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인당
พรรคเพื่อไทย
태국의 정당. 친나왓 남매 탁신과 잉락의 정당으로 알려져 있다.
탁신 친나왓은 유력한 기업인 출신으로 본디 정치와는 별 연관이 없었으나, 1990년대 단숨에 정계의 스타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업어 타이애국당(이하 애국당)을 창당하고 총리에 올랐으나, 각종 논란에 시달리다가 2006년 군사 쿠데타로 실각했다. 이후 2007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정당 판결을 받아 해산되었고, 추가로 소속 국회의원 111명 또한 5년 간 피선거권을 박탈하게 되었다. 이에 일부 인사들이 비슷한 성향의 자매 정당인 인민역량당에 입당해 활동을 재개했으나, 당연히 이를 모를 리가 없던(...)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 크리를 맞게 되었다.
태국인당은 2008년 9월 20일에 창당되었다. 본디 인민역량당의 자매 정당으로 출발했으나, 12월 2일 인민역량당의 해산 후 살아남은 탁신계 인사들이 이 당에 입당하면서 탁신계 단일 정당으로 재개편되었다. 이마저도 헌법재판소의 해산 크리를 맞을 위기에 놓여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이 당은 무사히 살아남았다.
창당 초기 인민역량당 탈당파 일부가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 정부에 합류하는 등 혼란을 겪었으나, 군부와 결탁 의혹이 있는 민주당 정부는 탁신계인 태국인당 정부와 맞지 않았고, 결국 민주당에 맞서는 야당으로 남기로 했다.
탁신이 축출된 후인 2007년 총선이 치러졌을 때, 인민역량당은 민주당을 누르고 정권을 장악했으나,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는 등 혼란을 겪다가, 제1야당인 민주당이 군소 정당들과의 연정으로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로서 창당 초기 잠시나마 실질적인 여당이었던 태국인당은 도로 야당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이렇게 탁신 본인도 없었고, 어지간한 인물들은 죄다 날아간 탓에(...) 차기 정권 탈환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으나,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이 정계에 복귀하고 태국인당의 대표로 선출되면서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태국인당은 즉각 잉럭을 총리 후보로 입후보시키고, 2011년 총선에 도전해 500석 중 265석을 차지해 정권을 잡게 되었다.
잉락은 자신의 오빠가 추진하던 정책을 계승해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바꿔 말하자면 기득권과 군부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또한 탁신이 처음 집권했을 때는 나름 청렴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기대가 매우 압도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이미 부패상이 다 드러난 뒤에 집권한 터라, 예전만큼의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탁신이 경제는 챙기는 편이었는지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잉락은 태국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지라, "여성"이라는 또다른 신선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지지율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계가 드러나게 되면서 인기를 잃기 시작했고, 이에 2015년에 예정되어 있었던 총선을 1년 앞당겨 치르는 승부수를 두게 된다. 허나 총선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민주당이 보이콧을 선언했고, 결국 파행으로 이어지면서 정치적인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잉럭은 축출되었고, 쿠데타의 주도자인 쁘라윳 짠오차가 총리에 오르면서 도로 정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당연히 총선은 무효화되었고, 입법부의 권력이 전면 정지되었다. 이후 잉럭은 형을 선고받는 등 정계 복귀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른다.
2019년 총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며 정권 재탈환을 노리고 있다.[1] 그간 친나왓 남매의 부패상과 실책을 감안하면 일명 국개론(...)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군사 정권에 대한 염증이 가속화되는 형국이고, 그렇다고 태국인당이 싫자니 민주당을 찍자니 민주당 또한 군부와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지라, 마땅한 대안이 없는 점을 노려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 당연히 군부가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고, 이를 노린 탓인지는 모르지만 이 당을 포함한 재야 세력에게 불리하게끔 선거법을 개정하는 바람에 실제로 권력을 잡을 지는 미지수.[2]
이 당의 스펙트럼은 기본적으로 중도라고는 하지만, 정확히는 여기서 왼쪽에 있는지, 아니면 오른쪽에 있는지에 대한 이견이 엇갈린다. 가령 영어판 위키백과에서는 중도 ~ 중도우파라고 하지만, 스페인어나 프랑스어판에서는 중도좌파라고 한다. 탁신이 우익 성향의 기득권과 군부에 반대되는 개혁을 내세우고, 퍼주기식 복지 정책을 시행한 걸 보면 중도좌파 ~ 좌파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좌파적인 면모를 드러낸 건 아니다. 오히려 탁신은 재벌 출신이고, 기득권과 결탁하면서 급부상한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중도우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민주당이 선명한 중도우파 노선을 표방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중도우파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으며, 당의 각종 정책들을 보면 민주당보다는 좀 더 왼쪽에 있다. 하지만 훗날 창당된 미래전진당이 선명한 중도좌파 노선을 표방하고, 이보다는 오른쪽에 있는 등 스펙트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며, 주류 언론에서도 이 당의 스펙트럼은 명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탁신의 퍼주기식 복지 정책 등은 빼도 박도 못 하는 포퓰리즘 성향이 강하며, 실제로 이 당이 "포퓰리즘 정당"이라는 사실 자체에는 별 이견이 없다. 어쩌면은 이탈리아의 오성운동과 비슷한 걸 수도?[3] 물론 아시아 국가들 정치판이 으레 그렇듯이 태국 정치판도 포퓰리즘의 온상이기는 하지만.[4]
지지 기반은 북부. 이 당이 처음으로 도전한 2011년 총선 지역별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탁신과 애국당은 전반적으로 북부의 지지를 강하게 받았으며, 이는 태국인당으로도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반면 남부에서는 지지가 약한데, 특히 말레이시아와의 접경 지대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예 여기는 민주당을 강하게 몰아주고, 제3지대도 거부한다. 이는 남부 파타니 지역 말레이인들이 태국 기득권 세력과 군부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를 좋게 보지 않는 전형적인 태국인 불교도들이 역으로 민주당으로 결집하는 것이 주 원인.
