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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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モンキー・パンチ'''
1. 소개
2. 작품
3. 제작 참여


1. 소개


1937년 5월 26일 ~ 2019년 4월 11일
일본만화가. 출신지는 일본홋카이도 하마나카정.
'몽키펀치'는 당연히 예명이고, 본명은 '카토 카즈히코(加藤 一彦)'. 본인은 처음에는 이 필명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는데, 작풍이 아메리칸 카툰 스타일이라 혜성처럼 등장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인 작가라는 이미지로 선전하려는 출판사의 의향으로 강제로 붙여진 필명이었다.
1967년 루팡 3세의 작가 몽키 펀치로 데뷔하기 전에는 무명 작가로 대여본 만화책을 그렸다. 하지만 대여본 만화는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점점 쇠락해갔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신세가 되었다. 그 독특한 그림체는 우연히 헌 책방에서 미국 잡지 MAD를 보고 이전까지 일본에는 없는 그 스타일에 감탄하고, 아메리칸 카툰 그림체를 흉내내면서 바꾼 것이다.
1965년 청년 대상 만화잡지를 만들고자 했던 후타바샤의 젊은 시미즈 분진 만화 잡지 편집장은 우연히 쓰레기통에서 한 권의 잡지를 주웠다. 카토 카즈히코가 출판사에 돌린 동인지 만화책이었다. 새로운 스타일의 청년 대상 만화 잡지를 창간할 생각이었던 시미즈 편집장은 그 서양풍의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연락했다. 창간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는데 카토 카즈히코에게는 큰 약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여자를 못 그린다는 것이었다. 청년 성년 대상 잡지라서 아무래도 에로틱한 서비스 컷이 필수인데, 이제까지 카토는 여자를 제대로 그려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점을 지적받은 카토는 미술학원에도 다니고 누드 모델도 데생을 하는 등 여성을 에로틱하고 예쁘게 그리는 실력을 길렀다. 이후 만화 잡지 망가 액션을 창간했고, 창간호부터 매진이 되는 대성공을 거둔다. 이후 루팡 일당은 애니메이션화를 거쳐 일본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성장했다.
루팡 3세의 애니메이션에 전혀 터치를 하지 않아서 루팡 3세란 애니메이션이 알아서 커서 작가의 영향력을 능가하는 결과를 낳게되기도 했다. 가끔 자기 의향과 다르면 이건 좀 아니라고 비평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맘에 안 드는 제작자를 시리즈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거나, 그런 작품을 아예 못 만들게 하지는 않았다.
컴퓨터와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서 퍼스널 컴퓨터(PC)의 대중화가 된 물건인 애플 II시절부터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시도했으나 당대의 능력으로선...눙물. [1] 이후 컴퓨터 기술이 발전됨에 따라 태블릿같은 기기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이분의 출생년도를 생각한다면 희귀한 케이스.
2019년 4월 17일 부고 소식이 전해졌다. 사인은 폐렴.# 안타깝게도 82세 생일이 겨우 1개월 앞이었다. 그가 죽자 매우 슬퍼하던 코이케 카즈오도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건강했다는데 동시대를 함께한 작가인 몽키 펀치의 죽음이 꽤 충격이었던 것 같다.
루팡 3세란 브랜드를 후대 크리에이터들을 위해 남긴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루팡 3세 시리즈는 몽키 펀치 사후에도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데즈카 오사무블랙 잭(만화)의 탄생비화를 그린 적이 있는 요시모토 코우지가 일본 최초의 청년 만화 잡지의 탄생 과정과 시미즈 편집장과 몽키 펀치의 일화를 다룬 《루저즈 ~ 일본초의 주간청년만화지의 탄생~ (ルーザーズ〜日本初の週刊青年漫画誌の誕生〜)》라는 만화(전3권)가 있다.맛보기 읽기

2. 작품



3. 제작 참여



[1] 만화계에 디지털 원고가 도입된건 1990년대 들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