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스투아르다

 

Maria stuar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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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가에타노 도니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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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롤 메리 스튜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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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에선 메리 스튜어트의 라이벌로 그려진 엘리자베스 1세. '''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3막 오페라.....
안나 볼레나, 로베르토 데브뢰[1]와 더불어 '여왕 3부작' 중 두 번째 시리즈 이다. 1834년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에서 초연되었다가 실패를 거둔 후 도니제티가 몇 부분 고쳐서 1835년 12월 30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 재공연 했을때는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사랑의 묘약, 안나 볼레나, 돈 파스콸레에 비하면 여전히 인지도는 덜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공연을 가지지 않은 도니제티의 오페라 중 하나이다.[2]아마도, 엘리자베스 1세역을 잘 부를 수 있는 메조 소프라노와 메리 스튜어트를 소화할 수 있는 소프라노가 아직은 없어서 공연을 못한다는 얘기가 상당수. 거기다, 무대 세트를 바꿔야하는 제작비 문제도 포함된다고 한다. 참말로 아쉬운 부분이나 2015년 11월에 안나 볼레나 한국초연을 계기로 여왕3부작이 한국에 공연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2019년 11월 22일~24일 드디어 한국의 예술의 전당에서 국내 성악가와 연주자들에 의해 초연되었다. 참고기사
1. 초연의 흥행실패
2. 벨 칸토의 부활
3. 유명한 음악
4. 등장인물
5. 줄거리
5.1. 서곡
6. "마리아 스투아르다" 명반과 DVD


1. 초연의 흥행실패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중에서 초연부터 처참한 실패를 맛본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선, 전작 안나 볼레나사랑의 묘약의 흥행성공으로 도니제티는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을 위한 작품을 무엇으로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돈 카를로스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실러의 운문 사극 "마리아 슈투아르트(Maria Stuart)"를 보게되었다. 이 사극을 본 도니제티는 감명을 받았고 곧바로 작곡에 착수했지만, 악보 집필 당시 도니제티가 우울증 초기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시점 이었어서 성공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느꼈다고 전해진다.
다행히도 실러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든 도니제티의 오페라는 마리아 스투아르다라는 제목으로 완성 되었는데....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 이었다.
도니제티가 1834년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에서 오페라를 초연하려 그랬을 때, 내용이 검열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당시 나폴리의 왕비가 스튜어트 왕조 혈통이었는데, 오페라의 내용이 당시 나폴리 왕비의 조상 중에 한명인 메리 스튜어트의 이야기 였고, 오페라에서 표현되는 언행이 걸림돌이 였던 것이다. 하지만, 도니제티는 이미 오페라를 완성했고, 오케스트라와 의상 모두 준비한 상태라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검열당국은 도니제티가 곧 무대에 올릴 작품에 계속 딴지를 걸었고, 결국 도니제티는 그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오페라의 배경은 스코틀랜드에서 실제 역사와 상관없는 13세기 피렌체로 바뀌고, 제목도 '마리아 스투아르다'가 아닌 '보온텔몬테'로 바꾸어야 했다. 대본 역시 급하게 수정 해야했다.
오페라를 수정하고 있던 당시 도니제티는 초조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 작품을 이렇게 수정하다간 반드시 그 결과가 실패가 될 것이라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1834년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에서 올려진 '보온텔몬테'는 참담한 실패를 맛봐야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튼, '마리아 스투아르다'의 초연은 이렇게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보러온 관객들은 완전 똥씹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결국, 도니제티는 한 동안 이 오페라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작곡하는 것에만 신경쓰게 된다. 다행히도 1835년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에 올려진 루치아 초연은 완전 대박을 거두게되고, 도니제티는 마리아 스투아르다 초연에서 맛보았던 실패를 완전히 잊고, 의욕도 되찾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도니제티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다시 올릴 기회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에 도니제티는 "앗싸, 조쿠나!!"라고 외치면서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재작업하게 된다. 나폴리 왕국 검열에 들어갔던 부분을 자신의 처음 의도대로 모두 고쳐나갔다. 검열 들어가기 전에 사용했던 주세페 바르다니의 대본도 되찾아 '보온텔몬테'에서 다시 '마리아 스투아르다'라는 제목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배경도 가상의 피렌체가 아닌 실제 영국 역사로 바꿀 수 있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도니제티가 처음부터 의도했던대로 작업이 이뤄진 것이다. 도니제티가 마리아 스투아르다 재작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밀라노는 나폴리 왕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1835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열린 제대로된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1년 전의 실패를 성공으로 뒤바꿔 놓았다. 도니제티도 이에 기뻐했다. 하지만, 성공과는 반대로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사랑의 묘약이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만큼 지속적인 인기를 끌지 못하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관객들의 기억속에 점차 사라져 갔으며, 19세기에 들어가서는 베리즈모 오페라 열풍으로 인해 다른 벨 칸토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공기취급 받게 되었다.

