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적 자유주의
1. 개요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는 17세기~19세기에 서유럽을 중심으로 나타난 정치 이데올로기로, 천부인권과 경제적 자유에 기반한 법치주의 국가를 추구하는 자유주의 사상이다. 19세기 이후로 사회자유주의 등의 개량적 자유주의 이념이 등장하면서, 이전의 전통적인 자유주의를 구분하기 위해 고전적 자유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현대의 신자유주의와도 다른 개념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시민 혁명의 기반이 된 사상이며, 근현대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고전적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영국의 로크(1632~1704)로부터 기원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고, 몽테스키외(1689~1755), 볼테르(1694~1778)와 같은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이 로크의 사상을 계승하였다. 이후로는 고전파 경제학을 확립하는데 기여한 아담 스미스(1723~1790)와 리카도(1772~1823), 그리고 밀(1806~1873)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자들에 의해 발전되었다.
2. 상세
17세기의 영국에서는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상업에 종사하던 시민 계급의 세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었다. 시민 계급은 자신들을 억압하고 수탈하던 국왕과 고위 귀족들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찾으려고 하였고, 결국 이러한 충돌의 결과로 명예혁명(1688)이 발생하여 의회 민주주의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로크를 비롯한 시민 계급의 지식인들은 고귀한 혈통이 주는 권위를 부정하고 누구나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덕성을 갖춘 지성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많은 지성인들이 참여하는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정책이 결정되는 국가를 설립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영국의 사회적‧사상적 변화는 프랑스와 북아메리카의 시민 계급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결국 미국 독립 전쟁(1775~1783)과 프랑스 혁명(1789~1799)을 거치면서, 특권을 가진 왕과 귀족이 군림하던 정치 제도가 폐지되고 민주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사유 재산과 경제적 자유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로크에 따르면 국가는 국민들의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성립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만약 국가가 함부로 개인의 재산을 빼앗는다면 국민은 국가에 저항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 독립 전쟁과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사건은 세금 문제였다. 또한 애덤 스미스와 같은 고전 경제학자들은 '국민이 국가의 간섭이나 규제없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 국가 경제의 번영으로 이어진다'는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에서 이들은 자유무역을 중시했으며, 전쟁은 무역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바보같은 행동으로 여겼다.[1] 하지만 의외로 토지에 대해서는 공권력에 의한 공평한 분배를 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 19세기까지만 해도 주로 상공업에 종사하는 시민 계급이 세습되는 대토지에 기반한 귀족 세력과 여전히 정치적으로 대립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2]
고전적 자유주의 정치 철학의 기반은 천부인권 사상이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모든 인간이 동등한 인권을 부여받은 채로 태어난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인권은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에 의해 정당성을 갖는다고 보았다. 다만 초기 민주주의에서 투표권이 모든 국민에게 주어지지 않았고 완전한 보통선거가 되는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 투표권을 인권보다는 특권으로 보는 견해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또한 로크나 계몽주의자 같은 초기 자유주의자들은 평등한 인권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기회의 평등과 공교육은 중시했지만, 결과의 평등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고전적 자유주의의 중심은 벤담(1748~1832)이나 밀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로 이동하였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공리주의는 개인의 행복을 최고의 선으로 보았으며, 행복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체제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였다. 또한 밀과 같은 급진주의자들은 당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던 영국의 공장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였다. 비록 이들이 혁명적인 체제 변화까지는 원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급진주의자들의 사상은 이후 영국식 사회주의, 또는 사회자유주의로 발전하였다.
이론적인 면에서는 경제적 자유에 목매달 거 같지만 의외로 현실 정치에선 고전적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정당들은 일부 사회자유주의적 요소들을 수용해 중도우파적 성향을 띄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우파적 자유지상주의를 내세우는 정당들이 훨씬 더 우파적인 성향을 띤다. 사실 중도좌파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쳐서[3] 지공주의 등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파생된 진보적 이념도 꽤 있다. 다면 현대에 와서 고전적 자유주의는 일반적으로 우파 자유주의로 분류된다. 20세기 초반까지의 고전적 자유주의 이념 중 진보적인 부분은 사회자유주의[4] 로 독립했고, 남아있는 것은 보수적인 부분이 대부분이다. 가끔 우파 자유지상주의도 포함된다.[5]
20세기 이전의 고전적 자유주의 정당(미국 민주공화당, 영국 휘그당 및 자유당 등)이라고 하면 현대의 중도우파 고전적 자유주의 정당이 아니라 사회자유주의/진보주의 정당에 가깝다. 현대에 와서는 온건 중도~중도우파부터 강경한 우파 내지 극우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6][7]
3. 인물
4. 같이 보기
- 자유주의
- 지공주의
- 자유지상주의
- 프랑스 혁명
- 제퍼슨 민주주의(Jeffersonian democracy)
- 국민자유주의
- 재정보수주의
- 급진적 자유주의 - '급진주의'라고도 한다. 고전적 자유주의의 하위 분파로 좌파 성향을 보인다.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사실상 소멸된 이념이다.
[1] 정확히 말하자면 18세기까지는 전쟁을 통해 무역 상대를 넓힐 수 있었기 때문에 (또는 전쟁이 돈이 됬기 때문에) 자유주의자들도 전쟁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19세기부터는 전쟁이 무역에 방해가 되면서 전쟁을 피하려는 경향이 커지기 시작했다.[2] 또는 당시 영국의 상공업 종사자들은 토지를 빌려서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자신들이 열심히 일해서 사업을 번창하게 하면 지대가 올라서, 땅주인은 아무 기여도 안했지만 가만히 앉아서 이익을 낼롬 먹어버리는 관계로, 이것이 배아파서 그랬다는 분석도 있다.[3] 사실 자유주의 자체가 현대 좌우파의 핵심을 아우르는 개념이긴 하다. 자유주의란 카테고리 안에 고전적 자유주의도 포함되는 것이긴 하지만,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진화 혹은 분화해 현대적 자유주의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애초에 영국만 봐도 현 자유민주당의 전신인 자유당은 보수당과 대립하는 진보 컨셉 정당이었다.[4] 급진적인 경우는 좌파 자유지상주의[5] 우파적 자유지상주의를 고전적 자유주의의 파생사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6] 자유민주당(독일), 민주당(태국), 자유민주당(스위스) 같은 온건한 중도~중도우파의 사례도 있으나 진보당(노르웨이), 네덜란드의 DPK 같은 강경 우파, 심지어 캐나다 인민당, 독일의 Die Freiheit 등 극우 정당의 사례도 꽤 존재한다. 조던 피터슨의 경우도 고전적 자유주의자로도 분류되지만 인민당 당수인 막심 베르니에의 정치적 급진화에 영향을 주기도 했고, 통상 강경 우파 이념으로 분류되는 전통주의 철학자로 분류되기도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온건 보수주의(자유보수주의)와는 거리감이 있다.[7] 이렇게 고전적 자유주의가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은 이유는 일반적인 현대의 자유주의와 구별되는 고전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바로 자유방임주의와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극우와 온건파를 가르는 기준이 표현의 자유의 포커스를 어디에다가 맞추냐에 따라 다른 셈인데 당장 대안 우파 온건파들만 해도 혐오발언이나 소수자에 대한 공격적 태도를 사상적으로 '표현의 자유'라며 정당화하기 위해 고전적 자유주의 운운하는 이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