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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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락밴드 로 멤버는 베이스 박태희, 기타 허준,[2] 보컬 겸 리더 윤도현, 드럼 김진원, 기타 스캇 할로웰(Scott Hellowell)
윤도현 밴드 또는 줄여서 '''윤밴'''이라고도 불렸지만, 과거 어떤 행사에서 김구라가 윤도현 밴드를 '''윤도현과 기타등등'''(...)[3] 으로 부르는 바람에 윤도현 밴드 역사상 가장 심각한 회의[4] 후 밴드 이름을 '''YB'''로 바꿨다. 2005년 유럽 투어 중 영국 록밴드 스테랑코가 윤도현 밴드 음악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지만 이름이 부르기 너무 어렵다 하여 앞 글자만 따서 YB로 지어준 것이라고 둘러댔지만 #, 2년 후 공감토크쇼 놀러와에서 김구라와 함께 촬영하면서 김구라 때문에 바꾸었단 말을 다시 꺼내면서 # 사실상 사실임을 인증했다. 이후로 YB가 정식 명칭이 되었다.
원래 윤도현은 밴드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90년대 시장 환경상 소속사 입장에서 밴드는 어려웠고[5][6] 활동 소속사 사장은 윤도현의 1집이 성공하면 밴드를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된다. 결국 1994년 말 윤도현의 1집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발매되었으나,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여 밴드 데뷔는 한참이나 늦어지게 된다. 이후 1997년 윤도현 밴드를 결성해 두 번째 앨범 <윤도현 and BAND>를 통해 데뷔했다. 1996년 개봉된 영화 정글 스토리에 구성원 4명 모두가 출연한 적이 있다.
1집의 거칠지만 방향성이 적었던 패기가 2집 <윤도현 and BAND>에서 드러난 후, 3집 <소외>에서 진보적이고 반항적인 메시지로 정돈되며 YB는 하드록의 대들보로 부상한다. 사실 지금의 평가와는 달리 록 리스너들이나 평단의 평도 이 시기에는 아주 좋았다. 이때 YB는 민중가요 록그룹 '메이데이'의 음반에 객원 세션으로 참여하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주의 록그룹이었다.[7] 이 당시의 대표적인 곡으로는 '철문을 열어', '가리지 좀 마', '이 땅에 살기 위하여' 등을 꼽을 수 있다. 한편 '먼 훗날' 등의 록 발라드도 인기를 끌었다.
1999년에는 '너를 보내고'를 타이틀로 하여 4집이자 리메이크 음반인 <한국 ROCK 다시 부르기>를 냈는데, 들국화의 리메이크 '그것만이 내 세상', '돌고 돌고 돌고', 송창식의 '담배가게 아가씨', 빅토르 최의 '혈액형' 등등 모든 트랙이 평균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단순한 상업적 리메이크를 넘어 한국 록을 집대성했다는 호평을 받게 된다. 1집, 2집과 함께 YB 최고의 명반.[8] 그리고 이 때 '너를 보내고'[9] 로 활동까지 했는데 정작 활동 당시에는 대중들의 반응이 시큰둥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밴드를 이끌던 윤도현과 유병열 간의 갈등, 자금난 등이 겹치며 YB는 해체를 선언한다. 해체 이후 윤도현은 고향에서 개를 키우며 살려고 했는데(…) 어느 날 음악 방송을 보는데 이미 활동도 끝난 너를 보내고가 입소문을 타고 히트하여 10위권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았고, 이에 YB는 재결합을 하게 된다.
이후 허준을 기타리스트로 맞이하여[10] 다시금 정비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 멤버 교체는 한동안 YB가 정체, 혹은 퇴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왜냐하면 흡입력 있는 기타 리프를 짜던 유병열이나, 포크록적인 감수성을 갖고 있던 엄태환, 그리고 프로듀서 강호정이 모두 탈퇴해 YB 음악의 주축이 윤도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하여 한동안 YB는 음악적으로 크게 방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에서 다시 돌아보면, 허준의 영입은 YB만의 독특한 록 스타일을 만드는 데 큰 일조를 했다고 볼 수 있다.