2019년 태국 총선 결과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다. 군부계 정당인 공민역량당이 등장했고, 2018년에는 탁신처럼 기업인 출신인 타나톤 쯩룽르앙낏을 중심으로 미래전진당이 창당되면서 양당제보다 다당제에 더욱 더 가까워지고 있다. 특히 기성 세대에 대한 반감이 큰 젊은층들을 중심으로 미래전진당이 인기를 얻으면서, 과거의 명성을 떨치기는 힘들 듯.
미래전진당과 그 후신인 행동전진당과의 관계는 한국에서의 더불어민주당-정의당 관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00% 완벽한 대응은 될 수 없지만, 한국에 대입하자면 제일 유사한 사례다. 태국의 신세대나 진보주의자들은 탁신계 정당도 기득권 세력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그래도 일단은 반군부라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협력은 하고 있다. 2020년 태국 민주화 운동에서도 태국인당과 행동전진당, 그리고 그 외 친민주주의 성향 야당들이 단체로 반군부 성명을 의회에서 냈다.
1. 개요
태국의 정당. 친나왓 남매 탁신과 잉락의 정당으로 알려져 있다.
2. 역사
탁신 친나왓은 유력한 기업인 출신으로 본디 정치와는 별 연관이 없었으나, 1990년대 단숨에 정계의 스타로 부상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업어 타이애국당(이하 애국당)을 창당하고 총리에 올랐으나, 각종 논란에 시달리다가 2006년 군사 쿠데타로 실각했다. 이후 2007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정당 판결을 받아 해산되었고, 추가로 소속 국회의원 111명 또한 5년 간 피선거권을 박탈하게 되었다. 이에 일부 인사들이 비슷한 성향의 자매 정당인 인민역량당에 입당해 활동을 재개했으나, 당연히 이를 모를 리가 없던(...)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 크리를 맞게 되었다.
태국인당은 2008년 9월 20일에 창당되었다. 본디 인민역량당의 자매 정당으로 출발했으나, 12월 2일 인민역량당의 해산 후 살아남은 탁신계 인사들이 이 당에 입당하면서 탁신계 단일 정당으로 재개편되었다. 이마저도 헌법재판소의 해산 크리를 맞을 위기에 놓여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이 당은 무사히 살아남았다.
창당 초기 인민역량당 탈당파 일부가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 정부에 합류하는 등 혼란을 겪었으나, 군부와 결탁 의혹이 있는 민주당 정부는 탁신계인 태국인당 정부와 맞지 않았고, 결국 민주당에 맞서는 야당으로 남기로 했다.
탁신이 축출된 후인 2007년 총선이 치러졌을 때, 인민역량당은 민주당을 누르고 정권을 장악했으나,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는 등 혼란을 겪다가, 제1야당인 민주당이 군소 정당들과의 연정으로 정권을 잡게 되었다. 이로서 창당 초기 잠시나마 실질적인 여당이었던 태국인당은 도로 야당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이렇게 탁신 본인도 없었고, 어지간한 인물들은 죄다 날아간 탓에(...) 차기 정권 탈환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으나,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이 정계에 복귀하고 태국인당의 대표로 선출되면서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태국인당은 즉각 잉럭을 총리 후보로 입후보시키고, 2011년 총선에 도전해 500석 중 265석을 차지해 정권을 잡게 되었다.
잉락은 자신의 오빠가 추진하던 정책을 계승해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바꿔 말하자면 기득권과 군부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또한 탁신이 처음 집권했을 때는 나름 청렴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기대가 매우 압도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이미 부패상이 다 드러난 뒤에 집권한 터라, 예전만큼의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기는 힘들었다. 그럼에도 탁신이 경제는 챙기는 편이었는지 향수가 강할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잉락은 태국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지라, "여성"이라는 또다른 신선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지지율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계가 드러나게 되면서 인기를 잃기 시작했고, 이에 2015년에 예정되어 있었던 총선을 1년 앞당겨 치르는 승부수를 두게 된다. 허나 총선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서 민주당이 보이콧을 선언했고, 결국 파행으로 이어지면서 정치적인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잉럭은 축출되었고, 쿠데타의 주도자인 쁘라윳 짠오차가 총리에 오르면서 도로 정권을 빼앗기게 되었다. 당연히 총선은 무효화되었고, 입법부의 권력이 전면 정지되었다. 이후 잉럭은 형을 선고받는 등 정계 복귀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른다.
