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쿠조노인
1. 개요
六條院
겐지모노가타리의 등장 건물. 작중에서 영화의 상징이다.
2. 특징
2.1. 기원
본래 명칭은 로쿠조쿄고쿠(六條京極)으로, 전 동궁이 죽고 과부가 된 미야스도코로(御息所)가 자기 딸(후일 아키코노무 중궁)을 데리고 교토고쇼를 떠나 마련한 거처다. 육조 거리에 형성되어 있으며, 미야스도코로는 육조원에 머문다고 하여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六條御息所)라고 불리게 된다. 이 시절부터 높은 신분에 자부심 높은 그의 성격이 반영되어 고급스러운 장식이 많고 멋진 곳이라고 나온다.
딸이 이세신궁의 재궁(齋宮)으로 임명되면서 딸과 함께 이세로 내려가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으나, 임금이 스자쿠인에서 레제인으로 바뀌자 재궁도 교체되어 딸과 함께 상경해 로쿠조쿄고쿠로 돌아온다.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가 죽은 뒤 겐지는 딸인 전 재궁의 후견과 함께 이곳을 물려받게 된다.
겐지는 우스구모 첩에서 전 재궁인 아키코노무 중궁秋好中宮과 봄과 가을의 정경 중 어느 쪽이 낫냐고 물어본다. 이야기 도중에 겐지는 봄가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하는 뜻을 밝히는데, 그 이상을 현실화시킨 곳이 육조원이다. 개조된 육조원은 사방사계四方四季의 흐름에 따라 네 개의 저택을 배치하고 있다.
봄으로 상징되는 동남쪽 공간에는 무라사키노우에紫の上, 서남쪽 가을의 공간에는 아키코노무 중궁秋好中宮, 서북쪽 겨울의 공간에는 아카시노온카타明石の御方, 북동쪽 여름의 공간에는 하나치루사토花散里를 각 저택의 여주인으로 삼았다. 이외에도 겐지가 후견하는 출가한 우쓰세미空蝉와 스에쓰무하나末摘花, 혼전婚前 한정으로 수양딸인 타마카즈라玉鬘도 사방사계 육조원의 부속 건물에 거주했다.
각 저택의 뜰에는 연못과 초목을 배치하여 계절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게 설계하였다. 이런 육조원에서 남성이 발을 구르며 노래하는 집단 무용인 남답가男踏歌를 비롯해 아키코노무 중궁이 개최한 가을 독경, 마장의 활쏘기 행사, 상황의 행차 등 겐지의 명성에 걸맞은 행사와 의례가 연이어 열린다.
헤이안 시대에서는 최상위 귀족인 공경公卿에게 통상적으로 평균 1정町의 부지가 배치되는데, 1정은 현재 4800평에 이르는 넓이다. 헤이안 시대 최고의 권세가였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저택이 당시 귀족 평균 부지의 두 배인 2정町 정도였다고 한다. 겐지모노가타리에는 개축한 육조원의 규모를 4정町이라고 서술하는데, 이는 이야기속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귀족 저택 넓이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런 규모는 겐지의 권세를 알 수 있는 부분으로, 영화의 최고조에 이른 그가 천황이 사는 교토고쇼에 버금가는 자신만의 저택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육조원 복원도 작성의 대표적인 학자인 다마가미 다쿠야의 감수로 이루어진 복원 작업에서, 육조원은 현 교토의 가모 강에 인접한 육조六條 거리 북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많은 귀족들의 주거지가 어소와 인접한 이조二條나 삼조三條 거리에 조성된 것과 비교하면 육조에 지어졌다는 점에서 상당히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겐지는 초기에는 이조二條에 위치한 니조히가시노인二條東院을 자신의 구상을 위한 장소로 고려해서 만들었지만, 육조원을 물려받은 뒤 사계 육조원으로 개조해서 이곳을 자신의 영화를 상징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천황과 별개로 자신만의 궁전을 만들고자 한 겐지에게 있어서 어소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게 좋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헤이안 시대의 귀족인 미나모토노 도루의 저택이 있던 자리로 알려져 있다. 그는 사가 덴노의 황자로 태어나 겐지 성을 하사받아 좌대신左大臣에 오르는 인물로, 그의 저택인 가와라인河原院이 겐지모노가타리의 육조원처럼 4정町의 넓이에 장려한 모습을 자랑했다고 한다. 즉 겐지모노가타리의 사계 육조원은 미나모토노 도루의 가와라인河原院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2.2. 불교적 이상향
