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계 브라질인
1. 개요
리투아니아계 브라질인은 리투아니아 이민 출신 브라질인 및 그 후손을 의미한다. 주로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사이에 이민이 이루어졌으며, 1918년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의 독립 전까지 이들은 브라질에서 러시아인 혹은 독일인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2. 이민사
브라질에 처음 도착한 리투아니아인은 3국 동맹 전쟁 당시 브라질 군으로 참전한 안드리우스 비스텔랴우스카스(Andrius Visteliauskas) 대령이었다고 한다. 안드리우스가 리투아니아로 귀환한 이후 얼마 안 가서 1890년 리투아니아인 25가구가 브라질 남부 이주이(Ijui) 시에 정착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아직 리투아니아가 독립국이 아니었으므로 이주민들은 주로 러시아 제국 여권이나 프로이센 여권을 들고 왔다. 브라질로 이주한 리투아니아인들 중에는 리트바크라고 불리는 리투아니아/라트비아/벨라루스 출신 유대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오늘날 브라질 최대 규모의 제지 회사 클라빈(Klabin)은 벨라루스 출신 리트박 유대인이 세운 회사이다.
리투아니아 본토의 리투아니아인들은 대부분 가톨릭 신도이지만, 당시 브라질로 이주한 리투아니아인들 중에는 리투아니아 마이너(오늘날의 칼리닌그라드) 일대에서 온 개신교인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1차대전에서 2차대전 사이 시기에 리투아니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한 이민의 35 %가 브라질을 목적지로 선택했는데, 이 기간동안 리투아니아에서 브라질로 이민한 인구는 2만 5천에서 5만여 명 사이로 추정된다. 브라질로의 이민은 브라질 내 커피 농장과의 이주노동자 계약에 따라 이루어졌는데, 미국으로 이민가는 것보다는 진입 장벽이 낮았지만 대신 농장의 노동 환경이 매우 가혹한 편이었다.
1926년까지 리투아니아인 약 3만여 명이 브라질에 정착했다 하며, 1954년 브라질 내 리투아니아인 인구는 상파울루 근교 3만여 명, 남부 술 지방에 2만여 명 및 리우 데 자네이루에 200여 명 도합 5만여 명이었다고 한다. 2차대전 종전 후 500여 명의 난민이 브라질로 망명한 이후 리투아니아인들의 브라질 이민 역사를 끝을 맺었다.
3. 빌라 젤리나
상파울루 근교에는 리투아니아인을 포함해서 러시아 제국 출신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빌라 젤리나(Vila Zelina;녹색 빌라)[1] 라는 조그만 소도시가 지어졌다. 리투아니아인 외에도 러시아 제국 각지에서 온 이민자들이 이 구역에 정착하거나 모이기 시작했는데,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40년대 소련의 발트3국 합병을 계기로 브라질로 이민한 난민들을 흡수하며 규모가 계속 커졌다. 1936년에는 리투아니아어로 미사를 보는 성당 "상 주제 지 빌라 젤리나(São José de Vila Zelina)"가 세워졌다.[2] 빌라 젤리나의 중심에는 리투아니아 공화국 광장이 있으며, 이 외에도 동유럽 및 그 인근 13개국[3] 에서 온 이민자 그룹들을 기리는 기념물을 설치한 광장이 있다.
브라질 외에도 아르헨티나에도 비슷한 수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이민했지만 아르헨티나의 리투아니아인들은 따로 빌라 젤리나같은 별도의 구역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인 주류와 금방 동화되었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에 비해서 이주노동 환경이 덜 가혹한 편이었고,[4] 동유럽/중유럽 출신 이주민들이 고향에 대한 향수병이 덜 했을 수 밖에 없었다.
한 때는 상파울루와 빌라 젤리나에 리투아니아어를 가르치는 학교도 지어졌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운영되지 않고 레스토랑으로 개조되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리투아니아가 소련에 편입되고 공산화되면서 리투아니아의 존재도 브라질 내에서 서서히 잊혀진 것도 있다. 이 지역에서는 아직도 동유럽 및 북유럽 각지의 음식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운영되고 있다.
4. 관련 문서
[1] 이름을 보면 원래 우크라이나인들이 먼저 정착한 구역인 듯 하다.[2] 동유럽의 정교회 신도들을 위한 소규모의 정교회 성당도 존재했지만 개신교로 개종한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들과 정교회를 고수하는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들간의 싸움이 붙고 개신교 러시아인 측에서 정교회 성당을 빨갱이라고(...) 무고하면서 성당이 철폐되었다고 한다.[3]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헝가리, 불가리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루마니아[4] 브라질의 농장주들은 노예 해방 이전 노예들을 학대하고 착취하던 노하우 그대로 유럽계 이주민들을 마구 갈궜는데 이 때문에 유럽에서 브라질로 이민했다가 못 견디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