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모토 미키

 


'''모닝구 무스메 역대 리더'''
요시자와 히토미

'''후지모토 미키
(2007.05~2007.06)'''

다카하시 아이
'''모닝구 무스메 역대 서브 리더'''
요시자와 히토미

'''후지모토 미키
(2005.04~2007.05)'''

다카하시 아이
''' 후지모토 미키 '''
''' 藤本 美貴 | Miki Fujimoto '''
[image]
'''본명'''
'''庄司 美貴(しょうじ みき (쇼지 미키, Miki Shoji)'''[1]
'''출생'''
1985년 2월 26일 (39세)
홋카이도 타키카와 시
'''국적'''
[image] 일본
'''신체'''
156cm, A형
'''배우자'''
쇼지 토모하루(1976년생)(2009.07.03 결혼 ~ 현재)
'''자녀'''
장남 쇼지 토라노스케 虎之助(2012년 3월 27일생)[2]
장녀 쇼지 츠바사 羽沙(2015년 8월 1일생)[3]
차녀(2020년 1월 24일생)
'''소속사'''
J.P ROOM, 저스트 프로덕션
'''레이블'''
Rice Music[4]
'''별명'''
'''미키티''', 데비루[5], 미키탄[6]
'''링크'''

1. 개요
2. 활동
2.1. 솔로
2.2. 모닝구무스메 영입
2.3. 탈퇴 이후
3. 인물
3.1. 가창력
3.2. 이미지
3.3. 엄청난 비율
4. 음반
4.1. 싱글
4.2. 앨범
5. 에피소드
6. 근황
7. 재일 의혹
8. 소속 유닛


1. 개요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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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로프로 가창력의 대표 주자'''

모닝구 무스메의 6기 멤버. 애칭은 '''미키티'''.

2. 활동


[image]
2002년 솔로 데뷔 싱글 '''会えない長い日曜日''' 당시
[image]
2003년 모닝구무스메 가입 싱글 シャボン玉 당시
[image]
2007년 모닝구무스메 졸업 싱글 悲しみトワイライト 당시

<솔로 데뷔 싱글 '''会えない長い日曜日''' PV>

<모닝구무스메 가입 싱글 シャボン玉 PV>

<모닝구무스메 졸업 싱글 悲しみトワイライト PV>

2.1. 솔로


후지모토 미키는 모닝구무스메의 4기 멤버를 뽑는 '제 3회 모닝구무스메 추가오디션'에 참가 했다가 낙선하였으나 [7] 사무소에서는 그녀에게 따로 연락을 하여 훈련 받을 것을 권유, 홋카이도에서 상경해서 본격적인 훈련을 받았다.[8]
CD데뷔 이전 2001년에 테레비도쿄 계열 드라마 「新 미소녀 일기」에 출연했고, 하로프로 2002년 콘서트 참가를 거쳐, 2002년 3월 13일 '''会えない長い日曜日'''로 싱글 데뷔하였다.
2002년 10월에는 고토 마키, 마츠우라 아야 와 함께 「고맛토」를 결성해 1st 싱글 「SHALL WE LOVE?」를 발매하였다.
솔로곡 중 최고의 아웃풋을 냈던 ロマンティック浮かれモード로 데뷔 해인 2002년에 홍백가합전에 출장했다. (심지어 모닝구무스메 4기와 5기 멤버가 미키티 무대의 백댄서로 나왔었다)ブギートレイン'03 역시도 대중들이나 언론들에게 호평을 받으면서 솔로 가수로서 상승세(?)를 달리고 있었으나, '''홍백가합전 출전 바로 다음주에''' 모닝구 무스메로의 투입이 층쿠의 입을 통해 발표된다.[9] 어찌됐건 당시 후지모토 미키가 모닝구에 가는게 이상하긴 했으나, 엄청난 탑가수의 위치는 아니었다. 이제 막 시작한 신인 정도였으니 모닝구로 영입하는게 말이 안되는건 아니었다. 실제로 아직 말라가기 전의 음반 시장에서 10만장은 커녕 7만장도 넘어본적 없으니 압도적인 가수는 아니었던것은 분명하다.

