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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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의 북벽.''' 분위기가 에베레스트와는 사뭇 다르다. [1]
출처
명칭
'''K2'''
'''Mount Godwin-Austen'''(고드윈오스턴 산)
Qogri/乔戈里峰(초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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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의 남벽.''' 위압적이다.
높이
'''8,611m'''(세계 2위봉)
지형학적
상대높이
'''4,017m'''(세계 22위)
모체 봉우리
정의상 '''에베레스트'''[2]
위치한 국가
파키스탄, 중국
산맥
카라코람 산맥
초등정
'''1954년'''
아킬레 콤파뇨니
(Achille Compagnoni, 이탈리아)
리노 라체델리
(Lino Lacedelli, 이탈리아)
역대
등정 횟수
'''284''' (8000m급 14좌 중 '''8위''')
'''등반 중
사망률'''
(종합) '''23.24%''' (8000 m급 14좌 중 '''2위''')[3]
(90년대 이전) '''41%'''(8000 m급 14좌 중 3위)[4]
1. 개요
2. 등반
3. 에베레스트와의 비교
4. 미디어에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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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키스탄 북부와 중국 서부 카라코람 산맥에 위치한 '''세계 제2의 고봉'''(8,611m). 카라코람 산맥 최고봉이자 파키스탄의 최고봉이기도 하다.
안나푸르나가 사망률이 1위라면, '''K2는 등반하기 가장 어려운 산'''이다.
파키스탄 길기트발티스탄 주와 중국 신장 카슈가르 지구 타슈쿠르간 사이 경계에 걸쳐 있으며, 인도 또한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5] 1861년에 영국인 헨리 고드윈 오스턴이 발토로 빙하를 발견한 후 처음으로 K2에 접근한 업적을 기려 '고드윈 오스턴 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초 등정은 1954년 7월 31일에 아르디토 데시오의 이탈리아 등정팀이 이루었다.
1856년에 영국령 인도 측량사 토머스 몽고메리가 카슈미르에서 카라코람의 고봉을 바라본 순서대로 K1, K2, K3, K4, K5라고 지정하면서 처음 보고되었다.
원래는 이렇게 성의 없이 붙여진 코드네임에 불과했으나, 1858년 카슈미르의 측량국에 의해 높이가 정확하게 측정되어 '''세계 제2의 고봉'''이라고 확인된 후 정식이름으로 굳어졌다. 발견 당시의 기준으로도 새로 측량된 산에는 현지 이름을 쓰는 게 원칙이었으나[6] K2는 K1 마셔브룸, K3 가셔브룸4, K4 가셔브룸2, K5 가셔브룸1과 달리 현지인들도 영국 탐사대가 올 때까지 그동안 이 산의 존재를 몰라서 토착 지명이라고 할 만한 명칭이 없었기 때문이다.[7] 참고로 바로 이웃에 있는 봉우리인 브로드피크[8]가 K3로 불렸던 이유 또한 K2의 옆에 있었기 때문에 K3이라는 코드네임이 붙었던 것이다.
전술했다시피 원래부터 이렇다 할 현지 명칭이 없었던 산이기 때문에 지금은 현지인들도 K2를 현지 언어인 발티어로 음차한 Ketu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현재는 이 산의 이름을 넘어서 아예 발티어로 '''높고 거대한 산 전반'''을 일컫는 외래 신조어로 흡수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9]

2. 등반


단순히 높이로만 보면 거봉계의 콩라인이기는 하지만, 등산 난이도로만 따지면 '''가장 등정하기 어려운 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애초에 2021년 네팔인들의 동계 초등 전까지 마지막 동계 미등봉이었으며 동벽 및 북벽 루트는 등반기술이 발달한 지금까지도 아무도 정복한 적이 없다. 잘 빠진 피라미드의 형태로, 다른 8,000m급 산들보다 훨씬 경사가 급하여 다른 거봉들과 비교해도 엄청나게 험하다. 게다가 다른 8,000m 거봉들과 달리 주변에 이웃 거봉들이 없어 산맥의 강한 바람이 바로 정면으로 불어오는 데다[10] 이 바람이 산을 타고 오르면서 엄청난 구름과 눈보라를 일으킨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8,000m 거봉들 중에서도 가장 등정 성공률이 낮으며(30%대) 등정 과정에서 죽어나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최초 등정 시도 후 52년만에 등정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참고로 에베레스트의 등정 성공에 걸린 기간은 약 29년이다.
