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닌그라드
1. 개요
'칼리닌그라드(Калинингра́д, Kaliningrad)'는 발트 해 동남부 연안에 있는 러시아의 월경지인 칼리닌그라드 주를 가리키기도 하고 그 주의 주도 이름을 가리키기도 한다.
러시아 본토와는 떨어져있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리투아니아, 남쪽으로는 폴란드, 서쪽으로는 발트해에 접해 있다. 지도에서 그냥 칼리닌그라드를 찍으면 역사나 지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러시아 땅이 아니라 리투아니아나 폴란드 땅 혹은 동유럽의 작은 독립국으로 오해할만한 곳. 큰 지도에서는 칼리닌그라드라고 쓰지 않고 작게 러시아라고 써놓는 경우도 많다.
1.1.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주
러시아어: Калининград (Kaliningrad)
독일어: Kaliningrad
폴란드어: Kaliningrad
리투아니아어: Karaliaučius
러시아 북서 연방관구의 주(州) 중 하나이다. 주도(州都)는 칼리닌그라드 시다. 칼리닌그라드 주(州) 독일령이던 시절 동프로이센 주(州)의 북부 지역에 해당된다.
역사적으로는 독일을 최초로 통일한 독일 제국의 주역이자 전신이었던 프로이센 왕국의 발원지이고, 베를린으로 수도를 이전한 뒤에도 역대 프로이센 왕의 대관식은 지금의 칼리닌그라드 시인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치뤄졌다. 칼리닌그라드 시는 유명 독일인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2018년 현재 인구 994,599명(2018)이며, 러시아인이 86.4%로 대부분이다. 그 밖에 우크라이나인(3.7%), 벨라루스인(3.6%), 리투아니아인(1.1%), 아르메니아인(1.0%), 독일인(0.8%) 등이 거주하고 있다. 본래 칼리닌그라드 주민 다수는 독일인이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 결과 나치 독일이 패전국이 되면서 피난, 강제추방, 보복성 학살 등 소련의 제노사이드로 독일인은 대부분 사라지고 그 자리를 러시아인 이주민이 채워 러시아인 도시로 교체되었고, 현대에 이른다. 추방을 피해 숨은 독일인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도 독일인이 살고 있지만 전체 인구대비 비중은 0.8%에 불과하다. 비중은 미미하지만 독일인 마을이 남아있고[1] 지금도 독일 성씨와 독일어를 보전하고 있다. 그 마을 거주민 대다수가 독일 융커 귀족의 후손인데 그들은 과거 동프로이센 주민으로서 대를 이어 끝까지 이곳에 사는 것을 신념으로 여긴다고 한다.# 전후 재산을 잃고[2] 독일 성씨와 독일어라는 정체성과 언어만 남은 셈이다.
현재 러시아 해군 발트 함대가 칼리닌그라드 주 발티스크[3] 에 주둔하고 있다. 이 곳을 상실하면 러시아 정부로서는 발트 해에 해군력을 투사할 방법이 거의 사라지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요충지이다.[4]
1.2.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시
러시아어: Калининград (Kaliningrad), Кёнигсберг (Kyónigsberg)
독일어: Kaliningrad, Königsberg
폴란드어: Królewiec
칼리닌그라드 시는 칼리닌그라드 주의 주도이며, 발트 해에 면한 항구 도시이다. 인구는 2010년 통계에 따르면 431,402명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에는 쾨니히스베르크라고 불렸으나 소련의 도시가 된 이후로 칼리닌그라드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한국에서는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건너기 문제로 의외의 인지도가 있다. 이곳도 2차 대전 이전에는 독일인이 다수였지만 독일의 2차 대전 패전 이후 승전국 소련이 이 도시를 차지하면서 독일인은 거의 쫓겨나고 러시아인 이주민이 빈 도시를 채웠다.