2019년 총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며 정권 재탈환을 노리고 있다.[1] 그간 친나왓 남매의 부패상과 실책을 감안하면 일명 국개론(...)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군사 정권에 대한 염증이 가속화되는 형국이고, 그렇다고 태국인당이 싫자니 민주당을 찍자니 민주당 또한 군부와 결탁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지라, 마땅한 대안이 없는 점을 노려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 당연히 군부가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고, 이를 노린 탓인지는 모르지만 이 당을 포함한 재야 세력에게 불리하게끔 선거법을 개정하는 바람에 실제로 권력을 잡을 지는 미지수.[2]
3. 이념과 지지 기반
이 당의 스펙트럼은 기본적으로 중도라고는 하지만, 정확히는 여기서 왼쪽에 있는지, 아니면 오른쪽에 있는지에 대한 이견이 엇갈린다. 가령 영어판 위키백과에서는 중도 ~ 중도우파라고 하지만, 스페인어나 프랑스어판에서는 중도좌파라고 한다. 탁신이 우익 성향의 기득권과 군부에 반대되는 개혁을 내세우고, 퍼주기식 복지 정책을 시행한 걸 보면 중도좌파 ~ 좌파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좌파적인 면모를 드러낸 건 아니다. 오히려 탁신은 재벌 출신이고, 기득권과 결탁하면서 급부상한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중도우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민주당이 선명한 중도우파 노선을 표방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중도우파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으며, 당의 각종 정책들을 보면 민주당보다는 좀 더 왼쪽에 있다. 하지만 훗날 창당된 미래전진당이 선명한 중도좌파 노선을 표방하고, 이보다는 오른쪽에 있는 등 스펙트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며, 주류 언론에서도 이 당의 스펙트럼은 명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탁신의 퍼주기식 복지 정책 등은 빼도 박도 못 하는 포퓰리즘 성향이 강하며, 실제로 이 당이 "포퓰리즘 정당"이라는 사실 자체에는 별 이견이 없다. 어쩌면은 이탈리아의 오성운동과 비슷한 걸 수도?[3] 물론 아시아 국가들 정치판이 으레 그렇듯이 태국 정치판도 포퓰리즘의 온상이기는 하지만.[4]
지지 기반은 북부. 이 당이 처음으로 도전한 2011년 총선 지역별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탁신과 애국당은 전반적으로 북부의 지지를 강하게 받았으며, 이는 태국인당으로도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반면 남부에서는 지지가 약한데, 특히 말레이시아와의 접경 지대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예 여기는 민주당을 강하게 몰아주고, 제3지대도 거부한다. 이는 남부 파타니 지역 말레이인들이 태국 기득권 세력과 군부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를 좋게 보지 않는 전형적인 태국인 불교도들이 역으로 민주당으로 결집하는 것이 주 원인.
2019년 태국 총선 결과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다. 군부계 정당인 공민역량당이 등장했고, 2018년에는 탁신처럼 기업인 출신인 타나톤 쯩룽르앙낏을 중심으로 미래전진당이 창당되면서 양당제보다 다당제에 더욱 더 가까워지고 있다. 특히 기성 세대에 대한 반감이 큰 젊은층들을 중심으로 미래전진당이 인기를 얻으면서, 과거의 명성을 떨치기는 힘들 듯.
미래전진당과 그 후신인 행동전진당과의 관계는 한국에서의 더불어민주당-정의당 관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100% 완벽한 대응은 될 수 없지만, 한국에 대입하자면 제일 유사한 사례다. 태국의 신세대나 진보주의자들은 탁신계 정당도 기득권 세력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그래도 일단은 반군부라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협력은 하고 있다. 2020년 태국 민주화 운동에서도 태국인당과 행동전진당, 그리고 그 외 친민주주의 성향 야당들이 단체로 반군부 성명을 의회에서 냈다.
[1] 물론 랑싯 대학교 여론조사는 제외. 해당 여론조사는 쁘라윳의 공민역량당을 1위로 집계하고 있으나, 조작·편향 의혹을 짙게 받고 있어서 믿지는 말라고 한다.[2] 본디 태국은 영국식 헌법을 본따서 내각책임제를 도입했으며, 따라서 원내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정당(또는 연합)의 대표가 총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군부의 신헌법은 각 당이 총리 후보를 최대 3명까지 낼 수 있도록 해서 좋아 보이기는 한데... 진짜 총리를 선출하는 것은 하원이 아닌 상원이다. 문제는 상원의원 전원을 지명하는 대상이 다름아닌 군부라는 점. 따라서 태국인당이 원내 1당이 되어도, 프라윳이 계속 총리로 남게 되어 정권 탈환에 실패할 수도 있다.[3] 오성운동은 직접민주주의, 녹색정치 등 좌파적인 면모가 있지만, 동시에 반이민 등 우파적인 면모도 있다.[4] 당장 민주당도 2011년 총선 때 최저임금 인상 등 포퓰리즘 공약을 내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