최초의 등반 시도는 영국인 오스카 에컨스타인과 앨리스터 크롤리에 의해 1902년에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5차례 도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1902년 최초 시도 이후 1909년, 1938년, 1939년, 1953년의 등반 시도도 모두 실패했다. 최초의 등정시도부터 52년 후인 1954년 이탈리아의 콤파뇨니와 라체델리가 Abruzzi Spur를 통해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하였다[11]. 더 황당한 것은 초등 이후 23년 동안 그 누구도 등정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후 1977년 요시자와 이치로가 이끈 일본 원정대가 Abruzzi Spur를 통해 '''두번째''' 등정에 성공했는데 이들은 무려 1,500명이 넘는 짐꾼들이 동원했다고 한다. 2017년 기준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사람은 4500명이 넘는데 비해 1954년 초등 이후 K2 정상에 오른 사람은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306명뿐이다. 인류 역사에서 겨우 300여명 남짓한 사람만이 K2 정상에 서 본 것이다. 등반 중 사망한 사람만 84명인데 이들 대부분은 하산 중에 사망했다[12].
봄이나 가을이 아닌 계절에 산을 오르는건 자살행위이며, 특히 겨울에는 악명 높은 칼바람과 구름, 낮은 온도 때문에 등정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무리 남아시아에 있는 산이라지만 K2의 위도는 북위 35도 52분으로 상당히 북쪽에 위치해 있다. 북위 35도 20분에 위치한 지리산보다도 높은 위도. 14좌 중 낭가파르바트과 함께 겨울에 등정된 적이 없는 봉우리였다가 2016년 2월 26일 시모네 모로를 포함한 3인의 다국적 등반대가 낭가파르바트의 동계초등에 성공하면서 유일한 동계 미등봉이 되었다. 여름에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등정이 거의 불가능한데 1997년 가을 이후 2000년 봄까지 단 한명도 등정에 성공하지 못했으며 기사에 의하면 2002, 2003, 2005년에는 날씨 때문에 단 한 명도 등정을 시도하지 못했다고 한다.
등반하기 가장 어렵다는 K2 답게 역대급으로 사망자가 많이 나오는 시즌이 몇번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1986년인데 1986년 8월 초순 동안 심한 폭풍으로 13명의 클라이머가 사망했다. 그래서 이것을 1986 K2 등반사고(1986 K2 disaster)라고 한다. 두번째는 1995년 8월 중순 6명의 클라이머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세번째가 가장 끔찍한데 2008년 8월 1일에는 한국 등반대 3명을 포함해서 하루 동안에만 무려 11명의 등반자들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건 K2를 등정하는 이들의 75%가 선택하는 Abruzzi route의 정상 부근에 있는 세락(Serac, 빙하가 쪼개져 생긴 얼음 덩어리)이 더워진 날씨로 무너져 내린 탓이 크다. 당시 사망한 등반자들에게는 참 불행했던 것이, 무너진 세락은 지난 54년간 딱 세 번 무너졌는데 하필 그 세 번째가 2008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1년 1월 16일, 네팔인 셰르파 10명으로 이루어진 산악팀이 동계 초등에 성공하면서 14좌 동계 등정이 완료되었다.'''# 2020년 겨울 시즌에는 4개 팀, 60여명의 등반대가 등정을 시도했었기에 이번에는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한 높아진 상태였다. ## ### 결국 이들 중 몇몇은 등반 도중 사망했지만 '''니르말 님스 푸르자'''[13], 다와 텐지 셰르파, 밍마 G 다와 템바 셰르파, 펨 치리 셰르파, 밍마 데이비드 셰르파, 밍마 텐지 셰르파, 님스다이 푸르자, 겔제 셰르파 등으로 구성된 네팔 등반팀이 동계 초등에 성공했다.#### [14]
