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 커닝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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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랜디 커닝햄, 그의 RIO 윌리엄 드리스콜, 당시 해군참모총장 엘모 줌왈트
1947년 3월 5일 출생
랜디 '듀크' 커닝햄은 미합중국 해군 항공대의 '''베트남 전쟁에서 유일한 에이스'''이자, 전역 후 미합중국 연방 하원의원을 8선 역임했지만, 대규모 비리 사건을 저질러 명예를 모두 잃고 의원직 사임, 징역 8년의 수감생활을 겪었다.
1. 군 입대 전
2.1. 에이스의 날
3. 연방 하원의원
4. 비리 사건


1. 군 입대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미주리 대학교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고등학교 체육교사 생활을 하다가 1967년 미합중국 해군에 입대, 항공장교가 되었다.

2. 베트남 전쟁


항공장교가 된 후 주 기종을 F-4 팬텀으로 받았으며, 베트남 전쟁에 파견된 키티호크급 항공모함 USS 아메리카에 배치되어 첫 전투 비행을 했다. 그후 본토로 배치되어 후일 탑건 스쿨이 되는 해군전투기병기학교(Fighter Weapons School)과정을 수료했다.
1971년, 해군 대위 커닝햄은 키티호크급 항공모함 USS 컨스텔레이션의 F-4 팬텀 비행대 VF-96 '파이팅 팰콘즈'에 배치되어 다시 베트남 전장으로 향했다. RIO(후방석 조종사) 윌리엄 '아이리시' 드리스콜 중위와 한 팀이 된 그는 1972년 1월 19일, MiG-21 한 대를 AIM-9 미사일로 격추하면서 첫 격추 스코어를 올렸다.
1972년에 베트남전 최후의 대규모 항공작전인 라인배커 작전이 발동되면서 공중전도 더 자주 벌어지게 되었다. 1972년 5월 8일, 커닝햄-드리스콜 콤비는 A-6 공격기 편대를 호위하던 작전 중 MiG-17 한대를 격추하여 두번째 킬 스코어를 올렸다.

2.1. 에이스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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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닝햄의 마지막 교전을 다룬 그림.
하세가와(모형 메이커) 플라모델 박스아트이다.
1972년 5월 10일, 커닝햄-드리스콜 콤비는 콜사인 'Showtime 100' F-4J 전투기로 출격했다. 이날의 임무는 하이동 철도 폭격 임무였는데, 이 공격대를 저지하기 위해 북베트남군도 다수의 전투기를 출격시켜 대규모 공중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당시 커닝햄의 전투기는 AIM-7 스패로우 2발, AIM-9 사이드와인더 4발, 록아이 클러스터 폭탄 6발로 무장한 상태였는데 록아이 6발을 목표 지점에 투하한 후 함께 출격한 A-7 공격기 편대를 호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MiG-17 한 대가 공격대에 달려들었고 커닝햄은 이 MiG-17과 싸워 격추시켰다. 그때 또 다른 Mig-17이 동료 F-4를 추격하는 것을 보고 그 미그를 추격해 4번째 킬 스코어를 올렸다.
그때 또 다른 MiG-17이 끼어들었다. 그 적기는 녹색과 갈색의 위장무늬를 하고, 기수에 13개의 킬마크와 3020이라는 기체번호가 그려져 있었다. 커닝햄-드리스콜 콤비는 그 기체가 미군들 사이에 소문으로 퍼진 북베트남의 에이스 무덤 대령일 것으로 짐작했고, 과연 그 MiG-17은 뛰어난 기동성으로 커닝햄을 거의 잡을 뻔 했다. 그러나 강력한 엔진을 가진 팬텀 쪽이 에너지 파이팅에서 우위를 점했고, 결국 커닝햄은 그 MiG-17을 격추하여 다섯번째 킬 스코어를 올리고 에이스 파일럿에 등극했다.
그러나 모함으로 귀환 도중 북베트남군의 SA-2 지대공미사일이 날아왔고, '쇼타임 100'은 적기를 격추한 전투기들이 모함 상공에서 행하는 '빅토리 롤'도 못해보고 결국 격추되고 말았다. 커닝햄과 드리스콜은 비상탈출에 성공하여 미 해군 구조헬기에 구조되어 모함으로 돌아왔으며, 미 해군의 유일한 베트남 전쟁 에이스로 영웅시되었고 해군십자훈장(Navy Cross)을 받았다.
베트남전 유이의 에이스인 공군의 스티브 리치보다 더 유명세를 탔는데, 차곡차곡 킬 스코어를 쌓아간 리치에 비해 커닝햄은 5월 10일 하루에 무려 3기의 적기를 격추했으며 그 중 1기는 적 에이스였다는 점에서 더 극적인 요소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후 커닝햄은 탑건 교관 직을 맡았으며, 탑건에서 활동하는 가상적 비행대 VF-126 비행대장을 거쳐 1987년 해군 중령으로 전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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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과학 프라모델
커닝햄의 탑승기 '쇼타임 100'은 수많은 회사에서 모형으로 나왔으며, 마지막 상대인 MiG-17 3020번기의 모형도 많은 회사에서 출시되어 있다.

3. 연방 하원의원


군에서 전역한 후 한동안 영화, TV 등에서 군사자문으로 활동하다가, 공화당에 입당하여 1991년 샌디에고 지역구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8선 의원으로 공화당 중진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4. 비리 사건


2005년, 커닝햄은 자신의 집을 한 군납업자에게 팔았는데, 시가보다 훨씬 비싸게 판 것을 언론이 알게 되면서 주택 매매를 가장한 뇌물이 아닌가 조사를 받게 되었고, 이 조사 결과 드러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커닝햄은 하원 중진이고 전쟁영웅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악용해, 미국 국방부와 계약을 맺으려는 군납업자들에게 브로커 노릇을 해주고 한 건당 최소 14만 달러, 최고 80만 달러라는 거액의 뇌물을 받아왔던 것이다.#
심지어는 이 뇌물 거래에 포터 고스 당시 CIA 국장까지 연루된 사실이 밝혀져 고스 국장이 사임했고, #. 커닝햄 본인도 2005년 하원의원직을 사임한 후 2006년 재판에서 징역 8년 4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2013년 2월, 8년 형기를 꽉 채우고 출소했으며, 비리로 모은 재산도 전부 추징되어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