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사키 아유미
1. 개요
헤이세이 시대를 대표했던 일본의 가희(歌姬). 아무로 나미에를 이어 우타다 히카루와 함께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솔로 여성 가수로서 애칭은 아유(Ayu).'''Empress of J-pop'''[3]
[4]
노래 실력과 작사 실력 뿐만 아니라, 네일아트와 패션 등의 분야에서도 센스를 발휘하여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여중고생들의 카리스마적인 존재로 군림하였다. 그녀의 인기가 절정이 달했던 1999-2001년에는 일본 어디를 가도 길거리에서 하마사키 아유미의 노래가 들린다는 말까지 존재들릴 정도였다.''' 6000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량'''은 물론이고 전성기 시절 그녀가 광고하는 제품은 모두 완판되는 위엄을 보였다. 대표적으로는 'Duty' 앨범자켓에서 잠깐 선보인 표범무늬가 일본 전국에서 유행한 것이 있다. 하마사키 아유미가 일으킨 '효가라 (표범무늬) 붐'은 의류와 악세사리는 물론 뚫어뻥같은 일상용 도구까지 표범무늬로 제작되어 일본 어디에서나 보일 정도였다. 또한, 그녀가 하고 나오는 네일아트와 머리색깔 하나하나에 염색약 업계와 네일아트 업계의 판도가 뒤집힐 정도로 패션계에 끼치는 영향은 말로 함축하는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음악적으로도 'A BEST'가 '''초동 278만장, 총판 429만장'''을 기록하면서 2001년 '''앨범 차트 2위, 역대 앨범 판매량 6위'''를 기록했으며, '''38곡의 1위 싱글'''을 배출하여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써는 가장 많은 1위 기록을 차지하였다. 하마사키 아유미는 싱글, 앨범뿐만이 아니라 리믹스 앨범까지 높은 판매고를 거뒀는데, 2000년에 발매된 'Super Eurobeat Presents Ayu-ro-mix'는 70만장 이상 판매되어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리믹스 앨범 9위'''가 되기도 하였다. 하마사키 아유미의 인기는 일본에만 국한된게 아니라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2007년과 2008년에 열린 아시아 투어에는 중국, 대만, 홍콩 등 다양한 국가들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베스트 앨범인 'A Complete'는 홍콩에서 20만장 넘게 판매하는 쾌거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전성기 시절 아시아권 국가들에서의 인기는 현지 연예인에 꿀리지 않을 정도였다. #.
데뷔곡부터 지금까지 커버곡을 제외한 모든 곡의 가사를 쓰고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공감을 얻고 있으며, 이것이 히트 요소가 되었다. 정규 1집의 수록곡인 'A Song For XX'는 싱글으로 발매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중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이는 그녀의 개인사가 반영된 가사로 인하여 리스너들과의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하마사키 아유미는 작사 뿐만이 아니라 CREA라는 이름으로 작곡에도 참여하여 <M> 등의 히트곡을 만들었다. 그녀가 작곡한 곡 중 하나인 'M'은 유튜브에서도 '''조회수를 1000만회 이상'''을 넘기는 등 일본 대중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실제로 본인이 대다수 곡들의 작사작곡에 참여한 'Rainbow'와 'I Am...'은 많은 리스너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다만 'My Story' 앨범 이후로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작곡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또한, 프로모션 비디오에도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고 셀프 프로듀싱[5] 하고 있으며, 자신의 콘서트 구성과 감독, 음반 자켓 구상도 직접 하는 아티스트이다. 그녀의 앨범 중 'I Am...'과 'Rainbow'는 앨범의 컨셉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춰서 가사 및 뮤직비디오를 제작되는 과정을 밟았으며, '컨셉 앨범'이라는 개념이 이미 음악시장에 자리잡은 최근 음악시장의 판도를 20년 가까아 앞서갔다. 하마사키 아유미가 앨범 제작과 함께 구성에 직접 참여하는 콘서트는 가수 본인의 인기가 떨어진 현재까지도 꾸준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마사키 아유미의 대표적인 업적을 나열해보자면 이와 같다.
- 일본에서 가장 많은 연속 싱글 1위를 기록한 여성 솔로 아티스트
- 일본에서 가장 많은 오리콘 싱글 1위를 보유한 여성 솔로 아티스트
- 일본에서 가장 많은 솔로 가수 판매량 1위, 역대 아티스트 판매량 4위
- 12년동안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써 최장기간 매년 최소 한 장의 1위 싱글을 배출하는 기록을 달성함 (1999-2010: 12년)
- 13년동안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써 최장기간 매년 최소 한 장의 1위 앨범을 배출하는 기록을 달성함 (1999-2011: 13년)
-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싱글 및 앨범 판매량을 보유한 여성 솔로 아티스트 22위 (판매량 1억 5000만장 추정)[6]
-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디지털 판매고를 기록한 아티스트 34위 (판매량 4648만장 추정)[7]
-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피지컬 싱글 판매고를 기록한 아티스트 29위 (판매량 2598만 추정)[8]
-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싱글 및 앨범 합산 판매고를 기록한 아티스트 78위 (판매량 6124만 추정)[9]
-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정규 앨범 판매량을 보유한 아티스트 84위 (판매량 3780만 추정)[10]
- 2000년대에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아티스트 13위 (판매량 4026만 3000장 추정)[11]
2. 일대기
2.1. 1993년~1997년: 가수 데뷔 전 연예계 활동
7살에 하마사키 쿠루미라는 가명으로 후쿠오카에서 지역 모델로 활동하였다. 1993년 중학교 2학년 때 션뮤직 오디션 합격 후 도쿄로 상경하면서 배우 활동을 시작하여 저예산 드라마, 용호의 권 애니판의 유리 사카자키의 성우를 맡는 등 무명 생활을 했었다. 용호의 권 애니판 중 DVD로 나온 것은 권리 문제 때문인지 하마사키 아유미가 아닌 다른 성우로 교체되었으며 하마사키는 이후 용호의 권 2 실사 CM에서도 유리역을 연기했다.[12]
1994년에 호리코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라비아 모델을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하마사키 아유미로 활동하게 되었고 노지마 신지 각본의 소리마치 타카시, 카토리 싱고 주연의 TBS 드라마 미성년에도 출연하였다. 배우 생활이 아무런 성과도 없는 줄 아는 팬들도 많은데 드라마 미성년은 비록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평균 시청률 20%의 히트작이었다. 아예 아무도 모르는 정도 까지는 아니었다. 아유 본인이 회고하기로도, 당시 스케줄이 많았으며 가난하게 자랐지만 이 시기 재정적인 상황도 보통 정도로 올라올 정도였다고.
1995년에는 DOHZI-T가 프로듀스한 앨범을 발매하지만 소속사가 시키는 대로 녹음하고 내놓았을뿐, 당연히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한다. 같은 해 해변의 신밧드(모래알처럼)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 배우로써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독립 퀴어 영화라서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이 시기 코무로 테츠야의 방송인 "TK MUSIC CLAMP"에 출연하여 나카야마 미호의 "JINGI 아이시테모라이마스"를 부른 적이 있다.영상
잦은 결석으로 1995년 호리코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자신을 쓸모 없는 잡동사니라고 생각하면서 시부야 거리를 방황한다. 그러던 어느 겨울 에이벡스가 경영하던 클럽 벨파레에서 놀던 중 단골이 되어 어느날 VIP룸에서 에이벡스 프로듀서 맥스 마츠우라를 만난다. 이 둘은 점차 가까워졌고 때마침 아유가 전 사무소와 계약이 만료되자, 마츠우라는 아유에게 "넌 노래도 할 수 있고 작사도 할 수 있어" 라며 영입을 제안했고 가수 데뷔를 제의받는다. 이후 1997년에 보컬 트레이닝을 받게 되지만 의욕을 잃고 마음대로 빠졌다가 뉴욕으로 가서 3개월간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보컬 트레이닝을 완수한 아유에게 마츠우라는 정식으로 에이벡스와 계약을 맺기로 제안했고 계약이 성사된 후 빠른 속도로 4월 8일 데뷔를 확정지었다. 준비 과정에서 마츠우라는 아유에게 작사 실력이 뛰어다나는 것을 알게되었고, 앞으로 불릴 모든 곡에 아유가 가사말을 붙이기를 요구했고 아유도 승낙하여 열심히 가사를 작사했다고 한다. 그렇게 데뷔 준비가 착착 진행되던 시점에, 아유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정신적으로 힘들어질 뻔 했지만 그녀의 곁을 마츠우라가 지키며 가수 데뷔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13]
2.2. 1998년~2000년: 데뷔와 최전성기
1998년 4월 8일, 에이벡스 트랙스 레이블에서 발매된 싱글 <Poker Face>로 가수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본래 3~4인조로 꾸려지는 밴드의 보컬로 데뷔할 예정이었으나 아유 본인 성격상 솔로 데뷔를 원했고 프로듀서가 이를 받아들여 솔로로 데뷔하게 된다. 초기 싱글 <poker face>와 <YOU>는 오리콘 차트 20위로 부진을 면치 못했으나 에이벡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YOU>로 처음 뮤직스테이션에 출연하여 이름을 알리게되고, 3번째 싱글 <Trust>가 유명 화장품 회사 비세의 CM송으로 타이업이 되면서부터 점점 알려지더니 5번째 싱글 <Depend on you>가 라디오 방송에 꾸준히 리퀘스트되면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싱글 <Trust>가 9위에 오르자 축하 파티를 할 정도로 아유 자신도 훗날 슈퍼스타 될거라고 믿지 않았으며 소박한 출발이었다.[14] 당시 주변 음악 관계자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아유미는 절대 팔리지 않을거야"라고 단언했는데도 에이벡스는 데뷔하자 마자 하마사키 아유미의 싱글을 2개월 간격으로 발표했으며 아유미 자신이 직접 쓴 가사가 점점 좋은 평가를 받으며 빠른 속도로 유명해졌다.
1999년 1월 1일에 발매된 첫 정규앨범 <A Song for XX>가 발매된다. 리드곡 <A Song for XX>의 가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어 인기를 끌었고 에이벡스도 이 앨범을 열렬히 홍보한 결과, 결국 신인 가수로서는 이례적으로 오리콘 차트 1위 (5주, 연속은 아님) 및 밀리언을 달성하면서 스타대열에 올라서게 된다. <A Song for XX>는 현재까지도 하마사키하면 떠올려지는 시그니쳐 곡으로 많은 팬들이 이곡에 공감을 얻어 팬이 되었고, <A BEST>앨범에도 싱글곡이 아님에도 재 녹음되어 1번 트랙으로 수록될만큼 상징적인 곡이다. 데뷔 앨범의 성공으로 31회 유선대상부문 신인상과 골드디스크 신인상을 받게 되면서 전성기의 막이 열린다.