2001년 6월 발표한 5집은 모던 록으로의 전환을 꾀했는데, 윤도현의 표현을 인용하면 유병열의 힘이 넘치는 기타와 전혀 다른 허준의 '달콤한' 기타 연주로 인해 그동안 만들어 오던 YB의 곡과 성향이 매우 다르게 느껴졌고, 대중적이라고 하기엔 모자라고 기존 팬들이 보기에는 너무 약하게 느껴지는 곡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로 인해 일반 대중들에게 어필하지 못함과 동시에 기존 팬들마저 고개를 돌려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한 평론가는 유병열의 색이 지워지고, 아직 허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던 이 시기를 가리켜 윤도현 '밴드'에서 '윤도현' 밴드로의 변화라고 평했다.
이후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오 필승 코리아>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면서 '국민 밴드'라고 불리는 등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11] 아닌 게 아니라 당시 월드컵 열기로 인해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윤도현이 부른 '오 필승 코리아' 밖에 없으며 이것은 그냥 단순한 YB의 히트곡이 아닌 '''우리 축구 대표팀이 경기를 할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다 함께 부르는 대국민 응원가가 된다.'''
또한 2002년 9월에는 MBC가 주최한 2002 MBC 평양 특별공연에 참석했었다. 당시 YB는 '윤도현 악단'(....) 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고 무대에서 아침 이슬, 너를 보내고, 탈춤, 아리랑, 오 필승 코리아를 불렀다. 특히 윤도현은 아리랑 도입부를 부르다가 눈물을 보였는데 이게 북한 전역에 생방송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탈북자들에 의하면 이 공연 이후 YB의 북한 내 인기가 높아져 지금도 너를 보내고가 인기 순위에 있다고 한다.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10대 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지나치게 큰 성공은 YB가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월드컵 밴드, 발라드 가수라고 폄하하며 안티가 급격히 증가한 것도 이 시점이다. 그때 당시의 붕 뜨고 혼란스러운 상태는 YB 멤버들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고, 철없는 행동을 많이 했다고 회상하곤 한다. 여담이지만 월드컵 시절과 이후 6집의 행보로 인해 많은 상업 논란에 시달렸는데, 무릎팍도사에서 말하길 상업 논란에 대해서 '원래 상업적으로 가려 했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덕분에 이 당시 생애 처음으로 가요프로에서 1위를 한 같은 나가수 출연자가 훨씬 큰 대박을 칠 수 있었음에도 다소 묻혀버린 감이 없잖아 있다. 아무튼 이 시기를 계기로 윤도현의 솔로곡인 '가을 우체국 앞에서'와 '사랑 Two'는 나온 지 8년 만에 제대로 알려지게 된다. 또한 평양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으며. 보컬 윤도현의 목소리로 녹음된 '아리랑' 역시 '오 필승 코리아' 못지않게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게 된다. 평단에서도 이를 아쉬워하기도 했는데, 소위 한국 록의 '정통파'가 된 YB를 주류로 만든 것이 이전 4집에서 보여주었던 번뜩이는 창의력과 음악성이 아니라 월드컵 행사였다는 점 때문. 어찌 보면 록밴드가 대놓고 상업주의를 표방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 음악계의 씁쓸한 현실이다.
