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

 




'''Cadillac'''
{{{#ffffff
캐딜락}}}
[image]
''' 정식 명칭 '''
Cadillac Motor Car Division
''' 한국어 명칭 '''
캐딜락
''' 설립 '''
[image] 미국, 미시간, 디트로이트
1902년 8월 22일
''' 설립자 '''
윌리엄 머피
레뮤얼 보웬
헨리 마틴 리랜드
''' 본사 소재지 '''
[image] 미국, 미시간 워런
''' 핵심 인물 '''
스티브 칼라일[1] (대표)
''' 업종 '''
자동차 제조
''' 소유 '''
제네럴 모터스
''' 홈페이지 '''
캐딜락(영어)
캐딜락 코리아
1. 개요
2. 역사
2.1. 설립 이후 ~ 제 1차 세계 대전 이전 (1902 ~ 1914)
2.2. 제 1차 세계 대전 ~ 제 2차 세계 대전 (1915 ~ 1945)
2.3. 오일 쇼크 이전까지의 전후 호황기 (1945 ~ 1973)
2.4. 오일 쇼크 이후 드리운 그림자 (1973 ~ 1998)
2.5. Art & Science와 고성능 럭셔리 브랜드로의 부활 (1999 ~ )
3. 미국 대통령의 의전차량
4. 디자인
5. 이미지
6. 생산차량
6.1. 승용 세단/쿠페
6.2. SUV/RV
6.3. 레이스카
7. 단종된 차종
8. 여담
9. 둘러보기

'''Dare Greatly'''[2]

'''감히 위대하게'''

'''The standard of the world'''[3]

'''전세계의 표준'''

'''Best of all...It's a Cadillac'''[4]

'''최고 중의 최고...그건 캐딜락이죠.'''

''캐딜락의 슬로건''

[clearfix]

1. 개요


제너럴 모터스 산하의 프리미엄 브랜드이자 링컨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의 양대 산맥. 한국에서는 GM아시아퍼시픽지역본부를 통해 수입판매 중이며 GM아시아퍼시픽지역본부는 한국GM과 별개의 법인이다.[5]

2017년 말 한국 진출 이후 역대 최고 판매량 경신을 기념해 슈퍼주니어 동해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공개한 브랜드 송 '''“Perfect”'''

2. 역사


[image]
역대 캐딜락 로고 변천사

1901년에 헨리 포드의 '헨리 포드 컴퍼니'로 시작했으며[6] 포드가 포드 모터 컴퍼니로 옮기자, 헨리 릴런드(Henry Leland)는 파산 위기에 있던 ‘디트로이트 자동차 회사(Detroit Automobile Company)’를 인수해 ‘캐딜락 자동차 회사(Cadillac Automobile Company)’를 설립했다. 이후 1909년 GM에 인수되어 GM의 럭셔리 디비전이 되었다. 게다가 캐딜락을 GM에 판 이후 릴런드가 설립한 회사가 바로 현재 포드의 럭셔리 브랜드인 '''링컨'''이다.(...) 포드GM의 라이벌적 위치를 고려하면 엄청난 아이러니.
캐딜락이란 브랜드 이름은 1701년 미국 디트로이트(Detroit)시를 개척한 프랑스 귀족이자 탐험가인 ‘르쉬외르 앙투안 드라 모스 카디약(Le Sieur Antoine de la Mothe Cadillac)’ 경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캐딜락의 엠블럼 또한 캐딜락 가문의 문장을 따왔다.
약칭은 '''"캐디 (Caddy)".'''

2.1. 설립 이후 ~ 제 1차 세계 대전 이전 (1902 ~ 1914)