2. 벨 칸토의 부활


"화려한 기교만을 중시", "대본이 취약한 음악극", "멜리즈마만 조낸 많이 흐르는 기름진 음악"....이것은 베리즈모 오페라를 선호했던 19세기 사람들이 생각하는 벨 칸토 오페라의 이미지 였다. 안나 볼레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청교도, 노르마가 대표적으로 이런 질타를 많이 받았다. 물론,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언급 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관객들의 인식과 편견을 완전히 불식시킨 소프라노가 있었으니 바로 마리아 칼라스 였다. 마리아 칼라스는 루치아, 노르마, 안나 볼레나 같은 캐릭터를 단순히 기교빨로 내세운 것이 아니라 극의 표현까지 불어넣었던 것이다. 특히, 1957년 4월 14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열린 안나 볼레나 공연은 이 오페라를 다시 부활하게 만든 역사적인 공연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마리아 칼라스 조차 관심을 주지 않은 벨 칸토가 있었으니 마리아 스투아르다, 로베르토 데브뢰가 바로 그러했다. 이 두 오페라는 칼라스가 전혀 시도하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렇게 아오안으로 남겨질 두 작품이었지만, 다행히도 또 다른 소프라노에 의해 극장에 부활할 수 있게 되었다. 마리아 스투아르다로베르토 데브뢰 부활에 공헌한 사람은 터키 출신의 소프라노이자 마리아 칼라스와 같이 엘비라 히달고에게 동문수학한 레일라 젠체르[3]. 젠체르는 마리아 칼라스 조차 손대지 않은 영역을 많이 맡았지만, 그 중 마리아 스투아르다의 경우 젠체르의 명성을 전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만들어준 각별한 배역이 되었다. 때는 1967년 5월 2일 피렌체 5월 음악제 공연...젠체르가 처음으로 메리 스튜어트역을 맡았을 때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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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라 젠체르 (Leyla Gencer, 1924년 10월 10일~2008년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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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체르가 메리 스튜어트로 분장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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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로 분한 셜리 버렛과 메리 스튜어트로 분한 레일라 젠체르 (1967년 5월 2일 피렌체 5월 음악제 공연)'''
미국 흑인 메조 소프라노 셜리 버렛이 엘리자베스 1세, 레일라 젠체르가 타이틀롤을 맡고, 프랑코 탈리아비니가 로버트 레스터 백작, 아고스티노 페린이 조지 탈보트, 줄리오 피오라반티가 윌리엄 세실을 맡았던 당시 공연은 레일라 젠체르의 명성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해준 것도 있지만,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부활시킨 역사적인 공연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역사적인 실황은 Living Stage에서 음반으로 출시되었다.
레일라 젠체르가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부활시켰다면, 그것을 더욱 부각시킨 소프라노도 있었다. 바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소프라노 조운 서덜랜드.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서덜랜드가 1970년대 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많이 맡은 배역이었다. 특히, 197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마리아 스투아르다 공연은 젠체르의 실황과 더불어 명연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다.[4] 이 날의 공연 역시 실황녹음으로 남겨져 있으며 Gala에서 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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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스튜어트로 분한 조운 서덜랜드'''
베벌리 실즈몽셰라 카바예 역시 서덜랜드와 마찬가지로 1970년대에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관객들에게 더욱 부각시키는데 큰 공헌을 세웠으며, 영국권 한정이지만 메조 소프라노 자넷 베이커 역시 소프라노 배역인 메리 스튜이트 역을 많이 맡아 영국 관객들에게도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널리 알리게 하였다.[5] 현역으로 활동하는 소프라노 중에선 에디타 그루베로바마리엘라 데비아가 메리 스튜어트역을 자주 맡고 있는 중이다. 에디타 그루베로바는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두 번이나 녹음했으며, 마리엘라 데비아는 안나 카테리나 안토나치와 함께 출연한 2008년 라 스칼라 실황이 DVD로 발매되어있다.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안나 볼레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사랑의 묘약처럼 자주 올라오는 레퍼토리는 아니지만, 1970년대에 자주 공연된 이후로 지금까지도 오페라 애호가들...특히, 벨 칸토 오페라를 좋아하는 이들이 꽤 많이 찾는 작품이 되었고, 위에서 언급한 젠체르, 서덜런드, 카바예, 실즈, 데비아, 그루베로바 같은 소프라노들의 활약이 없었으면 이 오페라는 지금까지도 관객들에게 찬밥이나 아오안 취급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 진가는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와 마찬가지로 너무 늦게 알려졌지만, 그래도 공기화를 면하게 된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3. 유명한 음악


