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태국)
1. 개요
태국의 중도보수 정당. 과거에는 군부와 대결을 하면서 태국의 민주화에 기여했던 정당이었기 때문에 리버럴 개혁 정당으로 분류되었지만 탁신이 집권한 이래로 보수파의 지지를 받게되어 보수화가 진행되었고 현재는 범보수정당으로 분류된다.
2. 역사
1946년에 창당되었으며, 현재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창당주는 후앙 아파이웡으로, 창당 전후로 세 차례나 총리로 재임했다.
처음 도전한 1948년 총선 때 99석 중 54석을 얻은 것을 끝으로 과반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연립정당으로 여러번 정권을 차지했으니 그리 안습인것은 아니고 사실 기회를 여러번 잡아서 연립정권의 형태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집권기간이 길었다. 수시로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를 제외하면 사실은 꽤나 오랜기간 동안 태국의 실세를 차지했던 정당인 셈이다. 물론 중간중간에 군부에 의해서 강제로 정권을 상실해왔기 때문에 군부와 대결하는 정당이었다.
그러나 2001년 총선을 기점으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특히 2006년 쿠데타 당시에 민주당이 군부의 쿠데타에 찬성을 하고 군부도 과거와는 다르게 민주당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스탠스가 되면서 태국 정치에 변화가 오게 된 것이다.
3. 이념과 지지 기반
보수자유주의[2] 에 기반한 중도우파 정당이며, 왕실 존속을 강하게 천명한다. 21세기 들어서 보수화가 진행되고 탁신 진영이 태국에서 진보로 간주되고 과거에 적대관계였던 군부진영과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보수정당으로 간주되지만 1990년대까지는 태국에서는 군부에 맞선 대표적인 정당으로 손꼽혔기에 한국의 민주당계 정당과도 위상이 비슷했다. 아시아 각국의 사회자유주의 성향 정당들의 협의체인 자유민주협의회(CALD)에 가맹되어있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태국인들의 인식과 위상은 21세기에 들어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극우 성향의 군부계 정당들이 우세했던 탓에 민주당은 이러한 군부계 정당에 대항하는 범민주 세력으로 간주되었으며,[3] 군사 독재에 반대하는 재야 투사들도 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990년대 중후반에 태국이 정치와 경제면에서 혼란을 겪게 되었는데 민주당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고, 2001년 총선에서 탁신이 등장하고, 이를 위시로 한 포퓰리즘 정당인 애국당과의 새로운 양당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힘을 잃게 된 기득권 세력들의 지지가 이 당으로 옮겨오게 되며 전반적인 판세가 변했다. 이후 탁신진영이 군사 정권의 탄압을 받게 되고, 애국당도 해산을 거쳐 최종적으로 태국인당에 이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군부와 결탁하기 시작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민주당은 과거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재야 민주 정당이 아닌, 군부와 결탁하고 기득권들의 지지를 전면으로 받고 있는 보수·기득권 정당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아예 강경 반대파들은 수구로 인식할 정도.
주요 지지 기반은 남서부다. 2011년 총선 지역별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말레이시아 인근에서 그 누구도 과반을 얻지 못한 2개 주를 제외하면 아예 제3세력도 저리가라 할 정도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와 아예 국경을 맞대고 있는 최남단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이는 최남단 파타니 지대의 말레이인 반군들 덕에 오히려 현재 태국인 불교도들이 결집하는 것이 원인. 이외에도 미얀마와의 접경 지대에서도 지지가 강하며, 놀랍게도 수도이자 최대도시인 방콕에서도 태국인당 대신 이 당을 지지한다. 한국에서 서울이 범진보계 정당을 밀어주는 것과는 정반대인데, 이는 태국인당이 농촌의 지지를 받는 것이 원인이고, 도심은 그 반대의 현상이 자연스레 나타나는 것.
4. 선거 결과
비록 군부쿠데타로 여러번 정권을 잃어보기도 했지만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태국에서는 여러번 연립정권에 참여할 정도로 주류정당이었다 하지만 선거에서는 타 정당과의 연립정권을 형성해서 정권을 잡는 방식이었는데 1975년 당시 민주당이 원내 1당이 된 적은 있었고, 당의 총리 후보인 세니 프라모지가 권력을 잡기는 했지만, 잡자마자 1년 동안 권력을 내놓아야 했던(...) 사례도 있었다. 후의 추안 릭파이나, 아피싯 웨차치와는 아예 '''민의로 선출되지 못한 총리'''들이고, 이들도 총선에서는 얄짤 것 없이 패해 권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나마 이들이 권력을 쥐게 된 것도 의석 수의 변동과, 연립 정권으로 겨우 집권한 것.
2019년 총선 때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태국인당과 공민역량당에게 밀리더니, 역시나 참패했다. 하지만, 과거보다 더한 참패의 여파로 아피싯 대표가 사임하고 말았다. 그나마 쁘라윳 짠오차 정권이 개정한 선거법 덕에 권력에 연정 참여는 가능하겠으나 결과적으로 쁘라윳과 공민역량당의 거수기로 전락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