다음 해(2003년) 발표한 6집까지도 대중적인 면에서는 성공했으나 록 페스티벌에서 대놓고 욕을 하는 관중이 생겨날 정도로[12] 록 매니아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멤버들도 이 앨범에 대해 아쉬운 점이 많다고 하는데, 6집의 앨범 수록곡을 보면 월드컵 시절의 빅히트로 인해 이 당시 YB가 얼마나 혼란스러워했는지를 알 수 있다.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해 노래하는 '꽃잎'이나 '죽든지 말든지' 등 강렬하면서도 사회 비판의식이 수록된 트랙이 있는가 하면 타이틀곡은 대중적인 발라드 '사랑할거야'나 유명 작곡가 윤일상에게 곡을 받아 작사만 맡은 '잊을게'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심지어 음악 웹진 weiv에서는 2003년 최악의 음반 중 하나로 꼽히는 수모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심기일전하여 3년 만에 발표한 7집 <Why Be?>와 8집 <공존>은 다시 좋은 평가를 얻는데 성공한다. 8집 타이틀 곡인 '아직도 널'의 뮤비가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디씨를 뒤집어지게 할 정도로의 유머다.''' 아쉽게도 링크가 사라져서 지금은 디씨의 반응을 볼 수 없다.[13] 특히 8집의 경우 촛불 시위를 응원한 '후회없어' 용산 철거사건을 비판한 '깃발' 88만원 세대를 표현한 '88만원의 Losing Game' 등 사회비판 의식을 드러낸 탓인지 '''윤도현의 방송 출연이 족족 무산당하며''' 앨범 홍보의 기회를 놓치기까지 했다.
2010년에는 RRM(Risque Rhythm Machine)과 협업하여 록 음악과 일렉트로니카를 접목하는 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안티들 사이에서는 록이 아니다 등으로 매도하기도 하지만 90년대 록밴드의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었고, 윤도현밴드만큼 오랜 기간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밴드도 드물다.[14] 임재범은 "16년간 록밴드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고 평했으며, 김종서 또한 트위터를 통해 YB를 칭찬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15]
다만 싫어하는 사람들은 히트곡이 발라드에 치우쳐져 있다거나, 외부에서 곡을 받는 것으로 까기도 한다.[16][17] 하지만 록 발라드 그룹이라는 평가는 오해에 가깝다. 2002 월드컵 이후의 6집 타이틀 '사랑할거야'나 수록곡 '잊을게'와 윤도현의 솔로 앨범에서 '사랑했나봐'가 메가 히트했기 때문. 멤버를 대거 교체한 직후의 5집은 포크록, 타이틀을 발라드로 하지 않은 7집 이후로는 하드록에 가까운 성향을 보이나 히트가 되지 않아[18] YB 음악의 과도기이자 대중성을 얻었던 4~6집의 이미지가 지금까지 굳어진 것.
윤도현 밴드 활동 초기에는 특이하게 애니송을 부른 전력이 있는데 1998년 SBS에서 OVA판들만 모아서 방영한 신세기 GPX 사이버 포뮬러[19] 의 한국어 주제가를 맡았다. 당시 인기는 당연히 극강 인증.
수정 전 항목에 있었으며 현재도 돌고 있는 오해 중에는 전설의 용자 다간의 SBS 판 주제가도 윤도현이 불렀다는 오해가 있으나, 이 경우는 목소리도 창법 그 어느 것도 절대로 윤도현의 것이 아니다. SBS의 다간 방영 시기가 1998년 4~6월 경인데, 이 시기의 윤도현은 남녀노소 다 아는 국민가수가 아니었다 뿐이지 결코 무명가수는 아니었다. 한마디로 윤도현이 부른 것과 부르지 않은 것을 대중이 구분할 정도는 됐었다는 이야기로 [20] 당시 윤도현은 뮤지컬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었고, 박노해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이 땅에 살기 위하여' 같은 경우엔 MBC에서 방송 금지를 먹어서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방송 금지 '이 땅에...' 윤도현, "잘못된 현실을 그대로 표현했을 뿐" 강산에와 창법과 음색이 비슷해 착각하는 사람이 있긴 했으나, 반대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건 그만큼 윤도현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 상당수 이상 존재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봄 한가운데 콘서트 봇물. 넥스트 '관객 밀착' 선언... 윤도현, 이상은 등도 잇단 공연 계획 부활, 레드플러스 등과 함께한 공연은 케이블에 방영되기도 했다. 오버그라운드 록밴드 자체가 드물던 시절이라 시대가 변한 상황에서도 옛스런 록 음악을 고집하는 윤도현이라는 젊은 가수의 존재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독특한 무대매너로 인기를 얻고 있는 도원경과 윤도현 젊은 층에 인지도가 있는 가수로서 코카콜라의 라디오 CM송을 부른 바도 있다. 코카콜로 라디오 CM송 인기가수 기용 뭣보다... 본인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부른 적이 있다며 직접 인증했을 때에도 '타잔'과 '사이버 포뮬러'만 언급, '다간'은 언급하지 않았다. 만화 주제가를 부르기 위해 목소리와 창법을 바꿔 감춘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기상으로도 사이버 포뮬러 쪽의 방영일이 앞이다. 어딘가 나른한 분위기의 전형적인 만화 주제가였던 KBS 판과 달리 일반 록 음악 같은 곡조에 이름 있는 대중가수가 만화 주제가를 불렀다는 자체가 충격적이고 주목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는데, 사이버 포뮬러 주제가를 부른 후 만약 전설의 용사 다간의 주제가도 불렀다면 굳이 감출 이유도 없거니와 갑작스레 창법이나 음색을 바꿀 이유도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다.
