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캄푸치아

 


'''민주 캄푸치아'''
'''កម្ពុជាប្រជាធិបតេយ្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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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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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1979
국가
영광스러운 4월 17일
위치
인도차이나 반도
수도
프놈펜
정치체제
일당제 공산국가(민주 캄푸치아 공산당)
국가주석
'''키우 썸펀'''[1]
서기장 겸 총리
'''폴 포트'''
언어
크메르어
민족
크메르인
통화
'''폐지됨'''[2]
성립 이전
크메르 공화국
멸망 이후
캄푸치아 인민공화국
1. 개요
2. 역사
4.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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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5~1979년까지 크메르 루주가 배후에서 지배한 공산주의 국가로, 집권당은 캄푸치아 공산당(KCP)이다.

2. 역사


1970년에 론 놀 장군의 쿠데타로 시아누크 왕이 폐위되어 크메르 공화국이 수립됐으나, 오히려 론 놀 정권은 미국의 원조를 받아 착복하여 점차 부패했고, 시아누크 국왕은 캄보디아 복귀를 노린 데다 베트민이 도와주는 캄푸치아 공산당이 압박을 하면서 분열 상태가 더욱 악화됐다. 같은 시기 베트남 전쟁으로 미군이 호찌민통로를 부수기 위해 무차별 폭격을 가함으로써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수십만명이 희생되었고 이 때문에 론 놀 정권에 대한 민심이 극도로 이반되었다. 또한 시아누크도 크메르 루주와 손을 잡으며 크메르 루주에 대한 지지가 올라갔다. 이에 따라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는 1975년 4월 17일 프놈펜을 점령하고 공산당까지 장악했다. 이에 따라 주석은 키우 썸펀, 총리 겸 서기장은 폴 포트가 각각 맡았다.
폴 포트 총리는 반외세, 반자본주의를 기조로 한 국가 재창조를 선언하여 나라 안에 숨어있는 자본주의적 요소들을 완전히 뿌리뽑아 공산주의로 무장된 투사로 기르고자 했고, 이에 따라 주 산업을 농업만으로 돌려 도시 사람들을 농촌으로 강제 하방시켜 농사만 짓게 했고, 상점, 민간교역, 화폐, 전화, 편지 등 기존 통신수단과 경제수단을 없애고[3] 모든 거래수단을 쌀 같은 걸로 물물교환하게 했으며 물자도 국가로부터 무조건 배급받도록 했다. 심지어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들을 말살하고 공산주의 세뇌교육과 수학 등 기초과목을 빼고 모든 과목을 없애버려 의학 등 과학기술을 후퇴시켜 나라 자체를 사실상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석기시대로 만들었다.
이렇게 괴상한 정책이 이어지자 론 놀 정권의 폐단을 청산한 채 시아누크의 복귀로 안정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민심이 이반하기 시작하여 반정부 시위가 잇따랐고, 시아누크도 국가원수직에서 사임했다. 그러자 캄보디아의 자존심을 건드린 모든 외세와 이에 결탁한 자, 자본주의에 물든 자들을 척살한다는 명목으로 수십만 명의 양민들을 뚜올 슬렝(S-21 수용소) 등지에 가두어 무차별 학살했는데, 이들 중엔 성직자, 고학력자, 시아누크의 친족 14명, 옛 론 놀 정권 인사들 등이 있었다. 또 역사적 속성에 따라 베트남을 더욱 증오하여 친베트남 성향 캄푸치아 공산당원들을 무차별 숙청시켰다. 이러한 만행이 오히려 베트남을 격분케 만들어 1978년 12월 25일 베트남군 병력 25만명이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이듬해 1월 7일 프놈펜을 점령해 괴뢰정부 '캄푸치아 인민공화국'을 수립하자, 크메르 루주는 정글 속으로 도망쳤다.

3. 국가


영광스러운 4월 17일 문서 참조

4. 출처


  • 먼나라 이웃나라 시즌2(지역/주제편): 동남아시아, 천년 문명의 신비에서 21세기 변화와 개혁의 주역으로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18. p124~127.

[1] 사회주의 국가에서 국가주석은 바지사장이게 마련이었지만 그는 바지사장이 아니었고 오히려 폴 포트보다 더욱 강경하고 더 잔인했다.[2] 만약을 대비해 캄푸치아 리엘이란 통화를 일부 찍어 놓기는 했다.[3] 대신 1978년 4월 1일에 우표가 나왔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물이 없고, 교역은 최고위층이 독점하여 주로 중국과 거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