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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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곱상하고 가냘픈 인상과 다르게 무대에 오를 때면 전사의 기개가 뿜어져 나오는 가수.'''
- 장기호 (빛과 소금 멤버,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나는 가수다 자문위원. 김경호 자서전 '멈추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추천사)
특유의 두꺼운 미성과 날카로운 고음, 폭발적인 샤우팅, 엄청난 성량, 그리고 무지막지한 무대 매너와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압도적인 라이브로 유명하며 해외에서까지 극찬을 받았던 최정상 그 이상의 가창력을 지닌 '''대한민국의 전설적인 록보컬리스트'''이다. 또 록커로써는 정말 드물게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 1위 곡[6] 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적인 히트곡들도 꽤 있는 대중적인 가수다.[7] 별명으론 국민 언니, 경호 언니/누나, 로큰롤 언니, 상남자, 주부 락커[8] , 깜찍이 락커[9] , 쁘띠 락커, 예쁜 치타, 노친네[10] , 헤어 마스터, 애기[11] 등이 있다.'''김경호가 데뷔할 때 음악계는 난리였다. 엄청나게 대단한 가수가 나온단다. 여자보다 높은 키를 가진 가수가 나온다고.'''
- 주영훈
2. 활동
어릴 때부터 아나운서였던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인해 이사를 많이 다녀서 학교 생활에 어려움이 있었고, 왜소한 몸집과 하얀 얼굴, 내성적인 성격 등으로 인해 학교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많이 당해왔다고 한다. 학교폭력으로부터 지켜주던 친형을 존경해 오다가 축제에서 기타 치고 노래하던 형의 모습을 보고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다. 락 외에도 이선희, 조용필, 해바라기의 곡도 좋아해서 여성 가수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 변성기가 거의 없었던 덕에 가능한 일.[12] 락밴드가 한순간에 좌중을 휘어잡는 모습을 보고 락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1989년 KBS 제2회 청소년 창작가요제에서 <꿈 그리고 사랑>으로 동상을 받았으며, 청소년 프로그램 <비바청춘>에서도 얼굴을 내밀었다. 1991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긴 이별>이라는 곡으로 동상을 차지했다. 그때만 해도 감성적인 발라드를 불렀기 때문에 머리를 흔들고 샤우팅을 구사하는 지금과는 매우 다르다. 후에 <긴 이별>은 1집 앨범에 편곡되어 실렸다.
세션을 잘 해주지 않기로 유명한 이현석이 김경호만큼은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할 정도로 전폭적으로 지원한 첫 시작 <마지막 기도>.[13] 그 후 1994년 1집 <마지막 기도>로 정말 충격적인 데뷔를 했다. 이 앨범은 비록 본인에게는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망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상업적으로 실패한 앨범이지만, 무지막지한 고음과 파괴력 있는 목소리로 매니아들의 기억에 김경호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다.[14] 여러가지 악재가 겹쳐서 그의 1집은 처참히 망했지만 이는 대박을 향한 전조였다. 김경호는 2집을 준비하면서 머리를 기르고,[15] 의상과 액션을 다듬어 2년 뒤 2집을 발표했고 그렇게 나온 타이틀곡이 이경섭이 작곡하고 강은경이 작사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아는 김경호의 이미지는 이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데뷔하고 처음 나온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에서 이소라는 "우리나라에도 이제 저런 록 보컬이 TV에 나왔구나..." 하며 감탄했다고 한다. 비록 1집이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이승철이나 N.EX.T, 기타리스트 이현석 등의 콘서트 게스트 등으로 활동하며 조금씩 라이브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1997년 발매한 2집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곡은 장르의 한계를 가지고도 88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2주간 1위를 차지했고 당시 락커들에게는 금기(?)의 구역이었던 <KBS 가요톱10>에서는 DJ DOC, H.O.T., 임창정과 함께 1위 후보까지 오르고 <SBS TV 가요 20>에서도 1위 후보에 오르는 등 선전하면서 히트를 쳤다. 특히 골든컵을 차지하게 되는 임창정의 <결혼해 줘>와 대결했을 때는 한 표(1892:1891) 차이의 접전을 펼쳤다.[16]
김경호의 첫 뮤직 비디오이다. 이 뮤직 비디오에서도의 이미지는 록 그 자체였다. 장발과 마른 몸매의 록커가 홀로 나와 웃통을 벗고 열창하는 흑백 영상은 '록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듯하다.[17]
1997년 가을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윤도현 밴드의 콘서트에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열창하는 김경호의 모습이다. 20여년 전에 그 당시에 저런 무대가 있었는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만들었다.
2집 발매 이후 출연하게 된 프로그램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 신인 가수 소개 코너에서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과 스키드로우의 <Youth Gone Wild>를 열창했는데 바로 다음날 아침부터 2집 앨범 선 주문만 50만 장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날 소속사에서 난리가 났다고 했다.[18]
김경호는 '하루 아침에 모든 게 바뀌어 있었어요' 라고 당시를 회상했다.[19] 더불어 무명탈출과 지옥같은 스케줄이 시작되었다.
이후 후속곡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2집 수록곡 <금지된 사랑>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고[20] 3집 <나의 사랑 천상(天上)에서도>(60만장), 4집 <비정>(30만장), 5집 <와인>(30만장) 등이 히트하면서 최정상급 록커이자 대중 가수로 거듭나게 된다.
김경호는 1997년 2집 앨범으로 유명인사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린 해부터 5집 활동기인 2000년까지 수많은 콘서트와 행사, 그리고 방송활동을 하며 90년대에 댄스음악과 힙합, 발라드에 묻혀 죽어가던 록씬을 다시 이끌어냈다는 평을 받음과 동시에 록 보컬리스트로서 자신이 가진 기량을 완전히 내뿜는 최전성기를 누린다.
그의 활약은 특히 자신의 단독 콘서트에서 폭발적인 무대 매너와 지치지 않는 고음으로 동시대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고 대학 축제, 그리고 자신의 데뷔 무대였던 MBC 대학가요제에서는 거의 매년 게스트로 나올 정도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당시 기사를 봐도 라이브 잘하는 가수 1위는 단연 김경호이다. 2위로는 박정현이 꼽혔다. 여담이지만 김경호와 박정현은 나가수에서도 1위를 가장 많이 기록한 가수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4집 활동 전부터 있었던 소속사와의 불화로 인하여 소속사를 나와 개인 회사를 차리고 본인이 모든 것을 감독하며 발매한 6집 앨범이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21] 2001년 당시, 공연 연습을 하던 도중 목이 너무 아파서 찾아간 병원에서 성대결절이라는, 가수로서 치명적인 진단을 받게 된다.[22]
김경호는 1997년, 당시 소속사 측과 3년간의 전속 계약을 채결하였는데 이 시절에 비인간적인 스케줄로 인해 목을 많이 혹사하게 되었고, 2000년에 계약의 만료와 전 소속사와의 불화로 인해 새 소속사로 옮긴 5집 이후에도 한동안 이러한 상황이 지속됐다.
당시의 스케줄이 얼마나 빡빡했냐 하면 97년 이소라의 프로포즈 출연 전 유명인사가 되기 전부터 그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라이브 활동을 뛰고 있었으며, 99년 4집 발매콘서트에서 그의 오피셜에 따르면 콘서트 횟수만 192회째를 맞는다고 직접 언급하였다(...) 방송출연과 비공식 행사무대까지 포함하면 그는 5년의 전성기 시절동안 총 1000회가 넘는 라이브 활동을 뛰어왔다고 한다...
거기에 잦은 샤우팅 구사, 지나치게 높은 음역대로 구성된 앨범 수록곡들[23] 등의 부차적인 요소들이 맞물리면서 성대결절로 이어지게 된다... 올드 팬들조차 4집에 비해 5집 활동시기는 컨디션 기복이 극심했다고 회고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자신이 회사를 직접차려 냈던 6집의 실패와 성대결절 이후, 그에게는 당연히도 휴식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악재가 겹쳤다. 당시 소속사 관계자들이 음악활동에 써야했던 자금을 사치와 유흥에 탕진하고 도망치는 바람에(...) 그는 빚을 어마어마하게 져야했고 활동을 중단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새로운 소속사와 만나 매니아들만의 음악이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락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걸그룹 핑클의 <Now>를 리메이크하여 2003년 7집 앨범을 발표한다.[24]
데뷔 이래 고수해 오던 록커의 상징인 긴 머리를 자르고 음악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예능에도 출연하며 자신의 상황과도 타협하여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변화를 시도했지만 일부에선 변절자, 배신자, 자존심까지 버린 락커라는 비난을 했고 또한 2003년 7집 활동사이 두번째 성대결절[25] 과 가성구의 손상까지 겪음으로 인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자 결국 김경호는 평단에서의 외면과 앨범 실패 등으로 인해 퇴물이라는 혹평을 받으며 점점 잊혀져 갔다...
2004년에 데뷔 10주년 7.5집을 발매했으나 별다른 활동 없이 일을 중단하고 집에서 칩거 생활을 하다가, 2006년에 8집 앨범을 발매하고 공연과 콘서트 무대 활동을 시작하며 재기를 꿈꿨다.
그러나 여기서 김경호에게 또한번의 시련이 찾아오는데... 뮤직 비디오 촬영 도중 쓰러지는 바람에 입원한 병원에서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게 되면서 앨범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2004~2008년 시기에는 <금지된 사랑>을 F키[26] 로 소화하거나 성대결절 후 부르지 못했던 넘버들도 다시 부르게 되어 목 상태가 꽤 호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8집, 9집 활동시기인 2006년~2008년 사이 감성가득한 발라드곡을 많이 부른 이때의 목소리를 사랑하는 팬들도 은근히 많다.
