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나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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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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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가수, 예능인. 모닝구 무스메의 1기 멤버이며, 동생으로 아베 아사미가 있다. 애칭은 '''낫치'''로 거의 공식 명칭이나 다름없다. 모닝구 무스메의 초대 메인으로 모닝구 무스메를 상징하는 얼굴마담이라고도 평가된다. 그래서 데뷔 초부터 소속사의 폭풍푸쉬, 그에 비례하는 초 인기 멤버였다. 그래서, 모닝구 무스메 팬들 사이에서 불렸던 별명은 업프론트 회사를 먹여살리는 '업프론트의 공주님'이었다.[3]
한국팬들에게는 종종 그 특유의 웃는 모습이 최진실을 닮았다고 해서 '아베 진실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2. 활동
<데뷔 싱글 愛の種 PV>
<졸업 싱글 愛あらば IT'S ALL RIGHT PV>
2.1. 모닝구 무스메 시대
사실 아베가 센터가 된 비화가 있는데 애초 센터는 이이다 카오리로 확정되어 있었고, 곡도 이이다의 이미지에 맞는 곡으로 데뷔하려고 했지만, 결정단계에서 이이다의 목상태가 안 좋아 녹음이 미미하게 끝나버렸고, 데뷔날짜를 얼마 안 남기고 아베의 이미지로 변경이 되면서 이이다는 센터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여기서 아베가 틈을 타서 층쿠에게 졸랐다는 낭설이 있지만, 그냥 낭설일 뿐이다. 이이다는 그 후로 쭉 코러스, 부메인으로 된다.
그 후 쭉 후쿠다 아스카와 센터를 맡다가 후쿠다가 탈퇴 후 "한여름에 광선"과 "후루사토(고향)"에서 혼자 센터를 맡지만, 반응은 미미했다. 그 후 LOVEマシーン으로 추가 멤버인 고토가 바로 센터로 낙점되자 스트레스를 엄청 받게 되었다고 한다. 고토 마키가 들어온 것이 본인에게 엄청난 자극이 되었다고. 그 후로 스트레스성 폭식으로 살이 포동포동하게 찌게되어 만월모드를 각성하여 보는 팬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다만 고토 마키가 너무 부각되어서 그렇지, 아베 나츠미의 인기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고토 마키가 대외적 원탑이었다면 아베는 팬덤 1위 정도의 포지션이었다. 굳이 한국 아이돌계로 비교하자면, 소녀시대 최전성기 시절의 윤아와 태연 정도의 관계였다고 보면 된다.
친동생인 아베 아사미 역시 솔로 가수로 데뷔했고, 첫등장은 13위였지만 1~12위가 모두 B'z의 싱글 재발매였던지라 실질적으로는 2위로 데뷔했다.
2.2. 표절 소동
2004년,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모닝구 무스메를 졸업하였다. 솔로 가수로서 활동하던 중, 같은 해 12월에 터진 도작소동(표절)로 인기가 추락했다. 당시 냈던 사진집과 에세이에 썼던 시들이 사실은 다른 아티스트(aiko, 코무로 테츠야의 곡들 등)의 노래 가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이로 인해 아베는 자숙 기간에 들어갔고, 발간했던 에세이, 사진집, 발매 예정이었던 싱글 鳴り止まない タンバリン도 발매 중지되었다. 또 유닛 노치우라 나츠미로 홍백 출장하게 된 것도 취소되어 고토 마키와 마츠우라 아야 둘이서 홍백에 나갔다. 하로프로 전 멤버들이 방송에 나와서 머리를 숙여 사과하는 등 수난을 겪었다.
본인의 해명으로는 마음에 드는 노래 가사나 시가 있으면 노트에 적어두는데, 자신도 모르게 글을 쓰면서 그것을 인용했다고 한다. (굳이 일연갤이 아니어도 개인 블로그나 음지 커뮤니티 등지에서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개인 팬들 등등이.) 또 이 일 이후로 알게 모르게 오토바이와 충돌 등의 사고를 쳐서 민폐녀 이미지가 확립되기도 했다. 그래도 업적이 있어서 회사가 뒷수습은 최대로 열심히 해 줬다.
배우 오시오 마나부와의 스캔들이 또 알게 모르게 유명한데… 오시오 마나부의 자택에서 1박하고 아침에 나오는 것이 목격. 일하고 다시 그곳으로 들어갔다. 소속사에서는 '''밤새 플스 게임을 하고 있었을 뿐, 연인 사이는 아니다'''라고 해명. 이 사건은 팬들도 이었으나 조용히 묻혔다. 역시 열심히 소속사가 커버했다.