[image]
1902년에 ‘가변식 밸브 타이밍 1기통 엔진(Variable Valve Timing Single Cylinder Engine)’을 장착한 캐딜락 최초의 프로토타입 모델 Runabout and Tonneau를 750달러로 출시했다. 이 차량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25MPG(Miles Per Gallon)의 연비와 시속 30마일의 성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1갤런은 약 4.5리터, 1마일은 약 1.6km 정도이므로 이를 우리에게 익숙한 단위로 풀어 말하면 연비는 약 9km/L, 속도는 약 48km/h 정도 된다.
이후 1903년 뉴욕오토쇼에서 양산형 모델 A를 선보였다. 모델 A는 1903년을 통틀어 2,497대가 제작되었고 상류층의 큰 인기를 끌었다.[7]
[image]
1905년 캐딜락은 4.9L 4기통 엔진을 장착해 성능을 향상시킨 모델 D를 출시했다. 유성 기어식 3단 변속기가 장착되었고 제어식 스로틀, 그리고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크루즈 컨트롤'''이 장착되었다.
[image]
1907년에는 세계 최초로 250개 부품을 표준화해 부품 호환이 가능한 모델 S를 선보였고, 이 차는 1908년 영국왕립자동차클럽(RAC)으로부터 자동차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드와 트로피(The Dewar Trophy, 매년 뛰어난 성능과 기술력을 선보인 자동차 업체에게 상을 수여함)를 수상했다.
1909년 헨리 릴런드는 캐딜락을 제너럴 모터스의 대표 브랜드로 성장시킨다는 조건으로 캐딜락 오토모빌 컴퍼니를 제너럴 모터스에 매각했다. 1910년에는 지붕과 창문 일체형 바디의 자동차를 선보였고, 1912년에는 세계 최초로 전자식 시동장치를 장착한 모델 30으로 두번째 드와 트로피를 수상했다. 1914년에 최초로 V타입 수냉식의 실린더 8개를 사용해 2,400RPM과 70마력의 성능을 낼 수 있는 ‘V8 엔진(V8 Engine)’을 발표했고 이 엔진은 1915년에 V8엔진의 실용화에 성공하고 대량생산 체제로 생산체제를 전환했다.

2.2. 제 1차 세계 대전 ~ 제 2차 세계 대전 (1915 ~ 1945)



2.3. 오일 쇼크 이전까지의 전후 호황기 (1945 ~ 1973)


이 시대의 캐딜락을 대표하는 차종을 꼽자면 캐딜락 엘도라도를 꼽을 수 있다.
당시 인간을 다른 천체로 보낼 정도의 넘사벽의 호황을 누리던 미국의 경제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엘도라도의 모델 변경 주기이다. 엘도라도는 1953년에 1세대가 나왔는데, (당시 다른 미국차들의 유행처럼)1954년 바로 2세대가 출시되고 모델 주기가 길어봐야 4년 정도의 주기의 모델 변경 주기를 가졌다.[8] 특히 이때 GM을 이끌던 총괄 수석 디자이너인 할리 얼이 캐딜락의 디자인 전성기에 기여했고, 한때 야구계의 모 인사나 엘비스 프레슬리도 캐딜락을 높게 평가하곤 했다. 특히 1959년식 캐딜락 라인업은 당대 최대 크기의 테일핀, 길면서도 낮고 넓은 차체, 핑크색 외장컬러 옵션이 잘 알려져 가장 잘 알려진 캐딜락 차종 중 하나가 되었다.
더 이어서 1960년대에도 캐딜락은 여전히 전성시대를 구현하고 있었으며, 특히 1965년 출시된 5세대 엘도라도는 현재의 Art & Science 디자인 랭귀지에까지 내려오는 캐딜락 디자인 헤리티지의 시작이 되는 기념비적 차종이며, 얼의 후임인 빌 미첼이 1960년대의 GM차 및 캐딜락의 디자인을 이끌었다. 이번에는 크롬 도금의 비중을 대폭 줄여 그릴과 범퍼처럼 중요한 곳에 크롬 도금 사용을 집중시키는 등, 유럽 스타일을 일부 응용하면서도 미국적인 대범함을 결합한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이에 힘입어 캐딜락은 1966년에 판매량 60%가 늘어난 약 19만 2천대를 팔 수 있었고, 1968년에는 20만대 이상을 판매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시기의 엘도라도는 세로배치 전륜구동 설계를 올즈모빌 토로나도에 이어 사용해 코드 L29 이례 최초의 전륜구동 미국차로 기록되었고, 나중엔 엔진 배기량도 8.2L까지 확대되었다.
또한 전성기 동안에는 완전 자동변속기와 고성능 엔진, 차량용 트랜지스터 라디오(1957)와 셀프 레벨링 서스펜션(1957), 밝기 자동 조절식 헤드램프(1953) 등의 수많은 전동 편의장비처럼 기술적으로도 큰 발전이 이루어졌다. 특히 이중저류 브레이크 마스터 실린더(dual-reservoir brake master cylinder)는 미국 법규에서 규정하기 6년 전인 1962년에 캐딜락에서 내놓았고, 자사의 "터보 하이드라매틱" 3단 자동변속기와 완전자동 히터 및 에어컨 역시 캐딜락에서 선보였다. 당시 미국차의 특징이었던 테일핀 역시 1948년에 P-38 라이트닝 전투기에서 영감을 얻은 할리 얼이 도입했고, 총알탄 형상의 범퍼 가드도 캐딜락이 먼저 사용했다.