K2의 전체 등반 루트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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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사진은 K2의 남쪽 사면에 있는 등반 루트들을 나타낸다. 대부분의 등반 루트들은 남쪽에 있다. 일반적으로 북쪽인 중국쪽으로 접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건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북쪽 루트들이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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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에서 1번 또는 루트 F는 가장 많은 등반대가 시도하는 Abruzzi Spur로서 다음 사진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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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원본( 크게보기 )
K2 등반의 75%는 Abruzzi Spur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름의 기원은 이탈리아 중부 아부르초(Abruzzi) 지방의 공작이었던 루이기 아메데오가 1909년 이 루트를 통해 처음으로 등정을 시도했기 때문에 여기서 따온 것이다. 이 코스는 사진과 같이 house chimney - black pyramid - shoulder - bottleneck - serac의 순서로 되어 있다. house chimney는 100m의 수직절벽이다. 이 코스에서 bottleneck이 가장 어렵고 사망자도 그만큼 많이 나오는 구간이다. 2008년 8월 1일 하루 동안 11명의 클라이머가 사망한 지점도 bottleneck이다. 위의 사진에서 보면 bottleneck의 바로 위에 눈이 뭉쳐져 얼어 버린 serac이 있는데 이게 무너지면 대형사고가 난다. 실제 아래에 있는 터키 등반팀의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serac 밑을 지날 때 가장 아찔해 보인다. 그래도 serac을 지나면 완만한 경사 뿐이어서 정상까지는 평이하다. [15]
2번 또는 루트 E는 남남동벽 루트(Cesen 루트 또는 바스크 루트)로서 이 루트는 1994년 스페인-바스크 등반팀에 의해 개척되었다. 이 루트는 남쪽 파키스탄 쪽에 있으며 black pyramid를 피해가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루트로 알려져 있다. 이 루트를 따라가면 Abruzzi spur의 2/3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일본의 등반가 야마노이 야스시가 2000년에 이 루트를 단독, 그것도 무산소로 개척등반하였다. 최초의 K2 단독등반이며 일본 산악사에서 단연 최고로 뽑히는 기록이다[16]. 2000년 대한민국 영호남 K2 원정대도 이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다#[17]. 2007년 김창호 대장과 김진태 대원은 부산산악연맹 등반팀 소속으로 이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으며 그것도 무산소로 성공했다.# 원래 여러 등반대가 K2 겨울 등정의 후보 중 하나로 이 루트를 선택했지만 너무 가팔라서 캠프를 만들 곳도 없고 눈이 없이 바위만 있으며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동계 등정에서 이 루트로 성공한 적이 없다.
3번 또는 루트 D는 소위 '''벽''' 루트, 그 중 '''남벽''' 루트로서 북쪽마루 또는 북서릉(North Ridge)과 더불어 개척된 루트 중에서 가장 어려운 루트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이 루트를 등정하려면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1986년 예지 쿠쿠츠카[18]와 타데우슈 피트로프스키에 의해 초등되었으며 피트로프스키는 하산 중에 사망했다. 이 루트는 파키스탄쪽에 있으며 위의 사진에서처럼 남서봉 루트(C)의 첫번째 부분에서 갈라지면서 시작한다. 이 루트는 "하키 스틱"이라 불리우는 도랑을 지나서 완전히 노출된 절벽을 따라 올라간다. 위의 사진들에서 보면 루트 중간 이후부터는 수직 절벽이다. 이 루트를 따라가면 정상 300m 전에 Abruzzi spur와 만나게 되는 데 그 직전에 굴곡이 없는 평평한 수직 절벽을 지나가게 된다. 이 루트가 위험한 건 눈사태 때문인데 1986년 초등 이후 아직까지 재등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쿠쿠츠카만이 통과한 루트이다. 그래서 이 루트를 폴란드 라인(Polish line)이라고 부른다.
루트 B는 '''서벽'''(West Face) 루트로서 2007년 러시아 등반팀이 개척하였다. 이후 현재까지 재등된 적이 없다.