2.2. 모닝구무스메 영입


2003년 1월에 모닝구무스메 6기 멤버로 영입되었다.
6기 멤버라고는 하지만, 영입 이후의 노래 파트 지분율은 원 멤버에 못지 않았고. 거의 센터나 다름없는 가수생활을 한다[10]. 입학후 모든 싱글에서 부메인 이상의 비중을 얻었었다. 일각에선 층쿠의 신데렐라라고까지 불리기도 했었다. 일례로 2005년 이후 졸업전까지 모닝구 무스메의 콘서트에서는 후지모토의 솔로무대가 있다.
그러나 본인은 솔로 가수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는지, 그룹 내에서도 조금 겉돈다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데비루'라는 별명을 얻으며 거침없는 케릭터를 가지게 된 것이 바로 이 시기. 같은 기수 멤버인 미치시게 사유미다나카 레이나도, 후지모토가 당시에 어느정도 혼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에피소드를 예를 들길, 한 선배 기수 멤버가 '6기들 모여봐' 라고 하면 '아, 후지모토는 빼고!' 같은 말을 했다고..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점차 갈수록 그룹 활동에 익숙해져 가는 모습을 보였다.
4대 리더였던 요시자와 히토미가 2007년 5월 6일, 모닝구 무스메를 졸업 함으로써 서브리더였던 후지모토가 5대 리더가 되었다.
리더 취임한 바로 몇주 후인 2007년 5월 24일 코단샤의 사진 주간지 "프라이데이"에 게닌 콤비 '시나가와 쇼지'의 '쇼지 토모하루'와 같이 있는 사진이 실렸다.
[image]
당시 사진
문제는 그 때가 마침 리더를 맡고 첫 콘서트 기간 중었다는 것과 쇼지 토모하루가 평소 여자관계가 복잡한 것으로 나름 유명했던 점. 그리고 2007년 6월 1일, 모닝구무스메를 '''자진 탈퇴'''함으로써 '''리더 25일 재임''' 이라는 기록을 세우셨다. [11]
당시에는 급작스런 탈퇴로 인해 많은 논란이 있었고, 팬들 사이에서도 '솔로 데뷔 하려고 탈퇴한거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퍼지기도 했다. 워낙 평소 후지모토의 이미지가 거침없고 드센 케릭터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탈퇴가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져서기도 했다. 그런데 훗날 인터뷰에서 '파파라치 사진이 실린 뒤 일주일간 기억이 없을 만큼 쇼크상태'였음을 고백했다. 내색을 안했을 뿐 본인에게 상당히 힘든 시간이고, 힘든 선택이었던 듯.
후에 카운콘에서 미치시게 사유미와의 MC타임때, 사유미가 "후지모토 리더와의 추억이 아무것도 없어요!" "GAM 하는 사이에 임기가 끝나버렸어..."등의 네타로 써먹기도 했다.
리더 재임기간이 25일인지라 몇몇 사람들은 요시자와 히토미의 졸업과 미키의 리더 재임소식, 그 후 탈퇴소식을 한꺼번에 알기도 했다고..

2.3. 탈퇴 이후


후지모토 미키의 이름으로 통산 네 번 째 싱글을 내고 잠시 솔로 활동을 했다. 이 때 방송에 나올 때마다 '''모닝구 무스메의 전(前) 리더'''라는 말이 꼭 나왔는데, 소속사가 방송에 나오는 멘트 하나하나까지 관여하는 일본의 방송 현실을 생각하면 업프론트나 후지모토 미키나 흑역사로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
탈퇴 초기에는 배신감을 느껴 분노하는 팬들이 많아 하로프로 팬들 사이에서도 여론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쇼지와 행복하게 연애 & 결혼 & 출산을 겪어나가는 모습에 팬들이 다시 마음을 돌리고 응원하게 되었다. 더구나 아이를 둘이나 낳은 이후에도 몸매나 외모, 가창력을 여전히 수준급으로 유지하고 있는지라 하로콘 게스트라도 뜨면 팬들은 닥치고 '''미키사마 미키사마 벌을 내려 주세요!!'''[12]모드.
탈퇴 이후 2018년 현재까지 예능프로그램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OG들 중에서도 손꼽히게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중.