2. 멤버 소개
2.1. 현 멤버
2.2. 이전 멤버
- 유병열 (기타)
윤도현밴드 2-4집[22] 기타리스트를 맡고 있었다. 특유의 강렬하고 파워풀하면서도 서정적인 기타로 음악의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하드했던 윤도현밴드 음악은 대부분 유병열의 작곡이었다. 하지만 윤도현과의 심한 갈등 때문에[23] 밴드를 나가게 된다. 밴드를 나간 후에는 '비갠후'라는 밴드에서 활동했는데, 윤도현이 비갠후 공연에 참여하거나 유병열이 나는 가수다 무대에서 게스트로 나오는 등 둘의 사이는 많이 회복이 된 듯.
'바스켓노트'라는 4인조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였으며, 바스켓노트의 단독 공연에 YB가 게스트로 참여했다.
전남도립대학교 외래교수가 되었고 2017년 '산울림' 출신의 김창훈과 함께 록밴드 '블랙스톤즈' 를 결성하였다.
국내 기타브랜드 '길모어' 의 엔도씨이며, 시그네쳐 모델도 있다. 사용자들의 평은 다른 길모어 모델에 비해 굉장히 하드한 사운드가 난다고 한다.
'바스켓노트'라는 4인조 밴드를 결성해 활동하였으며, 바스켓노트의 단독 공연에 YB가 게스트로 참여했다.
전남도립대학교 외래교수가 되었고 2017년 '산울림' 출신의 김창훈과 함께 록밴드 '블랙스톤즈' 를 결성하였다.
국내 기타브랜드 '길모어' 의 엔도씨이며, 시그네쳐 모델도 있다. 사용자들의 평은 다른 길모어 모델에 비해 굉장히 하드한 사운드가 난다고 한다.
- 강호정 (키보드) 트위터
1, 2집까지 소속되어 있었다. 4집 <한국 ROCK 다시 부르기>에 다시 참여하기도 했다. 1, 2, 4집의 프로듀서를 맡았으며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였다.
- 엄태환 (어쿠스틱 기타, 퍼커션)
3. 나는 가수다 출연
2011년에 나는 가수다에 출연하면서 폭발적인 보컬의 윤도현과 멤버들의 화려한 퍼포먼스 등으로 다시 한번 인지도가 높아지게 된다. 첫 경연부터 가히 폭발적인 라이브를 선보임으로서 모두를 기상시켰고 나는 가수다에서 관객들이 함께 놀 수 있는 가장 활기찬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실제로 공연중 전좌석 스탠딩 상태가 되는 무대는 YB의 무대가 유일한 듯.[24]
YB의 나는 가수다 경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윤도현 항목 참조.[25]
4. 그 외
- 록밴드로서는 기이할 정도로 멤버들이 바른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멤버들이 가정 생활에 충실하고, 약물은 커녕 술담배를 많이 하지도 않는다. 오죽하면 락계의 바른 생활 사나이로 유명한 배철수가 "록그룹이라면 가끔 일탈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윤도현 밴드는 멤버 하나하나가 너무 바른생활만 한다."라고 할 정도.
