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허성
熱河省(열하성). 만주국,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의 옛 행정구역이다. 청대에는 청더를 가리키는 지방이름이었으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열하"란 이 지방을 일컫는다.
우정(郵政)식 표기로는 Jehol.
1. 중화민국의 행정구역
1928년에 설치된 옛 중화민국의 성. 봉천군벌 탕위린의 지배를 받았으나 1931년 만주사변으로 봉천군벌이 몰락한 이후에 장쉐량을 비롯한 봉천군벌 지도부가 이쪽으로 피난 오는 등 대혼란을 겪었다. 1932년 만주국이 수립된 이후 일본 제국은 열하성을 만주국의 영토로 선포했고 1933년 열하사변을 일으켜 열하성을 점령했다. 탕위린은 도주했고 장쉐량은 패전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며 열하성의 잔여 지역은 허잉친이 지휘하는 중앙군이 접수했지만 일본군에게 패해서 쫓겨났다. 중화민국은 1933년 5월 당고정전협정을 체결함으로 일본군의 진격을 하북성 경계에서 정지시켰다.
일본군에게 점령된 후 만주국의 행정구역이 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뒤 국민정부에 반환되었으나 요심전역에서 국민정부가 패한 후 중국 공산당의 치하에 들어갔다. 하위 편제는 대만/영유권 주장 지역를 참고할 것.
2. 중화인민공화국의 행정구역
러허성은 국부천대 이후에도 6년간 존립했지만, 1955년 공산당 정권에 의해 폐지되어 성도인 청더 (承德) 현 일대는 허베이성에, 동부는 랴오닝성, 북서부는 내몽골 자치구에 편입되었다. 당시 인구는 약 610만명.
3. 역대 수반
3.1. 북양정부
북양정부 시기까지는 신강, 내몽골, 티베트, 수원, 열하 등의 변경 지역에 대해서는 오족공화의 이념에 따라 소수민족 자치를 표방했기 때문에 성이 아니라 변구라는 개념으로 존재했으며 정부수반 명칭도 다른 지역과 달리 도통을 사용했다.
3.2. 국민정부
1928년 12월, 동북역치로 봉천군벌이 난징 국민정부에 복속된 후에는 소수민족의 개념을 인정하지 않았던 국민정부의 방침에 따라 열하도 정식으로 성으로 승격되었으며 다른 성처럼 성정부가 설치되었다. 1933년 열하사변으로 만주국에 편입되었으나 중일전쟁 이후 다시 지방장관을 임명했다.
3.3. 만주국
1931년 만주사변 이후 만주국의 지배 영역은 흑룡강, 길림, 요녕 3개 성이었으나 관동군은 열하성 역시 만주국의 강역에 들어간다고 선포하고 1933년 열하사변을 통해 열하성을 침탈했다. 1934년 10월에 만주국 행정구역이 개편이 행해지면서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은 9개로 분할되었으나 러허성의 구역은 크게 변동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하지만 중일전쟁 패배 이후 만주국이 해체되면서 열하성은 국민정부로 반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