러시아가 보유한 몇 안 되는 부동항 중 하나로 요충지이다. 선박 관련 중공업이 발전해 있으며 그 외에도 어류 가공업 등의 경공업이 조금 있다. 또한 해군의 발트 함대 사령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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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2.1. 독일령 시절
12세기 이전에는 서발트계 종족들이 살던 지역이었지만 튜튼기사단이 칼리닌그라드 일대를 정복하면서 독일인들이 대거 칼리닌 그라드로 이주하고 발트계 종족들의 독일화가 진행되었다. 독일 기사단국과 프로이센 공국의 중심지 쾨니히스베르크와 그 주변 지역이었으며 프로이센 공국이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과 통합해 프로이센 왕국으로 승격되면서 수도는 베를린으로 옮겨갔지만 이 도시는 동프로이센의 주도로서 당연히 독일계 주민들이 살았다. 따지고 보면 독일 제국(제2제국)이 프로이센의 주도로 만들어진 나라이니만큼 근대 독일의 발상지라고 할 수도 있는 지역이었다. 이 곳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이마누엘 칸트. 칸트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평생 이 도시의 반경 150km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2차 대전 종전 이전의 역사는 쾨니히스베르크와 비스와-오데르 대공세, 동프로이센 공세 문서를 참고.
2.2. 2차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패전과 함께 독일인은 추방되거나 비참하게 죽었고, 대신 러시아인이 이주해 들어왔다. 1945년 이 지역은 소비에트 연방의 최대 구성국인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스탈린은 서독 아데나워 총리에게 서독이 동독과 사회주의 체제 하에 통일하면 독일에게 1937년 당시의 영토를 보장해준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니키타 흐루쇼프는 이 땅과 인접한 소련 구성국인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합병시키려고 했다. 실제로 병합됐다면 지금쯤 칼리닌그라드는 리투아니아 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리투아니아의 공산당 지도자 안타나스 스니에치쿠스(Antanas Sniečkus)가 거절해서 무산됐다는 썰이 있다. 이 썰에 따르면, 스니에치쿠스는 이 곳을 리투아니아로 합병하면 리투아니아 인구 가운데서 러시아계의 비율이 너무 높아져 버리는 상황을 꺼려서 거절했다는 것이다. 사실 칼리닌그라드가 튜튼기사단이 정복하기 이전에는 발트족의 땅이었고 프로이센 공국도 상당기간 동안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봉신이었지만 러시아가 점령한 것은 고작 7년 전쟁이랑 제1차 세계 대전 초반 일시적으로 점령한 정도에 불과했었기 때문에 러시아에 소속되는 것보다 리투아니아에 소속되는 것이 훨씬 역사적 명분이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독일인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군인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계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고, 이건 당시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결국 칼리닌그라드는 그대로 러시아 소속이 됐다고 한다.# 영토와 함께 리투아니아 입장에서는 통제하기 어려운 거대한 소수민족 집단이 덤으로 따라오는 셈이니 그냥 안 받는 게 낫다고 여긴 것.
