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두앵(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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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네덜란드어
보더빈 알베르트 카럴 레오폴트 악셀 마리아 구스타프
(Boudewijn Albert Karel Leopold Axel Maria Gustaaf)
프랑스어
보두앵 알베르 샤를 레오폴 악셀 마리 귀스타브
(Baudouin Albert Charles Léopold Axel Marie Gustave)
'''출생'''
1930년 9월 7일
벨기에 브뤼셀 라컨 궁
'''사망'''
1993년 7월 31일 (62세)
스페인 안달루시아 그라나다 모트릴
'''재위'''
벨기에의 국왕
1951년 6월 17일 ~ 1993년 7월 31일
'''배우자'''
도냐 파비올라 데 모라 이 아라곤 (1960년 결혼)
'''아버지'''
레오폴드 3세
'''어머니'''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형제'''
조제핀샤를로트, 알베르 2세
보두앵은 레오폴드 3세 국왕의 장남으로 출생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영특했던 그는 1944년 아버지가 나치 독일에 항복하자 아버지를 따라 스위스에 갔다. 이후 레오폴드 3세가 퇴위하자 1951년 6월 17일 국왕이 되었다.
그러나 너무 독실한 가톨릭교도로서의 모습은 일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보두앵은 감성적인 인물이었다고 하며, 1959년에는 벨기에령 콩고의 독립을 인정했다.
보두앵은 스페인의 귀족 파비올라(1928~2014)와 중매를 통해 결혼하였으나 결혼 생활은 행복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생기지 않았는데, 왜 자식이 없는가에 대한 벨기에 국민들의 궁금증이 증폭되기도 했다. 이 와중에 파비올라 왕후가 5번이나 유산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는데 이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2008년에 파비올라 왕후가 공식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로는, 유산을 5번 하였고 그 중 하나는 사산이었다고. 자식이 없는 것에 큰 상실감을 얻지 않고 자선사업으로 그 상실감을 메꿨다고 한다.
결국 보두앵 국왕은 1993년 7월 31일 심장마비로 서거했는데, 그에게는 자녀가 없었기에 후계는 그의 동생 알베르 2세에게 넘어갔다.
벨기에의 경기장인 스타드 루아 보두앵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2019 수능 영어 31번 빈칸추론 문제에는 보두앵의 죽음과 관련된 연구를 다룬 지문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