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
'''행복한 변화, 새로운 시흥"
2018년 임병택 시장 취임 당시 슬로건
1. 개요
경기도 서부에 위치한 시. 동쪽으로 광명시, 그리고 안양시, 서쪽은 인천광역시, 남쪽은 안산시와 시화호를 끼고 화성시, 그리고 북쪽은 부천시와 접한다.
슬로건은 정언양 시장 시절엔 '함께하는 시정 살기좋은 시흥', '시민의 마음속으로 시민의 생활속으로', 1998년 백청수 시장 시절부터 '뜻모아 시흥사랑! 힘모아 시흥건설!'이었다가 2002년 정종흔 시장 시절부터 'Wow! Siheung', 2010년 김윤식 시장 취임 이후 '미래를 여는 생명도시 시흥'으로 각각 바뀌었다. 또한 임병택 시장 취임 후에는 '행복한 변화, 새로운 시흥'으로 변경되었다.
주변 큰 도시들 사이에 끼어있는 모양새인데, 오늘날 시흥은 옛 시흥군(및 시흥군에 포함돼 있던 곳)에서 중심 지역(노른자위)이 다 독립해 나간 후 남은 자투리 지역들의 집합이 이름만 물려받아 시로 성장한 곳이기 때문이다. 시 출범 후 무려 40만 가량의 인구가 증가한 지금까지도 크게 보아 소래, 연성, 정왕 세 곳의 중심지가 다 따로 놀고 있어 '시흥시'의 정체성은 모호한 상황이다.
이따금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과 혼동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5] 주의할 것. 참고로, 영등포 권역에서 택시로 시흥에 간다 말하면, 열에 아홉은 시흥동으로 간다.
1.1. 시흥시를 상징하는 노래
- 시흥의 노래
작사는 유달영, 작곡은 김희조가 맡았으며, 시흥군 시절에 불려졌다.
(후렴)천만대 살아나갈 복지낙원 우리 시흥 / 어화 어화 어화디야 어화 어화디야 살기 좋구나 우리 시흥
(2절)기나긴 세월 속에 조상들이 엮은 역사 / 찬란하게 꽃 피우자 어화 여기가 내 고향
돌아가는 기계 소리 공장마다 활기 넘쳐 / 줄기차게 발전하는 어화 여기가 내 고향 ||
- 시흥시민의 노래
작사는 백승철, 작곡은 장일남이 맡았으며, 시에서 열리는 행사마다 꼭 울려퍼지는 노래이다.
(후렴)내일이 열린다 꿈이 영근다 / 살기좋은 시흥 그 이름 빛내세 / 보람의 터 우리의 시흥
(2절)푸르른 산천에 우뚝 솟아난 정기 / 여러 곳 열린 길 뜻 모여서 즐겁게 가네
서로서로 손을 잡고 우렁찬 우렁찬 전진 / 슬기롭게 바꿔가세 우리의 전통 ||
2. 역사
'''시흥이라는 지명의 정통성이 전혀 없는 곳.''' 이에 대하여 아래에 자세히 나온다.
2.1. 시흥시에는 시흥이 없다?
'시흥'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지금의 영등포, 금천, 광명 일대를 차지하던 옛 시흥군이라는 고을에 두고 있었다. 이들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잉벌노현, 통일신라시대에는 곡양현, 고려시대에는 금주현이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 금천현이 되었고 정조 때 시흥현으로 명명되었다.
하지만 '시흥'이라는 타이틀만 단 오늘날 시흥시는 원래 인천광역시(미추홀→인천도호부), 안산시(장항구→안산군) 지역이었다. 왜냐하면 옛 시흥군의 중심지인 금천구 시흥동을 비롯한 원 시흥군 지역이 광명시 일대를 제외하고는 일제와 대한민국 정부의 서울특별시 확장 정책에 따라 서울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시흥군 지역은 수도권의 팽창으로 각자 시로 분리되어 마지막으로 남은 곳이 원래 인천, 안산 땅이었던 오늘날 시흥시 지역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흥시 북부는 인천도호부 전반면, 황등천면, 신현면→부천군 소래면이었다가 1973년에 시흥군으로 편입된 곳이고, 시흥시 남부는 원래는 안산군의 일부였다가 1914년에 시흥군에 편입된 곳이다. 현재 시흥시와 시흥시의회에서도 중심부의 개발 없이는 도시의 성장이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시흥시 중심부를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유래를 보면 이해가 더 빠른 것으로서 시에서는 2013년을 시흥 100년이라고 기념한다. '시흥'이라는 타이틀을 100년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시흥시가 '시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타당하다는 것이 시흥시청의 입장이다. 금천에서 시흥으로 명칭이 바뀐 때(1795년)를 기점으로 한다면, 2013년이 시흥 218주년이 되는 것이다. 비록, 현 시흥시 지역까지 '시흥'이라 불리게 된 것이 1914년 일본 조선총독부의 부군면 통폐합 정책의 결과이긴 하나, 대한민국의 많은 행정지명이 그러하듯 고유한 명칭의 소유권은 가장 오래 소유하고 있는 지자체에 부여하는 것이 마땅하므로 타 시.구의 반발은 소모성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 시흥시청 측의 입장이다.
비록 일제강점기 때 시행된 부군면 통폐합의 폐해 중 하나이자, 광복 이후 수도권 도시화로 인해 역사성과 정체성에 있어 혼돈을 겪어왔던 지자체 이긴 하나, 시흥시 내의 자연부락이나 도농 복합형태의 마을 혹은 공동체 등의 특성 등을 보면 일제강점기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를 하나의 도시에 집약한 역사의 축소판이라 볼 수 있을 정도로 도시 곳곳에 오랜 흔적들이 생생히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2.2. 현 시흥시 지역의 역사
지금의 시흥시 북부(옛 소래읍)는 지금의 인천광역시 중구, 동구,미추홀구,연수구,남동구 일대와 함께 삼국시대에는 미추홀/매소홀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소성현이었다가 고려시대에 경원부 → 인주였고 조선시대에는 인천도호부가 되었다. 구한말에는 인천부 신현면, 전반면, 황등천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인천부의 영역이 축소됨에 따라 지금의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연수구, 남동구 지역과 함께 부천군으로 이관되었다. 이후 부천군 소래면이었다가 1973년에 부천군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하면서 옛 부천군의 잔여지역 중 하나인 소래면이 시흥군으로 편입되었다. 1980년에 시흥군 소래읍으로 승격하였고 1983년에 계수리의 일부와 옥길리의 일부가 부천시에, 옥길리의 나머지 일부가 광명시에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에 남부의 군자면, 수암면과 함께 시흥시로 승격했다.(당시 관련 뉴스) 1989년 시흥시 승격을 앞두고 인천직할시와 부천시는 서로 시흥군 소래읍을 자기 관할로 넘겨달라고 내무부에 건의하기도 하였다.