2.3. 이후의 활동
- 솔로 싱글 중 일곱 번째 곡인 ザ・ストレス(더 스트레스)는 소속사 선배인 모리타카 치사토[4] 의 커버곡으로, 하로프로 자켓 역사상에서 정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다. 자켓이 일본의 국회의사당. 팬들은 자켓이 공개되자 그야말로 충공깽. 곡에 매치시켜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쌓이는 자켓이라는 평을 얻었다. 그 자켓에 숨겨진 의미를 분석한 팬들도 다수. 또 오죽 답답했는지 팬들이 얼굴이 나온 사진으로 자켓을 만들어 너도나도 인터넷에 올리고 한탄하기도 했다. 그나마 PV는 잘 뽑았다.
- 후배인 큐트의 리더 야지마 마이미와 KAN 작곡의 16歳の恋なんて(16세의 사랑 따윈)이란 곡을 내기도 했다. 낫치가 26살, 마이미가 16살로, 큰언니가 막내동생에게 뭔가 연애에 대해서 알려주고 묻고 하는 컨셉의 곡. 업템포의 산뜻한 곡으로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 2009년에는 하로 프로젝트를 졸업. M-line 클럽으로 이적했다.
- 2010년 오랜만에 솔로 싱글 雨上がりの虹のように를 발매했는데 성적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 2011년에는 M-line 클럽에 소속돼있던 모닝구무스메 기존 멤버(나카자와 유코, 이이다 카오리, 야스다 케이, 야구치 마리, 이시카와 리카, 요시자와 히토미, 오가와 마코토, 후지모토 미키, 쿠스미 코하루)들과 함께 드림 모닝구무스메 결성을 발표한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모닝구무스메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멤버로 1등은 누가 뭐래도 아베 나츠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만 인기가 없다. 한-일 양국의 인기 격차가 가장 큰 멤버라고 할 수 있다.
- 2011년 모닝구무스메 OG 멤버 다수가 집결해 결성한 드림 모닝구 무스메로 활동한다는 것을 공식 발표했다. 4월부터 콘서트 투어 및 앨범이 발매한다고 한다.
- 2015년 12월 결혼을 발표했다. 상대는 5살 연하의 뮤지컬 배우인 야마자키 이쿠사부로. 둘은 2011년 뮤지컬 폭풍의 언덕에서 부부역으로 출연했으며 그 후로 열애설이 종종 났으나 인정하지 않다가, 2015년 초에 열애를 인정했다.
- 2016년 2월, 임신 소식을 알렸다. 현재 안정기라고 하는걸로 봐선 아마 속도위반의 가능성이 높았다.
- 2016년 3월 부로, 후지모토 미키와 함께 M-line 클럽을 졸업한다. 졸업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 2016년 7월 27일, 첫 아들의 출산 소식을 알렸다.
- 2017년 12월 13일에 1기 멤버 5명이 전부 모여 길거리에서 5만장을 팔아야지만 데뷔할 수 있었던 싱글곡 [愛の種 / 아이노타네 / 사랑의 씨앗]을 FNS가요제에 출연해 18년만에 부른다.
- 2017년 5월 10일, 둘째 임신 소식을 발표했다. 가을에 출산 예정. 링크
3. 음반
3.1. 싱글
3.2. 앨범
[1] 결혼 전 본명은 '''아베 나츠미'''.[2] 2014년에 발표한 ふるさと의 셀프 커버버전 PV 중 한 장면이다.[3] 아래의 설명에서도 나오지만, '업프론트의 여왕님'은 일본의 전설적인 여자 아이돌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모리타카 치사토다.[4] 일본의 전설적인 아이돌로 지금도 유명하며, 가창력도 출중하고, 드럼이나 기타같은 악기도 잘 다루고, 작사와 작곡까지 할 줄 아는데다, 잘 빠진 각선미에다 빼어난 미모까지 겸비한 만능형 캐릭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초 인기 아이돌이었다. 또한, 한국의 가수 강수지의 라이벌로 회자되는 하수빈의 실질적인 모티브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는 일본의 배우 에구치 요스케와 결혼했다. 아베 나츠미의 별명이 업프론트의 공주님이라고 부른다면, 모리타카 치사토의 별명은 업프론트의 여왕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뭐.. 실제로 아이돌계의 4대 여왕으로 군림했을 정도로 유명하기도 했으니 수식어가 어색하지도 않고, 현재 업프론트 그룹 사장이나 중역들 상당수가 모리타카 치사토의 담당 스탭들 출신이고 모닝구무스메를 만든 주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