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밀레니엄 구분'''
기원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제4천년기 이후
'''언어별 명칭'''
'''한자'''
歷史
'''그리스어'''
ιστορία
'''라틴어'''
historia
'''영어'''
history
'''프랑스어'''
histoire
'''스페인어'''
historia
'''독일어'''
Geschichte
'''아이슬란드어'''
saga
'''베트남어'''
lịch sử
'''일본어'''
歴史[1]
'''중국어'''
历史/歷史[2]
'''태국어'''
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
'''러시아어'''
история
'''이탈리아어'''
storia
'''에스페란토'''
historio
1. 개요
2. 어원
3. 특징
3.1. 역사의 발전?
3.2. 역사에 만약은 없다?
3.3. 권력/정권의 정당성 부여 수단
3.4. 왜곡의 방법?
4. 분류
5. 명언
6. 기타
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 中

역사는 크게 3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첫째는 과거에 있었던 일 그 자체로의 역사, 둘째는 기록이나 흔적으로 남겨져 있는 역사, 셋째는 기록을 통해 역사가가 재구성한 탐구의 결과물이다.[3]
변화의 과정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순히 과거의 일을 공부하는 것은 고고학이나 인류학도 있으며, 가장 기본적인 역사의 정의는 시간에 따른 인간생활의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선택과 재구성(고고학)은 '기록으로서의 역사', 뒤의 인간과 변화(인류학)는 '사실로서의 역사'를 의미하는 문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생활변천을 나타내며, 이를 증거할 만한 문자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시대는 선사시대라고 구분하여 그 이후(역사시대)와 별칭한다. 일반적으로 문자의 사용 시작은 청동기시대 이후로 보지만 국가나 지역에 따라 그 연대가 달라질 수도 있다. 다만 자체 기록이 없더라도 인접국의 기록이 있다면 어떻게든 유추가 가능하며, 유목민족 같은 경우에는 그 시초와 소멸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을 역사학 또는 사학이라고 하며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개개인마다 현상을 보는 것이 다르므로 매우 다양하며 개인이나 일개 집단이 일률적으로 현상을 정의 내릴 수 없다. '''역사를 연구하거나 바라볼 때에는 비판적인 시각을 기준으로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

2. 어원


역사라는 단어 자체는 메이지 유신 당시 'History'를 일본에서 한자화한 단어다. 고종실록 이전 연산군이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라고 말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적이 있으나, 그전부터도 한자 문화권에서는 '史'[4]가 역사 또는 역사를 기록한 편찬물[5]에 두루 쓰였다.
한편 서구권에서의 단어 유래는 다음과 같다. 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사가 헤로도토스가 역사서인 'ἱστορίαι'(직역하면, "탐구들" 또는 "정보들"이란 뜻)를 썼는데, 인류 최고(最古 : 가장 오래된) 역사서라고 여겨진다.[6] 전 9권으로, 당시 아시아-유럽 간 분쟁의 유래로부터 페르시아 전쟁까지를 서술하고 있는데 마지막 권은 미완성이다. 이 책 이름이 단어 History의 어원이다. 자세한 사항은 헤로도토스 항목 참조.
영어 'history'의 어원이 'his story'라는 민간어원도 있다. 역사는 '야훼의 이야기'이기에 '그의 이야기'에서 출발한 단어라거나, 또는 역사는 여성이 배제된 남성들만의 이야기라는 것에서 출발했다는 것. 그러나 언어학적으로 이는 사실이 아니며, 영단어 history는 고대 그리스어 '''히스토리아(ἱστορία)'''에서 유래되었다. 단어사적으로 '진실을 탐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historia, 그 어근인 histor-는 '증인' 혹은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라는 뜻과 관련된다.# 영어 history의 어원이 정말로 his story라면, 왜 프랑스어에서는 histoire라고 하고 스페인어에서는 historia라고 하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영어의 his에 해당되는 프랑스어 단어는 son 또는 sa이고 스페인어 단어는 su이다. 또한 영어의 his에 해당되는 그리스어 단어는 του이다. 그러나 저 주장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신조어로서의 '허스토리(herstory)'는 남성중심적인 시각에서 쓰여진 역사관을 비판하고 경종을 울리는 의도로 말장난처럼 사용되기도 한다.[7] 일례로 1970~80년대 영미권의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남성들 위주로만 구성된 학계 커뮤니티와 그에 따른 남성중심적 역사관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의미에서 '허스토리'라는 문구를 사용했다.[8]
한편 독일어는 다른 어원을 가지고 있다. 독일어 단어 'Geschichte'는 '일어나다', '발생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geschehen'에서 유래한 말로, 일어난 일, 발생한 사건을 뜻하는 동시에 발생한 사건에 관한 지식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3. 특징