지금의 시흥시 남부(옛 군자면, 수암면)는 지금의 안산시 일대와 함께 삼국시대에는 장항구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장구군이었다. 고려시대에 안산군으로 이름이 바뀐 이래로 안산군이라는 고을이 1913년까지 이어졌다. 1914년에 안산군과 과천군이 시흥군에 통폐합되어 시흥군 군자면, 수암면이 되었고, 군자면과 수암면의 각 일부(경기도 반월출장소 편입 지역)가 1986년에 안산시로 분리 승격되었고 잔여지역은 1989년에 북부의 소래읍과 합하여 시흥시로 승격했다.
1995년 내무부 주도의 인천 추가 확장을 앞두고 시흥시도 인천 편입 대상으로 거론되었으나 당시 시흥시 의회의 거센 반발로 주민투표조차 회부하지 못하여 인천 편입은 이루어지지 않았고(참고 기사), 장상동, 장하동, 수암동 및 화정동 일부가 안산시로 편입되었다. 2009년에는 안산시와의 통합이 논의되기도 했다.
2.3. 인구 추이
2020년 현재 49만에 가까운 인구수를 기록하고 있으며, 1989년 시승격 당시(93,284명)보다 390,880명 증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구조가 엉망인 점이 도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꼽히고 있다. 2020년 11월 기준 인구가 497,925명으로 머지않아 인구 50만명을 돌파해서 특례시가 될 준비를 하고있었다.
결국 2020년 12월 기준 인구수가 500,895명으로 특례시의 조건을 달성하였고, 평택시 다음으로 특례시 조건을 달성한 시이다.
3. 도시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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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는 광명시의 도시구조이다. 광명-철산-하안-소하(북부)가 연담화되어 있다.
[image]
위 지도는 시흥시의 도시 구조이다.
보다시피 남양주시처럼 '''도시 구조가 매우 엉망이다'''. 남양주시는 구리시와 묶어서 보면 시 내부엔 없는 중심지가 구리시에 있는 게 보인다는 걸 감안하면, 아예 중심지라는 게 없는 시흥시의 도시 구조는 더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위성지도로 자세히 보면 더욱 엉망진창인 모습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 제각각 따로 노는 시가지들을 보다 보면 참 혼란스럽다.
사실상 시흥시는 한 도시라고 보기 어렵다. 이것은 옛 시흥군 시절 일찍이 시가지가 형성된 알짜배기 구역들(영등포, 안양, 광명, 군포, 의왕[6] , 과천 등)이 전부 서울 편입이나 시 승격으로 시흥군에서 떨어져 나간 후, 남은 자투리 구역들(구 시흥군 소래읍+군자면+수암면)을 이제와서 인접 지자체로 편입시키기도 어렵다 보니 서로 긴밀한 관계가 없음에도 궁여지책으로 묶어서 만든 행정구역이기 때문이다.[7] 저 지도에 나온 옆 동네 안산시만 하더라도 단일한 도시권이 형성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생활권을 보게되면 크게는 북쪽 부천시 생활권으로 신천-은행-대야로 구성되는 북시흥(일명 은신대)와 남서쪽 안산시와 동반개발된 정왕,군자 일명 시화지구, 시 중앙부에는 시흥시청을 중심으로한 장곡+장현+연성+능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통칭 장현, 동쪽으로는 나홀로 택지지구로 안양시 생활권인 목감지구(조남동)등이 있다.
도시구조가 이렇게까지 된 까닭에는 1970년대에 개발제한구역이 지정될 당시 구 시흥군의 많은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이었는데,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인구밀집지역이 다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즉, 신천-은행지구(구 시흥시청)을 제외하고 시가지 거의 전역이 그린벨트인 가운데 자연촌락지역(즉 시골집이 몇 채 있는 곳)만 그린벨트가 아니다 보니 이들 지역만 소규모로 개발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정왕지역(시화국가산업단지)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시가지 구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은행동 1도심에 나머지 지역은 그냥 소규모 취락지구라서 도시구조가 번잡하지 않았다. 즉, 소규모 전원도시 정도로는 적절했던 것.
하지만 남쪽의 정왕동(시화)[8] 지역은 애당초 갯벌이었거나 시화방조제로 인한 매립지(즉 이전에는 바다였던 곳)이었기 때문에 애당초 그린벨트로 지정될 까닭이 없었으며, 그 결과 지금과 같이 개발되었다.[9] 그러다 보니 인구도 그리 많지 않은 지자체가 북쪽 은행동, 남쪽 정왕동의 2도심 체제가 되고 중간이 텅 빈 형태가 되자 도시계획을 다시 짠다고 해서 그 둘의 한가운데인 연성지구로 시흥시청을 이전하고 행정중심지로 개발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이제는 도심 세 군데가 따로 노는 상황이 된다. 덤으로 그린벨트에서 빠진 소규모 취락지구 또한 그 넓이 그대로 고밀도 개발을 하게 되고 그 결과가 위 지도대로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야심차게 추진한 연성지구 개발조차 답이 없다는 것이다. 장현, 장곡동 지역 아파트들이 1999~2000년 사이에 들어섰는데 이 사막에 흩뿌려놓은 오아시스같은 두 마을을 제외하고 연성지구의 다른 블록들은 2004년에 JPARK가 입주하고 2019년에 장현B1블록이 입주할 예정인 것을 빼면 벌써 20년 가까이 허허벌판인 상태다. 심지어 뭔가 개발이 진척되고 있는 낌새조차 없다. 이러다보니 10년 후에 입주한 남동쪽의 능곡지구 역시 홀로 붕 떠버린 신세가 되어 특히 교통 면에서 답이 없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10]
도시 자체가 워낙 뭔가 중구난방으로 개발되고 찢어지고 합쳐지고 하다 보니 '시흥시'라는 정체성(Identity)은 시 승격 31년이 지난 지금도 희박하다. 도시의 생활권을 크게 둘로 나누자면 시흥시 북부(대야동, 신천동, 은행동)같은 경우에는 부천과 인천이 근접하여 인천(특히 붙어있는 남동구와 부평구) 및 부천에 속해 있는 반면, 시흥시 남부(정왕동, 군자동, 거모동)같은 경우에는 안산과 근접하여 안산권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큰 분류일 뿐이고 실제 생활권은 안산, 부천, 인천, 광명, 안양 등으로 쪼개져 있다. 일례로, 목감동은 안양 편입 운동이 거셌던 지역이며, 목감지구 입주 이후 시흥시의 막장 행정에 지친 입주자들 사이에서 다시금 광명이나 안양으로의 편입 여론이 일어나고 있다. 과림동은 서울 개봉전화국에서 관할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원래 한 몸이었던 옥길동[11] 은 광명과 부천으로 분할 편입되는 데 성공하기까지 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시흥시를 찢어서 인천, 안산, 광명, 부천 등지에 분할 편입시키는 게 더 나을 지경이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보니 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시흥시 구조의 난맥상만 보면 분할편입이 나아 보이지만, 생활권으로 봤을 때 부천·인천에 속하는 소래 지역이 성주산으로 그쪽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막상 편입시키기에도 녹록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안산권 지역만 분할편입하기에는 승격 당시 소래 지역의 시세가 약해 독립적으로 생존이 가능할지 의문이라 지금의 시흥시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나올 때마다 시흥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애초에 시흥시 북부는 1914년까지 구 인천부(인천도호부), 시흥시 남부는 1914년까지 구 안산군이었던 것처럼 정체성이 다르다.