- 힐링캠프에 출연해서 밝히길 밴드활동의 수익은 무조건 똑같이 나누는게 밴드 결성때부터 지켜온 원칙이라고 한다. 다만 윤도현이 예능 출연이나 MC, 뮤지컬 등 다른 부가 활동으로 버는 수익이 있는데, 그 대신 연습실 보수 작업을 한다던가 새로운 음향 장비를 구입하거나 하는 비용을 윤도현이 맡아서 부담한다고 한다.
- 2002년과 2018년 두 번 모두 방북예술단의 일원으로 평양에서 공연을 했다. 2002년에는 기타리스트 허준의 노란 머리색이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 2018년에는 아예 영국인 멤버 스캇이 있었음에도[26][27] 별 잡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없는 걸로 보아 공연을 무사히 하긴 한 듯.
5. 음반 목록
항목 참고.
5.1. 정규 음반
- 1집 가을 우체국 앞에서 (1994년) - 이 시절은 윤도현 단독으로 데뷔한 때이나, 이후 YB의 정규 앨범으로 친다. 참고로 타이틀 곡인 '가을 우체국 앞에서'는 윤도현의 20년 후 즉 데뷔 20년이자 2014년에 '노래하는 윤도현'에서 리메이크 했다.
- 2집 윤도현 and Band (1997년) - '윤도현 2'라는 제목으로도 부른다. 정확히 말하면 이 앨범도 윤도현의 앨범이다. 소속사 계약 관계상 밴드로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윤도현밴드'라는 작명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나온 것일 듯.
- 3집 소외(疏外) (1998년)
- 4집 한국 ROCK 다시 부르기 (1999년)
- 5집 An Urbanite (2001년)
- 6집 YB Stream (2003년) - 후에 리패키지 한정판 앨범으로 한 번 더 발매되었다. 크리스마스 캐롤 리메이크 곡들이 들어 있다.
- 7집 Why Be? (2006년) - 이 시기부터 밴드 명이 윤도현 밴드에서 YB로 변경되었다.
- 8집 共存(공존) (2009년)
- 9집 REEL IMPULSE (2013년)
- 10집 Twilight State (2019년)
5.2. 라이브/기타 음반
- 라이브 1집 - 2000년
- Live Is Life - 2002년
아리랑, 라이브로 편곡된 사랑 two가 실려있는 앨범이며 사랑 월드컵붐을 타고 40만 장 이상 팔렸다고 한다. 판매량으로 따지면 앨범 중에 가장 히트했다.
- After 10 years - 2007년
정말 구하기 힘든 희귀 음반이 되어버렸다. 많은 팬들이 이 음반을 구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수많은 인터넷 음반점에는 뜨지도 않았거나 아름다운 품절 마크를 단 경우가 빈번하다.
- 싱글1178 - 2006년 - 영화《한반도》주제곡
<1178>은 정규 7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 월드컵 응원가 - 2006년
- 애국가 - 2006년
- 무한도전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 - 2009년
- YB vs RRM - 2010년
- 나는 나비(YB 15주년 기념 Live Best) - 2010년
- 흰수염고래 - 2011년
이 앨범을 기점으로 스캇이 정식 멤버가 되었다! 올레!
- 노래하는 윤도현 - 2014년
팬 말고는 나온 지도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을 정도로 망했다.(...) 타블로와 케이윌이 피처링 까지 했다는 건 비밀[28][29] ... 여담이지만 2014년에는 윤도현이 가수로 데뷔한지 20년(!!!)이 된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노래하는 윤도현 앨범에 자신의 데뷔곡 '가을 우체국 앞에서'의 리메이크 버전이 있다. 꽤 괜찮다.
- 스무살 - 2015년
- 꽃비 - 2016년
노래를 일단 듣고 나면 송골매가 떠오른다. 노래의 분위기에 맞게 뮤직비디오도 멤버들 모두 촌스러운 의상을 입고 촬영했다. 원래 제목은 꽃비가 아니었으나 가사를 착각한 코디 덕에 꽃비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다.
