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 S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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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ver SD1''' (2000 / 2500 / 3500 / Vitesse)
1976 ~ 1986년까지 로버가 브리티시 레일랜드(BL) 산하에서 만든 대형 고급 해치백 차량이다. (링크)
당시 레일랜드 산하에 같이 있었던 로버와 트라이엄프의 인기 차종, 로버 P6과 트라이엄프 2000/2500을 동시에 대신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당시 디자인을 맡았던 수석 디자이너 데이비드 배쉬(David Bache)는 페라리 250LM과 데이토나(Daytona) 등 슈퍼카에서 영감을 얻어 급진적인 디자인인 고급차를 제안했다.
처음에 P10이라고 칭해지던 이 프로젝트는 로버와 트라이엄프가 BL 산하에 같이 편입된 후에 경영진들로부터 심사를 받게 되었는데, 당시 트라이엄프 측에서 제안한 프로젝트인 퓨마(Puma)를 이기고 최종 선택을 받았다. 또한 프로젝트명이 RT1(Rover Triumph 1)으로 변경되었으며, 로버로만 출시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로버와 트라이엄프를 하나의 디비전으로 묶는 과정에서 "특별 디비전(Specialist Division)"이라는 뜻인 SD1으로 변경되었다. 한편, 복잡한 차량 설계를 가급적이면 피하는 성향이 강했던 당시 수석 엔지니어 스펜 킹(Spen King)의 영향으로 인해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기존 로버 P6이나 개발중 취소되었던 P8보다 상당히 보수적이였으며, 이는 관리가 쉽다는 호평과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혹평을 같이 받는 부분이기도 했다.
또한 BL에서도 비용절감을 실시하는 상황임에도 밀어주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캐슬 브롬위치에 새로운 공장을 짓고 계획한 생산 목표량을 2배로 늘려 잡는 등 나름 신경을 써 주었으며, 비록 디자인 과정에서 차질이 생겨 개발이 54개월까지 길어지긴 했지만 그 이외에는 나름 순조로웠다. 고객 클리닉을 통해 경쟁차들과 비교했을 때는 '''훨씬 비싸 보인다'''는 호의적인 평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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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6월 30일, V8 버전이 "로버 3500"이라는 이름을 이어받아 출시되었을 때, 영국 시장에서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였다. 당시로선 꽤 현대•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였음은 물론, 성능과 연료효율까지 좋았으며, 심지어는 가격까지 저렴했기 때문에 BMW와 벤츠 등의 고급차들은 물론, 심지어는 포드와 시트로엥의 대형차들까지 위협하는 수준이였다. 거기에다가 해치백과 단순한 설계 구조까지 장점으로 평가되면서 1977년 "유럽 올해의 차" 상을 수상하기에까지 이를 정도였다. 일이 잘 풀렸더라면 브리티시 레일랜드를 살리는 데 일조했을 것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초반에 충분 물량을 준비하지 못해 고객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레일랜드 국유화 후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던 노사 관계와 잦은 파업, 심각하게 낮은 품질, 그나마도 제때 제공할 수 없을 정도인 차량 수급 문제는 SD1과 BL을 또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으며, 조립품질, 생산 및 배송 과정에서의 부실함으로부터 수년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러한 문제는 1979년 취임한 신임 회장 마이클 에드워즈(Michael Edwards)가 1982년 1월 페이스리프트 버전을 출시하고 생산지를 카울리의 모리스(Morris) 자동차 공장으로 옮긴 후에야 어느 정도 수습되었고, 짧은 기간동안 어느 정도 품질과 판매량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후에는 저배기량 라인업인 로버 2300과 2600, 2000과 2393cc VM 모토리제 터보디젤 엔진을 얹은 2400SD 터보를 추가했고, 고성능 버전인 비테스(Vitesse)와 고급형인 반덴 플라(Vanden Plas)와 같은 여러 트림과 연료 분사 엔진을 제공하면서 후속인 로버 800이 출시된 1986년 6월까지 생산되었다.
'''Rover SD1''' (2000 / 2500 / 3500 / Vitesse)
1. 개요
1976 ~ 1986년까지 로버가 브리티시 레일랜드(BL) 산하에서 만든 대형 고급 해치백 차량이다. (링크)
2. 상세
당시 레일랜드 산하에 같이 있었던 로버와 트라이엄프의 인기 차종, 로버 P6과 트라이엄프 2000/2500을 동시에 대신하기 위해 개발되었으며, 당시 디자인을 맡았던 수석 디자이너 데이비드 배쉬(David Bache)는 페라리 250LM과 데이토나(Daytona) 등 슈퍼카에서 영감을 얻어 급진적인 디자인인 고급차를 제안했다.
