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image] '''대한민국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武寧王陵 銅鏡 一括


'''소재지'''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동)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장신구
'''수량/면적'''
3개
'''지정연도'''
1974년 7월 9일
'''제작시기'''
백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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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 의자손수대경
좌하단 : 청동신수경 / 우하단 : 수대경
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4. 국보 제161호


1. 개요


武寧王陵 銅鏡 一括.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 고분군에 위치한 무령왕릉에서 1971년 여러 유물들과 함께 출토된 무령왕과 무령왕비의 장례용 청동금속거울들의 세트다.
무령왕릉 발굴은 한국 현대 고고학사에서 최고이자 최악의 발굴로 꼽히는 사례인데, 발굴 당시 엉망진창이었던 현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본 청동거울들을 비롯하여 백제의 귀중한 유물들이 대체로 온전한 상태로 상당수 출토됐다.[1] 본 청동거울들은 총 세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점은 무령왕의 시신 곁에서, 다른 한 점은 무령왕비의 시신 곁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은 1974년 국보 제161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을 이루는 거울들의 명칭이 문헌들마다 상이한데, 본 문서에서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명시하는 명칭을 따르도록 했다.
무령왕릉을 발굴했을 때, 무령왕 시신의 발치 부근에 청동신수경이, 무령왕 시신의 머리 부근에는 의자손수대경이 놓여져 있었다고 하며, 무령왕비 시신의 머리 부근에는 수대경이 있었다고 한다.
거울들의 앞면은 현존하는 금속 거울들이 그렇듯이 이미 다 마멸되어 더이상 반사의 기능을 하지는 못하지만, 뒷면에 새겨진 장식과 문양들은 여전히 잘 남아있다. 또한 세 점의 거울 모두 전체적인 형태가 비슷한데, 1단을 두어 안쪽과 바깥쪽을 나눠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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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신수경
무령왕의 발치에 있던 청동신수경(銅鏡神獸鏡)은 방격규구신수경(方格規矩神獸鏡) 방격규구신수문경(方格規矩神獸文鏡)또는 신수문경(神獸文鏡)이라고도 하는데, 본 거울은 지름 17.8cm로 거울들 중 크기는 가장 작지만 가장 많은 장식이 가미되어 있으며 보존상태도 가장 좋다. 이름에서 말하는 방격규구(方格規矩)는 당대 중국에서 유행했던 방격규구경을 말하는데, 방격이란 격자무늬를 뜻하고 규구는 컴퍼스와 같이 길이나 지름 같은 것을 재는 도구를 말한다. 따라서 방격규구경은 이와 같은 무늬가 새겨진 거울을 뜻한다.[2] 신수(神獸)는 신령스러운 짐승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방격규구신수경은 신수가 새겨진 방격규구 무늬 거울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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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신수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울 뒷표면에 새겨진 다섯 개의 형상으로, 이 형상은 사람 하나와 신수 넷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앙부의 꼭지를 중심으로 돌고 있는 형태다. 사람 형상은 삼각형 모양의 내의만 입어 반나체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상투를 틀고 양손에는 을 들고 있어서 신수들을 사냥하는 듯한 모습인데, 명문에 새겨진 글에 따라서 이 인물을 신선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네 마리의 신수들은 또는 기린, 호랑이, 사슴 등으로 보이긴 하지만 그 정체가 명확하진 않다. 거울 뒷면의 가운데에는 손잡이 겸 끈으로 거울을 걸 수 있도록 하는 볼록 튀어나온 고리형 꼭지가 있고, 꼭지의 주변으로는 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렀다. 사각형 테두리 안에는 12개의 작은 돌기가 둘러져 배열되어 있다. 그리고 이 돌기들 사이로는 12간지를 뜻하는 한자가 그 사이마다 새겨져 있다. 사람과 신수 형상들의 주변에는 또 다른 원이 이중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사이에도 글씨를 새겨놓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尙方作竟眞大好 上有仙人不知老 渴飮玉泉飢食棗 壽?金石兮[3]

상방작경진대호 상유선인부지로 갈음옥천기식조 수?금석혜

청동신수경 명문[4]

