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드 1세
1. 소개
벨기에 왕국의 초대 국왕.
2. 생애
독일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는 프란츠 작센 코부르크 잘펠트(Saxe-Coburg-Saalfeld) 공작[2] , 어머니는 에베르스도르프 백작부인 아우구스테 로이스이다. 젊었을 때는 나폴레옹 전쟁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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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4세의 외동딸로 차기 영국 왕위 계승자인 샬럿 공주와 결혼했다. 샬럿 공주와 레오폴드는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으나 일각에서는 영국 왕실의 재산과 권력을 노린 결혼이라면서 레오폴드를 비난하기도 하였다. 만약 샬럿 공주가 오래 살았다면 레오폴드가 조카 앨버트 대공의 역할을 대신 맡았을지도 모르지만 결혼한 다음 해 샬럿 공주가 아들을 사산하고 사망한다.[3] 샬럿 공주의 사망은 부모와 영국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비탄을 안겨줬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레오폴드였다. 레오폴드는 아내가 죽은 뒤에도 영국에 남았으며 평생 첫 아내를 잊지 않았다.
신생 그리스 왕국의 왕으로 추대 받았으나 거절하였고 1831년 독립한 벨기에의 왕으로 즉위한다. 뛰어난 외교술로 위태로운 벨기에의 독립을 유지하는데 기여하였으며 유럽 대륙을 휩쓴 혁명의 물결 속에서도 벨기에의 입헌군주제를 공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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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프랑스 왕 루이 필리프 1세의 딸 루이즈[4] 와 재혼한다. 루이즈는 아름답고 조용한 여성으로 첫 아내 샬럿 공주를 잊지 못 하는 남편을 위로하기 위해 고명딸에게 샬럿 공주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으며[5] 레오폴드 1세도 그녀를 아내로서 존중하고 항상 함께 했다. 아르카디 클라렛 등 남편의 정부를 참을성 있게 견뎠으나 이것이 탈이 되었는지 아버지 루이 필리프의 퇴위 소식이 전해지자 충격을 받고 병에 걸려 결국 사망한다.
빅토리아 여왕과 그녀의 남편 앨버트 대공의 숙부로[6] 빅토리아 여왕이 아버지처럼 존경했던 든든한 조언자였다.
3. 자녀
[1] 이 때부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 1세로 불리게 된다.[2] 프란츠 공작의 아들이자 레오폴드 1세의 형인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에른스트 3세가 작센 코부르크 잘펠트 공작으로 재위하고 있던 1826년, 베틴 가문 중 에른스트 계열의 군주들 사이에서 영지 조정이 일어나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국이 해체되고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이 결성되었기 때문에 그의 형인 에른스트[1] 부터 가문명이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으로 불리게 된다.[3] 만약 이 아들이 살았더라면 영국의 왕이 되어 빅토리아 여왕의 역할을 대신하였을 것이다.[4] 어머니 마리아 아말리아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외손녀이므로 마리아 테레지아의 외증손녀이기도 하다.[5] 벨기에의 언어인 프랑스어로는 샤를로트. 후에 멕시코의 황제가 되는 막시밀리아노 1세와 결혼하며 비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버림받은 남편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결국 미쳐 죽는다.[6] 레오폴드 1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어머니 마리 루이제 빅토리아와 앨버트 대공의 아버지 에른스트 1세의 동생이었다.[7] 레오폴트 2세의 손녀이다.[8] 알베르 1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