역사를 정의할 때,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역사는 "과거의 사실이 전달자(주로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고 재구성된 것"이라고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이비 역사처럼 역사가 왜곡되어 전달되었다는 게 아니라, '''과거의 사실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든 간에 선택 및 재구성하게 되어 있다'''는 점을 뜻한다. 자신의 입장과 가치관에 따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는 만큼, 그 이후의 자료 수집도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정리된다는 것이다.[9] '''그러므로 객관적인 역사란 없다.'''
과거 인류가 거친 노하우나 과오를 기록한 것이 역사이다보니 아래와 같은 사건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되고 있다.[10] 과거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는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 하여 역사서에 鑑(거울 감)으로 끝내는 제목의 역사서가 많을 정도다. (자치통감동국통감 등)
학계에서 역사의 정의는 항상 사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고민거리이다. 특히, 러브조이, 푸코와 데리다 같은 철학자들과 엘튼 같은 랑케식 역사관의 소유자들은 역사의 정의에 대해 마찰을 일으키고는 한다. 위의 에드워드 카의 역사에 대한 격언 또한 많은 역사의 정의들 중 하나일 뿐이며, 이를 마치 신앙처럼 되새길 필요까진 없다. 특히 한국에서는 에드워드 카의 저서가 부림사건에 엮인 것 때문에 카의 인지도도 덩달아 올라감으로써 마치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끝판왕 같은 인식이 따르곤 한다. 당연히 판단은 독자의 몫이며,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서적들과 주장들이 나와있다. 직접 공부해보고 스스로 결정하기를 권한다.
“미국·소련 탓” “한국전 때문” 분단 원인 말다툼 끝 살인극
'천안함 사고원인' 놓고 시비 벌이다 살인으로 비화

3.1. 역사의 발전?


역사학자들마다 역사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 예를 들어 헤겔의 경우에는 역사란 '세계정신(Weltgeist)'이 자신을 전개해가며 인간의 자유를 발달시켜 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최초의 근대사학자로 흔히 일컬어지는 랑케의 경우,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시대가 발전할수록 역사가 무조건 발전한다는 사고를 경계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경우에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발달에 따라 역사가 진보해간다고 보았다(사적유물론). 막스 베버 또한 이런 사고관의 소유자였으며, 가장 대표적인 저서 중 하나인 <기독교 정신>을 보면 중국을 이러한 생각에 근거해 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whig history라고 영어권에서는 부른다.
'역사의 진보'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어서 테오도어 아도르노 같은 경우에는 '역사는 야만에서 인간성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투석기에서 핵폭탄으로 발전할 뿐'(<부정변증법> 中)이라 말했고,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자들의 경우에는 역사의 진보라는 개념을 부정할 정도.
사실, 역사가 '발전한다'라고 보는 시각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다. 볼테르가 '역사의 진보'라는 아이디어를 가진 학자들 가운데 가장 이른 사람인데, 그마저도 18세기 사람이다. 그전에는 역사가 순환한다고 보거나 때가 되면 최후의 심판이 임한다거나 하는 정도로 생각해오고 있었다.

3.2. 역사에 만약은 없다?