3.1. 행정구역 개편 문제
위 문단에서 설명한대로 역사적인 이유, 그리고 실제 생활권 문제 때문에 시흥시를 대상으로 한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행정구역 개편/수도권/기초자치단체 통합#s-4.2 문서 참조.
4. 도시행정
전국에서 가장 '예산 대비 부채 비중'이 높은 도시였다고 한다. 무려 43.2%에 금액으로는 '''3414억'''이나 된다. 하지만 이 중 군자지구 배곧신도시 개발 사업으로 한화그룹에게 땅을 사면서 생긴 부채가 대부분이다.[14] # 부채에 대한 오해가 많아서 시흥시 공무원 전용망(공무원들은 핸디라고 부르는...)에만 올린 탓에 정작 시민들은 잘 모른다. 시민들에게 더 적극적인 해명을 해야되는 게 아닐까 싶지만... 2015년 10월 30일 공영개발특별회계 빚 750억 원만을 남기고 일반 회계 채무 전액과 공영개발특별회계 부채 수천억 원을 모두 '''갚았다!'''.
이 지역에 세무서가 생긴 것은 1992년, 소방서는 1996년, 경찰서는 1999년, 시립도서관은 2002년이었다. 그 전에는 광명시 소속기관에서 지소/지서를 두고 담당했다.[15] 2002년 정왕동 시흥시립도서관 개관 이전까진 시립도서관이 없어서 신천동 작은자리도서관과 은행동 대야도서관[16] 밖에 없었다. 나머지 지역은 학교 도서관이나 독서실을 이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우체국/소방파출소/노동부 지방사무소 역시 소래읍 지역이 부천시 관할이었고, 교육청(지금의 교육지원청) 또한 구 소래읍 지역은 부천시교육청, 구 군자읍 지역은 안양시교육청에 각각 속하다가, 이후 안양과 광명을 거쳐 안산교육청 관할이 되었다. 현 시흥교육지원청이 개청한 것은 2004년이 돼서부터였다. 등기소의 경우 안산등기소를 쓰는 바람에 전자등기도 없던 시절 신천 사람들은 안산까지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다. 이것 때문인지 1991년 2월 4일 및 6월 28일자 KBS 9시 뉴스와 1996년 10월 31일 MBC 뉴스데스크 카메라출동에서도 당시 안습한 행정 실태를 보도했었다.
상기한 행정인프라의 부족 때문에 2000년대 초반까지도 시흥 내에서 시외통화를 해야 했다. 정왕 등 안산시에 인접한 지역은 안산 지역번호였던 0345, 시흥시청 및 신천 일대 지역은 인천 지역번호인 032를 썼다.[17] 그냥 이것만이면 좋겠는데 안양시 인근 지역인 목감동은 안양시 지역번호인 0343, 광명시 인근 지역(앞의 각주에서 언급했던 과림동 일부 지역)에서는 서울 지역번호인 02까지 썼다.[18] 구 소래읍 지역은 1979년 이전에는 소래면 자체 통화권이었으나 1979년에 부천전화국 관할로 편입되면서 인천통화권(032)으로 편입되었고, 구 소래읍 일대를 관할하는 별개의 전화국인 시흥전화국(현 KT시흥지사)이 1990년에 신설되었다. 한편 구 수암면, 군자면 지역 역시 원래는 수암면, 군자면 자체 통화권이었으나 1979년에 안양전화국 반월공단분국이 신설되면서 오늘날의 안산통화권이 설정되었고, 그 이후에 시화전화국이 신설된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시에서 지역번호가 4개나 혼재했던 것. 이후 2000년 7월 2일에 한국통신이 기존 지역번호를 144개-4자리에서 16개-3자리로 바꾸면서 경기도 지역번호인 031로 완전히 통일(단, 아까전 언급한 과림동 일부지역은 제외)되어 이러한 불편함이 사라지게 되었다. '''지역번호 개편 당시에는 시흥시 중북부(인천통화권) 쪽이 안산통화권으로 흡수 편입'''되는 식으로 개편이 이루어졌다. 다만 인접도시로 거는 시외전화는 1993년부터 시내요금과 동일하게 정해졌으므로 요금상 불이익은 사실 없었다.
시흥시 소속 공무원들 중에는 시흥시 주민보다는 타 지역 주민들이 많다고 한다. 시흥시민 아닌 시흥시 공무원.
시민이 아닌 도의원[19] 이 정류장 관련 민원을 올렸지만, 안 올린 것보다 못한 성의없는 매크로 답변을 해버렸다. 경기도의원이 소사역 버스 정류장 신설 요청. 이는 다른 민원도 별반 다르지 않아 스마트폰앱인 생활불편신고앱으로 신고를 하면 해당 지역의 지자체 담당부서 공무원이 처리 결과를 답으로 달아주는데 예를 들면 21일날 신고한 장애인주차구역 위반 신고와 24일날 신고된 장애인주차구역 위반 신고에 대해 모두 27일날 동일한 답변을 매크로로 복사+붙여넣기를 한다. 답변 내용 역시 어떠한 확인을 하고 조치를 어떻게 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는 확인 후 부과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라는 무성의한 답변일색 이었다. 하지만 행정 인프라가 매우 부족했던 시흥의 상황을 생각하면 인프라구축이 오래된 대도시급 행정에 비한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으며, 최근 시흥시의 행정은 날이 갈수록 스마트 해지고 처리기간이 빨라지고 있다.
4.1. 역대 시장
- 관선
- 박창곤 (1989)
- 이철규 (1989~1992)
- 임석봉 (1992~1993)
- 한인석 (1993~1994)
- 하영수 (1995)
- 민선
4.2. 주요 행사
- 물왕예술제
- 군자봉 성황제
- 시흥갯골축제
4.3. 언론
5. 교통
아스트랄한 역사적, 지리적 특징 못지 않게 교통 상황도 엉망이었으나, 지금은 서해선의 개통으로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시흥시/교통 참조.