2.4. 오일 쇼크 이후 드리운 그림자 (1973 ~ 1998)


오일 쇼크 이후 캐딜락 역시 캐딜락 스빌이나 1977년식 드빌을 비롯해 다운사이징을 모토로 한 차종을 제작하기는 했으나, 쉐보레 카발리에를 뱃지 엔지니어링한 캐딜락 시마론은 역대급 망작으로 판정받고 쓸쓸히 퇴장했다. 시마론은 GM J 플랫폼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는데, 그 플랫폼은 쉐보레뷰익, 올즈모빌, 폰티악, 오펠, 복스홀, 이스즈자동차 등 정말 당시의 GM 브랜드라면 다 돌려썼다. 그나마도 성능 같은 부분도 다른 형제차들과 차별화되어 있지 않았고, 결국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재로까지 등장하고 말았다.
디자인에 있어서도 더 발전한 제품으로 승부하지 않고 비용절감으로 이윤을 내겠다는 GM 경영진의 뜻을 충실히 따른 총괄 수석디자이너 어빈 리비츠키의 지휘 아래, 뱃지 엔지니어링을 남용하거나 모든 차에 FF 레이아웃을 도입하겠다는 당시 GM의 무리수적인 정책[9]에 의해, 웅장한 후륜구동 레이아웃이나 이에 준하는 세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10]을 버리고 가로배치 전륜구동 레이아웃[11]을 쓰는 등, 가면 갈수록 캐딜락의 고유한 디자인 특징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나마 피닌파리나와 공동 제작한 캐딜락 알랑테 컨버터블이 예외이기는 했으나 상업적으로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나머지 라인업은 폰티악이나 올즈모빌, 뷰익 차량들의 붕어빵에 불과해져갔다.
1991년에 등장한 10세대 엘도라도는 명가가 얼마나 처절하게 몰락했는지의 척도였다. 지난 1세대 부터 4세대까지의 화려함의 극치도 5세대부터 이어온 고유의 디자인 헤리티지도 사라진, 과도한 프론트 오버행과 구식의 차체 비례는, 캐딜락이라는 브랜드와 그 대표작의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줬다. 그나마도 전형적인 뱃지 엔지니어링 차종이었던 9세대보다는 상황이 낫긴 했으나,[12] 결국은 1990년대 RV 열풍에 밀려 판매부진에 시달리다 10세대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그 이외에도 GM에서는 캐딜락의 매출액을 크게 늘리겠다고 렌터카로 물량을 왕창 몰아주면서 중고차 가격과 브랜드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뻘짓'''을 링컨과 같이 밀어붙이고,[13] 1980년대 기술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4-6-8기통 변환 엔진[14]을 장착하는 무리수를 두는 등, 위에서 상술한 온갖 삽질로 인해 캐딜락은 고급차로서의 옛 지위를 상실해가고 있었다.
게다가 모기업 GM의 재정 상황이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는 모습에 사람들은 캐딜락 또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2.5. Art & Science와 고성능 럭셔리 브랜드로의 부활 (1999 ~ )