역사에 대한 경구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역사에 만약은 없다."이다. 누가 이 말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역사에 대한 관념과 객관적 실증주의에 가까이 있던 레오폴트 폰 랑케의 주장을 왜곡시킨 말이다. 숱한 오해와 의도적인 왜곡과 달리 달리 액면 그대로 역사는 정해져 있는 것이며 뭘 해도 바꿀 수 없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이면 곤란한 말이다. 문장의 의미는 역사는 "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기에 가정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단지, 가정을 넘어서 만약이 사실 왜곡에 이르거나 하면 곤란하다는 것만 염두에 두고 있으면 되며, 당연하지만 이는 지극히 당연하므로 저런 격언을 만들어가며 자기검열을 할 필요가 없다.
사학의 진정한 가치는 '팩트'들을 줄줄이 나열해서 외우는 것이 아닌, '''역사에 대해 자유롭게 사고하여 인간에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찰하며 해답을 찾는 데 있다.''' 애초에 이 '팩트'라는 것도, 과거에서 벌어진 일들을 인간이 선택/왜곡해서 기록에 남긴 주관적인 기록들일 뿐이다. 가령, 윈스턴 처칠이 한 말들과 정치적 행보(들 중에서도 우리가 중요하다 여기는 부분들만)를 기억하지, 그가 무슨 날짜에 뭘 먹었는지 따위는 기록에 남기지 않는 것이다.[11] 기본교육과정까지만 암기식 역사교육을 가르치며,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 역사에 '만약'이 없다고 규제해버리면, 그런 역사학 교육의 근본적인 가치, 즉 자유로운 사고를 부정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사고학문의 발전을 이루는 것은 역사뿐 아니라, 다른 인문학의 분야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역사에 만약은 없다'라는 말을 조금 더 관용적인 표현으로 사용한다면 '''"만약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하였다면 지금보다 대한민국이 넓지는 않을까?" 정도로 생각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거기에 아쉬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 정도로 사용할 수 있다. 즉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라는 것. 이건 말그대로 if 시나리오 내지는 고구려 설정덕질 내지는 소설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는 것이고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달성하지 못한 원인과 그로 인한 파급효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는 중요한 공부가 된다. 그리고 그 요소만 없다면 과연 현재의 땅이 넓었을지도 생각해볼 문제이다. 국경선이 정해진 것은 통일 신라 이후로도 수많은 북방민족과의 투쟁을 거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원인과 결과를 올바르게 파악한다면 만약이라는 전제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3.3. 권력/정권의 정당성 부여 수단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He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H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1984》, 조지 오웰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느냐, 어떤 역사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더 그 사회의 성격을 뜻깊게 암시하는 것은 없다.[12]

