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호
1. 개요
북한의 전 외무상(남한의 외교부 장관급). 전임자는 리수용, 후임자는 리선권이다.
2. 생애
1956년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평양 내 명문 고등학교로 알려진 남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이후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평양외국어대학에서 수학했다. 2016년을 기점으로 전임자 리수용을 거쳐 외무상으로 승진하였다. 현재 북한 내 외교전문가로 알려져 있고, 북한의 국제회의 및 회담에 대표로 참가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에서 30년 외교관 경력을 쌓은 사람이다. 2011년 김정일 사망 당시에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을 맡았으며, 현재는 외무상 직책을 맡고 있다.
우리가 언론 및 해외언론에서 김정은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북한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2017년 당시 마닐라에서 외신 기자의 한반도 군사적 긴장과 핵무기에 대한 질문에 북한은 북핵을 대상으로 협상할 의지가 전혀 없다고 하였고, 남측과 만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 및 북미정상회담의 긍정적인 신호가 보이면서,이에 대한 논의로 스웨덴 외무장관과 회동을 위해 중립국가인 스웨덴을 방문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김정은의 중국 방문 및 북중정상회담 이후 해외 국가를 다양하게 방문 중이다. 최근에는 중국, 아제르바이잔 그리고 러시아를 방문하였으며, 목적은 2018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외교적 몸값 상승 및 정상국가 인식 전환으로 평가되고 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측 대표단 중 한 명으로 문재인 대통령 앞에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전 싱가포르 외교부장관을 평양에서 접선하였으며, 북미정상회담 북한 측 대표단 중 한 명으로 김정은을 싱가포르에서 동행하였다.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이후 9월에 열린 유엔 총회를 위해서 미국을 방문하였다.
2018년 11월에는 베트남을 방문하여 베트남의 개혁개방정책인 도이머이를 연수받고, 시리아에서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접견했다. 12월에는 중국에서 왕이 외교부장과 시진핑 주석을 접견했다.
2019년 1월 초 조성길 이탈리아대사의 망명으로 조선로동당이 리용호에게 직접 구두경고를 날렸다고 한다.
2019년 8월 초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하지 않고 주태국 북한대사 김제봉을 대신 참석시켰다. 덕분에 북일정상화를 기대했던 일본만 물을 먹었다.
2019년 9월에 열리는 유엔 총회에 불참할 것이라는 의사를 통보하며 참석하지 않았다.
2020년 1월초 당 국제부장 리수용과 함께 교체되었다. 후임 외무상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인 리선권이 맡게 되었다.[1]
최근 평양 주재 중국 및 러시아 대사에게 북한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고 한다. 기사
3. 경력
1979년 짐바브웨 주재 대사관 3서
1985년 스웨덴 주재 대사관 2서
1988년 외무성 국제기구국 2과 담당지도원
1993년 외무성 국제기구국 차장 겸 핵군축담당 부국장
1995년 외무성 참사
2001년 아세안지역안보포럼 북측 단장
2003년 영국 주재 대사
2004년 아일랜드 주재 대사
2010년 외무성 부상 및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 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2011년 김정일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2016년 국무위원회 위원 겸 조선로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겸 중앙위원회 위원 겸 외무상
2017년 조선로동당 정치국 위원 및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북측 단장
2018년 김영춘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북측 단장
2019년 최고인민회의 제14기 대의원
4. 여담
- 북한에서 공식적으로 해외 국가 방문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전 외무상 리수용의 후임이다. 외무성 부상에서 외무상으로 승진하며 그의 후임은 최선희가 맡게 되었다.
- 리용호의 아버지는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을 지낸 리명재이고 어머니는 이름은 알 수 없으나 김일성종합대학의 교수였다고 전해진다. 충격적이게도 리명재는 1980년 자기 아내, 그러니까 리용호의 어머니를 직접 총으로 쏴 죽였던 적이 있다. 이 일은 김정일의 처조카인 이한영의 수기 '김정일 로열패밀리'에 보다 자세한 사정이 서술돼 있다.
리명재는 김정일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인물로, 김정일이 자기 측근들에게 베푸는 술 파티에 부름을 받는 멤버 중에서 핵심으로 손꼽히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리명재의 아내는 남편이 만취해서 집에 들어와 술 주정을 부리는 것을 들어보며 이 술 파티가 문란하고 난잡하게 열린다는 결론을 내리게 돼 김일성에게 이를 바로잡아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발신자를 찾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편지는 왼손으로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 당시에 김일성에게 올라가는 보고란 보고는 모두 김정일을 거치고 간다는 걸 몰랐다.
당연히 이 편지는 김일성에게 올라가지 못한 채 김정일의 감시망에 걸렸고 이로 인하여 술 파티 멤버 전원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도 엄중한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끝내 그녀는 꼬리가 잡히고 말았으며 북한 정치보위부 사격장에서 리명재에 의해 사살되었다고 한다. 리명재는 아내를 살해한 뒤 김정일에게 총을 넘겨주며 자기도 죽여달라고 했지만 김정일은 "이번 한 번만은 용서해 준다"며 넘어가 줬고 리명재는 더더욱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리명재는 김정일의 배려로 중앙당에서 일하는 젊은 간호원과 재혼했다고 전해진다.
이한영은 당 국제부 부부장이었던 최준덕에게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믿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는 리명재의 자녀들이 아버지가 자기 손으로 어머니를 죽였을 거란 사실은 모른 채 소위 반동분자로 밝혀져 처형됐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거라고 책에 썼지만, 리용호도 훗날 내막을 알게 된 모양이다. 그래서 리용호는 리명재와 김정일에 대한 원한이 굉장히 컸고, 어차피 김정일 정권 시기만 해도 반동분자 어머니의 자식이라는 낙인 때문에 내부 요직으로 잘 진출하지도 못하는 처지라 그저 해외를 떠돌았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 리명재와는 죽을 때까지 만나지 않았을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 치아 건강이 매우 나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말할 때 보이는 치아 및 잇몸이 매우 어두운 색을 띠기 때문이다.
[1] 리선권은 외교관 경력이 전무한 군 출신 인물이라 굉장히 이례적인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