4번 또는 루트 C는 남서봉(매직 라인) 루트로서 K2에서 가장 경사가 급한 곳이고 대부분이 빙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눈사태가 빈발하는 바람에 두번째로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1986년 폴란드-슬로바키아 등반팀에 의해 처음으로 개척되었다. 두번째 등정시도는 2004년 스페인 등반가 호르디 코로미나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의 등반 과정은 영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설적인 등반가인 라인홀트 메스너조차도 1979년 처음 시도한 이후로 예측불가능한 눈사태 때문에 "자살코스"라고 불렀으며 곧장 포기하고 Abruzzi spur로 등정했다.
6번 또는 루트 A는 서쪽 마루(West Ridge) 루트로서 1981년 일본 등반팀에 의해 개척되었다. 다른 루트들의 베이스캠프는 발토르 빙하에 있는데 이 루트의 베이스캠프는 네그로토 빙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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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첫번째 이미지는 이 페이지의 맨 위에 있는 K2의 북벽 사진에 루트를 추가한 것으로서 북쪽 루트들을 보여주며 두번째 이미지는 K2의 북서측에 있는 등반루트를 보여 준다. 참고로 K2의 북벽은 중국쪽에 있어서 중국측에서 바라 본 것이다. 위의 첫번째 이미지에서 North Pillar가 북벽인데 거의 4000m에 이르는 수직 절벽이다[19]. 때문에 아직까지 등정된 적이 없다.
7번(위의 두번째 이미지에서 루트 C)은 북서마루(NorthWest Ridge) 루트로서 1991년에 프랑스 등반팀에 의해 개척되었으며 끝에서 북쪽마루 루트와 만나게 된다.
8번은 북서벽(NorthWest Face) 루트로서 1990년 일본 등반대에 의해 처음 개척되었다. 이 루트는 중국쪽을 지나가며 K2 빙하에서 시작한다. 이후 북서마루를 따라 오르다가 북서벽 루트로 정상까지 이르게 된다.
9번(위의 첫번째 이미지에서 빨간선, 두번째 이미지에서 D)은 북쪽마루(North Ridge) 루트인데 이 역시 K2에서 가장 어려운 루트 중 하나로서 K2에서도 가장 기술적으로 어려운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이 코스는 등반 자체도 힘들지만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과정에서 샥스감 강을 건너야 하는데 이것조차도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어렵다고 한다. 1982년 이사오 신카이와 마사츠고 코니시가 이끄는 일본 등반대가 처음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등정에 성공한 성공한 5명 중 유키히로 야나기사와는 하산 중에 사망했다[20]. 이후 1990년 그렉 차일드[21] 외 2명의 등반팀이 앞서 일본등반팀이 만들어 놓은 로프를 이용해서 알파인스타일로 등정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이 루트로 등정에 성공한 팀은 단 두팀 뿐이다.
10번(위의 두번째 이미지에서 루트 E)은 북동마루(NorthEast Ridge) 루트로서 이 루트를 따라가면 Abruzzi spur의 최고점에서 만나게 된다. 1977년 야누스 쿠잡이 이끄는 폴란드 등반대에 의해 개척되었으며 이들의 등정은 최초의 이탈리아, 두번째의 일본에 이어 세번째 K2 등정이다. 이후 1978년 제임스 휘태커와 다른 3명으로 구성된 미국 등반팀이 등정한 이후 현재까지 재등된 적이 없다.
'''벽''' 루트들은 그야말로 '''넘사벽'''. 등정된 루트는 남벽과 서벽 뿐이고 각각 초등 이후 재등이 없으며, 동벽[22]과 북벽[23]은 여전히 미등이다. 만약 이 벽으로 등정한 산악인이 나온다면 산악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다. 남벽은 상술했듯 쿠쿠츠카만이 성공했으며, 서벽(루트 B)은 2007년 러시아 팀이 초등하였다. 러시아 팀은 이 업적으로 황금피켈상을 수상했다. 다만 알파인 등반이 아니어서 비난당했다. 결국 프랑스에서 수상하는 황금피켈상은 수상하지 못했고, 러시아에서 자체적으로 황금피켈상을 만들어서 수상하였다.[24] 남벽(3번 또는 루트 D)과 서벽 루트(루트 B) 모두 재등된 적이 없다.