층쿠가 작곡한 7집 싱글 <LOVE ~Destiny~>가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이면서 오리콘 차트에 처음으로 1위를 달성하였다. 1999년 7월 14일 발매된 <Boys & Girls>는 당시 대세가수 스즈키아미와 동시발매를 해서 관심이 쏠렸으나 밀리언을 돌파하였고 (1주차 아미 1위, 아유는 2주차부터 역전, 3주 연속 1위) 노래 자체도 대히트를 치면서 홍백가합전에 첫 진출을 하게 된다. 한달 후 발매된 4A면 싱글 <A>는 16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그녀의 싱글들 중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 싱글이 되었다. 전작의 Boys & Girls 로부터 1위가 이어져 A의 2주 연속까지 여성솔로 가수로서는 매우 오랜만에 오리콘 싱글챠트에서 5주 연속 1위라는 기록을 세우기도한다.
11월 10일에는 2집 <LOVEppears>와 30만장 한정 싱글 <appears>를 동시발매를 하는데 모발로 가슴을 가린 자켓의 특이성으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LOVEppears>는 더블 밀리언을 달성하였다. 가사와 뛰어난 패션 스타일, 수려한 네일아트로 당시 여고생들에게 추앙을 으며 '패션 리더', '네일아트의 여왕' 이라는 다양한 호칭이 생겨났다. 광고계에서는 이 현상을 통칭 '아유 효과' 라고 하였는데 비세 마스카라가 2일만에 50만 개나 팔려나갔다고 한다. 3집 <Duty>의 재킷에서 입었던 표범 무늬도 유행시켰으며 <evolution> PV에 달고 온 여우 꼬리는 500만 개 이상이나 팔리는 등 대중의 기호를 이끌어내었다.
일본 가요계에 잊지 못할 사건인 우타다 히카루의 정규앨범과 하마사키 아유미의 <A BEST> 동시발매 대결에서 하마사키는 앨범 초동 역대 2위, 여가수&베스트 앨범으로서는 역대 1위, 총 판매량 429만 장을 세우면서 일본 역대 판매량 6위를 하는 등 전성기의 절정을 찍었다. 개최한 돔 투어와 스타디움 투어도 여가수로서 최초로 대성공을 했지만 돔 투어 개최 전부터 왼쪽 귀 청력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2.3. 2001년~2004년: 아티스트로서의 성장
2000년 연말에 발매한 싱글 <M>에서는 하마사키 아유미가 처음으로 작곡을 하였다. 발매 당초에는 하마사키 아유미가 작곡하였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CREA'''[15] 라는 가명으로 발표하였다. 이 싱글이 13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하마사키 아유미는 아티스트의 반열에 들어선다. 이후 4집 앨범 <I am...>에서는 거의 전곡을 작곡하였고 더블 밀리언을 기록한다. 01-02 카운트 다운 악성루머 사건과 갑작스레 얻은 인기에 대한 부정적 영향으로 살짝의 안티들이 증가했으나 2002년 7월 24일에 나온 싱글 <H>가 2002년 발매된 싱글 중 유일하게 밀리언을 기록하며 슈퍼스타로 군림하고 있었다. 2002년 3월에는 싱가포르에서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하면서 탄탄한 해외팬덤의 기반을 다지기도 하였다. 2002년 11월에는 독일의 'Drizzly'라는 레이블에서 '아유'라는 명의로 독일의 DJ 페리 코스텐이 작곡한 싱글 'Connected'를 발매했다.
2002년 1월 1일에 발매된 4집 I am...은 그녀의 커리어에 있어서 전환점으로 작용하였다. 하마사키 아유미는 '''CREA'''라는 이름으로 앨범에 수록된 곡들에 집중적으로 참여를 시작하였다. 'I am...'은 인간의 고독함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전작들과는 다르게 더욱 넓은 주제들을 본인의 세계관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점에 있어서 유독 의미있는 앨범이다. 이 앨범의 가사들은 대부분 평화와 신념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인데, 이는 그녀가 2001년 9월 11일 일어난 9/11 테러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을 옅볼수있는 노래는 대표적으로 '''A Song is Born'''이 존재한다.
2002년 9월 26일에는 싱글 'Voyage'가 발매되었고, 싱글 발매와 동시에 촬영돤 단편 영화 ''''月に沈む''''이 시부야에 위치해있는 소극장에서 상영되기에 이른다. 동년 12월에는 정규 5집 <RAINBOW>가 발매되었다. <RAINBOW>는 하마사키 아유미가 최초로 영어 가사를 작사한 앨범인데, 이는 그녀가 2002년 MTV Asia Music Awards 공연 이후 세계적으로 본인의 메세지를 전달하고자하는 마음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2002년 10월 12일에는 자신의 이름을 건 심야 프로그램 '''<AYU READY?(아유레디)>'''라는 프로그램의 MC가 되었는데 심야 시간대에 방영했는데도 불과하고 시청률은 잘 나왔으며 반응은 좋았다. 하지만 2004년 3월 22일, 본인의 스케줄 문제로 이 프로그램은 종영되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대표적인 게스트들은 BoA, 나카모리 아키나, 카고 아이 등이 있다.
이후 역시 작곡을 맡은 5집 음반 <RAINBOW>, BOUNCEBACK나 유쿠미 테츠야 등 새로운 작곡가들과 작업한 미니 앨범 <Memorial address>, 6집 앨범 <MY STORY>가 연속으로 밀리언을 기록하였다. 2003년 12월 발매된 미니 1집 <Memorial address>는 일본 여가수 최초로 미니앨범 밀리언 인증을 받으며 성공가도를 이어갔다. 이 기간 동안 2001년 <Dearest>, 2002년 <Voyage>, 2003년 <No way to say>로 레코드 대상 3연패를 달성하는 등 유일무이한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EXILE이 2008년, 2009년, 2010년 3연패로 타이기록을 세웠다. 레코드 대상 시상 사회자를 수십년 동안 맡았던 방송인 사카이 마사아키는 후에 레코드대상 60주년 특집 방송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수상자로 하마사키를 거론하며 3년 연속 시상에 대해 당시 느꼈던 인상을 길게 이야기했다.
이 시기부터 하마사키 아유미는 본인을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는 소속사와 '을'의 입지에 놓여있는 자신에 대하여 굉장한 회의감을 느꼈다. <A BEST> 발매 이후로 정규 4집, 5집의 발매 모두 그녀를 재촉해서 나온 결과물이였기 때문에 아타스트로써의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고, 이로 인하여 정규 6집 <MY STORY>는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MY STORY>는 정해진 주제 없이 만들어진 앨범이기 때문에 대중들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전작들과는 달리 누군가를 위로해준다거나 남들에게도 쉽사리 인정받을 수 있는 가사가 전혀 포함되어있지 않다. 이 앨범에서는 그런 가사들이 사라지고 그녀의 커리어를 회상하거나 개인적인 감정을 토로하는 가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가사 뿐만이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본인이 좋아했던 록 음악을 심도있게 파고들면서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앨범을 제작하였다. <MY STORY> 앨범은 하마사키 아유미가 최초로 만족감을 느낀 결과물이라고 한다.
2.4. 2005년~2008년: 안정기
SWEETBOX와의 공동 작업으로 화제를 모은 7집 앨범 <missunderstood>는 스타일의 변화로 인해 앨범 연속 밀리언 기록을 깨뜨렸다. 2007년에는 "지병으로 인해 왼쪽 귀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팬들에게 "오른쪽 귀가 멀 때까지 열심히 하겠다"고 팬클럽에 메세지를 남겼다. 이전에도 성대 결절로 인해 수술을 했지만, 매년 라이브를 진행하는 등 너무 무리하게 활동한 나머지 목 상태가 심하게 안 좋아졌다.
이 시기에 에이벡스의 삽질으로 인해서 앨범 판매량이 많이 감소했었다. 7집의 경우 선행 싱글이였던 'HEAVEN'과 'STEP you' 등은 꾸준히 일본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곡 자체는 예전보다 인기가 더 좋았었으나, SWEETBOX와의 콜라보 'Bold & Delicious'로 반응이 매우 좋지 않았다. 이 싱글의 부정적인 반응은 7집 앨범의 실패를 이끌었다. [16] 앨범에서 싱글로 발매된 곡 중 하나인 'HEAVEN'이 일본 커뮤니티에서 하마사키의 명곡을 꼽을때 자주 언급되는 곡임을 고려해보면 <Bold & Delicious>의 실패와 7집 발매 전략이 정말 아쉬웠음을 알 수 있다. <Bold & Delicious>는 당시 '보루데리 쇼크'라는 단어까지 생길 정도로 팬들과 대중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긴 곡이였다. 국내 일본음악 커뮤니티 중 하나였던 멀티 레모니아에서는 선공개된 몇초만으로도 난리가 났었다.
이듬해 12월에는 정규 8집 Secret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은 원래 미니 앨범으로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갑작스럽게 영감이 떠오르면서 5곡이 더 추가되었다고 한다. 앨범이 발매되기 전에 수록곡 '1 LOVE'와 'JEWEL'이 2A 싱글로 발매될 예정이였으나 아쉽게도 취소되어 안타까움을 남겼다. 이 중 'JEWEL'은 하마사키가 2006년 연말에만 엠스테에서 네번이나 불렸고, 홍백가합전도 나왔을 정도이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반응이 정말 좋았음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나 Secret은 더욱 대중적인 접근방식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작의 부진함을 만회하지 못했다.
2007년 6년만의 베스트앨범인 A BEST 2를 블랙, 화이트의 두 가지 버전으로 발매하였는데, 'A BEST 2 ~WHITE~'와 'A BEST 2 ~BLACK~'이 각각 1,2위를 나란히 기록하면서 36년 반만에 여성 아티스트로써 두 번째로 차트 1,2위를 독점하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또한 동시 릴리즈로 인한 1,2위 독점은 사상 최초의 쾌거였다. 4월부터는 8집 앨범의 투어이자, 자신의 첫 아시아 투어인 ayumi hamasaki ASIA TOUR 2007 ~Tour of Secret~ 투어를 진행해 성공적으로 마쳤다. 2007년 7월에는 41번째 싱글 <glitter/fated>가 발매되었다. 이 싱글의 뮤직비디오는 '距愛 ~Distance Love~'라는 제목의 단편 영화 형식으로 제작되었으며, 홍콩의 유명 배우 임준걸이 출연하여 화제가 되었다. 42번째 싱글 <talkin' 2 myself>을 시작으로 음악 스타일을 락 노선을 변경함으로써 아유표 발라드에 열광했던 고정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앨범에서 마지막으로 발매된 싱글이자 첫 번째 디지털 싱글이기도 한 <Together When...>은 착신 다운로드 300만건 이상이라는 성과를 거둬 그 해 홍백가합전 출전곡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7] 9집 <GUILTY>는 코부쿠로의 <5296> 앨범에 밀려 99년부터 시작된 연속 1위를 깨뜨렸다. 10집 <NEXT LEVEL>로 1위를 되찾았지만 이 앨범은 판매량 37만장으로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다만 그전의 아유치고 부진한 판매량이지, 데뷔한지 10년째 되는 가수였고 1집부터 히트된 가수인걸 감안해서 보면, 아주 오랜 기간 롱런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 코다 쿠미와 오오츠카 아이, 나카시마 미카 등의 후배 여가수들이 자리를 잡으며 잠시 원톱의 자리에서 물러났어도 꾸준히 톱가수로서 입지를 유지했으며 J-POP계의 대표 여가수로 꼽혔다. 매년마다 'BLUE BIRD', 'Together When', 'Days', 'You were...' 등의 히트곡을 배출했고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의 기간에는 발매하는 싱글마다 디지털 다운로드 플래티넘(25만 건 이상)을 기록하는 등 대중들의 관심도 지속되었다. 최전성기는 지났어도 꾸준히 수요가 많은 "믿고 듣는 가수"였다고 생각하면 될듯. 그 중 'BLUE BIRD'는 매년 일본에서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여름 노래를 조사할때마다 순위권 안에 들고 있으며 2020년 현재에도 사랑받고있는 스테디한 히트곡이다. 2008년에는 데뷔 10주년을 맞아 홍콩, 상하이, 대만을 순회하는 아시아 투어 공연을 열었다.