2008년 4월부터 다시 컨디션 기복이 심해졌고, 2009년 9.5집을 발표를 기점으로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본인의 보컬에 대해 고심하며 전성기때의 발성법과는 다르게 중고음 중심으로 초점을 바꿔 지금 현재에 우리에게 익숙한 목소리로 정립되어 간것으로 보인다. [27]
2009년~2010년대 초반엔 보통 남자들 정도의 음계로 노래를 불렀으나[28] 이후 중고음대의 공격적인 창법을 이용하며 음역대를 회복해갔다. 2014년 6월 26일 엠넷의 <音담패설>에 출연하여 보여준 창법이 그 예.[29]
2011년엔 그의 인생에 새로운 기운의 바람이 불었는데, 과거에 명성을 떨쳤던 그를 기억하는 팬들이 MBC 게시판에 청원하여 당시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음악 프로그램인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였고 맹활약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아 2012년 초 명예졸업에 성공, 2014년 8월부터는 KBS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참가 가수로서 간간히 출연 중이며 2015년도에 펼쳐진 MBC 나는 가수다 3 경연에도 참여했다.
최근의 활동으로 볼 때 음이 단계적으로 올라간다 가정할 경우 현재 실질 최고음은 최대 '''3옥타브 라#(A#5)'''으로 보인다.[30]
2014년 말부터는 전성기 시절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샤우팅이 부활했다. 김경호 본인도 2014년 중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목소리가 점점 열리고 있다는 언급을 했었고, 본격적으로는 2014년 돌발 콘서트 즈음부터 방송으로는 KBS 불후의 명곡에서 <고추잠자리> 무대부터 샤우팅을 구사했다. 비록 전성기와 같은 초고음을 바라는 건 무리지만 전성기 시절의 진성+샤우팅 조합이 부활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불후의 명곡>에서 김경호가 출연한 방송회차를 살펴보면 샤우팅 음역대를 회복할 때 단기간에 이룬것이 아니라, 경연 무대를 준비할 때 마다 꾸준히 확보해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회복해나가다가 2016년에 들어 243회 경연곡 <초우>의 무대에서는 편곡에 매쉬업한 <영원의 성> 후반부의 샤우팅 최고음으로 '3옥타브 파♯(F♯)'를 구사하였다.
2015년 10월에는 중국에서 공연 활동을 갖기도 했으며, 이 시기 출연한 중국판 복면가왕인 몽면가왕에 출연한 이후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5년 말 락크리스마스 콘서트와 2016년 3월 19일 돌발콘에서의 모습을 보며 전성기가 다시 찾아온 것이라 평하는 사람들이 많다.[31] '''<탈출>'''을 현 시점에서 지속적으로 셋리스트에 추가하며 특히 2016년 3월 돌발콘에서의 <탈출>은 전성기 못지않다는 평. [32] 성대결절에 시달리는 이유로 인해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이러한 곡들을 셋리스트에 올릴 수 밖에 없게 되겠지만 과거보다는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현재 자신의 역량에 따라서 전성기 시절의 메탈곡 뿐만 아니라 가능한한 소화할 수 있는 록 발라드들 또한 부른다. [33]
최근 복면가왕에 출연해서 마그마의 해야를 불렀고,샤우팅으로 '''3옥타브 미(E5)'''까지 냄으로써 건재함을 증명했다. [34]
2017년 5월 13일 드디어 10집 앨범 Part 2의 일부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단, Part 2를 전부 발표하는 것은 아니고 일부를 episode 1로 묶어 같은 날 전국투어 서울 콘서트에서 선공개한 후 싱글로 두 곡을 발표한다고 한다. 추후 비슷한 방식으로 여러 싱글을 발매한 뒤 합쳐서 10집 정규앨범으로 낼 계획이라고. 7집 이후의 앨범들이 소프트 록과 발라드에 중점을 둔 반면 10집 Part 2는 메탈 위주의 곡들로 이루어 진다고 한다.
2017년 6월 불후의명곡에서 '목포는 항구다'를 불렀는데, 여러번의 '''3옥타브 솔♯(G♯5)'''이라는 음을 냈다. 또한 동년 동월 공연들을 보면 샤우팅 뿐만 아니라 진성에서의 음역대에서도 과거 시절의 음색을 보여줄 수 있는 노래들을 셋리스트에 추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가 있다.
2018년 2월 불후의명곡에서 트로트 가수 김연자의 '아모르파티'를 불렀는데 모든 출연자들을 제치고 우승하는 클래스를 보여준다. 이때 곡의 편곡 스타일이 EDM트로트와 김경호식 헤비메탈의 융합이 절정에 이르러 관객들에게 많은 호응과 환호를 이끌어냈다.[35] 이후 3월, 불후의 명곡 작곡가 이영훈편에 한번 더 출연하여 이문세의 '광화문연가'를 불러 자신의 클래스가 여전히 변치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최후반의 '와인' 변주음과 곁들여진 울부짖는 듯한 절규의 샤우팅은 듣는 사람에게 가히 소름이 돋게할 무대였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 되던 시기에는 경기장 내 초대가수로 가게 되어 올림픽 경기를 보러 온 관람객들에게 '사랑했지만', '밤이면 밤마다', 'Hey Hey Hey', '해야' 등을 선 보였고 계속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아가는 중이다.
2018년 3월 22일 프로젝트 형식의 그룹인 '포에버(FOURever)'의 멤버로 들어 가 첫번째 디지털 싱글 음원 'PROMISE'[36] 를 발표 할 계획이라고 한다.관련기사 그룹 구성원은 김경호 본인을 포함 해 김태원, 김종서, 박완규 이렇게 네명으로 구성 되어 있다.[37]
2018년 현재 샤우팅은 14~15년도에 비하면 매우 좋아졌다. 실제로 15년 초 김경호 본인도 샤우팅은 힘 들면 못 한다고 할 수도 있다고 언급 했고 실제로도 많이 힘 겨워 하였으나 지금의 김경호는 탄탄한 샤우팅을 연달아 구사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성대를 회복 했다. 반면 진성은 2014년부터 서서히 호흡이 짧아지고 '''3옥타브 도#(C#5)'''이상의 음을 내기 힘 들어 하기 시작 했다. 17년 이후에는 '''3옥타브 도♯(C♯5)~레(D5)'''음을 진성으로 낼 경우 플랫 되는 경우가 많아 아예 샤우팅으로 처리 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금지된 사랑과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17년 이후로 모든 음정을 제대로 소화 한 라이브는 매우 드물다. '''3옥타브 도♯(C♯5)'''까지의 진성음이 단단해졌다는 의견이 있는데, 순간적으로 그 음역대를 찍고 내려 오는 아스파라거스, 나사천 등에서의 모습으로 볼 때의 이야기다. 반면 '''2옥타브 라(A4)'''이상의 고음이 많이 지속 되는 곡에서는 과거 날카로움을 과시하던 2013년대까지와는 상대적으로 많은 플랫이 일어 난다. 진성 최고음(~D5) 사랑했지만 등 2옥타브 후반 대의 음역대, 샤우팅에서는 오히려 소리가 더 탄탄해졌으나 샤우팅 음역과 달리 진성음역대가 떨어져 간다는 사실은 부정 하기 어렵다. 호흡도 짧아져 가사를 끊어 부르는 빈도가 증가 하고 있다. 짧아진 호흡이 나슬사의 최고음 브릿지 부분의 고음 연타 부분을 더 소화 하기 어렵게 된 이유로 보인다.[38]
종합 하면 18년 현재 그의 목 상태는 샤우팅을 제외 하면 2003년~2004년 이후로 가장 좋지 않다.[40] 15년부터 휴식기를 거친 뒤인 연초에는 컨디션이 괜찮다가 그 해의 2~3번째 콘서트에서부터 상태가 안 좋아지는 것을 반복 하더니 18년에는 아예 '''3옥타브 도♯(C♯5)'''조차 보기 힘 들게 됐다. 2옥타브 후반도 플랫이 많이 일어 나는 수준으로 냉정히 말 하면 특유의 음색, 비브라토, 스크래치 등의 기술은 전성기 버금 갈 정도로 좋아졌지만, 가창 자체는 2번째 성대결절이 일어 난 시기 이후로 최악의 컨디션을 보여 주고 있다. 고음 내기가 힘 들어지니 고음을 상대적으로 더 내기 쉬운 발음으로 내려고 하는데, 이 때문에 가사 전달력이 떨어지고 발음이 뭉개져 아쉬운 모습을 보인다. 몇몇 위키러들은 일반인 수준[41] 아니냐는 이야기도 할 정도… 성대결절을 2번이나 심하게 겪은 40대 후반의 가수라는 점이 확실한 원인이긴 하지만 그것이 프로가수가 음정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 할 정도로 노래를 들려 주는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그의 노래의 키를 더 내리면 음정을 상대적으로 정확히 맞출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이미 현재의 키도 원곡보다 2~3키 낮은 것이다. 노래 자체가 원곡과 너무 동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8년 말부터 서서히 목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 나슬사 같은 경우엔 여전히 발음이 뭉개지고 플랫도 자주 일어나지만, 금지된 사랑 같은 경우 "은퇴는 없다" 라고 멘트를 한 후 부터 '''먼 훗날 우리''' 구간에서 '''3옥타브 도#'''을 다시 깔끔히 소화하고 있다. 2019년이 되어서도 역시, 더 히트에서 노라조의 '''슈퍼맨'''과 콜라보를 펼친 '''Shout'''나 김연자의 '''아모르 파티'''와 콜라보를 펼친 '''금지된 사랑'''을 불렀을 때를 보면 목상태는 다시 회복을 해 가는 것 같다. 그런데, 목이 회복하는 이 와중에, 이번엔 허리가 발목을 잡았다... 허리 회복을 위해 독한 주사를 맞고 있고, 이로 인해 호흡이 짧아졌다고 19년 3월 9일 돌발콘에서 밝혔다. . 실제로 한 달 후, 4월 11일 임시정부 100주년 행사에서 컨디션이 많이 다운된 모습을 보여 팬들뿐만 아니라, 당시 공연을 보러 온 관중들까지 상당히 힘들어하는 그의 모습에 많이 걱정하였고 우려하였다.[42] 그 이후 디스크 수술을 했다고 한다.