어쨌든 1946년 4월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소속 쿄니그스베르크[5] 주(Кёнигсбергская о́бласть)가 설치되었으며 도시 이름도 쿄니그스베르크(Кёнигсберг)[6] 였으나, 동년 7월 미하일 '''칼리닌'''(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이 사망한 후, 도시와 주 모두 그의 이름을 따 '''칼리닌'''그라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소련의 서단에 위치한 이 지역은 냉전 시대에는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했으며, 따라서 비밀도시 중 하나였다. 이후 소련이 사라지고 리투아니아·라트비아·벨라루스가 독립한 후 칼리닌그라드 주는 러시아의 일부로 남아 본토와 떨어진 기묘한 존재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러시아 본토와 칼리닌그라드를 국내선 항공으로 이동하면 상관없지만 육로로 오가려면 리투아니아·라트비아 또는 리투아니아·벨라루스를 거쳐야 한다. 소련 시절에도 러시아의 월경지이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당시에는 소련 안에 있는 행정구역들 중의 월경지였으므로, 주권국가 소련 전체로 봤을 땐 월경지가 아니었고, 지금의 리투아니아 땅을 거치는 국내 이동도 자유로웠는데 이제는 러시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벨라루스가 각각 독립국이 되어서 미묘해졌다. 그만큼 칼리닌그라드의 경제 상황은 좋지 못 한 편이다.[7]
3. 명칭
칼리닌그라드뿐만 아니라 칼리닌그라드 주 내의 모든 역사적 독일식 지명은 러시아식 지명으로 갈아 엎어졌다. 예를 들면 인스테르부르크는 체르냐홉스크, 굼비넨은 구셰프, 틸지트는 소비예츠크 등등.[8]
비슷하게 2차 대전이 끝난 이후 폴란드에 할양된 구 프로이센 지역은 그나마 원래 이름을 폴란드어식 표기와 발음으로 바꾼 정도가 대부분이지만, 러시아에 할양된 북부 동프로이센(칼리닌그라드 주)만큼은 완전히 뜬금없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앞으로도 원래 이름을 되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실 리투아니아에 할양된 메멜 역시 클라이페다라는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바뀌긴 했다. 다만 클라이페다라는 이름 자체는 리투아니아에서는 15세기부터 써온 이름인데 비해 칼리닌그라드 지역은 거의 2차대전 이후에 아예 새로 지은 이름이다.
러시아가 독일어 지명인 상트페테르부르크처럼 쿄니그스베르크란 독일어 지명을 복구하여 그 이름 그대로 사용하거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한 때 러시아어로 고쳐 페트로그라드로 불렀던 경우처럼 러시아어로 '카롤스그라드' 등처럼 부를 수도 있을텐데 영유권 문제가 발생하는 걸 원치 않았는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곳과는 경우가 다르지만, 원래 이름없는 황무지였다가 소련 시절에 와서야 도시로 개발된 곳도 이런 식으로 공산당스러운 이름이 남은 사례가 몇몇 있기는 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경우 원래 러시아의 영토였고 독일어식 역사적 지명을 써도 영유권에 아무 문제가 없지만, 원래 독일 땅이었던 칼리닌그라드는 독일의 흔적을 최대한 없애야 러시아가 이 땅을 계속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이 곳의 이름이 쾨니히스베르크로 되돌려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4. 독일과 칼리닌그라드
원래 독일령이었기 때문에 옛날에는 독일이 이 지역을 되찾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했던 적이 있지만, 동독과 서독의 통일을 앞두고 결국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독일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소중했던 도시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개전국으로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과감히 포기했다. 프로이센 문서 참조.
게다가 2차대전 패전으로 옛 독일 동부를 폴란드와 러시아에 할양했는데 여기는 위치상 독일에서도 육상으로 직접 접근할 수 없으며(독일에서 육상으로 접근하려면 폴란드를 경유해서 가야 한다), 동프로이센의 남부지역은 폴란드 영토가 된 지 오래인데 만일 이 곳을 되찾으면 다음 순서는 동프로이센의 남부 지역, 서프로이센, 슐레지엔, 포젠, 포메른의 나머지 영토도 위태해질 것이 크기 때문에 폴란드가 독일의 통일을 방해할 충분한 사유가 된다. 당장 2차대전 개전도 비슷한 일(단치히 회랑 문제)때문에 벌어져서 폴란드가 멸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지역 영유권을 완전히 포기한 독일 정부와는 달리 독일 민간 차원에서는 여전히 독일의 경제/정치적 영향력 유지를 바라는 사람들이 적잖다. 실제로도 칼리닌그라드에 독일 영사관을 별도로 설치하거나 BMW 공장을 유치해서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거나 프로이센-독일 시절의 건축물들을 유지 보수하는 등의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는 중이다.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도 철거 예정이었지만 칼리닌그라드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의 반대와 독일 기업들의 제의로 재건된 것이다. 현지 거주 독일인들이야 숫자가 얼마 안 되고 가난한 편이니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독일 기업들의 제의를 무시하기에는 제의에 따라오는 조건이 좋았다.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의 정보와 설계도를 러시아에 넘긴 것도 다름 아닌 독일 정부였고 독일 기업들이 재건에 큰 관여를 했다. 그 밖에도 칼리닌그라드 주의 대표 맥주 오스트마르크는 쾨니히스베르크 시절 맥주 브랜드명과 독일식 맥주순수령에 따른 레시피 그대로 부활하여 절찬리에 현지에서 판매 중이다.
