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흐무드 모크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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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3]
1.1. 선수 생활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즐겼던 모크타르는 특히 볼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법과대학에서 공부하던 모크타르에게 알 아흘리 SC가 손을 내밀었고 1922년부터 알 아흘리에서 뛰게 되었다. 그의 데뷔전은 영국 항공팀과의 이집트 컵이었는데 알 아흘리는 모크타르의 결승골로 2대1의 승리를 챙겼다.
모크타르는 17년간 알 아흘리에서 뛰었고 국가대표팀에서는 3번의 올림픽과 1번의 월드컵에서 활약했다.
첫 올림픽이었던 파리 올림픽 당시 모크타르는 시험과 일정이 겹쳤다. 그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올림픽 참가를 말렸지만 모크타르는 결국 파리에 갔고 이집트는 헝가리를 꺾으며 8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집트는 8강에서 스웨덴에 0대5로 대패하여 8강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한편 시험지는 파리에서 전달받아 치렀다고 한다.
다음 올림픽에서 이집트는 4강에까지 오르며 당시까지 대표팀 역사상 가장 큰 성공을 이루었다. 하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탈리아에 3대11로 참패하여 메달을 따는데에는 실패했다. 모크타르는 이 대회에서 4골을 기록해서 알리 무함마드 리아드와 팀 내 득점 공동 1위에 올랐으며 터키전에서는 해트 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1934년 월드컵에는 주장으로 출전했지만 이집트가 1라운드에서 헝가리에 2대4로 패하며 단 한 경기 출전에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1936년 올림픽에서 이집트는 1라운드 상대인 오스트리아에 1대3으로 패하여 모크타르와 이집트는 당시까지 올림픽 커리어 최악의 결과를 들고 왔다.
1.2. 이후
모크타르는 1940년 축구 선수 은퇴를 발표했다. 많은 동료들은 물론 기자와 이집트의 유명 인사들까지 그의 결정을 꺾기 위해 설득했지만 정상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그의 생각을 뒤집지 못했다.
은퇴 이후에 모크타르는 알 아흘리의 감독을 포함, 이집트 올림픽 위원회에서 활동했다. 1965년, 이집트의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는 모크타르에게 1등급 훈장을 수여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그의 별명인 엘 텟시는 키가 작은 편이지만 점프력이 좋아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빠르면서도 유연한 당대 이집트 최고의 축구 스타였다.
3. 수상
3.1. 클럽
- 카이로 리그 우승 11회: 1924–25, 1926–27, 1927–28, 1928–29, 1930–31, 1933–34, 1934–35, 1935–36, 1936–37, 1937–38, 1938–39(알 아흘리 SC)
- 이집트 컵 우승 8회: 1923–24, 1924–25, 1926–27, 1927–28, 1929–30, 1930–31, 1936–37, 1939–40(알 아흘리 SC)
- 술탄 후세인 컵 우승 7회: 1922–23, 1924–25, 1925–26, 1926–27, 1928–29, 1930–31, 1937–38(알 아흘리 SC)
- 이집트 컵 준우승 4회: 1925-26, 1931-32, 1932-33, 193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