하마사키는 6집 <MY STORY> 이후로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의혹을 꾸준히 제기받았다. 하마사키 아유미 본인도 이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SWEETBOX와의 콜라보를 진행하는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매너리즘을 탈피하려고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그 실험과정에서 탄생한 곡들은 대중들에게 좋지 아는 반응을 얻었으며 이는 하마사키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진 락발라드를 번복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에이벡스와 하마사키가 간과한 점은 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이나 이미지는 한정되어있는데 돈이 된다고 가수 하나를 공백없이 계속 돌리니 당연히 몇년 지나면 끝이 올수밖에 없다는 것이였다. 10년차에 나온 싱글 모음집에 50곡씩 들어있따는건 초인이 아닌 이상 그 사람에게 나올 수 있는 건 다 나왔다는 얘기이다. 이렇게 간격이 좁은 발매 기간에도 불구하고 10년차에 'DAYS'라는 마지막 히트곡을 배출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여지가 있다.
2.5. 2009년~2011년: 부진, 하지만 여전한 레전드
2010년 <Rock'n'Roll Circus> 앨범과 <Love songs> 앨범을 발매했는데 2010년 이후 플래티넘 인증을 받은 곡은 FIVE 앨범 타이틀곡 <progress>가 전부인 등 대중들의 관심이 다소 떨어져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Love songs> 앨범의 타이틀 트랙 <Love song>은 싱글로 발매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0만 다운로드를 인증받으며 본인의 네임밸류가 여전함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이 앨범은 코무로 테츠야의 복귀작이기도 했는데,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렸다.
2011년 1월 1일, 싱글 <L>의 수록곡인 <Virgin Road>의 PV 촬영을 계기로 알게 된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 마뉴엘 슈바르츠와 결혼했다. 하마사키 아유미는 "결혼 이후에도 가수 활동은 계속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1년 3월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트위터에 긴급대피법을 올리기도 했으며 음반 수익금을 난민들을 위해 기부하였다.
매년 2장 이상의 싱글과 1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던 것에 비해 2011년에는 미니 앨범인 <FIVE> 1장만을 발매하였다. 비록 공연과 잡지 화보 등 외부 활동은 활발했지만 이전에 비하면 소극적인 행보였다. <FIVE> 앨범은 팬들로부터는 좋은 평을 받았지만 대중들로부터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이 시기 출연이 예정되었던 뮤직 스테이션에 갑자기 출연을 취소하는 등[18] 음악 프로그램 출연도 끊겨서 제대로 된 홍보도 진행하지 못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하마사키는 2013년 슈퍼 라이브까지 2년간 M스테에 출연하지 못했다. 그와는 별개로 앨범의 프로모션 트랙인 <progress>는 비디오 게임 테일즈 오브 엑실리아의 테마송으로 사용되었다. FIVE는 2주동안 오리콘 차트 1위를 지켰고 최종적으로 22만장을 팔아 일본 레코드 협회로부터 골드 인증을 받았다.
이렇게 조금씩 하락세를 타기는 했지만, 이 시기까지 하마사키 아유미는 여전히 J-POP 대표 여가수였다. 방송 출연 등의 대접도 좋았고 대중들의 이미지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계속 하였고 또한 음반 총 판매량에서 사잔 올 스타즈를 누르고 3위에 오르고 50번째로 발매한 싱글 <L>이 오리콘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마츠다 세이코가 <여행은 프리지아>로 세웠던 여성 아티스트 24작 연속 1위 기록을 깨뜨리는 등 기록 갱신을 이어갔다.[19]
인기를 오랜 기간 지속했고 히트곡만 10곡이 넘는 등 쌓아온 커리어가 커리어이니만큼, 만약 이 즈음에서 음반 발매와 콘서트 회수를 줄이고 음악성과 건강 관리에 신경을 썼다면 오랜 기간 레전드 여가수로서 대접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하마사키의 이미지가 나락이 된 지금까지도 곡들은 계속 언급되고 있으니, 만약 이미지 관리를 잘 했다면 하마사키 본인도 무난히 활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2.6. 2012년~2014년: 결혼과 이혼, 이미지 실추, 급격한 하락세
2012년이 되자마자 하마사키의 하락세는 걷잡을 수 없어졌다. 이는 히트곡이 안 나온 탓도 있지만 본인의 사생활을 둘러싼 구설수로 인한 이미지 실추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
2012년 1월 16일, 남편인 마뉴엘 슈바르츠와 결혼 1년만에 이혼을 발표하였는데, 언론에 공개된 바로는 하마사키 측에서 이혼을 요구한 것이었다. 정확한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각자의 활동으로 인해 결혼 직후부터 이어진 긴 별거생활이 원인으로 추측되고 있다.[20] 이혼하자 마자 반 년도 안 되어서 댄서 우치야마 마로카와 다시금 열애설을 퍼뜨렸다. 그런데 우치야마는 유부남이었고 시기상으로 볼 때 하마사키도 마뉴엘과 아직 혼인 상태였기 때문에 쌍방 불륜이었다. 이렇게 논란을 일으키면서까지 우치야마와 연애를 시작했지만 그와의 연애도 얼마 못 가 그만 두고 말았다. 그리고 나서 2013년 12월에는 미국인 의대생과 약혼한 것이 알려졌는데, 2년간 버라이어티한 사생활 관계를 지켜본 대중들의 시선은 "싱글 발매전의 화제 조성"[21] 으로 보는 등 차가운 편이다. 이 미국인 의대생과도 2016년 이혼했다.
이 시기 3장의 음반을 발매하였으나 EDM과 재즈를 시도한 <Party Queen>은 본인의 창법과 맞지 않는 EDM으로 팬들을 충격으로 몰고 갔다. 13집 <LOVE again>은 이 실패를 지나치게 의식한 듯 전형적인 J팝 스타일로 후퇴해버렸지만, 14집 <Colours>는 다시 구미권 EDM 프로듀서들을 불러와서 작업하는 등 음악적으로 갈피를 못 잡는 행보를 보였다. 무엇보다 음악적으로 호평을 받은 곡이 한 곡도 나오지 않았고 음반 판매량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떨어져갔다. 음원에서도 2013년 이후 발매한 곡들은 골드 인증(10만 건 DL)조차도 못 받을 정도로 대중들의 반응이 차가웠다.
가창력 면에서도 이미 2009년 무렵부터 목 상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으나, 이 시기에 다다라서는 목소리가 복구 불능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라이브가 엉망이다. 팬들마저 두 손 들은 발성은 물론이고 발음까지 엉망이 되어버린 라이브를 시전했다. 카운트다운 콘서트 때는 사전녹음 립싱크라서 별 말이 없지만 방송 영상은 나올 때마다 심각하게 상태가 안 좋다. 심할 때는 음정도 못 맞춘다. 이게 한두 번이면 컨디션 난조로 넘어가지만 갈 수록 질적 하락이 심해져서 팬들마저 아예 포기하게 만들었다. 무릎에 물이 차는 바람에 물을 정기적으로 빼야 할 정도로 건강도 안 좋아진 상태라 사실상 활동은 콘서트 투어를 제외하고 줄어들었다.
2014년 홍백가합전에 나오지 않을 것을 공식 명단이 나오기 3일 전에 발표했다. 15년 연속 홍백가합전에 나온 것을 지켜본 팬 입장에서는 "쇼크"라는 입장과 "이제 그만 할 때도 됐다"로 나누어진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출연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짤렸다고''' 빈정거리는 여론이 대부분.
2011년 이전까지 하마사키는 굉장히 사생활 관리가 투철한 이미지였다. 본인이 자켓 사진이나 잡지 인터뷰, 파파라치 컷 등으로 밝힌 부분을 제외하면 사생활이 언론으로부터 가려져 있었다. 이성 관계도 나가세 토모야와의 연애 정도가 고작이었으니 다른 건 몰라도 '''이미지 메이킹''' 측면에서는 확실히 보증된 셀레브리티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알고 보니 결혼과 이혼, 불륜을 반복하는 데다가 음반 발매 때마다 스캔들로 화제를 모으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게다가 본업인 음악은 팬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평가가 곤두박질쳤다. 음악적인 면과 사생활적인 면 모두에서 비판 받을 짓밖에 안 했기 때문에 그나마 남아있던 하마사키에 대한 대중들의 좋은 인상은 싹 날아가고 말았다.
2.7. 2015년~2019년: 콘서트 투어 위주의 활동
이렇게 말하면 완전히 망한 가수로 여겨질 수 있으나 건재한 팬덤 덕분에 콘서트 표도 잘 팔리고 음반도 꽤 팔린다. 콘서트는 꾸준히 아리나 투어(공연장 규모 10,000명 이상)를 진행하였다. 음반 판매량 역시 계속 하락세였다가 바닥을 찍은 건지 "A ONE" 앨범과 "MADE IN J(A)PAN" 앨범은 4~5만 장의 나쁘지 않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A ONE" 앨범에서는 중화권의 공략을 위해서인지 중화권에서 많은 인기를 자랑하는 싱가포르의 남성가수인 임준걸이 써준 'The GIFT'로 아시아국가 챠트를 석권했다. 2011년 펑크 사건 이후 끊겼던 뮤직 스테이션 출연도 2013년 이후 재개되어 신곡 프로모도 돌고 2016년 3월 졸업송 SP에서는 대표곡 'A Song for XX'를 불렀다. 2015년, 나카마 유키에 주연의 NHK 20부작 드라마 '미녀와 남자' 주제가로 타이업된 'Step by step'가 레코초쿠 디지털 차트 2위를 하는등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여새를 몰아 여름에 발매한 미니앨범, 'sixxxxxx'는 오랜만에 데일리 챠트 1위로 데뷔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위클리 1위는 DREAMS COME TRUE의 베스트 앨범). 앨범의 수록곡 중엔 봄에 콜라보한 임준걸에 이어 타이완 보이그룹인 Spexial과의 콜라보 곡인 'Sayonara'로 중화권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쪽 귀의 청력 상실과, 무리하게 목을 사용하며 활동을 해서 목 상태가 좋지 않아 길었던 전성기와 대조되어 안타까운 모습이 비춰지고 있지만, 투어 성적이 일본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수익이 좋고, 관객들의 평가가 좋다는 정도. 대표적인 여성솔로가수들이 점점 TV프로모션을 줄이고 콘서트 투어를 통해 프로모션을 하는 비중이 늘어가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양상. 하마사키는 이미 전성기 시절부터 쌓인 오랜 무대경험과 노하우, 화려한 퍼포먼스 등으로 투어에 대한 평가가 좋은 편이었고, 이미지가 시망된 지금도 '하마사키 콘서트는 한번 쯤 가볼만 하지.'라는 반응이 일웹에서도 자주 나온다. 그리고 하마사키는 대중들에게 이미지가 안 좋아졌지만 고정팬들은 여전히 많기 때문에 음반수익보다는 콘서트 투어로 수익을 내는 것으로 마케팅을 바꾼 것이라고 보면 된다.