5. 러시아의 월경지
칼리닌그라드는 원래 쾨니히스베르크라는 독일 영토였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소련에 합병된 후, 소비에트 중앙위원회 지도자인 미하일 칼리닌의 이름을 따 칼리닌그라드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EU 가입 후 칼리닌그라드를 놓고 러시아와 EU간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었다.
칼리닌그라드의 인접국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2004년 EU에 가입해서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본토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월경지가 되었고 이 지역 주민에 대한 비자 발급 문제가 러시아와 EU간 최대 현안으로 대두되었다.
러시아의 한 주(州)로 본토와 떨어져 발트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는 칼리닌그라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갇혀 있는 특이한 지역이다. 칼리닌그라드는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발트 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가 독립하면서 본토로부터 단절됐는데, 이 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의 국경을 경유해야만 한다.
소련 해체 직후에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서 따로 조치를 취해줘서 칼라닌그라드 주민들은 비자를 안 받아도 폴란드나 리투아니아를 경유해 러시아 본토로 건너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두 나라가 2004년 EU에 가입해 역외국가에 대해서 비자를 요구하는 솅겐조약의 적용을 받게 되면서 문제가 골치아파졌다. 솅겐 지역과 러시아는 예나 지금이나 상호 무비자가 적용되지 않아 칼리닌그라드와 러시아 본토 주민들은 왕래할 때마다 경유 국가인 폴란드나 리투아니아의 입국 비자를 받아야만 하게 되었다.
이에 러시아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EU 가입 뒤에도 칼리닌그라드 주민들에 대한 통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EU는 불법 입국자와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해서 비자 발급이 불가피하다고 맞섰다. 러시아는 솅겐조약이 적용될 경우 까다로운 출입국 과정과 비자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칼리닌그라드 주민과 경유 화물의 흐름이 사실상 차단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려해서 의무적 비자 발급에 반대했다.
당시 이 문제를 취재한 “모스크바 타임즈”에 의하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국경을 넘나들며 담배와 보드카로 200%의 이윤을 남기며 장사하고 있던 이 지역의 수많은 상인들과 칼리닌그라드를 경유하고 있던 수입차 업자들에게 곤란이 닥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또한 같은 보도에 따르면 2001년 8백여 만 명의 사람들이 칼리닌그라드 국경을 오갔지만,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비자 발급제가 도입될 경우, 매년 각각의 영사관에서 5만 명과 15만 명의 비자 발급만이 준비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게다가 당시 칼리닌그라드 주 정부에서는 95만 칼리닌그라드 주민의 4분의 1 이상이 아직도 여전히 소지하고 있는 구 소련 여권을 대체할 수 있는 국제 여권이 무엇보다 시급해진다고 밝혀서 혼란까지 예상되고 있었다.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가 발트해로 진출하는 유일한 출구인 동시에 연간 수백여 만 명의 내·외국인들이 출입하는 요충지이기도 해 자유로운 출입이 필수적이다. 러시아 측으로서는 최소한 무비자 여행 및 3개월 동안의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는 협의가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이었다.