3. 인물



3.1. 가창력


가창력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인물중 하나이다. 서두에도 써있듯 '코창력' 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비음 문제야 일본 여자 가수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이긴 하지만, 미키의 경우 비음이 심해서 트로트 창법이라는 평이 많다.
하지만 후지모토 미키의 경우 발성이 되지 않아서 코로 공명점이 몰리는 '비음'이 아니라, 비강을 공명점을 두고 발성하는 '비성창법'을 쓰는 것이라서[13], 가창력 자체는 상당히 준수하다.
성량도 우렁차서 모무스 활동 시절 다 같이 부르는 파트에서는 미키나 다카하시 아이 의 목소리가 잘 들리는편. [14] 폐활량 또한 좋아서 라이브를 안정적으로 하는 멤버이기도 하다. 안무가 꽤 격한 노래일때도 별로 흐트러짐이 없는 라이브를 보여준다.
비음 가수의 문제점인 음정 문제가 미키에게도 있는데, 잘 튀는 음색,성량 이라서 한번 삐끗 하면 정말 티나게 잘 들린다. 하지만 이러나 저러나 '''하로프로에서 손꼽을 가창력'''의 소유자인 점은 대부분 동감하는 편.

3.2. 이미지


  • 츳코미키티라는 별칭이 있을정도로 츳코미의 달인. 그당시 멤버들의 증언에 의하면 빛의 속도라고 카더라. 이이다 카오리등 선배들도 예외없이 츳코미를 날려 과연 미키티라는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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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밐포스'''라고 불리는 포스사진이 유명하다.
명대사는 '층쿠 나가이'.[15] 이 계보의 연장선상에 있는 어록 중은 큐트하기와라 마이의 '층쿠라든가 와서 즐거웠다'정도.[16]
  • 이 사진 한장으로 그녀의 캐릭터가 설명된다.
(모닝구무스메 하와이 팬클럽 투어 때 팬들의 질문에 답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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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는 성격에다가 방송중에도 간간히 포스넘치는(...)모습이 포착되어 '데비루(devil)'라는 별명으로 불렸다.[17] 그런 기센 면모와는 반대로 무대에서는 각잡힌 퍼포먼스와 노래, 팬들에게는 확실한 팬서비스라는 갭을 보여줬다.[18]

3.3. 엄청난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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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56cm에서 나올 수 있는 비율의 최대치라고 칭할 만큼 비율이 엄청 좋다. 보다시피 얼굴이 매우 작고 다리가 매우 길기 때문에 혼자 있으면 절대 156 cm로 안 보일 정도. 당시 일본에선 평균 키보다 1~2cm 작은 거니 엄청 작은 키는 아니지만 비율이 정말 좋고 다리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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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샷을 보면 얼마나 비율이 대단한지 더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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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월계관이다. 남들이 다 머리에 쓸 때, 후지모토는 머리가 너무 작아서 월계관이 그냥 머리를 통과해서 목에 안착했다.

4. 음반



4.1. 싱글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수록 앨범
비고
2002.03.13
会えない長い日曜日
13위
43,670장
MIKI①
2002.06.12
そっと口づけて ギュッと抱きしめて
4위
40,450장
2002.09.04
ロマンティック浮かれモード
3위
65.888장
[19]
2002.11.07
ボーイフレンド
4위
54,956장
2003.02.05
ブギートレイン'03
8위
50.737장
2008.04.23
置き手紙
29위
24,746장

[20]

4.2. 앨범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비고
2003.2.26
MIKI①
3위
128.502장