6. 경제
남으로는 시화 매립지가 있으며 북으로는 주로 산지가 있으며 농토도 있다. 여기서 시흥시 자체 브랜드인 햇토미(쌀)가 나온다. 안산스마트허브 옆에 있는 시흥스마트허브로 유명하다. 시흥스마트허브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 때문에 지역주민들은 기피하지만, 그래도 시흥의 큰 밥줄인 건 이래저래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버스 목적지 표기 중 시화국가산업단지 쪽은 '시화공단'으로 표기하고 있어서 관련 노선 문서 내에서도 편집자들 사이에서 아직도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제조업, 상업, 사무직,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고, 바다와 인접해있기 때문에 소수지만 어업에 종사하는 주민도 있다. 오이도 주변엔 수산업, 회집, 영어법인 등이 존재한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상한 도시구조로 인해 상권도 진정한 상권이라고 하기에도 심히 민망할 정도로 작은 편이다. 그나마 시화지구 이마트 근처 상권[20] 이 시흥시에서는 큰 편인데, 거의 다 주점이라서 청소년들이 이용할만한 상업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소래읍 지역도 마찬가지여서 주점이라고 해도 젊은 층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기 때문에 모조리 다른 지역으로 빠져 나가는 상황. 이는 지역의 공업단지에서 기인하는 문제도 있다. 일반적인 상권이라면 보통 다종 다양한 식당과 상점들이 얽혀 있겠지만, 가뜩이나 부족한 상권과 산단 특유의 어른의 문화(?)가 맞물려 시흥관광호텔부터 시화 이마트 뒤편까지 이어지는 상권은 대부분 고깃집과 술집, 노래방, 그리고 유흥업소 등이 뒤엉켜 있다. 유흥가는 물론, 주택가 구석구석까지 출장 마사지와 다방 등의 전단지가 늘 돌아다닐 정도다.최근에는 배곧신도시에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중심 상가,아브뉴프랑 등이 들어서면서 그나마 나아지게 되었다.
대형 할인매장 같은 경우 대야동에 롯데마트(구 코오롱마트-GS마트)[21] 가 있고, 정왕동에 이마트(2000년 개업), 롯데마트(구 LG-GS마트), 홈플러스, 배곧에 롯데마트가 있다. 다만 대야동에 있는 롯데마트는 작은 편이라[22] 이 부근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이마트 부천점이나 코스트코 광명점을 주로 이용한다. 이마트에서 은계지구에 부지를 구매했다고는 하나 은계지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옥길지구(부천시 옥길동)에 지하 6층, 지상 9층 규모의 스타필드시티 부천이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에 은계지구 부지는 매각해 버렸다. 안산시와 시흥시의 경계 즈음(신길파출소 주변) 이마트 트레이더스 안산점이 있어 군자동(거모동) 주민들은 그래도 편리한 장보기를 할 수 있다.
영화관은 정왕동에 롯데시네마(2003~2011년까지는 월드시네마)와 CGV, 대야동에 CGV, 배곧에 메가박스, CGV로, 총 5곳이 있다.
패스트푸드 체인은 롯데리아, 맥도날드 일색이었다가 2017년에야 써브웨이가 정왕에 생기고, 2019년에 버거킹이 배곧과 정왕, 목감에 생겼다. 2020년 은계지구에도 생기면서 북부권 주민들은 부천까지 가는 번거로움이 사라졌다.
2017년 4월 신세계그룹 계열의 신세계 아울렛이 배곧신도시에 오픈하였다.
스타벅스 매장은 시화 이마트 부근에 '''시화로데오점''' 밖에 없었으나... 최근들어 상권이 발전하면서 배곧신도시에 '''배곧신도시점'''과 '''배곧아브뉴프랑점'''이 들어섰고, 대야동에도 '''시흥대야점'''과 '''시흥대야DT점'''[23] 이 들어섰다. 시흥프리미엄아울렛에는 매장이 두개가 들어왔고 그 중에는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도 있다. 목감동에 LPG 충전소와 겸한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 들어와 운영중이다.
7. 금융
8. 교육
8.1. 중학교
8.2. 고등학교
유명한 학교는 소래고(구 소래종고), 시흥고, 조리과학고[24] 등이 있으며, 타 지역에 있는 학교에 비하면 과밀 학급이 비교적 많다. 인근 도시에서 시흥으로 학교다니는 학생도 꽤 많았다. 주로 광명, 안산쪽에서 오고, 안양, 부천에서도 어느 정도 온다. 비평준화 지역 특성상 같은 일반계고 간에도 격차가 대단히 큰 지역이다.
1980~1990년대에 시흥시의 일부 우등생들은(특히 소래권) 소래고등학교 대신에 바로 인접한 부천시의 부천고등학교[25] , 부천여자고등학교 등으로 진학했으나 2002년 이후 부천이 평준화가 되면서 시흥과 부천의 학군이 완전히 분리된 뒤로는 시흥시 관내 학교에서 부천으로 학생을 진학시키는 일이 거의 없게 되었다. 1990년대까지는 얼마 없는 우등생을 부천 지역에 사실상 빼앗기다시피 해서 소래고등학교 등 시흥시 관내 학교들이 성장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2000년대 이후 비로소 시흥시 소재 학교들이 우등생을 본격적으로 키워 낼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따라서 시흥시(특히 소래권) 교육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부천과 결부된 문제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이것은 소래읍이 부천군에서 갓 분리되었을 때부터 부천이 평준화되기 전까지 쭉 존재했던 문제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에는 북시흥 출신 일부 우등생들이 광명북고등학교에 진학하기도 했다. 2008년부터 기숙사가 생기면서 특히 9년대에 소래고에 입학생 커트라인이 높은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가까운 곳으로 입학하자는 주의가 팽배해 고학점 학생들이 몰리는 바람에 내신과 수시에 힘듦을 토로했다. 2011년부터 함현고등학교가 자율형 공립고등학교로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예산만 해도 몇 억씩이라고 하니 사람이 당연히 몰리게 되었다. 자율형 공립고 시행 첫 해 당시 내신 커트라인이 160대로 매우 낮은(?) 커트라인이었으나, 2013년 입학생 커트라인이 190대라고 하니, 엄청난 발전이 아닐 수가 없다.
무지내동에 있는 경기자동차과학고등학교는 고등학교 주제에 대학교보다 더한 실습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시흥시민의 인지도는 그저 옛날의 한인고등학교 수준이다.[26] 확실히 시흥의 다른 특성화고에 비하면 두발규제가 좀 엄격한 편이었으나 2011년 들어 두발규제가 풀렸다. 참고로 사립학교라서 비리가 많다는 카더라가 전해져온다. 실제로도 이사장이 워낙에 골골하셔서 교장이 권력이란 권력을 다 쥐고 있는 판국이다. 더구나 이사장의 아들이기도 하고. 2014년 기준 실적을 위해 위장취업도 망설이지 않는다. 대학 진학 현황도 같은 학생이 여러 곳을 붙은 경우에도 가리지 않고 전부 표기함으로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2010년 1월 초 폭설 때 소래고에서 서울대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해 서울대로 가려던 학생이 전철이 지연되어 면접을 보러가지 못했던 사건이 있었다. 지역 주민들과 각종 누리꾼들이 구명운동을 했으나 서울대는 끝내 가지 못하였으나, 연세대에서 특례 장학입학을 시켰다. 다 시흥 교통이 막장이라 이렇게 된 것...이지만, 이 기사의 내용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이 학생이 소사역에서 열차를 기다렸던 그 시각 50분 후에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전혀 관계가 없으며, 평소에도 빠듯할 판에 폭설이 내렸는데도 그 시간에 나온 그 학생의 전적인 잘못이다.