역사학자 E.H.카

역사와 정치가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중립적일 것 같은 학문에 주관성이 들어가고, 역사왜곡이 발생하는 이유다. 사람들이 지나가버린 역사에 '만약'을 왜 상상하는지, 역사에서 관점과 학파 같은 것이 왜 생기는지, 그것을 통해 누가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보는지, '족보도 없는 새끼'라는 욕설이 어떻게 존재하고 작용할 수 있는지 합리적으로 잘 생각해보자. 역사책을 건드려 놓으면 국민/백성/시민/민중/민초/인민(이하 국민), 제3자, 제3집단, 제3권력 등이 반대급부 없이 해당 권력의 뜻대로 움직여줄 수 있다.[13] 심지어 권력입장에서는 특정 주체에게 돈이나 땅 등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거나 전쟁 같은 폭력을 행사하거나 행정력을 투입하지 않고도 그들이 권력을 위해 서비스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권력입장에서 책 좀 읽고 글 좀 쓰고 머리 좀 굴릴 줄 안다는 먹물집단인 석학들에게 자신들이 지구의 일부분과 일정 자원, 일정 인구를 제어할 수 있다는 학문적 근거와 자격을 받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모두 통하며, 보통 이를 바탕으로 법전도 집필할 수 있다. 인간이 지구 위에 자기들이 긋고 행정력 발휘하는 데 역사는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권력의 정당성 부여 수단'이라는 기능의 성격에서 보았을 때 가장 비슷하게 기능할 수 있는 것으로 종교가 있다.
근거와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승자의 역사가 역사다"라는 말이 잘 표현해준다. 또 독도 관련된 내용이 한일 양국의 역사책에 등장하고, 일본은 끊임없이 역사왜곡을 하여 한국은 이를 질타한다. 중국의 동북공정 역시 여전히 진행 중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책과 북한의 역사책은 같은 민족이라고 자타공인하는데도 대한민국과 북한이 다른 만큼 다르다. 물론 대한민국도 예외없이 역사왜곡을 한다. 북한의 역사책은... 우리나라만 봐도 각 정권이 그렇게 공교육 역사책에 집착하며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며 또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역사학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권력의 정당성 부여를 위한 정치행위이라고 보는 게 옳을 수 있다. 어쩌면 역사학자 입장에서는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는 논문이나 서술을 학계에 발표하는 것이 최고의 아부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이게 한반도에서 크게 표면화 된 것일제시대다. 하지만 모든 시대와 공간을 통틀어 계속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게 위력이 상당한 것이 한반도 역사상 최고 폐인이라 짐작되는 연산군이 두려워한 유일한 것이 역사라고 한 것에서 느낄 수 있다.
국가적 단위가 아닌 온라인 세상에서는 어떨까? 무슨 이슈가 발생하면 네티즌들은 좌표를 기록해두고 스크린샷을 남겨놓는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댓글 전쟁을 시작한다. 마침내 심화되면 고소장 교환하고, 경찰서 정모나 법원 정모를 통해 현시창판사님의 지엄하신 능력을 체험한다. 어쩌면 나무위키 전체가 온라인의 역사책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수도 있다.

3.4. 왜곡의 방법?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러한 말이 나온 이유는 첫 번째로 승리한 쪽의 입장에서 역사를 정리하기 때문에 사료 자체가 승자의 것이 많으며, 두 번째로 정치상의 목적을 위해 왜곡되거나 단편적인 진실을 기록한 역사 기록을 남기기도 하기 때문이다.[14] 하지만 근래에 와서는 이런 드립이 남발되는 경향이 있는데, 특정 지식과 연구도 없으면서 '승리자가 쓴 역사(혹은 승리자에게 유리한 내용)니까 무조건 거짓말이야, 진실은 반대편에 있어!' 라는 식의 재평가에 주화입마한 역덕들이 많아져서 문제다. 또한, 실제 역사에서는 횡포를 부리다가 말년에 비참하게 죽었다고 하는 악인(예를 들면 궁예)을 사극에서 나름 멋지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묘사한 것 등을 보고서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니 실제로는 저랬을 거다"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세상의 수많은 역사 중엔 승자가 아닌 패배자의 역사도 많다.''' 이에 대해 진화론의 자연선택('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 자가 강한 것')의 개념을 빌려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기록을 남긴 자가 역사의 승자'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칭기즈 칸에 대한 기록의 대다수는 그에게 패배한 아랍인들이 쓴 기록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대해 우리는 (단기적으로) 승자인 일본 측의 기록이나 자료만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던 박은식이 저술한 한국통사나 한국독립지혈사도 참고할 수 있는 것이다. 패배한 자들도 충분히 역사를 남기며, 무엇보다 승자의 역사라고 다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한 기록만 맹신하는 게 아니라 '''여러 기록을 교차 검증하기 때문.''' 또한 나중에 고고학적 발굴로 뒤집어지거나 논란이 될 수도 있으므로, 혹 누군가가 요상한 주장을 내세우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승자의 기록에 사로잡힌 xxx들' 하는 식으로 기존의 학설을 깐다면 일단 의심부터 해 봐야 한다.
또한 승자/패자가 아닌, 제3자도 충분히 역사의 기록자가 될 수 있다. 후세의 다른 정권이거나, 외국인의 기록이 다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들 역시 이해관계에서 벗어난다는 보장은 없으며 정보의 원시적인 출처 역시 당사자들의 기록일 수도 있으므로 맹신은 금지. 결국 사서의 신뢰도에 있어서 중요한 건 고고학적 검증, 서로 다른 자료들 사이의 교차검증, 그리고 논리적 검증이라고 하겠다.
사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로써 옹호되는 세력은 '''패자일지는 모르지만 약자는 아닌 경우'''에 대부분 해당된다. 지배계급 내에서의 싸움에서는 진 패자일지라도 계급적으로는 지배계급의 일원인 인물, 가문, 국가 등이 거론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전근대 사회에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피지배계급인 경우는 드문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왜곡되거나 잘못된 역사지식/사상을 심을 수 있는 역사 수업/공부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든가, 역사공부를 하기 전에 위와 같은 역사 개론 수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소수 존재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학교 사학과 과정에는 대부분 역사 개론 강의가 반드시 들어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이전 과정에서 서론 부분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또한 역사서에 기록된 문장을 보면 거짓말은 하지 않으면서 사실을 살짝 다르게 쓰거나, 과장되게 기입하는 경우도 많다.

