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우라 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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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츠우라 아야(松浦亜弥(まつうらあや, Aya Matsuura)
생년월일
1986년 6월 25일(38세)
혈액형
B형
배우자
타치바나 케이타(w-inds.)
출신지
일본 [image] 효고현 [image] 히메지시 [image]
활동기간
2000년 - 현재
별명
'''아야야'''
소속사
라이징 프로덕션
1. 개요
2. 여담
3. 음반
3.1. 싱글
3.2. 앨범
3.3. 대표곡


1. 개요


일본의 여성 아이돌. 2000년 '제4회 모닝구 무스메 & 헤이케 미치요의 여동생 오디션'에 합격, 2001년에 싱글 <ドッキドキ! LOVEメール>을 발매하며 솔로 활동을 시작. 모닝구 무스메와 더불어 헬로! 프로젝트의 전성기를 풍미한 아이돌이었으며, 사실상 일본에서 마지막으로 인기를 끌었던 여성 솔로 아이돌이다.
별명은 '''아야야'''로 모닝구무스메의 이이다 카오리가 지어준 것. 아베 나츠미의 낫치처럼 거의 이름 같은 별명.
'''뼛속까지 아이돌''' 이 말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야말로 슈퍼 아이돌이었다. 지금은 아티스트 노선으로 나가고 있다. 그 프로적인 아이돌성은 가히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전성기 시절의 복숭아빛 짝사랑, ね~え?(네~에?) 등의 노래는 '아야야가 아니면 그 누구도 소화해낼수 없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ね~え?. 하다못해 奇跡の香りダンス。(기적의 향기 댄스)의 PV 표정 연기만 봐도 가히 천상 아이돌.
위 나열한 곡들도 유명하지만 역시 '''Yeah! めっちゃホリディ'''(예 멧챠 홀리데이)가 가장 유명하며 우타방에서 이시바시나카이가 자주 흉내 냈었다. 그 외에도 그녀를 성대 모사한 사람들은 상당히 많았는데 마에다 켄, 하루나 아이 등등. 본인 왈 "(성대모사를 하는 사람 중) 순수한 여성분이 없으시네요."(마에다 켄은 게이, 하루나 아이는 뉴하프.)
곡의 판매량이 아무로 나미에, 하마사키 아유미 처럼 엄청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판매량에 비해서 곡의 침투율이 높은 편이었다.(CD 매상에 비해서 곡이 많이 알려졌다는 이야기) 아이돌 노래치고는 일반 대중들도 제법 잘 알고 있는 노래들이 많았고, 특히 전성기 찍었던 CM의 숫자는 연예계 통틀어서도 거의 탑 수준. 그냥 티비만 키면 그녀의 광고가 나왔다(...). 거기다 매년 조사하는 호감도 순위, 여자친구 삼고 싶은 연예인 순위도 늘 탑급.
당시 그녀의 인기는 2010년대가 훌쩍 지난 현재까지도 이때의 인기로 책정된 월급만으로 먹고살 수 있다고 언급될 정도다. 하로 프로는 기본적으로 '월급제' 이기 때문에 일을 안 하는 지금도 과거의 실적에 의해서 월급이 나온다.[1] 거기다 하로프로의 모체인 업프론트 그룹은 일본에서도 재정 탄탄하기로 유명한 회사인 만큼 일이 뜸해진 연예인들의 월급 정도는 그냥 용돈 주듯이(...) 주는 일도 다반사. 카고 아이도 한 때 스캔들로 일이 끊겼을 때 사무실로 출근하며 월급을 받아 갔다고. 다만 현재는 남편의 소속사로 본적을 완전히 옮겼기 때문에 이렇게 돈을 받지는 않는다.
한때 모닝구 무스메보다 더 잘나갔던 시절이 있었을 정도로, 실제 2002~2003년은 최전성기로 깜찍한 외모와 업템포의 노래가 인기를 얻어 국민 여동생 시절을 보냈다. 그 인기에 힘입어 각종 CM과 영화, 드라마 등등에서 활약했다. 비록 그 기간이 오래 유지되지는 않았지만 야마구치 모모에 이후 높이 평가되는 '''정통파 아이돌 계보'''의 마지막 아이돌로 평가되었고, 2000년대 이후 아이돌로서는 유일하게 그 커리어와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축 처지는 발라드 노선과 하로프로의 하락세가 맞물려 인기는 많이 하락했다. 아무래도 대중들이 기대하는 아야야와 본인이 아이돌 노선을 탈피해 아티스트 노선으로 가고자 한 모습이 매우 달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언제까지나 발랄하고 깜찍한 컨셉으로 갈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도 팬들이 비판하면서도 아쉬워하는 점이 무조건 춤추지 않고 잔잔한 발라드만 낸다고 아티스트 이미지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 10대의 아이돌이 20대로 가면서 모두가 겪는 현상이었지만, 마츠우라 아야의 경우 너무 과감하게 변신했다. 그러한 이미지 변신에 실패하고 나서 어정쩡한 위치가 되면서 점차 하락세를 맞이하게 된다. 아이돌도 그룹 아이돌이 뜨기 시작한게 2010년부터라서 그 사이에 그녀가 반등했다면 얼마든지 반격할 수 있었지만... 그런 시기를 놓쳤다고 볼 수 있다. 또한 2009년에는 2005년에 잠시 의심을 샀던 윈즈w-inds. 케이타와의 교제가 파파라치에 의해 확실하게 발각 나면서[2] 팬들의 공분을 샀다. 사진을 찢고 CD를 조각내는 것은 물론, 굳즈를 불태워 그 인증사진을 올린 팬들도 적지 않았다.