처음에 P10이라고 칭해지던 이 프로젝트는 로버와 트라이엄프가 BL 산하에 같이 편입된 후에 경영진들로부터 심사를 받게 되었는데, 당시 트라이엄프 측에서 제안한 프로젝트인 퓨마(Puma)를 이기고 최종 선택을 받았다. 또한 프로젝트명이 RT1(Rover Triumph 1)으로 변경되었으며, 로버로만 출시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로버와 트라이엄프를 하나의 디비전으로 묶는 과정에서 "특별 디비전(Specialist Division)"이라는 뜻인 SD1으로 변경되었다. 한편, 복잡한 차량 설계를 가급적이면 피하는 성향이 강했던 당시 수석 엔지니어 스펜 킹(Spen King)의 영향으로 인해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기존 로버 P6이나 개발중 취소되었던 P8보다 상당히 보수적이였으며, 이는 관리가 쉽다는 호평과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혹평을 같이 받는 부분이기도 했다.
또한 BL에서도 비용절감을 실시하는 상황임에도 밀어주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캐슬 브롬위치에 새로운 공장을 짓고 계획한 생산 목표량을 2배로 늘려 잡는 등 나름 신경을 써 주었으며, 비록 디자인 과정에서 차질이 생겨 개발이 54개월까지 길어지긴 했지만 그 이외에는 나름 순조로웠다. 고객 클리닉을 통해 경쟁차들과 비교했을 때는 '''훨씬 비싸 보인다'''는 호의적인 평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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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6월 30일, V8 버전이 "로버 3500"이라는 이름을 이어받아 출시되었을 때, 영국 시장에서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이였다. 당시로선 꽤 현대•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이였음은 물론, 성능과 연료효율까지 좋았으며, 심지어는 가격까지 저렴했기 때문에 BMW와 벤츠 등의 고급차들은 물론, 심지어는 포드와 시트로엥의 대형차들까지 위협하는 수준이였다. 거기에다가 해치백과 단순한 설계 구조까지 장점으로 평가되면서 1977년 "유럽 올해의 차" 상을 수상하기에까지 이를 정도였다. 일이 잘 풀렸더라면 브리티시 레일랜드를 살리는 데 일조했을 것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초반에 충분 물량을 준비하지 못해 고객들을 실망시키기도 했다. 레일랜드 국유화 후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던 노사 관계와 잦은 파업, 심각하게 낮은 품질, 그나마도 제때 제공할 수 없을 정도인 차량 수급 문제는 SD1과 BL을 또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으며, 조립품질, 생산 및 배송 과정에서의 부실함으로부터 수년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러한 문제는 1979년 취임한 신임 회장 마이클 에드워즈(Michael Edwards)가 1982년 1월 페이스리프트 버전을 출시하고 생산지를 카울리의 모리스(Morris) 자동차 공장으로 옮긴 후에야 어느 정도 수습되었고, 짧은 기간동안 어느 정도 품질과 판매량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후에는 저배기량 라인업인 로버 2300과 2600, 2000과 2393cc VM 모토리제 터보디젤 엔진을 얹은 2400SD 터보를 추가했고, 고성능 버전인 비테스(Vitesse)와 고급형인 반덴 플라(Vanden Plas)와 같은 여러 트림과 연료 분사 엔진을 제공하면서 후속인 로버 800이 출시된 1986년 6월까지 생산되었다.
3. 여담
- 실질적으로 마지막 순수 로버차라는 평가가 있는데, 이 차 이후로 나온 차종들은 거의 대부분이 일본 혼다나 독일 BMW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심지어는 출시 10년차 구형 오스틴 소형 해치백까지 통합됨에 따라 로버의 고급 이미지도 희석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 8기통 엔진의 힘에 대형 해치백이라는 특성에서 나오는 넉넉한 적재공간 때문에 영국 교통경찰들이 매우 좋아핬다고 한다. 단종 직전에는 아예 대량으로 사재기를 하기도 했다고.
- 영국 탑기어 챌린지 과제 중 하나에서 제레미 클락슨이 고르기도 했다. 마지막 챌린지에서 물 넣고 달리다가 뒷문이 떨어져 나가 꼴찌하기는 했지만.[1]
- 포르자 호라이즌 4에 비테스가 등장한다. 출연한 차량의 연식은 1984년식.
[1] 여담으로, 리처드 해먼드는 트라이엄프 돌로마이트 스프린트를, 제임스 메이는 오스틴 프린세스를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