2015년엔 국내 활동에 주력을 많이 했는데, 정규 앨범, 'A ONE'의 수록곡들을 중심으로 한 콘서트 투어, "Cirque de Minuit" 은 총 30곡 가까이 되는 곡으로 화려한 투어를 했으며 가을부터 최근까지 12년만에 개최한 팬클럽한정 라이브 투어를 하는 등 자국 활동과 팬들에게도 많이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2016년 9월 11일자로, 본인의 팬클럽 TA에 이혼하는 것을 보고했다. 각자의 길을 택했으며 언론 보도에 먼저 나는것 보다 본인이 직접 팬들에게 알리고 싶어 TA 팬클럽에 전했다.
COUNTDOWN LIVE 2016-2017 Just The Beginning -20-에서 최악의 목상태를 다시 갱신했다. 목이 억눌려 거의 겨우겨우 소리를 내는 느낌이 강하다. [22] 2017년 11월 19일 의사로부터 과로로 인한 급성 기관지염이라는 진단을 받아 콘서트가 갑자기 취소되었다. 그러나 콘서트 취소 공지가 공연 시작 20분 전이여서 이미 관객들이 모두 입장한 후라 더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 그럼에도 17년 5월부터 19년 2월까지 매달 라이브를 잡는 행보를 보였다. 하마사키 아유미가 회복 불가능한 목 상태에도 불구하고 음악 활동을 멈추지 않는 이유에 대해 많은 말이 있지만 2014년 싱가포르에서 한 인터뷰에서 "그만둘 것이라면 진작 그랬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볼 때 본인의 의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 8월, 2년 2개월 만에 음반을 발표했다. 디지털 싱글 'We are the QUEENS'를 포함해 5곡이 수록되었다. 5곡만 들어있음에도 미니 앨범이 아닌 앨범이라고 홍보했는데, 사실 가격도 미니 앨범 가격이었으므로 논란이 될 소지는 없는 일이었다. 5곡 중 2곡이 이미 1~2년 전에 발표된 곡이었으므 앨범 자체보다는 콘서트 영상이 수록된 DVD 사양이 주가 되는 앨범이었다. 그러니 사실상 2016년 MADE IN JAPAN 이후 음반 활동을 쉬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몇년 전부터 판매량이 급감하다 보니 앨범을 내더라도 수익성에서 큰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인 것 같다. 그래서 홀 투어를 중심으로 수익을 뽑는 추세이다.
2019년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자신의 자전적 소설 'M~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를 발매하였다. 그런데 이 소설의 내용이 자신의 프로듀서 마츠우라와의 연애 스토리를 비롯해 이와 엮인 히트곡 가사의 비하인드 등이 담겨있어 또 한 번 논란이 되었다. 그래도 노이즈 마케팅은 제대로 되었다. 이 소설은 드라마화도 되었는데, 주연으로 에이벡스가 밀고 있는 신인 안자이 카렌이 발탁되면서 사실 하마사키를 이용해서 안자이 카렌을 밀기 위한 에이벡스의 전략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정작 안자이 카렌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하마사키만 재조명되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단 참조.
2.8. 2020년~ : 출산과 2년만의 신곡 발매
2020년 1월 2일 비밀리에 2019년 11월 첫째 아들을 출산했다고 밝혔다. 아이의 아버지는 연하의 일반 남성이며 결혼은 하지 않는다고.# 이로서 일본 헤이세이 시대를 풍미한 3대 디바[23] 가 모두 외아들을 가진 싱글맘이 되는 기록(?)을 세웠다.[24] 11월 출산 직후 바로 12월 투어에 서서 화제가 되자 한 일본 남성이 이에 관련해 '애 낳고 저렇게 바로 활동할 수 있는데 여자들은 게으름을 피운다'는 둥 개념상실 트윗을 써서 논란이 일었는데, 이에 대해 하마사키 아유미가 본인 인스타그램에서 '나의 빠른 복귀는 헤어 코디 스탭들과 병원의 관리와 아이 돌봐주는 사람이 24시간 케어해주는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여자들의 출산은 매우 힘든일이며 휴식이 필요하다'라고 일갈했다.
2020년 7월 5일 새로운 싱글인 'オヒアの木 (오히아의 나무)'가 발매되었다. 드라마 'M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가 종영한 날에 발매되었고, 2년만에 처음 발표하는 신곡이라 팬들에게는 걱정이 앞섰으나 반응은 이례적으로 좋다. 발매 하루만에 아이튠즈 일간 5위를 차지하고, 레코쵸쿠 데일리 차트에서는 1위를 차지하는 듯 8년만에 히트곡을 배출할 기세이다. 오리콘 데일리 차트에서도 약 5000여건의 판매량을 기록하여 1위를 차지하였다. 아유의 곡 중에서는 최초로 영어가 아닌 일본어 제목을 차용한 곡인데, 올해 1월 발표한 임신 소식과 관련되어 있어 본인과 팬들에게는 의미가 남다를듯하다. 곡의 가사 또한 하와이의 전설인 오히아 꽃의 이야기를 차용하여 그녀의 아들에게 보내는 메세지이다. 7월 30일 지금은 은퇴한 코무로 테츠야가 작곡한 'Dreamed a Dream'을 선보였다.
2017년부터 매달마다 이어왔던 콘서트 투어를 2020년에도 이어갈 예정이었지만, 2월부터 진행할 예정이었던 사이고노트러블 투어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부 취소되었다. 이에 사이고노트러블 투어의 마지막 공연을 2020년 10월 2일 온라인 콘서트 형태로 개최했다. 그런데 2월부터 계속 공연을 쉬어왔던 덕분인지 목 상태가 많이 회복되었다는 좋은 반응을 받았다. 2017년~2018년에는 후보정으로도 목 상태 악화가 가려지지 않았던 것과는 대비되는 대목. 또한 콘서트 종료 직후 공식 팬클럽 사이트 등을 통해 둘째 임신을 발표했다. 첫째에 이어 둘째 아이의 아버지 역시 같은 사람인 것으로 추정된다. #1 #2
2021년 1월 신곡 'Pray For You'가 카운트다운 콘서트 2020-2021에서 공개될 예정이였으나 콘서트 취소의 여파로 인하여 발매가 취소되었다. 대신 2021년 3월에 발매될 'A BALLADS 2'에 수록될 예정이라고 한다.
3. 디스코그래피
자세한 내용은 하마사키 아유미/음반 목록을 참조하십시오.
4. 콘서트
4.1. 정규 라이브 투어
4.2. 카운트 다운 라이브
5. 영화, 드라마, 예능프로
6. 사건사고/논란
6.1. 가사, 마케팅의 진실성 논란
전성기 때부터 꾸준히 제기되던 논란인데, 가사와 PV에서는 'AVEX에 대항하는 아티스트' 이미지를 내세우면서 정작 그런 이미지를 통해 버는 것 또한 하마사키 아유미와 AVEX 본인들이라는 것. 이런 논란은 전성기 당시에는 그래도 '또래 여성들의 워너비. 공감가는 존재'로서의 이미지가 어필했기에 적은 편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마사키 아유미가 셀레브리티화 되어가고 정작 사생활과 실제 무대 위에서 나타나는 이미지의 괴리가 심해지면서 팬들 사이에서조차도 논란이 심해지고 있었다.[25]
"하마사키 본인이 내세운 게 아닌, 단지 팬들의 과잉해석"이라는 의견도 있었는데, 팬이 아닌 제3자가 보더라도 AVEX에 대항하는 내용의 가사와 PV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많았다. alterna나 1LOVE는 아예 대놓고 자신을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광대나 기계로 묘사하며 누가 봐도 '그런 쪽으로 해석할만한 여지'를 주었었고, 본인이 절망3부작이라고 칭하는 싱글 3연작이나 앨범 수록곡들의 가사를 보더라도 확실히 인기에 대한 불안감. 소속사에 휘둘리는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이라는 주제로 쓴 가사였음을 알 수 있는 노래들이 많았다.
사실 이러한 부분이 비판받게 된 배경에는, 기본적인 하마사키의 세일즈 포인트와 관계가 깊다. 하마사키가 데뷔했던 98년도는 한참 세기말 분위기가 유행했던 시절로, 자아에 대한 깊은 사색이라든가. 감성적인 성찰 같은 분위기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26] 그런 분위기에서 기존의 단순히 귀여움만을 어필하는 아이돌들과 달리 '능력도 별볼일 없고, 재능도 없어보이는데 무언가 우리와 비슷한 느낌[27] 의 하마사키 아유미가 자신이 직접 쓴 가사. 그것도 자신들을 대변하는 감성이 담긴 노래들을 부르는 모습은 당시 또래 10대~20대 여성들의 공감대를 형성해서 대박을 터트렸고, 하마사키는 일약 '일본 여성들의 교주'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인데, 어느 순간 자신들을 대변한다고 믿었던 하마사키는 전성기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는 급격히 셀레브리티 이미지를 강해져서 사실상 평범한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하기 힘든 상황인데, 정작 하마사키와 AVEX는 여전히 세일링 포인트를 기존과 다르지 않은 '상처받은 영혼', '연예계에서 상품화 되어가는 자신에 대한 회의' 등을 지속적으로 부르면서 괴리가 생기게 됐다. 정작 가끔씩 보도되는 하마사키의 사생활은 매우 화려함에도 불구하고,[28] '저렇게 복에 겨운 여자가 왜 자신을 불쌍하다고 포장하는가'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팬들이 느끼기 많아지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까지는 2000년대 후반까지 이야기이고, 2010년대 들어서부터는 더 이상 사생활이 언론에 가려져 있지도 않고, 본인도 자신의 가사에 대해 깊은 의미를 담아서 작사하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있기에 이러한 의견은 나오고 있지 않는 실정.
