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드 3세
1. 소개
레오폴드 3세는 벨기에의 국왕이다.
현재 벨기에의 국왕 필리프의 할아버지이자 룩셈부르크의 대공 앙리의 외할아버지이다.
2. 생애
레오폴드 3세는 알베르 1세 국왕의 장남으로 출생했는데, 원래 그의 아버지 알베르 1세는 벨기에 왕위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큰아버지 레오폴드 2세가 아들이 없어서 왕위를 물려받았다.[2] 당시 벨기에 왕실은 살리카법이었다. 이런 과거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벨기에 왕실의 절대적 맏이계승제는 적지 않은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알베르 1세가 1934년 2월 17일에 죽자 레오폴드 3세가 즉위하였다.
1935년 8월 29일 아스트리드 왕비[3] 와 단 둘이 루체른 호 근처의 좁은 길을 운전하다가 차가 전복되어 호수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결국 왕비는 이 일로 사망하였다. 1941년 9월 11일 15세 연하의 릴리앙 바엘과 재혼하였다.
태자 시절 레오폴드는 그다지 큰 문제를 저지르지 않았고, 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 외모도 준수한 데다가 2남 1녀의 자녀가 있고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듯한 모습이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 '''듯''' 했다.
'''그러나, 즉위한 지 5년 만에 발생한 초대형 전쟁이 레오폴드의 인생을 망가뜨려 놓고 말았다.'''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였다. 레오폴드 3세는 항복은 했지만 나중에 독일군 포로로 잡혔으며 끝까지 나치 독일에 협조하지 않았으며, 1945 년까지 즉 2차세계대전이 종전될 때까지 오스트리아에 억류되어 있어 스위스로 갈 수도 없었다. 그리고 스위스로 간 것도 추방되어 간 것이다. 1944년 자신의 남동생 샤를을 섭정으로 임명하고 1945년부터 스위스에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비록 2번째 결혼으로 인한 여론이 안 좋았다고는 하나, 왕의 귀환에 대해 투표를 했을 때 58% 의 벨기에 국민들이 왕의 귀환을 찬성했으나 벨기에의 정당들이 반대하여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만약 진짜로 레오폴드 3세가 독일에게 항복하자마자 스위스로 도망갔다면 아무리 지지 세력이 있었어도 58%의 지지율을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1951년 7월 26일, 레오폴드 3세는 장남 보두앵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983년 9월 25일 브뤼셀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