5. 에피소드


  • 모닝구 무스메의 족보 브레이커(...)로 통한다. 일단은 6기지만 4기 오디션 출신이라 업프론트 입사 자체는 4기들과 동기였고, 데뷔작인 '신 미소녀 일기'는 5기 데뷔보다 살짝 빨리 방영을 시작했다[21]. 이때문에 정식 기수로는 6기지만 사실상 4.5기로 취급된다. 활동하면서 많이 엮인것도 주로 4기들[22]. 회사에서도 후지모토를 5기의 후배로 보지 않았기에 5기인 다카하시보다 먼저 리더에 취임했다.
  • 조련능력으로는 하로프로 중에서도 따라올 사람이 없다. 솔로활동 시절부터 미키사마 미키사마 벌을 내려주세요. 라는 전설의 응원을 탄생시킨 장본인. 솔로시절 최고 히트곡인 '로맨틱 듬뿍 모드' 전주만 흘러나오면 아직도 본능적으로 오타게를 장전하는 덕후들이 그렇게 많다 카더라...
  • 참고로 모닝구 무스메를 탈퇴하고 난 후에는 엔카 가수로 전향, 싱글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그저 그랬고, 작은 동네의 조그만 쇼핑몰이나 할아버지들이 모이는 비좁은 엔카 전문 씨디 가게에서 사인회와 라이브를 개최하기도 했다. 물론 몇백명의 인파가 몰리기는 했지만 화려한 무대위에서 수만 인파를 상대로 라이브를 펼치던 전성기를 생각하면 쓸쓸하고 초라하기 그지 없는 모습이었다. 단, 골수팬들은 그녀를 끝까지 응원했고 동네 슈퍼에서 열리는 작은 라이브조차도 몇시간 전부터 자리를 맡고 미키티의 이름이 새겨진 부채를 들고 미키티를 외치며 그녀를 지켰다. 미키티는 그런 팬들을 위해 하로 프로 시절의 히트곡을 라이브로 선물했는데, 차마 무대라고도 부를 수 없는 보잘것 없는 무대 시설에, 동네 노래방 수준도 안되는 음향시설이었지만 홍백 출전 때 불렀던 노래를 최선을 다해 열창하는 모습에 팬들은 눈물을 흘렸다.
  • 남편인 쇼지 또한 그런 그녀를 서포트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방송 중에 모닝구 무스메 네타가 나와도 절대 입을 열지 않고 미키티를 지켰다. 나중에는 이게 오히려 캐릭터로 굳어졌다.
  • 반대로 둘 사이가 완전히 공인된 이후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미키티를 밀고 나가는데, 이게 오히려 "사이좋은 부부" "저희 잘 살고 있습니다"분위기를 내며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공헌했다. 아메토 크]]의 "아이폰 잘 못 쓰는 게닌"편]
  • 후에 약혼발표날 비로소 쇼지가 언론을 향해 큰 소리로 "미키티!!!!!!!!!!!!!!!!!!!!" 라고 외쳤는데, 나중에 미키 콘서트에서도 했다. 네타로 쓰이는듯[23]. 이후 미키티도 예능프로그램에서 이따금 "쇼지!!!!!"를 외치기 시작했다.
  • 연애하던 시절 쇼지의 집을 청소해주러 갔다가 수십개의 야한 dvd를 발견, 전부 분쇄기에 넣고 갈아버렸다고 한다(...). 방송에서 이 얘기를 하자 같이 출연한 남자 게스트&mc 전원이 자기 일 처럼 절규...
  • 연애하던 시절의 에피소드중 하나로, 스캔들이 퍼질걸 저어해 쇼지와 방송국에서 만나도 서로 모른척 지나가는걸로 합의를 하고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는데, 어쩌다 애견을 데려갔을 적에 미키의 개가 쇼지를 보자마자 반갑게 달려가서 안겨들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저 개가 참 사람을 좋아하네 라면서 넘어갔는데 쇼지의 파트너인 시나가와는 "어째서 쇼지에게만... 설마?"라며 슬쩍 눈치를 챘다고(...)