Q. 당태종주필산 전투를 앞두고 상책이다, 중책이다, 하책이다라고 말한 것이 맞나요?

A. 옛날 사람들은 역사를 쓸 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써요. '''근데 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승자라고 있던 기록을 무조건 없던 이야기를 쓰진 않아요.''' 쓰는 데 방법이 있어요. 윤지연 아나운서가 방송 시작하기 전에 저에게 감기 걸렸다는 말을 한 거예요. 근데 나만 알아요. 그리고 방송 시작할 때 "오늘 몸이 안 좋은 거 같네." 이렇게 말을 하는 거에요. 보통 사람은 "와, 저 사람이 신기가 들렸나?!"라고 할 거 아니에요? (승자가) 역사를 쓸 때, 윤지연 아나운서가 나에게 말했다는 걸 빼고 쓴단 말이에요. 당태종 일화도 마찬가지에요. 상책, 중책, 하책이 있지, 왜?를 안 썼잖아요.

'''임용한. [토크멘터리 전쟁史] 44부 고구려-당나라 전쟁편'''


4. 분류


갈래로는 크게 인류사, 정치사, 사회사, 경제사, 문화사, 과학사, 예술사 등으로 나뉘는데, 기록이 가장 방대한 정치사와 사회사, 문화사가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단, 국가 교육과정 상에서는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로 구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모든 학문과 기술은 모두 역사를 가졌다고도 볼 수 있다. 컴퓨터를 공부할때는 파스칼 계산기부터 시작하는 계산기의 역사부터 가르치고, 무역학을 공부할때는 아담 스미스의 절대우위론부터 시작하는 무역이론의 역사부터 가르친는 것처럼 사학이 아닌 다른 학문도 모두 각각의 학문별 역사로부터 시작한다. 심지어 커뮤니케이션학교육시에도 수사학의 역사로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런건 각각의 학문별 미시사로 취급하며, 사학에서는 깊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5. 명언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시대를 통하여 거울이 된다(資治通鑑).'''

송(宋) 신종(神宗) 조욱(趙頊)사마광역사서를 보고 내린 제목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15]

'''人君所畏者, 史而已'''

연산군일기 63권, 연산 12년 8월 14일 辛酉 5번째기사

'''역사가 되풀이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조지 버나드 쇼

'''이것이 바로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이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아일라우 전투의 사상자 수치를 조작하라고 지시하며,

매일 당신의 역사를 만드세요. 지나는 길마다 당신은 유산을 남기는 것이랍니다.