6.2. 장애인 폭언 루머 사건
- 참고 : 하마사키 아유미 팬블로그(일본어)
2001-2002 카운트다운 콘서트 때 하마사키 아유미는 앞자리에 앉았던 '''성별이 남자인 친구'''(애인이 아니라 그냥 친구)에게 농담이랍시라고 선을 넘는 무례한 발언[29] 을 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팬들도 야유를 보냈다. 그러나 2ch에 거주중이던 하마사키의 안티들이 "'''하마사키 아유미가 장애인 소녀인 팬에게 폭언을 했고 장애인은 울며 뛰쳐나갔다'''" 라는 허위사실을 퍼뜨렸다. 때문에 속은 유저들로부터 Team ayu는 테러를 당했고 하마사키 자신도 악플 피해와 더불어 해당 콘서트 한해 스폰서가 끊기는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일본 콘서트장(정확히는 국립 요요기 경기장)에서는 장애인들은 '''사고시 대피하기 쉽도록 출입구, 비상대출구 쪽에 앉기 때문에''' 하마사키가 앞자리에 앉은 장애인에게 비하 발언을 했고 분명 장애인인데 뛰쳐나갔다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 허위사실로 밝혀지면서 오명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친구에게 공개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콘서트장에서 막말하면서 망신을 주는 건 예의가 없으며 이 점은 하마사키가 명백히 잘못한 것이 맞다. 단 하지도 않은 장애인 폭언 루머를 만들어내 대중들에서의 비난과 풍평피해를 유도한 안티들도 선을 넘은건 마찬가지. 하마사키도 Team ayu에 친구에게 막말한 건에 대해 사과문을 올리면서 사건은 종결되었고 해당 부분은 DVD에서는 편집되었기에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국에도 이 루머 때문에 하마사키의 안티가 있는 편인데 악성 루머이므로 혼동 주의바람.
6.3. '''2004년 AVEX의 난'''
2004년 7월 30일에 난 소속사 분쟁 사건. 자세한 건 에이벡스의 난 참조.
6.4. 표절 의혹
자신이 존경한다고 언급한 초거물 팝가수 마돈나의 표절의혹이 가장 많으며 브리트니 스피어스, 제니퍼 로페즈등 유명 여성 팝가수의 스타일의 표절의혹도 상당히 많다. 음악보다는 주로 패션, PV, 무대 퍼포먼스, 음반 자켓이 표절 의혹이 많은 상태이며 안티 사이트나 유투브에도 이런 표절 의혹 자료를 모은 것이 있을 정도. 대표적인 아유의 표절 모음
무대 퍼포먼스의 경우 하마사키 아유미 본인은 마돈나의 콘서트를 한 번 자기의 스타일로 해보고 싶어서 차용한 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으며 팝가수 스타일 착용은 하마사키 본인도 인정했다.
표절까지는 아니지만 마케팅 측면에서는 어느정도 마돈나의 사례를 참고한 흔적도 보인다. 예를 들면 매 음반을 발매할때마다 이슈거리를 찾아서 내보낸다거나 하는 식
그런데 자료들 다수는 안티들이 비슷한 것을 억지로 붙인 것이 많은 편이다. 예를 들어 하마사키 아유미가 먼저 했는데도 유명 팝스타가 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하마사키 쪽이 표절이라고 억지로 끼워맞춘 자료도 있으며 단지 같은 브랜드의 옷을 입었을 뿐인데 하마사키가 표절했다고 우기는 자료도 있다. 그러니까 알아서 가려보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표절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자료도 몇 개는 존재하기 때문에 팬들도 확실한 건 인정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팬들이 인정하는 표절작은 <ourselves> PV, <CAROLS> 자켓과 아유믹스3 메가믹스 자켓, 기타 아주 흡사한 PV 장면 등등 정도. 그 외에 2002 아레나 투어 오프닝은 누가봐도 비슷한 시기 마돈나의 콘서트 연출을 그대로 카피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노래로는 <Will>과 <GREEN>의 후렴 부분에 의혹이 붙은 적이 있으며 가사로는 Cocco의 노래 몇 곡과의 의혹이 있었으나 이건은 조용히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최근 2010년 이후 레이디 가가의 패션이 유행하자 영향을 받는게 아닌가 라는 말도 나온다. 두 패션 가희의 만남은 2010년도 레이디가가의 방일 일정과 아유의 앨범프로모가 겹치며 뮤직스테이션에서 성사가 되었다. 아유의 검정 드레스는 물론 가가의 의상도 만만치 않아서 즐거운 볼거리를 선사했다. 토크중에는 레이디가가가 아유가 A Museum 라이브 때 입었던 드레스를 대단하다며 칭찬하기도 했다.
6.5. 인스타그램 욱일기 게시 논란
하마사키 아유미, 전범기 의상 입고 공연 논란… 뒤늦게 모자이크 처리
2017년 11월 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콘서트 도중 찍은 것으로 보이는 무대 영상을 게재했다. 하마사키 아유미가 걸친 재킷 가슴 부위에 욱일기가 커다랗게 새겨져 있는 모습이 포착돼 즉각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하마사키 아유미는 논란을 의식한 듯 영상에서 욱일기 부분만 모자이크 처리한 채 새롭게 게재했다. 그러면서 "재게시 미안"이라는 글도 덧붙였다. 이후 유료 팬사이트에는 모자이크 없이 재업로드하였다.
하마사키 아유미의 욱일기 의상을 접한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선, 비판 여론과 더불어 "논란을 인지하고도 굳이 모자이크를 해서 다시 영상을 올린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또 본인에게 욱일기 논란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들을 차단하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한글로 써진 글은 무조건 차단했다. 팬심에 이러지 말아달라는 글이나, 비꼬는 글이나, 한글이면 모조리 차단. 이후 그녀의 모든 포스팅에는 리플을 달지 못하도록 바꿔놓았다 (본인의 유튜브 계정처럼).
욱일기 재킷 자체는 댄서의 의상이었고, MC 도중에 어쩌다 입은 것이므로 제대로 사후 대응은 했다면 비판은 받았겠지만 팬들은 적어도 최소한의 정신승리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스스로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한국 팬들을 매몰차게 차단하는 짓을 저지른 바람에, 그나마 남아있던 한국 팬들이 대거 떨어져나갔다.
6.6. 소설 발매 및 불륜 논란
2019년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자서전 격 소설[30] 을 발매하였다. 제목은 자신의 히트곡을 딴 'M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본인이 직접 집필한 것은 아니고 전문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이 하마사키가 프로듀서 마츠우라와 만나 연애한 뒤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내용인지라 또 한 번 논란이 되었다. 단순한 연애사면 아무 문제 없었겠지만, 소설이 다루고 있는 시기가 마츠우라의 결혼~이혼 시기와 겹치는 데다가 "자신의 몸을 망치는 만큼 한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라는 확인사살하는 멘트까지 첨부하면서 또 한 번 사생활 논란에 휘말리게 되었다. 게다가 데뷔 전의 하마사키는 어찌되었건 미성년자였는데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거의 삼촌뻘 되는 남자와의 연애설을 담고 있으니 좋게 보일리가 없다.
거기다 책 내용에는 마츠우라 프로듀서를 떠올리며 지은 가사가 ''''M''''이라는 사실도 밝히고 있어 팬들과 대중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노래 M의 제목이 마리아가 아니라 사실은 마츠우라였냐' 라며 모두 다 아연실색하는 중. 또한 'Boys & Girls' 역시 마츠우라와 하마사키 자신들의 이야기였다는 사실도 밝히고 있어 팬들의 멘탈을 산산조각 내고 있다.
하마사키의 소설이 화제가 되고, 대표곡 노래가사들까지 덩달아 논란에 오르면서 다른 노래가사들까지 덩달아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특히 데뷔초~2000년대 초반에 썼던 가사들의 내용 중 의미심장한 노래들이 많아 '''"사실은 마츠우라와의 관계를 염두해두고 쓴 가사들이 아니냐"''' 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사실 이 두 곡 뿐만 아니라 Trust, 절망 3부작 vogue-Far away-SEASONS 등도 마츠우라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것으로 보인다.
팬들과 대중들의 반응은 당연히 모두 최악. 안그래도 인기 떨어져서 자질구레한 사생활을 팔고 다닌다는 게 세간의 평인데, 이러한 인식에 제대로 쐐기를 박으며 이미지가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거기다 자신의 히트곡 뒷 이야기까지 파는 모습에 팬들도 '''"이건 정말 아니다"''' 라며 고개를 젓고 있다. 마츠우라와 사귀었다는 찌라시를 꾸준히 부정해오던 팬들 입장과 정반대로 본인이 인정해버린 덕분에 충격의 여파는 더욱 컸다. 논란 덕분인지 소설 자체는 꽤나 큰 화제를 일으켰고, 무려 연간 오리콘차트 서적 부문 7위(판매량은 13만 권)에 오르며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2020년 봄 방영을 목표로 실사 드라마화도 결정되었다. 거기다 하마사키의 이전 발매된 싱글과 앨범까지 덩달아 음원차트 순위에 다시 등장하면서 노이즈 마케팅 효과는 제대로 누렸다.
안자이 카렌 주연으로 드라마화되었고 2020년 4월 18일 첫 방송되었다. 안자이 카렌은 에이벡스의 신인 여가수인데 에이벡스 측에서 강력하게 밀어주고 있다. 당연하지만 마츠우라 사장이 동의하지 않았다면 소설 발표는 불가능했을 것일테고, 드라마화까지 시켜서 안자이 카렌을 주연으로 밀어넣은 것을 볼 때, 이 소설 발표와 드라마화는 하마사키의 독단적인 소행이라기보다는 에이벡스와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7. 개인사
7.1. 우타다 히카루와의 관계
2001년 A BEST/Distance 당시 언론이 라이벌 구도로 몰고 갔지만, 정작 본인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둘은 2005년 뮤직스테이션에서 처음 만났다. 두 가희의 첫 동시 출연에 많은 관심이 쏠렸었고, 둘이 즐겁게 수다를 떨고 웃는 모습이 많이 포착되었었다. 이후로 가끔씩 "히카루짱"이라고 부르며 종종 아유의 글에 올라오기도 하고, 우타다는 아유의 패션이나 가사에 많은 공감을 한다며 (자기가 쓰고 싶은 말만 가사에 쓴다고) 가라오케에서 아유의 노래를 꼭 부른다는등 언론의 라이벌 구도와는 다르게 아티스트와 여성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다.
우타다 히카루의 커버앨범에 참여했기 때문에 사적으로 안다는 소문이 있으나 사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다. 우타다 히카루의 레이블(유니버설 뮤직/Virgin Records)에서 하마사키측에 오퍼를 넣어서 진행된 것으로, 우타다 히카루가 직접적으로 연락을 하거나 작업에 관여하지 않았다.
7.2. 2007년 연인 '나가세 토모야' 와의 결별
2007년 7월 13일에 하마사키 아유미는 중학교 때 사귀었던 TOKIO의 멤버 중 하나인 나가세 토모야와 결국 결별을 맞이했다고 팀 아유 홈페이지에 말했다. 예전에도 이 두 커플은 헤어질 뻔하다가 다시 사귀고 동거까지 할 정도였지만 동거하면서 거리감이 조금씩 생겼다고 한다.
