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충식(독립운동가)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민충식은 1890년 2월 25일 한성부 북부 안국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2년 일본 도쿄에 유학가서 공부에 전념했다. 이때 그는 엄영달(嚴永達), 조소앙 등 동지들과 함께 이승만을 미국으로 환송하고 독립운동지사들과 교류하면서 항일운동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913년 연해주로 건너간 그는 이상설, 이동녕 등 독립운동 지도자들 밑에서 한인 교포들의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 데 한 몫을 담당했으며, 1916년에는 상하이로 건너가 한국교민의 단결을 위한 체화동락회( 華同樂會)를 조직하고 신규식을 회장으로 추대했다.
1919년 국내에서 3.1 운동이 발발하자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담했고 의정원 의원을 맡았다. 1919년 말에는 충북 영동군 조사원에 임명되었으며, 1922년까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했다. 1921년에는 협성회(協誠會)를 조직하여 주재하는 한편 함영구락부(含英俱樂部)를 운영했다. 1922년 개최된 국민대표회의가 개조파와 창조파 간의 극한 대립으로 파행을 거듭하자, 그는 김용식, 이기용과 함께 국민대표회의를 개최하는 사유를 묻는 위원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국민대표회의 참가 단체 간에 분규가 계속되자, 그는 1922년 7월 안창호, 최창식, 신익희, 차이석 등과 함께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를 조직하여 독립운동 단체의 통일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던 그는 8.15 광복 후 국내로 귀환했으며, 1977년 11월 16일 시흥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민충식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