14세기에 성립된 겐지 모노가타리의 주석서인 가카이쇼河海抄는 사방사계四方四季의 육조원六條院이 우쓰호모노가타리宇津保物語에 등장하는 저택이 원형이라고 설명한다. 우쓰호모노가타리宇津保物語는 주인공 도시카케 일족의 4대에 걸친 칠현금七絃琴 전승과정을 장편화한 이야기인데, 도시카케의 손자가 자신의 딸에게 칠현금 연주 비법을 전수하는 장소가 육조원의 원형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육조원의 원형을 불국토佛國土, 즉 불교적 이상향을 지향하여 조성된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겐지는 오토메 첩에서 일 년에 걸친 공사를 끝내고, 가을 무렵 처첩들과 자신이 후원하는 중궁과 함께 육조원으로 거처를 옮긴다. 사방사계의 저택에는 각 계절을 상징하는 여성인 봄 – 무라사키노우에, 여름 – 하나치루사토, 가을 – 아키코노무 중궁, 겨울 – 아카시노온카타와 그 계절에 맞춘 정원 수목, 부속 건물들을 배치하고 있다. 또 각 공간에서 계절의 흐름에 따라 여러 행사와 의례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곳에서 입주 후 새봄을 맞이한 육조원의 풍경을 묘사하는 장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작가는 매화 향기 가득한 육조원의 풍경을 ‘살아 있는 부처의 나라’로 표현한다. 이는 이 세상에 구현된 부처님의 극락정토極樂淨土라는 이상을 지향하는 것으로, 육조원이라는 공간이 가진 본질적인 성격을 규정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겐지 모노가타리에 그려진 육조원의 불교적 성격을 살펴볼 때,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육조원의 준거가 되는 불교 경전 내에 묘사된 불국토의 모습일 것이다. 불교 경전 중에서 불국토의 모습을 생생히 밝히는 것으로는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라고 불리는 무량수경無量壽經,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 아미타경阿彌陀經이 있다. 특히 무량수경無量壽經에는 불국토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따르면 불국토는 금, 은, 유리, 산호, 호박, 자서, 마노 등의 칠보七寶로 이루어진 땅이 넓게 펼쳐지며(법화경法華經에는 금, 은, 마노, 유리, 거거, 진주, 매괴로 나온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구별이 없고, 춥지도 덥지도 않아 항상 온화하고 상쾌한 곳이다. 또한 칠보로 된 보배나무와 그 가지에 부는 바람이 만들어낸 신묘한 음악, 화려한 건물, 황금 연못과 꽃나무의 향기를 비롯해 천만 가지 향기에 의하여 번뇌가 소멸되는 곳이다. 불국토는 인간이 든 감각을 동원하여 상상해낼 수 있는 극상의 공간이으로, 이런 상상의 산물인 불국토를 겐지모노가타리의 작가인 무라사키 시키부는 육조원이라는 공간 속에서 재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고초 첩에 기술된 늦봄에 봄 저택의 여주인인 무라사키노우에가 봄 저택에서 이루어진 뱃놀이를 통해 지상을 통해 구현된 불국토를 보여준다. 그보다 앞서 가을이 한창일 때, 아키코노무 중궁은 가을 저택에 피어난 꽃과 단풍을 모아 편지와 함께 무라사키노우에에게 보낸 적이 있었다. 이에 대한 답례로 봄 저택에서 뱃놀이 행사가 열린 것이다.