  • 또다른 에피소드로, 원래 개그계에서도 성격 더럽기로 소문났던 시나가와와 약간 흐리멍텅한 성격의 쇼지는 툭하면 싸웠는데, 어떤 날 결국 화가 난 시나가와가 "그래 좋다, 오늘로 해산이다! 더이상 너랑 콤비 안해"라며 해체선언을 하고 "그래도 내맘대로 해산하기만 하면 너에게도 억울한게 있겠지. 기왕 해산하는 거, 오늘 너 속에 묵혀놨던 이야기 다 해 봐. 사이 끝내기 전에 들어는 줄게"라며 씩씩거리니 쇼지가 진지한 얼굴로 "... 나 사실, 미키티랑 결혼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욕을 할 거라 생각했던 시나가와는 당황해서 독기가 빠진채 "어? .. 어.. 응.. 어.. 저기.. 신혼집은 어쩔거야?"라며 얼빠진 답을 했고 이날 둘이 진솔하게 대화를 하며 사이를 회복했고 시나가와도 결혼한 후 성격이 둥그래져서 현재는 꽤나 사이좋은 콤비가 되었다. 이후 "미키티 덕에 해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라며 술회할 정도.
  • 쇼지 토모하루와는 2009년 7월 11일에 결혼함으로서 모닝구 무스메 멤버 중에서는 5번째로 결혼한 멤버가 되었다. 연애사실이 밝혀졌을 때에는 상대가 워낙 여자 밝히기로 유명했던 쇼지라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으나, 미키티를 만나고서는 그야말로 애처가로 변신해서[24] 각종 닭살에피를 양산하고 있다.
  • 마츠우라 아야와는 절친이었다. 후지모토 미키의 솔로 콘서트에도 마츠우라 아야가 VCR로 출연했을 정도다. 다만 결혼 후에는 각자 가정생활에 바빠서 사실 상 따로 만나지 않고 있다. 서로 결혼하고 아이를 안은채 우연히 백화점에서 만난적이 있을 정도. 정말 오랜만에 봐서 후지모토 미키가 블로그에 마츠우라의 사진을 올려줬을 정도로 최근엔 연락처도 모른다고 한다.
  • 얼굴이 매우 작다. BoA가 방송에서 말하길 장어덮밥의 그릇 덮는 뚜껑으로 가려봤는데 가려졌다고. 그러나 정작 본인은 머리에 맞는 모자가 없다며 불평. 현재 다카하시 아이와 절친 사이.
  • 같은 모닝구무스메의 멤버였던 이시카와 리카와는 현역때 사이가 좋지 않기로 꽤 유명했다. 팬들은 알다시피, 이시카와는 잔소리가 꽤 심하고(...) 이것저것 간섭을 많이 하는 타입이기에 후지모토는 그것이 꽤 귀찮다고 느꼈을 것. 그러나 이시카와가 모닝구를 졸업 한 이후엔 꽤 사이가 좋아진 것으로 보이며 가끔 서로의 블로그에 투샷이 종종 올라오기도 한다.
  • 2012년도 도쿄 걸즈 콜렉션 게스트로 갔던 아이유와 투샷이 존재한다. 앨범까지 인증했다. 아이유를 만나기 위해 대기실까지 찾아갔었다고. 참고로 당시에 만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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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편인 쇼지 토모하루가 엉덩이로 호두를 깨는 일본 개그맨(...)으로 SBS 스타킹에 출연한적이 있는데 덕분에 미키의 PV가 잠시 방송을 타기도 했었다. 후지모토가 호두를 깔아준다고. 선배 개그맨인 미야사코 히로유키가 "남편이 저런 개그(팬티 한장 입고 아내 이름 외치는 나르시스트 기믹)하는데도 괜찮냐?"라고 질문했을 때 "나는 그런게 재미있더라"라고 인증한 거 보면 이러저래 천생연분인 듯(...)

