 보강하는게 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점도 있고.
실제로 토미 영입 몇주 후 필리스는 3루와 1루를 볼 수 있는 타이 위긴튼을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주전 1루수보다는 콜로라도 로키스의 제이슨 지암비와 같은 역할만을 기대하는 듯.
인터리그가 시작된 현재 필리스에서 그의 가치는 극에 달하고 있다. 비록 등 부상으로 인해 부상자 명단에 오르는 등 1루 수비는 무리지만 미네소타 트윈스전 타겟 필드 경기에서는 무시무시한 비거리의 홈런을 때려내며 건재를 과시하고 트윈스 팬들에게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6월 17일 현재 새미 소사의 통산 609홈런(역대 7위)에 한 개 차로 다가섰다. 또한 3개 팀에서 100홈런 이상을 때려낸 기록을 갖게 되었다.[10] 2012년 6월 23일 경기에서는 탬파베이 레이스의 좌완 제이크 맥기로부터 대타 끝내기 홈런을 갈기면서 통산 609홈런으로 새미 소사와 타이를 이루었다.
그러나 반지를 위해 온 필라델피아는 정작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인해 동부지구 최하위로 처졌고, 아직 파워는 쓸만할 토미를 타선 보강이 필요한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트레이드로 영입하면서 토미와 필라델피아와의 인연은 결국 이렇게 막을 내렸다. 오랜만에 플레이오프 레이스를 벌인 볼티모어에서 오랜만에 플레이오프를 맛봤다. 비록 성적은 부진했지만 를 넘어서며 통산 612홈런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2.8. 은퇴
2013년부터 시카고 화이트삭스 단장 보좌를 맡고 있으며,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은퇴를 한 것으로 보였지만 2013년 12월 24일 기사에 따르면 본인은 공식적으로 은퇴를 하지 않았고 선수생활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않았다며 전면 반박했다. 문제는 2014시즌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것과 나이가 '''44세'''가 된다는 것. 복귀를 천명하기는 했지만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8월 2일, 클리블랜드와 은퇴식을 위한 1일 계약을 맺고, 경기 시구를 던지면서 공식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자신의 선수 경력을 마쳤다. 8월 3일에는 클리블랜드 홈 구장에 토미의 동상이 세워졌는데, 이는 클리블랜드의 전설적인 투수 밥 펠러에 이은 두 번째 영광이다.
3. 플레이 스타일
타율이 낮고 삼진 많은 OPS형 타자로서는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11]
짐 토미는 본인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2년까지 개인 통산 2,548개의 삼진을 당하며 이 부문 레지 잭슨[12] 에 이어 전체 2위에 올랐다. 레지 잭슨과 49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으니 한 시즌만 더 뛰면 기록 경신이 가능했다(...). 전성기 때도 삼진은 정말 많이 당하는 타자였다. 매년 140삼진은 기본으로 나왔고, 100삼진 역시 그가 30홈런을 쳤던 시즌마다 당했다. 통산 타율은 0.276, BB/K은 0.69개로 탑클래스에 드는 성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에 대비해서 통산 홈런 612개, 장타율 0.554으로 엄청난 삼진수를 만회할 수 있는 탁월한 장타력을 가진 선수였다. 타수당 홈런이 13.76개로 통산 4위, 30홈런 이상을 쳐낸 시즌이 12시즌이나 되고 특히 안타 대비 홈런의 개수는 정말 탁월하다. 또한 켄 그리피 주니어와 함께 약물에서도 자유로운 선수이기에 더욱 위의 기록이 빛나고 있다. 가히 약물시대의 레전드 청정타자 중 하나.
아울러 매년 많은 삼진을 당하지만, 동시에 그만큼의 볼넷도 항상 얻어내는 타자다. 그렇기 때문에 .270 언저리의 통산 타율에도 불구하고 '''통산 출루율은 4할'''이 넘는다. 거포이기 때문에 투수들이 피해가는 것도 물론 있겠지만, 본인의 선구안도 좋았다고 봐야 할 듯. 2018년까지 역대 볼넷 7위, 홈런 8위, 삼진이 역대 2위로 전형적인 OPS 타입의 타자이며, 아담 던의 상위호환이라 할 수 있다. 전성기에는 극에 달해 OPS 1.000을 넘긴 시즌이 6시즌이고, 1995년 이후 OPS 0.900 밑을 기록한 것도 단 4시즌에 불과할 정도로 출루와 장타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4. 명예의 전당 입성
위의 선수 경력을 살펴본 사람들이라면 이해하기 매우 어렵겠지만, 과거엔 짐 토미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부정적으로 본 소수의 의견도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당시 현역이었던 토미의 누적 기록이 다 쌓이지 않았고, 약물 거포들로 인해 수상 실적에 손해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약물 거포들의 실상이 다 드러났기 때문에 재평가 받았지만, 당시에는 현역 시절 평가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로 토미의 성적이 흔히 말하는 투승타타식 관점이 OPS 및 기타 조정스탯들을 중시하는 세이버메트릭스적 관점으로 변해 가던 과도기와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현재 기준에서 보면 10313 타석(역대 65위)에 들어서 0.402의 출루율(역대 51위)과 0.554의 장타율(역대 23위)을 기록한 OPS 0.956(역대 18위)의 타자에게 다소 낮은 타율(0.276)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출루율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OPS 히터인 토미 또한 공갈포 정도로 치부되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한때 그의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를 놓고 논쟁이 있었던 것이다.