- Remind- 2016년
YB 명곡들을 다시 부른 앨범. 노래 이름 뒤에 2016 Ver. 이 붙는다. '타잔', '박하사탕', '사랑했나봐', '잊을께', '흰수염고래' 등 5곡과 'Zoozuhl Zoozuhl'이라는 주절거림이 있다.
- Sparks Fly - 2017년
윤도현과 SM Station의 콜라보 앨범이다. Dee Company에서 SM으로 이직한 프로듀서가 윤도현을 찾아와 같이 하자며 제안했다고... 뮤비에서 YB 멤버들 모두가 나오기도 했다. 멤버들 간의 우정을 테마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차마 오글거려 제대로 쳐다볼 수조차 없는 연기로...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은 저 멀리 흑역사로 기록되었다...
- trip - 2017년
디지털 싱글 앨범
스페셜 싱글 앨범
캠페인[1] 원래 윤도현 갤러리였으나 갤러들과 윤도현 본인의 신청으로 YB갤러리가 되었다.[2] 前 기타리스트는 유병열.[3] '''윤도현과 좆밥들'''이나 '''윤도현과 개새끼들''' 중 하나라고 했다가 '''윤도현과 떨거지들'''로 정정했다고도 한다. [4] 저딴 이름이나 들으면서 노래를 할 바엔 해체하잔 내용이었다고 한다.[5] 90년대 록 음악을 했던 신성우, 김경호 모두 솔로로 데뷔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박완규 역시 생활고로 인하여 솔로로 전향.[6] 90년대 록밴드로서 큰 성공을 거둔 팀은 '걸' 이 있으나 이마저도, 2집까지 나오고 멤버 간 불화로 김세헌이 탈퇴하였다. 그러나 김세헌 역시 밴드에 강한 애착이 있었기에, 이브(EVE) 를 결성하였고, 역시 사정상 밴드는 어려웠기에, 자신을 보컬로 내세운 후, 나머지는 객원 멤버 및 연주자 형식으로 하려 하였다. 이후, 2집에서 G고릴라를 정식 멤버로 들이고, 3집에서 박웅, 김건을 정식 멤버로 들였는데 이 황금라인업으로 나온 3,4집이 걸 못지않은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참고로 이 시기가 YB가 월드컵으로 인해 대중적 인지도가 확 늘어난 시기.[7] 그리고 베이시스트 박태희, 드러머 김진원 모두 이 메이데이 출신이었다.[8] 실제로 이 앨범은 선곡 과정에서 평론가 강헌이 참여하였다. 사족이지만 ROCK 다시 부르기라 해서 다 록 음악을 리메이크한 것은 아니다.[9] 여담이지만 이 곡은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 부활의 'Never Ending Story' 등과 함께 노래방 스테디셀러로도 유명하다(…). 제목을 모르는 사람도 '먼 산~'하는 후렴구 부분을 들으면 아 그 노래! 하는 곡.[10] 원래 재즈 기타리스트였다고 한다. 때문에 처음에 적응하는데 고생을 많이 했다고. 허준이 오디션에 합격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착해 보여서'. 의견 충돌로 인해 해체 위기에 처했던 만큼 싸움을 일으키지 않을 인물로 뽑고 싶었다고. 4집 직후 YB가 일시적으로 해체된 결정적 이유가 유병열과 윤도현의 갈등 때문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화해해서 윤도현이 유병열의 음반에 참여하기도 하고, 나는 가수다에서 같이 공연을 하기도 했다.[11]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YB를 월드컵 밴드라고 비난하기도 하나 그 이전에도 YB는 충분한 인지도를 쌓아올린 밴드였다. 보컬 윤도현은 월드컵 전에 이미 SBS에서 일요일에 진행하는 쇼 일요천하의 '라스트 스테이지'에서 고정 나레이션을 맡은 바가 있으며, KBS에서는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진행하고 있었다. 