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야드

 


[image]
중심가의 스카이라인. 가장 높은 마천루는 킹덤 타워이다.
[image]
서북쪽 외곽 앗 투라이프 지구에 위치한 디리야 궁전

1. 개요
2. 역사
3. 갤러리

[image]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도시
الرياض‎'''
리야드 | Riyadh


'''지역'''
리야드
'''면적'''
1,913km²
'''인구'''
7,680,000 명
'''인구밀도'''
4,015명/km²

1. 개요


아랍어 الرياض
영어 Riyadh
사우디아라비아수도. 인구는 약 767만 명(2018년), 면적은 1,913 ㎢로 아랍 세계에서는 카이로에 이어 2번째로 큰 도시이다.
원래 나지드 지방의 지방 도시였으나, 1824년 사우드가의 트로키가 새로운 왕조를 세우면서 기존 수도인 디리야에서 리야드로 천도한 이후 계속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천도라 할 것도 뭐한게, 디리야에서 리야드 구시가지까지는 겨우 20여 km 떨어져 있고, 그마저도 현대의 도심 확장으로 디리야는 현재 리야드 시가지와 이어져 있다.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와하브 운동의 본거지이며, 1983년까지는 외국의 대사관 설치가 '''금지'''되어 있었다. 그 때까지는 제다에 각국 공관이 있었으며, 제다는 홍해의 핵심 항구이자 메카의 창구 노릇까지 하다 보니 지금까지도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관문 노릇을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 지역이 석유로 급부상하자 떼돈을 벌게 된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에서 돈을 쏟아 부어 돈지랄의 향연이 넘치는 현대 도시로 급속히 바꿔 놓고 있다. 2020년대 들어 사우디는 리야드에 지부를 두지 않은 외국 회사들과 거래하지 않기로 선언, 리야드에 더 많은 기업들이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름만 걸어놓는 기업들도 있을 것이다. 관문 공항은 킹 칼리드 국제공항이며, 2034 리야드 아시안 게임 개최 예정지이다. 사우디 자체가 석유가 많은 나라답게 주요 교통수단은 자가용이었지만 리야드의 인구 폭증에 따라 교통체증이 극심해지면서 2020년대에 도시철도가 개통될 예정이라고. 그리고 리야드에는 세계 최대의 녹지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다.#
현재 킹 파하드 거리 근처에 킹 압둘라 금융지구가 세워지면서 새로운 중심이 개발 중이다. 사우디 자체가 위낙에 돈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사막국가라는 이미지답지 않게 숲을 많이 꾸며놓았지만 그래도 사방에다가 숲을 가꿔놓은 수준은 아니라서 황량한 사막의 모습을 쉽게 볼수있다. 구경할 곳은 킹덤 타워[1] , 시계 타워 등이 있다.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외곽의 디리야 유적지와 앗 다후 지구의 마스마크 성채, 압둘 아지즈 역사 센터와 국립박물관 등도 가보면 좋다. 전시장으로는 구 왕궁인 킹 압둘아지즈 국제 컨퍼런스 센터리야드 국제전시장(RICEC)가 있다.

2. 역사


고대의 지며은 하즈르 (حجر)였고, 바누 하니파에 의해 세워졌다고 전해진다. 하즈르는 아라비아 중앙부인 알 야마마의 중심지였고, 이슬람 제국 시대에 총독들이 파견되었다. 866년부터 일대는 현지 우카이다르 왕조의 지배 하에 놓였는데, 이때 중심지가 동남쪽 60km 거리의 알 카라즈로 옮겨진 후 하즈르는 쇠퇴하였다. 다만 14세기 하즈르를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야마마의 주요 도시이고 운하와 나무의 도시이며, 주민들은 대부분 하니파 부족이라 기록하였다. 이후 그는 그 부족장과 메카 순례 (핫즈)를 떠났다. 중세가 지나며 하즈르는 무그린, 미칼 등 여러 주거지로 분산되었다. 하즈르란 지명은 현지 문학에만 언급되었다. 그러던 17세기 연대기에서 '리야드'란 지명이 처음 언급되었다.
1737년 현재는 리야드 시가지 남쪽인 만푸하에서 온 피난민 데함 이븐 다와스가 리야드를 장악하였다. 그는 일대의 여러 오아시스를 아우르는 성벽을 세웠다. '정원들'을 뜻하는 리야드는 그러한 여러 오아이스 마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편 1744년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이 리야드에서 서북쪽으로 20km 떨어진 디리야의 군주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와 동맹을 결성하였다. 두 무함마드는 아라비아 반도를 단일 이슬람 국가 하에 통합하려는 의도 하에 리야드를 침공하였다. 데함은 알 카라즈, 알 아흐사, 나즈란의 바누 얌 등과 동맹하여 이에 맞섰으나 1774년 패주하였고, 리야드는 사우디 군에 항복하였다. 이로써 디리야 토후국, 즉 1차 사우디 국가가 세워졌다. 아라비아 반도를 거의 제패했던 1차 사우디 국가는 1810년대 메흐메드 알리의 이집트 군에게 멸망당하였다.
  • 2차 사우디 국가 = 네즈드 토후국 / 자발 샴마르 = 하일 토후국 (바누 라시드)
1818년 오스만-이집트 군대는 디리야를 파괴하였다. 그후 잔당을 규합하여 2차 사우디 국가를 세운 투르키 이븐 압둘라는 명목상 메흐메드 알리에 충성하며 야마마 일대를 다스렸는데, 그는 1823년 파괴된 디리야 대신 리야드를 새 수도로 정하였다. 1834년 투르키는 암살당하였고, 그 아들 파이살이 암살자를 죽이고 집권한 후 이집트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이에 1838년 이집트 군대가 파견되었고 파이살은 포로가 되어 카이로로 끌려갔다. 5년 후 탈출한 파이살은 20여년간 안정적으로 네지드를 통치하였다. 하지만 1865년 파이살 사후 벌어진 내분을 틈타 하일의 바누 라시드가 리야드를 장악하였다. 그의 리야드 총독인 아미르 압둘 라흐만 이븐 술라이만은 구도심의 상징인 마스마크 성채를 지었다.
[image]
[image]
마스마크 성채
1925년 리야드 시가지 전도
사우드 왕가의 내분을 규합한 압둘 라흐만 이븐 파이살은 1887년과 1889년 리야드를 수복하고 바누 라시드의 공격을 격퇴하였다. 그러나 1891년 1월 압둘 라흐만은 물라이다 전투에서 네지드의 완전 정복을 목표로 남하한 바누 라시드의 무함마드 빈 압둘라에게 대패하였다. 이로써 2차 사우디 국가가 멸망한 후 사우드 왕가는 쿠웨이트로 망명였다. 1880년 리야드에서 태어난 압둘 아지즈 빈 압둘라흐만 (이븐 사우드)는 1902년 1월, 마스마크 성채 앞에서 벌어진 리야드 전투에서 바누 라시드의 총독 이븐 아즐란을 전사시키고 도시를 수복하였다. 그가 재건한 네즈드 토후국은 193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으로 명명되어 현재에 이르고, 리야드는 그 수도로써 오일머니의 수혜가 집중되어 발전하였다. 앗 다후 일대에 머물던 시가지는 동서남북 (특히 북쪽) 모든 방면으로 확장되었고, 옛 디리야까지 이르게 되었다.

3. 갤러리


[image]
디리야 유적 지구
[image]

[1] 지금 제다에 짓고 있는 제다 타워와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