하마사키는 "연인 사이로만 헤어지는 거지 친구 사이로 남겠다"고 코멘트를 남겼지만, 결혼할 거라고 추측하던 팬들과 다른 리스너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다. 덤으로 안티들의 떡밥까지 제공했는데 실제로 2ch에 거주하는 하마사키의 안티들은 하마사키가 이제 대중의 관심을 못 받으니까 남친과 일부러 헤어져서 언론에 뿌리고 화제를 만들려고 한다라는 상식 없는 비난을 퍼부었다.[31]
덤으로 헤어지면서 나가세와 같이 새겼던 등의 A자 문신을 지웠었다고 언론에서 사진과 함께 보도했지만 사실 '''지우지 않았고 10주년 기념 로고로 다시 덧붙였다'''. 지웠다고 말한 사진은 화장으로 커버한 것 뿐이다.
그런데 하마사키가 마뉴엘과 이혼한후 설레발을 치는 기자들은 나가세와 재결합할 거라는 루머를 뿌리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루머일 뿐이다.
7.3. 사생활 팔이 마케팅
하마사키가 자신의 결혼, 이혼, 연애를 소재로 마케팅을 한 것은 2010년 "Virgin Road" 때부터였다. 홍백가합전에서도 무진장 길다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출연하여 이 노래를 불렀는데, 얼마 안 가 이 뮤비에 출연한 오스트리아인 배우 마누엘 슈바르츠와 급거 혼인한 것. 이에 혼인 발표 다음 날 일본의 각종 스포츠지 1면 헤드라인을 "아유 결혼"으로 장식하며 많은 화제가 되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많은 팬들과 대중들이 결혼을 축하하고 좋게 보았다.
그러나 1년 만에 이혼하고 나온 앨범에 "Return Road"라는 곡을 실었다. 뮤비에서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나왔다. 이 즈음부터 하마사키가 본인의 사생활을 음반 홍보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마누엘과의 결혼 자체가 진실성이 없이 마케팅을 위해 의도된 결혼이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2012년 11월 댄서 마로와의 쌍방 불륜 발표 당시에도 각종 뮤비를 통해 떡밥을 잔뜩 깔아놨기 때문에 팬들은 충격은 받았을지언정 예상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사실 이혼 판결은 10월에 났지만 곧바로 마로의 부인이 항소한 상태였다. 그리고 부인 쪽이 항소한 지 한 달이 될까말까한 상태에서 하마사키 아유미가 공개적으로 연애 사실을 터뜨렸고 몇 년 동안 끌어왔던 이혼 절차는 결국 부인이 항소를 포기하고 합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32] 이만하면 본의건 아니건 상당한 민폐. 설령 별거 중이었다 해도 명백히 법적으로 부부 관계에 놓여있는 남자와 제대로 관계 정리도 안한 채 연애를 한 것은 물론 부인 쪽에 피해를 끼친 것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인지 팬들도 이 점에서는 거의 실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난리를 피우며 사귄 마로와는 2013년 1월 헤어졌다. 이 막장 깽판은 하마사키, 마로, 에이벡스가 짜고 친 마케팅, 언플의 일환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마로와의 연애를 공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앨범에 "Bye-Bye Darling"이라는 노래를 싣고 또 그로부터 1달도 안 되어 헤어졌으니 앨범 홍보를 위한 자작극이 아니냐는 것. 이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불륜이 사실이든 자작극이든 팬들과 대중들이 가지고 있던 환상을 산산조각낸 것은 확실하다. 한편 마로는 불륜으로 올라간 인지도로 방송에 나와서 아유와의 연애담을 팔아먹었다. 아유가 마로에게 선물로 루이비통에서 80개 한정판으로 내놓은 시계를 사줬다고. 한때 일본 댄서 중에 톱 3에 들 정도로 수입이 많았는데 아유와 불륜이 터지면서 일도 못하고 댄스 가수로 하겠다고 나왔다가 망하고 AV 회사 SOD에서 런칭한 실크 라보(Silk-Labo)라는 여성향 AV레이블에 배우로 출연했다고 한다.
하마사키는 10살 연하의 미국인 의대생과 재혼하였으나 2016년 또 이혼했다.
그리고는 2019년 논픽션(자서전은 아니다) 서적 "M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어서"를 출간. 데뷔 전부터 에이벡스 마츠우라 회장과 연애 관계였다는 것을 밝혔다. 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 TMI를 책으로까지 발표하면서 화제몰이에 혈안이 된 모습이 대중들은 물론 수많은 동료 연예인들도 공개적으로 "애잔하다"고 평했다. 물론 책 자체는 10만 부가 넘게 인쇄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사생활을 소재로 가사를 쓰고 뮤직비디오를 찍고 곡을 만드는 가수야 많지만 하마사키의 경우 그 사생활에 진실성이 안 보이고, 누가 봐도 뻔하게 관심을 끌기 위해 계산된 노림수였기 때문에 이미지가 급격히 나빠졌을 뿐만 아니라 많은 팬들이 등을 돌렸다.
8. 일본 외에서의 인지도
8.1. 한국
일본에서는 인기가 상당한 편이지만 한국에서는 제 1회 아시아 송 페스티벌 참가를 빼면 나카시마 미카에 비해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며 동명이인인 슈가의 이토 아유미와 동일인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이다.[33] 또한 특유의 비음과 바이브레이션이 심한 창법에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그라비아 시절과 현재모습이 많이 달라서 성형중독자, 성형수술을 많이 한 일본 연예인 사례로 많이 회자되기도 한다. 화장 안 한 얼굴을 보면 중독 수준으로 하지는 않았고 눈과 코만 다르며 덧니를 교정하면서 전체적인 인상도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옛 동방신기의 멤버였던 영웅재중과의 열애설로도 화제가 되었으나 본인이 결혼을 발표하면서 부정된 듯. 방송에서도 친분을 여러 차례 과시했고, 실제로 최강창민의 팬으로 동방신기 일본 팬클럽에 가입했을 정도로 열성적이라고 한다. 2009년 a-nation DVD에서 동방신기 타월을 들고 공연하는 모습과 동방신기가 공연하자 부채를 들며 열광하는 모습은 한국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멤버들과 친분이 깊던 때문인지 동방신기 분리 시에도 JYJ 측 인물을 본인 콘서트나 에이네이션 등에 세우고, 한국에서 열린 JYJ 쇼케이스에 사적으로 내한해가면서까지 방문하거나 해서 일본내 비기스트 및 국내팬들 사이에서도 크게 논란이 되었다.
한국 내 별명으로는 발음 장난인 ''''하마삼킨 아유미''''[34] , 박해미와 눈매가 비슷하다고 해서 ''''해미사키 아유미'''', 줄여서 ''''해미'''' 라는 별명이 존재한다.
한때 일본 정상급 가수였던 만큼 한국에서도 인지도는 꽤 있었고, Moments, Memorial address 등의 곡이 일본 문화에 관심 있는 유저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좋았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팬덤 활동도 활발했고 그만큼 극성 팬도 많았다. 하지만 일본 대중문화의 침체, 하마사키 본인의 구설수와 인기 하락으로 점점 팬덤이 위축되다가 욱일기 건과 인스타 한국 팬 차단 건까지 터지면서 2018년 현재는 한국 팬이 줄어들었다.
이와 별개로 하마사키 본인은 트위터에 어색한 한글 멘션을 가끔 올리거나, 한국 드라마(미안하다 사랑한다) 시청 소감을 올리기도 하고, 인스타그램에 한국 음식점, 요리 사진을 업데이트 하거나 회식을 불고기집에서 주로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현재 같이 일하는 스탭이나 댄서, 코러스 등 핵심 멤버 중에도 한국계가 있는 등 지한파로 생각되는데, 이에 관련해서 우습게도 일본내 하마사키의 안티들이 재일 조선인 의혹 등을 거론하며 선거권이 없다느니 하는 소문을 내고 있다. 데뷔 때 인터뷰나 프로필에서 좋아하는 음식으로 초콜렛과 김치를 꼭 적었었는데 이런것도 들고 와서 까는 식이다.
2004년 4차 개방 이후 국내가수 사라가 하마사키 아유미의 evolution 뮤직비디오 스타일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베껴서 활동한 적이 있다. 당시 워낙 인지도 없는 신인 가수여서 크게 화제는 안 되었지만 일본 문화 팬들은 한 눈에 알아보고 비난했었다. 참고로 evolution은 2001년 발매된 곡이다.
8.2. 구미권
구미권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지만 일부 와패니즈 일빠들 사이에서는 많이 유명하다. Mirrorcle World의 파리 로케 메이킹 필름이나 Rock'n'Roll Circus의 런던 로케 메이킹 필름에서는 사인을 받으려고 몰려든 서구권 팬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8.3. 중화권
중국에도 일본 여가수들의 인기투표 중 1위를 할 정도로 지지도가 매우 높다. 아시아 투어당시 초대형 돔구장을 대여하고 투어했는데 2시간만에 좌석이 완매되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대만엔 그녀가 입국할 당시 몰려올 정도로 인기가 상당한데 대만 가수들의 인기를 능가한다고 한다. 홍콩에서도 인기가 좋은데 2010년 6월에는 하마사키가 홍콩에 들어온 걸 가지고 홍콩 연예 뉴스에서 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일본 본토와는 다르게 홍콩과 대만에서는 아직 앨범을 발매하면 1위를 하고 이슈가 되고있다. 뮤직비디오의 로케이션도 중국 (GREEN), 홍콩 (glitter/ fated), 대만 (Winter Diary) 에서 찍기도 한다. 이런 중화권을 인식해서 08년에 나온 싱글컬렉션의 마지막 트랙 Who를 만다린어로 불러 수록하기도하고, 싱가포르 화교 가수인 임준걸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해서 같이 듀엣도 하고, 대만의 아이돌 SpeXial과 콜라보 곡을 발매해서 많은 인기와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A BEST를 싱가폴에서 45만여만장, 인도네시아에서 10만여장을 판매하였다. 그쪽 음반시장규모를 생각한다면 상당한 수치.
아시아투어를 개최한다 할때도 사실상 일본에 곁다리로 중화권 다녀온다 느낌이 들정도로 중화권 투어규모가 많았던걸 생각해볼 때 확실히 다른 곳은 몰라도 중화권에서의 인기는 탑 중의 탑. 하마사키 특유의 화려한 무대퍼포먼스나 색감짙은 화장. 강렬한 컨셉 등이 인기 요인이라고.
9. 기타
9.1. 타이업의 저주?
노래가 드라마, 영화에 타이업이 되면 반드시 망한다거나 망할 것 같은 매체물에 타이업이 된다는 징크스가 존재한다. 전성기 때부터 내려왔던 징크스인 걸 보면 아유는 타이업하고 전혀 인연이 없는 것 같다. 팬들은 '드라마가 노래를 홍보하는 게 아니라 노래가 드라마를 홍보하는 격이라고 말한다.
이 징크스를 아는 리스너들과 팬들은 그녀의 노래가 드라마나 영화에 타이업이 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불안해한다. 댄디대디, 드래곤볼 에볼루션, 일기예보의 연인, 마이 리플 셰프, 시노비 등 등 하마사키 아유미 곡이 주제가로 채택된 작품은 대부분 망하거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다만 이 속설은 당사자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측면도 있다. 애초에 저 작품들은 타이업 유무를 따지기 전에 기본적인 완성도면에서 상당히 안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꼽히는 일기예보의 연인이나 시노비, 드래곤볼 에볼루션 같은 작품만 봐도 욕한바가지로 얻어먹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처음부터 망삘이 강하게 오는 작품들만 타이업이랍시고 달아오니 당연히 망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타이업이 노래-작품 둘다 윈윈하는 시스템이라고 하지만 주제가란 결국 작품에 딸려오는 부수적인 존재 정도일 뿐이다. 기본 작품이 안좋은데, 노래까지 흥하기를 바라는 건 다소 무리한 요구일지도.