캐딜락은 할아버지들의 바퀴 달린 쇼파라는 굴욕적인 평가, 낮은 판매 실적, 실추된 브랜드 가치를 회복할 계획을 세웠다. 1999년 북미국제오토쇼에 Evoq라는 컨셉카를 통해 새로운 캐딜락의 디자인 랭귀지 Art & Science를 선포했다. 캐딜락이 아트 앤 사이언스를 통해 선보인 초창기 디자인이 가장 과감했으며, 최근의 디자인은 트렌드와 공기역학을 따라가서, 초기의 각지고 날카로운 조형보다는 부드러운 인상의 조형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독창성은 유지하면서 세련미를 더하고 있다. 양산차에서는 1세대 CTSXLR부터 Art & Science가 적용된 디자인을 선보였다. 컨셉카 Evoq는 양산차 하드톱 컨버터블인 XLR에 거의 그대로 적용되었다. 또한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2002년에 발표된 미드십 스포츠 컨셉트 차량인 Cien이 주인공[스포일러]원본의 차량으로 등장하여, 경찰차를 따돌리는 등 나름 활약을 한다. 영화에서는 V12 엔진이라고 한다.
다만 캐딜락의 라인업은 2010년대까지는 스포티 럭셔리 브랜드라는 자신들이 주장한 방향성과는 다른 차인 DTS와 그 후속작 XTS, 역대급 실패작 중 하나인 BLS와 같은 전륜구동 차종들이 꾸준히 출시되었다. 특히 BLS는 '캐딜락의 새로운 방향성에 맞지도 않고 재미있는 차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급의 차 중에서 최고도 아니다'는 혹평과 함께 단명했다. 그래도 DTSXTS는 보수적인 장년, 노년층 고객들의 취향을 어느 정도 충족해서 판매 실적은 괜찮다.
그렇지만 캐딜락은 CTS-V와 XLR-V를 시작으로 BMW M, Mercedes-AMG, Audi RS, Lexus F, Jaguar R과 같은 고성능 디비전 캐딜락 V를 출범하여 고성능 스포티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단순히 스포티한 이미지가 아닌 CTS-V 쿠페와 ATS.V.R 등을 개수하여 GT3급 레이스에 출전하여 수상하고 2세대 CTS-V로 뉘르부르크링에서 순정 4도어 세단[15] 최초로 랩타임 8분대의 벽을 깨고 3세대 CTS-V로 고성능 고급 중형 세단 세계에서 600마력대의 시작을 알리는 등 단순히 이미지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닌 실제 생산 차량과 모터스포츠에서도 뜻깊은 성과를 거두었다.
2016년 7월 그룹 내 최상위 브랜드 겸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GM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캐딜락이, 향후 계획을 발표하였다. 보도에 따르면 캐딜락의 세단 라인업 계획은 스포츠 세단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다. 이전에 최고 마케팅 책임자 우베 엘링하우스나 요한 드 나이슨 사장이 ATS 아랫급을 후륜 기반으로 제작한다고 밝혔다가, 전륜 기반으로 제작하겠다고 발표가 나는 등 이야기가 많았던 ATS 아랫급 차량은 출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날이 성장해가는 크로스오버/SUV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서가 캐딜락에서 최종적으로 밝힌 공식적인 이유이지만, 사실상 계륵에 가까운 체급의 모델이어서 출시를 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16]
2018년 중반 캐딜락의 새로운 Alpha-numeric 명명 체계를 따라, CTS2019년 상반기에 CT5로 거듭나며, CT5 쿠페가 2020년 출시되고, ATS는 2020년경 CT4로 풀체인지될 전망이다. XTS2019년을 끝으로 후속 차종 없이 완전히 단종될 예정이다. CT62017년 상반기에 중국에서 제작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이 미국 시장에서 판매될 예정이며, 2018년형 모델부터 4.2L 트윈터보 LT5 엔진을 장착한다고 한다. 현재 개발 중인 캐딜락의 플래그십 모델은, 요한 드 나이슨 사장의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전통적인 4도어 세단이 아닌 다른 형태의 차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SUV, 크로스오버 라인업은 2018년에는 컴팩트 크로스오버 XT4, 2019년에는 XT5의 길이를 늘여 3열 공간을 확보한 XT6을 추가하여 라인업을 완성시켜 SUV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시장의 트렌드를 따르려는 계획이다. 에스컬레이드는 2017년형 모델에 10단 변속기 장착 외에는 큰 변동 사항없이 2018년까지는 현행 모델로 판매될 예정이며 풀체인지는 2020년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8년 4월, 요한 드 나이슨 캐딜락 사장이 퇴임했다. 캐딜락의 사업차 판매를 줄이고 공격적인 태세로 마케팅을 해도 기대만큼 브랜드가 살아나지 않았다는 게 이유라는 분석이 있다.(#)

3. 미국 대통령의 의전차량




4. 디자인


[image]
[image]
1999년 이보크(Evoq) 컨셉카
2016년 에스칼라(Escala) 컨셉카
Art & Science를 기반으로 디자인에 있어서 개인적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개성의 측면과 완성도에 있어 호평을 받는 캐딜락.
Art & Science의 대담함으로 인해 "어디서 갑자기 이런 디자인이 나왔지?"하는 반응이 많으나 Art & Science는 현대적인 세련미와 함께 캐딜락이라는 브랜드가 수십 년간 쌓은 정체성이 응축되어 나온 결과이다.