하로프로 최고의 솔로답게 노래는 일취월장해 기본적 아이돌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일명 '''CD 라이브 '''의 소유자. 콘서트 보면 알 수 있는데, 지금의 실력이 떨어지는 일본 아이돌들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다. 발라드 실력도 상당히 뛰어나서 2014년엔 언론에 재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금도 유튜브 등지에서는 그 시절의 영상이 올라오면 '노래 하나는 정말 잘했지.'라며 앓는 사람들이 많다.
아티스트 노선을 타면서 어째 얼굴이 점점 나이들어 보이기(…) 시작하며 나이 조작설도 심심찮게 나왔다.(심지어 후지모토 미키, BoA[3]가 방송에서 장난식으로 언급하기도) 한국 한정으로 금보라, 최란 등을 닮았다는 소리마저 있다.[4] 팬들 사이에선 거의 조크 수준.(아내의 유혹에서 단발의 민소희 시절 구은재와 닮았다는 말도 꽤 있었다.)
뼛속까지 아이돌 시절에는 깜찍하고 발랄한 모습을 주로 보여줬지만, 실제 성격은 굉장히 호탕하며 팬들을 조련(?!)하는 스타일. 니챤의 존재도 알고 있다.
후지모토 미키와는 매우 매우 절친. 팬들 사이에선 후지맛츠, 아야미키로 불리며 엄청난 지지를 받았는데, 이후 둘이서 GAM이란 유닛으로 활동했다. 사무소도 이걸 알았는지 PV에 을 넣기도 하였다(…). 그러나 혹자는 이런 대놓고 애정행각(?)이 희소가치가 떨어진다며 불평하기도. 하지만 결혼 후에는 각자 가정생활 때문에 바빠져서 만날 시간이 없고, 연락처조차 모른다고 한다. 또한 BoA와도 동갑내기 친구로 매우 친한 사이였고 둘이 일본의 예능프로에 여러 차례 함께 출연, 친구 인증을 하기도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친분 언급이 없다. --
BoA와 같은 소속사인 남성 2인조 그룹인 동방신기의 멤버 최강창민이 마츠우라 아야의 팬이다. (특히 모모이로 카타오모이라는 곡을 듣고 팬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점술가로부터 장래에 여자가 많은 회사의 여사장이 된다는 말을 듣고 맘에 들었는지 그 이후로 장래의 희망은 여사장이라고 공언하고 다녔다. 이후 콘서트 굿즈로 '사장'이라고 적힌 티셔츠까지 나오는 등[5] 여러모로 여사장 기믹을 활용. 그 이후로 팬들에겐 '''마사장'''[6]으로 불린다.[7]
코믹스 짱구는 못말려에서 살짝살짝 나오기도 했다. 관심 있는 사람은 찾아보자. 모닝구 무스메도 나왔고, 층쿠도 '''쯩코'''라고 패러디되었다.
2011년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자궁내막증이라는 걸 밝혔다. 이후 모든 연예 활동을 멈추고 회복에만 전념하고 있는 상태. 4월에는 트위터의 업데이트도 그만두었다.
2012년 12월 31일, 윈즈w-inds. 케이타와 2013년 내에 결혼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다. 둘은 10년간 교제를 지속해왔다고 하며, 최근엔 양가 상견례까지 마친 상태라고.
2013년 8월 4일 교제 중인 w-inds. 타치바나 케이타와 입적하게 되며 12년간 연애의 결실을 본다.
2014년 9월 말에 임신 7개월 차임을 밝혔다. 자궁내막증이 후유증으로 불임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아서 팬들이 우려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아이를 가질 수 있었던 모양. 이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건강하게 딸을 낳았다.
2017년 9월 15일 소속사 업프런트 크리에이트와의 전속 매니지먼트 계약을 종료하고, 남편 타치바나의 개인 소속사로 이적하였다.
2018년 4월, 큰딸의 유치원 입학식에 남편 케이타와 함께 참석하면서 4년만에 매스컴에 얼굴을 비췄다. 이날 장녀가 입학식을 마치고 피곤해하자 등에 업어줬는데 그 모습이 사진에 찍혔다. 덧붙여 이때 둘째 임신 상태였다고 한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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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일, 남편 타치바나 케이타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둘째 순산 소식을 알렸다. 링크

