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마(밴드)

 

1. 소개
2. 결성
3. 전성기
4. 해체
5. 이후
6. 멤버
7. 평가
8. 앨범
9. 수상
10. 여담


1. 소개


사진 좌측이 '''문영식''', 나시를 입고 있는 가운데 청년이 '''조하문''', 우측이 '''김광현'''.
1980년 MBC 대학가요제박두진의 시 해(시)를 모티브로한 노래 <해야>로 출전해 은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던 대한민국의 하드록 밴드.
<Magma> 앨범 단 한 장을 내고 해체했지만 강렬한 사운드로 현재까지 언급되고 있다.

2. 결성


(다음은 주간 한국의 최규성 칼럼니스트의 글을 인용.)
딥 퍼플 등의 하드록 밴드의 음악에 열광하던 젊은 대학생이었던 조하문은 당시 직접 조직했던 록밴드 아스펜스[1] 해체 이후 정기 연고전 공연 연습으로 합주실을 들락거리던 중 불문학과 동급생 김광현[2] 만나게 되고 그의 화려한 기타 플레이에 반해[3] 밴드 결성을 제안한다.
김광현은 이후 드럼을 쳤던 라이너스의 베이스 기타 문영삼의 동생 문영식을 합류시켰다. 또한 베이스는 연대 밴드부에서 한명을 스카우트해 4인조를 결성했다. 이화여대 앞에 70만 원 짜리 방을 전세 내 연습실을 마련했고 깁슨기타, 펜더베이스, 루드윅 드럼등 최고급 악기도 장만했다. 이때가 대학 3학년 때인 1980년 6월. 매일같이 모여 음악연습을 했다.
어느 날 조하문은 실력이 처졌던 베이스 기타를 참다못해 부셔버렸다. 그 일로 베이스멤버는 탈퇴를 하고 조하문이 베이스를 맡게 되었다. 처음 4인조로 결성되었지만 작사작곡, 보컬, 베이스에 연세대 지질학과 2학년 조하문, 리드 기타에 연세대 불문학과 2학년 김광현, 그리고 드럼엔 서울대 경영학과 2학년 문영식 3인조로 라인업을 재구성했다. 이들의 음악적 공통관심은 철저한 헤비메탈로 외국 곡 카피보다는 창작곡을 지향했다.

3. 전성기


이후 1980년 대학가요제[4]에 자작곡 해야로 출전하게 되고, 포크 일색이었던 당시 조류에 익숙해있던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어 인기를 끌게 된다. 특히 당시 수많은 록키드들에게 지지를 받았고, 밴드의 프론트맨 조하문은 수려한 미모와 뛰어난 음악적 역량[5], 뛰어난 가창력[6]으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된다.

4. 해체


뛰어난 인기와는 반대로 멤버들은 고된 스케쥴에 지치게 된다.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들은 4학년이 되자 진로문제, 군대문제로 고민하게 되었고 결국 해체를 하게 된다. 대신, 오리엔트 프로덕션의 취입 제의에 승락해 기존에 만들어두었던 자작곡들을 가지고 해체전에 최초이자 최후의 정규 앨범을 내기로 결정하고 앨범 제작에 들어간다. 이것이 바로 1집 <Magma>.

5. 이후


조하문은 이후 팝 장르로 전향해 솔로 데뷔, 그 인기를 이어간다. 하지만 이후 이에 싫증을 느끼고, 현재에는 목사의 삶을 살고 있다.
리드 기타 김광현은 졸업 후 MBC 김보경 아나운서와 결혼해 파리 제 3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언어학을 전공했다. 현재 그는 대구대학교 불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드럼 문영식은 미국 워싱턴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경영학 석사 학위를 따고 대우경제연구소에서 근무 했다.

6. 멤버


[image]
조하문. 리더, 보컬, 베이스 담당.
한마디로 '''먼치킨'''. 작사, 작곡, 편곡에 베이스 실력도 수준급이다. 게다가 보컬까지....학창시절부터 가창력으로 유명했으며 고교시절엔 딥 퍼플의 Burn 커버로 엄청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딥 퍼플의 글렌 휴즈를 연상시키는 엄청난 고음역대 보컬을 가지고 있으며, 3옥타브를 넘기는 날카로운 샤우팅을 무표정으로 내지르는게 주특기[7]. 대학가요제 때 영상만 봐서는 부를 때 표정이 너무 편안하고 음질도 좋지 않아서 전혀 고음같지 않아 보일 수 있는데 막상 불러보면 아무나 하기 힘든 난이도의 고음이다. 워낙 재능이 뛰어난지라 멤버 중에서 지나치게 혼자 주목받는 경향이 있었다 .
김광현. 기타 담당.
이 밴드의 숨은 브레인. 뛰어난 기타플레이로 당시 대학가를 풍미했다. 해외유학 경험 덕에 상당히 서구적인 기타 플레이를 선보이며 특유의 퍼즈톤이 매력적이다. 마그마 1집에서 탈출, 잊혀진 사랑 등에서 굉장한 역량을 보여준다. 혹자는 조하문보다 이 사람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작곡을 하기도 했다.[8]
문영식. 드럼 담당.
다른 멤버들이 워낙 뛰어난지라 언급이 잘 안된다(...)라이너스의 베이시스트였던 문영삼의 동생이다.

7. 평가


<Magma> 앨범은 당시 록키드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얻은 명반으로 통한다. 당시 유행하던 하드록, 싸이키델릭 록의 거친 사운드, 프로그레시브적인 요소가 적절히 배합되어 정교한 사운드를 탄생시킨다.[9]
현재에도 많은 지지를 받는 앨범으로, 해외 콜렉터들의 거래대상이 되기도 하며, 타이틀곡 해야는 후배들에 의해 자주 리메이크되고 있다. 조하문과 김광현의 뛰어난 역량 덕에 이 밴드를 슈퍼밴드로 칭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한마디로, '''천재들'''이다.

8. 앨범


<Magma> 1981

9. 수상


1980년 대학가요제 은상

10. 여담


밴드의 이름이 마그마인 이유는 '자신들의 잠재력과 하드록의 폭발적 분위기를 잘 표현한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조하문이 연세대학교 지질학과인 것이랑 관련있을지도.
밴드의 히트곡 알 수 없어가 영화 써니에 사용되기도 했다.
이들의 곡을 커버한 뮤지션들의 네임드가 엄청나다. 이선희, 김경호[10], 체리필터, 국카스텐, YB 등. 때문에 해당 뮤지션들의 팬덤 사이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인기에 힘입어 2004년에 앨범이 리마스터링되어 재발매되었다.

[1] 당시 여러 방송에 출연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고.[2] 미국, 유럽 유학 경험에 있어 당시 록계 조류에 빠삭했다고. 외제기타를 사용했으며 라이너스의 기타리스트로 뛴 경험도 있다.[3] 김광현 역시 조하문의 날카롭고 쩌렁쩌렁한 보이스에 매료되었다고 한다.[4] 이 해 라인업이 매우 화려하기로 유명한데, 대상이 꿈의 대화, 같은 은상이 연극이 끝난 후다(...)[5] 작사, 작곡, 편곡에 베이스도 치면서 3옥타브 도를 무표정으로 내지르는 괴력의 소유자다(...)[6] 당시 날카로운 고음역대 보컬때문에 나이프 조라는 별명이 있었다고.[7] 전성기 시절 기량은 마그마 앨범에 수록된 아름다운 곳에서 확인가능하다.[8] 해야, 탈출 등.[9] 산울림의 영향이 보인다는 평도 많다.[10] 듣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