5. 이미지


20세기 후반까지 캐딜락의 이미지는 상어 지느러미(shark fin)형의 날카로운 형상의 디자인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모습과 5세대 엘도라도부터 시작된 정제되었으면서 웅장한 모습의 매우 고급스럽고 멋진 브랜드였다. 고급스럽지만, 중후한 권위만 있는 것이 아닌 멋까지 부리는 그런 느낌인 셈.
전후인 1950~70년대까지 엘비스 프레슬리, 마릴린 먼로 등 당대의 탑스타들과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정치인들이 애용하던[17] 캐딜락은, 그 유명한 '''롤스로이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정도로 성공과 부유의 상징이었던 최고급 자동차였다. 캐딜락에 대한 로망(?)을 다룬 곡으로 Southwest Cadillac과 맥클모어 & 라이언 루이스의 White Walls[18]가 있다. 이 외에도 게임 캐딜락&디노사우르스에서도 주인공의 주요 차량으로 나오기도. 정확히 말하자면 캐딜락 62시리즈의 1952년 판이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분홍색 캐딜락 엘도라도도 유명하다.
1960년대에 흑인들이 자신들을 무시하던 백인들에게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해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막 미국에 대량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던 한국인들도 그걸 보고 멋도 모르고 따라서 탔다고...
하지만 오일 쇼크 등으로 인해 효율적인 차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는 당대의 트렌드를 무시하고, 플랫폼과 파워 트레인의 공유는 현재에도 이루어지지만, 당시 GM의 차는 브랜드의 엠블럼 외에는 다른 점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브랜드마다 같은 차를 재탕하고 있었고, 그룹 내에서 서로 겹치는 모델도 너무 많았다. 그 결과 캐딜락도 한물 갔다는 인식이 늘어났다. 대표적인 예로 캐딜락 시마론이 있다.
거기에다 1965년 5세대 캐딜락 엘도라도부터 시작된 볼록한 후드와 깎아지른 버티컬(Vertical, 수직) 타입 헤드램프, 위에서 봤을 때 V자 모양의 뾰족한 후드, 웅장한 멋 등의 고유한 디자인 헤리티지까지 버린 10세대 엘도라도와 스빌 STS, 카테라의 등장은 명가의 몰락은 시간 문제라는 세간의 평의 명확한 근거가 되었다.
한때 젊은층을 공략한다고 사브 9-3을 기반으로 한 전륜구동 세단인 캐딜락 BLS라는 차종을 출시했으나, 처참하게 망해버리면서 캐딜락 시마론 이후로 손꼽히는 GM의 역대급 실책이 되어버렸다.
1999년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 오토쇼에서 다양한 컨셉을 공개하며 과거의 디자인 헤리티지를 세련되게 계승한 '''아트 앤 사이언스'''라는 디자인 랭귀지를 선포하여 과감한 직선과 후륜구동 특유의 역동성과 우아함을 2016년 현재까지 세단 라인업에 불어넣고 있으며 또한 차기 최신 기술들을 적용한 컨셉카와 실차를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2021년 본고장 미국에서의 캐딜락의 이미지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위에 서술했듯이 힙합 등으로 벼락부자가 된 흑인들이 캐딜락을 몰고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타고 다니는 형태가 많아 졸부들이 타고 다니는 차라는 이미지가 일부 형성되었다. 자신의 부를 지나치게 과시한다는 이미지로 인해 백인 중산층의 경우 캐딜락 보다는 GMC 차량을 더 선호한다.[19]

6. 생산차량



6.1. 승용 세단/쿠페



6.2. SUV/RV



6.3. 레이스카


  • DPi-V.R: DPI 클래스에 참가하는 프로토타입이며, 현재 엔트리된 DPI의 참가댓수중 가장 많다
  • 노스스타 LMP

7. 단종된 차종


  • 엘도라도
  • 스빌
  • 드빌
  • 플리트우드
  • 카테라
  • ELR
  • STS
    • STS-V : STS에다가 노스스타 V8 슈퍼차저 엔진을 달고 나왔던 모델이다.
  • ATS : 후륜구동 중형 (D 세그먼트) 세단/쿠페. 2013년에 세단이 출시됐고, 쿠페는 2015년부터 대한민국에 판매 중이다. 2019년 CT4로 완전변경되었다.
    • ATS-V: ATS의 고성능 버전. 450마력 V6 3.6L DOHC 가솔린 트윈터보 엔진이 장착된다.
  • CTS : 후륜구동 준대형 (E 세그먼트) 세단. 2014년 3세대 세단이 대한민국에 출시됐다. 2020년 CT5로 완전변경되었다.
    • CTS-V: CTS의 고성능 버전. 648마력 V8 6.2L OHV 가솔린 슈퍼차저 엔진이 장착된다.
  • DTS : 대형 전륜구동 세단. 2011년에 단종되었으며 더 만들 수도 없는 것이, 캐딜락의 전통과 같은 엔진인 노스스타(Northstar) 291마력 V8 4.6L 엔진이 2010년에 단종되었기 때문이다.
  • XTS : 전륜구동 대형 세단. (F세그먼트) 한국 시장 미출시. 임팔라와 형제차.
  • BLS
  • XLR : 6세대 쉐보레 콜벳의 프레임을 이용해서 만든 2인승 로드스터. 전동식 하드탑을 갖추고 있다. 엔진을 콜벳의 푸시로드식 V8 대신 캐딜락에만 적용하던 DOHC V8 노스스타 엔진을 적용하고, 타이어가 235/50R18이라는 좁은 규격이었기 때문에 성능은 콜벳에 미치지 못했다.
  • SRX : AWD 크로스오버 SUV. 2세대부터 전륜구동 기반의 세타 플랫폼으로 변경되었으며, 이 플랫폼은 쉐보레 이쿼녹스, 쉐보레 캡티바와 공용한다. 데뷔당시 SUV부분 뉘르부르크링 랩타임 1위를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성능 SUV를 지향했던 1세대와 달리 2세대는 전형적인 고급 도심형 엔트리 SUV 스타일로 바꿨다. 267마력 V6 3.0L DOHC 가솔린 직접분사(SIDI) 엔진이 장착되며, 연비는 7.6km/L.[20] 멕시코 현지공장에서 생산했다. 후속 모델은 XT5이며, 1세대 7인승 사양의 경우는 XT6가 이를 계승하게 되었다.
  • 알랑테
  • 칼레
  • 시리즈 60
  • 시마론

