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 플랑드르역
Gare de Lille-Fland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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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플랑드르역은 프랑스 북부 오드프랑스 지방의 중심도시 릴의 중심역이며, 파리 북역-릴 철로의 종착점이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릴 유럽역과는 550m 떨어져있다. TGV를 포함한 SNCF의 각종 열차들 및 벨기에의 InterCity편도 이 역에 운행하고 있으나 국내선, 국제선 고속편은 주로 릴 유럽역으로 운행한다. 이용객 수는 연간 약 2천만명에 달한다.
의회는 1838년 파리-릴간의 철도 건설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관련 법을 제정하였으나 그후 수년간 배정 예산의 전용문제와 역 위치 선정에 관련된 의회, 지역 관청, 철도회사, 군부대 등 관계 당사자간의 지지부진한 논의 등으로 진통을 겪어왔다.
계속된 논의를 겪은 후 역의 위치는 종착역 형태의 시내역과 벨기에로 철로가 이어지는 교외역의 두 가지 안으로 좁혀졌다. 정부는 제한된 규모로 시내에 역을 건설할 것을 제안했으나, 시 추진위원회측은 이 안을 채택하면 결국에 교외에 더 큰 역을 짓게 된다며 반대했다. 이후 시내역의 규모와 기능을 확장하여 다시 제안했으나 이는 부지 확보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결국 진통끝에 여러 관계부처는 1843년이 되어서야 시내와 교외에 모두 역을 설치하는 것으로 합의하게 된다.
이 와중에 파리 북역-릴 철로 공사는 최종구간의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담당 엔지니어는 철로의 적기 가동이 가능하도록 시외역으로 예정된 부지에 간이역을 우선적으로 지을 것을 제안했으나 시 당국은 이마저도 너무 거대해서 시내역의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 거부하고 수정안을 요구하였다.
이에 교외역을 '간이역'으로 명명하고 시내역과의 기능 분담을 명시한 수정안이 제시되었고, 시청은 이에 만족하였으나 도청측에서 의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을 제시하며 재고를 권고하였다. 이러한 사정으로 시청은 단독 예산으로 간이역도 아닌 하역장을 리옹도르(Lions d'Or) 구역에 우선 건설하기로 했으며 이 하역장은 정식으로 피브(Fives)의 몽드테르(Mont-de-Terre)에 교외역이 세워질때까지 간이역의 역할을 수행하고 교외역의 정식 개업 후 폐쇄된다.
한편, 군측은 요새의 안전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며 시내역 자체에 격렬하게 반대했으나 1843년에 정부가 시내와 교외에 각각 역을 설치하는 안에 긍정적인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설치가 가능해졌고, 부지도 군부대가 주둔하던 위치로 정해졌다. 1845년에 중심역의 지위를 시내역에 부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후 정부측이 건설하던 철로 및 시내 신역사의 권리를 북철도회사에 양도하였고 역은 1848년에 완공, 각각 덩케르크와 칼레 노선을 개업한다.
이 때부터 이 역은 북유럽의 교차로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며, 국제선 승차권의 발매도 가능해진다. 이후 역의 수요가 계속함에 따라 1865년에 북철도회사는 신역사를 짓기로 결정[1] , 1867년에 완공하여 현재 역사의 모습을 띄게 되었고, 이후 여러 번의 개증축을 거쳐 1993년에 TGV 운행을 개시한다.
이듬해 릴 유럽역이 개업함에 따라 지역의 플랑드르계 주민들의 희망대로 이름을 릴 역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한다.
릴 지하철 1, 2호선이 모두 이 역에 정차하며 트램, 시내버스와도 연결된다. 공항까지는 셔틀버스로 바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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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릴 플랑드르역은 프랑스 북부 오드프랑스 지방의 중심도시 릴의 중심역이며, 파리 북역-릴 철로의 종착점이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릴 유럽역과는 550m 떨어져있다. TGV를 포함한 SNCF의 각종 열차들 및 벨기에의 InterCity편도 이 역에 운행하고 있으나 국내선, 국제선 고속편은 주로 릴 유럽역으로 운행한다. 이용객 수는 연간 약 2천만명에 달한다.
2. 역사
의회는 1838년 파리-릴간의 철도 건설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관련 법을 제정하였으나 그후 수년간 배정 예산의 전용문제와 역 위치 선정에 관련된 의회, 지역 관청, 철도회사, 군부대 등 관계 당사자간의 지지부진한 논의 등으로 진통을 겪어왔다.
계속된 논의를 겪은 후 역의 위치는 종착역 형태의 시내역과 벨기에로 철로가 이어지는 교외역의 두 가지 안으로 좁혀졌다. 정부는 제한된 규모로 시내에 역을 건설할 것을 제안했으나, 시 추진위원회측은 이 안을 채택하면 결국에 교외에 더 큰 역을 짓게 된다며 반대했다. 이후 시내역의 규모와 기능을 확장하여 다시 제안했으나 이는 부지 확보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결국 진통끝에 여러 관계부처는 1843년이 되어서야 시내와 교외에 모두 역을 설치하는 것으로 합의하게 된다.
이 와중에 파리 북역-릴 철로 공사는 최종구간의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담당 엔지니어는 철로의 적기 가동이 가능하도록 시외역으로 예정된 부지에 간이역을 우선적으로 지을 것을 제안했으나 시 당국은 이마저도 너무 거대해서 시내역의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 거부하고 수정안을 요구하였다.
이에 교외역을 '간이역'으로 명명하고 시내역과의 기능 분담을 명시한 수정안이 제시되었고, 시청은 이에 만족하였으나 도청측에서 의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을 제시하며 재고를 권고하였다. 이러한 사정으로 시청은 단독 예산으로 간이역도 아닌 하역장을 리옹도르(Lions d'Or) 구역에 우선 건설하기로 했으며 이 하역장은 정식으로 피브(Fives)의 몽드테르(Mont-de-Terre)에 교외역이 세워질때까지 간이역의 역할을 수행하고 교외역의 정식 개업 후 폐쇄된다.
한편, 군측은 요새의 안전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며 시내역 자체에 격렬하게 반대했으나 1843년에 정부가 시내와 교외에 각각 역을 설치하는 안에 긍정적인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설치가 가능해졌고, 부지도 군부대가 주둔하던 위치로 정해졌다. 1845년에 중심역의 지위를 시내역에 부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후 정부측이 건설하던 철로 및 시내 신역사의 권리를 북철도회사에 양도하였고 역은 1848년에 완공, 각각 덩케르크와 칼레 노선을 개업한다.
이 때부터 이 역은 북유럽의 교차로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며, 국제선 승차권의 발매도 가능해진다. 이후 역의 수요가 계속함에 따라 1865년에 북철도회사는 신역사를 짓기로 결정[1] , 1867년에 완공하여 현재 역사의 모습을 띄게 되었고, 이후 여러 번의 개증축을 거쳐 1993년에 TGV 운행을 개시한다.
이듬해 릴 유럽역이 개업함에 따라 지역의 플랑드르계 주민들의 희망대로 이름을 릴 역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한다.
3. 연계교통
릴 지하철 1, 2호선이 모두 이 역에 정차하며 트램, 시내버스와도 연결된다. 공항까지는 셔틀버스로 바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