아름다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신묘한 향기로 충만한 봄 저택의 연못 주변, 비단을 깔아놓은 듯 주변을 감싸는 하얀 안개, 그 속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물새의 모습, 한 폭의 그림을 연장시키는 바로 이 곳이 불국토가 아니겠는가. 이어지는 계절 독경에서도 새와 나비로 분한 여자아이들은 부처님께 바치는 공양의 의미로 은 꽃병에 벚꽃을, 황금 꽃병에는 황매화를 꽃아 꽃그늘 속에서 아름답게 춤을 추며 등장한다. 그 뒤로 꾀꼬리의 울음소리와 무악의 연주가 가벼운 바람에 실려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이외에도 육조원에서 개최되는 많은 의례와 행사들을 살펴보면 피워놓은 향이 매화 향기와 어우러지고, 악기 연주소리는 온화한 바람에 섞여 울려 퍼진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켜 부가되는 인공적 요소들이 어우러져 육조원은 지상에 구현된 불국토로 표현된다. 또한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육조원의 모습은 단순히 경전의 불국토를 표현한 것만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여성들의 섬세한 심리와 계절을 즐기는 모습들을 함께 서술해서 현세에 구현된 불국토의 모습을 작품 내에서 새롭게 창출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2.3. 몰락
이처럼 겐지모노가타리에 서술된 육조원의 모습은 주인공 히카루 겐지의 영화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불국토의 재현이라는 차원에만 머물며 시종일관 밝고 화려한 면을 부각시키는 것은 아니다. 달은 차면 기우는 법. 정편 후반부에 나타난 온나산노미야女三宮의 등장으로 촉발된 육조원의 와해가 시작되고, 현세의 화려함이 지속될수록 인물들의 무상감은 심화되어 간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람의 삶은 인생무상人生無常, 화무십일홍 인무천일호花無百日紅 人無千日好이다. 정편의 내용은 주인공 겐지와 무라사키노우에가 삶의 무상감을 깨닫는 이야기로,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그 이면의 허무함과 무상감은 더더욱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흔들리는 육조원의 체제는 육조원 각 저택에 거주하고 있는 여자들의 위상과 각 공간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온나산노미야의 등장으로 인한 무라사키노우에의 몰락과 그에 맞물려 발생하는 각 공간의 형질 변화를 통해 육조원의 와해 원인을 알 수 있다.
말년에 겐지는 상황 스자쿠인의 딸 온나산노미야와 혼인하면서 정실로 들이게 되며 공경의 정실을 이르는 키타노카타北の方로 존대 받지 못한 채 정실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던 주인공 무라사키노우에는 육조원 봄 저택의 주인 자리도 잃게 된다. 이런 무라사키노우에의 지위 변화는 온나산노미야의 등장 이후 무라사키노우에가 주최하는 행사들이 이전과 달리 육조원의 봄 저택이 아니라 사가노의 법당이나 육조원 이전에 머물던 니조노인二條院에서 개최되는 점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겐지모노가타리에는 ‘불국토’와 관련된 용어로 ‘극락極樂’, ‘정토淨土’, ‘부처의 나라’, ‘부처가 계신 곳’ 등이 등장한다. 대부분 불교 행사를 거행할 때, 그 행사의 장엄하고 엄숙한 진행이나 설치된 장식물의 화려함을 강조하면서 사용된다. 그런데 이 중 절반 이상의 용례가 바로 무라사키노우에가 주최하는 불사佛事나 거주하는 장소를 묘사하는 장면에 집중되어 있다. 와카나 上은 사가노의 법당에서 개최된 약사불공양은 무라사키노우에의 주관 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불상과 경전, 책갑 등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 모습이 극락에 비유된다.
또 무라사키노우에의 주도로 육조원의 봄 저택에서 이루어진 신년축하 자리는 매화의 향기와 실내의 향기가 어우러져 ‘살아 있는 부처의 나라’로 생각되기도 한다. 이후 이조원에서 개최된 무라사키노우에의 법화경천부공양은 또다시 ‘부처님이 계신 곳’에 비유되고 있다. 이처럼 부처님의 이상향과 관련된 용어가 육조원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무라사키노우에에게 강조된다는 점에서 무라사키노우에의 존재 자체가 불국토적인 성격을 규정짓는 핵심적 요소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스스무시 첩에서 온나산노미야가 주관하여 육조원의 봄 저택에서 거행된 지불개안공양의 묘사와 비교하면 더욱 확실해진다. 여름 무렵, 연꽃이 한창일 때 온나산노미야는 자신의 거처에 만다라를 걸고 부처를 공양하는 단을 만든다. 단의 주변에는 향과 꿀을 조합하여 신묘한 향기가 감돌게 하였으며 형형색색의 연꽃을 준비하여 그 정취를 더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정성스럽고 성대하게 거행된 행사 어디에도 불국토와 관련된 용어는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온나산노미야가 관장하는 육조원은 아무리 그 겉모습이 불국토와 진배없다고 할지언정 그 내면은 진정한 불국토일 수 없다는 것이다. 온나산노미야는 영화의 상징이자 현세의 불국토인 육조원에서 그 지위에 걸맞은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만, 가시와기에게 능욕당하며 그 역할을 잃게 된다. 화려함을 자랑하던 봄 저택은 무라사키노우에가 이조원으로 옮긴 것과 온나산노미야 때문에 주인 없는 빈 공간으로 전락하게 된다. 결국 육조원은 무라사키노우에라는 불교적 성향을 띈 여성의 존재가 강력한 자장을 형성해서 유지되는 곳이다.
