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오 피치올로
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1947년부터 1949년까지 델피노 페스카라 1936 감독을 맡았다.
2. 생애[4]
2.1. 클럽
유스 생활은 리보르노와 테르나타에서 보냈고, 피스토이에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다 1929년에 피오렌티나로 이적하였고, 1936년까지 7시즌 동안 197경기를 소화했다. 출전 횟수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고는 해도 각종 잔부상에 시달렸고, 26살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택하고 말았다. 1937년, 고향에서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2.2. 국가대표팀
원래 주전 라이트 하프백으로 비토리오 포초 감독에게 낙점을 받았던 피치올로. 1933년 1월 1일 독일을 상대로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이후 피치올로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이탈리아의 라인업에서 빠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무릎 인대 파열로 쓰러졌다. 결국 피치올로의 빈자리는 아틸리오 페라리스가 메웠고 벤치에서 월드컵 우승을 지켜보았다.
2.3. 은퇴 이후
1940-41시즌에 세리에 C에서 페스카라를 우승시켰고, 처음으로 세리에 B 무대를 밟게 했다.
피치올로의 생애 마지막 이벤트는 월드컵 우승 메달이었다. 월드컵 우승 당시 국가 파시스트당에서는 월드컵 결승전 당시 뛰었던 11명에게만 메달을 주었기 때문에 피치올로는 우승 메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포초와 팀 동료들의 탄원과 항의도 소용없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피치올로의 우승 메달은 54년이 지난 1988년에야 안젤로 스키아비오, 펠리체 보렐의 축하와 함께 받을 수 있었다.
피치올로는 가난과 병에 시달리면서도 조국에서 열리는 두 번째 월드컵을 보고 싶어 했지만 한 달여를 남겨놓고 숨을 거두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대인 방어에 능하고 패스와 기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하프백이었다고 전해진다.출처
4. 수상
4.1. 클럽
4.2. 국가대표
- 월드컵 우승 1회: 1934
- 중유럽 인터내셔날 컵 우승 1회: 1933-35
4.3. 감독
- 세리에 C 우승 1회: 1940-41(페스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