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룩셈부르크)
1. 소개
룩셈부르크의 대공이다. 2000년 10월 7일 아버지 장이 양위함에 따라 대공이 되었다. 장과 조세핀의 장자이며 현 벨기에 국왕 필리프의 사촌이다.
룩셈부르크의 대공 외에도 나사우의 공작(duc de Nassau), 부르봉파르마의 공자(prince de Bourbon-Parme), 아메르스테인의 자작(vicomte de Hammerstein)도 겸직하고 있다. 위그 카페의 남계 후손 중 두 명 밖에 없는 현직 군주이다.[2]
2. 생애
1955년 룩셈부르크 대공 장과 벨기에 공주 조제핀샤를로트의 3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리고 1964년 11월 할머니의 퇴임 직후 대공세자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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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부모 형제자매들과 앙리(전좌)
그는 룩셈부르크와 프랑스에서 공부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샌드허스트 에서 군사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제네바 대학교와 국제 연구 대학원에서 1980년까지 정치학을 공부했다. 제네바에서 있을때 쿠바 출신의 마리아 테레사를 만나 1980년 11월 7일 결혼했다.
1998년부터 2년간 섭정을 맡기도 하였다.
2008년 안락사와 개헌 관련해서 한 때 거부 설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동의하게 된다.
2019년 말과 2020년 초에는 앙리 대공의 아내인 마리아 테레사 대공비가 궁전 내 고용인들에게 갑질을 했다는 구설수에 올랐고, Waringo report에서 이러한 지적을 당했다. 참고로 마리아 테레사 대공비도 시어머니한테 시집살이를 당했다고 한다. 이건 카더라가 아니고 2000년대 초에 본인이 직접 언론 앞에서 밝힌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고 할 수도.(...)
3. 논란
3.1. 안락사·개헌 논란
2008년 12월 2일 앙리는 올해 초에 통과된 안락사에 관한 새로운 법률에 대한 동의를 거절할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당시 헌법상, 법률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랜드 공작의 제재나 승인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그랜드 듀크 '법령을 제재·공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러한 거부로 인해 이야기 된 대공의 헌법적 지위에 대한 장기적 함의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장 클로드 융커 총리는 헌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룩셈부르크 집권당은 1912년 마리-아델라이드 여대공이 교육법안에 서명하기를 거부했을 때 의회의 결정을 단 한 번 막으려 했었다. 궁극적인 해결책은 그랜드 공작이 일시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선언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1991년 그의 삼촌인 벨기에의 보두앵 국왕이 낙태법에 서명하기를 거절했을 때 제공한 '탈출 루트'와 비슷했기 때문에 대공의 서명 없이도 법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정할 필요도 없었다. 광범위한 헌법 변화
이후 헌법 제34조를 개정하여 "찬성"이라는 용어를 삭제하였고, 관련 조항은 "대공이 법률을 공포한다"라고 하였다. 그 결과 그의 서명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의 서명은 자동이고 결정의 자유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가원수는 더 이상 법을 "제재"할 필요가 없다. 그는 단지 법을 공포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4. 여담
- 현재 가족들과 베흑 성(Berg Castle)에 살고 있으며, 휴가 때는 프랑스 남부의 보르메 레 미모사 근처에 저택에서 지낸다.
- 그의 순자산은 약 40억 달러(약 4조 7천억원)로 추산되고 있다.#
5. 가족관계
5.1. 조상
5.2. 자녀
[1] 1986년에 Société Européenne des Satellites에 팔려서 1987년 7월부터 인공위성지상관제소로 쓰이고 있다.[2] 나머지 한명은 스페인 보르본 왕조의 펠리페 6세.[3] 미겔 1세의 6녀이다.[4] 미겔 1세의 5녀이다.[5] 미겔 1세의 손녀이다.[6] 오스카르 2세의 3남이다.[7] 프레데리크 8세의 차녀이다.[8] 2012년에 결혼한 뒤 8년간 자녀가 없었는데 2020년 5월 10일 드디어 아들을 출산했다. #1 #2 이름은 샤를. 자동적으로 숙부 펠릭스를 제치고 공위 계승서열 2위가 됐다. 할아버지, 할머니인 대공 부부도 정말 좋아했으나 시국이 시국인지라 아기를 영상 통화로만 봤다고. 이후 상황이 나아져 만남이 이루어졌다. # [9] 앙리 대공은 명목상의 나사우 공작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 룩셈부르크의 대공족들은 기본적으로 나사우의 공자/공녀 (Prince/Princess of Nassau) 칭호를 보유하고 있다. 여담으로 룩셈부르크의 대공자/대공녀 (Prince/Princess of Luxemburg) 칭호는 대공과 대공세자의 자녀들에게만 주어지도록 법이 개정 되었으며 대공의 허락을 받지 않고 결혼한 이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는 나사우의 백작/여백작 (Count/Countess of Nassau) 칭호가 주어진다.[10] 2006년 결혼 / 2017년 별거, 2019년 이혼. 테시 앙토니라는 룩셈부르크 일반 여성(결혼 전에는 육군에서 복무함)을 만나 2006년 초 장남을 속도위반으로 출산한 뒤 결혼하면서 본인과 자녀들의 룩셈부르크 대공위 계승권을 포기했다. 이후 차남을 낳은 뒤인 2009년에야 앙리 대공으로부터 두 아들이 나사우의 공자 (Prince of Nassau)[9] 칭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