팬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2019년 6월 8일 서울콘에서 매우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었다. 특히 밤공이 호평이었는데 '''Higher To The Top'''의 후반 샤우팅 난사와 후반부의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예이다. 그 중 제일 압권인 건 금지된 사랑. 작년처럼 3절의 '''먼 훗날 우리''' 부분을 관중에게 넘기는 일은 아예 없었고, 플랫도 없었다.[43] 다만, 2019년 서울콘의 컨디션이 크게 좋았을 뿐, 확실히 진성 음역대는 3옥타브 도~3옥타브 도#이 마지노선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3. 공연 장면
3.1. 전성기 시절
''' 1997년 ~ 2002년'''
김경호의 데뷔 이래로 대중적으로 락음악을 부흥시킴과 동시에 자신이 가졌던 모든 보컬적 역량을 쏟아부었던 최전성기 시기.
1997년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 방영된 2집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공연 장면.
1997년 KBS 가요톱10에서 방영된 2집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공연 장면. 작곡이 이경섭인데, 이경석으로 잘못 나와 있다.[44]
1997년 12월 21일 SBS <TV 가요 20>에서 방영된 2집 후속곡 <금지된 사랑> 공연 장면.
1997년 가을 연세대에서 열린 윤도현 콘서트 게스트 출연, <To Hell With The Devil> 공연 장면.
KMTV 방송 골든힛트송에서 소개된 98년도 <SHOUT> 공연 장면
1999년 MBC 가요콘서트에서 방영된 4집 타이틀곡 <비정> 공연 장면.
2000년 iTV 윤상의 라이브클럽에서 방영된 대표 메탈 사운드 곡 <탈출>, <Shout> 공연 장면.
3.2. 제2의 전성기
''' 2011년 ~ 2016'''
나는 가수다 출연 이후, 성대결절로 인해 맞은 길고 길었던 암흑기가 끝나고 그의 새로운 음악인생이 펼쳐지게 되었다.
2011년 MBC 나는 가수다에서의 경연 장면. 선곡은 박미경의 <이유 같지 않은 이유>이다. 김경호는 이 곡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댄스와 메탈을 함께 접목시켰고 이 무대를 통해 전체 1위를 차지했으며, 제2의 전성기로 가는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45]
2013년 SBS 더 스테이지 빅 플레저에서 부른 스키드로우의 <Youth Gone Wild> 커버 공연 장면. 성대결절 이후 잃어버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샤우팅을 다시 보여주기 시작한 해다. 아직 완전히 고착화 시킨 상태는 아니였지만 저때 당시 김경호의 스크리밍 사운드는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2013년 윤도현의 MUST에서 부른 10집 Part1.의 수록곡 <달의 눈물> 공연 장면. 2010년대 이후 새롭게 창법을 바꾸고 부른 곡들 중에서 극찬을 받은 노래다. 김경호표 마이너 메탈 발라드로서 그로울링창법이 인상깊게 다가온다.(여기서 그로울링은 잘못된 표현이며 실제로 김경호는 그로울링을 할 줄 모른다.)
2017년 KBS 콘서트 7080에서 부른 10집 Part2.의 수록곡 <Don't Be Quiet!> 공연 장면. 현재로서 가장 최근에 발매된 앨범의 곡 라이브로, 헤비메탈 보컬에 더욱 정형화된 김경호의 에너지 넘치는 전율을 선사받을 수 있다.[46]
2019년 KBS 열린음악회에서 부른 10집 그대는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의 타이틀 곡 <그대는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공연 장면.
4. 록커
4.1. 가창력
타고 났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음역대와 성량[47][48] 을 바탕으로 폭발적인 샤우팅과 단단한 중저음역까지 보여 주는 국내 가요계의 레전드로 손 꼽힌다. 헤드보이스에 체스트보이스적 음역을 끌어 올린 발성법이 두터운 미성에 결합 되어 만들어진 음색에 강한 비브라토와 스크래치 같은 기교적 요소가 합쳐져 8비트 기반의 록발라드에도 강점을 보인다. 다만 착각 하지 말아야 할 점은, 김경호는 록에 더더욱 부합 하는 보컬이라는 점. 최근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감정이 점점더 깊어지고 저음도 더욱 잘 낼 수 있게 되었다.[49]
무엇보다도 김경호의 가창력을 논 할 때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바로 '''샤우팅'''이다. 이 메탈릭한 샤우팅은 세계에서도 손 꼽힐 만 하다.[50] 무대를 빈 틈 없이 꽉 채우는 강렬한 사운드와 무시무시한 음역,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김경호의 스크래치 창법이 결합 된 샤우팅은 그의 음악적 감각에 의해 적재적소에 활용 되어 뛰어 난 평가를 받는다. 당시의 김경호를 보지 못 해 이 샤우팅의 비중이 잘 실감 되지 않는 10 ~ 20대 사용자들은 전성기 시절 나얼의 애드립 능력이 그의 보컬에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 했는지를 생각 해 보면 된다.
또한 전성기, 성대결절의 고난을 지나 현재진형형으로 흉성에서 끌어 올리는, 날카롭기보다 묵직하다라는 표현에 더 걸맞는 샤우팅을 구사 하고 있다. 이는 16년 03월 19일 돌발콘에서 정점을 찍는다. 또한 발성적인 면에서, 전성기 때 샤우팅보다 덜 무리가 간다고 확신 할 수는 없으나, 샤우팅이라는 창법 자체가 무리가 갈 수 밖에 없으므로 샤우팅이 많이 가성틱해져도 이 만큼 회복 한 것도 경이로울 따름이다.
4.2. 보컬
스스로 변성기를 겪지 않고 음색이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에서 일단 타고난 하이테너라는 건 따질것도 없는 사실이고, 여기에 중음에서 초고음까지 배음이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강한 악센트를 계속 걸어주는게 가능할정도로 성대의 탄력이 매우 탄탄하다. 여기에 마이클 베세라, 마이클 스위트, 세바스찬 바흐 등의 네오클래시컬/팝 메탈 보컬의 특징을 카피하면서 자기만의 발성을 단련한 경우인데, 참고로 저 세 보컬 역시 겁나 타고난 하이톤의 소유자라는 점(...)이 특징이다. 김경호 스스로는 80년대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가령 롭 핼포드, 로니 제임스 디오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를 동경했다고 하지만 사실 라이브 레퍼토리로 트리뷰트하는 성격이 강했지 실제로 보컬링에 큰 영향을 준 경우는 아니다.
임재범과 이승철이 '딥 퍼플'의 보컬이었던 데이빗 커버데일, 김종서가 '레드 제플린'의 보컬 로버트 플랜트의 커버로 보컬을 연마했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국내 락 보컬들의 상당수가 자신들이 동경했던 유명 해외 보컬들의 모창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김경호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여러 해외 보컬들을 커버했고, 그 중 마이클 스위트의 커버가 유명하다. 김경호 특유의 발음 엑센트가 마이클 스위트의 발음과 거의 닮았던 적도 있었다 . [51]
이와 같이 김경호는 마이클 스위트의 보컬을 가장 많이 커버했으며, 오디션을 볼 때 '스트라이퍼'의 발라드 명곡 'Honestly'를 주로 불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오디션에서 자주 떨어지는 고배를 마시기도 했는데, 기획사에서는 댄스 음악을 권하고 김경호는 록 음악을 지향하는 등의 괴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편,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도 구로공단의 작은 월세방에서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 쓰며 꾸준히 연습해 창법을 연마해 나갔고, 그 창법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샤우팅 창법이다.
뿐만아니라, 김경호는 80년대의 보컬들 중 무대 액션이 컸던 '퀸'의 프레디 머큐리[52] , '스키드로우'의 세바스찬 바흐, '미스터 빅'의 에릭 마틴 등의 무대매너를 참고하면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컨셉과 스타일을 구축하기에 이른다.
'''올드하면서도 마초적인 느낌이 강했던 80년대 헤비메탈 록 보컬들의 이미지와 강력한 4옥타브를 넘나드는 샤우팅 창법을 마스터하고 좀 더 극적인 무대 연출까지 더해져 나온 괴물이 바로 '김경호'였다.'''