국내에서도 그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불투명하다고 분석한 기자가 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스테로이드 시대에 600홈런을 달성한 원초적 한계와 지난 7년 동안 지명타자로 출전하였고 MVP 경력이 없어서 기자들에게 어필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토미의 600홈런 도전은 국내에서 마니아들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등의 근거 없는 의견들이 대부분이라서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 당연히 들어간다는 현지 의견과 달리 유독 한국에서는 위 기사를 포함하여 약물의 힘을 빌린 가짜 홈런왕들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탓에 지명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져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떡밥이 자주 풀렸을 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몇 퍼센트를 받고 들어가느냐 마냐의 문제일 뿐, 첫 턴에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선수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 투고타저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600홈런이라는 기록은 굳이 세이버매트릭스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정말 큰 가치를 갖는 업적이다. 일단 2017년 기준으로 15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600홈런을 넘긴 선수는 단 9명에 불과하다.[13] 이 중에서 3명의 약쟁이들을 논외로 친다면 사실상 6명에 불과하며, 이들 중 첫 투표가 2018년 투표인 토미와 아직 은퇴도 하지 않은 현역인 푸홀스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모두 첫 투표에 90%를 넘는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다. 현역 중에서는 알버트 푸홀스[14] 만이 유일하게 달성했고 500홈런을 바라보는 미겔 카브레라 정도가 그나마 달성이 가능한 정도로 여겨지는 대기록이다. 단순히 수치상으로만 따진다면 아무도 쿠퍼스타운 행을 의심하지 않는 데릭 지터의 안타 기록보다도 희소하다.[15] 간단히 말해 다음 600홈런을 누가, 언제 기록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미기가 못한다면 다음 세대가 누적을 쌓을 때까지 적어도 15년은 기다려야 하며, 그 물망에 오르내리는 선수들도 순탄하게 커리어를 이어갈 경우 명예의 전당행이 의심되지 않는 슈퍼스타들이다.
다만 원래대로라면 길어도 3년, 낙관적으로는 첫 턴만에 들어갈 만한 업적이지만, 하필이면 1990년대~2000년대를 빛냈던 수많은 스타들이 쏟아져나오는 시기인지라 몇 년간 쿠퍼스타운 입장이 빡빡해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크게 걱정할 것도 없는 것이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프랭크 토마스,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존 스몰츠, 켄 그리피 주니어처럼 첫 턴에 입성 가능할 것이라는 선수들이 손에 손 잡고 별 무리없이 입성한 덕에 600홈런 마일스톤의 짐 토미도 첫 턴에 들어갈 가능성이 충분히 높아졌다. 또한 토미의 HOF 후보 첫 해 동기 중 같이 손잡고 들어갈 후보가 치퍼 존스이고, 오래 버틸 만한 후보가 오마 비즈켈이나 앤드루 존스 정도라 토미의 첫 턴 입성 가능성은 더 높아졌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첫 턴에 입성한 타자인 프랭크 토마스와 비교해 보자. 누적 기록으로 따진다면 안타는 토마스가 100개 정도 더 많으나, 대신 토미는 홈런이 100개 가량 많다. 안타보다 홈런이 더 희소한 점도 있고 무엇보다 교타자가 아닌 슬러거들을 비교하는 것이니까 누적 기록은 당연히 토미의 우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비율 스탯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양쪽 모두 통산 OPS 0.900+에 4할 출루율, 5할 장타율을 달성한 것은 동일하지만 토마스가 타율 3푼, 출루율 1푼 정도 앞서기 때문에 토마스의 우위가 된다. 세이버 스텟의 경우 통산 WAR은 토마스 72.0(fWAR)/73.7(bWAR)에 토미 69.0(fWAR)/72.9(bWAR)로 토마스의 미세한 우위이며, 조정OPS 또한 토마스 156, 토미 147로 토마스의 근소 우위이다. 수상실적이나 기타 마일스톤의 경우 MVP 2회와 실슬 4회의 토마스가 실슬 1회의 토미보다 앞서지만 대신 토미에게는 600홈런 마일스톤이 있다. 종합해보면 기록으로 따질 경우 '비슷한 급의 선수이나 토마스의 근소한 우위'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고, 수상실적 또한 MVP 2회의 토마스가 앞서지만 토미에게는 그것을 메꾸고도 남을 만한 '청정 600홈런'의 상징성이 있다. 때문에 토미 역시도 토마스와 비슷한 대접을 받을 만한 타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비슷한 급의 선수인 토마스가 첫 턴 입성이었으니까 토미도 반드시 첫 턴 입성이 확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입성도 못할 것이라는 주장은 조금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토미는 이렇다 할 구설수도 없으며 오히려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상한 이력도 있었기 때문에 야구 외적으로 표가 깎일 요소도 없다.