윤도현이 월드컵으로 전 국민적인 인지도를 끌어올린 것뿐이지 마치 이전에는 듣보잡이었는데 갑자기 떴다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이런 소리가 나올 정도면 월드컵 때 확 떴다는 것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비교하자면 자우림과 같은 밴드가 대중성 면에서는 앞서 있거나 YB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는데, 이 시기를 계기로 국민 밴드라는 이름을 얻을 정도로 YB가 치고 올라가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 셈이다.[12] YB F...가 쓰여진 피켓을 든 관객에게 영어를 전혀 못하던 박태희가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엄지손가락을 세웠다는 일화가 있다. 그 사람은 조용히 피켓을 접어들고 돌아갔다고...[13] 이를 보고 어떤 막장 집단을 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심의는 '''KBS에서 했다(...).''' 그 집단이 떠오를 정도의 막장이란 소리. [14] 때문에 혹자는 본 조비에 비유하기도 한다.[15] 특히 임재범은 MBC 스페셜 나는 록의 전설이다에서 "네(=윤도현)가 록을 열심히 하고 지지하고 꿋꿋이 버티고 있는 거에 대해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하면서 안아줬다는 이야기를 했다.[16] 사실 YB 앨범 수록곡들은 대부분이 자작곡이나, 4집 리메이크 앨범이 굉장히 잘 팔렸고 히트한 발라드 곡들이 외부에서 받은 곡들이다 보니 이러한 인식이 굳어지게 되었다. 실제로는 그리고 윤일상이 작곡한 '잊을게'와 윤도현의 절친 김C의 작곡 3~4곡을 제외하면 전부 YB의 자작곡이다. 외부에서 준 발라드라고 까이는 '사랑 Two', '너를 보내고', '사랑했나봐' 모두 윤도현이 솔로 활동 시절에 받은 곡들이니 윤도현이 아닌 YB의 평가로 연결하기는 어렵다.[17] 4집 리메이크 앨범은 예전부터 유명하던 록 곡들을 YB가 리메이크 한 것이다.[18] 심지어 8집 같은 경우 노골적으로 사회 비판 의식을 드러낸 탓에 방송 출연 금지를 먹어 제대로 된 홍보조차 못하고 묻혀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19] 크레딧에 확실히 명기됐고 목소리, 창법도 본인의 것이 맞으며, 본인 스스로도 방송에서 인증한 바 있다.[20] 밴드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를 설명하면서 '윤도현'이라는 표현을 계속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밴드'로서의 인지도는 약했다.[21] 네이버 기준. 보통 한글로 스캇이라고 쓰지만 간혹 자막에 스코트라고 적기도 한다. 윤도현을 비롯한 YB 멤버들은 모두 스캇이라는 표현을 사용.[22] 정식명칭이 YB로 바뀌기 전[23] 당시 공연 전에 서로 또 얼굴을 봐야 하냐며 짜증낼 정도였다.[24] 김범수가 '님과 함께'에서 죄다 기상시키긴 했다 [25] 처음에 YB로 섭외가 된게 아니라 '가수' 윤도현으로 섭외가 되었기 때문에 경연 내용은 모두 여기 있다.[26] 스캇은 2002년에는 YB 멤버가 아니었다.[27] 스캇이 별 문제 없이 북한에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영국인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영국과의 외교 관계를 무척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영국인 방문객에 대한 대우가 상당히 좋고 별 다른 태클을 걸지 않는다. 실제로 툭하면 반공화국적대혐의로 씌워 억류하던 미국, 캐나다 인과 달리 영국인은 북한에 장기 거주하는 사람들도 많고 한번도 억류된 적이 없다.[28] 사실 케이윌, 타블로가 피처링 한 노래는 '요즘 내 모습'이다. 요즘 내 모습은 2014년 7월에 발매된 적이 있다.[29] 요즘 내 모습이 이 앨범의 선공개 곡이다.[30] 얼마전 알티와 윤도현 밴드는 같은 소속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