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 발받침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165호'''
'''무령왕 발받침'''
武寧王 足座


'''소재지'''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동)
'''분류'''
유물 / 기타종교공예 / 유교공예 / 의례용구
'''수량/면적'''
1개
'''지정연도'''
1974년 7월 9일
'''제작시기'''
백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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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4. 국보 제165호


1. 개요


武寧王 足座. 무령왕 발받침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 고분군에 위치한 무령왕릉에서 1971년 여러 유물들과 함께 출토된 무령왕의 장례용 목제 발받침대다.
무령왕릉 발굴은 한국 현대 고고학사에서 최고이자 최악의 발굴로 꼽히는 사례인데, 발굴 당시 개판 엉망진창이었던 현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본 발받침을 비롯하여 백제의 귀중한 유물들이 대체로 온전한 상태로 상당수 출토됐다.[1] 무령왕 발받침은 발견 당시 무령왕의 목관 안에 안치된 상태였다고 하며, 무령왕비의 발받침도 무령왕비의 목관 안에서 발견됐지만 국보로는 무령왕의 것만 지정됐다.
무령왕 발받침은 1974년 국보 제16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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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발받침
무령왕 발받침은 높이 19.5cm, 길이 43.2cm, 폭 9.8cm 크기의 장례용 나무 발받침으로, 여기에 시신의 발을 올려서 안치하는 용도이다. 본 발받침의 전체적인 보존 상태는 상당히 양호하다.
무령왕 발받침은 베개와 마찬가지로 나무토막을 역 사다리꼴 모양으로 다듬었지만, 베개와는 달리 두 발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중심을 W자형으로 홈을 깊게 파냈다. 본 발받침은 표면에 검은 옻칠을 해서 전체적으로 흑갈색을 띄고 있다. 또한 표면을 거북이등처럼 육각형 무늬를 이루도록 판을 오려 만든 금띠로 장식했는데 금띠들의 길이는 4cm, 폭은 0.7cm 가량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금띠가 모두 온전하게 남아 붙어 있는 것은 아니며 부식되어 떨어진 부분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육각형의 각 모서리와 육각형 가운데의 빈 공간에는 여섯 잎을 가진 금꽃을 금못으로 박아 장식했다. 금꽃 장식에서 인상적인 것은 꽃의 정가운데에 마치 암술이나 수술#s-3 같은 장식을 달아놓은 것이다.[2] 이 금꽃들도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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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비의 발받침.[3]
무령왕의 장례유물과 무령왕비의 것들은 형태는 비슷하지만 세부 장식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왕비의 것은 붉은 단청칠인 반면에 왕의 것은 검은 옻칠이라는 점에 있다. 백제의 왕실에서는 옻칠이 왕을 상징하며 가장 높은 격을 드러내는 장식이었으리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왕비의 것에는 금박을 칠한 반면에 왕의 것에는 금판을 오려 붙였다는 점에서도 서로 차이가 보이며, 여기서 또 하나의 차이가 비롯되는데 왕비의 것에는 금박으로 칠하고 회화적인 장식을 그려넣은 반면에 왕의 것에는 금칠을 하는 대신 금판을 오려 붙이고 금꽃 장식 외에는 딱히 회화적인 장식은 안 그려넣었다는 점이다. 이리하여 왕의 장례유물은 왕비의 것과는 대조적으로 단순하지만 강건하고 남성적인 중후한 느낌을 준다고 평가 받는다.[4]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무령왕 발받침은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백제 왕족의 장례용 물품이라는 점, 몇 점 남아있지 않아 아주 희귀한 백제의 금으로 장식된 목조 공예품이라는 점, 무령왕릉 발굴 당시 거의 온전하게 형태를 유지한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출토지가 명확하다는 점 등에서 사료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무령왕 발받침은 이러한 가치들을 인정받아, 발견된지 3년 뒤인 1974년 7월 9일 국보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4. 국보 제165호


무령왕릉 목관 안에서 발견된 왕의 발을 받치기 위한 장의용 나무 발 받침이다.

윗부분이 넓고 아랫부분이 좁은 사다리꼴 통나무의 중앙을 W자로 깊게 파서 양 발을 올려놓게 만들었다. 전면에 검은색 옻칠을 하고 폭 0.7㎝정도의 금판을 오려 거북등 무늬를 만들었으나 일부는 떨어져 없어졌다. 6잎의 금꽃을 거북등 무늬 모서리와 중앙에 장식하고, 꽃판 가운데에 옛날 부인의 머리장식 중 하나인 보요(步搖)를 매달아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1] 무령왕릉에서 국보 제154호 무령왕 금제 관식, 국보 제155호 무령왕비 금제 관식, 국보 제156호 무령왕 금귀걸이, 국보 제157호 무령왕비 금귀걸이, 국보 제158호 무령왕비 금목걸이, 국보 제159호 무령왕 금제 뒤꽂이, 국보 제160호 무령왕비 은팔찌,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국보 제162호 무령왕릉 석수, 국보 제163호 무령왕릉 지석, 국보 제164호 무령왕비 베개, 국보 제165호 '''무령왕 발받침''' 등이 함께 출토됐다.[2] 이를 영락(瓔珞) 또는 보요(步搖)로 보기도 한다. 영락과 보요에 대해선 다음의 링크 참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영락, 미술대사전(용어편) : 보요[3] 무령왕비의 발받침은 전체적인 형태는 양호하게 남아 있지만, 세부 장식들은 거의 탈락되어 남아 있는 부분이 몇 없다. 국립공주박물관 소장.[4]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무령왕 발받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