4.3. 창법
전성기 시절에는 두성을 주로 사용하고 흉성을 당기는 묵직한 고음과 특유의 폭넓은 비브라토를 선보였고, 어느정도 방향성이 잡혔던 3집 이후부터는 노래에 스크래치를 섞어가기 시작했다. 진성으로 '''3옥타브 미(E5)'''정도까지 구사 가능했고 그 이후 초고음역에는 샤우트 창법을 택했다. 또한 샤우팅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만큼, 메탈릭한 노래의 경우 곡 중간중간에 샤우팅을 넣어 흥을 돋구는 보컬 운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점점 사용 빈도가 많아져가는 샤우팅 구사와 지나치게 높은 음역대의 곡 구성, 거기다 혹사에 가까운 공연 일정으로 인해 결국 2000년 8월에 첫번째 성대결절을 받았다가 어느정도 안정되었으나, 6집 활동 도중, 병원에서 두번째 성대결절 진단을 받았다. 김경호는 당시 소속사의 이사 2명이 빚을 내서 그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53] 계속 무리하다가 7집 활동 때 세번째 성대결절 판정을 받고 가성대까지 상해서 2004년, 결국 샤우팅을 잃어버렸다.[54] 결국 'Shout', '탈출', 'Rock N' Roll' 등의 초고음 곡은 셋리스트에서 빠지게된다.[55][56]'''그와 함께 노래를 부를 때면 언제나 든든하다. - 김연우 '''
그 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샤우팅을 배제하고[57] 중저음의 미드 템포 발라드를 부르면서 최악이었던 목 상태를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 인터뷰에서 가온다를 기준으로 '''3옥타브 미(E5)'''까지는 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58] 나아가 꾸준한 연습을 통해 극복하고 진성을 위주로 한 힘 있는 보컬이 가능하게 되었고, 2011년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오랜만에 TV에 얼굴을 비추고 나는 가수다에서 최다 1위라는 기록을 세우며 가수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 후로도 연습과 관리를 꾸준히 해 나가면서 컨디션을 서서히 끌어올려 2014년 하반기부터 샤우팅이 부활했으며, 기량 면에서도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젊은 시절보다 샤우팅의 파워가 다소 약하단 의견도 있으나[59] 이 샤우팅의 유무는 김경호가 무대를 꾸미는 데 있어 굉장히 큰데, 전성기 시절의 김경호가 빠른 메탈 곡을 소화할 땐 간주 중간마다 '''3옥타브 솔(G5)~라(A5)''' 정도의 샤우팅을 냄으로써 흥을 돋우고 무대의 사운드를 채웠다.[60] 그러나 샤우팅을 잃은 후, 김경호는 샤우팅을 했던 부분에 ‘어이!’나 '''2옥타브 라(A4)~시(B4)''' 정도 되는 ‘워~이예’ 등의 중음역대 애드립을 사용해 관객 호응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창법 운영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성대결절을 겪고도 어느정도의 음역대를 수복한 김경호는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 1위를 4번이나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예전의 엄청났던 메탈 무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 시점부터는 되살아난 샤우팅을 통해 메탈 무대를 다시금 화려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샤우팅이 들어가지 않은 140823 ‘첫차’ 무대와 샤우팅이 들어간 151003 ‘첫차’ 무대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샤우팅 부활의 위력은 '불후의 명곡' 247회에서 '돌팔매'가 첫대결 최고점에 올킬을 기록하면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2016년 9월 말 대전콘서트에서 부른 'Exodus'는 키조정을 거쳤지만 '''3옥타브 솔(G5)'''을 샤우팅으로 선보였다. 불후의 명곡 273회 아리랑 특집에서는 '아리랑 목동' 무대에서 '''3옥타브 파(F5)'''를 샤우팅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불후의 명곡 6월 3일 방송에서 이를 뛰어넘는 '''3옥타브 솔♯(G♯5)'''을 샤우팅으로 선보였다! 결절로 인해 상당부분 잃어버렸던 목소리를 다시 찾고있다는 증거로서 팬들에게는 반가운 무대일 듯. 그리고 무턱대고 불렀다가는 성대결절 피하기 어렵다던 그 샤우트를 1키 낮춰서 5월 13일 서울 낮콘에서 불렀었다!!! 게다가 그 후에 돌발콘, 부산콘에서도 불렀는데, 점점 육성도 뚫릴뿐만 아니라 샤우팅도 발전하고 있다. 부산콘에서 부른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에서 3절 하이라이트 구간 '''3옥타브 레(D5)'''을 깔끔하게 진성으로 처리했다. 이걸로 볼때 순간적으로 뽑을 수 있는 진성한계가 '''3옥타브 레(D5)'''까지 가능한듯. 그러나 2018년도에는 진성이 많이 낮아져 플랫이 지나치게 많아지고 한계 진성음 역시 '''3옥타브 도♯(C♯5)'''으로 많이 낮아졌고, 그 마저도 잘 나오지 않는다. 무리한 일정과 잦은음주가 원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확실한 것은 목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라는 것이다. 목상태의 회복이 필요한 시점. 다만 샤우팅 음역은 18년에 '''3옥타브 라(A5)'''을 기록한 후 여전한 듯 하나 진성을 배제하고 샤우팅 처리를 하는 것은 노래의 완성도도 떨어뜨리고 목건강에도 좋은 것은 아니다. [61]
정리해보면, 과거의 샤우팅이 어마어마한 음역대와 성량을 기반으로 진공을 가르는 느낌을 준다면, 현재는 깊이 있는 목소리를 바탕으로 포효하는 느낌의 샤우팅으로 변했다고도 볼 수 있다. Youth gone wild 도입부를 과거와 현재 순으로 편집해 놓은 유튜브 영상 댓글중에 리즈는 전투기 같고 현재는 전차같다는 비유가 딱 들어맞는다. [62] [63] [64]
2019년에 들어서는 2018년보다 훨씬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 특히 6월 8일 서울콘에서는 다시 미친 모습을 선보였다. 흉성에서 끌어올리는 묵직한 창법과 폭 깊은 바이브레이션을 다소 자제하는 듯한 모습이었고, 플랫도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오히려 '''3옥타브 레(D5)'''를 다시 낼 기세였던 밤공에서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으로, 작년의 안 좋았던 목 상태를 아예 기억조차 안 나게 할 정도였다... 나슬사 3절 브릿지 구간은 아직도 인골라가 일어났고 플랫도 났으나, 확실히 작년보다 훨씬 나았다. 2017년 당시의 나슬사를 듣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건 나슬사 한정일 뿐이지 다른 곡들은 2016년 3월 돌발콘보다도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 나가수 이후 최고의 컨디션인 2013년과 견줘도 손색 없을 수준을 자랑했다.[65] 샤우팅도 또 다시 발전했는데 [66] 마치 14~15년도 묵직함 + 16~18년도의 단단함과 날카로움 = '''2019년 묵직함과 날카로움이 공존하는 느낌의 샤우팅'''이 만들어졌다.[67] 하여튼 여러모로 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태.
2019년 6월 이후로 김경호는 지금까지는 별 기복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17년 말 ~ 18년 중반 때 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창법을 운운하기 어려워진 것이 진성 음역대가 더 올라가는 건 바라기 힘들고 이제는 컨디션과 체력관리가 중요시 되어야 할 것 같다. 2020년도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휴식 기간이 길어진 탓인지 하반기의 두차례 콘서트 및 로또싱어에서 모두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었다.
4.4. 인지도
대중들은 김경호를 '''대한민국 최고의 록 보컬리스트'''로 꼽는데 이견을 가지지 않는다. 보수적이라는 록씬에서도 '김경호 같은 보컬이 한 명만 더 나와줬으면.' 이라 생각할 정도이며 김경호는 록발라드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정작 자신의 공연에서는 록발라드보다 강렬한 하드록, 메탈 넘버들을 더 많이 불렀다.
여담으로 자신이 직접 곡을 쓰지 않는다고 까는 안티들도 가끔 있는데 김경호의 자작곡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다. 데뷔도 자작곡으로 했으며 음반 프로듀싱에도 참여했다.[68] 애초에 김경호는 록 보컬리스트를 지향한 것이지 작사,작곡, 노래를 전부 하는 싱어송라이터를 지향하지 않았다.
김경호의 엄청난 고음은 중고딩들이 고음병과 발성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 원인이 되었고, 쓰잘데기 없는 발성 지식과 고음 내는 방법 등 속칭 '''입발성'''을 널리 퍼뜨리는 데 일조했다.[69]
예전만큼 많지는 않지만, 아직도 포스트 김경호를 꿈꾸는 꼬마들이 있는데 MBC 위대한 탄생에서 백청강이 김경호 노래로 오디션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태원은 '''"김경호는 한 사람이다. 그를 아무리 똑같이 따라해본들 김경호에게는 이길 수 없다."'''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처럼 김경호의 노래 스타일이나 발성은 굉장히 유니크한 것으로 그렇게 노래를 잘하기는 굉장히 힘들다. 발성적 지식을 모르고 함부로 따라하다간 나쁜 버릇이 들기 딱 좋다. # 복면가왕에서 조장혁도 김경호의 창법을 두고 깊은 내공이 있지 않으면 발성하기 쉽지 않은 창법이라 평가한 바 있다.[70]
5. 음반
6. 수상 경력
6.1. 시상식
6.2. 가요 프로그램
7. 특징
7.1. '''언니'''
무대에서의 폭발적인 모습과 정반대로, 평소에는 매우 섬세한 성격이라고 한다.
'''취미는 그릇 수집과 화장품 샘플 수집'''. 나가수에서 그렇게 밝혔다. 부쩍 늘어난 아줌마 팬들이 화장품 샘플을 많이 보내준다고 한다.
'''특기는 집안일'''. 2집 활동 당시 라디오에 출연해서 잘하는 음식이 닭볶음탕이며 자주 만들어 밴드 멤버한테 먹인다고 했다.
좋아하는 색은 '''분홍색'''. 정말 엄청 좋아한다. 윤도현의 뮤직쇼에서 자신이 여성이었다면 분홍색으로 집을 도배했을 거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 당시 라디오 방송에서도 팬카페 단체 티셔츠가 언젠가 핑크였던 것을 밝히기도 했다. MBC 파일럿 방송 백투 더 스쿨에서 본인의 가방에서 핑크색 필통을 꺼내기도 했다...
집이 너무나 깔끔한 데다 피부가 약해 여자 화장품을 쓰는가 하면, 긴 생머리를 가졌고 신장 178cm에 체중 59kg라는 몸매 등으로 인해 나가수 여신[71] 중 한 명으로 꼽히게 된다. 게다가, 각선미도 장난이 아니다.