2. 여담



가창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단순히 고음이 높거나 그런 레벨이 아니라. 당대에 2시간 콘서트를 백댄서 하나 없이 춤추면서 무대를 채우는게 가능한 거의 유일한 아이돌이었다. 하로프로 내에서도 비교를 거부하는 히트곡 수와 초인기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 지치는 모습하나없이 이러한 풀 콘서트를 소화하는것이 마츠우라 아야의 진면목이었다. 콘서트를 한 번 가보면 마츠우라 아야가 단순한 기획형 아이돌을 넘어서는 존재라는걸 알 수 있었다.
귀여운데다 실력까지 좋은 아이돌이라 여성층에게도 호감이었지만 너무 남성층을 공략하는 컨셉탓에 동세대 여자들이 질투하는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의외로 비율이 상당히 좋다. 160cm가 안되는 키임에도 불구하고 전신 샷을 보면 단신이라는 게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 팔다리가 은근 긴 편이라 무대위에서 동작도 꽤 시원시원한 편이었다.

3. 음반



3.1. 싱글


발매일
제목
수록 앨범
비고
2001.04.11
ドッキドキ! LOVEメール
ファーストKISS
2001.06.13
トロピカ~ル 恋して~る
2001.09.05
LOVE涙色
[8]
2001.11.28
100回のKISS
2002.02.06
♡桃色片想い♡
T・W・O
2002.05.29
Yeah! めっちゃホリディ
2002.09.19
The 美学
2002.12.11
草原の人
2003.03.12
ね〜え?
x3
2003.06.04
GOOD BYE 夏男
2003.09.26
THE LAST NIGHT
2004.01.28
奇跡の香りダンス。
松浦亜弥ベスト1
2004.03.10
風信子(ヒヤシンス)
2004.07.14
YOUR SONG ~青春宣誓~
[9]
2004.10.20
渡良瀬橋
[10]
2005.02.23
ずっと 好きでいいですか

2005.09.21
気がつけば あなた
2006.02.01
砂を噛むように…NAMIDA
Naked Songs
2007.08.29
笑顔
ダブル レインボウ
2008.05.21
きずな
想いあふれて
2009.02.11
チョコレート魂


3.2. 앨범


발매일
제목
비고
2002.01.01
ファーストKISS
2003.01.29
T・W・O
2003.03.05
ミュージカル『草原の人』オリジナルキャスト盤
[11]
2004.01.01
x3
2005.03.24
松浦亜弥ベスト1
[12]
2006.11.29
Naked Songs
2009.01.21
想いあふれて
2010.11.24
Click you Link me
2011.12.21
松浦亜弥 10TH ANNIVERSARY BEST
[13]

3.3. 대표곡


아티스트 노선 이후의 발라드곡 보다는 아이돌 시절의 발랄한 곡들이 인기가 많다.
[1] 사실 일본의 오래된 기업들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연공서열제로 월급을 지급하는 회사가 많기 때문에 몇몇 회사의 경우는 연예인이 높은 전성기를 보내고 나면 그냥 그 수입으로 벌어 먹고사는 경우도 종종 있는 듯.[2] 케이타는 01년 데뷔 때부터 마츠우라 아야의 팬이라는 증거를 몇 차례 강제인증 당했다. 심지어 팬클럽 회원이었다. 그 때문에 집에서 잠자던 마츠우라 아야는 윈즈의 팬으로부터 시시때때로 공격받았다.[3] 이미지나 루머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마츠우라 아야에게 '사실은 스물다섯(이 발언의 방송 당시는 열아홉)이었다던가ㅋㅋ'라고 하자 발끈한 마츠우라 아야는 '큰일 날 소리. 사람들이 진짜로 믿어버린단 말야!'라고 말했다.[4] 하지만 금보라와 최란이 이미지가 좀 웃겨서 그렇지 젊었을 적 사진을 보면 예쁘다.[5] '''평사원''' 티셔츠도 같이 냈다.[6] 에이벡스에 마츠우라 사장이 있어서 이쪽도 마사장으로 불리나 딱히 혼동하는 사람은 없다.[7] 하지만 마츠우라의 어렸을 적 장래 희망은 트럭 운전사였다(…)[8] 같은 날 무려 '''L'Arc~en~Ciel'''과 '''각트'''가 싱글을 동시 발매하면서 비주얼계 팬덤의 온 이목이 집중된데다, 두 아티스트가 차트에서 박터지게 싸우는 바람에, 아쉽게 3위를 기록했다.[9] '松浦亜弥ベスト1' 앨범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10] 모리타카 치사토 곡 커버.[11] 뮤지컬 '초원의 사람' 오리지널 캐스트반[12] 베스트 앨범[13] 베스트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