조세프 라콘카이(Josef Rakoncaj)는 K2 정상에 각기 다른 루트로 두 번이나 올랐는데 한 번은 1983년 이탈리아 등반팀과 함께 북쪽마루 루트로, 1986년 폴란드 등반팀과 함께 Abruzzi Spur 루트로 정상에 올랐다.
K2의 정상에 오른 최초의 여성은 폴란드 여성으로서 1986년 등정에 성공한 완다 루키에비츠(Wanda Rutkiewicz)다.
폴란드 사람들이 유독 K2와 인연이 깊다. 앞서도 설명되어 있지만 1986년 폴란드 등반대는 2개의 신루트(매직 라인 루트와 남벽 루트)를 개척했다. K2를 등정한 최초의 여성 등반가도 폴란드 사람이며 남벽 루트를 개척한 쿠쿠츠카도 폴란드 사람이고 2018년 최초로 K2에서 스키로 하산한 사람도 폴란드 사람이다.
한국 등반대는 1986년 8월 대한산악연맹에서 진행한 K2 원정대의 장봉완 부대장과 김창선,장병호대원이 Abruzzi Spur 루트로 한국인 최초로, 국가순서로는 세계 11번째로 정상 등반에 성공했다. 이들의 감동적인 스토리는 원정 1년 뒤인 1987년 김병준 대장에 의해 <K2, 죽음을 부르는 산>이란 책으로 세상에 나와 있다. [25] 1994에는 두번째로 마산산악동지회가 등정을 시도했지만 악천후로 인해 실패했다. 1999년에는 전남연맹팀이 한국등반대로는 세 번째 등정을 시도했지만 역시 폭설과 강풍으로 인해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2000년에는 네번째로 도전한 이성원 대장이 이끄는 영호남 합동 원정대가 남남동릉 루트로 두번째로 등정에 성공한다. 바로 이어서 김위영 대장이 이끄는 한국산악회 대구지부팀이 Abruzzi Spur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으며 유한규 대장이 이끄는 한국합동대(여기에 엄홍길씨가 포함되어 있었다)가 Abruzzi Spur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다. 2000년에는 한국에서만 3개의 등반팀이 등정에 성공했다. 2000년에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동국대 등반팀이 마지막으로 등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이듬해 2001년에 Abruzzi Spur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다.
2018년 혼자서 7일 동안 정상까지 무산소로 등반을 한 뒤, 스키를 타고 7시간 만에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온 사람이 있다. 스키 하산에 성공한 사람은 Andrzej Bargiel라는 폴란드 사람으로 다른 8000m 14좌인 시샤팡마마나슬루를 먼저 성공한 뒤 K2에 도전했다고 한다. K2의 경치도 감상하면서 직접 보시라.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가 말해보면 2009 미셸 페이트, 2010년 프레데릭 에리슨은 스키로 하산을 시도하다 추락사했고 그 후에 도전한 3명은 중도에 포기했으며 이 중 한 명은 하산 도중 사망할뻔 했다. 여기에 더해 K2와 브로드피크에 등정한 후 패러글라이딩으로 내려 온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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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만들어 낸 K2의 산 그림자.''' K2 정상에서 석양을 등지고 사진을 찍었다. 오른쪽으로 가셔브룸이 보인다.

2012년에 촬영된 실감나는 등정 영상이다. 시간이 없다면 26:00부터 보자.

구글 어스를 통해 우리도 가상으로 등정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구글어스 3D로 구성한 것 중에서 조금 더 실감나는 등정 영상이다.

2004년 스페인 등반팀의 남서봉(Magic Line) 루트 등정 영상이다.