별명은 경호 언니, 락 언니, 국민 언니, 락큰롤 언니 등등... 2011년 12월 26일에 방송된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에서는 자신을 락큰롤 언니라고 칭했다. 이젠 뭐 자신도 적당히 즐기는 듯. 사실 락 언니 이전에 락 마미라는 별명도 있었으니, 지금은 오히려 한 단계 어려졌다. 친구인 윤도현의 별명이 과하게 '베이비' 가 된 거에 비하면 적절하긴 하지만. 게다가 김경호 본인도 김태원의 별명인 '국민할매' 보다 훨씬 낫다고 좋아했다.
백지영은 김경호를 나가수 5대 미녀 중 한 명으로 꼽았다. 1대 백지영, 2대 박정현, 3대 옥주현, 4대 장혜진, 5대 김경호. 게다가 나는 가수다에서 어린 팬이 직접 그린 팬 아트에는 김경호가 긴 머리 언니로 묘사되어 있었다.
[image]
고정 라디오 프로그램의 청취자 주문으로 김연우와 함께 커플룩 투샷을 찍은 적도 있다. 이 사진 때문에 김연우가 위장 결혼했다는 소문이... 문제의 사진은 김연우와 김경호가 부른 MBC 로고송 영상의 첫 장면에도 나온다. 그리고 케이블 MAGAZINE1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해당 사진에서 김경호의 얼굴을 지워 놓고 김연우의 아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김연우가 식신로드에 출연했을 때는 최희가 '아내 분이 참 미인이시더라구요.'라고 말해서 김연우가 아내 얼굴을 본 적이 언제냐며 당황하고, 혹시 김경호 사진을 두고 말하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당연히 최희는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신세가 되었다. 방송 캡쳐본
긴 머리 때문에 지하철에서 치한의 기습을 당하기까지 했다. 이 때 김경호의 반응은 걸걸한 목소리로 "'''아따 취향 독특하쇼잉'''"(...) 치한이 놀라서 달아났다. 두시탈출 컬투쇼 2008년 4월 18일 자 방송을 들어 보면 성추행 당했을 때 추행범이 수치심을 느끼도록 손을 딱 잡고 "아따, 취향 겁나게 독특하쇼잉~" 한다고 하자 정찬우가 예전에 나온 아주머니 사연 중에 아주머니가 추행범에게 "어이구 신났다, 신났다" 했다는 사연을 들려줬고 김경호는 여기에 빵 터졌다. 그 뒤에 이걸 써먹은 듯. 해피투게더 조동아리에 나왔을 때도 뒷태의 위엄을 선보였다.
5분 28초부터어따~ 취향 겁나게 독특하쇼~잉?!
여담으로 FNC엔터테인먼트에서 마녀라 소문난 김영선 이사와 닮았다는 설이 있다. 김영선 이사를 아는 사람은 둘이 남매가 아니냐는 설도 있었다고...
가녀린 몸매와 긴 생머리 때문에, 가수 크리스탈과 헷갈려하는 사람이 많다.
7.2. 의외의 모습
기계치. 2집의 성공 덕분에 집에 큰 TV를 장만했을 때 리모컨을 잘못 만져서 화면을 12 분할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난감하게도 원상 복귀하는 방법을 몰라 뒤늦게 매니저가 와서 고쳐주기 전까지 그 상태 그대로 TV를 계속 봤다고 한다.[72]
더불어서, 엄청난 컴맹인데 Ctrl+C와 Ctrl+V를 몰랐다고 한다. 또 F5(새로고침), 메모장 기능과 확장자 등등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모양이며 독수리 타법인 것 같다. 본인 말로는 인터넷 쇼핑 장바구니 기능도 잘 모르겠어서 물건은 그냥 직접 나가서 산다고(...) 하였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온라인 쇼핑을 잘 이용한다고 한다.
무대에서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는 달리 TV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는 여성스러운 평범한 말투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종종 예능 등의 방송에서도 흥분하면 사투리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걸 목격할 수 있다. 사석에서 친한 이들에게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고 한다. 나이가 들은 최근에 와서는 예능에 출연해서도 그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라디오 스타에서의 김경호는 매우 겸손해 보이는데, 공감토크쇼 놀러와에서 반농담으로 말하길 컨셉이라고. 라디오 스타에서 게스트로 나온 정성호가 김경호 형은 너무 겸손해서 탈이라는 에피소드[73] 를 말한적이 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나운서 출신이다. 아버지도 방송에서는 표준어를 구사하다 녹화가 끝나면 전라도 사투리 모드로 돌아온다고.
박완규는 '1996년부터 경호 형에게 여자 친구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너무 잘해줘서 이용만 당하다 결국 상처받았다' 고 말했다. 김경호는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사랑했으니 충분하다고 답했다. 관련 기사.
8. 출연 프로그램
9. 여담
입담이 수준급이다. 정말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들이나 히든 싱어, 나는 가수다에서 보면, 입담이 수준급이다. 소극장 공연 때부터 온갖 에피소드를 다 털어놨다. 머리를 기르고 다녔다고 했으니.. [74]
가수 서지원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까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고정 게스트로 함께 참여 했었다고 한다. 그때 많이 친해져서 자살 이후 많이 힘들어 했었던 듯. 후에 나가수에 그를 언급하며 서지원의 노래를 불렀다. 그 때 불렀던 노래가 바로 '내 눈물 모아'였었다. 이 때 "너무 못 불러서 지원이한테 미안하다."고 한 적도 있었다.
동갑내기인 김연우와는 라디오 게스트로 같이 출연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데뷔 초기인 95년에 SBS 점프점프에 나왔던 영상. 이 때까지만 해도, 무명이여서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능에 나와서 테이프 20장을 팔고 좋아하던 시절.. [75]
희귀 영상이 있다. 참고로 이게 그 전설의 1표 차이로 진 영상이다. 이 때 왜 이러고 나왔냐면, KBS는 예나 지금이나 규제가 상당히 심한데,[76] 청소년들한테 정서적으로 안 좋다며 유해 가수 판정을 받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아예 모자를 쓰고 머리를 묶게 하는 등 상당히 규제가 심했는데, 염색 조차 금기시 되었다. '''이 건 무려 첫번째 순서로 나와서 부른 곡이다.''' 비슷한 시기에 MBC 베스트 인기가요 Top 50 나왔을 때 영상. 유튜브에서 김경호 공연 영상을 찾아보면, 확실히 KBS만 이렇게 규제가 심했다. 시기가 시기였으니... 이러다가 4집 활동이던 비정 때부터 규제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국민의 정부 정책 중 하나가 문화 개방이였으니...
1990년대 아이돌 열풍 세대에 나온 가수라 그런지 아이돌 학살 영상이 존재한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김종국 목소리가 조금 들리는 것을 제외하곤 '''거의 김경호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본인이 생각해도 심하다고 여겼던 건지 션에게 마이크를 넘겨 주며, 잠시 뒤로 빠지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 참고로, 이 때 나왔던 가수들은 터보, H.O.T., 지누션 임창정, 박진영이다. 사실 이 거, 원래는 안 부르려다가 했겠지부터 그냥 김경호가 혼자서 부른 거다.. 이 날 나슬사 공연 영상
본인이 1999년 소극장 공연에서 밝힌 바로는 H.O.T.,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들이 죄 다 선생님 보듯 하는게 서로 부담스럽다고 생각해서, 아예 그냥 대기실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긴머리를 하면서도 생긋 웃고 다니면서 반말도 안 한다고 한다. 본인이 다른 가수들 대기실에 먼저 방문해서 인사를 해줬다고 한다. 토토가에서 S.E.S.의 바다가 "활동 시기일 때 컨셉이 요정이라, 다른 가수분들께 방문을 못 해서 굉장히 죄송했다."고 하는 걸 보면, 이 바닥도 선후배 관계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는데, 김경호는 그 아이돌들이 무서워할까봐 웃고 다닌 거였다고 한다. 문제는 김경호가 데리고 다니는 밴드 멤버. 그 멤버들 인상이 살벌하기에 다른 아이돌 댄스팀이 쫄아서 대피했다고 한다(...) 너무 부담스러워하는 거 같아서 벽만 쳐다본다고(…)
2003년 핑클의 곡 'Now'를 리메이크 했을 당시 후배 박완규와 사석에서 멱살을 잡을 정도로 대판 싸운 적이 있다. 자신의 롤 모델로써 존경 하던 선배자 형의 변절 한 듯 한 모습에 실망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핑클은 'Now'를 리메이크 해 주셔서 영광이라 하기도 했다.
매우 절친한 동료인 박완규가 자신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경호는 소속사의 압박으로 할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머리를 잘랐다고 한다. 박완규가 김경호의 모습을 처음 본 건 박기영과 함께한 술자리였는데 여기서 김경호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잘랐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어서 "요즘 시대에 락 음악은 안 돼, 변신이 필요해"라는 식의 거짓말을 했고, 여기에 빡친 박완규는 그 자리를 다 엎어 버리고 술병을 던지며 '''"형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라며, 덤볐다고 한다.
그 후 2년 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박완규가 다시 용서를 구하면서 전화를 하고 무릎을 꿇은 뒤[77] 그런데 박완규는 김경호가 머리를 자른 이유가 소속사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잘랐다고 얘기했지만, 사실 정작 당사자인 김경호는 윤도현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온 것을 보고 영향을 받기도 했고 긴 머리가 싫증나기도 했고, 거기다 소속사에서도 머리가지고 자꾸 잔소리를 해대니, 겸사겸사 자기발로 미용실에 가서 자른거라고 여러 방송에서 언급했다. 여하튼 어찌저찌 화해를 했다고 한다. MBC '라디오 스타'에서 김경호 왈 "이 녀석, 제가 골반 춤 추고 예능 나갔을 때 어떻게 록커가 그럴수 있냐면서 그리도 절 욕하더니 2년 만에 전화 와서는 같이 '찾아라 맛있는 TV' 하자고 하더라구요". 이후 관계가 회복 되어 듀엣 공연이나 간간히 함께 방송 출연도 하고 있다.
