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리드 소피아 로비사 티라
1. 개요
스웨덴어: Astrid, drottning av Belgien
프랑스어: Reine Astrid de Belgique
네덜란드어: Koningin Astrid van België
영어:Astrid, Queen of Belgium
1905년 11월 17일 ~ 1935년 8월 29일(만 29세)
벨기에 4대 국왕인 레오폴드 3세의 첫 번째 아내이자 스웨덴의 공주. 보두앵 국왕과 알베르 2세의 모후이다. 현 벨기에 국왕인 필리프와 룩셈부르크 대공인 앙리의 할머니이다. 오스카르 2세의 3남인 칼 왕자와 덴마크의 잉에보리 공주[1] 의 막내딸이다. [2]
별명이 백설 공주인 만큼 햐안 피부와 기품있는 미모를 가진 미인이었으며 그로 인해 남편 레오폴드 3세과 더불어 벨기에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왕비이다. 그러나 교통사고로 인해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2. 작위
-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Astrid of Sweden (1905년 11월 17일 ~ 1926년 11월 4일)
- 브라방 공작부인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Duchess of Brabant (1926년 11월 4일 ~ 1934년 2월 17일)
- 벨기에의 왕비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of the Belgians (1934년 2월 17일 ~ 1935년 8월 29일)
3. 생애
3.1. 어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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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잉에보르크 공주와 마르가레타, 메르타 공주와 함께
1905년 11월 17일 스웨덴 오스카르 2세의 3남인 칼 왕자와 덴마크의 잉에보리 공주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칼 왕자 부부는 결혼을 했는데 아스트리드를 포함 해서 자녀들을 대부분 늦게 낳았다. [3] 큰 언니인 마르게리타는 덴마크의 왕자비로, 작은 언니인 메르타는 노르웨이 왕세자비, 남동생은 귀천상혼을 했다. 아스트리드는 가족들과 함께 소박하게 살았고 스웨덴에서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당시의 많은 공주들이 그랬듯이, 아스트리드는 스톡홀름의 고아원에서 유아들을 돌보는 등 자선 활동을 했다. 수영, 스키, 승마, 골프와 같은 야외 활동도 좋아했다고 한다.
3.2. 결혼
아스트리드는 영국의 에드워드 왕세자나 노르웨이의 올라프 왕세자[4] 등 여러 왕국의 신붓감으로 거론되었다. 그 중 아스트리드의 약혼자가 된 사람은 벨기에 왕국의 레오폴드 왕세자였다.
1926년 9월, 두 사람의 약혼식이 발표되었고, 같은 해 11월 4일 스톡홀름에서, 11월 10일 브뤼셀에서 결혼식을 거행했다. 결혼식에는 수많은 유럽의 왕족들이 참석하였다. 또한, 결혼 후 루터교에서 벨기에의 국교인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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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드 왕세자와 아스트리드 공주의 결혼식
3.3. 왕세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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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드 왕세자와 아스트리드 왕세자비는 프랑스 남부에서 신혼을 보낸 후 벨기에로 돌아왔다. 벨기에에서 그녀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를 배웠다.
벨기에 국민들은 새 왕세자비에 열광했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매력적이었으며 순수했다. 남편 레오폴드 왕세자는 그녀의 가장 적극적인 지지자였고, 두 사람의 금슬은 매우 좋아서 공식적인 일정에서도 손을 잡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1927년 10월, 아스트리드는 장녀 조제핀샤를로트 공주[5] 를 출산했고, 1930년 9월 장남이자 왕위 후계자인 보두앵 왕세손을 낳았다. 그녀는 소박하게 아이들을 양육했고, 일반적인 가정처럼 자신이 직접 요리를 했다고 한다.
3.4. 왕비
1934년 2월 17일, 시아버지 알베르 1세가 등산하다 실족사함에 따라, 아스트리드는 벨기에의 왕비가 되었다. 4개월 뒤 아스트리드는 셋째 아이를 낳았는데, 그의 이름을 알베르 1세의 이름에서 따 알베르라고 지었다.
벨기에의 왕비로서, 아스트리드는 여성, 어린이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돕는 데 집중했다. 1935년 벨기에의 경제 위기 동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옷이나 돈, 음식들을 모으기도 했다. 또 벨기에의 여러 빈민가들을 직접 방문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도왔다.
3.5. 사망
1935년 8월, 레오폴드 3세와 아스트리드 왕비는 스위스로 여름 휴양을 갔다. 막내 알베르 왕자는 고작 2살이었기 때문에 벨기에에 남았고, 첫째 조제핀샤를로트 공주와 둘째 보두앵 왕세자는 부모와 함께했다. 8월 28일 경 아이들은 보모와 함께 벨기에로 돌아갔다.
1935년 8월 29일, 레오폴드 3세와 아스트리드 왕비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 등산을 하기로 결정했다. 레오폴드 3세는 운전을 하고 있었고 아스트리드 왕비는 지도를 보고 있었는데, 왕비가 레오폴드 3세에게 무엇을 가르키던 순간 차가 길을 벗어나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다가 배나무에 부딪혔다. 아스트리드 왕비는 차에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지만 충격으로 튕겨져나갔고, 나무 줄기와 충돌했다. 남편 레오폴드 3세 또한 튕겨 나갔지만, 그는 가벼운 상처만 입었다. 이 사고로 아스트리드 왕비는 29세의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아스트리드 왕비는 라에켄의 성모 성당에 매장되었고, 이후 그녀의 옆에 레오폴드 3세와 그의 후처 레티 공작부인 릴리앙이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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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의 장례식
4. 가족
4.1. 조상
4.2. 자녀
[1] 프레데리크 8세와 스웨덴의 로비사의 차녀이다.[2] 아스트리드의 작은 언니가 노르웨이의 메르타 왕세자비인데 메르타의 고명아들인 하랄 5세가 아스트리드의 조카다.[3] 아스트리드의 큰 아버지인 구스타프 5세는 일찍 결혼을 해서 24세에 사촌오빠인 구스타프 6세 아돌프를 낳았다. 그래서 5촌 조카 뻘이 되는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와 잉리드 왕비는 서로 나이차이가 거의 안난다. [4] 올라프 왕세자의 부인인 메르타는 아스트리드 왕비의 작은언니다.[5] 훗날 룩셈부르크 대공 장과 결혼해 룩셈부르크의 대공비가 된다.[6] 프리드리히 1세의 손녀이다.[7] 빌럼 1세의 손녀이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외손녀이다.[8] 룩셈부르크 대공 앙리 등[9] 필리프 등[10] 사생아 델피네 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