한편 무라사키노우에의 추락과 더불어 육조원의 위기를 초래한 또 하나의 요인은 겨울 저택의 여주인인 아카시노온카타明石の御方의 거처 변화와도 연관되어 있다. 와카나 上 이전의 아카시노온카타에 대한 묘사는 겨울 저택을 방문한 겐지가 풍취 있게 조성된 정원과 아카시노온카타의 차분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하는 것에 국한된다. 하지만 자신의 친딸인 아카시노히메키미明石の姬君의 입궁과 함께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 아카시노온카타는 겨울 저택에서 황궁으로 들어간다. 이후 아카시 여어明石女御가 된 딸의 출산을 위해 잠깐 겨울 저택에 복귀하고, 출산 후의 행사로 봄 저택으로 이동하였다가 아카시 여어의 입궁을 기점으로 다시 황궁으로 가서 생활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온나산노미야와 달리 아카시노온카타의 지위 변동과 잠깐이지만 봄 저택으로의 진입이 무라사키노우에를 육조원에서 이탈시키는 또 다른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무라사키노우에와 아카시노온카타는 자식이 없던 무라사키노우에와 중인이었던 아카시노온카타의 상호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정치동맹 관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카시노온카타가 겨울 저택을 떠나 황궁으로 가면서 육조원의 균형을 무너뜨린 요인이 되었다.
육조원은 사방사계의 공간이 각기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계획된 이상적 공간이었다. 이러한 육조원에 나타난 온나산노미야의 등장으로 촉발된 붕괴의 조짐은 불국토를 이루는 중대한 요소인 무라사키노우에의 이탈을 불렀고, 아카시노온카타까지 황궁으로 떠나면서 그때까지 안정적 균형을 이루고 있던 육조원의 와해를 가속시켰다.
정월 육조원에서 개최된 겐지와 여성들의 화려한 연주회가 끝난 뒤, 무라사키노우에는 발병하여 원래 살던 이조원으로 돌아간다. 겐지는 무라사키노우에의 간호를 위해 같이 이조원으로 가고, 그 틈을 노린 카시와기는 온나산노미야를 겁탈해 임신시킨다. 무라사키노우에는 니조노인에서 사망하고, 봄 저택의 여주인이었던 온나산노미야는 카오루를 낳고 출가해버린다.
이와 더불어 각 저택에도 변화가 생긴다. 아카시노온카타가 딸을 보필하러 황궁으로 떠나면서 겨울 저택은 공백이 되었고, 가을 저택의 주인인 아키코노무 중궁도 스즈무시 첩 이후 남편 레이제이 천황의 양위와 함께 육조원 가을 저택을 떠났다. 이처럼 봄 저택에 이어 가을과 겨울 저택 또한 관장하던 주인을 잃고 하나치루사토의 여름 저택만이 주인 있는 곳으로 남게 되었으며, 이후 죽은 무라사키노우에를 그리워하는 겐지의 모습이 봄, 여름, 가을 육조원의 형상이 묘사되고 겐지의 일생을 담은 겐지모노가타리 정편은 끝나게 된다.
2.4. 재건
속편은 겐지 사후 남은 겐지의 여자들과 후손들의 동향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다시 육조원의 정경이 언급된다.