유럽연합과 협상 당시 러시아 정부 측의 무비자 허용 요구 이유에는 자유로운 교류에 대한 필요성 외에도 본토에서 완전히 격리된 칼리닌그라드의 유럽연합으로의 통합 움직임이 가속화라는 정치적 우려 또한 있었다. 반면 유럽연합은 국경 방어에 소홀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불법 이민·마약 거래·자동차 도난과 밀수 등 각종 범법 행위를 우려하며 비자 발급이 불가피함을 내세웠다. 이에 러시아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정하고 2001년부터 강력한 국경 통제를 위해 새로운 법률안들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유럽연합 측의 “새로운 비자 체계는 요금 면에서 더 싸고, 발급 절차도 기존보다 간편하고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며, 또한 옵션으로 장기간의 복수비자와 혁신적인 플라스틱 신분증 제도 등을 제공할 것”이라는 절충안에도 한동안 러시아는 비자 발급 의무화 요구에 부동자세였다. 푸틴 대통령도 칼리닌그라드의 자유통행권 보장을 역설했다. 푸틴 대통령뿐 아니라 당시 러시아 국가두마 의원 드미트리 로고진도 “일부 리투아니아 보수 정당에서 칼리닌그라드를 유럽에 편입시키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이는 비록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러시아에 비우호적인 자세”라고 말하며 다시 한 번 칼리닌그라드의 유럽연합으로의 통합 움직임 가능성을 우려했다. 협상 당시 칼리닌그라드 주지사 라디미르 예고로프는 칼리닌그라드 내에서도 옛 영토인 독일로 복귀하자는 분리주의 정서가 나타나고 있는 데 대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5만 명이나 되는 소련군 병사들이 이곳에서 희생됐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며 여론 수습에 나섰다.
결국 칼리닌그라드 주의 특수 상황을 감안해달라는 러시아와 난색을 보이는 유럽연합의 협상은 칼리닌그라드에서 러시아 본토까지 육로로 이동할 때 간이 통행증을 발급받는 조건으로 합의되었다. 비자와 간이 통행증은 발급 난이도 차이가 있다. 비자는 말 그대로 다른 EU 국가들로 가는 비자와 동일하게 취급되어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발급을 못 받을 수도 있으나, 간이 통행증은 특정 기간 내에 통과한다는 조건으로 발급을 쉽게 내준다.
6. 분리주의
안 그래도 주변국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되었고 월경지로 고립되자 아예 칼리닌그라드 주가 독일로 복귀하거나 독립을 하든가, 아니면 적어도 자치권을 받기 원하는 움직임이 작게나마 있었다. 칼리닌그라드 주가 소국으로 독립하거나 홍콩처럼 특별 행정구가 되어 유럽연합이나 솅겐조약에 가입하길 원하는 것이다.
1993년에는 발트공화당(Балтийская республиканская партия)이라는 정당(러시아어 홈페이지 / 영어 블로그)이 생겨서 칼리닌그라드 주를 '''발트 공화국'''으로 변경하고 칼리닌그라드 시를 쾨니히스베르크로 복구시킬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일단 발트공화당은 발트 공화국을 러시아 내 자치 공화국으로서 출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지만 독립국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러시아와 유럽연합 간의 대립이 더 첨예해지면서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도 음양으로 분리주의 운동을 더 강하게 억누르는 조치를 취했다. 2003년 러시아 내 '''과반'''의 연방 구성체에 지역 조직을 두어야 하고 최소 1만 명의 당원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는 새로운 정당법이 발효됨에 따라 현재는 법외정당으로 전락했다. 딱 봐도 분리주의 정당이 생기는 것을 봉쇄하려고 이런 법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2001~2004년경 러시아계 주민들의 자발적인 독일로의 병합 운동 및 쾨니히스베르크 명칭 복귀 운동이 일어난 적도 있었다#. 현재도 이런 운동은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앞에서 링크한 발트공화당의 영문 블로그만 봐도 계속 활동가들이 투옥됐다는 소식이 올라온다. 여담으로 현지 분리주의자들은 독립국 또는 자치 지역의 깃발로 구 동프로이센 주 깃발[9] 에 동프로이센 검정 독수리 문장을 결합한 깃발이나 프로이센 국기, 그리고 구 쾨니히스베르크 시의 깃발 등을 상징물로 쓴다#. 프로이센의 검정 독수리 문장과 대동소이하다. 칼리닌그라드의 분리주의자들은 보통 왕관이나 검 등을 일체 안 그리고 오로지 검정 독수리만 방패에 그려진 문장을 선호하는 듯하다. 자신들은 프로이센 왕가와 무관하니깐... 이들 중에 극히 일부만 독일계 러시아인이고 대부분은 러시아어를 쓰는 러시아계임에도 철저히 러시아와 연계된 상징을 거부하고 전부 옛 독일·프로이센과 관련된 상징을 쓰고 있다. 러시아와 관련된 상징이 아예 안 쓰이는 건 아닌데, 러시아 국기 위에 NATO 휘장을 덧댄 걸 사용하기도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아예 독일로 망명하여 러시아계 독일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러시아로서도 이 지역이 전략상 요충지고 우크라이나나 일본과의 영토 분쟁에 불리해질 선례를 남길 수도 없는 처지이다. 발트해 연안의 요충지로 스칸디나비아 지역과 중부 유럽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곳이다. 칼리닌그라드가 러시아 해군의 발트 함대의 모항인 이유이다. 또한 부동항이라는 것도 중요한 요소다.