8. 여담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에서 1946년부터 1955년까지 통산 369홈런을 때려 낸 외야수 랄프 카이너는 '''홈런타자는 캐딜락을 타고, 단타타자포드를 탄다''' (Home run hitters drive Cadillacs, and singles hitters drive Fords.)[21]라는 말로 홈런타자의 가치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한 바 있다.
[image]
캐딜락 엠블렘, 일명 '''약장로고'''를 오랫동안 적용하여 전통을 자랑하지만, 엠블럼이 워낙 자주 변경되는 편이다. 공식적으로 거의 30여 차례 크고 작은 수정을 거쳤다. 엠블럼의 유래는 위의 역사 항목에서 서술했듯이 캐딜락 가문의 문장을 차용한 것이다.
[image]
[image]
14년만에 다시 엠블럼를 바꾸었다. 월계관과 문장 안의 새[22]가 빠지고 방패 모양의 로고만을 남겨두었다. 변경된 엠블럼이 젊고 신선하며 Art & Science 이후 캐딜락의 방향성에 어울린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월계관이 없어지면서 옛 엠블럼에 비해 품격이 떨어져 보인다는 평가도 있고 옛날에 디자인된 차들에는 신형 엠블럼이 영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 또한 많이 있다.
미국의 자동차 브랜드 중 뷰익 다음으로 오래 되었으며, 브랜드 가치로는 미국의 자동차 중 원탑이다. 지금 미국의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는 캐딜락과 링컨밖에 없는 실정인 데다, 미국을 제외한 해외 시장에서의 캐딜락의 판매량은 안습이기는 하지만... 다만 최근 중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부쩍 늘고 있다. 최근에는 같은 GM 소속 브랜드인 뷰익과 함께 중국에서 폭발적인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2018년 전세계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 전체 중 7위에 랭크되었다. # 미국에서 판매량이 요 몇년간 다소 줄었는걸 감안하면 선방한 셈.
미국인들이 독일3사의 운전감각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캐딜락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ATS를 필두로 그 뒤로 출시한 3세대 CTSCT6의 성능과 운전 감각을 독일차에 근접한 출중한 실력으로 선보였다. 국내에서도 캐딜락은 좋은 성능으로 많은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바닥이라 판매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만 매해 점진적으로 성장하고는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대한민국에서도 그 동안의 부침에서 벗어나는듯한 모습이지만, 사실 성장의 이면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통한 할인 판매정책이 있다. 2016년 4월 CTS 4륜 최고급 트림 기준으로 출고가에서 '''1,700만원 가까이 싸게''' 팔고 있다. 이렇게 대규모로 진행되는 파격적인 프로모션 할인은 단순히 보면 소비자들이 좋은 차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만큼 문제를 떠안고 있다. 