결국 예상대로 2018년 1월 24일(현지시간) 발표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89.8%를 득표하며 1회차 입성에 가볍게 성공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뚜렷한 임팩트 없이 순수 누적 스탯으로 승부를 본 케이스기에 득표율은 90퍼센트를 채 넘진 못했지만, 현재까지 명예의 전당에 등록 된 253명의 선수들 중 기자단 투표를 통해 1회에 입성한 선수들은 54명에 그친다. 짐 토미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자신은 친정팀인 클리블랜드 모자를 쓰겠다고 했으나 논란이 되고 있는 와후 추장 로고 대신 C자 로고를 새겨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그의 전성기 당시 로고는 와후 추장 로고이지만 그가 저니맨 신세 이후 클리블랜드로 돌아왔을 때 로고는 C자 로고이기 때문에 역사의 정확성을 따지기 위해 베테랑 위원회와 합의 해보기로 했다. 결국 베테랑 위원회는 그의 의견을 수용했고 앞으로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 역시 와후 추장 로고를 쓰지 않게 된다.
2018년 8월 18일 그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쓰던 등번호 25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이날 짐 토미는 구단에 초청받아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도는 세레머니를 아들과 하면서 기쁨을 누렸다.
5.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 JAWS - First Base (10th)
6. 연도별 성적
7. 관련 문서
[1] 커리어 통산 3루수 492경기/1루수 1106경기/지명타자 818경기[2] 다른 두 명은 켄 그리피 주니어, 알버트 푸홀스.[3] 1747BB/2548K[4] 보통 OPS히터의 대명사로 아담 던을 떠올리지만 토미는 던의 상위 호환이라고 할 수 있다. 타율은 비교가 안되고 출루율 역시 던의 통산 출루율보다 높으며 통산 스탯도 훨씬 많이 쌓았다. 대략 타출장 모두 던보다 0.04정도 높다. 게다가 던은 토미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은퇴했기에 에이징커브를 고려하면 격차는 한참 더 벌어진다. 던의 하위호환 소리 듣는 타자는 많아도 상위호환 소리를 듣는건 사실상 토미가 유일하다. [5] 역대 가장 높은 OPS를 기록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타율에 비해 높은 장타율과 출루율로 안타 수에 비해 생산력이 높은 타격을 기록하는 유형의 타자들 중 가장 빼어난 선수라는 의미.[6] 이자는 1999 포스트 시즌에 17이닝 5피안타 0실점이라는 성적을 뽑았다.[7] 이 시즌에 릭 리드라는 투수를 상대로 18타석 7홈런 14타점을 뽑아내는 위엄을 보였다.[8] 한편 토미가 너무 잘하는 바람에(...) 앞날 창창한 거포 유망주였던 라이언 하워드의 커리어가 꼬여버리고 말았다. 결국 하워드는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풀타임 시즌을 갖게 된다.[9] 메이저리그 규정 타석는 502타석이고, 즉 타수로 따지면 무려 162타석이나 적은 것이다. 만약 토미가 규정 타석을 모두 들어섰다고 할 때 저 스탯이었다면 만 40세 시즌에 무려 37홈런을 기록한 것이나 다름없다.[10] 인디언스, 화이트삭스, 필리스[11] 이 타율이 낮다는 부분도 어디까지나 '''타력에 의존해서 명예의 전당에 도전할 정도의 대타자들 중에서''' 낮다는 얘기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따진다면 아담 던 같은 극단적인 수준도 아닌데다가 40넘어서까지 선수생활한 양반이 통산 타율 2할 7푼은 넘긴 것이므로 그렇게 낮은 것도 아니다. [12] 통산 2,597삼진[13] 베이브 루스, 행크 애런, 윌리 메이스, 켄 그리피 주니어, 알버트 푸홀스, 짐 토미,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새미 소사.[14] 2017년 6월 3일 달성.[15] 물론 지터에게는 양키스 원클럽맨이며 커리어 내내 유격수 포지션을 고수하면서 달성했다는 플러스 요인이 있기 때문에 600홈런 vs. 3000안타에서 600홈런이 더 희소한 기록이라는 이유로 토미가 지터보다 급이 높은 선수라고 할 수는 없다.(물론, 토미가 원클럽맨이나 유격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터보다 급이 낮은 선수라고도 할 수도 없다.) 다만 2019년 기준으로 MLB에서 3000+안타는 32명이지만 600+홈런은 9명이므로 선수의 커리어 전체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600홈런 마일스톤 vs. 3000안타 마일스톤의 비교라면 당연히 전자를 우위로 칠 수 밖에 없는 것. 실제로는 500홈런조차 27명으로 3000안타보다는 희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