그 외에도 과학중점학교인 시흥매화고등학교가 있다. 2009년에 개교한 신설학교로, 개교한 직후에는 학교 이미지가 매우 좋지 않았으며[27] 실제로도 그랬지만... 위에서 언급된 은행고와 마찬가지로 학생들 거의 대다수가 수시를 지원한다. 역시나 대입 성적도 그리 좋지는 못한 편... 제2회 청소년 기술창업올림피아드에서 시흥매화고등학교 학생들이 공동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회 때의 공동 금상 수상자는 전북과학고와 한국과학영재학교 학생이었다고. 이러한 실적 덕분에 기사와 뉴스가 뜨기도 했다.
8.3. 대학교
한국산업기술대학교와 경기과학기술대학교[28] 가 함께 붙어있다.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가 배곧신도시에 조성 중이다.
8.4. 도서관
- 거점/공공도서관
- 시흥중앙도서관: 구 시흥시립도서관. 2002년 신설.
- 대야도서관: 은행동 시흥시평생학습센터(시흥시종합복지회관) 1~3층 소재. 1996년 신설.
- 소래빛도서관
- 능곡도서관
- 정왕어린이도서관
- 군자도서관
- 목감도서관: 2019년 신설.
- 배곧도서관: 2020년 신설.
- 작은도서관
- 신천도서관: 2010년 신설. 구 신천동주민센터 건물 개조.
- 매화도서관
- 월곶도서관
- 장곡도서관
- 소래산작은도서관: 구 진로도서관. 대야동 소래산 시흥ABC행복학습타운(구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옥) 내 소재
9. 치안
- 시흥경찰서: 1999년 개청.
10. 정치
-1
||<-10> '''경기도 시흥시 국회의원'''(13대~) ||
|| 과천시·시흥군 || 군포시·시흥시 ||<-8> 시흥시 ||
|| 13대 || 14대 || 15대 || 16대 || || 17대 || 18대 || 19대 || 20대 || 21대 ||
||<|2> [[황철수(정치인)|황철수]]/초선[br][[민주정의당]] ||<|2> [[제정구]]/초선[br][[민주당(1991년)|민주당]] || [[제정구]]/재선[* 99.2.9 별세][br][[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2> [[박병윤]]/초선[br][[새천년민주당]] || [[시흥시 갑|갑]] || [[백원우]]/초선[br][[열린우리당]] || [[백원우]]/재선[br][[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 [[함진규]]/초선[br][[새누리당]] || [[함진규]]/재선[br][[새누리당]] || [[문정복]]/초선[br][[더불어민주당]] ||
|| [[김의재]]/초선[* 99.3.30 재보궐선거][br][[자유민주연합]] || [[시흥시 을|을]] || [[조정식(정치인)|조정식]]/초선[br][[열린우리당]] || [[조정식(정치인)|조정식]]/재선[br][[통합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 [[조정식(정치인)|조정식]]/3선[br][[민주통합당]] || [[조정식(정치인)|조정식]]/4선[br][[더불어민주당]] || [[조정식(정치인)|조정식]]/5선[br][[더불어민주당]] ||
경기도 서남부 지역이 으레 그렇듯 민주당계 초강세 지역인데다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두드러지고 있다. 2020년 21대 총선 기준 경기도 내에서 더불어시민당이 39%를 넘은 유일한 곳으로, '''수도권 내 최대 민주당 득표율'''을 기록한 지역이다. 하지만, 과거 시흥군 시절에는 중선거구제 영향으로 민주정의당 윤국노 전 의원이 5선에 성공하는 등 군사정권 시절에는 보수텃밭이었다. 직선제 이후 13대 총선에서도 민주정의당 황철수 후보가 당선되는 등 시흥군 시절만 해도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이었으나, 시 승격과 함께 도시화가 이루어지며 14대 총선에서는 빈민운동의 대부인 민주당 제정구 후보가, 15대 총선에서도 통합민주당 제정구 후보가 당선되며 민주당의 독주가 시작되었다. 제정구 의원의 작고로 치뤄진 보궐선거에서는 자유민주연합 김의재 후보가 당선, 이후 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 박병윤 후보의 당선으로 정권 지지세가 유지되었다. 탄핵 열풍이 분 17대에서는 분구가 된 2개 선거구 모두를 열린우리당이 휩쓸었으며, 한나라당이 대승한 18대 총선에서도 2석 모두 통합민주당이 가져갔다.그러나 19대 총선부터는 갑구와 을구의 양상이 달라졌다. 구 소래읍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갑 선거구에선 함진규 새누리당 후보가 백원우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19대 총선, 20대 총선 연속 2연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것은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무려 '''24년'''만에 새누리당계 정당이 시흥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한 것이었다. 그나마 19대 땐 그래도 202표라는 매우 근소한 차이로 져서 희망을 가졌지만, 미운털이 꽤나 단단히 박혔는지 20대 총선에선 39,789표를 득표하며 44,846표를 득표한 함진규 후보에게 오히려 19대 때보다 더 큰 5,057표차로 낙선했다.
시흥스마트허브(시화공단)를 끼고 있는 을 선거구 지역은 그런 거 없이 여전히 민주당계 정당의 텃밭이다. 을구 지역을 이루는 정왕동, 군자동 일대에 30대 이하의 젊은 층이 많이 거주하는데다가 산업단지 근로자들의 진보 성향 표가 많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조정식 의원이 17대부터 21대까지 연속 5선에 성공하며 민주당 초강세 성향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다만 상기했듯이 투표율이 굉장히 낮아, 2017 대선 69%, 2018 지선 46%, 2020 총선 56% 등등 전국 평균에 비해 무려 10% 가량 차이가 난다. 여론조사 기관에서도 전화 응답률이 낮아 민심을 가늠하기 어려운 곳으로 꼽힌다.
시흥시는 시가지화 된 곳들이 먼저 시로 떨어져 나가고 마지막까지 군으로 남아있던 곳이다보니 과거 경기도 서남부권에서 유일하게 보수 성향 우세 지역이었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는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1위를 차지했고,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가 1위를 차지했는데, 13대 대선에서 3당 합당 진영의 득표율을 합해보면 무려 보수 후보의 득표율 합이 '''70%'''를 넘겼고 14대 대선에서도 보수 후보 진영 득표율을 합해보면 무려 보수 진영이 60%를 넘기며 민주 진보 진영의 김대중 후보를 트리플 스코어로 따돌린 지역이 시흥이었다.