마이클 잭슨,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의 수록곡 'History' 중


6. 기타


일본영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역사소재를 가볍게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이에 쉽게 역사를 접한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있는 반면, 자칫 요상하게 비틀어진 역사가 박힌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역사에 있는 사실 그대로 활용하는 작품들을 좋아하며, 실제 역사를 무시하고 작가 마음대로 역사 관련 작품을 만들다가 생기는 문제인 고증오류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또한 국사 교과서에서 지나치게 민족을 내세워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미래로 갈수록 공부해야 할 역사의 양도 많아지지 않을까'라는 의문도 있지만 되도록이면 중요한 맥락이나 흐름에 관련된 내용 위주로 놔두고 나머지는 점점 축소 및 삭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위키백과 내에서는 문서의 편집 내역을 이르는 말로 위키피디아 영어판의 history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단어로 로그가 있다. 나무위키를 비롯해 대다수의 한국어 위키들도 똑같은 용어를 사용한다.

7. 관련 문서



[1] レキシ[2] lìshǐ[3] 교과서는 이를 각각 사실로서의 역사, 사료, 기록으로서의 역사로 설명한다.[4] 원래는 역사가, 또는 사관을 뜻하는 단어였다(노자 항목 참조).[5] 예컨대 중국의 사기, 한국의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6] 랑케와 같은 실증주의 역사학자들은 헤로도토스 보다 한 세대 이후 역사가인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역사학의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 이쪽에서는 신화나 전설에서 역사를 분리해 내는 작업을 현대의 관점에서 역사의 기원이라 본다. 헤로도토스는 그리스가 페르시아에게 승리한 원인을 신의 의지로 봤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역사적인 관점이 아니라고 보는 것.[7] Jane Mills, "Womanwords: a dictionary of words about women", 1992, ISBN 0-02-921495-5, p. 118.[8] Angus Calder and Lizbeth Goodman, "Gender and Poetry", in Literature and Gender, ed. by Lizbeth Goodman (Routledge: 1996). ISBN 0-415-13573-7.[9] 예를 들어 삼국사기의 경우 왕과 귀족 중심으로 쓰여서, 왕이 무슨 옷을 입었고 어느 귀족이 뭐라고 말을 했는지는 간혹 기록에 나와도 당시 평민들이 뭘 먹고 뭘 입고 어떻게 살았는지 등에 대한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 반대로 조선 후기 민간 생활사를 연구하는 경우, 왕이 뭘 먹었다거나 어디로 행차했다거나 하는 사료는 거의 참고하지 않을 것이다.[10] 다만 이경우도 반론이 있기는 하다. 과거의 상황과 현재의 상황이 동일하지 않은 상태에서 과연 역사를 기준으로 삼아 선택을 하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의 반론 항목 참고[11] 물론, 처칠 개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세세한 기록들까지 충분히 연구할 수 있다. 이 또한 역사가 인간의 손을 거쳐가는 과정에 있다는 근거.[12] 역사는 아니지만 언어학쪽에서는 역사 대신 자존심과 우리(나)의 표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도 그 사회의 성격을 알수 있다라는 말도 존재한다.[13] 정당성을 뛰어넘는 이해관계가 얽혀들어가면 불가능하다.[14] 까놓고 진실을 쓰자는 생각이 별로 없었던 고대에는 대부분 문명에서 날조가 엄청났다. 대표적으로 로마는 피드나 전투에서 교환비 1 : 250이라는 막장 기록을 남기기도 했으며 이유없이 체제상 강력한 군대로 보호받고 있던 중요 도시들까지 싸그리 밀린 경우에는 패배를 엄청나게 삭제했다는 의혹도 상당하다. 물론 현재는 최소한 교환비 1 : 250 같은 것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당연히 거짓말로 여긴다. 참고로 리즈 시절 스파르타에 대해서도 비슷한 과장이 있다고 여겨지는 편인데 그래도 로마보다는 상당히 적다... [15] 생전 왕의 신분으로 못할 게 없던 연산군마저 후대의 평가는 피하지 못함을 보여준다.[16] 그가 집필한 역사서의 이름이 '역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