일단 평소에 정가를 주고 구입한 소비자들은 더 싸게 살수 있었던 차를 비싸게 주고 샀다는 배신감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고, 브랜드는 신뢰를 잃게 될 수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사실상 전부를 잃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게다가 이렇게 할인을 진행하면 그만큼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GM코리아는 A/S와 같은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줄이거나 부품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는 등, 결국 캐딜락을 선택한 소비자들에게는 손해가 되는 정책을 취할 수 밖에 없다. 한국 수입차 시장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의미있는 시장 지분을 얻고자 한다면 GM코리아는 좀 더 건전한 판매 정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수입차 브랜드가 그렇듯, 국내 AS 센터에 대한 평이 상당히 많이 갈리는 편이다. 일례로 최근 커뮤니티에서 제주 캐딜락 서비스 센터에 대한 토로글이 올라왔다. #
대한민국에 파는 모든 미국차는 부품가가 비싸다는 말이 나돌았고 과거엔 캐딜락도 상당히 비싼 편이었지만 최근에는 수입차 치고는 부품가가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특히 9세대 말리부의 2.0 LTG엔진이 ATS, CTS, CT6와 공유하면서 엔진관련 부품이 국산차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저렴하다. 전체적인 파워트레인의 가격이 독일3사보단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라서 수입차 중에선 가장 부담이 적은 편이다. 마지막 부분에 부품가격 비교표를 참고. 캐딜락은 프로모션 조건이 자주 좋기 때문에 가성비와 유지비의 측면으로는 수입차 중 최고수준의 메이커다. 하지만 박으면 캐딜락도 수입차기 때문에 독일차를 뺨치는 판금비는 각오해야 한다. 특히 CT6는 알루미늄을 떡칠한거나 마찬가지라...
한국이나 일본의 어르신들에게는 저 브랜드 자부심이 괴상하게 변형되어 쓰이기도 한다. '''"죽을 때는 캐딜락 좀 타야 되지 않겠냐?"''' 일본에서 고급 장의차량으로 캐딜락의 왜건이 많이 쓰이는 것에 대한 풍자. 요즘은 한국에서도 일본 상조사업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가끔 캐딜락 장의차가 보인다.[23]
가끔씩 캐딜락의 수입 법인 GM코리아와 한국GM과의 통합설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당사자들은 "각 법인 특성에 따른 제반 법·제도 요건이 달라 실효성이 없다"라고 매번 부인하지만, 2017년 8월까지 한국GM의 대표이사를 맡았던 제임스 김이 GM코리아의 기타비상무이사로 올라가 있었고, 2016년 2월 ATS-V 발표회에서 장재준 GM코리아 대표와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물론 출신 성분은 전혀 다르다. GM코리아는 사브대한민국 법인으로 시작했고, 한국GM은 대우자동차에서 분리되었다. ## 하지만 2018년 8월에 GM코리아는 '캐딜락코리아'로 사명을 변경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캐딜락으로 사명을 바꿨다고 한다.
캐딜락이 정치 논란에 휩싸였다. Real People이라는 이름의 미국 내 온갖 계층의 사람들을 담는 광고에 출연할 사람을 모집하는데 그 역할이 대안 우파 인사[24]라, 사회적으로 영국의 통신사 <로이터>를 통해 처음 알려진 이번 사건에 대해 인터넷에서 비난이 크게 일었다. 극작가이자 연극배우인 지나 영(Gina Young), 변호사 체이스 스트레인지오(Chase Strangio)는 물론 대부분의 시민들이 이번 사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표했다. 다만 이 모집을 캐딜락이 직접 기획한 것은 아니며, 이 모집을 기획한 회사는 이 공고를 낸 직원을 해고한 후, 캐딜락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한 글을 페이스북에 게재했다.