작곡가 박정식과의 인연으로[78] 투니버스에서 방영한 '''은혼'''의 오프닝곡 '질주' , 원피스 7기 오프닝곡 '꿈이 있기에' 를 부르기도 했다(둘 다 신동식 PD 작사). 함께 작업했던 신동식 PD의 블로그에 따르면 처음으로 부르는 애니메이션 주제가 섭외였지만 흔쾌히 응해주었다고……。 또한 KBS 1TV 애니메이션 메타제트의 오프닝을 부르기도 했다.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에서 백청강을 위해 스케줄을 잡았다고 언급 했고, 실제로 출연 하여 듀엣 무대를 선 보이게 되었다.
2011년 12월 절친 김연우와 함께 MBC 로고송을 불렀다. 엠빅 종합편, 연우&경호.
독거총각 생활이 너무 외로워 말티즈 반려견 뭉실이와 루루를 키웠던 적이 있다. [79] 이에 대한 부러움으로 디시 김경호 갤러들은 본인들을 뭉실이라고 부른다(...) 여담으로 예전 반려견 이름은 김종서와 강산에였다고 한다. [80]
김경호갤의 한 갤러가 뱅헤어로 합성한 사진이 있는데 이건 뭐...
김경호 갤러리에서 어쩌다 찍힌 고구마 먹방이 요리경연 대회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의외로 춤을 잘 춘다.
음악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데뷔 시절부터 자신의 콘서트 등의 무대에서 많은 춤을 보여 준 바 있다.[81]
최재훈과 노래 주점에 갔는데, 김경호가 최재훈을 음정박자 못 맞춘다고 혼 내고 최재훈은 이런 데까지 와서도 그런 걸 따지냐고 화내고 해서 둘이 한 판 붙었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둘이 화해 하고 듀엣곡을 불렀다고(…)
2014년 5월 음악방송 100초전에서 크레용팝의 '어이'를 불렀다. ABBA의 1980년대 히트곡 'Gimme! Gimme! Gimme!'와 섞어서 불렀는데[82] 노래만 한 것이 아니라 크레용팝 복장을 한 댄서들을 대동 하여 크레용팝의 춤을 완벽하게 재현 하여 충격을 주었다. 결과는 1등. 노래가 끝 난 후 크레용팝의 왕 팬이라고 밝혔다. 100초 전에서 한 번만 부르고 만 게 아니라 자기 콘서트의 레파토리로 넣어서 공연 때마다 어이의 닭다리 춤과 노래, 격렬한 헤드뱅잉을 관객에게 선 보여 환호를 받고 있다. 윤도현, 크라잉넛 이상면에 이어 락커 골수 팝저씨 한 명 추가. ~~근데 이제
2014년 7월, 4년간 만나온 13살 연하 일본인 여자친구와 2014년 안에 결혼 하겠다고 발표 했다. 해당 기사.
2014년 11월 8일, 교제 중이던 일본인 여자친구와 '''드디어''' 결혼에 골인 하게 되었다! 관련 기사.
2018년 8월 6일, 지난 6월 결혼 4년만에 협의 이혼 하였다고 한다. 이유는 성격차이와 문화차이라고. 관련기사
2015년 1월 17일 KBS '불후의 명곡'에 출연 하였을 때 마침 함께 출연 한 EXID와 의상 코드가 겹친 덕분에 6번째 멤버드립이 성행 했다.
[image]
당시의 모습. 40대 초반의 나이에 20대 초중~~반의 여자 후배들 사이에서도 위화감 없이 섞이는 위엄을 보여 줬다(...).
2017년 8월 31일 ~ 9월 7일 해피투게더 전설의 조동아리 - 내 노래를 불러줘에 나섰으나, 아무도 그의 노래를 불러 주지 않아 첫번째 실패자로 기록 되는 굴욕을 당했다. 녹화 한 곳이 하필이면 성신여자대학교 근처라 여자들은 Tears를 계속 불러 댔고[83] 위키미키는 지석진이 알바로 위장 하고 커피 캔에 김도연과 최유정 스티커를 붙여서 I.O.I의 곡을 부르게 유도 한 게 먹힌 데다가 소유도 피처링곡인 "Officially Missing You, Too"가 나 오면서 종료 15분을 남기고 극적으로 퇴근에 성공 했는데, 김경호는 결국 세대 차이를 보이며 실패 하는 굴욕을 당했다. 내심 기대 했던 방에서 "이거 연우 노래지?"라며 내심 다음 선곡을 기다렸는데, 정작 이들이 예약 한 곡은 좋니..... 강제예약 찬스까지 썼건만 남자들은 김경호의 곡을 모두 취소 해 버렸다. 사실상 굴욕 중의 상 굴욕.[84][85]
2019년 6월 6일 합주실에서 콘서트를 준비하다가 우연찮게 연습하러 온 부활과 마주치기도 했는데, 당시 목디스크 수술 이후 재활 중이었다고 언급했다. 출처.
건대입구역 광고판에 걸린적이있다. https://twitter.com/kkh_useless/status/1137585643213606912
김정은의 초콜릿에서 성량을 쟀을 때 130.2데시벨이 나온 적이 있다.
10. 개별 문서가 작성된 노래
[1] 예전 팬들과 PC통신 채팅할 때 알려졌다. 그리고 콘서트 할 때 김해평야 드립을 치기도 했다.[2] 부모님 두분 다 아나운서였다. 아버지는 KBS 본사 아나운서로 지내다 KBS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로 퇴직하였고, 어머니는 CBS 아나운서였다.[3] 중국에서 사업을 한다고 한다. 2019년 6월 18일 김경호 공식 홈페이지에 그의 부고가 전해졌다.[4] 어머니는 CBS 기독교방송 아나운서였고, 본인도 잠시 서울신학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강의를 했었다. 7집 수록곡 Open your eyes는 CCM 가수인 천강수 전도사의 곡으로 기독교적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5] sns가 없는 김경호가 유일하게 온라인에서 글을 올리는 곳이다.[6] 김경호의 정규 2집 타이틀곡인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MBC 인기가요 BEST50에서 1997년 9월말~10월 첫째주까지 2주 연속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가요톱텐에서는 4주 연속 1위 후보 기록이 있다.[7] 최다보유자는 김종서다.[8] 윤도현이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김경호에게 붙여 준 별명.[9] 2011년 6월 방영 된 <오천만의 대질문>에서 김경호가 "안녕하세요? 깜찍이 락커 김경호에요!" 라고 외친 적이 있다. 마냥 본인 생각만은 아니고, 과거 젊은 시절 깜찍이 락커라고 부르던 팬들이 있어서 나온 드립인 듯. 젊은 시절에는 부르지 말라고 했다. 영상 47초경 참조. 이를 곱씹다가 예능에 활용한 듯.[10] 디시인사이드 김경호 갤러리에서 주로 사용되는 별명. 단, 갤 내에서만 자주 쓰이는 별명이다. 2018년 기준 48세니까 아직 노친네라고 불릴 나이는 아니지만, 사용하는 어휘가 심히 예스러운 점이나 컴퓨터나 TV를 도통 다루지 못 하는 점 등등 때문에 이러한 별명이 붙게 되었다.[11] 로또싱어에서 스스로가 "난 애기(?)네~" 라고 한 뒤부터 사용되는 별명.[12] 물론 아예 없지는 않았고 성별이 구분 가능한 정도로 미세하게 바뀐 특이 케이스이다. 이런 목소리가 초고음을 내뿜을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경우가 많다.[13] 이현석은 1집 기타 세션 중 한 사람이었던 굴지의 국내 네오 클래시컬 장르의 기타리스트로 알려져 있다. 한편, 나는 가수다에서 김경호의 특별 세션으로 활약했던 박창곤 역시 네오 클래시컬 스타일의 연주가 특기인 기타리스트로, 이를 통해 김경호가 네오 클래시컬 메탈을 선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14] 당시 박완규와 유리상자의 이세준이 군복무 시절 이 앨범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박완규는 제대할 때 앨범 테이프가 다 늘어져서 더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고 한다.[15] 이런 이유로 마지막 기도의 후반기 활동부터 머리가 길어지는 걸 볼 수가 있다.[16] 참고로 가요톱10에서의 공동 1위는 1991년 12월 25일 방송분에서 골든컵을 탄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와 김정수의 <당신>이라는 곡이 유일하다.[17] mv촬영 당시 더는 보여줄 것이 없으니 웃통을 까자는 말에 도저히 맨정신에는 할 수 없어서 소주 3잔을 마시고 촬영했다는 일화가 있다.[18] 이 시대의 이소라의 프로포즈는 실력파 인증의 장이었다.[19] 이소라의 프로포즈 방송 다음 날 회사로부터 "큰일 났다"는 연락을 받고 무슨 일인가 해서 사무실로 출근하니, 회사의 모든 직원들이 모세의 기적의 갈라진 바다처럼 서서 대표실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며 박수를 쳐주었다고 한다.[20] 비록 가요톱텐에서는 활동이 전무해서 순위권에도 들지 못했지만 SBS TV 가요 20에서는 상위권에 랭크되었고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는 1위 후보에도 오르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21] 김경호 본인은 6집을 실패한 앨범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당시 판매량은 17만 장으로 양호했던 편이다. 어디까지나 기존 앨범에 비해 저조했던 거지, 망한 게 아니다. 김광석 리메이크 수록곡 '''<사랑했지만>''"은 히트했다.[22] 6집 타이틀곡인 <희생>과 후속곡 <사랑했지만> 등은 기존 곡과는 달리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평을 받았다. 당시 팬들 사이에서는 김경호가 새로운 창법을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돌기도 했지만, 기존에 비해 부드러워졌다는 것은 타이틀곡 한정으로 나머지 수록곡은 여전히 파워풀했다.[23] 그 어려운 곡들이 수두룩한 김경호의 역대 앨범 중에서도 가장 괴물같은 난이도의 노래들이 즐비한 음반이 5집이었다.[24] 새 소속사의 사장이었던 김진권이 <Now>의 작곡가로서 이 노래의 리메이크를 권유했다고 한다.