여러가지로 힘들어서 옛날 국제연맹 산하 단치히 자유시 같은 '''UN 산하 신탁통치를 받는 국제 발트 자유시'''로 만들어달라는 움직임도 있다. 유럽의 국제 자유시로 만들고 러시아가 세관, 경찰 등 치안을 맡는 식으로 간섭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그런데 UN에는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이라서 안 될 거야 아마 상태. 국제연맹은 총회 만장일치 시스템이었지만 UN은 안전보장이사회 결의가 더 우선이라 이리저리 힘들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유럽연합에 대한 인기가 동유럽에서 크게 사그라들면서 마찬가지로 칼리닌그라드에서도 그나마 있던 분리주의 정서가 더 시들해졌다. 분리주의 정서가 커지냐 작아지냐를 떠나서 현지 거주 독일인은 여전히 인구 대비 극소수에 불과하며 분리주의 정서는 다수 민의를 대변했던 적이 없고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러시아 정부가 스스로 칼리닌그라드를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 분리주의 정서가 있다지만 현지에 남아있는 독일인 주민 또한 이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7. 관광
2014년부터 한국인들이 러시아에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게 되면서, 동유럽을 여행할 때 쉽게 들를 수 있게 되었다.[10] 폴란드 북부 그단스크나 리투아니아에서 정기 국제 버스를 이용하여 입국할 수 있는데, 입국 심사가 무슨 이스라엘만큼 빡세다. 만약 육로로 여행할 계획이라면, 운이 좋으면 그냥 빨리 끝날 수도 있지만 일단 폴란드에서 칼리닌그라드로 입국할 때 1시간, 다시 칼리닌그라드에서 폴란드로 들어갈 때 4시간 정도를 출입국 심사에 희생할 각오를 해두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돈은 러시아 루블을 쓰고 물가는 러시아 영역이라 서유럽보단 저렴한 편. 영문 안내 등 관광 인프라는 아직 부실하다.
볼거리는 구 쾨니히스베르크 시청이나 쾨니히스베르크 성당, 호박 박물관, 증권거래소, 쾨니히스토르(왕문), 칸트 동상 등 프로이센 시절의 주요 유적들이다. 독일인들이 비록 러시아에 넘겨준 땅이지만 프로이센 시절의 유물 유지보수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쿠로니아 모래톱 공원도 이 주에 위치한다.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건너기 문제의 그 다리도 걸어볼 수 있다. 이젠 3개밖에 안 남았지만. 쾨니히스베르크 성당으로 들어가는 1개의 다리를 빼고 나머지 2개의 다리는 공사 중이다.(2017년 5월 31일 기준)
칼리닌그라드 시 시가지에서 버스로 약 1시간 떨어진 얀타르니는 소련 시절 약 600톤의 호박이 채집된 곳으로 유명하며 2007년 부터 2013년까지 러시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및 유럽연합의 재정으로 세 나라에 걸친 광활한 '발틱 앰버 비치'가 조성되어있다. 운이 좋으면 허허벌판 모래사장에서 아주 작은 호박 조각을 채취할 수도 있다. 다만 공중 화장실이 몇 개 없으며 1회 이용시 가격이 15루블(2015년 9월 기준, 2017년 현재 원화로 대략 300원 정도다.)이다.