9. 둘러보기




[1] 요한 드나이슨의 후임으로 2018년 4월 18일 취임했다.[2] 2015년 2월, CT6 티저 광고에 최초로 공개된 캐딜락의 최신 슬로건이다.[3] 캐딜락이 북미 시장은 물론 세계 럭셔리 자동차의 지존이던 시절의 과거 슬로건. 지금 기준으로는 회색곰 대마초 피우던 시절 얘기지만...[4] 1980년대 중반 슬로건[5] 다만 한국GM의 사업장에 붙어있는 브랜드 엠블럼은 쉐보레와 캐딜락 둘 다 있다.[6] 이 때문에 캐딜락이 뷰익보다 오래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7] 이런 역사 덕에 캐딜락은 GM의 최고 럭셔리 디비전 자리를 지키고 있다.[8] 경영 분야에서 이러한 전략을 계획적 진부화라고 한다. 1955년에 나온 자동차 모델은 272개였지만, 1963년엔 429개로 늘었다. 이 중 GM은 1955년 85개 모델을 내놓았지만, 1963년엔 138개를 내놓았다. 역설적으로, 계획적 진부화는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성능 경쟁력을 갉아먹어 이후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큰 타격을 입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이후 역사에서도 후술.[9] 이는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인한 연비규제 강화가 원인이었으나, GM 내 라인업에서 대형차가 주류라는 이유로 회사 내의 모든 대형차, 고급차까지 전륜구동+소형화하는 실책을 저질렀다.[10] 아우디가 주로 사용하는 레이아웃이기도 하다.[11] 이 레이아웃은 주로 중저가 대중 브랜드들이 쓴다.[12] 9세대 엘도라도에서 쓰던 새 디자인 큐는 동시대의 신형 스빌에도 적용되어, 유럽식의 대범한 디자인 큐로 호평받았다.[13] 밥 루츠의 자서전 빈 카운터스에서는 렌터카 업체들이 조금만 주행거리가 되어도 싸게 차를 처분해버리고, 중고차 물량을 싸게 살 수 있게 되면서 캐딜락과 링컨도 흔해빠진 브랜드로 취급받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언급했다. 그 외에도 한 사람이 꾸준히 쓰는 게 아닌, 여러 사람들이 짧은 기간동안 돌려쓰는 특성상, 렌터카 고객들이 렌터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차량 상태도 천자만별인 점도 생각해볼만한 점.[14] 4기통, 6기통, 8기통을 모두 지원하고 상황에 맞게 기통 수를 변환할 수 있는 기능으로, 지금도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라는 이름으로 들어가고 있는 기능이다. 지금이야 기함인 CT6, 에스컬레이드에도 적용되고 (##) XT5에서는 공인연비를 뛰어넘는 실연비로 호평받는 기능이지만#, 1980년대 당시 전자기술의 한계로 기통 수를 바꾸는 동안 소음과 진동이 심했고, 엔진이 아예 멎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이 기능이 들어간 차를 구입한 차주들은 아예 기능 자체를 끄고 그냥 8기통 엔진으로만 사용했다.(#)[스포일러] 주인공은 클론이고 원본 사람은 따로 있다.[15] 애프터 마켓 튜닝 차량이 아닌 공장에서 생산된 기성품 상태 그대로의 순정.[16] 처음에 최고 마케팅 책임자 우베 엘링하우스나 요한 드 나이슨 사장이 언급한 대로 후륜으로 출시할 경우, ATS보다 더 작은 체급인 Sub-ATS 세단이 공간 확보가 잘 될 수 있겠는가? 소형 차량 체급에서 후륜 구동 방식은 1시리즈2시리즈 쿠페 정도밖에 없다. 그만큼 소형 체급에서는 공간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대부분 전륜구동을 선택하고, 1시리즈마저도 다음 세대부터는 전륜구동으로 바뀐다. 그렇다고 전륜구동을 선택하기에는 과거의 실패작들이 떠오르고, 현재의 후륜 구동 기반 스포츠 세단 이미지에도 맞지 않다. ATS 아랫급 세단이 후륜으로 나올 경우 마니아들이 인기를 끌 수 있겠으나, 그와 비슷한 체급의 후륜구동인 BMW 2시리즈가 미국에서 13,000여대 팔린 것에 비교했을 때 전륜구동 방식인 메르세데스-벤츠 CLA아우디 A3는 미국에서 각각 35,984대, 29,643대 팔렸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판매량에 목마른 캐딜락에게는 마니아들의 지지보다는 대중들의 선택이 절실하겠지만 세단 라인업의 통일성을 위해 소형 세그먼트는 출시하지 않기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17] 지금도 미국 대통령의 의전용 방탄차는 여기서 만든다. 3번 문단 참고바람.[18] 맥클모어는 백인 랩퍼로 다른 랩퍼들이 자신의 비싼 차를 자랑하는 노래를 많이 내놓지만 오히려 "나는 할아버지와 같은 모델을 몰지!" 하며 캐딜락을 찬양하는 노래.[19] GMC도 Denali 등급 정도 올라가면 내장은 캐딜락과 맞먹을 정도라 타고 다니기에도 부담없어 하는 분위기이다.[20] 야구선수 박병호가 한때 2세대 SRX의 소유주였다. 현재는 폭스바겐 CC로 차를 바꿨다고 한다.[21] 이 어록이 국내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포드가 뜬금없이 링컨이나 벤츠 등으로 뒤바뀌기도 하나, 원전은 포드가 맞다. 벤츠는 2차 대전 이전부터 고급차로 이름이 높았고(히틀러나 힘러 등 나치독일의 고위급 인사들에게 관용차로 제공되었다.) 캐딜락보다 싼 차도 아니다. 링컨 또한 캐딜락과 함께 당시 미국의 고급차시장을 이끌던 쌍두마차였다.[22] 얼핏 보면 오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메를레트(merlette)라 하여 제비에서 부리와 다리를 생략한 문장이다.[23] 캐딜락이나 링컨을 기반으로 한 장의차가 많이 있는 이유는 GM과 포드에 각각 캐딜락과 링컨의 스트레치드 리무진과 장의차를 만드는 공식 부서가 있어서 구하기 쉽기 때문이다.[24] 대안 우파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들을 우파라고 칭하는 것은 정통 우파에 대한 모독일만큼 극단주의자들이다. 그동안 대안 우파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해왔으나,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 점차 사회에서 영향력이 커질 전망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