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모토 다카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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現 일본프로야구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소속의 투수.
라쿠텐의 에이스 선발 투수이다. 2013년 대졸 신인으로[1] WBC에 출장한 다나카 마사히로를 대신하여 개막전 선발투수로 등판하였고, 15승 8패 170이닝 ERA 3.34 134K를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신인왕을 차지했다. 다나카가 떠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라쿠텐의 부동의 에이스로서 5년 연속으로 퍼시픽리그 탈삼진왕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 꾸준히 퍼시픽리그 최고의 선발 투수로서 활약하는 중이다.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었다. 그런데 2015년 시즌 내내 오직 선발 투수로만 등판한 노리모토를 감독 고쿠보 히로키는 불펜 투수로도 기용했다. 조별리그 한일전에서는 2이닝을 잘 막았지만 준결승에서 다시 열린 한일전에서는 도쿄 대첩(야구)의 주역(?)이 되어버렸다.
2015년 시즌 성적은 28경기(선발 28) 194.2이닝 10승 11패 215탈삼진(1위), 방어율 2.91(3위).
2016년 시즌 성적은 28경기(선발 28) 195이닝 11승 11패 216탈삼진 방어율 2.91을 기록했다.
2017년 시즌에는 4월 17일 세이부전을 시작으로 6월 8일 DeNA전까지 '''8경기 연속 두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하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팀도 노리모토의 호투에 힘입어 퍼시픽리그 1위를 달리는 중. 이후 16일 야쿠르트전에서 9경기 연속 두자릿수 탈삼진 기록에 도전했지만 7이닝동안 6실점을 했을 뿐더러 8회에도 마운드에 올라가기엔 투구수가 114개로 너무 많았다. 결국 패전과 함께 기록 갱신에 실패했다.
2017년 시즌 성적은 25경기(선발 25) 185.2이닝 15승 7패 222탈삼진 방어율 2.57을 기록했다. 탈삼진과 완투횟수는 리그 1위이며, 다승과 방어율, 이닝은 모두 기쿠치 유세이에 이어 2위로 마쳤다.
2018년 9월 6일 오릭스 원정 경기에서 본인 최다인 14탈삼진을 기록하며 통산 37번째 두자리수 탈삼진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뉴욕 양키스로 떠난 선배 다나카 마사히로와 타이기록이다. 팀 전체가 초반부터 6위에 고정되는 침체에 빠진 가운데 소년가장으로 분투했고 몇 번 크게 털린 경기도 있었지만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켰다. 2018년 시즌 성적은 27경기(선발 27) 180.1이닝 10승 11패 187탈삼진 방어율 3.69를 기록했다. 6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달성했고, 사상 3번째로 5년 연속 탈삼진 왕을 차지했다.
2019년에는 스프링캠프를 소화하던 도중 목 염좌로 인해 시범경기를 치루지 못했고, 이후 병원에서의 정밀검사에서 오른쪽 팔꿈치 관절에 이상이 발견되어 '클리닝 시술'을 받게 되어 전반기 출장이 불투명해졌다[2] .# 일단 많은 이들이 우려한 토미 존 수술은 아니기는 해도 이전 몇 년간의 워크로드 누적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년 오프시즌 포스팅 루머도 돌았던 만큼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았지만, 7월 3일 라쿠텐과 일본에서는 이례적인 '''7년 계약'''을 새로 체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라쿠텐의 프랜차이즈 스타 자리를 예약했다.
2019년 최종 성적은 12경기 68이닝 5승 5패 ERA 2.78 67K 10BB. 클라이막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 선발등판해 7이닝 3실점으로 본인 커리어 첫 CS 승리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팀은 이후 두 경기를 연달아 호크스에 내주며 가을야구에서 탈락했다.
178cm의 신장과 그리 길지않은 팔,다리[3] 등 신체조건은 좋다고 하기 어렵겠지만 부드러우면서도 폭발적인 리듬의 투구폼과 A급 투수중에서도 월등히 유연한 견갑골, 골반을 이용하여 신체적 단점을 커버한다. 평균 140km/h 후반, 최고 158km/h에 이르는 패스트볼과 변화구로 슬라이더, 포크볼을 주로 구사하는 정통파 강속구 투수. 커브와 체인지업도 던지지만 주력 구종은 아니다.
슬라이더를 더 많이 던지는 편이지만 오히려 포크볼의 위력이 리그 최고 수준으로[4] , 2014년~2018년까지 '''5년 연속 퍼시픽리그 탈삼진 1위'''에 오를 만큼 가공할 구위를 가지고 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연속 200K에 빛나는 현재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닥터 K. 2017시즌 8경기 연속 두자리수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삼진을 뽑아내는 능력은 일본 최고 수준이다. 데뷔시즌 이후 패스트볼의 스피드가 꾸준히 상승했으며, 평균 2500RPM의 회전을 기록하는 묵직한 패스트볼은 오타니 쇼헤이나 미국으로 건너간 팀 선배인 다나카 마사히로보다도 낫다는 평가도 있다. 2014년 미일 올스타전 당시 상대했던 저스틴 모노가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위력을 체감하고 잭 그레인키와 비교했을 정도.