항상 망하는 것도 아니다. 애니메이션 이누야샤 3기 오프닝 Dearest는 작품과 곡 모두 대박이었으며, 게임 테일즈 오브 엑실리아와 테일즈 오브 엑실리아 2로 타이업된 progress와 Song 4 u는 게임 자체도 준수한 성과를 냈거니와 노래가 게임의 덕을 봤다. 각각 디지털 다운로드 25만 건, 10만 건 이상 인증을 받았으며 특히 Song 4 u는 디지털 판매량 인증을 받은 마지막 하마사키의 노래이다.
9.2. 곡명 대소문자의 법칙
하마사키 아유미의 노래 타이틀들을 보면 다 영어인 데다가 특히 몇몇 타이틀은 '''대문자로만 이루어져 있고 아니면 대소문자 혼용이 있다든가 소문자로만 이루어진 타이틀들이 많다'''.
이것에 대한 의미는 가사랑 같이 해석해야 하는데 대문자로만 이루어진 타이틀은 "이미 답을 찾았다" 라는 의미이며 대문자로 시작하는 타이틀은 "답을 찾고 있는 중" 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소문자로만 이루어진 타이틀은 "답을 찾지 못했다" 는 의미다. 특히 절망 3부작인 vogue-Far away-SEASONS는 꼭 대소문자를 이렇게 써줘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대소문자의 법칙은 안 지키고 그냥 보기 좋은 대로 표기를 정하는 것 같다. 몇몇 곡은 아직도 대소문자 법칙을 넣고 있다.
9.3. LGBT 아이콘, 게이 디바
일본에서는 게이 아이콘으로 유명하다. 게이들은 원래 카리스마 있고 당당한 이미지의 여성 솔로 가수들을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 게이 디바 포지션으로 비교될 만한 가수로는 김완선, 엄정화, 이효리 등이 있다. 미국에는 마돈나, 신디 로퍼, 레이디 가가, 중화권에서는 채의림같은 가수가 대표적인 게이 아이콘. 물론 '게이 아이콘'이라는 것과 모든 게이가 이 가수들을 좋아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 어쨌든 게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은 사실이며, 본인도 LGBT에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8년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에 헤드라이너로 참가하여 무료 라이브를 진행했다. 이를 두고 비즈니스라거나, "그동안 한 번도 성소수자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더니 인기가 떨어지니 이용한다"고 비아냥대는 시선도 있지만 사실 하마사키는 오래 전부터 성소수자에 친화적이었다. 가수 데뷔 전 아역 시절 청소년 게이를 소재로 한 퀴어 영화에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2010년 Lady Dynamite의 PV는 드랙 퀸들과 함께 게이 클럽 콘셉트로 촬영하였고, 2012년 how beautiful you are이라는 곡은 가사와 PV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인생을 그려냈다. 또한 퀴어 퍼레이드 인터뷰에서도 밝혔듯 예전부터 스케쥴이 없을 때는 종종 단골로 찾아가는 바도 있었을 정도로 꽤 오랜기간 LGBT쪽과 인연을 이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예전부터 닛쵸메 부근에서 찍힌 파파라치 사들이 가십지에 몇 번 실린 적도 있다.
일본 내에서 비슷한 포지션에 위치한 다른 게이 디바로는 아무로 나미에, 코다 쿠미등이 있다. 헤이세이 시대의 디바 들 중에서는 아무로 나미에와 투 탑이었는데, 하마사키 아유미 쪽이 하락세를 차고 나서 부터는 아무로는 게이 디바, 하마사키는 드랙퀸들의 디바 정도로 포지션이 약간씩 갈린 느낌이 있다. 그래도 여전히 게이들 사이에서 인기는 꽤나 좋은 편이다.
인기 요인으로는 자아가 강하고 크게 성공한 여성 아티스트라는 점과 화려한 퍼포먼스, 여왕 이미지, 특유의 고독하고 현학적인 가사 등이 주로 꼽힌다. 특히 드랙퀸 공연에서는 거의 단골 레파토리로 늘 커버하는 무대가 하나 씩은 나올 정도로 인기가 좋은 편이다.
9.4. 여담
- 단순히 동방신기 팬인 것을 넘어 한국에 관심이 많다. 한국 드라마도 많이 본다고 하며 미안하다 사랑하다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트위터에서도 한국어로 트윗을 날리면서 한국팬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었다.
- 에이벡스 내에 지인들과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이 일 중독자라고 말할 정도로 가수 활동에 전념한다. 덕분에 자기복제도 하고 매너리즘에 많이 빠져도 본인은 신경 안 쓰는 듯.
- 가사를 쓸 때는 절대 거짓된 것이나 상상의 세계는 쓰지 않는다고 하며 자신이나 친구가 경험한 일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시로 쓰고 싶다고 하며 솔직한 걸 좋아한다. 현재는 사랑에 대한 시를 쓰고 싶어서 사랑에 관한 가사가 많이 늘었다.
- 아버지가 7살 때 집을 나가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으나 다큐멘터리에 후쿠오카로 잠시 갔었을 때 부둣가에 아버지와 함께 낚시하던 기억은 남아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재일 한국인이라는 설이 있는데 루머이다.
- 돔투어 때 스탭의 실수로 무대 밑으로 떨어져 다리를 다치는 부상을 입었었으나 팬들을 위해서 진통제를 맞아가면서 콘서트를 진행했다.
- 자신의 최측근들과 밴드 멤버들, 댄서진, 스탭들을 꽤나 많이 아껴서 콘서트 때 같이 부르거나 댄서들에게 아이폰을 사주는 등 엄청 잘해준다.
- Natural Selection라는 MOD 게임에선 이 사람 이름의 맵이 공식적으로 포함됐다.[35]
- 프린세스 메이커 5의 주 무대인 하마사키 시는 이 가수의 성에서 따왔으며 본인은 공연 이벤트에 나오는 "마츠사키 아유미" 로 나온다.
- 어머니는 2002년쯤에 창업을 했는데 가게 이름이 하마사키의 노래 중 하나인 "HANABI" 이다.
-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어른제국의 역습" 에서는 인기 스튜어디스로 등장한다. 다만 대사로만 언급된다.
- 김연아와 라이벌 구도로 유명했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아사다 마오가 하마사키 아유미의 팬이라고 하며 관련 티셔츠를 입고 투어 공연까지 갈 정도로 열성팬이라고 한다. 국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BLUE BIRD>의 후렴구를 짤막하게 부른 적이 있다.
- 만화 사채꾼 우시지마 "게이" 에피소드에서는 인물들 대사로 "아유" 로 언급되며 작중 에피소드의 등장인물은 "왜 요즘 사람들은 아유에 열광하는 건지 모르겠다" 고 말하는 데다가 가사에 대한 칭찬도 나온다.
- 캡콤 제작 호러 게임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등장 여캐 레베카 체임버스는 이 가수를 모델로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 휴대폰 소설의 원작 연공 에서도 하마사키 아유미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여주인공 미카가 남주인공인 히로와 헤어지고 난 후 학교 문화제에 부를 노래로 하마사키 아유미의 극초창기 노래 중 하나인
를 부르자고 친구들에게 권유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언급이 된다.[36] 이후로도 그녀의 노래인 는 작품 중간중간 여주인 미카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역할로 쓰이는 등 연공 자체에서 중요한 복선 역할을 하게 된다. 참고로 연공 코믹스에서는 가 실려있는 앨범[37] 의 자켓의 모습도 보인다.[38]
- 은혼의 장편 시리즈 은혼/펜팔편에서 애니메이션 기준 126화에서 시무라 신파치의 방에 붙여진 데라카도 츠우의 포스터 중 하나가 하마사키의 싱글인 BLUE BIRD의 자켓을 패러디했다.
- 각트와도 친분이 두텁다 각트는 하마사키 아유미를 아유아유라는 애칭으로 부르고, 하마사키는 가쿠라고 서로를 부르는 등 사이가 매우 좋다. 팬들 사이에서 취급은 남매. 2016년 각트는 새로운 앨범의 곡으로 하마사키 아유미의 seasons를 커버하겠다고 밝혔고, 하마사키 아유미 측의 반응도 매우 긍정적. 2017년 1월 1일 12시에 각트는 해당 앨범 곡을 공개했다. 2017년에는 아유의 콘서트 MC를 맡았던 오와라이 트랜디 엔젤이 Another World를 불렀는데, 도중에 각트가 깜짝 출연해 게스트 공연을 하고 가기도 했다. 하마사키와 포옹하기도 하는 덕에 양측 팬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2017년 5월 26일, 2008년에 이미 청력을 잃은 왼쪽 귀에 이어 오른쪽 귀의 청력까지 심하게 쇠퇴했다고 밝혔다. 또한 무릎 슬개골이 악화돼 올해 들어 수술과 재활 치료를 해왔다는 사실도 고백했다. 때문에 2012년부터 장거리 달리기는 하지 않고 있다고 하며 최근에는 왼발에 테이프를 붙이고 공연한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2008년 과로로 쓰러지면서 넘어져 오른손을 다쳐 긴급 수술을 받았고 2014년에는 라이브 투어 도중 전신에 염증이, 2015년 투어 중에는 폐렴, 지난해에는 급성 기관지염으로 공연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쯤되면 그냥 걸어다니는 종합병원급으로 봐도 무관하다.
- 그녀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아유판(ayupan)이 있다. 네이버 라인 스티커도 있는데, 구판이라 그런지 디자인이 좀 충공깽(...) Bloody Bunny와 크로스한 ayupan x Bloody Bunny(유튜브 채널/네이버 라인 스티커)의 디자인은 많이 낫다.
- 춤을 굉장히 못추는 가수로 유명하다. 일본 웹사이트 등지에서는 '왜 춤도 못추면서 맨날 안무를 넣냐' 며 성토하는 글들도 많았다. 일명 '타코오도리' 라며 꼭 폭주족들이 흐느적대는 모양새같다고(...) 놀리는 이들도 많았다. 요즘으로 치면 춤신춤왕의 원조격.
10. 음악성
하마사키 아유미의 음악은 90년대 말~2000년대 중반까지의 대중적인 J-POP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90년대 말에는 테크노와 유로 댄스 색채가 섞인 팝을 주로 했으며 2003년 이후로 록 발라드의 비중이 늘었다. 본인은 록 음악 매니아로 어릴 때부터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을 좋아했다고 한다. CREA 명의 자작곡 몇 곡들을 잘 들어보면 발라드 곡에도 일렉 기타 리프가 들어가거나 록 성향이 꽤 강하다는 걸 알 수 있고 이외에도 록 노래는 필수적으로 나오고 있다.