그러나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가 보수 진영의 대선 후보였던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제치고 1위를 했고,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큰 표차로 누르고 승리하며 시흥시가 대선 적중 지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엔 박근혜 후보가 102,267표(47.6%)를 얻으며 112,012표(52.1%)를 얻은 문재인 후보에게 뒤지면서 적중 지역에서 벗어났다.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면서 보궐선거로 치뤄진 2017년 5월 9일 19대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43.5%의 득표율을 얻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시흥시의 세 권역 중에서 구 소래읍 지역[31] 득표율이 40% 턱걸이 수준으로 가장 낮았고, 시화권(정왕동, 군자동, 월곶동) 및 신도시권(연성동, 능곡동, 장곡동)의 득표율이 45% 내외로 조금 더 높았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세 권역을 막론하고 24%의 고른 득표율을 얻어 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큰 격차로 누르고 2위를 차지했고, 지난 대선에서 47.6%를 얻은 새누리당은 지지율이 크게 낮아져 18%의 지지율로 추락해 3위에 그쳤다.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 안철수 후보가 각각 앞선 지역은 다음과 같다.
- 시흥시 : 문재인 103,732(43.52%) > 안철수 58,119(24.38%) > 홍준표 43,248(18.14%)
- 1위 - 문재인 : 장곡동(47.2%), 정왕4동(46.5%), 정왕본동(45.9%), 정왕1동(44.9%), 정왕2동(44.6%), 은행동(44.4%), 연성동(44.3%), 정왕3동(44.2%), 월곶동(43.5%), 능곡동(43.4%), 목감동(41.7%), 대야동(40.7%), 신천동(40.3%), 군자동(39.9%), 매화동(38.6%), 신현동(35.8%), 거소/선상투표(37.1%), 관외사전투표(46.9%), 재외투표(62.7%) (16개동 + 관외투표) / 안철수 : 없음 / 홍준표 : 과림동(41.1%) (1개동)
- 2위 - 문재인 : 과림동 (1개동) / 안철수 : 대야동, 신천동, 신현동, 은행동, 매화동, 목감동, 군자동, 월곶동, 정왕본동, 정왕1동, 정왕2동, 정왕3동, 정왕4동, 연성동, 능곡동, 장곡동, 거소/선상투표, 관외사전투표, 재외투표 (16개동 + 관외투표) / 홍준표 : 없음
10.1. 관련 문서
11. 군사
은근히 군부대가 없을 거 같지만 사실 중요 군사시설이 위치한 곳이다. 애초 김포시에서 인천광역시로 내려오는 수도권 서해안 방어선의 마지막 부분이며, 부대 전력만으로 인천, 안양을 능가하는 수준, 시흥시에는 수도군단 직속 수도포병여단과 제1군수지원여단 수도군수지원단 예하 80정비대대와 제6군수지원단 예하부대, 1사격대 및 상비사단 기갑부대 중 최후방인 제17보병사단 전차대대가 위치해있다. 그 외에도 예비군 훈련부대(52사단 예하 강서양천훈련장, 17사단 예하 부천훈련장)와 유류, 수송, 보급부대들이 줄지어 있어 전시에 병참기지로서 중요한 지역이다.
경기도 서남부권인지라 제51보병사단의 위수지역이며 예비군훈련 역시 51사단 휘하연대 소속 대대에서 시행한다. 시흥시 해안선의 방어책임은 대한민국 해군 2함대 인천해역방어사령부에 있다. 인천해역방어사령부는 경기도 남부 해안까지 담당하는데 2함대 본진이 NLL 및 서해5도 방어에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단, 부속 도서였던 오이도는 매립되어 육지가 되었다.
또한 공군방공유도탄사령부 예하 패트리어트들도 주둔중이다. 3여단 예하 OOOO부대 다수가 주둔중이다.
12. 스포츠
대한민국 4부 축구리그인 K4리그에 참가하는 시흥시민축구단의 소재지이다. 홈구장으로는 정왕스타디움을 쓰고있다.
13. 하위 행정구역
14. 사건사고
-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사건 및 사고
- 김지연 군 살인 사건 (2003년 8월 24일)
- 시화호 토막 살인 사건 (2015년 4월 5일)
- 임신묘 모닝 폭행 사건 (2016년 7월 6일)
- 시흥 딸 살인사건 (2016년 8월 19일)
- 고양이 학대 영상 업로드 사건 (2018년 4월 11일)
- 시흥 일가족 사망 사건 (2019년 5월 5일)
- 고양이 꼬미 살해 사건 (2019년 10월 17일)
15. 기타
대한민국의 기초자치단체 중 회문이 되는 지역 3곳 중 하나다. 나머지 2곳은 서울특별시 구로구, 경상북도 군위군.
전국에서 젊은 도시 중 10위권 내에 속한 도시이기도 하다.
김지연 군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오이도라는 섬(?)이 있는데, 사실 여긴 섬이 아니다. 왜냐하면 육지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실제로 섬이었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수인선 철도를 부설하면서 간척해버렸다. 그래도 오이도 자체는 꽤 볼만하다고 한다. 특히 조개구이는 별미이며, 오이도의 빨강등대에서 보는 노을은 매우 아름답다. 이 외에도 월곶포구나 연꽃테마파크가 볼만하다. 4호선의 종착역인 오이도역은 이름만 봐선 오이도와 매우 가까워보이지만, 꽤 멀다. 게다가 정왕역과의 차이도 별로 안난다.
1962년 12월 31일까지만 해도 광주군과 시흥군은 붙어있었다. 지금의 강남대로를 기준으로 서초구 관할 지역은 시흥군, 강남구 관할 지역은 광주군 관할이었다. 현재는 시흥시와 광주시 사이에 대도시가 두 곳, 중형 도시가 두 곳 있다.[33]
가끔 금천구 시흥동과 착각해서 잘못 오는 사람들도 몇몇 있다.[34] 시흥역은 이것 때문에 금천구청역으로 개칭했다. 나이 드신 분에게 시흥시 위치를 알려주고 싶을 때에는 '소래'나 '신천리'라고 하면 이해하신다. 참고로, 서울 서남부(영등포 권역)에서 '시흥'은 시흥시보다는 서울의 시흥동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2010년 2월 9일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진앙지가 이곳과 광명시 경계 지점이었다. 강도는 3.0.
2013년 5월 18일, 시흥시 정왕동 무진아파트 부근 도로에서 55%로 희석된 불산액이 40L 가량 유출되기도 했다.
몇몇 사람들은 시흥 남부를 시화시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 신문 뉴스에서도 시화시라고 할 정도. #
시흥시를 관할하는 천주교 교구가 두 개로 갈려져 있다. 북부(대야동, 신천동, 은행동)는 인천교구가 관할하고 남부(정왕동, 군자동, 월곶동)는 수원교구가 관할하고 있다. 전자는 인천부 → 부천군 소속이었고, 후자는 안산군 → 시흥군 소속이었기 때문.