황궁에서 열린 활쏘기 행사를 마치고, 연회를 위해 육조원으로 향한 사람들의 눈에 하얀 눈과 석양의 노을빛이 어우러진 봄 저택의 풍경이 현세가 아닌 불국토로 비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겐지모노가타리 속편의 시작인 니오효부쿄 권에서 육조원의 봄 저택을 다시 ‘부처의 나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겐지모노가타리에서는 ‘부처의 나라’가 단 두 곳에 등장하는데, 첫 번째는 육조원이 건립된 이듬에 새봄을 맞은 육조원의 봄 저택을 묘사하는 장면이고 두 번째가 이 장면이다.겐지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후손들에 의해 재편된 육조원의 변화가 마무리된 시점에서 부처의 나라라는 용어가 다시 등장한다. 다시 말해 겐지모노가타리 내의 육조원 관련 서술의 처음과 마지막에 해당하는 장면에서 ‘부처의 나라’라는 용어를 사용해 현세의 영화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불교적 이상향이라는 사방사계 육조원의 근본적인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겐지 사후 육조원의 봄 저택에 살고 있던 온나산노미야와 아들 카오루는 겐지 사후 스자쿠인이 온나산노미야에게 물려준 산조노미야三條の宮로 옮기고, 봄 저택은 겐지의 딸인 아카시 중궁明石中宮의 사저가 되어 아카시 중궁과 그 자녀들이 거주한다. 여름 저택은 하나치루사토가 니조히가시노인二條東院으로 돌아가고 겐지와 아오이노우에 사이에서 태어난 유기리와 온나니노미야가 들어와 거주한다.
여기서 한 가지 특징은, 카오루는 외부적으로는 겐지의 친자식으로 인정받고 있었음에도 그만이 육조원에서 배제되어 있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면 그때의 카오루는 혼전이었기에 어머니와 함께 산조노미야에서 사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나, 겐지가 죽기 전 카오루의 장래를 레제인에게 위탁하고, 가을 저택을 사저로 삼던 아키코노무 중궁이 카오루의 후견을 맡게 되는 일련의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키코노무 중궁과 카오루의 관계를 고려하면, 레제인과의 사이에서 후사가 없던 아키코노무 중궁의 가을 저택을 카오루가 이어받는 것이 자연스럽다. 거기다 육조원은 본래 로쿠조노미야스도코로의 사저로 아키코노무 중궁이 유년기를 보낸 곳이기에 육조원에 대한 아키코노무 중궁의 영향력은 간단히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오루는 육조원에 들어가지 않으며, 이후 육조원의 진입을 스스로 차단한다. 유기리가 육조원 여름 저택의 새 여주인인 온나니노미야의 후원을 받고 있던 자신의 여섯째 딸 로쿠노키미六の君의 결혼상대로 그를 원했음에도 카오루가 거부한다.
유기리가 온나니노미야를 여름 저택으로 이주시켜 자신의 근거지를 확실히 한 것처럼, 카오루도 육조원의 가을 저택에 배우자를 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카오루는 우지의 오이기미大君를 도읍으로 데려오려 계획했을 때조차 육조원이 아닌 산조노미야三條の宮를 선택하고, 우키후네의 경우에는 도읍과 멀리 떨어진 우지에 두었다. 카오루가 거부한 육조원 내부의 진입은 무라사키노우에의 니조노인을 물려받은 니오노미야가 로쿠노키미六の君와 결혼하면서 대신하게 된다. 이로서 겐지 말년의 삶에 고뇌와 우수를 몰고 온 온나산노미야와 카오루 부자를 배제한 채 아카시 중궁과 유기리의 일족으로 재편성되는 것이다.
겐지의 영화를 상징하는 곳이자 불교적 이상향인 육조원은 겐지의 노쇠와 더불어 쇠락하지만, 그의 후손들에 의해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영원한 불교적 이상향이라는 이미지를 간직한 채 겐지모노가타리에서 모습을 감춘다.
3. 동남쪽 : 봄 저택
3.1. 원주(院主)
- 1대 : 무라사키노우에(紫の上)
- 2대 : 온나산노미야(女三宮)
- 3대 : 아카시 중궁(明石中宮)
3.2. 기타
- 니노미야(二の宮)
- 온나이치노미야(女一宮)
4. 북동쪽 : 여름 저택
4.1. 원주(院主)
- 1대 : 하나치루사토(花散里)
4.2. 기타
- 로쿠노키미(六の君)
5. 서남쪽 : 가을 저택
5.1. 원주(院主)
- 아키코노무 중궁(秋好中宮)
6. 서북쪽 : 겨울 저택
6.1. 원주(院主)
- 아카시노온카타(明石の御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