하마사키 본인은 록 발라드를 벗어나서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보려고 했지만, 항상 "새로운 시도 - 판매량 저하 - 록 발라드로 회귀 - 현상유지"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새로운 시도 중에는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었던 것도 있지만 Party Queen처럼 그야말로 커리어를 곤두박질치게 한 것도 있었다. 이런 반복을 겪으며 2010년대에는 트렌드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트랜스 리스너들에게도 꽤 알려졌던 가수이기도 한데, 사이버 트랜스[39] 믹스 싱글로 여러 트랜스 뮤지션들과 교류했기 때문이다. 이 중에는 Ferry Corsten, Above & Beyond, Aly & Fila, 아민 반 뷰렌, Alex M.O.R.P.H., Rank 1등 트랜스계의 거물급 아티스트들도 있었다. 2014년 신작 앨범인 Colours의 리드싱글인 'Terminal'은 아민 반 뷰렌이 프로듀싱하는 등 아직도 교류는 하는 듯.
m-flo의 2014년작 'THE FUTURE IS WOW'의 'My Way'라는 곡에 피처링으로 참가한 바 있다. 곡 자체는 전형적인 트랩 악곡이다.
10.1. 대표곡
그 외에도 여름 노래 July 1st, Greatful Days, fairyland, BLUE BIRD, glitter, Sunrise ~LOVE is ALL~, You & Me와 겨울 노래 No way to say, CAROLS, JEWEL, Together When..., Days, You were... 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10.2. 작사
하마사키는 일부 커버곡을 제외한 모든 곡의 가사를 작사하였다. 하마사키가 일본 1~20대 여성들의 우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가사인데, 동년배들의 고민이나 아픔을 그대로 담아낸 가사가 대중들의 공감을 샀던 것이다. 비록 2000년대 후반 들어 매너리즘에 빠지고, 본인의 구설수들로 인해 비판을 받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하마사키의 가사에 공감하고 위안을 받은 것은 변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가사들.
언제나 "강한 아이구나"라는 말을 들어왔어. "울지도 않고 대견하네"라고 칭찬도 들어왔어. 그런 말들은 하나도 바라지 않았어. 그래서 모르는 체 해왔어. (중략) 있을 곳이 없었어, 찾지 못하였어. 미래에 기대를 걸 수 있을지 모른 채… (A Song for XX, 1999)
연인들은 너무나 즐거운 듯 손을 잡고 거닐고 있으니까 말야, 마치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양 보여. 진실은 두 사람만이 알아. (appears, 1999)
목소리를 죽인 카나리아들은 울 수 없게 된 게 아니라 그저 울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줘. 사람이라면 더더욱…. (kanariya, 1999)
너를 활짝 피워내봐. 아름답게 꽃이 핀 그 후에는 그저 조용히 져버릴테니까……. (vogue, 2000)
오늘이 너무도 슬퍼서 내일 만일 울고 있으리라고 해도, "그런 날도 있었지"라고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몇 번이고 흘러가는 계절 속에서 우리들은 살아가며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SEASONS, 2000)
말하자면 홀로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된다 해도, 그런데도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여기에 와줘. 이 손을… 너에게 만일 날개가 남아있지 않다고 해도 나에게 만일 날개가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함께… (Endless sorrow, 2000)
만약 이 세상이 승자와 패자라는 두 가지 분류로 갈린다면, 나는 패자라도 괜찮아. 언제나 패자로 있고 싶어. (no more words, 2001)
꼭 좋은 일만이 있지는 않을테지만. 나에게는 네가 필요한 것 같고, 너도 내가 필요하다면, 거기에 따로 이유는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나쁘지 않을지도, 이런 날들. (independent, 2002)
너를 다시금 떠올릴 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너를 잊어버릴 일이 없으니까. (HANABI, 2002)
우리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이 여행길을 걷네. 누구나 모두 말할 수 없는 상처를 지닌 여행자일 거야. 함께 가자, 질릴 때까지. (Voyage, 2002)
너의 부서져버린 꿈의 파편이 내 가슴을 찔러, 잊어서는 안될 아픔으로서 새겨져가. (중략) 갈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헐벗은 마음이 닿는 것을 두려워하며 날카로운 가시를 두르네. 새처럼 날갯짓할 수 있다면 네가 있는 곳에 날아갈 거야. 그리고 상처 입은 그 등에 나의 날개를 내어줄게. (Moments, 2004)
저 바다로 이어지는 길을 순수하게 한바탕 웃으며 달려나갔던 멀고 먼 여름날, 지금도 가슴 속에 남아있는 어릴 적의 우리들. 그 앞에 기다리는 미래같은 건 알 리가 없이… (중략) 그날부터 얼마나 무언가를 좇으며 찾고서는 다시금 잃어버리기를 거듭해왔지만, 여기에 있는 웃는 얼굴이 알려줬어. 우리들은 지금 영원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걸. (fairyland, 2005)
현실은 언제나 짓궂게 우리들을 휘둘러. 하지만 그래, 그 속에 너만의 답이 숨겨져있어. 채워지지 않는 미련이 만약 있다면 그것은 너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 (talkin' 2 myself, 2007)
확실히 한계를 느껴서 모든 것에 등을 돌리고 웅크렸던 날들도 있었지만. 이젠 헤매지 않아, 후회따윈 없어. 너와 만난 것은 운명이었는데. 내가 나인 이유를, 존재하는 의의를 주고 가르쳐주는 것은 언제나 너니까. (Microphone, 2009)
반짝이는 미래가 이 부패한 것들 사이에 만약 있다면 너와 함께 보고 싶어. 이런 소원이 아직 용서받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조금 더 걸어나갈 수 있을 거야. 이런 시대를… (The way I am, 2018)
10.3. 작곡
2000년~2005년까지 "CREA"라는 이름으로 직접 작곡을 했다. 앨범 수록곡이나 커플링곡으로 한두 곡 쓴 것이 아니고, M, evolution, Endless sorrow 등의 굵직한 히트곡을 단독으로 작사작곡했으니 작곡 능력은 출중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가오 다이와 함께 공동 작곡한 곡 중에도 Voyage, July 1st, Dearest 같은 인기곡이 많다. 그러나 2003년 작곡한 forgiveness가 영 신통치 않은 반응을 얻기도 했고 본인의 작곡 스타일에도 한계가 있어서인지, 2005년 이후로는 본인이 작곡한 곡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11. 관련 작곡가 목록
- DAI (Boys & Girls, Trauma, monochrome, SEASONS, AUDIENCE, BLUE BIRD, BALLAD 등 작곡)
- 유쿠미 테츠야 (Moments, INSPIRE, JEWEL, GREEN, Memorial address, Step by step 등 작곡)
- 나가노 유타 (Mirrorcle World, talkin' 2 myself, Microphone 등 작곡, 주로 편곡 전담)
- CMJK (편곡 전담)
- BOUNCEBACK (No way to say, ourselves, Shake It, GAME, Because of You 등 작곡)
- HAL (편곡 전담)
- 카즈히로 하라[40] (STEP you, Startin', glitter, You Were..., Curtain Call, We are the QUEENS 등 작곡)
- 호시노 야스히코 (A Song for XX, MOON, blossom, beloved 등 작곡)
- 키쿠치 카즈히토 (appears, vogue, SURREAL, HEAVEN 등 작곡)
- 코무로 테츠야 (Love song, A Song is born, Virgin Road, You & Me, Feel the love 등 작곡)
- 쿠니오 타고 (Together When, untitled ~for her~, Days, Zutto... 등 작곡)
- Timothy Wellard (BRILLANTE, how beautiful you are, Party Queen, Survivor 등 작곡)
12. 링크
12.1. 공식 웹사이트
- avex 공식사이트
- 하마사키 아유미 오피셜 공식 웹사이트
- 뮤직비디오 유튜브 재생목록
- 재생목록 자체는 일반 사용자가 만들었지만, 재생목록에 등재된 동영상들은 모두 에이벡스가 공식으로 올린 것들이다. 일부 곡들과 원래부터 뮤직비디오가 짧은 곡을 제외한 2012년까지의 모든 곡들을 풀 버전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일본 국내에서는 국가 제한이 걸려있어 볼 수 없다.
- 유투브 공식 채널
- 뮤직비디오들이 1절 분량만 편집되어 올라가 있다.
- 하마사키 아유미 공식 트위터
- 하마사키 아유미 공식 마이스페이스
12.2. 커뮤니티
- 「Team ayu」하마사키 아유미 공식 팬클럽
- 가입하면 매월 팀아유에서 발간하는 "팀아유 매거진" 이라는 하마사키 아유미에 관한 정보를 담은 잡지와 특전으로 팀아유 한정이라는 굿즈를 받는 영광을 얻을수 있다. 하지만 가입은 일본 현지인만 가입 가능하며 해외에 가입하고 싶은 사람은 일본 지인에게 대행을 해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단 최근에는 해외회원들도 가입할 수 있게 되면서 영어와 한국어를 지원하고 있다.
- 「Ayumi Hamasaki Sekai」해외 하마사키 아유미 팬 커뮤니티
- 무려 2002년부터 운영되어 온 하마사키 아유미의 서양권 팬 포럼이다. 무려 43만건이 넘는 글들이 게시되어 있으며, 현재에도 이 포럼에서 활동하며 정보를 공유하거나 아유와 관련된 잡담을 나누는 양덕들이 많으니 서양쪽의 반응이 궁금하거나 혹은 과거의 글들을 연어질하고싶으면 눈팅해볼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최근에 아유의 유튜브 채널에서 개최된 ayumix 2020 프로젝트에도 이 커뮤니티 유저들 다수가 참여하였다. 더군다나, 한국 팬 커뮤니티와 일본 팬 커뮤니티 모두 현재 글 리젠이 암전이라는것을 고려해본다면, 아직도 하루에 몇십명 가까이 접속하고 글을 남기는 이 해외 커뮤니티가 유일한 아유의 허브홈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활성화되어있다.
- 「A Song for ×× 하마사키 아유미 팬들의 쉼터」 네이버 공식 팬카페
- 2004년에 개설된 하마사키 아유미 팬카페로 국내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하마사키 아유미의 자료들이 매우 방대한 편이다. 팬카페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지금 그나마 J-POP 팬카페 중에서는 무난하게 운영되고 있다.
- 「아유사랑」 다음 공식 팬카페
- 2000년에 개설된 국내 하마사키 아유미 팬카페로 다음 카페들 중에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었다.
- 「My All AYU」 다음 팬카페
- 아유사랑은 오래된 자료가 많이 축적되어 있다면 이쪽은 2011년 연초 신설된 카페로써 어느 카페보다도 가장 빠르고 정확한 정보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2017년 현재 아유사랑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유령카페가 되어가고 있다. 또한 한 익명 커뮤니티에서 카페지기의 구설수로 인해 카페지기가 교체된 상황이다.[41]
- 호주 쪽 팬사이트
- 오른쪽 하단의 아유팡을 클릭하면 관련 사이트로 입장한다. 하지만 현재 주인장이 아유에 대한 팬심이 떨어진 건지 링크는 삭제하였으며 홈페이지는 더이상 업로드되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