8. 기타
러시아의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 지역의 투표와 개표가 제일 마지막으로 끝난다. 러시아의 선거는 11개로 나뉜 시간대를 가진 광활한 영토로 인하여 그 과정이 길기로 유명하다. 투표와 개표가 제일 먼저 이루어지는 곳은 미국과 국경을 마주한 최동단 추코트카와 베링 해협 지역의 선박에서 이루어지는 선상투표.
유럽연합과 러시아와는 무비자 협정이 체결되어 있지 않았지만, 폴란드는 칼리닌그라드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한해서 폴란드를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게 허용해주고 있다.
IKBFU(임마누엘 칸트 발틱 연방 대학교), KSTU(칼리닌그라드 국립 공과 대학교) 등 몇 개의 대학이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개최도시들 중 하나다. 러시아 본토도 월드컵 경기와 무관한 지역이 널려 있는데 굳이 본토와 떨어진 이 곳을 개최지로 정했다는 점에서, 이 참에 분리주의 및 독일로의 귀속설 등을 가라앉히려는 속내가 엿보인다. 그래서 현지의 분리주의자들이 러시아 월드컵 보이콧을 부르짖기도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칼리닌그라드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독일전 조별리그는 없었고, 16강 이후로는 독일전 자체가 없었다.
2016년에 러시아가 미국, 서방과 갈등을 크게 빚고 있는 와중에 칼리닌그라드에 9K720 이스칸다르 미사일을 배치했다. ## 그리고 핵장착이 가능한 신형미사일을 영구배치시켰다. # 거기에다 러시아측이 2018년에는 핵무기보관벙커를 대폭 강화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리고 러시아는 칼리닌그라드의 전략 거점에 있는 핵시설을 포함한 4개의 군 시설을 업그레이드해 현대화하고 있는 것이 새 위성사진 판독에서 드러났다고 CNN이 2018년 10월 17일에 보도했다.## 2019년 10월 18일에 칼리닌그라드에서 러시아와 독일의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개최되었다.#(러시아어)
러시아 국민가수 올레크 가즈마노프의 고향이기도 하다.
[1] 소련 시절에는 게토였다.[2] 그러나 동독에 편입된 지역의 융커들도 토지개혁으로 토지 재산을 잃은 것은 마찬가지였다.[3] 과거 독일령 시절에는 필라우라고 불렸던 곳이다.[4] 발트해의 러시아 도시로 칼리닌그라드 외에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있지만, 발트해 동쪽 끝단의 핀란드 만 안쪽에 있어서 발트해 전체를 아우를만한 위치는 아니다.[5] 러시아어에는 한국어에 있는 외래어 표기법 비슷하게 외래어를 옮기는 규칙이 있는데, 이 규칙에 따라 독일어를 러시아어로 비슷하게 옮긴 게 Кёнигсберг이다.[6] 지금도 이를 줄인 '쿄니그'라는 별명이 여행사 등에서 사용된다.[7] 공교롭게도 독일령 시절 쾨니히스베르크를 비롯한 동프로이센의 경제 상황 역시 썩 좋지는 않았다. 이 일대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융커들이 산업화보다는 안빈낙도를 추구하는 바람에 산업화가 적게 이루어져 이촌향도 현상이 심했기 때문이다.[8] 다만 기존 독일식 지명이 문화재 이름에 남아있는 경우는 간혹 있다. 가령 칼라닌그라드의 쾨니히스베르크 대성당이나, 그바르데이스크의 타피아우 성처럼.[9] 가로로 검정색과 흰색을 칠한 깃발.[10] 종전에는 러시아 본토를 안 가고 동유럽 여행 중 여기만 지나간다고 해도 비싼 러시아 비자를 시간 들여 받아야 했기 때문에, 어떤 동기가 있어서 반드시 여기를 가야만 한다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여행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