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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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영어: Manaslu(마나슬루)
또는 Kutang(쿠탕)
네팔어: मनास्लु (Manas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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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을 받아 빛나는 마나슬루.-크게보기
높이
'''8,163m'''(세계 8위봉)
지형학적
상대높이
'''3,092m'''(세계 80위)
모체 봉우리
'''초오유'''
위치한 국가
네팔
산맥
히말라야 산맥
초등정
'''1956년'''
이마니시 토시오
(今西壽雄), 일본
걀젠 노르부
(Gyalzen Norbu, 네팔)
역대
등정 횟수
'''297''' (8000m급 14좌 중 '''6위''')
'''등반 중
사망률'''
(종합) '''17.86%''' (8000m급 14좌 중 '''5위''')
(90년대 이전) '''35.16%'''(8000m급 14좌 중 '''5위''')[1]
구르카 산괴(Gurkha Massif)의 주요 봉우리. 왼쪽부터 '''마나슬루(Manaslu, 8,163m)''', 은가디출리(Ngadi Chuli, 7,871m), 히말출리(Himal Chuli, 7,893m)
사진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즈

1. 개요
2. 등정 역사
3.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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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팔 중서부 히말라야 산맥의 만시리 히말, 구르카 산괴에 위치한 세계에서 8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다.
네팔 중서부 거점도시 포카라의 북동쪽으로 약 50km지점, 마나슬루 자연보호구역 내에 위치해 있다.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영혼의 땅', '정령의 산'이라는 의미.
마나슬루를 비롯한 만시리 히말의 주요 봉우리는 다음과 같다.[2]
  • 마나슬루 (8,163미터)
  • 히말출리 (7,893미터)[3]
  • 은가디출리 (7,871미터)[4]
세계 10위봉인 안나푸르나. 그외에 가네시 히말과 인접해 있다. 네팔이 8천미터대 고산이 많은 것으로 이름이 높지만 중국이나 인도와의 국경에 걸치지 않고 온전하게 네팔 국토 안에 위치한 8천미터급 3개 중 하나이다. 나머지 두개는 다울라기리안나푸르나.
'''쿠탕'''이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다.

2. 등정 역사


일본 등산가 이마니시 토시오와 네팔인 걀젠 노르부가 최초로 1956년 정상등정에 성공하였다. 8천미터급 14좌 중 일본 국적의 원정대가 세계 초등을 이룩한 유일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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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은 축제 분위기가 되어 위와 같은 기념우표도 발행하기도 했다. "영국인이 에베레스트가 영국의 산이라고 생각하듯이 일본인은 마나슬루를 일본의 산으로 생각한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과는 악연이 있는 산이다. 한국은 1970년대 이전 여러 차례 등정에 시도하였으나[5] 1971년 마나슬루 원정대의 김기섭 대원이 추락사하면서 최초의 원정대 사고로 기록되었다. 이듬해 1972년에 등반대원 5명과 현지 셰르파 10명이 눈사태에 의해 약 해발 7천미터 지점에서 전원 사망하는 참사를 겪는 등 여러 차례 비극을 겪었다. 72년 1차 원정대 김기섭 시신 수습을 겸한[6] 2차 원정대에는 김기섭 대원의 형인 김정섭(1차 원정대 등반대장, 2차 원정대 총 대장), 김호섭(2차 원정대 등반대장)이 포함되어 있었고, 이 사고로 김호섭이 사망했다. [7] 1980년에 동국대학교 산악부가 한국 내 초등을 성공하였다.



3. 트레킹


마나슬루를 포함한 구르카 산괴 주변부 모두 트레킹 코스가 매우 잘 발달되어 있다. 주변 트레킹 루트가 총연장 170km가 넘는 정도. 또한 이중 많은 수가 안나푸르나 쪽 트레킹 루트와 연결되어 있다.
안나푸르나와 마찬가지로 이쪽도 '''마나슬루 써킷'''이라는 산 전체를 한 바퀴 도는 트레킹 루트가 있으며 산행을 하면서 6천미터가 넘는 고봉들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1] 안나푸르나, K2, 낭가파르바트, 칸첸중가 다음이다. 바람이 직빵으로 몰아치고 정상 근처에 직벽이 있어 등반이 어려운 마칼루보다도 사망률이 높다는 점에서 6위인 다울라기리와 같이 14좌 중 중상급에 속하는 산이라고 볼 수 있다.[2] 히말출리와 은가디출리도 모두 해발고도로는 세계 20위 안에 드는 고봉들이다. 7천미터 후반대이니 사실상 8천미터급으로 봐도 무방한 높이.[3] 세계 18위봉[4] 세계 20위봉[5] 10명이 사망한 설악산 죽음의 계곡 눈사태 사고가 히말라야 원정을 위한 훈련 중 사고다. 마지막 목표는 당연히 에베레스트였지만, 1차 목표가 입산 허가가 쉬운 마나슬루였다.[6] 시신은 눈과 얼음에 덮히고 장비와 함께 얼어 붙어 100kg을 넘어가며, 자기 몸 하나도 가누기 힘든 가파르고 추운 고산에서 접근하거나 파내는 것조차 어려운 조난자 시신을 수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등반 장비와 기술이 발전한 2000년대에도 많은 원정대가 조난 시신을 버려두고 온다. 당시에는 그런 사실을 잘 몰랐다.[7] 막내 김예섭도 대원이었으나, 눈사태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