해석하자면 '상방에서 만든 아름다운 거울 정말 크게 좋다. 천상에는 신선이 있어 늙는 줄 모른다. 목마르면 맑은 샘물을 마시고 배고프면 대추를 먹으니 목숨이 금석처럼 길도다.'로 신선과 관련된 도교사상이 잘 드러난다.[5]
명문이 새겨진 이중 원의 밖으로는 1단이 차이나게 올라가 있는데, 여기에는 톱니 무늬와 물결 무늬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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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손수대경
무령왕의 머리 부근에 있던 의자손수대경(宜子孫獸帶鏡)은 의자손명수대문경(宜子孫銘獸帶文鏡)이라고도 하는데, 본 거울은 지름 23.2cm로 거울들 중 크기가 가장 크다. 의자손수대경이라는 이름에서 의자손이라는 것은 '의()', '자()', '손()'의 한자가 표면에 새겨져 있어서 붙은 것이고, 수대경은 짐승 형상이 새겨져 있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즉, 의자손수대경은 짐승 형상으로 장식되어 의, 자, 손 글자가 새겨진 거울이라는 뜻이다.
의자손수대경은 크기는 가장 크지만 청동신수경에 비하면 그다지 장식이 눈에 띄지는 않는다. 거울 뒷면의 가운데에는 손잡이 겸 끈으로 거울을 걸 수 있도록 하는 볼록 튀어나온 고리형 꼭지가 있는데, 이 고리에 가죽 끈의 일부가 붙어 있다. 이는 원래 거울에 붙어 있던 가죽 끈이 다 삭아 없어지고 일부만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꼭지의 주변으로는 여러겹의 동심원이 있는데, 가장 안쪽의 원에는 9개의 작은 돌기가 꼭지를 두르도록 배열되어 있다. 청동신수경처럼 9개의 돌기들 사이로 한자가 쓰여져 있기는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슬어버린 부식에 의해 마멸되어서 해독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이 중 가까스로 해독된 글자가 의, 자, 손으로 여기에서 본 거울의 이름을 따왔다. 명문이 새겨진 원 바깥으로는 주문양(主文樣)이 새겨져 있는데 꽃 모양을 본뜬 7개의 작은 꼭지가 좀 더 퍼져서 배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구름과 같은 물결 무늬가 새겨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도 짐승 문양의 흔적이 있지만 이 역시도 역시 마멸되어 육안으로 명확하게 판별하기가 어렵다.
1단이 차이나게 올라가 있는 테두리에는 톱니 무늬와 물결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물결 무늬는 다소 부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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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대경
무령왕비의 머리 부근에 있던 수대경(獸帶鏡)은 수대문경(獸帶文鏡)이라고도 하는데, 본 거울은 지름 18.1cm로 의자손수대경보다 크기가 약간 더 크다. 수대경은 짐승 형상이 새겨져 있는 거울이라는 것이다.
수대경은 의자손수대경과 형태가 유사하다. 하지만 장식성은 세 개의 거울 가운데 가장 떨어진다. 거울 뒷면의 가운데에는 다른 거울들처럼 손잡이 겸 끈으로 거울을 걸 수 있도록 하는 볼록 튀어나온 고리형 꼭지가 있다. 꼭지의 주변으로는 9개의 작은 돌기가 꼭지를 두르도록 배열되어 있으며 각 꼭지들은 각각 작은 원 안에 들어가 있다. 꼭지들 밖으로는 양각의 두꺼운 큰 원을 둘렀고, 이 테두리의 밖으로는 주문양(主文樣)이 새겨져 있다. 주문양은 의자손수대경과 전체적인 디자인이 비슷한데, 이중의 동심원 안에 들어간 7개의 작은 꼭지가 퍼져서 배치되어 있고, 전체적으로는 물결 무늬로 장식했으며 무늬 사이마다 네 명의 사람과 세 마리의 짐승 문양의 흔적이 있다고도 본다.[6] 하지만 이 역시 마멸되어 정확한 형상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1단이 차이나게 올라가 있는 수대경의 테두리도 의자손수대경과 흡사하게 톱니 무늬와 물결 무늬가 새겨져 있다.
청동기 시대의 고대 한반도 국가들의 경우, 청동거울을 권력을 상징하는 도구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7] 그런데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본 청동거울들은 그 전통이 백제 무령왕 시기까지도 이어져서 청동거울이 이때까지도 여전히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본 거울들과 비슷한 청동거울이 일본의 고분에서도 발견되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백제와 일본의 왜국과 교류가 있었으며 백제와 같은 한반도의 문화를 왜국이 받아들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다른 유물들과 함께,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은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백제 왕족의 장례용 물품이며, 백제의 왕권과 그 상징물에 대해 짐작해 볼 수 있는 유물이라는 점, 고대 한반도 국가와 일본과의 교류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고,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출토지가 명확할 뿐만 아니라 다른 유물들을 통해 제작 시기가 확인된다는 점 등에서는 유물로서의 가치도 대단히 높은 문화재라 할 수 있다.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품들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발견된지 3년 뒤인 1974년 7월 9일 국보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4. 국보 제161호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청동거울로 청동신수경, 의자손수대경, 수대경 3점이다.

청동신수경은 ‘방격규구문경’이라는 중국 후한의 거울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거울 내부에는 반나체 인물상과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한나라의 거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의자손수대경은 중국 한대의 수대경을 본떠 만든 방제경이다. 거울 중앙의 꼭지를 중심으로 9개의 돌기가 있고, 안에는 크고 작은 원과 7개의 돌기가 솟아있다. 내부 주위의 테두리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나 선명하지 못하여 알아볼 수 없다.

수대경 역시 한나라 때 동물 문양을 새겨 넣은 수대경을 본떠서 만들어진 방제경이다. 그러나 한나라 거울에 비해 선이 굵고 무늬가 정교하지 못하다.


[1] 무령왕릉에서 국보 제154호 무령왕 금제 관식, 국보 제155호 무령왕비 금제 관식, 국보 제156호 무령왕 금귀걸이, 국보 제157호 무령왕비 금귀걸이, 국보 제158호 무령왕비 금목걸이, 국보 제159호 무령왕 금제 뒤꽂이, 국보 제160호 무령왕비 은팔찌,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 국보 제162호 무령왕릉 석수, 국보 제163호 무령왕릉 지석, 국보 제164호 무령왕비 베개, 국보 제165호 무령왕 발받침 등이 함께 출토됐다.[2] 출처 : 미술대사전(용어편) - 방격규구경[3] ?에 들어갈 글자는 명확하지 않다.[4] 출처 :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죽음의 전통의례와 상징세계) - 방격규구신수문경[5] 해석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무령왕릉 청동거울 일괄[6] 출처 : e뮤지엄 - 무령왕릉 수대문경[7] 다뉴세문경이나 화순 대곡리에서 발견된 청동기들의 세트 또는 기타 청동기 시대 유물들에서 당시 지배자를 상징하는 용도로 청동거울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