6. 근황


  • 2012년 3월 27일, 첫째를 출산했다. 남자아이로 이름은 토라노스케.[25] 다른 멤버들이 아이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것에 반해, 미키티는 블로그를 통해 아이의 얼굴을 공개했다. 아예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을 가보면 아들 사진, 아들 동영상이 깔려있다.
  • 2013년 3월 24일, 10년만의 솔로 라이브를 개최했다. 타이틀은 「후지모토 미키 10주년 기념! 대감사 라이브! 『하룻밤 한정! 완전 부할! 미키티』」 게스트로는 元 모닝구무스메 멤버인 나카자와 유코와 니이가키 리사가 참가해 듀엣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공연을 보러온 야스다 케이를 불러내어 함께 토크를 실시하기도 했다. 여기에 사실, 2013년은 데뷔 11주년. 데뷔 10주년이 되는 2012년 3월에는 만삭 상태였으므로 후지모토는 라이브를 하고싶다고 했으나 사무소 사람이 만류하는 바람에 라이브가 금년에 열렸다고 보고했다. 또한 여기에 훈훈한 광경(?)이 펼쳐졌는데, 토크 중에 졸업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후지모토는 "갑자기 없어져 버려서 죄송했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자 팬들은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 그리고 후에 남편 쇼지의 블로그에 갱신된 내용에 의하면, 쇼지는 "미키티의 라이브가 개최된 것은 기쁘지만, 여러분들이 좋아했던 미키티를 볼 수 없게 한 건 저의 책임이었습니다"라며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을 한 번 거절했다고 한다. "미키티의 부활을 보러온 축제에 내가 있으면 흥이 깨버리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그러나 당일 회장에 도착하자 팬들 사이에서 쇼지 콜이 터져나오는 놀라운 광경이 일어났다고 한다. 굿즈를 소개하는 시간에서도 쇼지 콜이 있어 "팬들이 '미키티!'를 외치라고 하는듯해 미키티!를 외칠 수 있었다"고. 쇼지 본인이 말하길 "하로프로 팬 분들의 좋은 분위기와 커다란 사랑이 느껴졌습니다"라고 전하고 있다 [26] 이런 쇼지의 심정이 인터넷에 올라오자, 미키티의 팬들은 이런 한마디를 남겼다. 같은 여자를 사랑한 남자니까.
  • 스캔들로 많이 까였지만 현재 모닝구무스메, 아니 넓게는 하로프로 소속에서 야구치 마리츠지 노조미, 사토다 마이[27]와 함께 버라돌로 잘 나가고 있다.
  • 미모보다는 팬 조련이나 예능감에 중점을 둔 현 일본 아이돌 판을 고려하면 후지모토 미키의 미모는 상당히 우월한 편에 속한다.[28][29]
  • 2015년 1월 30일,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라고 공식 블로그에서 발표했다. 5월, 본인이 밝히기를 임신 중인 아이는 딸이라고 한다.
  • 여담으로 쇼지는 부부간에 다툼이 있던 날이면 미키티의 무대영상을 보면서 이 미키티님이 나랑 결혼해주셨는데, 내가 더 잘해야지.라고 마음을 다잡는다고 한다(...). 싸우고 화해하자는 제스쳐로 "와라!"하고 외치면서 (와서 안기라고)팔을 벌리는데, 잘 안받아주면 미키티에게 팔을 벌리게 하고는 자기가 달려들어 안긴다고. 이런 애정행각 덕분에 2009년(즉 결혼한 바로 그 해)에 곧 이혼할 것 같은 연예인 부부 2위에 꼽혔음에도[30] 지금까지 잘 살고 있는 듯.
  • 8월 1일 드디어 둘째 아이(딸)를 낳았다고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예정일은 7월 30일이었는데 이틀 늦게 출산했다고... 남편인 쇼지도 인스타그램에 딸을 안고있는 사진을 갱신했다.
  • 2016년 3월 부로, 아베 나츠미와 함께 M-line 클럽을 졸업한다. 자세한 졸업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 2019년 8월 5일 , 셋째 아이를 임신 중이라고 공식 블로그에서 발표했다.

  • 2020년 1월 24일에 셋째 아이(딸)를 출산했다.

