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나오야
1. 개요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 치바 롯데 마린즈의 필승조로 활약하고 있는 투수이다.
2. 선수 경력
2.1. 프로 이전
원래는 축구를 좋아하던 소년이었지만 친구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하였다. 고교시절엔 고시엔 경험도 없고 주로 백업 유격수를 보는 무명선수였지만 간사이국제대학 진학 후 투수로 전향해 대학리그에서 손꼽히는 중간계투로 환골탈태했다.
대학시절의 활약을 바탕으로 4라운드라는 낮은 순번으로나마 프로 입성에 성공했다. 기량 면에선 문제가 없지만 177이라는 투수 기준으로 크다고는 보기 힘든 키와 비교적 미미했던 아마시절 인지도 때문에 순번이 밀린 듯하다.[1][2]
2.2.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2012년, 시범경기에서 7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정규시즌엔 72경기에 등판해서 1점대 평균자책점과 41홀드를 기록했고 올스타전 출장, 신인왕 수상[3] , 신인 투수 최다 등판[4] 및 최다 홀드를 달성하는 등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보냈다.
2013년에는 시즌 직전에 기흉이 발견되어 고생하는듯 했지만, 막상 시즌 돌입 이후엔 2년차 징크스 따윈 없이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면서 33세이브를 기록했고 퍼시픽 리그 세이브왕에 올랐다. 시즌 후에는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2013 대만vs일본 베이스볼 챌린지에 참가했다.
2014~2015년에는 신인시절 포스에는 못 미쳤지만 준수한 중간계투로 활약했고, 2016년에는 필승조와 마무리를 오가며 4년만에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2017년에는 세이브왕 재도전을 목표로 시즌을 준비했지만 5월 이후로 기복있는 모습을 보이더니 기어코 마무리 자리에서 밀려버렸고, 8월 중순부터는 아예 1군에서 말소되어버렸다. 평균자책점도 5.09를 기록하면서 본인의 커리어 로우는 물론, 롯데 최하위의 1등공신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2018년에는 평균자책점 3.08에 17홀드를 기록하며 어느정도 제 모습을 되찾았다.
2.2.1. 2019년
우치 타츠야가 부상을 당하면서 마무리 투수로 복귀했다.
5월 15일까지의 경기 기준 18경기 2승 1패 10세이브 2홀드 ERA 1.00으로 아직 시즌이 1/3도 안 지났으나 재기에 성공했다.
5월 22일 볼질과 안타를 반복하다 2점차 리드에서 블론세이브했다. 이날 유인구는 대만프로야구 수준도 안 될 정도로 타자들이 전혀 안 속았으며 스트존 안에 들어가는 공의 구위는 배팅볼 투수 수준이었다. 원래 이런 선수가 아녔는데 전날 4점차에서 워밍업한게 아까웠는지 감독이 1이닝 투구시키고 연투시켜서 체력이 떨어진 듯.(거기다가 볼질을 반복하는 바람에 이날 '''45구'''나 던져서 마지막에는 더 체력저하가 심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마츠나가 타카히로를 꼴랑 원포인트로 쓰는 등의 이닝쪼개기를 해서 필승조를 다 쓰는 바람에 쓸 투수가 없어서 교체 시도도 못 해보고 졌다.[5][6]
5월 24일 이틀 전에 45구나 던지고도 하루만 쉬고 올라오는 바람에 2루타-홈런-홈런을 맞고 0이닝 3실점으로 장렬하게 전사했다. 당연히 패전투수행.
6월 1일 무려 7일을 쉬고 등판했다. 이날 다시 구속과 구위가 살아나면서 무실점으로 1홀드를 기록했다.
6월 6일 꼴랑 2연투째인데도 연속 3안타를 처맞으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밑천 다 드러냈는데 결승점을 내 줄 때까지 죽어라 박고쓰는 감독과 투코의 멍청한 운영이 더 문제지만.
6월 28일 라쿠텐전에서 1점차인 상황에 올라와 세이브를 거두었다.
7월 5일 세이부전에서 1이닝을 퍼펙트로 막고 세이브를 추가.
전반기 성적은 34경기 32.2이닝 2승 4패 16세이브 5홀드 ERA 3.03.
시즌 내내 마무리로 나오면서 2점대 ERA를 기록하며 부활했다. 시즌 후 FA가 되었는데 기사에 의하면 잔류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결국 잔류로 결정. 입단 동기 스즈키가 이적을 선택하면서 팀내 최후의 11년도 픽이 되었다.