[25] 성대결절은 점점 심해졌고 급기야 7.5집 활동때였던 2004년~2005년 사이 <Shout> 라이브 과정에서 거의 소음 수준의 괴성을 선보이고 혹평을 받기도 했다.[26] 음원은 F♯이지만 전성기 시절에도 항상 반음 낮춰 불렀다. 그래서인지 tj미디어 반주기에서도 F키로 나온다.[27] <금지된 사랑>은 2009년부터 E키로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컨디션이 안정된 현재까지도 D, E키로 부르는 중. 이후 부분 립싱크가 아니면 이 곡을 원키로 소화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2012년경에 <음악의 시대>라는 프로그램에서 <금지된 사랑> 1절을 원키로 부른 적이 있다. 애초에 키조정은 보컬과 연주의 합에 따라 맞춰지는 것이라 밴드와 같이 무대에 많이 서고 콘서트 투어를 뛰는 가수에게 원키 소화 여부가 크게 의미를 지니는건 아니다.[28] 사실 말이 보통 남자들 정도 음계지 낮아도 2옥타브 후반대다.[29] 김경호 본인도 그렇지만 흔히 사람들이 그의 창법을 그로울링 창법이라 칭하는데, 엄밀히 말해 그로울링 창법이 아니다. 그로울링 창법은 데스 메탈이나 블랙 메탈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특유의 중저음대 소리를 표현하는 창법이다. 김경호가 구사하는 창법은 예나 지금이나 스크래치를 섞은 비브라토로 다만 전성기 때가 워낙 괴물이었을 뿐 산전수전 다 겪은 현재에도 창법의 기본 틀이 바뀐 적은 없다. 김경호 본인도 이를 정확하게 알고서 쓴 표현이 아닌 단순히 긁어서 나온 굵은 목소리를 그로울링이라 표현한 것일 확률이 높다.[30] 현재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며 콘서트를 주로 하는 이유 상으로 난이도가 매우 높은 곡들을 키 조정을 통해 부르긴 하지만 2018년 5월 16일 FOURever 멤버들과 함께 한 주간아이돌에서 클레오파트라 게임을 통해 3옥타브 라(A5)샤우팅을 할 수 있음을 드러낸 적도 있기 때문이다.[31] 물론 전성기 시절에 비할 정도의 초고음은 없지만 이 정도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을 거라고 전망한 팬도 역시 없었다. 나는 가수다 시기가 가수 커리어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라면 현재의 김경호는 기량면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나 다름없다.[32] 사실, 이 곡은 음역대를 지나치게 높게 잡아 녹음한게 아닌가하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성대결절 이전의 김경호도 힘들어 한 초고난도의 곡 중 하나다. 오히려 키를 낮추니 현재의 김경호의 소화 음역범위에 딱 걸쳐지게 된 것.[33] 컨디션이 회복되고 샤우팅이 부활했으며, 나는 가수다 시절의 중음 비브라토를 거칠게 쓰는 창법 뿐만 아니라 리즈시절에 가까운 비브라토도 활용 가능해진데다, 진성 음역의 최고음도 충분히 소화해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15년 하반기부터 다시 부활한 예의 커버곡 <To Hell With the Devil>이다.[34] 창법이 예전과 달라져 호불호가 약간 갈린다는 말이 있으나, 김경호는 창법 운영을 바꾼적은 있어도 기본적인 창법틀인 비브라토+스크레치 자체를 바꾼 적은 없다. 과거의 방송 송출이 김경호의 무지막지한 성량을 다 송출하지 못해서 방송 영상으로는 다소 깔끔하게 들렸을 뿐, 김경호 특유의 폭넓은 비브라토 음폭은 당시에도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로 꼽히기도 하였다. 김경호는 예나 지금이나 그 성량이 방송에서 온전하게 송출되지 않는 가수이기도 한데 <복면가왕>에서 그의 무대를 직접 지켜봤던 방청객들의 방영 후 후기에 따르면 현장과 방송 송출의 차이가 컸다고 하며, 하현우도 인터뷰에서 압도적인 무대로 김경호의 무대를 꼽기도 했으니 단순히 방송상으로 나온 모습만이 전부라고 판단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35] 그의 무대를 본 어느 한 평가단은 마치 자옥에서 열리는 악마들의 파티를 본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36] 작사 - 김태원, 작곡 - 김종서 // 이 곡을 작곡한 김종서는 "락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이 곡을 바치며 사랑과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 하여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 했다.[37] 구성원들이 하나 같이 대한민국 락을 대표 하는 뮤지션들인데다가 특히 김종서는 김경호 본인이 가장 존경하고 롤모델로 여기는 선배이니 만큼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크다.[38] 나슬사의 하이라이트인 '다른 이 세상 누구보다'는 발음이 많이 뭉개지고 '''3옥타브 레(D5)''' 또한 플랫이 되어 버려 그리 좋은 모습을 보이지는 못 하고 있다.[39] 하지만 진성은 2003년~2004년보다 낮다.[40] 솔직히 03~04년 당시보다는 괜찮다. 03~04때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많이 상해있었다.[39] 현재 목 상태를 엄밀히 비교하자면, 현재의 창법으로 바꾸기 직전과 창법을 바꾼 직후 시기인 2008년 말~2009년 초 당시의 목상태와 비슷하다고 보면된다. 2008년 말에 기복이 엄청 심했고, 나슬사랑 금사 키는 08년 락클 때 부터 지금 키로 낮췄다. 낮추고 나서 09년 초에 창법을 바꾸기 시작했을 때도 이런 플랫 현상은 지속되었다가 09년 중반부터 다시 안정화가 이루어진 것.[41] 물론 유튜브에서 곡을 커버 하는 아마추어 가수 기준이지 실제 일반인(...) 수준은 아니다.[42] 또한 당시 마지막 곡인 Shout가 '''원키''' MR로 준비되어버려 현재의 음역대와는 다소 무리가 있는 음역대의 곡이 당시의 컨디션 난조와 겹쳐져 더욱 부각되었다.[43] 2018년도 부진의 일면에는 당해 8월에 있었던 이혼의 여파로 인한 컨디션 관리 실패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소리는 개인의 컨디션에 따라서 기복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또한 본인의 히트곡들도 대다수가 원래 일반인들은 따라부를 엄두도 내기 힘든 곡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라이브에서는 부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2019년에 들어서 좋은 기량을 보여주는 모습과 확연히 비교된다.[44] 의상이 왜 저렇냐면, 저 시절에 KBS에서는 긴 머리가 청소년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소리 때문에 머리 긴 남자가수는 머리 하나로 묶고 모자를 썼을 정도로 검열이 심했다.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된 지 10년째인 나라에서 벌어진 일. 문민정부 시절에는 이런 식으로 규제를 했었다. 1위 후보곡으로 올라가 있었는데, 한 표 차이로 2위를 기록했다. 그 때 1위를 했던 곡이 '''임창정 - 결혼해줘'''. 나중에 자서전에서 김경호는 "이렇게까지 했는 데도 1위를 안주나" 하며 한탄했다고.[45] 여담으로 이 무대는 당시 나가수에서 나온 역대 득표율 1위를 갱신한 29%의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투표 규칙인 1인 3표제의 제도상 500표의 87%를 얻은 것과 같다. 다시 말해서 500명의 청중 평가단 중 430명 안팎이 김경호에게 표를 줬다는 이야기.[46] 참고로 이 곡의 작사/작곡 모두 김경호 본인이 쓴 것이며 2017년 당시 사회의 어두웠던 내면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경고를 내포하여 담았다고 한다.[47] 가끔 그의 라이브를 들어 보면 알겠지만, 목소리에 밴드 사운드가 묻힌다(..) 특히 강하게 샤우팅을 내 지를 땐 밴드 소리가 완전히 묻힌다. 디스토션 깔린 기타 2개, 베이스, 드럼 소리를 샤우팅 하나로 묻어 버리는 건 기본이며, 국내에서 베이스연주는 TOP으로 통하는 한철재의 미친 베이스 소리마저 뚫고 나올 정도.[48] 2007년 한국외대 축제에서 공연을 할 당시 캠퍼스 안쪽에 있는 노천극장 (지금은 없어졌다)에서 공연을 했음에도 지하철 역에서까지 희미하게 들리는 (!) 미친 성량을 자랑했다. 물론 외대 캠퍼스가 작은데다 역도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빠른 걸음으로 10분 걸리는 곳이다.[49] 그 예시로서 2015년 나는 가수다 3 에서 불렀던 열애를 생각해보면 될 것 이다.[50] 물론 전체적인 보컬의 밸런스가 대한민국 최고기 때문에 이 샤우팅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샤우팅만 잘 하는 보컬이 아니다.[51] 이 경우는 초창기 때 한정이고, 스크래치를 전격 도입하면서 소위 성대를 강하게 마찰시켜서 내는 파열음은 오히려 마이클 베세라와 판박이다. 경력이 쌓이면서 2집 정도까지는 조음을 잘 조절하면서 싸서 내는 소리와 까서 내는 소리 다 잘 활용했다면 3집부터는 후두가 들려진 상태에서 까서 내는 소리를 더 많이 사용했다. 사실 발성학적인 면에서 이런 발성은 인골라 + 성대화상을 유발하기에 아주 안좋은 습관이긴 한데 하필 그게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으니... [52] 락 역사상 최고의 프런트맨으로 꼽힐 정도로 관중을 휘어잡는 실력이 엄청나다.