7. 재일 의혹


데뷔 이후로 재일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일본 연예인 중 한 명이다. 그러나 후지모토 미키 본인이 한국계라고 밝힌 적은 없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
부모님은 홋카이도에서 '''야키니쿠''' 집을 경영했었고, 후지모토 자신도 미키정(美貴亭)이라는 고깃집을 경영한 적이있다. 음식점 사업은 괜찮게 잘 되어가고있었는데 본인 가게에서 식사를 한 고등학생 16명이 전원 식중독(...)에 걸린 사건이 발생하는 바람에 결국 폐점을 하고 말았다.링크
2016년에는 닛테레의 예능방송 '세계 제일 받고 싶은 수업'에서 타액에 들어있는 DNA로 선조들을 알아본다는 기획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 게스트로 출연했던 후지미토 미키는 전문가로부터 DNA 구조가 '중국 대륙의 황하문명과 관련된 한민족이나 조선족에게 많은 타입'이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뿐만 아니라 이때 표정이 급속도로 안좋아졌다고.
블로그에 올리는 음식들만 보아도 반찬 위에 를 뿌리고 나물반찬(일본에는 나물반찬이 없음)을 해먹는 등 한국 음식에 상당히 익숙해보인다. 또 외가가 '사랑', '갈비'(...)라는 한국이름의 애완견들을 기른 적이 있다.(현재는 입양) 임신 중에 증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한국에 방문한 적도 있었다. 다만 이런 의혹들은 어디까지나 의혹일 뿐이다. 상술했듯이 후지모토 미키 본인은 지금까지 한번도 한국계라고 밝힌 적이 없고 일본의 관보에 귀화 기록도 없기 때문에 사실 여부는 불분명하다.