마리아 스투아르다노르마의 "정결한 여신", 안나 볼레나의 실성 장면,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광란 장면, 사랑의 묘약의 "남몰래 흘리는 눈물", 세빌리아의 이발사 서곡처럼 처음부터 귀에 확 들어오는 음악은 아니다. 여러번 들어봐야지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그래도 가장 유명한 곡이라면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스튜어트가 신경전을 벌이는 이중창을 들 수 있다. 곡 제목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왕좌에서 쫓겨난 여인(Morta al mondo)". 가사 내용은 밑에서 자세하게 서술하겠지만,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한 여인의 모욕으로 시작해서 또 다른 여인의 모욕으로 끝난다...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장면은 프리드리히 실러의 가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실제 역사에선 엘리자베스 1세가 메리 스튜어트를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 그런데, 도니제티가 이 장면을 생략하지 않고 긴장감 팽팽한 분위기를 더해서 두 여왕의 이중창을 작곡했는데, 그게 오히려 출연진들과 관객들에게 리얼리티를 선사했고, 플러스 효과까지 보게된 것.
실제로 초연 당시 마리아 스투아르다를 맡은 주세피나 론체 데 베니스는 리허셜을 할 때부터 겁에 질렸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당시 엘리자베타 여왕역을 맡은 안나 델 세레가 무대위에서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초연이 이뤄진 날. 아무런 일 없이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중간에 그만 사고가 터진 것이다. 바로, 2막에 나오는 두 여왕이 대면하는 장면에서 였다. 사고의 내용은 안나 델 세레가 엘리자베타 역의 너무 몰두한 나머지 주세피나 론체 데 베니스의 머리를 휘어잡고, 마구 구타를 하더니만, 이에 데 베니스가 무대위에서 거품 물고 그대로 쓰러졌다는 것. 그 만큼 두 여왕의 신경전 이중창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부분인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1989년 실황. 메리 스튜어트 역에 젊은 시절의 에디타 그루베로바와 엘리자베스 1세 역에 그리스의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
두 여왕의 신경전 이중창도 좋지만, 메리 스튜어트가 부르는 최후의 아리아 "아, 만약 당신의 말이 저를 놓는다면(Ah! se un giorno da queste)"도 비장미가 넘친다. 찰스 오스번은 이 아리아를 두고 '단순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지고, 매우 깊은 인상을 주는 노래'라고 평하기도 했다.