[53] 당시 김경호는 소니와 손을 잡고 직접 소속사를 차려서 대표로 활동함.[54] 성대결절에 걸리면 샤우팅을 내기가 어려워지는데, 샤우팅 자체가 가성(팔세토) 기반인데 성대결절에 걸리면 가성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 또한 가성대가 상하면 스크래치를 걸기 힘듬.[55] Shout는 결절 이후에도 샤우팅을 제외하고는 간간히 불렀고, 결절 직후에는 '금지된 사랑',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도 겨우 불렀다.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 브릿지의 샤우트 구간과 같은 초고음 애드리브들도 당연히 포기.[56] 물론 'Shout'도 가끔 샤우팅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목소리가 찢어지며 소음 수준의 괴성이 났다. 또한 'Shout'에서 '끝없이 노력해 보는 거야~' 부분의 '''3옥타브 미(E5)''' 샤우팅도 목소리가 찢어졌다.[57] 사실, 성대결절로 인해 한동안 샤우팅을 낼 수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김경호 본인이 당시에 샤우팅 등의 창법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기도 했다. 나가수 출연 당시의 인터뷰에서도 과거의 모습에 비해서도 당시의 목소리에 만족감을 표하기도 했다. 김경호는 리즈 시절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관적으로 깊이있는 목소리를 선호한다고 밝힌 바 있다.[58] 김경호 자서전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4옥타브 솔♯(G♯6)'''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물론, 이는 당연히 팔세토를 포함해야 가능한 영역이다. 참고로 일반적인 남성 보컬의 가성 최고음은 '''3옥타브 솔(G5)''' 정도. 관련기사에 따르면 본인이 '''4옥타브 파(F5)와 솔(G5)''' 사이였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다만 노래에 표현할 수 있는 음역대를 기준으로 한 것인지는 불명.[59] 하지만 예전부터 김경호를 지켜보고 응원했던 올드 팬들에겐 이정도의 샤우팅만으로도 반가울 따름이다. 김경호의 성대는 결절로 인해 여러번 망가진데다 그의 나이가 50을 바라보는 것을 감안하면, 샤우팅이 부활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그리고 이 의견은 결정적으로 가수의 목소리도 나이를 먹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60] 'Singing out', 'Here we go', ‘Come on!’, ‘여러분! 워어어어!’ 등이 그 예.[61] 그래도 18년도 말에 콘서트에서 은퇴 없다고 선언했었던 후, 진성 음역대를 회복 해 나가고 있다. [62] 그로울링이라는 말이 있는데, 위에 언급한대로 그로울링은 데스메탈 계열에서 쓰는 특유의 창법이다. 자세한 것은 그로울링 참조.[63] 하지만 다시 최근 들어서 과거의 하늘을 찌르는 느낌의 샤우팅으로 변하고 있다. 이는 아마 2016년 후반부터 조금씩 공명을 머리와 코쪽으로 울리다가 2017년으로 와서는 전성기 때 처럼 완벽히 두성공명을 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64] 게다가 더 무서운 것은 2018년 중반까지는 체력 문제도 있고 성대가 안 따라주는 지 진성 음역대가 낮아졌었다. 그러나 2018년 말, 은퇴 없다고 선언 후에 금지된 사랑에서 마지막 먼 훗날 우리를 아예 깔끔히 찍어버리면서 다시 진성 음역대를 회복 중인데, 2019년 들어서 금지된 사랑 마지막 부분의 '먼 훗날 우리' 는 이젠 2010년대 초반 때와 다를 것 없이 그냥 불러버린다. 17년 후반기,18년 초반기까지 마지막 사비 부분은 관객들 방향으로 마이크를 돌렸던 것을 현재와 비교해보면, 전성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게 참 믿을 수 없는 상황. 장난이 아니라 이 정도면 '누나 당신은 대체' 라는 말 밖에 안 나올 정도... [65] 오히려 금사는 2013년보다도 더 좋았다. 나가수 이후의 최고의 금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66] 아니, 발전했다기 보다는 진화했다는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67] 이번 서울콘 오프닝이었던 '''Higher To The Top'''에서의 샤우팅이 이를 뒷받침 해 준다.[68] 김경호/디스코그래피 항목에서 김경호 작곡, 작사한 노래 참조.[69] 사실 이에 크게 기여한 것은 인터넷에 퍼진 보컬강좌 영상이다. 보컬 강좌는 검색을 해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김명기의 보컬강좌'가 있다. 이러한 강좌 내용들은 독학으로 터득하는 것이 매우 힘들며, 본인만 만족할 뿐이지 입발성과 더불어 노래방 테러의 주 원인이 될 수 있다. 혼자서는 본인의 잘못된 점과 부족한 점을 제대로 알 수도 없거니와 괜한 친구들의 칭찬 버프 때문에 잘못된 습관이 더 굳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발성을 체계적으로 익히고 싶어서 강좌를 듣는 것이라면, 해당 강좌의 전문 트레이너에게 직접 개인 교습을 받는 것이 좋다. 여의치 않다면 차라리 가까운 보컬학원에 등록하여 다니는 편이 낫다. 물론, 학원에 다니는 것보다는 자신의 소질을 찾아내서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가수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70] 사실 클래식과 달리 대부분의 록보컬, 그리고 상당수의 팝보컬들은 무슨 "정석"이 있는게 아니라 각자 특유의 음색과 창법이 있는 독특한 창법이기 때문에 목소리가 다른 타인이 무작정 따라하는 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물론 김연우나 김범수같은, 소위 "교과서"같은 정석적인 달인들은 참고가 된다. 그렇다고 목소리나 음역이 다른데 모창하면 안되겠지만. 발성이나 전체적인 창법 얘기) 유니크한 목소리로 유명한 임재범처럼 되고 싶다고 임재범을 따라하면 망한다. 설령 피나는 연습과 연구를 통해 임재범이나 김경호와 똑같이 노래할 수 있게 됐다고 해도 포스트 김경호가 임재범이 아닌 그들의 아류로 취급받을 뿐이다. 김경호든 임재범이든 자신의 우상을 모창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그들이 우상들과 구분되는 독특한 창법을 갖게 된 것을 생각해보자.[71] 사실 나가수 5대 미녀 이전에 나가수 3대 여신이 있었다. 요정 박정현, 선동여신 김윤아, 숨막히는 뒷태 김경호. 미녀니 여신이니 하는 소리가 김경호의 출연 이후에 나오기 시작했다![72] 이는 1대 100 465회 방송에서 언급했다.[73] 타인에게 매번 지나치게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까지 안해도 되니까 연예인 답게 좀 누리고 살아' 라고 말했다가 연예인병 걸린 사람 취급 받았다고[74] 홍록기가 틴틴파이브에서 '머리 치워 머리'로 활동할 때 머리가 허리까지 기르고 다녔었는데 명동 거리에서 누군가가 엉덩이를 쓰다듬고 갔다고 한다.[75] 참고로 이 때 같이 나왔었던 윤비수는 현재 음악감독을 하고 있다. 소환대전 큐이의 메인테마곡을 만들기도.. 부른 가수는 악마성프로젝트.[76] 이 때는 남자들 긴머리하고 염색머리는 방송금지였다. '''KBS만.''' [77] 헌데 무릎을 꿇었다는 박완규의 주장은 김경호 본인이 MBC '무릎팍도사'에 나와서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사과 없이 바로 자신과 찾아라 맛있는 TV 방송을 하자고 했다 카더라(...)[78] 박정식은 김경호 9집 수록곡이었던 '비가 되어 흐르는 너'의 작곡가인데, 이 곡을 김경호가 불러줄 것을 상정해서 만들어 두었다가 무려 10년이나 지나서 김경호에게 준 것이라고 한다.[79] 2020년 현재 기준으로 뭉실이는 원주인에게 돌아갔고 루루는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80] 참고로 김종서는 김경호가 데뷔 초창기부터 롤 모델이라고 할 정도로 매우 존경하는 선배 중 하나다. 불후의 명곡에서 7인의 스타가 서로의 노래를 바꿔 부르기 특집 때, 함께 등장했는데 이 때 김경호는 '''공식적으로 김종서의 노래를 처음 불렀으며'''(비공식적으로는 상당히 많다) 이 때, 김종서도 김경호에게 상당히 기대를 하였고 노래를 듣자 '''이게 이렇게 좋은 노래였나'''라고 말 하며 김경호를 극찬 했다. 이 무대에서 김경호는 김종서의 노래에 누를 끼치게 않겠다는 부담감이 껴서인지 '''특유의 마이크 퍼포먼스를 실패 해 마이크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실수를 범할 정도였다. [81] 대표적으로 Yazzo의 'Don't Go', Queen의 'I Want To Break Free', 핑클의 'Now', 나는 가수다에서 '이유 같지 않은 이유', 크레용팝의 '어이'.[82] 편곡은 잉베이 맘스틴 버전을 사용.[83] 우연히도 소찬휘가 게스트로 나 왔다. 당연히 Tears의 위엄에 힘 입어 1등으로 퇴근 했다. 파트너는 김수용.[84] 사실 노래가 부르기 어려우니까 그럴 거다. 90년대부터 김경호의 노래는 노래 잘 부르는 남자들의 전유물 같은 거였으니까...[85] 그 다음은 플라이 투 더 스카이가 2번째로 퇴근에 실패하는 굴욕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