3. 에베레스트와의 비교


에베레스트 역시 위험하기는 하지만 상징성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고, 또 그만큼 많이 코스가 개발되었다. 이 때문에 아마추어이긴 하나 국내에서도 나름 전문적으로 운영되는 지역 산악회나 대학 산악회에서 자주 등정하고 또 심심치 않게 성공한다. 하지만 K2 등정은 엄홍길 대장이나 박영석 대장과 같은 세계 등반역사에 이름을 남긴 정상급 프로 산악인들도 일단 목숨을 내걸고 시도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에 도전할 만한 사람들 중 30% 가량이 산행 도중에 영원한 삶을 얻어서 산에 남는다. 그만큼 굉장히 난해하고 어려운 루트가 즐비하며, 전문 산악인들 조차 등정하기 매우 어려운 산이라고 평가받는다. 안나푸르나보다 사망률이 많이 낮아보이지만, 이쪽은 겨울 등반을 하지 않으며 실질적으로 정상(북벽)에 오른 산악인은 단 1명도 없다는 걸 고려할 때 그 두 가지 경우의 수까지 합치면 사망률은 이쪽이 압도적으로 올라간다.
K2가 에베레스트보다 사실은 더 높다는 떡밥은 유명하지만,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일단 이 떡밥의 시초는 1986년에 나온 발표로 오류 때문에 곧바로 정정되었지만 기레기들한테는 그런 거 없다. 기존에 측정된 값이 잘못된 지오이드[26]를 썼기 때문에 틀렸다느니 하는 루머도 있는데, 지오이드 측정을 아무리 잘못 했어도 전 세계를 통틀어 지오이드가 찌그러진 정도는 200미터를 못 넘는다. 일단 이 루머가 사실이라면 GPS 기기를 들고 등정하는 수많은 산악인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구글 어스로 확인해 볼 수도 있다.) 지오이드 보정된 GPS 측정에서는 K2와 에베레스트의 높이 모두 알려진 높이에서 10미터 안팎을 오르내리는데 이는 GPS 자체의 오차에 가까운 수준이다.

4. 미디어에서 등장


K2를 등정하면서 생기는 일을 그려낸 내용의 영화가 두 편 있다. 하나는 1991년작 K2, 다른 하나는 2000년작 버티칼 리미트이다. 그리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는 폭풍우 봉우리에 K3로 패러디되어 나왔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K(케이)' 또한 일본에 돌아가지 못하고 파키스탄에 남아있는 일본인 산악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번째로 높은 산에 본좌급 난이도라는 네임드(?)이기 때문인지, 힐클라임을 주제로 한 소설/만화인 고고한 사람의 최종보스(?)로 나오기도 했다. 사실 알파인 스타일로 K2 벽 루트를 등정한 사람은 역사상 쿠쿠츠카가 유일하기 때문에 이 정도 대접이 이상하지 않다.
전희절창 심포기어 GX에서는 1화 초반에 주인공들이 인명구조를 위해 불가피하게 중간 30m 가량을 날려버렸고, 이 때문에 높이가 세계 3위로 강등.

NHK 다큐멘터리 지구대기행 5편 '거대산맥의 탄생'에서 등장한다. 판구조론 설명이 주된 내용이다. 높이로는 콩라인이라 중간부터 등장하지만 타이틀곡은 자기 명의로 되었다. 곡명도 심플하게 'K2'. 작곡가로 유명한 요시카와 요이치로가 만든, 산의 웅장함을 잘 표현한 명곡이다. 지구대기행은 학습만화 버전으로도 발간된적이 있는데, 여기서도 에베레스트보다 K2가 더 높을지 모른다 라며 상단에 언급된 루머를 잠깐 언급되기도 하였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외전 코믹스 Mobile Suit Gundam: MS Generation에 자쿠 II를 이용하여 K2봉을 등정하는 산악인 이야기가 있다.#[27] 우주이민을 앞두고 친구와 함께 K2봉을 오르다가 친구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주인공은, 이후 지온공국군의 모빌슈트 조종사가 되었으나, 부대를 탈주한 뒤 자쿠 II를 이용하여 K2봉을 등정한다, 하지만 정상을 눈앞에 두고 눈사태를 만나 자쿠 II는 파손당하고, 주인공은 조난당한 그 자리에서 옛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는 친구의 시신과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한편 히말라야 산맥을 정찰하던 지구연방군정찰기 승무원들과 사진을 촬영하던 종군기자는 그 사실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그들의 마지막 대화를 스쳐 지나가는 환청으로 듣지만 끝내 진실을 알지 못한 채 돌아간다.