8. 소속 유닛


  • 모닝구무스메(2003년 ~ 2007년)
  • 셔플 유닛
    • 오도루♥11 (2002년)
    • 11WATER (2003년)
    • H.P.올스타즈 (2004년)
    • 섹시오토나쟝 (2005년)
  • 고맛토 (2002년)
  • 컨트리무스메에 콘노 아사미와 후지모토 미키(2003년 ~ 2007년)
  • Gatas Brilhantes H.P. (2003년 ~ ) ※부주장
  • GAM (갸무) (2006년 ~ 2007년)
  • 드림 모닝구 무스메 (2011년 ~)
[1] 결혼 전 본명은 '''후지모토 미키'''.[2] 남편인 쇼지가 한신 타이거즈의 팬이라 이름을 토라노스케로 지었다. 참고로 토라는 일본어로 호랑이, 호랑이는 한신 타이거즈의 상징이다.[3]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무서울 것이다”라는 일본 속담에서 따왔다. 虎는 아들의 이름인 토라노스케(호랑이)이고, 翼가 딸의 이름인 츠바사(날개)이다. 물론 둘 다 발음만 같고 이름에 쓰인 한자는 다르다.[4] 업프론트 그룹에서 소유한 레코드 회사. [5] 데빌의 일본식 발음.[6] 마츠우라 아야가 지어 준 별명.[7] 에이벡스의 오디션에도 참가했다가 낙선했다고 한다. [8] 지금 식으로 따지자면 오디션 낙선 후 연수생으로 재합류한 것으로, 현재 하로프로에서도 모닝구 오디션 출신 연수생은 엘리트 인재 취급을 받는다. 어찌보면 미키티가 이 흐름의 첫 타자인 셈.[9] 홍백 출전을 했다고는 해도 발매한 싱글(홍백 출장 당시에는 아직 정규1집도 나오기 전이었다.)이 차트 1위를 한 적은 없었고, 당시 싱글 판매량만 보면 홍백에 나올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싱글 판매량은 동시기 활동했던 소닌보다 떨어졌다. 갓 반응이 오기 시작한 정도 수준.[10] 사실 2003년부터 발매된 모닝구 싱글 판매량은 많아봐야 후지모토 미키 솔로 싱글들의 2배정도에 불과했고, 심지어 풀렝스앨범은 모무스 본체와 미키티 솔로가 엇비슷했다. 업프론트 매출 측면에서나 미키티 본인으로서나 모무스 보다는 솔로 활동이 더 이득이었을 확률이 높다.[11] 같은 케이스인 야구치 마리는 그래도 3개월은 리더를 했다.[12] 오타게항목에도 예시로 영상이 올라간 미키티 팬들의 전설의 오타게 멘트.[13] 간단히 말하자면, 장윤정같은 트로트 여가수들 창법에서 트로트식 잔기교를 빼고 발성만 똑같이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일본 여가수들 사이에서 비성창법 자체는 상당히 흔한 편이다. 탁성이라서 완전 엔카수준인 하마사키 아유미같은 경우도 있고.[14] 떼창 파트라고 제일 입만 뻥긋뻥긋(…) 할거같은 사람이 노래는 또 성실하게 부른다. 당시 후지모토의 인기 비결이 이런 드센 케릭터 답지 않은 실력과 성실함이었다.[15] 참고영상. 14분 15초부터. [16] 왜 이게 대단한 발언이냐 하면 그 오디션 때 하기와라의 나이가 '''6살'''이었기 때문. 프로듀서에게 층쿠또까..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하선생, 미키티를 차용한 삘이 나는 하기티로 불린다. 흠좀무[17] 대기실에서 다나카 레이나미치시게 사유미를 갈구는 도청파일이 떠돌았는데, 이게 데비루 이미지에 쐐기를 박았다.[18] 누가 봐도 꺼릴법한 '키모오타'에게도 다가가서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는 일화가 있는데, 일반적인 '아이돌'하면 떠올리는 '천사같은' 대응은 아니었지만 악수회 등에서 팬들에게 붙임성있게 말을 걸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멤버였다.[19] 홍백가합전 출전곡이다. 솔로가수 후지모토 미키의 최고 히트곡.[20] 초동이 5,771 장이었으나 롱런하는 엔카 특성상 20주나 차트에 등장하시어 4.28배인 24,746 장을 팔았다. 엔카는 롱런이 제맛![21] 5기들이 후지모토에 대해서 '입사 선배'라고 언급한 적도 있다.[22] 사실 모무스에서 기수별 존칭이나 경어사용이 확립된건 10기부터다. 선배기수들과 달리 9기-10기는 이례적으로 나이나 가입 간격이 너무 가깝다보니 회사차원에서 존칭사용이라도 못박도록 지침을 내렸던 것. 이전에는 기수가 선배라도 호칭을 편하게 하거나 말 트고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 케이스가 쯔지카고. 대신 '대기실의 아베상' 전설처럼 잡을 땐 무섭게 잡았다.[23] 파트너인 시나가와 히로시는 "정신 차려보니 시나가와쇼지의 츳코미 담당에서, 수영팬티 한장 입고 아내 이름을 외치는 직업으로 전직해 있더라"라고 발언[24] 연애시절 다른 게닌이 '여자애들도 있는데 올래?'라며 술자리 권유 전화를 하자 나는 사랑에 눈을 떴어!라며 앞으로 그런 연락을 하지 말라고 부탁한 건 유명한 일화.[25] 원래는 파오(羽男)라는 이름으로 하려 했는데, 후지모토가 "그런 이름이면, 커서 회사원이 됐을 때 상담이 깨질 것 같다"라며 반대해서 평소 좋아하던 한신 타이거즈에서 호자를 따와 토라노스케라고 지었다고.[26] 사실은 미키티가 "이 자리에서의 추억은 현장에 함께 있던 분들과 간직하고 싶다"며 실황 dvd를 발매하지 말아달라는 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27] 셋 다 공통점이 유부녀다.[28] 메챠이케 최근 AKB 운동회 중간에 보건 선생님으로 나왔을 때를 보면 애엄마인데도 현직 아이돌들에게 꿀리지 않는 미모를 자랑하고 있다.[29] 20대 여성이 뽑은 아름다운 유부녀 베스트10에서 아이돌 출신 중 유일하게 5위[30] 게다가 당시 1위는 사카이 노리코 부부로, 실제로 다음해인 2010년에 이혼했을 정도로 2009년부터 거의 확실시 되던 터라, 어떤 의미에선 실질적 1위라는 소리까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