데뷔시즌부터 정규시즌 170이닝(+가을야구)을 소화했고 이후 2019년 시즌 대부분을 날리기 전까지 매 시즌 180이닝 이하를 소화한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닝을 소화한 이닝 이터. 퍼시픽리그 최다 이닝을 소화한 것도 4번이나 되며(2014~2016, 2018) 투구수도 매 선발 등판마다 100구를 넘기는 적이 많았다. 이러한 워크로드와 작은 체구 탓에 내구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는데, 2019년 시즌 개막을 팔꿈치 문제로 날리게 되면서 어느 정도는 현실화된 우려.
1. 소개
現 일본프로야구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소속의 투수.
라쿠텐의 에이스 선발 투수이다. 2013년 대졸 신인으로[1] WBC에 출장한 다나카 마사히로를 대신하여 개막전 선발투수로 등판하였고, 15승 8패 170이닝 ERA 3.34 134K를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신인왕을 차지했다. 다나카가 떠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라쿠텐의 부동의 에이스로서 5년 연속으로 퍼시픽리그 탈삼진왕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 꾸준히 퍼시픽리그 최고의 선발 투수로서 활약하는 중이다.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선발되었다. 그런데 2015년 시즌 내내 오직 선발 투수로만 등판한 노리모토를 감독 고쿠보 히로키는 불펜 투수로도 기용했다. 조별리그 한일전에서는 2이닝을 잘 막았지만 준결승에서 다시 열린 한일전에서는 도쿄 대첩(야구)의 주역(?)이 되어버렸다.
2015년 시즌 성적은 28경기(선발 28) 194.2이닝 10승 11패 215탈삼진(1위), 방어율 2.91(3위).
2016년 시즌 성적은 28경기(선발 28) 195이닝 11승 11패 216탈삼진 방어율 2.91을 기록했다.
2017년 시즌에는 4월 17일 세이부전을 시작으로 6월 8일 DeNA전까지 '''8경기 연속 두자릿수 탈삼진'''을 기록하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팀도 노리모토의 호투에 힘입어 퍼시픽리그 1위를 달리는 중. 이후 16일 야쿠르트전에서 9경기 연속 두자릿수 탈삼진 기록에 도전했지만 7이닝동안 6실점을 했을 뿐더러 8회에도 마운드에 올라가기엔 투구수가 114개로 너무 많았다. 결국 패전과 함께 기록 갱신에 실패했다.
2017년 시즌 성적은 25경기(선발 25) 185.2이닝 15승 7패 222탈삼진 방어율 2.57을 기록했다. 탈삼진과 완투횟수는 리그 1위이며, 다승과 방어율, 이닝은 모두 기쿠치 유세이에 이어 2위로 마쳤다.
2018년 9월 6일 오릭스 원정 경기에서 본인 최다인 14탈삼진을 기록하며 통산 37번째 두자리수 탈삼진을 기록하였는데 이는 뉴욕 양키스로 떠난 선배 다나카 마사히로와 타이기록이다. 팀 전체가 초반부터 6위에 고정되는 침체에 빠진 가운데 소년가장으로 분투했고 몇 번 크게 털린 경기도 있었지만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켰다. 2018년 시즌 성적은 27경기(선발 27) 180.1이닝 10승 11패 187탈삼진 방어율 3.69를 기록했다. 6년 연속 두자릿수 승리를 달성했고, 사상 3번째로 5년 연속 탈삼진 왕을 차지했다.
2019년에는 스프링캠프를 소화하던 도중 목 염좌로 인해 시범경기를 치루지 못했고, 이후 병원에서의 정밀검사에서 오른쪽 팔꿈치 관절에 이상이 발견되어 '클리닝 시술'을 받게 되어 전반기 출장이 불투명해졌다[2] .# 일단 많은 이들이 우려한 토미 존 수술은 아니기는 해도 이전 몇 년간의 워크로드 누적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년 오프시즌 포스팅 루머도 돌았던 만큼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해 설왕설래가 많았지만, 7월 3일 라쿠텐과 일본에서는 이례적인 '''7년 계약'''을 새로 체결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라쿠텐의 프랜차이즈 스타 자리를 예약했다.
2019년 최종 성적은 12경기 68이닝 5승 5패 ERA 2.78 67K 10BB. 클라이막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 선발등판해 7이닝 3실점으로 본인 커리어 첫 CS 승리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팀은 이후 두 경기를 연달아 호크스에 내주며 가을야구에서 탈락했다.