[1] 흔히 로체 남벽, 안나푸르나 남벽, 낭가파르바트 루팔벽을 공략하기 어려운 3대 절벽이라고 하는데 K2의 북벽은 이들보다 한 수위의 난이도여서 등산의 최종보스로 여겨진다.[2] 에베레스트는 지형학적으로 붙어있는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통합 최고봉이기 때문에 그 대륙에 위치한 모든 산의 모체 봉우리로 정의된다. 현실적으로는 수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두 봉우리가 주종관계라고 보기는 어렵고, K2는 대신 카라코람 산맥 및 우르두 지역에 위치한 모든 봉우리의 모체로 간주된다.[3] 1위는 의외로 안나푸르나다![4] 장비가 좋아지고 코스가 개발되었는데도 오히려 순위가 올라갔다. 상대적으로 등정간에 개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는 의미.[5] 재미있는 점은 K2 정상을 기준으로 동서방향으로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이 지나가기 때문에 K2의 아래쪽 반만 파키스탄의 영토라는 점이다. 거기에 중국과 인도, 파키스탄과 인도는 카슈미르에서 서로 영토 분쟁 중이기 때문에 K2가 어느 나라에 속해 있는지 애매하다. [6] 에베레스트의 사례가 너무 유명해서 영국인들이 온동네 산에 죄다 자기들 방식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에베레스트가 특수한 사례이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현지 명칭대로 불렀다. 당시에도 영국 정부가 공식적인 정책으로 '토착 지명의 보존'을 우선시했기 때문.[7] K2는 마셔브룸이나 가셔브룸 산군과 달리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육안으로 관측되지 않으며, 발토르 빙하 때문에 걸어서 접근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영국 측량사들이 오기 전까지는 현지에서도 그 존재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산의 현지 명칭으로 알려진 '초고리'는 발티어로 그냥 '큰 산'이라는 뜻의 일반적인 단어로, '''태산 같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실제로 에베레스트는 현지인들에게는 여전히 원래 명칭인 사가르마타/초모랑마 라고 불리지만, K2는 현지인들에게도 K2를 음차한 Ketu라는 명칭으로 불린다.[8] 여기는 다른 데보다 순전히 바람 때문에 눈사태가 너무 자주 일어나서 오르는 족족 죽어난다고 악명이 높다. 그래서 K2 바로 옆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등 도전이 K2보다 50년쯤 늦어 1954년에 되었다. K2 초등 도전은 1902년. 대신 브로드피크의 최초 등정 성공은 3년만인 1957년이다.[9] 우리로 치면 중국의 산 이름이 아니라 '높고 거대한 산'을 일컫는 대명사로 쓰이는 경우의 태산을 생각하면 대충 비슷하다.[10] 에베레스트만 해도 남쪽으로 로체, 북쪽으로 눕체 등 위성봉이 바람막이를 형성한다.[11] K2 초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12] 다른 8000m급 고봉들과 비교해도 K2는 압도적으로 날씨가 변화무쌍한데다 60~70km/h의 강풍과 영하 30~40도의 혹한도 다른 산에 비해 극악스럽기로 유명하다. 등정 중 날씨가 좋다고 해도 하산 중에 날씨가 나빠지면 피할 방법이 없다.[13] 1983년생 네팔의 산악인으로서 구르카로 복무했었다. 2017년 구르카의 영국 복무 200주년 기념으로 13명의 구르카와 함께 에베레스트에 등반하여 2018년 그는 대영제국 훈장 5등급(MBE)을 수여받았다. 2019년 4월부터 6개월(!!!) 동안 히말라야 8000m 14좌를 완등함으로써 전후무후한 대기록을 만들어낸다. 2019년 4월 23일부터 5월 24일까지 한 달 동안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칸첸중가,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를 등정했으며 이들중 다울라기리에서 마칼루까지 5개의 봉우리를 등정하는데 걸린 시간은 12일이었다(....) 