경기도에서는 연천군, 포천시에 이어 성비가 높은 지역에도 속하는데, 시흥시의 성비는 1.10이다.
16. 출신 인물
1914년 이전에 출생한 인물은 관점에 따라서 인천광역시 및 안산시 출신, 1914년~1973년 사이에 시흥시 북부에서 출생한 인물은 부천시 출신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구 시흥군이 아닌 현 시흥시 지역을 기준으로 한다.'''[35] 단, 출신지 정보로 '시흥군'만 나와있어 세부적인 위치가 확인안되는 인물은 일단 이 목록에 집어넣되, 현 시흥시 지역 출신이 아님이 확인된 경우에는 삭제한다.
- 강소영 - 패션모델. 함현고등학교 3학년 재학 당시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1위를 했다.
- 경수진 - 프로필에 시흥시 출신으로 되어 있으며, 출신 초중등학교는 알 수 없으나, 장곡고를 나왔다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시흥에서 산 것으로 보인다.
- 기원 - 보이그룹 기동대 멤버.
- 김규삼 - 웹툰작가 #1#2
- 김성은 - 순풍 산부인과의 미달이로 유명했던 배우다. 정왕동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으며(기사) 중·고교 시절은 고양시 덕양구에서 보낸 듯.
- 김용산(1922~2007) - 극동그룹 창업주이자 대야동 소래산 자락에 있는 소전미술관 설립자. 시흥시 대야동(출생 당시 부천군 소래면 대야리) 출생.
- 김정렬(1907) - 시흥시 무지내동(출생 당시 인천부 황등천면 칠리)[36] 출생.[37]
- 노동건 -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골키퍼 시흥 신일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
- 바다 - 태어난 곳은 전라남도 완도군이지만, 어릴 때부터 사는 곳은 시흥시다. 학력에서 도창초등학교, 소래중학교[38] 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서민정이 진행했던 라디오에서도 매화동 도두머리에서 살았다고 했다. .
- 박상옥(법조인)
- 안성훈(트로트 가수) - 내일은 미스터트롯 출연자. 시흥시에서 태어났으나 오산시에서 성장함.
- 양석천(1921~1990) - 1950~60년대에 양훈과 콤비로 활동했던 원로 코미디언. 시흥시 대야동(당시 부천군 소속) 출생.
- 유득공 - 시흥시 군자동 산뒤마을(당시 안산군 소속) 출생.
- 유명환
- 유선호 - 프로듀스 101 시즌2 출연자
- 윤영하
- 이동주(1962)
- 이병호(군인)
- 이성호(해군)
- 이세진(배우) - 프로듀스 X 101 출연자
- 이용훈(1927)
- 인선왕후 - 시흥시 장곡동 산68 안골마을(당시 안산군 소속) 출생.
- 임도혁 - 슈퍼스타 K 시즌 6를 통해 2016년, 싱글 앨범 '사랑이란 말'로 가요계에 첫 발을 들인 가수. 시흥시 은행동에 있는 은행고등학교 출신이다. 그가 슈퍼스타 K 우승 후보군으로 올라갔을 때 시흥시청에서 응원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은행고의 학교 축제인 은행제에 출연해 가창력을 뽐내기도 했다.#
- 장경우
- 정제두(1649~1736) -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 원래 그는 한성부 반곡방(盤谷坊)에서 출생하였으나 시흥시 화정동 가래울 마을(당시 안산군 소속)에서 어린 시절을 살았다.
- 지창룡(1922~1999) - 시흥시 군자동 출생이며 한국의 유명한 지관. 이범석 전 내무부장관 묘역을 비롯해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 묘역 등 당대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의 묏자리도 그가 잡아 놓았다.
- 윤채경 - 출생지는 옆동네인 인천광역시 남동구다.
- 장수산
- 장재철
- 첸 - 아이돌 그룹 EXO의 멤버.[39] 정확히는 대전광역시에서 태어나 시흥시에서 자란 것이다. 그래서 시흥시 내에 EXO 첸 숲이 조성되어있다.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부지 근방에 위치해 있다.
- 미노 - 남성 싱어송라이터. 혼성 그룹 2S.MEAN의 리더로, 충청북도 청주시 출생이나, 현재 시흥시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 편승엽 - 가수
- 하우명(1413~1493) - 시흥시 신천동(당시 인천도호부 신현면 소속) 출생이며 조선 초기 영의정을 지낸 하연의 셋째 아들. 신천동 소래산 아래 계란마을 가는 길에 하우명 효자 정각이 있다.
- 한인수[40][41] - 밥줘, 이산(드라마)에 출연한 연기자.
- 함진규 - 시흥시 갑 국회의원. 옛 소래읍 출신.
- 황정순 - 원로배우
- JB - GOT7 및 JJ Project의 리더. 시흥시에서 태어났으나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성장함.
- 최엘림 - T1소속의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1] 2021년 1월 기준 주민등록인구[2] 제7회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기초자치단체장중에서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이다.[3] 2000년 031로 통합되기 이전에는 정왕, 시화지구는 안산지역 번호인 0345, 신천, 대야, 은행, 매화, 연성, 월곶지구는 인천지역 번호 032를 썼다. 지금도 과림동은 서울지역 번호 02를 사용한다.[4] 1997년 6월에 현 위치로 이전. 그 전까지 대야동 현 시흥시보건소 자리가 시청(시흥군 시절 소래읍사무소)이었다.[5] 이 때문에 시흥역이었던 석수역과 독산역 사이에 전철역이 2008년 12월 29일에 금천구청역으로 바뀌었다.[6] 근데 웃기게도 의왕도 시가지가 연담화되지 않은 도시다. 엄밀히 말하면 의왕시 자체만 떼어 놓고 보았을 때 말이고, 의왕시 시가지는 안양시 시가지의 연장선상에 있는 시가지이다. 행정구역의 형태 자체가 괴이한 것일 뿐 시흥시와는 다른 경우. 시청이 있는 고천동은 범계동 시가지와 연담화되어 있고, 내손동과 포일동은 평촌신도시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월암동 지역은 군포 부곡동과 한 생활권에 묶여 있다. 즉, 의왕시는 시흥처럼 완전히 시가지가 제각각 다른 도시에 묶여 돌아가는 게 아니라 동일한 안양권에 묶여 있어 훨씬 낫다.[7] 비슷한 사례로 고양시 역시 1992년 고양군에서 시로 승격될 당시 '6읍 1면'이라는, 읍이 면보다 훨씬 많은 괴상한 도시 구조를 지닌 곳이었다. 그러나 고양시는 시흥시와는 달리 각 읍들이 따로따로 시로 승격되는 일은 없었으며(검토된 적은 있었다. 