4. 등장인물


  • 엘리자베타 여왕(엘리자베스 1세) : 잉글랜드 튜더 왕조의 마지막 여왕 (소프라노 또는 메조 소프라노[6])
  • 마리아 스투아르다(메리 스튜어트) : 스코틀랜드의 폐위여왕[7] (소프라노)
  • 로베르토 레이체스터(로버트 더들리 레스터 백작) : 여왕의 애인이지만 메리를 짝사랑[8]함 (테너)
  • 조르지오 탈보트(조지 탈보트) : 옥에 갇혀있는 메리를 돕고 싶어하는 인물[9] (베이스)
  • 굴리엘모 체칠 (윌리엄 세실) : 엘리자베스 여왕의 충신 (바리톤)
  • 안나 케네디(앤 케네디) : 메리의 유모 (메조 소프라노 또는 콘트랄토)

5. 줄거리



5.1. 서곡


서곡의 길이는 총 6분 50초에서 7분 정도의 길이를 가지고 있다.[10] 이 서곡은 스토리 진행상 약간 불필요하다고 느껴졌는지 예전에는 공연에서 자주 생략되는 경향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다시 연주되고 있는 추세이다.
2008년 1월 15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마리아 스투아르다의 서곡을 연주하는 지휘자 안토니오 폴리아니와 라 스칼라 관현악단

6. "마리아 스투아르다" 명반과 DVD


[1] 엘리자베스 1세의 내연남 로버트 에식스 백작이 처형되기까지의 내용을 그리고 있는 오페라이며 여왕 3부작 중에 마지막 시리즈 이다. 근데,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거리가 먼 멜로물...[2] 뿐만 아니라 로베르토 데브뢰는 물론, 폴리우토, 라 파보리타, 루크레치아 보르지아를 포함한 도니제티 오페라는 아직은 국내에서 공연하지 않은 상태이다. 돈 파스콸레,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가끔 올려지는 편이고, 가장 많이 올려지는 것이 사랑의 묘약. 다행히 안나 볼레나는 2015년 11월 27일 예술의 전당에서 국내초연을 가지게 되었다.[3] '레일라 겐서(Leyla Gencer)라고도 부른다. 겐서는 영어식 발음이고, 젠체르는 이탈리아식으로 발음한 것인데, 국내에서는 '겐서'랑 '젠체르' 둘 다 표기하지만, 대체적으로 '젠체르'라고 많이 읽는다.[4] 덧붙이자면, 1971년 샌프란시스코 공연에서 엘리자베스 1세를 맡은 사람은 메조 소프라노 위게트 투랑고, 지휘는 서덜랜드의 남편 리처드 보닝이 맡았다.[5] 쟈넷 베이커 오페라 무대 은퇴 기념 공연 역시 마리아 스투아르다 였다. 이탈리아어 원어가 아닌 영어 번역에 의한 공연이었지만...[6] 원래는 소프라노 음역이지만, 소프라노든 메조 소프라노든 엘리자베스의 목소리는 굵직한 음색의 성악가가 맡아야 효과적이다. 메리의 경우 이와 대조로 청순함과 드라마틱함이 복합적으로 이뤄진 성악가가 많이 기용되는 편...[7] 역사의 기록에선 그냥 스코틀랜드의 여왕이라 나와있지만, 실제론 폐위여왕이라고 봐야하는 것이 옳다. 이 오페라에서 메리 스튜어트는 이미 스코틀랜드에서 쫓겨나고, 잉글랜드에 망명하고 조용히 살다가, 여왕의 측근들에게 음모가 발각되어 감금당하고 있는 상태이므로...[8] 실제 역사에선 로버트 레스터 경과 메리는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남남 이었다. 이는 두 여왕이 대면하는 장면과 마찬가지로 실러의 가상에 의해서 만들어진것. 허나, 레스터와 엘리자베스 1세가 애인관계 였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덧붙이자면, 로버트 레스터는 후에 여왕의 내연남이 될 에식스 백작의 양아버지 이기도 하다. [9] 역사적 사실로 보자면, 조지 탈보트는 엘리자베스 1세에게 메리 스튜어트를 감시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인물이다.[10] 리처드 보닝이 지휘한 1971년 샌프란시스코 실황에서는 템포를 약간 빠르게 처리해서 6분 44초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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