2.2.2. 2020년
올해 연습경기에서는 좋지 않았지만 2년 연속 마무리로 낙점되었다.
개막전에서는 홀드를, 6월 20일 경기에서는 세이브를 기록했다. 두 경기 다 1이닝 무실점으로 무난하게 던졌다.
7월 10일 동점 상황에 올라와서 밀어내기로 1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7월 11일 2점차로 이기는 9회초에 올라와서 1이닝 퍼펙트로 시즌 5개째 세이브 기록.
7월 22일 1점차로 이기는 9회초에 올라와 세이브를 추가. 시즌 9세이브째다.
8월 9일 기준 시즌 12세이브로 세이브 1위를 기록중이다.
8월 11일 세이브를 추가하며 13세이브로 세이브 1위가 됐다.
9월 25일 시즌 24세이브째를 거두며 세이브 1위를 고수했다. 현재 세이브 2위인 모리 유이토의 소속팀 소프트뱅크를 상대로 거둔 세이브라 2세이브차로 벌리게 되었다.
후반에 롯데가 DTD를 하면서 2위도 간신히 지키게 되는 바람에 결국 31세이브(3위)로 시즌을 마무리했지만 2년 연속 마무리로 완주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즌이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투수치고 크지 않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최고구속 154km/h, 평균구속 146km/h의 빠른 투심으로 승부를 보는 스리쿼터형 투수. 투심 외에도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줄 안다.
4. 연도별 성적
5. 기타
- 원래 왼손잡이이지만 강제로 교정당해 우완투수가 되었다.
- 편모 가정에서 자랐으며, 홀로 자신을 어렵게 키워준 어머니에게 매우 감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는 한부모 가정 아이들을 위해 종종 후원 활동을 한다.
- 인터뷰에서 가장 자신없는 것을 물어보았을 때 축구라고 했다(...) 어렸을 때 축구를 좋아했는데 야구선수가 된 걸 보면 정말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 듯.
- 스즈키 다이치와 친하다. 인터뷰에서 롯데가 우승한다면 다이치와 둘이서 맥주샤워를 하겠다고 했을 정도.
[1] 이 해 롯데는 고작 4명의 선수만 뽑았기 때문에 사실상 마스다가 최하위픽이었다. 하지만 동기들 중 가장 대성한 선수도, 가장 늦게까지 롯데에 남은 선수도 마스다였다.[2] 입단 동기가 스즈키 다이치, 후지오카 타카히로, 나카우시로 유헤이인데 나카우시로는 1년이나마 계투로 쏠솔하게 활약했고, 후지오카도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그럭저럭 던졌으며, 마스다와 스즈키는 팀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덕분에 롯데의 2011 드래프트는 적게 뽑고도 크게 성공한 해가 되었다. [3] 센트럴리그 신인왕 노무라 유스케와 더불어 최초의 헤이세이 태생 신인왕.[4] 1년전 오하라 신지의 71경기 기록 갱신.[5] 카라카와 유키, 천관위, 타나카 야스히로 3명이 있었는데 셋 다 최근 나올 때마다 실점을 하는 등 부진했다. 거기다가 어지간히 투수가 없는 상황이 아니면 패전처리는 절대 홀드/세이브 요건 때 안 올리는 이구치인 만큼 카라카와를 제외하면 올릴 일도 없었다. 그런데 그 카라카와는 최근 2주간 블론세이브 두번에 패전 두번을 하는 등 최악이었으니...[6] 투수 아끼자고 2점차로 리드하는 상황에서 2사 3루 때 패전처리 전용 토죠 타이키를 올리기까지 했는데 그래놓고 이걸 잘 막은 토죠도 원포인트로 끝냈다. 최근 폼은 니시노, 타나카, 천관위, 카라카와보다 토죠가 더 좋았는데도.[7] 이 외에도 카쿠나카에게 자주 당하는 선수로는 스즈키 다이치, 키요타 이쿠히로, 지금은 구속 수감되어 흑역사가 된 오오미네 쇼타 등이 있다. 이 선수들은 정말 카쿠나카의 또라이짓 일화가 언급되면 거의 항상 나오는 피해자. 그 외에도 카토 쇼헤이, 타무라 타츠히로 등의 어린 후배들도 종종 당하지만 주 피해자들은 위에 언급한 동년배들(...)[8] 슬럼프에 빠진 투수한테 넌 경기에 나오기만 하면 안타를 맞으니까 나오지 말라고 한 거다. 상대방의 약점을 대놓고 후벼파는 카쿠나카의 똘끼를 알 수 있는 일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