고양시 문서 참조.), 각 읍들이 따로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역사로나 생활권으로나 일단은 '고양군'이라는 단일성을 상당히 유지하고 있었고, 결정적으로 1990년대, 일산신도시 및 화정지구 등의 신시가지가 개발되어 이 두 신시가지를 양대 중심으로 한 상당한 규모를 갖춘 도시권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시흥시의 사정보다는 훨씬 낫다.[8] 아이러니하게도 정왕동 일대 시화국가산업단지 지역을 칭할 때, 정왕이라는 명칭보다 시화라는 명칭이 더 자주 쓰인다. 무엇보다 이곳에 있는 이마트는 정왕이마트가 아닌 시화이마트이다. 각종 체인점 지점명에도 정왕동 안에 있는 본동,1,2동 구분 없이 통틀어서 대개 '시화점'이라는 지점명이 붙는다.[9] 그런데 개발 또한 안산시의 반월국가산업단지 같은 콘셉트, 같은 도로계획으로 하다 보니 안산시의 일부 같은 느낌이 강하게 난다. 네모반듯한 도로, 엄청나게 많은 아파트 단지 등 닮은 게 많다. 단지 차이라고는 정왕동 쪽은 지반이 약해 대체로 10층 이하의 저층 아파트가 많다는 것 정도다. 그리고 정왕동은 안산시와 마찬가지로 외국인도 많이 산다는 공통점도 있다.[10] 능곡-연성-장곡이 모두 개발되면 인구 약 10만 이상의 무시할 수 없는 수요처가 되지만 현재는 세 곳이 모두 서로 따로따로 떨어진 인구 1~2만의 고만고만한 소도읍 수준에 불과하다. 특히 연성은 시청이 있는 장현동만 떼어내면 인구가 6천 명도 안되는 시골 면소재지 수준이다. 게다가 이들이 단일한 축선 위에 놓인 것도 아니고 중구난방으로 흩어져있으니 더더욱 답이 안나온다. 능곡-장곡 도로라도 뚫리면 그나마 뭐라도 되련만....[11] 부군면 통폐합 이전 과림동 탄평과 옥길동 식골은 같은 황등천면 삼리였다. 리가 달라진 이후에도 어쨌든 같은 소래면 소속의 이웃이었다. 사실 면 구획이 촘촘했던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 같은 면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가까웠다는 소리다.[12] 1914년 이전 구 인천부 지역.[13] 후술하듯이 1914년 이전 구 안산군 지역.[14] 배곧신도시 위치는 월곶 밑에 있는 풀만 있는 아무것도 없는 매립지, 서울대학교 로컬캠퍼스가 세워질 곳이다.[15] 세무서는 시흥시가 성장하면서 현재 시흥세무서가 오히려 광명시에 지소를 두었으나, 2016년에 광명세무서로 재승격하였다.[16] 2002년 이전까지 시흥시종합사회복지회관 산하였다.[17] 연성동과 월곶동 매립지는 원래 안산 0345였으나 1996년 12월에 인천 032로 편입되었다가 2000년 지역번호 대개편으로 안산통화권으로 재편입.[18] 과림동이 서울전화에 편입된 것은 1978년의 일로 생각보다 오래되었다.[19] 참고로 이 도의원은 현 시흥시장인 임병택이다.[20] 흔히 48, 49블럭이라고 부른다.[21] 2000년 개업 당시 1층이었으나 2013년 10월경에 4층으로 개축.[22] 삼미시장 상인들의 반대로 인해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23] 드라이브 스루[괄호] A B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24] 자공고[25] 항목 참조. 비평준화 시절 대학입시 성적으로 전국 일반고 최상위권을 다투던 곳으로, 한창 주가를 날리던 1990년대 초중반 한때는 부천, 시흥, 안양, 안산, 때때로 김포와 충청남도 등지에서도 상위권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다만 1996년 이후 경기도 지역에서만 입학생을 받게 되면서 타지의 학생들이 진학하는 일은 사실상 일어나기 어렵게 되었다.[26] 경기자동차과학고의 옛 이름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학교를 앞으로 지나가는 화영운수 39와 시흥교통 26의 방송에서도 여전히 한인고라고 나왔으나 최근 들어 제대로 나오기 시작. 한인고 시절에는 그 안 좋은 이미지가 인근 광명시에도 익히 알려져 있어서 광명시내 X통인 충X고(당시 기준)도 못 가는 부진아들이 마지막으로 가는 학교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시민들에게 이렇게 깊고 나쁜 인상을 남긴 것은 단순하게 공부 못하는 애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90년대 한인고만 해도 극악한 깡패들이 우글거렸기에 일주일에 두어 번은 교정에서 경찰차를 볼 수 있었다. 둘이 입학해서 셋이 나오는 학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는가 하면, 3년 개근하면 졸업할 때 마티즈를 주는데 그 마티즈를 타 간 학생이 없다고까지... 그 당시 지역 고교생들이었던 사람들은 비봉고, 정원고와 함께 3대 폭력학원으로 기억한다.[27] 그래도 1회 졸업생 중에는 서울대에 들어간 학생이 한 명 있었다고 한다! 기계공학과라고 한다.[28] 2011년에 경기공업대학에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네 학생들은 경기공대라고 부른다.[29] 09.1.30 시장직 상실(뇌물수수)[30] 09.4.29 재보궐선거[31] 대야동, 신천동, 신현동, 은행동, 매화동[32] 참고로 김윤식 시장의 경우 시흥시 4기 시장 임기를 1년 남긴 상태인 2009년에 보궐선거를 치러 당선된 케이스라, 1년 후인 2010년 또다시 선거를 치뤄야 했다. 그리고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하며 3선 시장이 되었다.[33]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이용 시 군포시, 안양시, 의왕시, 성남시 순으로 거친다.[34] 당연하다. 금천구 시흥동이 바로 시흥시란 이름의 기원이니까... 1911년까지만 해도 현재의 금천구가 원래 시흥군의 중심지였다. 1911년에 영등포로 군청 이동. 이 경우 시흥대로에서 5602번 버스를 타면 시흥에 올 수 있긴 하다.[35] 구 시흥군 출신이지만 현 시흥시 지역 출신은 아닌 손학규(현 금천구), 김종인(현 관악구), 이원익(현 광명시), 김창완(현 동작구), 이청아(현 안산시) 등은 추가하지 말라는 얘기.[36] 1914년에 부천군 소래면 무지리로 개편. 1973년 시흥군 편입.[37] 출생 당시의 무지내동은 인천부 소속이었으니 인천 출신이라 해도 틀리진 않다. 인천시 측에서는 최초의 인천 출신 인천시장으로 본다.[38] 소래중학교 방송부 대선배라고...[39] 모 고등학교 출신이라, 해당 고등학교에 다니는 팬들은 그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조언을 한마디 하자면 이름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2010년 이전 기록을 보면 된다.[40] 2014년 시흥시장 후보에 새누리당 소속으로 나간 적이 있으나 탈락.[41] 출생지는 황해도 연백, 성장지는 시흥시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시흥군지> 하권 p739에 따르면 출생지가 시흥군 신천리라고 한다.