2. 플레이 스타일
178cm의 신장과 그리 길지않은 팔,다리[3] 등 신체조건은 좋다고 하기 어렵겠지만 부드러우면서도 폭발적인 리듬의 투구폼과 A급 투수중에서도 월등히 유연한 견갑골, 골반을 이용하여 신체적 단점을 커버한다. 평균 140km/h 후반, 최고 158km/h에 이르는 패스트볼과 변화구로 슬라이더, 포크볼을 주로 구사하는 정통파 강속구 투수. 커브와 체인지업도 던지지만 주력 구종은 아니다.
슬라이더를 더 많이 던지는 편이지만 오히려 포크볼의 위력이 리그 최고 수준으로[4] , 2014년~2018년까지 '''5년 연속 퍼시픽리그 탈삼진 1위'''에 오를 만큼 가공할 구위를 가지고 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연속 200K에 빛나는 현재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닥터 K. 2017시즌 8경기 연속 두자리수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삼진을 뽑아내는 능력은 일본 최고 수준이다. 데뷔시즌 이후 패스트볼의 스피드가 꾸준히 상승했으며, 평균 2500RPM의 회전을 기록하는 묵직한 패스트볼은 오타니 쇼헤이나 미국으로 건너간 팀 선배인 다나카 마사히로보다도 낫다는 평가도 있다. 2014년 미일 올스타전 당시 상대했던 저스틴 모노가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위력을 체감하고 잭 그레인키와 비교했을 정도.
데뷔시즌부터 정규시즌 170이닝(+가을야구)을 소화했고 이후 2019년 시즌 대부분을 날리기 전까지 매 시즌 180이닝 이하를 소화한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닝을 소화한 이닝 이터. 퍼시픽리그 최다 이닝을 소화한 것도 4번이나 되며(2014~2016, 2018) 투구수도 매 선발 등판마다 100구를 넘기는 적이 많았다. 이러한 워크로드와 작은 체구 탓에 내구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하는데, 2019년 시즌 개막을 팔꿈치 문제로 날리게 되면서 어느 정도는 현실화된 우려.
3. 이모저모
- 명문이 아닌 고등학교, 노리모토세대를 마지막으로 폐교된 약체였던 대학, 가장 늦게 창단을 한 라쿠텐까지, 단 한번도 명문팀의 소속이 아니였으며 투수로서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일본 최고의 선발투수 반열에 오른 걸 보면 재능 하나만큼은 뛰어났던 모양이다.
- 2019년 그의 동생 노리모토 요시키도 형을 따라[6] 라쿠텐에 육성선수 드래프트 2라운드로 입단했다. 킨키대학 시절 부상으로 달랑 1이닝밖에 못 던진 케이스라 대학교 4학년 때는 프로에 갈 가능성이 전혀 없었고, 졸업 후 입단한 사회인야구 팀 야마기시 로지스타스는 기업팀이 아닌 클럽팀이었지만[7] 여기서 잘 던지면서 육성 2라운드라는 끝물로 간신히 프로에 입단했다. 여담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하타케 세이슈와 대학 시절 룸메이트였다고 한다.[8]
[1] 2013년을 마지막으로 폐교된 미에주쿄대 출신 폐교된 학교답게 F랭크중의 F랭크 대학이었고 소문에 의하면 학교 이름을 한자로 쓰기만 해도 붙여준다는 말이 있었다(...) 다만 야구부는 나름 강세였던지 마지막 기수에서 노리모토 포함 3명이나 프로에 지명을 받았다.(1명은 사회인야구를 거쳐서 2년 후에 지명) 다만 노리모토를 제외하면 모두 1군 기록 없이 2020년 현재는 은퇴. 7기수 위에서도 1명이 프로에 갔으나 이 사람도 1군 기록 없이 은퇴.[2] 노리모토의 이탈로 대신 개막전 선발을 맡은 키시 타카유키도 개막전에서부터 이상을 호소하며 나가리되었고 원투펀치를 시즌 시작과 동시에 잃은 라쿠텐 선발진엔 비상이 켜졌다. 어찌저찌 전반기는 선두로 마감했지만 여름에 빠르게 실속했으며, 후반기에 키시와 노리모토가 돌아오긴 했지만 세이부와 호크스의 질주를 막지는 못했다. 이 해 라쿠텐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투수는 미마 마나부가 유일했다.[3] 안그래도 작은키에 비율도 그다지 좋지 못하여 마운드에서 굉장히 짧아보인다..[4] 다만 이는 포크볼로 인한 신체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서 구사율을 조절한 것이라고 한다.[5] 애초에 선발투수로만 뛰어오던 선수를 마무리로 기용한 감독 책임이 크다.[6] 긴키대학-야마기시 로지스타스 출신.[7] 사회인야구 중 특정 회사의 팀이 기업팀인 경우도 있고 클럽팀인 경우도 있는데, 클럽팀의 경우 주 5일 오전 오후 근무를 모두 하고 남는 시간에만 연습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 클럽의 창단 멤버이자 최초의 프로야구 선수라고 한다.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던 것.[8] 당시 하타케는 킨키 대학의 에이스였고 4학년 때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2라운드 지명을 받고 프로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