게다가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를 2일 30분(=48시간)만에 모두 등정해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그 후에 2019년 7월 6일 낭가파르바트, 7월 15일 가셔브룸I, 7월 18일 가셔브룸II, 7월 24일 K2, 7월 26일 브로드피크에 등정했다. 마지막으로 9월 23일 초오유, 9월 27일 마나슬루에 등정했으며 중국측의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약간 지연되어 10월 18일 시샤팡마에 등정함으로써 6개월만에 14좌를 완등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시는 깨지기 힘든 숱한 세계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2021년 1월 16일 다른 네팔인 셰르파들과 함께 최초의 K2 동계 등정에 성공한다.[14] 이들의 성공이 놀라운 것은 개별적인 팀으로 출발한 각 등반대가 모두 모일때까지 정상 10m 아래에서 네팔 국가를 부르면서 기다렸다는 점이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마지막 10명이 다 채워지자 그들은 동시에 정상에 올랐다. # [15] 그래도 여기서부터는 체력이 고갈되고 고산병 때문에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구간이다.[16] 야마노이 야스시는 단독등반 전문가로 1994년 초오유 남서벽 신루트를 47시간만에 단독으로 등정한 바 있다.[17] 2000년에는 순서대로 영호남 합동 원정대, 한국산악회 대구지부팀, 한국합동대의 3개 팀 14명이 등정하여 K2 등반사상 1개국 한 시즌 최다 등정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영호남 K2 원정대의 박정헌·한왕용 대원이 한국 최초로 K2 무산소 등정 기록을 세웠다. 특히 영호남 K2 원정대의 윤치원과 강연룡 대원은 1999년 가셔브룸 IV의 북서마루를 등반한 이후 바로 다음해에 이 루트로 등정에 성공했다. [18] 폴란드 국적 산악인으로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히말라야 14좌를 두 번째로 완등하였으며, '''8000미터급 봉우리에 루트 8개와 동계 초등정 4번이라는 위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래서 산악인들은 메스너보다도 쿠쿠츠카를 더 높이 평가한다. 1989년 로체 남벽에서 자일이 끊어져 추락사했다. 향년 41세.[19]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북벽 루트에서는 아무리 많은 셰르파들을 데리고 가봐야 캠프를 만들 곳이 없다. 단독등반을 하더라도 낭가파르바트처럼 절벽에 붙어서 자야 한다.....# [20] 유키히로 야나기사와는 K2 등정 후 하산 중에 사망한 최초의 인물이다.[21] K2와 동등 또는 그 이상의 등반난이도로 평가받는 가셔브룸IV의 북서마루(NorthWest Ridge) 루트를 최초로 개척한 사람이다.[22] K2의 동벽은 등정 자체의 난이도는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루트 중간부터 정상까지 눈덩어리가 뭉쳐 있어서 수시로 눈사태가 일어나기 때문에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다만 이러한 눈덩어리 때문에 여름보다 겨울에 눈사태 위험이 없어져서 등반하기 더 쉽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여름이건 겨울이건 동벽 등정에 성공한 사람은 없다.[23] K2 뿐만 아니라 여러 고산들의 북벽은 전통적으로 등반이 어렵기로 유명하다. 아예 고유명사화한 아이거 북벽이라든지... 등산 브랜드 노스페이스도 말 그대로 산의 북벽을 가리킨다. 이건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의 하프돔 북벽에서 따온 것.[24] 사실 서구 산악인들과 동구권 산악인들이 앙숙이라 그런 것도 있다.[25] 당시 K2에는 9개국에서 온 12개의 원정대가 몰려 있었고, 등정 후 하산길에 악천후를 만나면서 7개국 원정대 대원과 셰르파 등 총 18명이 목숨을 잃었다. (1986 K2 disaster)[26] geoid, 해발 0미터의 기준이 되는 타원체에 가까운 삼차원 도형[27] 우리나라에서는 정식 발매는 되지 않았고, 1995년 경에 해적판으로 발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